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728x90
728x90

 

2010년 8월 20일, 이틀 전 다 돌아보지 못한 연풍면을 끝내러 온 날. 7시 40분 화성 봉담을 출발해 영동고속도로 덕평휴게소에서 잠시 요기를 하고, 괴산으로 나와 수안보를 거쳐 연풍면으로 접어드니 10시 20분이다. 오늘은 연풍면의 새재 3관문으로 넘어가는 고사리부터 시작이다. 이곳은 휴양림과 수련원, 호텔, 민박집 등 관광객을 상대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고사리를 뒤지고 다니는 수집단. 이 동네는 농사짓는 사람이 없고 아랫동네로 내려가라는 말만 들었다.

 

 

이날 어제에 이어 무시무시한 폭염이 수집단을 괴롭혔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몸에선 땀이 줄줄줄...

 

 

쉬는 김에 모두 함께 단체사진이나 한 장 찍었다. 언젠가 써 먹어도 써 먹겠지.

 

 

다시 차를 타고 아랫동네인 수옥정 마을로 향했다. 이곳은 그 유명한 수옥폭포가 있는 곳이다. 귀농본부에는 수옥이란 이름을 지닌 사람들이 꽤 있는데 다들 이 동네로 귀농하면 되겠다. 하하.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한 수옥폭포. 

 

 

이 좋은 곳에 이름을 새기는 일은 옛사람이나 요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수옥폭포가 있는 마을에는 한지 체험 공예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안에 들어가 한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내친 김에 닥나무를 보러 신풍한지를 찾아가기로 했다. 

 

 

수옥 마을의 감나무. 대략 70여 년 정도 된 걸로 추정. 아래는 그 열매.

 

 

 

 

장에서 사다 심으셨다는 중국오이.

 

 

더덕꽃도 한 장 남긴다.

 

 

수옥 마을을 한참 돌아다니다가 한 집에서 할머니를 발견. 얼른 좇아가서 이것저것 여쭙고, 완두를 얻어서 나왔다.

 

 

 

이제 차는 신풍으로 내달린다. 한지 공장으로 출발! 6~7분을 달리니 마을이 나온다. 장사가 될 지 궁금한 모텔 2동이 함께 서 있는 걸로 보아서, 옛날 지금과 같은 새로운 길이 뚫리기 전에는 꽤 많은 사람이 이 길로 오갔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신풍 마을 안에서 길을 헤메고 헤메다 한지 공장을 찾았다. 대표 분은 군청에 일이 있어 나갔고 직원 분만 있어 말씀을 드리고 닥나무 밭으로 안내를 부탁했다. 

 

한지의 원료. 닥나무 껍질을 잘 이겨서 만든다. 

 

종이를 뜨는 곳. 방법은 이미 다들 아시리라 ...

 

 

한지의 원료 닥나무 껍질에 닥풀을 섞고 거기에 물을 부은 재료. 

 

 

직원 분과 대화 중인 안완식 박사님. 그 뒤쪽으로 "한장의 종이에도 정성을..."이란 문구가 보인다. 

 

 

떠 놓은 한지. 이게 마르면 그 귀하다는 한지가 된다. 

 

 

한지에서 정말 중요한 접착제 역할을 하는 닥풀. 뿌리를 캐서 잘 씻은 뒤 그걸 날로 이기면 접착 물질이 나온다고 한다. 

 

 

공장을 나와 한참을 달리는 연풍면 소재지가 있는 부근에 닥나무 밭이 마련되어 있었다. 닥나무는 농약 성분이 닿으면 죽는 특성이 있어 농약은 줄 수 없다고. 그래서 닥나무 밭은 두둑에는 비닐이, 고랑에는 부직포가 깔려 있었다. 거름은 밑거름으로 퇴비만 준다고 한다. 이렇게 닥나무를 한 번 심으면 십 몇 년은 계속 베어서 쓸 수 있단다. 잎은 먹고, 껍질은 한지로, 뿌리는 미백 효과가 좋아 화장품으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자랑이다. 그래서 괴산군에서도 관심 집중! 

 

 

 

 

다시 신풍 마을로 돌아와 동네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한지 공장만 보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얼마나 날이 더운지 아이들은 마을 광장에 모여 함께 멱을 감으러 가려고 했다. 어찌나 부럽던지... 연풍면은 전반적으로 물이 참 좋은 곳이다. 개울도 깨끗하고, 샘도 많고... 그 시원한 물 속으로 그냥 풍덩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아이들이 건강히 살아 있는 마을. 이런 마을을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신풍 마을을 돌고 돌다가 장연에서 보았던 백오이를 다시 발견했다. 주인 할머니께 물으니 충주에서 씨를 얻어오셨다고 한다. 아삭아삭하니 맛있다고...

 

  

 

 

 

다시 동네를 돌다가 지붕에서 커다란 호박 하나를 발견. 집 안으로 찾아가니 마침 에어컨을 틀고 쉬고 계셨다. 우리 일행을 반기며 잠시 들어와 쉬라고 하시길래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가서 땀을 식혔다. 아이고 되다.

 

 지붕 위에서 자라고 있어 더 이상 깨끗하게 찍을 수 없었다.

 

호박을 본 집 옆에서 발견한 댕댕이덩굴. 사진에 보이는 열매는 약으로 쓰고, 덩굴은 질겨서 망태 같은 농기구를 만들어 썼다. 

 

 

닥나무를 보고 신풍 마을로 돌아오기 전, 율전이란 마을에 들러 동네를 뒤졌다. 율전은 밤나무밭이란 뜻일 텐데 밤나무보다 감나무가 훨씬 많았다.

 

율전 마을에서 본 감나무와 그 열매(아래). 주인을 만나지는 못해 다음 기회에 다시 찾기로 했다. 

 

 

 

신풍 마을과 그 바로 옆에 있는 절골까지 돌아보니 시간은 벌써 2시를 훌쩍 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는데 토종 수집 조사에서는 일하느라 점심 끼니도 제때 먹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어쩌랴 점심을 먹자고 다시 여기를 떴다가 돌아오면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니...

 

점심을 먹고 나오며... 하늘은 멋지다만 어찌나 뜨겁던지...

 

 

그래도 이제 연풍면의 3/5은 끝냈다. 두 골짜기만 더 돌면 연풍면을 다 볼 수 있다. 너무 더워 점심을 먹고 잠시 쉰 다음 3시가 넘어서 다시 수집 조사에 나섰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은티 마을. 희양산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으로, 이곳을 넘어가면 환경보호로 유명한 봉암사가 나온다. 또 그곳은 귀농자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운데 바위가 보이는 산이 희양산. 그 오른쪽 골로 넘어가 예전에는 가은장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안철환 선생님이 급한 일정이 있어 먼저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연풍면으로 다시 나간 사이 동네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다니다 발견한 부추. 할머니께서 씨를 받아주신다고 했다. 예약해 놓았으니 나중에 찾으러 가야지.

 

 

동네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집. 하지만 할머니 혼자 사시면서 돈을 벌러 한 번씩 나갔다 오신다고 하여 토종은 없었다. 집은 정말 옛날에 지은 것이었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의 부엌.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거렸지만 별 다른 수확은 없었다. 그러다 어느 집에서 강낭콩을 발견. 그런데 주인이 없어 할 수 없이 채집에 나섰다.

 

주인이 비운 집에서 발견한 강낭콩. 나중에 찾아와서 더 조사해야 할 일이 생겼다. 아래는 이 강낭콩의 생물.

 

 

 

은티 마을 주막집. 이곳에서 희양산으로 오르는 사람이 꽤 많은가 보다.

 

 

은티 마을을 나와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을 찾아갔다. 마보라는 마을이다. 하지만 축사만 잔뜩이고 별 특이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 마지막 골짜기 하나가 남았다. 서둘러 그리로 향했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논길을 지나 화성, 매바위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곳도 마보와 마찬가지로 축사가 대부분, 일부는 과수, 나머지는 논뿐이다.

 

 

콩밭에 서 있는 허수아비가 재밌어 한 장 찍었다. 아래는 비탈밭에서 고추를 따서 지게로 나르고 있는 마을 어르신. 

 

 

 

 

평지에서는 별 걸 찾을 수 없으니 골짜기 깊숙히 들어갈 수밖에. 마지막 골짜기의 가장 깊숙한 곳인 안말까지 그대로 달려가려는데, 기름이 다 떨어졌다. 할 수 없이 연풍면으로 나가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를 찾았으나 면 안에는 없어 주유소를 찾아 한참을 달려갔다. 다시 기름을 채우고 돌아오는 길에 낭비하는 시간이 아까울 뿐.

 

다시 안말까지 달려갔다. 지도에는 안말 위로도 마을이 더 있었으나 사람들에게 물으니 그 위로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단다. 안말의 가장 위에 자리하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이 집,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안말의 가장 깊숙히 자리한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피를 말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집 구석구석에 자라고 있는 작물들이 심상치 않다. 

 

 

마침 주인 할머니께서는 산에 있는 들깨밭에서 일하고 계셨다. 할머니를 찾아 한참을 올라가 겨우 사정해서 모시고 내려왔다. "할머니"라고 크게 부른 것이 주효했다. 자신의 손자가 와서 자기를 부르나 해서 얼른 돌아나오셨다고... 16에 이곳으로 시집을 와 이제 여든이 다 되어가는 채임순 할머니는 이곳에서의 삶을 이렇게 정의하신다. "산지옥이라요." 더 놀라운 것은 안말로 이사온 것은 10년 남짓 정도고, 원래는 저 위에 있었다는 힌디미에 사셨단다. 힌디미는 지도에는 힌드뫼라고도 나온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이 옆으로 유명한 백화산이 있어서 힌디미라고 했단다. 아마 해가 잘 드는 곳이라 밝은 언덕, 밝은 곳이란 뜻으로 힌디미, 힌드뫼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할머니의 말씀에서도 이곳 안말보다 힌디미가 훨씬 농토도 넓고 농사짓기 좋았다고 한다. 단 한 가지, 차가 들어오지 않아서 그게 힘들었다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할머니의 삶은 다시 한 번 찾아가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힌디미에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는 마지막 증인인 셈이다.  

 

안말에서 바라본 힌디미. 장정의 잰걸음으로 걸어가면 20~30분쯤 걸린다고 한다. 정확한 위치는 가운데 골짜기의 왼쪽으로 나무들이 약간 갈색으로 변한 그곳 너머라고 하신다. 거기까지 갔다와 보면 재밌겠다. 지금 아들이 찾아와 옛날 살던 곳에 가서 재피를 따고 있다고...

 

 

할머니 댁에서 발견한 토종 오이. 맛이 무척 달다. 

 

 

 

 

산이 깊어 이곳에서는 자연히 씨를 받아서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장에 나갈 일은 생필품을 구하거나 수확한 농작물을 매상하러 갈 때뿐. 아니면 제사를 준비하느라 흰쌀을 구하러 나갈 때 말고는 그냥 여기서 주구장창 땅만 파고 살았어야 했을 게다. 그래서 할머니 입에서는 자연스레 여기가 산지옥이란 말이 나왔겠지. 사진은 할머니가 상시 씨를 받아 심는다는 근대.

 

 

안말에 있는 다른 2~3가구를 더 찾아가 보았다. 하지만 첫 번째 집만큼 특별한 것은 쉬이 찾아볼 수 없었다.

 

안말의 다른 집에서 기르는 옥수수밭. 옥수수 하나만 자라는 법이 없다. 꼭 사이에 무언가 자라고 있어도 있다. 

 

 

 

몸이 아픈 할아버지와 함께 들어와 살다가 할아버지는 먼저 떠났지만 할머니는 그냥 이곳에 남았다고... 그 사연 많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듣자면 하루 낮밤으로도 부족할 게다.

 

 

산에서 캐다가 옮겨심었다는 취에는 꽃이 피었다. 할머니 인생에도 활짝 꽃이 피었던 때가 있었을까?

 

 

안말에서 나와 내려오면서 들른 두 마을에서는 이렇다 할 수확이 없다. 그냥 확인했다는 데 만족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연풍이 슬픈 것일까?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 연풍을 벗어나니 신기하게도 언제 비가 왔나 싶게 말짱하다.

 

 

 

 

 

728x90
728x90

 

2010년 8월 18일. 아침 7시 30분에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며 밥을 먹다가 걸려온 전화에 화들짝 놀라 얼른 나갔다. 7시에는 만나야 시간 안에 갈 수 있던 걸 착각하고 있었다.

8시 넘어 괴산으로 출발. 먼저 지난번에 찾은 청참외를 확안하고자 상리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서 마을 이름과 유래가 적힌 비석을 촬영.

 

 

 

 

윗시몇의 시몇은 수미터라는 말이 변형된 것이라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동네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면, 수밑, 숨밑과 비슷한 발음을 하시던데 혹시 숲밑은 아닐지?

 

 

 

 

마을 유래비에서 바라본 윗시몇 마을 전경. 마을 유래비 내용을 보면 어느 도인이 좋은 수맥을 찾아주어 마음 편히 논농사를 지을 수 있어 끼니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과연 그 유래비처럼 이 마을은 물이 좋다.

 

 

지난번 찾은 참외로 연출한 사진. 꽃과 잎과 줄기와 열매까지 모두 한자리에 나온다.

 

 

우리에게 줄 참외를 찾고 계신 이종윤 어르신. 

 

 

지난번에 본 대한이란 벼의 교잡종. 빨간 까락이 보인다. 연풍 지역의 논에서는 이러한 교잡종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너무 많아서 지저분해 보일 정도다. 볍씨 갱신할 때가 다 되어서 그런가?

 

 

산에서 끊임없이 찬물이 흘러 내려온다.  

 

 

'대한'이란 벼를 심은 논. 찬물이 흘러 들어오기에 뒷도구(물을 돌려서 수온을 올린 다음 논에 물을 대기 위한 도랑)를 쳤다.

 

 

논 바로 옆에 있는 우물. '우물 안에 내가 있소. 하늘이 들어 있소.'

 

 

다음으로 드디어 연풍면으로 넘어갔다. 처음 찾은 곳은 갈길 마을. 하지만 별 다른 것은 찾지 못하고 다음 금대 마을로 넘어갔다.

 

 

 

 

갈길 마을과 금대 마을. 이 두 마을을 합하여 갈금리라고 한다. 칡 갈 자에 가야금 금 자. 그걸 그대로 풀어 칡덩굴이 가야금의 현과 같다고 하는 해석도 있다. 헌데 우리나라에 '갈'이란 지명이 여기저기 있는 걸 보아서는, '갈'이란 고어의 뜻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금대 마을의 모습. 다리 난간은 참깨 말리는 곳으로 전환되었다.  

 

 

금대 마을 입구에 자리한 수수밭. 온갖 종류가 뒤섞여 있는 좋은 학습장이라고 한다. 키가 큰 놈, 작은 놈부터 이삭의 모양도 제각각이다.

 

 

 

 

키 작은 수수와 키 큰 수수의 차이. 

 

 

금대 마을에 들어가 정자에서 쉬고 계시던 분들께 정보를 얻어 18대째 살고 있다는 집을 찾았다. 

 

 

고추 말리기가 한창이다.

 

 

이 집에 사시는 할머니께서는 지난해까지 옛날 자주감자를 심다가 매상도 안 해주고 힘도 들어 그만 없애셨단다. 지난해에만 왔어도 괴산 토종 자주감자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대신 완두와 엇그루팥을 얻었다. 엇그루팥은 그루팥의 일종인데, 알이 좀 더 굵은 느낌이다. 이것 말고 잔그루팥이라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진짜 오래된 것인데 그것도 사라졌다고. 잔그루팥은 말 그대로 자잘하다는 뜻이겠지.

 

 

동네에서 얻어다 심는다는 완두콩.

 

 

엇그루팥.

 

 

엇그루팥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려고 밭을 찾아 나섰다.  

 

 

밭으로 가다가 죽어 있는 새끼 뱀을 보았다. 개미의 먹이가 되고 있는 중. 자연은 감정이 없다. 그저 돌고 도는 순환의 고리일 뿐.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나무에 날아와 쉬고 있다. 

 

 

엇그루팥을 찾다가 이상한 동부를 발견했다. 이 동부의 주인을 찾으려 동네를 뒤진 결과 다시 그 18대째 살고 있다는 집으로 돌아갔다. 역시 토종의 법칙을 확인할 수 있다. 있는 집에는 이것저것 많이 있다. 

 

 

강가 귀퉁이 땅에는 부추도 계속 심어 오고 있다. 이 부추도 상시 심는 것. 거름을 많이 하면 넓적해진다고 한다.

 

 

 

 

금대 마을을 나와 적석리 쪽으로 달렸다.

 

 

후동을 찾아가려고 잠시 차를 세워 더위를 피하고 계신 어르신 두 분께 길을 물었다. 이 소나무는 200년 가량되었다. 

 

 

 

 

원래는 길 쪽으로도 가지가 뻗었으나, 썩어 부러져 가지를 쳤다고. 이 나무를 살리려 주사도 많이 줬단다.

 

 

후동과 양지 마을에서는 별 다른 것을 찾지 못했다. 사과 과수원만 가득. 연풍이 사과로 유명한 곳임을 실감했다.

다음은 양지 마을 건너편에 있는 음지 마을로 향했다. 음지 마을은 마을 위로 34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지나다니는 차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다. 교통량이 많은 곳이라면 모두들 떠났을 것이다.

이 마을의 위쪽에는 사방댐이 있는데, 군에서 등산로를 개발하면서 외지 사람들이 와서 마을의 식수가 되는 그곳에서 목욕까지 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한다고 불만이 대단했다. 모르는 곳에 가서 함부로 서리하지 말지어다. 함부로 행동하지 말지어다. 그곳도 모두 사람이 살고 있는 곳, 그곳만의 법이 있다.

 

 

음지 마을에서 멋진 댑싸리 하나를 발견. 

 

 

간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내린 큰비로 개울물이 무섭게 불었다. 

 

 

길이 뚫리며 생긴 변화의 하나. 외지인이 산에 들어와 함부로 산나물과 약초를 훔쳐간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오래된 나무 전신주 하나가...

 

 

음지 마을에서 나와 종산 마을로 향했다. 34번 도로를 타고 적석터널을 지나 종산 마을로.

 

 

종산 마을의 어느 집. 장독대며 집 안이 정갈하다. 담장 위에서 자라는 호박이 정겨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할머니 혼자 사시며 집을 깔끔히 유지하고 계셨다.

 

 

할머니 댁의 마늘. 연풍 지역의 마늘은 유난히 알이 잘다. 추운 겨울과 관련이 있을까? 

 

 

할머니 댁에서 키 작은 자주빛 강낭콩을 발견했다. 색이 참 곱다.

 

 

종산 마을에서 발견한 대파. 내력과 유래를 찾고자 했으나 집에 주인이 없었다. 들에 일하러 가신 듯... 마당에서 주운 1만 원은 다음에 오면 깜짝선물로 찾아주겠다며 안완식 박사님이 처마 쪽에 몰래 숨겨 놓으셨다.

 

 

가지를 많이 치는 종산 마을의 대파. 

 

 

개량종 대파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슈퍼에 가서 사는 대파와 비교해 보시길... 

 

 

종산 마을에서 본 4륜 구동 트럭 세렉스. 대학 시절 강원도로 농활을 가면 흔하게 보던 트럭이다. 이곳도 산간 지대라 이런 트럭이 필요하다.

 

 

종산 마을까지 보고 연풍면 쪽으로 향하다가 2시가 넘어 늦은 점심을 먹었다.

 

 

주인 아저씨의 취미 생활로 맛뿐이 아닌 재미를 더하고 있는 연풍가든. 우리집 개의 이름이 연풍이인데, 이곳은 어디를 가든 연풍이다. 심지어 연풍 성지까지 있다.

 

 

점심을 먹고 유하리로 향했다. 버드나무와 관련된 한자말이다. 아마 이 골짜기를 흐르는 내의 주변에 버드나무가 많았나 보다. 1914년 일제는 우리나라의 지명을 자신들이 알아볼 수 있는 한자로 전면 제정한다. 그 이후 우리의 지명은 한자에 오염이 되어 버렸다. 오전에 갔던 후동後洞만 해도 그렇다. 마을 안쪽 깊숙한 곳에 있다는 뜻으로 부르던 이름을 한자로 바꾸면서 후동이라 했을 것이다.

유하리 오수물에서는 별 다른 것을 찾지 못했다. 대신 그 위쪽에 자리한 내응 마을에서는 무언가 나왔다.

 

 

내응 마을에서 찾아간 집. 앞마당에서 유월두를 말리고 있었다. 마침 할머니가 그늘에 앉아 계시길래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할머니 댁 안의 예전 외양간 같아 보이는 곳에는 할머니가 달아 놓은 씨앗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솜씨 좋은 실력으로 지은 듯한 이 외양간은 이제 사용하지 않는다. 할아버지께서는 치매가 와 아무 일도 하지 못하신다고...

 

 

 

할머니 댁에서 얻은 흰동부. 첫날 괴산 장에서 샀던 그 동부와 비슷하다. 여기도 있구만 장터 할머니도 참...

 

 

검은깨. 알이 참 굵다.

 

 

밭에서 자라고 있는 흰동부를 찾고 싶어 길을 나섰다. 흰동부는 늦게 심을수록 좋다고 한다. 6~7월이 적당한 때. 일찍 심으면 덩굴이 너무 많이 져서 좋지 않다고. 앞으로 동부는 조금 늦게 심자. 덩굴이 뻗는 것일수록 그게 좋겠다.

 

 

내응 마을의 댑싸리. 쪼로록 함께 자라니 참 예쁘다.  

 

 

내응 마을 새마을 창고. '새벽 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어디선가 이런 노래가 흘러나올 듯한 분위기. 이곳이 바로 유럽 식으로 말하자면 마을 광장이다. 마을회관도 보건소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동네 할머니들도 이곳에 모여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바로 여기서 흰동부를 심으신 분과 검은깨를 심으신 분을 찾았다.

 

 

할머니를 모시고 밭을 찾아왔다. 바로 눈앞으로는 중부내륙고소도로가 뻗어 있다. 인간의 위대한 역사다! 

 

 

안완식 박사님은 꽃이 핀 모습을 찾고자 분주하시고, 할머니는 동부의 순을 질러주느라 바쁘시다. 농사일이 다 그런가 보다. 할머니는 연신 눈에 보이는 풀을 잡고, 순을 지르고... 일이 눈에 보이자 손이 잠시도 쉬지 않으신다. 

 

 

흰동부가 자라고 있는 모습. 아쉽게도 분홍빛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논두렁에 심은 흰동부. 덩굴이 그리 심하게 뻗지 않으니 이렇게 키울 수 있는 거겠지.

 

 

할머니를 다시 광장으로 모셔다 드리고 다른 할머니와 함께 검은깨를 찾아나섰다. 

 

 

아직 수확하지 않은 검은깨. 앞으로 며칠 뒤면 베어 말려야 하겠다. 검은깨는 키가 2m 가까이 자란다. 가지도 좀 치는 편이고. 

 

 

검은깨의 꽃. 검은깨라고 꽃까지 검지는 않았다. 자주감자는 자주꽃, 흰감자는 흰꽃이란 노랫말과는 다르다. 

 

 

내응 마을의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이런 광경이 나왔다. 

 

옥수수와 참깨를 말리고 있었는데, 참깨 중 하나가 갈색이 나길래 얼른 들어가 보았다. 헍데 할머니가 계시지 않아 찾으러 가려고 차를 돌리는 사이에 도랑에 앞바퀴 하나가 빠졌다. 이런, 다행히 차가 망가지거나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어걸 어쩐다... 할 수 없이 힘을 합쳐 차를 들어올리기로 했다. 하나, 둘, 셋! 영차! 다행이다. 작은 차라서 그런가 쉽게 들 수 있었다. 

 

 

할머니 댁 마당에는 도꼬마리가 하나 자라고 있다. 보통 도꼬마리는 키가 작은데 이건 키가 엄청 크다. 이것도 토종의 하나라고. 며느리가 처음 시집을 왔을 때 머리에 피부병이 생겨 고생했는데, 창포처럼 이 잎을 뜯어 삶은 다음 감았더니 싹 나았다고. 머리에 비듬이나 진물이 나는 등 문제가 생기신 분은 도꼬마리잎을 삶아 그 물로 머리를 감아 보시라. 우리네 민간요법이 효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 차조기는 파뿌리와 대추 등을 함께 넣고 푹 고아 마시면 감기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할머니 집의 대문 앞에는 백일홍이 자라고 있다. 안완식 박사님께서는 이것도 개량종이 아닌 독특한 것이라고 하신다. 할머니도 이게 참 예뻐서 동네는 물론 멀리 시집을 간 딸에게도 씨를 줬다고 하신다.

 

 

 

 

내응 마을을 나와 송오와 방화 마을을 뒤졌다. 날씨가 저기압이라 그런지 무척 힘이 든다. 방화 마을을 뒤지고는 잠시 숨도 돌릴 겸 자리에 앉아 쉬었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차에 올라 쇠잿말로 향했다.

 

 

쇠잿말 길가의 어느 집에서 자라고 있는 황기. 진딧물에 개미들이 찾아와 단물을 빨고 있다. 

 

 

꽃마다 흔하게 찾아오는 곤충이 따로 있다고 한다. 황기에는 뒤엉벌이 그런 관계인가 보다. 

 

 

황기를 심으신 분을 찾다가 한 동네 할머니를 따라 그 집을 찾아갔다. 할머니는 친절하게 이것저것 꺼내서 보여주신다. 

 

 

괴산의 특징은 집에 이런 상자텃밭을 많이 키운다는 점이다. 밭의 활용도도 무척 높다. 도무지 놀리는 땅이 없을 만큼 촘촘하게 자투리 땅도 활용한다. 이 지역의 농사법을 조사하는 것도 무척 재밌는 일이 되겠다. 

 

 

할머니가 보여주신 덤불양대. 인천에서 맛있다고 얻어온 종류는 금방 상해 버리는 데 반하여, 이 덤불양대는 가을에 수확을 못해 겨우내 달려 있어도 전혀 상하지 않는다고. 그뿐이 아니라 맛까지 좋다고 하니 금상첨화이다.

 

 

냉장고에서 적두팥을 꺼내와 보여주시는 할머니. 농민은 가장 알맞은 보관법을 찾아낸다.

 

 

할머니 마당 한켠에 자라고 있던 조선오이. 그물망이 쫙쫙 퍼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이꽃. 

 

 

다 쓴 물건이라도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다. 닳아서 못 쓰게 된 댑싸리 비는 이렇게 다시 묶어서 계단 등을 쓰는 빗자루로 활용한다.

 

 

대문 입구 쪽에서 자라고 있는 덤불양대. 

 

 

쇠잿말에서 오늘의 마지막 마을인 요동으로 가기 전, 길가에 특이한 수수가 눈길을 잡아 끈다.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마을 주민분께 물으니 옛날에는 방맹이 수수라는 것이 있었다고. 이건 신품종이란다. 실제로 송오 마을에 살고 있는 주인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물으니 장연 쪽에서 얻어다 심은 것이라고 한다.

 

 

 

 

토종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수수. 그렇지만 재밌게 생겼다.

 

 

이 분들에게 더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이 왜 쇠잿말인가? 그 까닭은 아무도 모르셨지만 이 분들의 말을 듣고 유추하면 이렇다. 옛날에는 수안보에서 장이 크게 섰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는 방앗간이 없어서 곡식을 가지고 전부 수안보로 가서 찧어 왔다. 그런데 그곳에 바로 우시장도 섰다고. 그러니까 여기는 소를 사거나 팔아서 끌고 넘나들던 옛 고갯길인 셈이다. 그래서 쇠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재미난 것은 쇠잿말이 이곳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고개 하나 넘으면 장연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수안보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도 쇠잿말이다. 궁금하신 분은 3차 수집 조사 편을 참고하시라. 장연면 면사무소가 있는 곳 근처에 1000년이 된 느티나무 2그루가 있는데, 그곳 바로 위가 쇠잿말이다. 장연에서는 그쪽 고개를 넘어 수안보로 소를 사거나 팔러 다녔을 게다. 마지막으로 더 재미난 사실은 장연의 쇠잿말도 그렇고 이곳의 쇠잿말도 그렇고 큰 도로가 이어져 뚫려 있다는 사실.

 

 

가운데 보이는 산을 중심으로 오른쪽 골로는 수안보로 넘어가고, 왼쪽  골로는 장연으로 넘어갔다. 동네 주민의 말에 따르면 30분이면 수안보까지 갔다는데, 그건 뻥 같고 1시간 반에서 2시간쯤 걸리지 않았을까 한다. 방앗간이 없어 수안보로 다닐 때 버스에 곡식을 실어서 보내고 사람은 이 고개로 넘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가면 당시에는 길이 좋지 않아서 버스보다 사람이 더 먼저 도착했다고. 사람이 많이 다닐 때는 지금처럼 수풀이 무성하지도 않고 길도 잘 닦여 있어서 말 그대로 대로였단다. 지금은 이리로 아무도 넘나들지 않는다.

 

 

쇠잿말에서 흙살림의 윤성희 이사님이 합류했다.  시간은 6시가 다 되었을 무렵. 마지막 마을인 요동으로 함께 향했다.

 

 

요동 입구에서 발견한 배나무. 안민동에서 이야기를 들은 청배의 특징과 비슷한 모습이다. 혹시 이것이 청배가 아닐까 하여 동네를 뒤졌지만 찾은 답은... 지난해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할아버지도 나가셨다고 한다. 이 배의 유래는 알 수 없는 것일까? 다음에 다시 찾기로 기약했다.

 

 

 

 

청배의 주인을 찾고자 산골짜기까지 올랐으나 끝까지 갈 수 없었다. 괜히 갔다가 옴짝달싹 못하게 될 수도 있기에...

 

 

돌아 내려오는  차 안에서 찍은 사진. 산비탈이 모두 밭으로 개간이 되어 있다. 옛날에는 사람이 많이 살았다는 증거.

 

 

하늘에는 달이 빛나고,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요동을 나와 점심을 먹었던 곳에서 7시가 넘어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피곤하다. 오늘은 유난히 피곤한 하루였다.

 

 

 

728x90
728x90

2010년 8월 13일 8시. 안산을 출발해 사리면사무소를 목적지로 설정하니 2시간 5분쯤 걸린다고 한다. 지금까지 갔던 곳 가운데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리는 거리. 부지런히 달리다 안성맞춤 휴게소에서 또 한 번 쉬는 시간을 가졌다.

 

휴게소에서 조금 쉬고 다시 차로...

 

 

증평 교차로로 빠져나와 새로 뚫린 34번 국도, 고속도로와 같은 그 길을 따라가다가 다시 옛 34번 국도로 내려왔다. 옛날 길이 사람냄새가 나고 좋다. 새 길은 너무 쭉쭉 넓게 뚫어놓아서 경치도 사람도 집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산을 깎아 무식하게 일직선으로만 뚫려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옛 길은 원래 사람이 밟고 다니던 길 위에 포장을 한 곳이 많아 여기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처음 들른 곳은 사리 농공단지 근처의 방축골. 이 마을은 괜히 들어왔다 싶을 정도로 공장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끝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차를 돌려 나와 송명골이란 곳으로 향했다.

 

송명골은 작은 마을이었다. 4~5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듯한 모습. 길로 들어서니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맞이한다.

 

 

 

작은 마을이지만 오래된 노거수가 여기저기 여러 그루 서 있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34번 국도만 아니면 더 근사한 곳이었으리라. 걔 중에 한 집이 눈에 띄어 찾아갔다. 곳곳에 오이를 심어 놓으신 것이 뭔가 있을 듯. 송명골길 41-6에서 만난 연춘자(69) 할머니께 먼저 오이에 대해 물었다. 이건 시집와서부터 심던 것인데, 늦게까지 달리고 맛이 좋다고 한다. 지금은 씨가 없으니 나중에 와서 받아가겠다고 씨 좀 밑지지 말고 꼭 받아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아욱도 있었는데, 그건 따로 씨를 받지 않고 떨어져 나는대로 먹는다고...

 

 

 

다음은 부석이란 마을에 들어갔는데, 축사에 새로 지은 집들이 대세다. 그래도 확인하는 셈 한 바퀴 둘러보고 돌아 나왔다.

 

그리고 들른 불당골. 옛날에는 절이 있었던지 불상이 있었던지 아무튼 불교와 관련이 있는 곳이 아닐까? 괴산 지역을 다니며 보니 마을 입구에 꼭 유래비를 세워 놓던데, 시간이 허락하면 그것도 한 번씩 읽고 다니면 더 재밌겠다.

불당골에 들어와 어느 집에 딸린 텃밭에 콩이 익어간다. 유월두가 아닌가 하며 확인하려고 들어갔는데 사람이 없다. 비가 오려고 꾸물거리는 날씨에도 어디 들에 나가셨나 보다.

 

혹시 유월두가 아닌지? 주인에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없기에 나중에 들를 곳으로 남겨 두었다.

 

 

 

주인은 없고 강아지만 팔자 좋게 늘어져 자고 있다.

 

그리고 좀 더 들어가니 또 다른 집에 울타리콩과 아욱이 예사롭지 않다. 뭔가 있겠다 싶어 물어보려고 찾아들어갔으나 역시 아무도 없다. 천상 불당골은 나중에 한 번 다시 와야겠다. 사진 좀 찍으려고 사진기를 꺼내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는다. 어라... 오늘 이렇게 비가 오면 아무것도 못하고 올라가야 하는 건 아닌지 슬슬 걱정이 된다. 안 그래도 날씨가 꾸물거려 불안했는데...

 

아무튼 비를 뚫고 그대로 강행! 다행스럽게 비는 확 쏟아지고 지나가더니 잠잠해지는 기미다. 고래울이란 마을에 들어서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논길을 한참이나 후진으로 나왔다. 운전도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살짝 증평 쪽으로 다시 빠졌다가 진지바위란 마을을 지나 도화동으로 이어졌다. 차를 타고 지나는데 어느 집에 대학찰이 아닌 다른 옥수수가 걸려 있는 걸 보았다.  

 

사람은 살지 않고 농막으로 쓰는 듯한... 

 

 

주인을 찾으러 동네를 돌아다닌 결과, 증평 사는 50대가 이곳을 오가며 농사를 짓는다고... 

 

 

잠긴 대문을 열고 들어가 뭔가 없나 한참을 찾으니, 옥수수 말고 수세미와 여주, 호박이 볼 만하다. 오늘은 그냥 확인만 하고 나중에 한 번 들러보든지 해야겠다.

 

호박의 무게를 버티도록 끈으로 묶어 주었다. 

 

 

도화동을 지나 칠성바위, 증말, 노동이란 마을을 들렀다. 칠성바위란 마을에 들어가는 어귀에 동부가 자라고 있다. 그 꽃이 너무 예뻐서 사진에 한 장 담았다. 아무튼 증말이란 마을에는 정말 없고, 노동은 전원주택들이 꽤 들어서거나 부유해 보이는 듯한 집이 많았다. 

 

 

 

 

다음 송오란 마을은 있을 법한 집에는 사람이 없어 일단 기록만 남기고 뒤돌아섰다.

 

주인은 없고 수확물만 우리를 맞아 주었다. 다 익은 울타리콩 꼬투리(위)와 자라고 있는 모습(아래)

 

 

참깨도 있는데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집에는 아래와 같은 커다락 호박이  놓여 있었다.

 

 

송오 마을 입구에는 수수가 자라고 있었다. 정체를 알고 싶어 잠시 내렸을 때, 한 아주머니가 사륜오토바이를 타고 오시길래 여쭈니, 자신이 지난해 신품종을 가져다 심었는데 이게 좋아서 동네에 모두 퍼졌다고 한다. 씨앗은 이렇게 돌고 도나 보다.

 

 

 

 

시간은 12시를 넘겼지만,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이르다. 몇 군데 더 둘러보고 점심을 먹을 계획. 소매저수지 부근 응암(매바위)라는 곳은 축사가 많은 곳이었는데, 이곳도 그럴싸한 집이 많아 느낌이 오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 큰길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큰터(대기)라는 곳도 별로 볼 것이 없는...

 

이제 점심을 먹기 전 마지막 마을이 남았다. 둔터라는 곳이다. 마을 유래비를 보면 둔터가 군대의 둔전과 상관이 있는 뜻인지 알 수 있었겠으나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둔터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갓끈동부를 발견했다. 오호, 이런 곳에 갓끈동부가? 어느 집 것인지 마을을 멀리서 쓱 바라보았다.

 

괴산에서 발견한 갓끈동부. 그 유래는?

 

 

어느 한 집이 느낌이 온다. 그 집에 가서 무엇 좀 물어보자. 마을로 들어가 그 집 앞에 이르니 어디 나가셨다가 이제 막 돌아오신 모양이다. 얼른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윤재노(74) 할아버지는 집안 분위기도 그렇고 무척 안정적으로 보이셨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이런 분위기의 집에는 무엇이 많긴 하다. 갓끈동부는 증평 쑥고개라는 곳에서 7~8년 전에 가져다가 심은 것이라고 하신다. 젊은 사람들이 갓끈동부를 알아보자 짐짓 놀라신 듯하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라 작두콩을 몇 년 전 호평에서 얻어다 심는데, 담북장(청국장)을 쑬 때 조금 넣으면 냄새가 덜 나서 심는다고 하신다. 또 아주까리도 2종류를 심으시고, 차조기도 밭 한켠에 기르며, 파와 가지도 옛날부터 그대로 씨를 받아서 심고 있단다. 가지는 꼭지 부근에 몇 군데 있는 가시가 아주 따갑고 다 큰 것이 15cm쯤 되는데, 맛이 정말 좋다. 다음에 다시 찾아올 테니 꼭 씨 좀 받아 달라고 부탁드리자 할머니가 농을 건네시며 알았다고 약속하셨다.

 

차조기.

 

 

가지꽃과 가지. 

 

 

 

두 종류의 아주까리. 

 

 

논 옆의 가로수에 갓끈동부가 타고 올라가도록 심으셨다. 저 멀리 왼쪽에 보이는 집이 윤재노 할아버지 댁이다.

 

논에서는 벼가 수정을 하느라 바빴다. 암꽃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제 점심을 먹으러 사리면 소재지로 가는 길. 괴산 지역은 이제 참깨 수확기에 들어가 가드레일마다 다리의 난간마다 참깨를 베어다 세워 말리느라 꽉 찼다. 가을이면 아스팔트는 벼를 말리는 곳이 되니 농촌에서 아스팔트 길은 이래저래 쓰임새가 많은 곳이다.

 

 

 

사리면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으니 상권이 많이 죽어 문을 닫은 가게가 태반이다. 할 수 없이 그 가운데 가장 번쩍이는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먹고 사리면 소재지를 잠시 어슬러거리며 다니다가 옛날 약방을 발견했다. 언제부터 이 자리에서 약방을 하셨을까?

 

 

 

점심을 먹고는 모래못으로 찾아갔다. 모래못은 부자 동네 티가 확 나는 곳이었다. 역시나 그렇게 찾아볼 만한 것은 없어 돌아서 나와 하도 마을로 향했다. 하도 마을은 축사가 많은 마을이라 특이한 것이 없었고, 시동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으로 수암이란 곳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율무가 집 마당 한켠에 자라고 있는 걸 발견했다. 왜, 어떻게, 무엇을 심었는지 알아보고 싶었으나 이곳도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없었다. 도대체 다들 어디를 가신 것인지? 날이 궂어서 마을회관에 모여 먹을 거 해 먹으시나? 

 

 

 

 

 

수암 마을을 돌고 있는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이 보인다. 밭에 일부러 차풀로 보이는 풀을 심어 놓은 곳이 드문드문 보인다. 그냥 풀이 자란 걸 놔둔 듯하지는 않고 일부러 기르는 티가 난다. 말뚝에 줄까지 띄워 놓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다음에 수암 마을을 다시 찾아오기로 기약하고 이만 돌아섰다.

 

 

 

 

다음 들른 곳은 산정(산우물)이라는 곳이다. 아, 이제와 돌아보니 사리면의 산간 지대에는 유난히 물이 나는 곳이 많았다. 밑으로 큰 지하수맥이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마을은 고추와 배추를 특화시킨 곳이었다. 마을 입구에 장승으로 배추와 고추를 새겨 세워 놓은 것이 너무 특색있었다. 하지만 토종은... 배추와 고추에 밀려서인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산정을 나와 석촌을 찾아갔다. 석촌 마을은 심한 비탈면에 자리한 6~7가구가 전부였다. 비탈이 심한 만큼 텃밭도 별로 보이지 않고 했지만, 비탈의 끝까지 올라갔다가 차를 돌리느라 애를 먹었다.

 

바로 맞은편에는 황산 마을이란 곳이 자리하고 있다. 길을 따라 그곳으로 쭈욱 들어갔다. 안쪽에는 내황산이란 곳이 지도에 표기되어 있어 그곳을 보고 내려오면서 또 보려고 했다. 내황산은 1가구가 살며 인삼 농사를 크게 짓고 있었다. 더 볼 것도 없이 차를 타고 내려왔다.

 

내황산에서 내려오면서 보이는 경치.

 

 

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길가에 조 비스무리한 것이 보인다. 얼른 차를 세우고 그곳으로 가 보았다. 이건 강아지풀이라고 하기에는 크고, 조라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뭔가 모를 것이 자라고 있다. 일단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긴 다음 두어 개를 표본으로 뽑아서 가지고 내려왔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혹시라도 뭔가 아는 게 나올지도 모른다.

 

강아지풀보다는 크고 조보다는 작은... 그런데 끝이 조처럼 갈라져 있는... 

 

 

 

황산 마을에 내려와 어느 집을 찾아갈까 하다가 마을회관 옆집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한창 옥수수를 따서 손질해 포장하고 계셨다. 은근슬쩍 다가가 조인지 모를 풀을 꺼내 보이며 말을 걸었다. 일단 조로 시작해 다른 작물 이야기가 나오면서 아주머니께서 집으로 들어가신다. 그러면서 하나둘 씨앗을 꺼내오시는데 도라지, 강낭콩, 개팔이동부, 울콩, 어금니동부, 만삼, 상추, 아욱이 줄줄이 나온다. 몇몇 씨앗은 당장은 없어 나중에 다시 오기로 기약하고 이러저런 씨앗만 얻어서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씨앗을 나눠주시는 정현복(65) 아주머니.

 

 

거름을 많이 주지 않아 볼품없다던 아욱. 

 

 

황산 마을을 나와 커다란 저수지 안쪽에 자리한 배실 마을로 향했다. 배실, 혹시 배나무와 어떤 연관은 없을까? 이곳에서도 토종 배를 볼 수는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끝에는 축사, 한 집에서 고추 씻는 일이 한창이다. 시끄러운 기계 소음 사이로 소리소리치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 집을 택하여 들어온 것은 집 앞에 있는 꽈리 때문이었다. 김태우(60) 아저씨께 물으니 10여 년 전에 산에서 씨앗을 구해다 심은 것이라고 한다. 이것도 혹시 모르니 일단 기록을 남기고 돌아나왔다.

 

 

 

돌아나오는 길 배실 마을의 어느 집. 염소와 토종닭이 어울려 살고 있다. 병아리가 너무 귀여워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고자 했으나 가까이 가면 도망가는 통에 그러지 못했다.

 

 

다음으로는 점말이란 곳으로 찾아갔다. 점말의 가장 끝에 자리하고 있는 집까지 들어갔다가 돌아나오려는데 오이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찾아가 사람을 찾았다. 방에서는 할머니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던 중이었다.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리고 씨앗 이야기를 꺼내니 이런저런 반응을 보이신다. 내친 김에 씨앗 있는 것 좀 보여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는 지금 81세이신 허채봉 할머니이다. 평생 이곳에서 농사짓고 살며 증평장과 괴산장으로 씨앗 장사를 다니셨다고. 할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씨앗은 씨갑시라고 한다. 참, 앞서 황산 마을에서 보았던 조는 돌조가 아닐까 하셨다. 괴산에서 조는 조이라고 부른다.

아무튼 허채봉 할머니께는 대파, 상추, 갓, 조선아욱, 도라지, 쥐눈이콩, 붉은팥, 파란팥(그루팥) 등 여러 작물의 씨앗이 있었다. "할머니 이거 할머니 몇 살 때부터 심던 거예요?"라고 말을 하면 "아, 평상 하는 거지"라고 답하신다. 웬만한 것은 할머니가 이곳에 산 6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나중에는 농으로 "할머니 이건 몇 년이나 된 거예요?" 하고 물으니 "그건 얼마 안 됐어. 50년!"이라고 답을 주신다. 더 자세한 내력은 나중에 안완식 박사님과 함께 왔을 때 추적할 수 있다. 아무래도 지식이 얕다 보니 필요한 사항을 딱딱 맞게 캐물을 수가 없다.

 

다리가 성할 때만 해도 장으로 씨갑시 장사를 다녔다는 허채봉 할머니. 씨앗을 얼마나 꼼꼼하게 쟁여 놓으셨는지 모른다.

 

필요할 때는 이렇게 냉장고 안에 보관하시는 감각을... 

 

허채봉 할머니 댁의 상추. 

 

60년 됐다는 대파. 할머니는 해마다 씨를 받아서 내다팔고 또 심어서 씨를 받고를 60여 년 동안 반복하셨다. 

 

할머니 집 텃밭에 자라고 있는 실부추. 이건 씨가 없고 뿌리로 번식한다고... 그래서 씨를 받지 않는단다.

 

허채봉 할머니 댁의 오이. 씨를 꼭 받아 놓아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허채봉 할머니 댁의 모습.

 

 

 

점말을 나와 포동을 뒤졌는데, 큰길 옆이라 그런지 별 것이 없다. 통뫼(덕고개)도 그렇고, 쇠편이라는 마을도 그렇고 34번 국도가 새로 뚫리면서 마을을 가운데에서 쫘악 나눠 놓았다. 너무 폭력적이지 않은가? 나라의 사업이라 반대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수 없이 더 깊숙한 안쪽에 있는 마을로 향했다. 월현(달고개) 마을이 그곳이다. 고개라는 지명처럼 이곳의 고개를 넘으면 괴산에서 다른 지역으로 경계가 바뀐다. 월현 마을에 도착하니 할머니 네 분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별 소득이 없을 줄 알았지만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들어가 인사를 건넸다. 역시나 할머니들이 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시며 짖궂게 구신다. 더 길게 이야기해야 별 거 없을 듯하여 나오다가 커다란 호박을 발견하고 나중에 이 씨앗을 받으러 오겠다며 기약만 남겼다. 나중에 할머니 혼자 계실 때 다시 찾아와야지...

 

달고개 마을의 호박. 나중에 다시 찾아가야겠다.

 

 

 

달고개 마을을 나오며 마전 마을을 거쳤는데, 이곳도 신작로의 영향 탓인지 자세히 볼 것이 없었다.

다음은 마전 마을 건너편에 있는 점말과 오룡동이란 곳을 찾아갔다. 그다지 눈에 띄는 것은 없었는데, 마을 분위기가 나중에도 이렇게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이 마을은 가을에 다시 한 번 찾아가야겠다. 마을과 마을 사이의 고개를 넘는데 이동 슈퍼 트럭이 마주쳤다. 가끔 인간극장이나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 이런 트럭이 있던데 여기도 다니고 있었다. 깊숙한 곳은 깊숙한 곳인가 보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길로, 이리로 가면 분명 우리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나올 듯하여 그냥 내질렀다. 고개를 넘어 좁다란 산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 바위에 긁히지 않게 조심조심 돌아서 나오니 역시나 우리가 가려던 대촌 마을이 나왔다. 마을회관 주변에 있는 집에서 차조기와 수세미를 발견. 할머니들은 집에 계시지 않고 역시나 마을회관에서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거기는 들어가 봐야 별 수확이 없을 테고, 나중에 다시 들러야겠다는 기록만 남기도 돌아나왔다. 이 마을도 뭔가 있을 듯하다.

 

대촌 마을 우물터. 아직도 이곳에서 빨래를 하실까? 비오는 날이라 물이 뿌옇다. 세수를 했는데 물은 참 차가웠다.

 

대촌 마을에서 본 수세미. 평소에 보던 것보다 더 길쭉하고 생김새도 특이하다. 할아버지 혼자 사는 집이었는데, 눈빛이 흐릿한 것이 좀 어디가 안 좋으신 듯했다. 나중에 씨앗 좀 얻겠다며 꼭 씨앗 밑지지 말고 받아 놓으시라고 부탁드렸다.

 

 

이제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마을 상리(윗시몇)가 남았다. 솔직히 처음 들어가면서 이 마을에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마지막이라 긴장이 좀 풀린 탓도 있겠지만 마을 입구에는 무슨 세라믹 공장인가 뭔가가 커다란 공장이 자리하고 있는데다가 시골집답지 않은 그런 전원주택들도 보이고 해서이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이곳도 나중에 안완식 박사님과 오면 다시금 들러야 할 곳이었다.

마을을 돌다가 다른 벼보다 키가 크고 이상한 벼가 있어 마침 동네 할아버지들이 모여 계시길래 물어보았다. 이 벼는 토종은 아니라고 하시는데, 4~5년 전쯤에 보급종으로 도열병에 강하다고 하여 받아다가 계속 심는다고 하신다. 그래서 이 논을 자세히 바라보니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우물로 고였다가 논으로 바로 흘러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논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뚝을 박고 슬레이트판을 꽂아 물이 바로 들어가는 걸 막았다. 대신 고랑을 내서 한바퀴 둘러서 논에 들어가도록 했다. 아마도 우물물이 그대로 흘러들어간다면 엄청 차가울 것이다. 우물물을 길어서 만져보니 실제로 엄청 찼다. 그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다보니 '대한'이라고 하는 이 도열병에 강한 벼를 택하신 것이 아닐까? 그리고 또 고랑을 이렇게 내서 물을 돌리시는 것일 게다. 그도 그럴 것이 물이 돌아가는 길목 중간중간에 논으로 들어가는 물꼬를 터 놓으셨다.

 

논물의 활용. 찬 물이 직접 닿지 않게 하려고  막아 놓은 슬레이트판. 

 

 

그건 그렇고 토종에 대해서는 모르실까? 할아버지들이 모여 있을 때 얘기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면서 여쭈었다. 돌아온 답은 역시나 그런 게 어디 있냐고... 요즘은 다 사서 한다고 그러신다. 이야기를 하다가 뒤에 있는 조그만 하우스에는 뭐가 있냐고 하니 참외란다. 참외? 근데 이게 좀 다르다. 보통 시장에서 파는 노란 참외가 아니라 푸르다. 할아버지는 이걸 청참외라고 부르신단다. 토종 참외 종류는 대개가 푸른 빛이 나는 게 많은 듯하다. 얼마 전 먹어본 사과참외나 개구리참외가 그랬다. 

이 참외의 특성은 무르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이가 좋지 않아 과일을 잘 못 먹는데, 이 참외는 물러서 숟가락으로 파 먹기 좋단다. 당도는 어떠냐고 하니 별로라고 하신다. 할아버지께 부탁하여 하나만 먹어봐도 되겠냐니 허락하셔 하나 가져왔다. 

 

이종윤(75) 할어버지의 청참외.

 

 

확실히 무르다. 물렁물렁한데 그렇다고 흐물흐물거리지는 않고 아삭함이 살아 있다. 무르면서 씹는 맛이 있다니. 또 말씀처럼 그리 달지 않은 게 아닐 달았다. 개구리참외보다는 훨씬 달고, 사과참외보다는 좀 덜 달다. 이 참외가 어디서 왔는지는 기억하시지 못하는데, 10여 년도 전에 어디서 얻어다 심었다고 하신다.

 

청참외의 속. 

 

상리 마을에서 내려다본 모습.

 

우물 옆에 앉아 담소를 나누시다가 우리를 만나신 어르신들. 

 

 

이로써 오늘의 사전조사는 이대로 마치기로 했다. 시간은 6시 가까이 되었다. 그래도 평소보다는 조금 일찍 끝난 편이다. 사리면이 농공단지가 자리하고 있어 그렇기도 하고, 면을 관통하는 34번 국도 신작로 때문이기도 한 듯하다. 길이 뚫리면 문물이 들어온다. 문물이 들어오면 당연히 그를 따라 문화가 들어오고, 문화가 들어오고나면 사람이 들고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어디는 흥하고, 어디는 망하는 일이 벌어지는 게 당연할까. 흐음, 아무튼 길이 잘 뚫려 있으니 오가는 시간은 평소보다도 팍 줄어 2시간쯤 걸리더라. 그 덕분에 오늘 일찍 끝나기도 했다. 다음주는 연풍과 칠성면을 가봐야겠다.

 

 

 

728x90
728x90

2010년 7월 29일, 괴산 지역 3차 사전 조사에 나섰다. 이번부터는 방침을 달리해, 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수집할 수 있으면 하면서 본격적으로 다니기로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30분 동안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6시 화성 봉담에 사시는 안완식 박사님 댁에서 모두 모여 10분 뒤 출발!

차가 밀리기 전에 출발한 작전이 주효했다. 하나도 막히는 일 없이 괴산까지 달렸다. 다들 아침 전이라 휴게소에 잠시 들러 아침을 먹고 괴산에 도착하니 9시 30분. 오늘은 일찍 나섰으나 괴산 IC로 내려가 조사하려고 하여 네비게이션을 설정해 따라가다가 길이 어긋나면서 한참을 돌았다. 덕분에 충주에서 괴산 불정면으로 넘어오는 대간치라는 곳을 지나왔다. 참으로 깊고 깊은 산골이다.

 

가장 먼저 지난 조사 때 들른 하소를 기점으로 지문마을 찾아갔다. 이곳은 몇 가구 살지 않았는데, 특이 사항이 없어 그냥 훑어보기만 하고 돌아나왔다.

 

강 건너에서 바라본 사실(새말). 

 

 

다음은 지문 마을 건너에 있는 사실이란 마을을 찾아갔다. 이곳에 오니 무슨 파리가 이렇게 많은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다. 할머니께 들으니 언덕 너머에 계사가 생기면서 여름마다 이 난리라고 한다. 마을에 축사가 생긴다고 하면 크게 반대한다고 하더니 다 그 이유가 있어 그렇구나. 집에 들어서 할머니를 만난 김에 조사를 시작했다. 먼저 텃밭에 심어 놓은 아욱에 대해서부터 물었다. 아욱은 옛날부터 계속 받아서 심는 것인데 장에서 파는 씨앗은 이 맛이 나지 않는다며 맛이 참 좋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조사 때 보았던 그 아욱과 비슷하다.

 

사실 마을에서 만난 괴산 지역 토종 아욱(위), 아래는 그 꽃. 

 

 

 

 

아욱 씨를 받아주시는 임삼례(78) 할머니.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몸이 불편하여 이제 농사를 못 짓는다고 하신다.

 

 

사실 마을 댑싸리. 이것도 특성이 다르다며 나중에 받을 씨 목록에 추가되었다. 

 

 

다음은 광진리 방향으로 중리 마을을 찾았다. 들어서서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있는 집의 텃밭에서 특이한 오이를 발견했다. 하지만 집에 사람이 없어 내력을 알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옆집에 찾아가 연락처를 물었으나 이상한 외판원 취급이다. 자신들은 시골집으로 놀러와서 아무것도 모른다며 문전박대... 흐음 이럴 때는 참 기운이 빠진다. 도시물을 먹은 사람이라 그런지 의심부터 하기는. 집에 누가 찾아오면 반갑지 않은 도시의 문화이기에 그렇겠지. 인간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할 수 없이 기록만 하고 차에 올라타 돌아서려는데 경운기를 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을 어귀로 들어오신다. 혹시? 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였다! 얼른 따라 들어가 텃밭으로 할머니부터 모시고 왔다. 오이는 누구한테 얻어 심었다는데 미국 오이라고 하신다. 이게 조선 오이보다 맛이 좋아 본인은 이걸 즐겨 먹는다고 하셨다.

 

미국에서 왔다고 하신 백오이.

 

 

백오이의 어릴 때 모습. 

 

 

조선 오이가 어릴 때(우)와 이렇게 다르다.

 

 

백오이를 조사하시는 안완식 박사님과 씻지도 못하고 조사에 응해 주신 홍애희(64) 할머니.

 

 

이 집의 이상하게 생긴 차조기. 이후 다른 차조기들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이와 달랐다. 홍애희 할머니는 차조기에 밤, 대추, 박속, 인동덩굴을 넣고 함께 달여서 감기약으로 쓴다고 하신다.

 

 

댑싸리로 만든 비. 헛간에 이런 댑싸리 비가 엄청 많았다. 할아버지의 솜씨. 

 

 

오늘의 수집 씨앗. 황기장. 

 

 

문전박대 당한 바로 옆집에 자라고 있는 차조기.

 

 

이후 바로 옆에 있는 상리를 지나면서 보니 과수 단지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1사 1촌 맺기로 뭔가 협약을 맺었는지 여기저기 홍보하는 현수막이 잔뜩 걸려 있다. 또 신원터와 잿골도 몇 가구 살지 않으며 과수가 많아 그대로 통과했다.

다음 광진리의 진대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 왔을 때 전화가 오는 바람에 조사에 적극적으로 함께하지 못해서 아쉬운데, 이 마을에서도 백오이를 발견했다. 이런 걸 보면 안완식 박사님 말씀이 딱 맞다. 그 마을에서 가장 토종이 많은 집을 보면 다른 집은 보지 않아도 거기서 거기다. 또 이 마을에 이런 것들이 있으면 옆 마을에도 이런 것들이 대개 있다. 많은 경험에서 나온 말씀이실 텐데 다니면서 그 말이 꼭 맞음을 실감한다. 백오이 말고도 여러 가지 묻고 싶은 것들이 잔뜩이었으나 집이 비어서 일단 그냥 나왔다.

 

 

진대 마을에서 본 콩. 아스팔트를 깔기 전에 심었다가 길이 깔리면서 겨우 자라고 있다. 웬지 토종의 운명을 상징하는 듯하여 사진으로 남겼다.

 

 

진대 마을에서 만난 조선호박. 이것 말고도 긴호박도 심고 계셨다.

 

 

다시 차에 올라 광진리 샘골로 향했다. 마을이 어수선한 것이 어쩐지 토종도 떠난 듯하다. 길가에서 조를 만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갔으나 어디서 가져다 심은 것인데 혼자 떨어져 저절로 자란 것이란다. 마을 분위기가 어수선하면 토종도 찾기가 어렵다. 이 마을은 좀 더 살펴보다가 그냥 지나갔다. 광진교를 지나 작담 마을에 들어갔으나 이곳도 ...

 

텃밭에 그냥 떨어져 절로 자란 조.

 

 

옆 마을인 광석 마을에 들어갔다. 소담한 집에서 구지뽕을 심어 놓았다. 구지뽕은 왜 구지뽕일까? 뭘 굳이 뽕이라고 하겠습니까? 라는 뜻에서 구지뽕인가?

 

구지뽕나무. 주인이 없어 내력은 알 수 없었다.

 

 

이 구지뽕은 어디서 온 것인지 알아보려고 주인을 찾았으나 대문이 걸려 있다. 옆집에 가사 낮잠을 주무시는 할머니를 깨워 여쭈니 충주 사는 사람인데 한 번씩 찾아온단다. 그래서 대신 할머니 댁에 무엇이 없는지 여쭈었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마늘이다. 시집 와서부터 계속 심는 것인데, 알이 좋은 건 장에 내다 팔고 씨를 할 것만 처마 밑에 달아 놓았다.

 

광석 마을에서 만난 마늘.

 

 

이제 추점리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운평이란 마을에 들어갔는데 거대한 대학찰옥수수 집하장이 서 있다. 더 볼 것도 없이 그대로 돌아나왔다. 이 일대를 다니며 안완식 박사님은 "대학찰이 토종을 다 몰아냈구나"라고 읖조리신다. 흐음... 농가 수익을 생각하면 대규모 단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면 농촌 공동체는 물론 종의 다양성도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니 어느 정도 선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인지 어려운 문제이다.

 

다음으로 가래울 마을에 들어갔다. 훤칠하게 구릿빛 지붕을 만들어 놓은 집이 눈에 확 들어온다. 마을을 한참 빙빙 돌다가 추점교회에서 신기한 자두나무를 발견했다. 목사님 왈, '누가 갖다가 심었는데 처음 몇 년 동안은 매실인 줄 알았는데 자두더라'하신다. 알이 그렇게 굵지는 않은데 무지 달고 색이 노랗다. 이런 자두는 잘 육종해서 상품성만 갖추면 정말 좋겠다.

 

추점교회에서 발견한 자두. 한낮의 땡볕에 헉헉 대다가 이걸 먹고 기운 좀 차렸다. 물론 목사님께 얻어 마신 커피도 한몫하고... 커피를 마시고 나와서 자두를 먹었는데 그래도 달더라.

 

 

추점교회 자두나무. 

 

추점교회. 이런저런 사회복지 서비스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목사님이 무지 바쁘시겠다. 이날도 강남 쪽에서 아이들 50명이 농촌봉사활동을 와 정신 없었다.

 

 

가래울에서 장연면 방향으로 뒷골이란 마을이 있는데 이곳은 축사 단지. 들어갈 것도 없이 그냥 지나갔다. 또 지도에 나온 주정골이란 곳으로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예전에는 화전민이 꽤 살았던 듯한데 지금은 농원 하나가 과수원을 하고 있다. 

다음은 바로 옆의 석산 마을에 들어갔다. 이 마을은 나와도 개인적으로 관계가 있어 오랫만에 참 반가웠다. 이 마을에 사시는 김제건 할아버지와 조인숙 할머니 댁에서 이것저것 많이 볼 수 있었다. 먼저 이 댁을 찾은 동기는 차조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거창으로 시집을 간 딸이 맛있다고 준 상추로 번지고, 다시 어금니동부, 개팔이동부, 덩굴강낭콩, 대국콩(강낭콩), 덤불콩에 완두콩으로까지 건너가 조금씩 얻기도 하고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도 했다. 강낭콩을 대국콩이라고 부르는 점이 재밌다. 원래 우리 콩이 아니라 중국에서 건너왔을까? 배추 가운데 호배추니 호콩이니 하는 것도 바로 중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2008년 울릉도에 갔을 때 그곳에서는 강낭콩을 호콩이라 한 기억이 떠올랐다. 강낭콩의 유래는 중국일지도 모르겠구나.

 

거창으로 시집을 간 딸이 주었다는 상추. 끝내 그 내력을 알 수 없어 안완식 박사님이 내내 아쉬워하셨다. 한눈에 좋은 상추라고 평하셨는데 무슨 차이인지 알 수 없는 나에게는 그저 상추일 뿐...

 

 

조인숙 할머니를 만나게 해 준 차조기.

 

 

이런 저런 동부는 한 봉지에 모았다가 심으신다.

 

 

대국콩.

 

 

석산 마을을 돌다가 만난 재밌는 외양간. 어미소와 다 큰 송아지인 듯한 놈들이 새로운 사람을 보고 신기한 듯 쳐다본다. 이 집은 왜 담배 말리는 곳을 이렇게 개조했을까? 

 

 

벌써 시간은 2시가 다 되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산골식당이란 곳을 찾았다. 괴산휴게소에 바로 붙어 있어 입소문을 타고 기사들도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많이 찾아오나 보다. 실제로 먹으니 정말 깔끔하고 음식이 괜찮았다. 이곳에서 확인도 할 겸, 분지골이란 곳에 아직도 사람이 사는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이제 사람은 살지 않는단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바로 건너편의 새말에 갔으나 별다른 건 찾지 못하고, 다락골은 3~4가구가 있다고 하는데 외지에서 들어와 산다고 하여 올라가지 않았다. 

 

지도에 쇠잿말이라 표기된 곳을 찾아 들어서는데, 입구에 엄청 오래된 느티나무가 두 그루나 서 있다. 아직도 당산목으로 역할을 하는지 나무 밑둥에는 금줄이 쳐 있다. 나중에 들어서 알았는데 무려 1000살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나무가 아니라 정말 신神이다. 솔직히 신이라 불러도 문제가 없을 정도가 아닌가! 내려서 사진이라도 박을 걸 시간도 없고 그냥 눈으로만 보고 지나친 게 아쉽다. 아무튼 쇠잿말은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마을이 두쪽이 나 버렸다.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 보았는데 기도원만 자리하고 있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풍수지리를 좋은 명당 자리 찾는 데만 쓰는 게 아니라 이렇게 지형의 모습, 강과 산이 이어져 생태계가 온전히 유지되는지 등으로 과학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면 좋겠다. 한쪽에서 그런 작업을 하는 듯한데 아직 미흡하다.

 

쇠잿말을 나와서 장연면 면사무소 소재지의 양지말을 찾았다. 이곳은 뭔가 있을 법한데 지금은 잘 알 수 없었다. 일단 담장에 커다란 호박이 달린 집을 찾아서 들어갔다.

 

다 크면 20kg은 될 거라는 거대한 호박. 어릴 때 모습(아래)

 

 

 

 

집 안으로 들어서니 어디서도 보기 힘든 제비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 그것도 두 곳이나. 이런 집은 뭔가 되어도 되는 집안이 아닐까? 예상이 맞았다. 옆집 아저씨가 그러는데 이 집에 사시는 할머니가 이번 괴산군수의 누님이라고 한다. 괴산에서 의뢰를 받아 일하는데 이런 우연이 있나. 재밌다.

 

오랫만에 만난 제비. 반갑다, 제비야! 제비만 보면 왜이리 반가운지 모르겠다. 둥지 안에는 새끼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 마을은 웬지 뭔가 있어 보여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또 상추 하나를 발견. 이 상추도 내력을 찾고자 열심히 다녔는데 주인을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상추 임자를 찾다가 만난 박영희 할머니 댁으로 따라가서 대신 울타리콩과 아욱을 찾았다. 아욱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 궁금해 지금 밭에 자라고 있는 건 없냐고 여쭈니 저쪽 집에 가면 똑같은 게 자라고 있다고 하여 거기까지 다시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두 종류의 울타리콩(위와 아래) 

 

 

 

박영희 할머니 댁의 아욱과 비슷하다는 그것. 그러고 보니 괴산은 아욱을 참 많이 심는다. 이것도 괴산 지역만의 특징.

 

 

이제 점점 더 심심 산골로 들어가게 된다. 먼저 거문동으로 갔다. 이름도 깊은 산골임을 알려준다. 거문동. 거문, 검은, 검다 ... 이런 말이 간혹 한자로 이름을 표기하면서 현玄이니 거문巨門이니 하는 식으로 변하기도 했는데, 그 뜻은 단군왕검과 통한다. 검, 감, 곰은 '신'이나 '크다'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그러니 이곳 거문동은 신의 마을 또는 큰 마을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더 나아가면 일본어가 우리말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일본어에서 곰을 뜻하는 웅熊을 '쿠마'라고 읽는다. 쿠마는 곧, 곰의 일본식 발음인 셈이다.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할머니 한 분을 만나 토종 씨앗에 대해 여쭈었다. 본인은 아파서 농사를 못 짓고 다른 농사짓는 할머니들은 모두 한의원에 침 맞으러 나가셨단다. 이런 허탈한 순간이... 나중에 다시 찾아올 생각을 하며 밭에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파악이라도 하고자 돌아다녔다.

 

율무 암꽃과 수꽃이 함께 핀 모습(위와 아래).

 

 

 

 

율무 밭.

 

 

한창 사진을 찍으며 다니고 있는데 노란 봉고차 한 대가 들어온다. 가만히 지켜보고 서 있으니 할머니들이 잔뜩 타 계신다. 얼른 차에 올라 부리나케 좇았다. 

 

거문동에서 할머니들을 찾지 못해 절터골이란 곳까지 들어갔다. 그곳에는 1가구만 살고 있는데, 농사지을 때만 잠이나 잔다고 하여 더 들어가지 않았다. 위는 그곳에서 만난 잠자리. 

 

 

 

노란 봉고차는 바로 교회의 차였는데, 목사님이 할머니들 모시고 침 맞으러 갔다오시는 길이었다. 그 차에서 내리신 김태숙(78), 정경순(70) 두 할머니에게 토종 씨앗에 대한 여러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마을은 괴산잡곡과 계약 재배하여 율무와 기장을 많이 심는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이제 다들 몸이 망가져 쉬셔야 하는데도 그래도 하던 일이라 일을 손에서 놓치 않고 계신다. 그런다고 쉬신다고 뭐가 달라질 것도 아니고 오히려 병만 더 생기실 수 있으니, 그저 농사꾼은 끝까지 땅을 파다가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숙명인가 보다. 아무튼 이 마을에서 일단 비수수, 참깨, 들깨, 율무, 차조기를 확인하고 씨를 얻을 수 있는 건 조금씩 얻었다.

 

비수수(위)와 참깨(아래)

 

 

 

 

 

참깨가 자라고 있는 모습.

 

 

차조기. 

 

 

산자락을 개간해 심은 들깨밭. 

 

 

들깨. 

 

 

김태숙 할머니의 곳간. 할머니 댁은 아직 소를 부려 쟁기질을 하며 농사를 짓고 계신다. 언제 농법과 관련해 취재를 오면 좋겠다.

 

 

율무. 

 

 

 

김태숙 할머니 댁의 곳간 문에는 이런 장부가 적혀 있다. 이 문을 보니 2008년 강화도에서 찾아간 한 농가가 생각난다. 그곳에서도 문에 어느 논에서 얼마의 수확이 났는지 적어 놓았다. 

 

 

거문동을 나와 송티를 넘었다. 송티, 송치, 솔티... 모두 소나무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솔고개랄까. 이곳에도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가구 수도 얼마 되지 않고, 별 볼 일이 없었다. 대신 고개를 넘어 샘이 있어 잠시 더운 몸을 식혔다.

 

 

끊임없이 맑은 찬 물이 샘솟는다. 물이 얼마나 많이 나는지 큰 정수기 물통에 금세 물을 채울 수 있다.

 

 

목을 축인 다음 바로 양우실 마을로 향했다. 소가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는 형상의 지형이라고 하는데 확인하지 못해 모르겠다. 이곳에 오르니 재미난 모습이 보인다. 아마 이 근처 어디에 골프장이 들어오나 보다. 앞서 거문동에서 할머니 한 분이 골프장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이곳은 직접적인 피해가 있는지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양우실의 어느 집. 요즘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는 가시박꽃과 함께.

 

 

양우실 마을에서 별 소득 없이 돌아나오는 수집단의 모습.

 

 

다시 아랫마을로 내려왔다. 이곳은 송덕이라 한다. 이 마을의 특징은 한마디로 신품종이 많다는 것이다. 토종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신품종으로 보이는 참깨. 위의 거문동의 참깨와 비교해 보시면 좋겠다.

 

 

송덕부터 장암까지 마을길이 쭉 이어졌다. 큰길로 나가지 않고 마을길을 따라서만 무엇이 없을까 노려보며 나아갔다. 결론은 말짱 꽝. 얼른 신대라는 새터 마을로 방향을 돌렸다.

이곳에서는 100년 가까이 된 돌배나무를 발견했다. 엄청 크다. 키가 지금은 끝부분이 부러져서 그런데 14~15m 정도 되었을 법하고, 흉고도 145cm나 된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아주 옛날부터 있었다고만 기억할 뿐, 언제 누가 어떻게 이 자리에 자리를 잡았는지는 몰랐다. 대신 원래는 2그루였는데, 하나가 밑동이 썩으며 쓰러지고 지금 남은 나무도 몇 년 전 비바람이 심할 때 끝이 부러졌다는 기억만 전해주셨다. 역시나 옛날에는 즐겨 먹었는데 요즘은 아무도 별 관심이 없다고...  

 

100년이 넘은 듯한 돌배나무.

 

 

 

 

시간은 어느새 6시가 가까웠다. 이제 조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 원래 연풍까지 돌아볼까 계획했는데, 꼼꼼하게 조사하고 돌아다니니 하루에 1개 면이면 족하다. 그래도 이렇게 다니니 그냥 훑고 지나다니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오늘 탈락된 곳은 나중에 다시 들를 일이 없으니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 더 편하겠다. 또 하나하나 확인하며 지나니 더 자세히 많은 걸 볼 수 있어 조사하기도 더 재밌다.

신대를 나와 이제 장암리 점말이란 곳을 찾았다. 이곳에서도 역시 상추가 눈에 띄었다. 주인이 집에 없어 확인할 길이 없어 일단 누구네인지만 파악해 놓았다. 나중에 꼭 들러서 확인해야 한다. 이후 마을의 다른 집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점말에서 만난 결명자와 헛개나무 열매(아래) 

 

 

 

헛개나무.

 

 

이제 장연면의 마지막 마을 교동이 남았다. 마을에 들어서니 꽤나 큰 마을이었다. 버스도 다니고 가구 수도 꽤 많다. 차를 타고 지나다 안완식 박사님의 눈이 흰덩굴콩을 발견했다. 허투루 지나는 법이 없으시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고 불러 이것저것 물었다. 이 콩은 여기서는 납짝해서 빈대콩이라 부르는데 밥에 넣어 먹는단다. 이게 참 맛있어서 다른 건 넣지 않는다고... 4월에 심어 8월부터 익은 거 따 먹다가 나중에 남은 것에서 씨를 받는단다.

 

빈대콩이라 불리는 흰덩굴강낭콩.

 

 

 

또 여기서도 아욱을 찾았다. 이놈의 아욱은 괴산 여기저기 참 많기도 하다. 근데 이 아욱은 왜 그런지 키가 엄청 크다. 3m 가까이 되는 듯하다. 거름간 옆에 있는 건 거름을 많이 먹어서 그렇겠고, 도랑에 있는 건 개숫물을 많이 먹서 그렇겠지. 거름을 많이 하면 엄청 크는구나.

 

거름간 옆의 아욱(위)과 도랑의 아욱(아래). 

 

 

 

이 마을에서 오늘의 마지막으로 피마자를 수집 목록에 올리고 돌아섰다. 피마자는 따로 심으시는 건 아니고 그냥 떨어져 울타리 삼아 그대로 키우신단다. 나중에 씨를 꼭 받아 놓으시면 얻으러 오겠다고 말씀드리고 차에 탔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니 오늘은 중복이 아닌가. 음성 읍내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에 들어서니 어느덧 11시가 넘었다. 오늘은 일단 자고 정리는 나중에 하자.

728x90

'농담 > 씨앗-작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괴산 지역 5차 수집 조사  (0) 2010.08.19
괴산 지역 4차 토종 수집 조사   (0) 2010.08.13
괴산 지역 2차 토종 수집 조사  (0) 2010.07.27
괴산 지역 토종 종자 발굴 사업  (0) 2010.07.04
일본의 단지무  (0) 2009.10.09
728x90

2010년 7월 22일, 괴산 지역 토종 수집에 앞서 두 번째 조사에 나섰다. 오늘은 감물면이 그 대상 지역이다. 아침 7시에 출발했는데 도로에는 출근하는 차량으로 가득하다. 다음에는 더 일찍 나서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연풍이 자식 산책시키는 게 더 힘들어지는데 걱정이다.

 

화성 봉담에 사시는 안완식 박사님을 태우고자 달렸다. 이쪽은 출근하는 차량이 더욱 많아 길이 막힌다. 지체하게 생겼구나. 도로를 달리는데 옆으로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출신 때문인가, 온 나라 안이 공사장이다. 이 아파트 공사 때문에 안완식 박사님도 이사를 가게 생기셨다. 요즘 미분양이 넘친다는데 왜 그리 기를 쓰고 공사를 벌이는지 모르겠다. 혹시 최후의 발악?

 

 

10시 조금 넘어 괴산에 도착하여 변현단 선생님을 기다린다. 오는 길에 지난 1차 때 미처 다 보지 못한 불정면의 일부 지역을 둘러보고 왔다. 역시 안완식 박사님이 계셔서 그런가 사전조사에도 안정감이 생겼다. 안철환 선생님이 변현단 선생님을 부르는 호칭이 참 재밌다. "변 선생" 또는 "변 대표"라고 부르신다. "변"이란 성씨 때문에 그런가 보다. 흙살림 교육장 마당에서 10여 분 정도 기다리니 변 선생님이 단양에서 달려와 마치 카레이서처럼 부앙~ 하며 들어선다.

 

 

 

오늘은 감물면의 계담 서원이 자리한 계담이란 동네부터 시작한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첫 집부터 깔끔하니 맘에 들었다. 차에서 내려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번에는 그냥 차 안에서 둘러보기만 했는데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었구나.

 

몇 가지 토종 작물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주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을에 씨를 받으면 그때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밭에서 자라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주소를 적었다.

 

아래는 토종 땅콩이다.

 

 

배추처럼 속이 찬다는 배추상추.

 

 

텃밭의 어느 한 곳도 그냥 허투루 놀리는 법이 없다. 이 밭은 땅콩밭인데, 먼저 마늘을 심어 수확한 뒤에 땅콩을 심었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옥수수를 심어 한 번 거두어 먹고, 다시 베어낸 옥수수 옆에는 녹두를 심었다. 도대체 몇 가지 작물을 돌리시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농사법도 꼼꼼하게 물어 기록하면 좋겠다. 다음에는 놓치지 말고 묻도록 하자.

 

 

텃밭의 전경. 서로 다른 작물이 제자리를 차지하며 어우러져 함께 자란다.

 

 

계담을 나오는 길에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 카메라를 들었다. 밑으로는 괴산의 주요 농작물인 담배밭이 펼쳐져 있다.

 

 

이후 차를 타고 열심히 이 마을 저 마을 돌았다. 햇살은 따가울 정도로 뜨겁고, 차 안에서 에어컨을 틀어도 시원하지도 않고, 이런 날은 그냥 그늘에 앉아 바람이나 기다리는 게 상책일 터. 하지만 쉴 수 없다. 부지런히 돌아야 오늘 안으로 감물면의 사전조사를 마칠 수 있다.

이담리를 지나 오창리로, 다시 백양리와 구월리로, 또 살짝 걸쳐 있는 장연면 방곡리 일부까지, 자리하고 있는 마을마다 쑤시고 다녔지만 특별히 사진으로 남길 만한 것은 찾지 못했다. 처음에는 괴산은 산골짜기가 많으니 그곳에 살고 있는 분들이 토종을 꽤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지도에 산골짜기에 마을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으면 그곳에는 이제 사람이 살지 않는다. 아니면 한두 집이 남아 돈벌이작물만 아주 넓게 심어 먹고 살았다. 또 그리고 큰길이 나면서 집들도 싹 새로 뜯어고치거나 새로운 문물이 들어가면서 옛것은 설 자리를 잃었다. 처음 생각보다 수집 품목이 적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시간은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잠시 땀도 식히고 배도 채울 겸 식당으로 들어섰다. 오늘 수고한 차는 그냥 햇볕 아래에 놓았다.

 

 

변현단 선생님과...

 

 

안철환 선생님... 둘 다 얼마나 입심이 센지 모른다. 조사하는 내내 심심하지 않게 다니고 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농업기술센터로 찾아가 황용하 소장님을 만났다. 이제 정년이 1년 남으셨다는데 퇴직 이후에는 토종을 키우고 널리 알리려는 일을 하시려 한단다. 지금도 꽤 많은 종류의 토종을 농장에 심고 있으시다. 소장님께 가지고 계신 토종 목록과 기억하고 있는 괴산만의 토종이 있으면 내용을 정리해 나중에 전해달라 부탁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괴산읍을 가로질러 칠성면 쪽을 통해 다시 감물면으로 들어섰다. 맹이재를 넘는데 여기에도 골짜기에 마을 표시가 있었으나 실제 마을은 찾을 수 없었다. 

다음은 매전리로 향했다. 매전리는 예전 토종 수집단 발대식 때 감물면 신리에 사시는 강영식 님이 매전의 안민동에는 뭐가 많을지 모른다고 언급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도로도 엄청 산골짜기이다. 그 끝에는 무심사라는 절도 하나 있어 겸사겸사 그곳으로 향했다.

양산목이란 곳에 도착하니 이런 곳에도 논이 있다. 산골이지만 들이 꽤 있어 농사짓고 사는 집이 아직도 많다. 몇몇 집을 keep해 놓고 다시 위로 올랐다.

 

 

 

드디어 길의 끝에 이르렀다. 이곳에 자리한 무심사. 주변으로는 화전민들의 집이었던 곳이 꽤 보인다. 예전에는 농사땅으로 썼을 법한 곳도 여러 곳 눈에 띈다. 무심사는 "인간극장"이란 프로그램에 나온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사연 많은 동자승들이 있다는데 오늘은 그들을 보러 온 것이 아니니 땀만 식히고 목을 축인 다음 서둘러 길을 나섰다.

 

 

땀을 식히는 사이.

 

 

 

무심사 뒷편으로 펼쳐진 파란 하늘.

 

 

 

다음은 안민동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처음 보이는 집에서 한 할머니가 누가 이런 골짜기에 들어오나 쳐다보고 계신다. 슬그머니 다가가 이런저런 것을 묻고 확인한 다음 사진에 가지깨를 담았다. 다음에 오면 수집 대상이다.

 

 

조금 위로 오르니 마을회관이 있다. 그 앞에 어울리지 않게 소화전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까지 마을의 누군가가 텃밭으로 쓰고 있었다. 이 땅의 농민들은 땅 한 조각도 그냥 놔두는 법이 없다. 참으로 부지런하다.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서너 명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한 분. 그 가운데 한 할머니가 집으로 향하시길래 따라나섰다. 그 집에서 아래와 같은 배추상추를 보았다. 

 

 

또 토종 아욱도 있었다. 이건 잎이 작고, 잎의 모양도 시장에서 보던 아욱과는 달랐다. 이것도 나중에 수집 대상.

 

 

그리고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배에 대해 슬쩍 물었다. 그랬더니 이 동네에 그 나무가 있다며 우리를 이끄셨다. 지금은 방치되어 과실도 잘 달리지 않고 다른 나무에 치이고 있었다. 100년쯤 되었을 거라는데, 어릴 때는 그렇게 맛있게 먹었다며 기억을 떠올리신다. 귀한 나무인 줄 알았으니 앞으로 손보고 관리하시겠다는데 다음에 올 때는 어떤 모습일지 자뭇 궁금하다.

 

 

청배는 청실리라고 한다. 한자로는 靑實梨 푸른 열매의 배나무라는 말이다. 간혹 청실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무튼 익어도 이건 누렇게 되지 않고 푸릇푸릇하며, 오히려 누렇게 되면 껍질이 두꺼워져 맛이 떨어진단다. 예전에 먹었을 때 당도가 무지 높았다고 하는데, 기억은 상대적인 것이라 요즘처럼 단 것이 많은 세상에서는 어떤 맛일지 모르겠다.

 

 

과실이 제대로 달리지 못하고 많이 떨어졌는데, 그래도 몇 개가 달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완식 박사님이 알려주신 좋은 구도로 사진에 담았다.

 

 

이곳도 대부분의 땅은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단다. 전원주택으로 개발하려나? 땅은 땅의 가치로 그냥 놔두면 좋겠다. 소유와 매매의 가치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아는 사람 중에 감평사로 일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 바람대로 될려면 그 사람의 직업이 사라져야 하겠구나.

청실리가 서 있는 집은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이다. 그래서 이 나무를 따로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동네 할머니께 들으니 이 마을의 대부분이 70~80대라고 한다. 가장 젊은 사람이 60대라니 말 다했다. 초고령 마을이다. 앞으로 10년 뒤, 아니 5년 뒤만 되어도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떠나시겠지...

 

 

 

청실리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목에서...

 

 

 

안민동을 떠나 광지실로 나갔다. 너른 땅의 마을이란 뜻일 게다. 실제로 지도로 보면 주변 산들 사이의 너른 땅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그곳에 자리한 마을이 광지실이다. 허나 이런 너른 땅은 축사 등을 많이 한다. 괴산 지역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다지 볼 게 많지 않았지만, 댑싸리 한 장 찍고 다음 마을로 넘어갔다.

 

 

배나무여울이란 곳을 마지막으로 둘러보았다. 예전에는 뱃사공이 마을사람과 길손을 건너다 주었겠지만, 지금은 다리가 놓여져 배나무여울이란 이름만 남았다. 제대로 관광지를 만들려면 그 다리부터 부숴야 한다. 찾아가기 어렵게, 또 찾아갔으면 하루 이상은 머물게 만들어야 관광지가 뜬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은 그 반대다. 찾아가기 쉽게 길부터 잘 닦고, 음식점이나 마구 난립하게 만들어 아무 특색도 맛도 없는 곳으로 만들어 버린다.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에 사람이 붐비는 법이다. 그런 맥락에서 토종도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이제 돌아가는 길에 진짜 마지막으로 오창리의 유창이란 곳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박과 조롱박을 발견하고 기록에 남겼다. 주인 할머니를 찾아가 이것저것 묻고 싶었으나, 옥수수 출하로 정신 없이 바빠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 하도 귀찮게 파리처럼 딴 데 가지도 않고 서 있으니 그제야 몇 가지 일러주신다. 지금이 한창 바쁠 때라 그럴 게다. 그렇게 보면 수집조사는 겨울이 가장 좋지 않은가 한다. 여름에는 이렇게 사전조사 다니며 살아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겨울에는 수확도 끝났겠다 본격적으로 수집에 나서는 방법이 좋겠다. 허나 예산을 지원하는 곳에서는 예산을 결산하기 전까지 결과를 보길 원하니 맞추기가 어렵다. 이번 수집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그 기간 조정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아래는 박의 수꽃이다. 

 

 

그리고 암꽃에는 이렇게 작게나마 박이 달려 있다.

 

 

유창 3리에서 가지깨.

 

 

유창 3리에서 해질 무렵에 바라본 마을 앞 논. 논두렁에는 콩이 자라고 있다. 

 

 

 

마지막 조사지를 나오고 있는 안완식 박사님.

 

 

시간은 6시가 넘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출발하자는 의견에 목도 다리 부근의 매운탕집에서 밥을 먹었다. 집에 돌아오니 11시가 다 되었다.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에 빠졌다.

 

 

728x90
728x90

괴산의 한 농가 텃밭.

남쪽을 향하고 있는 이 텃밭은, 햇빛을 가리지 않는 가장 끝에 키가 큰 옥수수를 심고...

그 앞에는 팥과 콩, 옆에는 파와 호박 같은 작물을 심었다.

한곳에서 다양한 작물이 자라는 모습. 전형적인 우리네 텃밭이다. 

 

 

 

728x90
728x90

우리나라의 농심은 담벼락 옆에 남는 땅도 허투루 놔두지 않는다.

조금만 공간이 생겨도 어디든지 어떤 생명이 자라는 곳이 된다.

 

 

728x90

'농담 > 텃밭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벼 담수직파  (0) 2010.07.31
소농학교 공동밭 풍경  (0) 2010.07.27
괴산 사이짓기  (0) 2010.07.14
팥 떡잎  (0) 2010.07.07
고추꽃  (0) 2010.07.07
728x90

괴산군 불정면 지장리 철완이 마을에서 찍은 사진.

괴산 지역은 예전부터 담배 농사를 많이 지었다.

예전에는 흙으로 지은 담배 말리는 창고가 하나씩 있었는데, 지금은 건조기가 그걸 대신하고 있다.

 

담배를 거둘 무렵이 되면 콩을 그 뒷그루로 심는다.

그러고 나서 담배를 베면 자연스럽게 콩밭으로 바뀐다.

이런 방식은 섞어짓기라고 하기보다는 사이짓기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괴산 지역에서는 7월 초에 콩을 심고, 7월 중순에는 서리태를 심는다. 

 

728x90

'농담 > 텃밭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농학교 공동밭 풍경  (0) 2010.07.27
우리 농가의 자투리 땅 활용법  (0) 2010.07.14
팥 떡잎  (0) 2010.07.07
고추꽃  (0) 2010.07.07
토종과 토종농사 강의안  (0) 2010.07.02
728x90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의 골말이란 곳에 자리한 3층 석탑.

고려시대의 석탑이라 한다.

괴산에는 고려와 관련한 불교 문화재가 많다.

조선시대보다 고려시대 때 더 큰 세력이 형성되었나 보다.

그래서겠지, 조선시대에 그다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728x90

'농담 > 雜다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산의 옛 지도  (0) 2010.07.15
수원 화성 장안문  (0) 2010.07.14
밖에서 본 우리집  (0) 2010.07.12
안산 일동 축구장  (0) 2010.07.12
안산 식물원 연못  (0) 2010.07.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