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0일, 이틀 전 다 돌아보지 못한 연풍면을 끝내러 온 날. 7시 40분 화성 봉담을 출발해 영동고속도로 덕평휴게소에서 잠시 요기를 하고, 괴산으로 나와 수안보를 거쳐 연풍면으로 접어드니 10시 20분이다. 오늘은 연풍면의 새재 3관문으로 넘어가는 고사리부터 시작이다. 이곳은 휴양림과 수련원, 호텔, 민박집 등 관광객을 상대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고사리를 뒤지고 다니는 수집단. 이 동네는 농사짓는 사람이 없고 아랫동네로 내려가라는 말만 들었다.
이날 어제에 이어 무시무시한 폭염이 수집단을 괴롭혔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몸에선 땀이 줄줄줄...
쉬는 김에 모두 함께 단체사진이나 한 장 찍었다. 언젠가 써 먹어도 써 먹겠지.
다시 차를 타고 아랫동네인 수옥정 마을로 향했다. 이곳은 그 유명한 수옥폭포가 있는 곳이다. 귀농본부에는 수옥이란 이름을 지닌 사람들이 꽤 있는데 다들 이 동네로 귀농하면 되겠다. 하하.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한 수옥폭포.
이 좋은 곳에 이름을 새기는 일은 옛사람이나 요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수옥폭포가 있는 마을에는 한지 체험 공예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안에 들어가 한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내친 김에 닥나무를 보러 신풍한지를 찾아가기로 했다.
수옥 마을의 감나무. 대략 70여 년 정도 된 걸로 추정. 아래는 그 열매.
장에서 사다 심으셨다는 중국오이.
더덕꽃도 한 장 남긴다.
수옥 마을을 한참 돌아다니다가 한 집에서 할머니를 발견. 얼른 좇아가서 이것저것 여쭙고, 완두를 얻어서 나왔다.
이제 차는 신풍으로 내달린다. 한지 공장으로 출발! 6~7분을 달리니 마을이 나온다. 장사가 될 지 궁금한 모텔 2동이 함께 서 있는 걸로 보아서, 옛날 지금과 같은 새로운 길이 뚫리기 전에는 꽤 많은 사람이 이 길로 오갔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신풍 마을 안에서 길을 헤메고 헤메다 한지 공장을 찾았다. 대표 분은 군청에 일이 있어 나갔고 직원 분만 있어 말씀을 드리고 닥나무 밭으로 안내를 부탁했다.
한지의 원료. 닥나무 껍질을 잘 이겨서 만든다.
종이를 뜨는 곳. 방법은 이미 다들 아시리라 ...
한지의 원료 닥나무 껍질에 닥풀을 섞고 거기에 물을 부은 재료.
직원 분과 대화 중인 안완식 박사님. 그 뒤쪽으로 "한장의 종이에도 정성을..."이란 문구가 보인다.
떠 놓은 한지. 이게 마르면 그 귀하다는 한지가 된다.
한지에서 정말 중요한 접착제 역할을 하는 닥풀. 뿌리를 캐서 잘 씻은 뒤 그걸 날로 이기면 접착 물질이 나온다고 한다.
공장을 나와 한참을 달리는 연풍면 소재지가 있는 부근에 닥나무 밭이 마련되어 있었다. 닥나무는 농약 성분이 닿으면 죽는 특성이 있어 농약은 줄 수 없다고. 그래서 닥나무 밭은 두둑에는 비닐이, 고랑에는 부직포가 깔려 있었다. 거름은 밑거름으로 퇴비만 준다고 한다. 이렇게 닥나무를 한 번 심으면 십 몇 년은 계속 베어서 쓸 수 있단다. 잎은 먹고, 껍질은 한지로, 뿌리는 미백 효과가 좋아 화장품으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자랑이다. 그래서 괴산군에서도 관심 집중!
다시 신풍 마을로 돌아와 동네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한지 공장만 보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얼마나 날이 더운지 아이들은 마을 광장에 모여 함께 멱을 감으러 가려고 했다. 어찌나 부럽던지... 연풍면은 전반적으로 물이 참 좋은 곳이다. 개울도 깨끗하고, 샘도 많고... 그 시원한 물 속으로 그냥 풍덩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아이들이 건강히 살아 있는 마을. 이런 마을을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신풍 마을을 돌고 돌다가 장연에서 보았던 백오이를 다시 발견했다. 주인 할머니께 물으니 충주에서 씨를 얻어오셨다고 한다. 아삭아삭하니 맛있다고...
다시 동네를 돌다가 지붕에서 커다란 호박 하나를 발견. 집 안으로 찾아가니 마침 에어컨을 틀고 쉬고 계셨다. 우리 일행을 반기며 잠시 들어와 쉬라고 하시길래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가서 땀을 식혔다. 아이고 되다.
지붕 위에서 자라고 있어 더 이상 깨끗하게 찍을 수 없었다.
호박을 본 집 옆에서 발견한 댕댕이덩굴. 사진에 보이는 열매는 약으로 쓰고, 덩굴은 질겨서 망태 같은 농기구를 만들어 썼다.
닥나무를 보고 신풍 마을로 돌아오기 전, 율전이란 마을에 들러 동네를 뒤졌다. 율전은 밤나무밭이란 뜻일 텐데 밤나무보다 감나무가 훨씬 많았다.
율전 마을에서 본 감나무와 그 열매(아래). 주인을 만나지는 못해 다음 기회에 다시 찾기로 했다.
신풍 마을과 그 바로 옆에 있는 절골까지 돌아보니 시간은 벌써 2시를 훌쩍 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는데 토종 수집 조사에서는 일하느라 점심 끼니도 제때 먹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어쩌랴 점심을 먹자고 다시 여기를 떴다가 돌아오면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니...
점심을 먹고 나오며... 하늘은 멋지다만 어찌나 뜨겁던지...
그래도 이제 연풍면의 3/5은 끝냈다. 두 골짜기만 더 돌면 연풍면을 다 볼 수 있다. 너무 더워 점심을 먹고 잠시 쉰 다음 3시가 넘어서 다시 수집 조사에 나섰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은티 마을. 희양산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으로, 이곳을 넘어가면 환경보호로 유명한 봉암사가 나온다. 또 그곳은 귀농자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운데 바위가 보이는 산이 희양산. 그 오른쪽 골로 넘어가 예전에는 가은장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안철환 선생님이 급한 일정이 있어 먼저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연풍면으로 다시 나간 사이 동네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다니다 발견한 부추. 할머니께서 씨를 받아주신다고 했다. 예약해 놓았으니 나중에 찾으러 가야지.
동네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집. 하지만 할머니 혼자 사시면서 돈을 벌러 한 번씩 나갔다 오신다고 하여 토종은 없었다. 집은 정말 옛날에 지은 것이었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의 부엌.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거렸지만 별 다른 수확은 없었다. 그러다 어느 집에서 강낭콩을 발견. 그런데 주인이 없어 할 수 없이 채집에 나섰다.
주인이 비운 집에서 발견한 강낭콩. 나중에 찾아와서 더 조사해야 할 일이 생겼다. 아래는 이 강낭콩의 생물.
은티 마을 주막집. 이곳에서 희양산으로 오르는 사람이 꽤 많은가 보다.
은티 마을을 나와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을 찾아갔다. 마보라는 마을이다. 하지만 축사만 잔뜩이고 별 특이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 마지막 골짜기 하나가 남았다. 서둘러 그리로 향했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논길을 지나 화성, 매바위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곳도 마보와 마찬가지로 축사가 대부분, 일부는 과수, 나머지는 논뿐이다.
콩밭에 서 있는 허수아비가 재밌어 한 장 찍었다. 아래는 비탈밭에서 고추를 따서 지게로 나르고 있는 마을 어르신.
평지에서는 별 걸 찾을 수 없으니 골짜기 깊숙히 들어갈 수밖에. 마지막 골짜기의 가장 깊숙한 곳인 안말까지 그대로 달려가려는데, 기름이 다 떨어졌다. 할 수 없이 연풍면으로 나가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를 찾았으나 면 안에는 없어 주유소를 찾아 한참을 달려갔다. 다시 기름을 채우고 돌아오는 길에 낭비하는 시간이 아까울 뿐.
다시 안말까지 달려갔다. 지도에는 안말 위로도 마을이 더 있었으나 사람들에게 물으니 그 위로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단다. 안말의 가장 위에 자리하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이 집,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안말의 가장 깊숙히 자리한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피를 말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집 구석구석에 자라고 있는 작물들이 심상치 않다.
마침 주인 할머니께서는 산에 있는 들깨밭에서 일하고 계셨다. 할머니를 찾아 한참을 올라가 겨우 사정해서 모시고 내려왔다. "할머니"라고 크게 부른 것이 주효했다. 자신의 손자가 와서 자기를 부르나 해서 얼른 돌아나오셨다고... 16에 이곳으로 시집을 와 이제 여든이 다 되어가는 채임순 할머니는 이곳에서의 삶을 이렇게 정의하신다. "산지옥이라요." 더 놀라운 것은 안말로 이사온 것은 10년 남짓 정도고, 원래는 저 위에 있었다는 힌디미에 사셨단다. 힌디미는 지도에는 힌드뫼라고도 나온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이 옆으로 유명한 백화산이 있어서 힌디미라고 했단다. 아마 해가 잘 드는 곳이라 밝은 언덕, 밝은 곳이란 뜻으로 힌디미, 힌드뫼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할머니의 말씀에서도 이곳 안말보다 힌디미가 훨씬 농토도 넓고 농사짓기 좋았다고 한다. 단 한 가지, 차가 들어오지 않아서 그게 힘들었다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할머니의 삶은 다시 한 번 찾아가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힌디미에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는 마지막 증인인 셈이다.
안말에서 바라본 힌디미. 장정의 잰걸음으로 걸어가면 20~30분쯤 걸린다고 한다. 정확한 위치는 가운데 골짜기의 왼쪽으로 나무들이 약간 갈색으로 변한 그곳 너머라고 하신다. 거기까지 갔다와 보면 재밌겠다. 지금 아들이 찾아와 옛날 살던 곳에 가서 재피를 따고 있다고...
할머니 댁에서 발견한 토종 오이. 맛이 무척 달다.
산이 깊어 이곳에서는 자연히 씨를 받아서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장에 나갈 일은 생필품을 구하거나 수확한 농작물을 매상하러 갈 때뿐. 아니면 제사를 준비하느라 흰쌀을 구하러 나갈 때 말고는 그냥 여기서 주구장창 땅만 파고 살았어야 했을 게다. 그래서 할머니 입에서는 자연스레 여기가 산지옥이란 말이 나왔겠지. 사진은 할머니가 상시 씨를 받아 심는다는 근대.
안말에 있는 다른 2~3가구를 더 찾아가 보았다. 하지만 첫 번째 집만큼 특별한 것은 쉬이 찾아볼 수 없었다.
안말의 다른 집에서 기르는 옥수수밭. 옥수수 하나만 자라는 법이 없다. 꼭 사이에 무언가 자라고 있어도 있다.
몸이 아픈 할아버지와 함께 들어와 살다가 할아버지는 먼저 떠났지만 할머니는 그냥 이곳에 남았다고... 그 사연 많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듣자면 하루 낮밤으로도 부족할 게다.
산에서 캐다가 옮겨심었다는 취에는 꽃이 피었다. 할머니 인생에도 활짝 꽃이 피었던 때가 있었을까?
안말에서 나와 내려오면서 들른 두 마을에서는 이렇다 할 수확이 없다. 그냥 확인했다는 데 만족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연풍이 슬픈 것일까?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 연풍을 벗어나니 신기하게도 언제 비가 왔나 싶게 말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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