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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우리는 여러 신과 함께 삶을 살아갔다. 일본의 그 수많은 신만큼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어디에나 신이 있었고, 그런 신들을 모시고 살았다. 물론 그것은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던 시절, 자연의 법칙과 운행원리를 잘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출산을 할 때 애가 잘 나오지 않으면 남편이 멍에를 지고 지붕에 올라가 울음소리를 내기도 했다고 하지를 않나, 뭐 그런 행동들 말이다. 하지만 효과적인 것들도 분명히 있었다. 서구의 문물이 츠나미처럼 밀어닥치는 바람에 미신으로 타파 대상이기만 했던 것들이 그나마 다시 연구되고 조명받기도 하는는 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인간 의식의 확장이 이루어진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당시의 신은 무지와 같은 개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양한 신이 있었기에 늘 조심하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자기 이외의 존재를 인정하며 살았다. 자기도 알 수 없는 어떠한 존재와 함께 살려면 그래야 했을 게다. 그렇게 우리 삶 속에 자리하고 있던 신들은 인간 이성에 빛이 들어오면서, 계몽이 되면서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몇몇은 사라지는 것이 아쉬운 것도 있고, 몇몇은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도 없는 것들이 있기도 하고 그렇다. 우리를 떠난 신들, 특히 집을 지켜주는 지킴이인 가신들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1. 조령祖靈


먼저 조상의 혼령을 들 수 있다. 보통 신주단지라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호남지방에서는 이를 지석(帝釋), 지석오가리, 세존주머니, 올기심리라 부르기도 하고, 경기도 지역에서도 제석이라고도 한다. 어떻게 신주단지를 제석이나 세존이라 부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불교의 영향인 듯하다. 

신주단지는 크게 세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조그만 단지에 쌀을 가득 넣고 한지로 입구를 봉한 다음, 시렁 위에 안치하는 형태이다. 단지 안의 쌀은 햅쌀이 나면 그걸로 해마다 바꾼다. 이때 묵은 쌀은 밥을 지어 식구들끼리만 나누어 먹는다. 여타의 제사음식을 이웃과 나누어 먹는 것과는 다른 행위이다. 이는 카톨릭에서 예수의 몸으로 성체를 받아먹듯이, 자신들을 보호하는 신의 몸을 받아 먹는다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어느 종교에서나 신의 몸과 신의 피(술)를 받아마셔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비는 행위는 똑같은 법이다. 

두번째는 곡식 3되 정도가 들어가는 주머니를 만들어 거기에 쌇은 가득 넣은 뒤 안방 벽에 걸어 놓는 것이다. 이때도 햅쌀이 나면 묵은 쌀과 바꾸어 넣는다. 마지막으로 호남지방 일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석짝(뚜껑이 있는 대바구니) 안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름을 적은 한지를 넣어 안방 시렁 위에 안치하는 형태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신주단지의 모습이다. 이런 걸 한쪽 벽에 설치하는 것이다.




2. 성주成主


다음은 성주라는 집을 지키는 신이다. 흔히 성주대감, 성주조상이라고도 한다. 성주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단지, 다른 하나는 한지의 형태이다. 단지는 보통 50~60cm의 단지에 그해의 햅쌀이나 보리를 넣고 나무나 옹기 뚜껑으로 덮은 형태이다. 그리고 그 뚜껑 위에는 성주물그릇이란 작은 종지를 놓고 정화수를 떠 넣기도 한다. 아니면 대청마루 한구석에 동이를 놓고 거기에 쌀을 담아 성주로 모시는 곳도 있다. 이런 형태를 경남에서는 부르단지 또는 부르독이라 한다. 다음 한지는 창호지를 접어서 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상량대에 실로 매달거나, 안방 문절주 위에 창호지를 접어 붙이고 그 위에 쌀알을 붙여 놓는 형태이다. 아무튼 성주는 보통 대청에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주신은 위의 사진처럼 단지에 모시기도 하고, 아래처럼 종이로 모시기도 한다.

능력 따라, 형편 따라, 사정 따라 모시는 방법은 달라진다.


여기로 들어가면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http://goo.gl/0D49w

















3. 조왕竈王


조왕은 조왕신, 부엌신, 조왕할매, 조왕대감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불의 신이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조竈 자의 생김이다. 구멍에 맹꽁이가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부엌 구멍, 곧 아궁이에 불이 잘 들여서 밥도 잘 되고 방도 따시며 불도 나지 말라는 의미가 담겼을까? 조왕신을 모시는 곳은 대개가 부뚜막이다. 부뚜막에 물그릇을 두고 거기에 물을 채워 놓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조왕은 부엌신인 만큼 여자의 일상과 관련이 깊었다. 여자들은 조왕신께 가족들의 건강과 안위를 빌었다. 먹을거리를 담당하는 신이기에 건강과는 직결되었을 것이다.


부뚜막에 조왕신을 위해 치성을 드리는 고사상을 차렸다. 더 많은 사진과 함께 자세한 설명은 여기를 참조하라 http://goo.gl/7KgEZ




4. 지신地神


지신은 터주, 터주대감이라고도 한다. 터주대감은 요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것을 가리킬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이 신은 말 그대로 집터를 관장하는 신이다. 안뜰이나 장독대, 뒷뜰 담 밑, 축담 뒤꼍 등 다양한 곳에 모시나, 보통은 뒤꼍 장독대 주변에 모신다. 장소가 다양한 만큼 모시는 형태도 다양한다. 시루에 쌀을 담은 사발을 넣고 그 위에 짚으로 지붕을 씌워 놓은 것도 있고, 단지에 오곡을 넣고 입구를 한지로 봉한 뒤 목을 짚으로 감은 형태도 있다. 터주대감에게는 무사태평함과 풍년, 가업의 번창을 기원했는데, 다른 신들과 달리 가장이나 맏며느리가 모셨다.


이것이 바로 지신을 모시는 형태다. 간혹 아직 농촌의 어느 집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도 있지만, 그런 집을 만나기란 정말 0.0001%의 확률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http://goo.gl/97ItW).




이밖에 측간신도 있고, 삼신과 칠성신 등등등 모두 따지자면 그 수가 엄청나게 많다. 심지어 외양간을 지켜주는 귀신도 있다. 그뿐이랴. 집을 지켜주는 다양한 신들 외에 마을을 지켜주는 신들도 있다. 언제 시간을 들여 이들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만 지금은 능력이 되지 않으니 넘어가도록 하겠다.


믿음의 체계에는 인간이 무언가를 바라는 행위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 맥락에서 어찌 보면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신을 모시는 하나의 체계라고도 할 수 있다. 신은 존재하는가? 이런 류의 질문만큼 쓸데없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신은 아무도 모른다. 신의 존재가 어떻고 저떻고를 이야기하기보다 우리와 어떤 신들이 함께 살았는지, 그리고 왜 그런 존재를 필요로 했을지 살펴보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 아직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섬나라에는 일반적으로 신이 많다. 그건 왜 그럴까? 아무튼 얘기가 잠시 딴 데로 샜고, 우리의 가신들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함께 살아왔다. 조상신이 그렇고, 성주신이 그렇고, 조왕신은 물론 터주신도 그렇다. 우리의 생활 하나하나와 그를 담당하는 하나하나의 신이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신들이 지금은 국민의 반이 하나님을 믿기에 모두 사라진 것일까? 생물은 다양해야 서로 공존 공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건 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일까? 절대적이기에... 우리와 함께했던 그 많은 신들이 무엇 때문에 우리와 살았던 것인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인만 덩그러니 남아 불안하고 외로운 이 시대에 그들을 다시 불러낼 수는 없을까.



가신들과 관련해 근래에 나온 재미난 만화가 있다.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라는 만화다. 참으로 재미나게 대단한 작품을 만드신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여기로 가면 웹툰을 볼 수 있다. http://goo.gl/tlWiC




마지막으로 백석 시인의 시를 감상하며 마치도록 하겠다. 아마 백석 시인이 어릴 적 경험했던 다양한 가신과 마을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듯하다. 어린 마음에 그런 알 수 없는 귀신들의 존재는 무서움 그 자체다. 나도 어릴 적 동네에 있던 서낭당을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모른다. 그 앞을 혼자서 지날 일이 있으면 부러 저 멀리 돌아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퉁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 안으로 가면 뒤울 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구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빠져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당구신

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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妙香山行 乘合自動車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慈城은 예서 三百五十里 妙香山 百五十里

妙香山 어디메서 삼춘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自動車 유리창 밖에

內地人 駐在所長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들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車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內地人 駐在所長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

1939년에 발표한 백석 시인의 시 팔원. 

읽는 순간 가슴이 짠했다. 

예나 지금이나 없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고생이다. 

지금처럼 좋은 시절에도 없는 집 아이들은 위 시에 나오는 아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산다.

민족주의니 뭐니 이런 걸 싹 걷어내고 인간의 삶만 놓고 본다면 지금 시대나 저 시대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게 더욱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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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津 땅이 지붕넘에 넘석하는 거리다

자구나무 같은 것도 있다

기장감주에 기장차떡이 흔한데다

이 거리에 산골사람이 노루새끼를 다리고 왔다

산골사람은 막베 등거리 막베 잠방등에를 입고

노루새끼를 닮었다

노루새끼 등을 쓸며

터 앞에 당콩잎을 다 먹었다 하고

서른닷냥 값을 부른다

노루새끼는 다문다문 흰 점이 백이고 배안의 털을 너슬너슬 벗고

산골 사람을 닮었다

 

산골사람의 손을 핥으며

약자에 쓴다는 흥정소리를 듣는 듯이

새까만 눈에 하이얀 것이 가랑가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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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僧



女僧은 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山절의 마당귀에 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내가 좋아하는 백석의 시 가운데 하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하다. 


어느날 우연히 길에서 여승을 만난다. 그런데 그 여승의 낯이 설지 않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으니 예전 평안도의 어느 산에서 만났던 일이 떠오른다. 

그 여인에겐 남편이 있었지만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고, 어린 딸 하나가 유일한 의지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딸아이가 죽고 만다. 

딸의 무덤가에는 도라지꽃이 피고 여인은 절로 들어가 속세와의 인연을 머리칼과 함께 모두 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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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하는 일. 이제 5일이 지났다.

슬슬 하루의 의식처럼 자리를 잡는 느낌이다.

이 일을 한 달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도 계속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라는 소리다.

앞으로도 빼먹지 말고 꾸준히 해야지. 무슨 일이든 끈질기게 끝까지 하는 사람이 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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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부터 <백석전집>에 실린 그의 글을 필사하기로 마음을 먹고 시작했다. 오랜만에 펜을 쥐고 글씨를 쓰니, 안 쓰던 힘줄에 팽팽히 힘이 들어가서 저린다. 그동안 손가락만 현란하게 춤추는 자판에만 익숙해진 탓이리라.

 

오늘부터 느리지만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곧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글씨 쓰기를 꾸준히 하려고 한다. 그에 '白石'이 함께하니 이 또한 더욱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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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괴산군 감물면.

 

 

당콩밥에 가지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대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한울에 별이 잔콩 마당같고
강남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 백석, 박각시 오는 저녁

내가 사랑하는 백석의 시. 어쩜 이리 정겨운 말로 아름답게 그리는지 모르겠다.
박꽃이 피는 건 어둠이 깔릴 때, 박꽃이 열리기를 기다렸던 박각시며 주락시가 달라붙는다.

그 무렵이면 사람들은 들에서 돌아와 지난 봄 수확한 강낭콩을 넣어 지은 밥을 먹는다.

한낮의 열기에 달궈진 몸은 시원한 가지 냉국으로 달래고, 뙤약볕에 달궈진 집은 안팎의 문을 열어 식힌다.

그래도 참지 못하는 날에는 멍석자리 들고 뒷동산에 올라 나무 밑에 앉아 땀을 식힌다.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하늘엔 별이 총총하니 빛나고, 풀벌레는 시끄럽게 울기 시작한다.

수박이라도 하나 들고 올랐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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