유라시아 농경사 권1
기고 2. 논벼농사와 고기잡이 佐藤雅志
1950년대 중반, 내가 다녔던 소학교에서는 초여름 모내기와 가을 벼베기의 농번기에 농사일을 거들기 위해 전교가 한꺼번에 쉬는, 이른바 농번기 휴교가 있었다. 그 휴교일에는 소학교 주변의 논에서 다함께 모내기와 벼베기가 행해졌던 걸 월급쟁이의 자식이었던 나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모내기 전의 논은 우리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우리는 양동이와 삽과 반두를 가지고 메기와 미꾸라지를 잡기 위하여 방과후 논 사이를 에워싸듯이 흐르는 수로를 목표로 했다. 목표는 너비와 깊이가 1미터 정도인 논의 두렁과 두렁 사이의 수로였다. 아직 모내기 전이어서 수로에는 물이 적다. 우리는 먼저 물고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장소를 확인하고 그 상류와 하루에서 물고기를 몰아넣고, 몰아넣은 수로의 상류와 하류에서 그 바닥에 있는 돌을 모으고 제방의 흙을 삽으로 퍼서 둑을 만든다. 다음에는 수로의 물을 막은 상류의 둑과 하류의 둑 사이에 괴인 물을 양동이로 퍼낸다. 물을 퍼내 바싹 마른 수로에는 미꾸라지와 작은 물고기가 진흙 속에서 꿈틀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것을 반두로 건져 양동이에 담는다. 메기는 수로의 제방 주변에 숨어 있을 때가 많았기에, 막대기와 반두로 쿡쿡 찔러 나오게 하여 잡았다. 우리는 고기잡이를 마치면 둑을 무너뜨려 양동이에 수확물을 담아 저녁놀이 질 때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의 놀이는 앞으로 쟁기질을 하려고 하는 농민에게는 훼방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둑으로 막았던 물은 수로에서 넘쳐 두렁의 물꼬를 통해 논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쟁기질이 편하도록 논을 말린다. 흘러들어간 물은 쟁기질에 방해가 된다. 악동들은 야단맞을 걸 알면서 농부에게 들키지 않도록 굴 속에 몸을 숨기고 묵묵히 작업을 진행하는데, 돌아보러 온 농부에게 들키기도 했다. 가끔은 괭이를 들고 쫓아올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수확물을 버리고 양동이와 삽과 반두를 가지고 쏜살같이 논을 가로질러 도망간다.
들키지 않고 고기잡이를 끝낼 때는 수확한 물고기를 서로 나누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우물물에 2-3일 정도 담가 진흙을 제거하고 미꾸라지는 된장국의 건더기로, 메기는 탕으로, 작은 물고기는 튀김으로 먹는 게 일상이었다. 당시 우리에게 벼를 재배하는 논은 놀이터이자 고기를 잡는 곳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실제로 보는 논은 U자형 콘크리트 수로가 정비되어 논에 들고나는 물을 제어할 수 있는 관개논이다. 경지정리가 진행되어 송수관의 수도꼭지를 틀면 논으로 물을 댈 수 있는 설비가 정비되어 있는 논도 있다. 게다가 농약과 화학비료가 사용되는 논에서는 물고기만이 아니라 물고기가 먹이로 삼는 곤충과 물풀이 사라진다. 논에서 고기 잡으며 놀던 건 베이비붐 세대의 무용담으로만 남았다.
벵갈 뜬벼 지대
나는 1989년 12월에 갠지스강의 삼각주 지대에 위치한 방글라데시에 벼의 유전자원을 조사하러 갔다. 건기의 다카시 주변의 논 지대의 흙은 바삭바삭하게 말라 있었다. 논 지대를 흐르는 수로에는 수면에서 5미터가 넘는 높은 무지개다리 같은 모양을 한 다리가 걸쳐져 있었다. 우기에는 수량이 늘어나 다리가 수몰되지 않도록 그 높이로 걸쳐 놓았다고 방글라데시 벼 연구소의 공동연구자가 가르쳐 주었다. 수심이 때로는 5미터에 이르는 이 지역은 우기에 '뜬벼'가 재배되고 있었다. 우기가 되는 것과 함께 논에 볍씨를 직파하든지, 또는 모내기를 한다. 그뒤하천에서 넘쳐나온 물이 흘러들어와 수량이 하루에 몇 센티미터 단위로 상승한다. 뜬벼는 수량이 늘어나는 것과 함께 줄기가 자라서 수면 위로 줄기의 끝에 달린 잎을 전개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건기가 되어 물이 빠져 논 토양으로 쓰러진 뜬벼는 끝의 줄기를 세워 이삭을 단다.
갠지스강 삼각주의 논 지대에서는 해마다 8월부터 10월 정도까지 강의 물이 넘쳐 홍수가 난다. 우기에 강에서 넘친 물과 함께 벼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도 큰다. 물고기를 포획하기 위해 한 변이 10미터인 그물의 네 모서리를 4개의 긴 대나무 끝에 동여맨 장치가 뜬벼 재배지역의 논에서 자주 눈에 띈다. 갠지스강 삼각주의 뜬벼가 재배되고 있는 논에서는 쌀만이 아니라 물고기도 잡는다.
캄보디아 중앙 평원의 논
캄보디아의 프놈펜에 최초로 방문한 건 내전이 종결되고 국제연합 감시단이 머물고 있던 1992년 12월이었다. 베트남 전쟁 종결 이전에는 사이공이라 불렀던 호치민에서 차로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에 들어갔다. 호치민에서 캄보디아까지 가는 길은 강을 건너기 위해 연락선에 탈 때 말고는 도로 주변에 보이는 경관은 단조로웠다. 몇 미터 높이로 흙을 쌓아 만든 도로의 좌우로 평탄한 논이 눈길이 닿는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계절은 건기였다.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논에서 벼베기를 하고 있는 농부의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다. 논에서는 야자나무가 군데군데 있었지만 마을은 보이지 않고, 30도가 넘는 무더위와 햇볕을 피할 곳 없는 논에서일하기는 힘들 것이다.
재작년 11월에 라오스 남단의 국경에서 프놈펜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도로의 양옆의 논은 두렁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물이 차 있었다. 캄보디아의 연구협력자에게 물으니, 해마다 이 시기에 물에 잠긴다고 답했다. 차를 타고 달리고 있으면 자주 물고기 냄새가 났다. 차를 내려서 보니, 4-5센티미터의 작은 물고기가 길가의 한쪽에 펼쳐져말라 있었다. 이들 작은 물고기는 여기의 수로에서 잡았던 물고기라고 연구협력자가 이야기했다. 또 작은 물고기로는 조미료가 되는 어장, 이른바 물고기를 발효시켜 만드는 간장을 만들어 밥과 물고기가 이 지역 식문화와도 깊게 관계되어 있다. 이 캄보디아 평원의 논에서는 쌀만이 아니라 물고기도 수확하고 있었다.
프놈펜의 공항에서 입수한 여행안내책자 <하우 투 @캄보디아>에 JICA 전문관인 이토伊藤 씨가 캄보디아의 물고기에 대하여 적어 놓았다. "캄보디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지 못할 만큼 민물고기 왕국"이라고 서술했다. 캄보디아에서 가물치나 메기 등을 비롯한 민물고기의 종류와 수확량이 많은 비밀은 메콩강과 똔레샵 호수에 있다고지적했다. 캄보디아 중앙부터 베트남에 펼쳐진 메콩 삼각주의 중앙에 위치한 프놈펜부터,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까지 300킬로미터 이상임에도 고저차가 겨우 약 8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기가 되면 중국과 라오스 등에 내린 비로 메콩강의 수위가 상승하고, 캄보디아의 중앙 지역은 침수지가 된다.
건기를 똔레샵과 메콩강 상류에 생긴 깊은 못에서 보낸 성숙한 물고기가 우기에 메콩강과 똔레샵강의 수위가 상승하고 범람하는 것과 함께 캄보디아 중앙의 침수된 숲까지 와서 산란하여 치어가 자라는 것이다. 일부 치어는 침수된 논과 그 주변의 수로에서도 서식하며 자란다. 우기의 방문과 함께 논에서는 벼농사가 시작되어 물고기의양식이 시작되고, 건기의 방문과 함께 벼베기가 시작되어 물고기의 수확이 시작된다. 캄보디아 중앙의 광대한 논지대는 벼의 재배만이 아니라 물고기를 기르는 곳이기도 하다.
라오스 비엔티안 주변의 논
라오스 비엔티안 주변에는 논 지역에 크고 작은 여러 둠벙이 군데군데 있다. 모내기가 시작되는 우기에는 둠벙의수위가 올라 넘친 물이 수로를 통해 논과 숲으로 흘러들어간다. 물과 함께 건기를 둠벙에서 보낸 물고기가 논과 숲으로 흘러들어간다. 논과 숲으로 흘러들어간 물고기는 우기 동안 풀과 곤충을 먹으며 크게 자란다. 우기가 끝나 논의 수위가 낮아지면 다 자란 물고기의 일부가 다시 둠벙으로 돌아오게 된다. 둠벙의 비교적 얕은 곳에서는 야생 벼가 자생하고 있다. 이 야생 벼의 줄기에 붙은 물풀과 곤충을 먹고 물고기는 둠벙에서 건기를 보낸다. 논과둠벙으로 물고기가 이동할 때나, 둠벙에 돌아온 건기에 농민은 물고기를 포획한다. 비엔티안 주변에서도 논은 벼를 기르는 것만이 아니라 물고기도 기른다.
토라자의 다락논
인도네시아 동부에 알파벳 K자 모양을 한 섬 술라웨시섬이 있다. 일본인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이 섬이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토라자 커피'라는 상품명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토라자는 K자 모양을 한 섬의 좌우 반도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토라자 지역을 작년에 조사하고, 토라자에서 산을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마마사를 올해 조사했다.
토라자는 1000미터를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산간지역이다. 산들에 둘러싸인 계곡의 양쪽에 다락논이 만들어져 있다. 그 다락논의 한가운데에는 지름 2-3미터의 구멍이 파져 있다. 때로는 구멍의 주위에 흙을 쌓아 두둑을 만든다. 그 두둑의 한 모퉁이를 째 놓아 물이 자유롭게 출입하게 한다. 또, 그 두둑에는 대나무나 나무 몇 개를 구멍을 가리는 식으로 쓰고 있다. 그 구멍이 무슨 구멍인지 궁금해서 가이드에게 물어보면, 물고기 구멍이란 답을 들었다.
물고기 구멍의 장치는 다음과 같다. 우기의 방문과 함께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시작한다. 논의 수량이 늘어나면 구멍에서 치어가 나와 논에서 살면서 물풀과 물소의 똥, 논에 모이는 곤충을 먹으며 크게 자란다. 크게 자라면새에게 잡아먹히는 일도 있지만, 그 무렵에는 벼가 무성하여 숨을 수 있기에 새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건기의 방문과 함께 논에 물이 적어지면 다 자란 물고기는 구멍 속으로 돌아간다. 건기 동안에 구멍 속의 물고기는 산란하여 치어가 생긴다. 술라웨시섬의 다락논에서도 논은 벼를 재배하는 곳만이 아니라 물고기를 양식하는 곳이기도하다.
술라웨시섬 마마사 지역의 다락논
열대지역의 논벼농사와 어로의 관계는 무너지고 있다
남술라웨시의 표고가 낮은 평지의 논 지대에서는 농약과 화학비료가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생물연료의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 팜야자, 자트로파 등의 작물 재배면적이 늘어나고 있다. 그 확대에 따라 제초제 등의 농약 사용이 퍼지고 있다. 또한 방글라데시에서는 재배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뜬벼 재배가 쇠퇴하고, 관정으로 퍼올린 지하수를 이용한 건기의 벼 재배가 확산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하수에 함유된 비소로 인한 중독도 문제가 되고 있다. 또, 비엔티안 주변에서도 논의 관개설비가 충실해지고 있다. 관개 논의 확대에 따라 새로운 벼 품종이 도입되어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이 퍼지고 있다. 열대지역의 이들 논에서 승계되며 남아 있던 '논벼농사와 어로의 관계'가 붕괴되고 있다.
논벼농사와 물고기의 관계를 재평가하자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논벼농사와 물고기의 관계'가 재검토되고 있다1. 2차대전 이후에 세계 인구의 증가에 따른 식량부족에 대한 대응책으로, 다량의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녹색혁명 벼 품종'이 관개설비의 정비를 수반하는 논에 도입되어 왔다. 그 도입은 일정 수확량의 증가를 가져왔지만, 다량의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이 늪과 호수의 부영양화 등의 오염과 논 생태계의 생물다양성 상실을 불러일으켰다. 환경 보전을 바라고,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벼농사 논과 물고기의 관계를 재검토하기 시작하고 있다.
시가현의 비파호에서 권장되는 '물고기의 요람 논 프로젝트'가 그 하나이다. 경지정리 사업 등이 행해지기 전의 비파호 주변의 논에서는 비파호의 수위 변동에 따라 때로는 침수 피해를 입곤 했다. 그러나 침수된 저습지와 논은 비파호에서 생식하고 있던 붕어와 메기 등이 번식하는 장이었던 것이 인식되어 이 프로젝트에서는 물고기 번식의 장, 즉 저습지와 논을 확보하기 위하여 비파호에서 논으로 물고기가 거슬러 올라가기 쉽도록 어도를 만들고, 다 자란 물고기를 방류하는 일이 권장되고 있다. 또한 물고기가 논으로 거슬러 올라옴에 따라 물고기를 잡으러 논에 날아오는 해오라기 등의 새가 늘어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비파호에 사는 물고기를 보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쌀을 생산하며 환경을 보전하고 안전한 쌀을 생산하는 데에도 의의를 지닌 시도이다.
또한 베트남 남부의 메콩강 삼각주 지대에서는 베트남 전쟁 이후 도이모이 정책에서 시작된 작부체계가 시도되고 있다2. 메콩 삼각주 지대에 온통 둘러쳐진 수로를 이용하여 벼와 채소 등의 작물 재배, 망고 등의 과수 재배, 돼지 등의 가축과 물고기의 양식을 조합한 농법이다. 이 농법은 삼각주 지대에서 옛날부터 계승되어 온 벼 재배와 어로에서 발전한 것이다. 아직 농업 경영의 면에서는 안정되지 않는 등의 문제는 남아 있지만, 안전한 식량 공급의 면에 의의가 있는 시도이다.
벼농사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침수지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소개한 갠지스강과 메콩강 등의 큰강의 삼각주 지대에서는 물고기가 떼를 지어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범위가 넓고, 비엔티안 지역의 둠벙, 그리고 토라자의 다락논에서는 그 범위가 좁아진다. 물고기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범위는 다르지만, 논벼농사와 물고기의 관계는 똑같다. 즉, 물고기는 논의 잡초 등도 포함한 물풀과 조류, 때로는 지렁이와 곤충을 먹고서 똥을 싼다. 물고기를 잡으러 새가 논으로 날아와 물고기를 포획하고 똥을 싼다. 논에 들어온 물고기가 그 똥을 먹고서 똥을 싼다. 논에서 자란 물고기를 인간이 포획하고 논에서 날라다 먹는다. 이처럼 다른 곡류와는 달리 물은 댄 밭, 즉 논에서 벼를 재배하는 일은 물고기를 사이에 두며 생태계의 균형을 잡아 왔다고 지나친 말이 아니다. 벼농사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저습지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계승되어 온 옛 벼농사 방식을 조사하고, 쌀만이 아니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물고기도 기르는 새로운 논을 구축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50년 전 논에서 행하던 고기잡이를 베이비붐 세대의 자랑거리로 끝나게 두면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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