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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농기구란? 그 역사

 

 

온고지신 - 일본인은 메이지 시기까지는 중국, 메이지 이후는 서양, 그리고 전후에는 미국의 문화를 도입한 것이 일본의 근대화라고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그때 좁은 일본에서 오래된 도구를 보존하고 있었던 것은 선진국의 기술, 도구를 도입하는 데 곤란을 준다고 생각되었습니다. 1957년 池田 내각 시대는 농가의 소득이 도시 급여소득자의 절반쯤입니다. 그래서 농가의 소득도 급여소득자와 마찬가지로 높이려 하여 농가의 소득 배증을 어떻게 할까. 1960년에 농업기본법이 제정되어 이에 기반하여 1962년에 전국에서 제1차 농업구조개선사업이 개시되었습니다. 농작업의 효율화를 도모하기 위해 농지의 경지정리, 습지의 암거 구축, 두렁의 정비, 용배수로의 정비, 관개시설의 설치, 농기구의 정비 등이 행해졌습니다. 이때까지 동력원으로서 인력과 축력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경지정리에 의하여 동력원이 석유발동기나 가솔린엔진을 휴대한 경운기, 트랙터 등을 도입해 작업의 효율화와 하나의 경지당 재배면적이 확대되었습니다.

 

벼농사를 보면 1945년 전반까지는 물못자리에서 온탕소독과 싹틔우기를 행하고 수온이 20도 정도가 되고나서 파종을 행했습니다. 그 뒤 기름종이에 파종한 모판에 왕겨훈탄을 뿌려 그 위를 덮었다. 그에 의하여 서리 피해를 막고, 모의 발육을 촉진하며, 지역에 따라서는 종래보다도 10일에서 20일 모내기를 일찍 할 수 있었습니다.

 

보온 절충 못자리의 최초인(나가노현 카루이자와軽井沢 하기와라 토요지萩原豊次 씨가 1931년에 개시) 기름종이는 1회나 2회밖에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 뒤 폴리에틸렌 필름이 도입되어 몇 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또 그 뒤 1955년 전반에는 농업용 비닐 필름이 도입되어 대나무대를 이용해 비닐 터널 재배로 변했습니다. 보온 절충 못자리가 도입되고나서부터 손모내기 모는 파종 뒤 45일 전후에 모내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약 1달 정도 모내기가 빨라졌습니다. 모든 농작업도 빨라져 태풍이 오는 철을 약간 피할 수 있게 되어 수확량 증대가 예상된 한 요인이기도 합니다. 

 

그 뒤 농촌의 생활양식에도 변화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생활개선의 일환으로 정월에 장식용 소나무를 없애고 종이에 소나무 그림을 인쇄해 그걸 대용으로 붙였습니다. 농작업복은 일본식에서 서양식으로 변했습니다. 주거도 서서히 고쳐 지어서 일본식에서 서양식으로 일부는 남았지만 변화했습니다. 

 

주거나 농막의 개조에 의하여 사용하지 않게 된 농기구는 폐품이 되어 철제품은 철 부스러기로 재이용되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이를 모아 문방구 등의 구입비로 충당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 속에서 종래 사용되었던 농기구는 급속히 소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작물 재배, 가축의 사육에서는 그 기본이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크게 변화한 것은 동력원이 인력과 축력에서 동력으로 변화한 것, 또 플라스틱 필름이 개발되어 농업에 도입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농기구 기능은 바야흐로 "옛것을 찾아 새로운 것을 안다." 이것의 기본이 되는 도구가 옛 농기구입니다. 1967년 제2차 농업궂개선사업이 개시되고, 더욱 농촌이 정비되어 잉여노동력은 도시노동자로 이행되었습니다.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는 줄어들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농촌의 자연환경은 서서히 부정적 방향으로 향한 것입니다. 겨울철에는 논에서 물이 사라져 마른논이 되어 종래의 겨울 담수 논은 사라졌고, 많은 생물들이 서식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농작업의 효율화, 농산물의 생산 증대를 목적으로 한 농업이 지금 재검토되고 있습니다.

 

농기구를 통하여 인간은 자연 속의 일원으로 공생해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크게 통감할 수 있습니다.

 

 

 

우메무로 히데오梅室英夫 

    

 

 

2장   그림에서 보는 땅을 가는 농업기술

 

농서는 근대 농학이 성립하기 이전의 농업기술이나 농민의 생활에 대한 저작물입니다. 근대 이후는 농학서이지 농서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농서의 성립은 중국 농서의 영향을 받았고, 당연한 일이지만 조선과 류큐의 농서가 성립되는 데에도 지극히 큰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남북조 시대인 6세기 전반의 북위北魏에서 성립한 가사협의 <제민요술>은 밭농사 농업의 기술을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나라 시대의 육구몽陸龜蒙의 <뢰사경耒耜經>은 강남의 논에서 사용한 역축 농기구의 해설입니다. 1154년에 남송南宋에서 간행된 진부陳旉의 <농서農書>는 논 농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313년 왕정王禎의 <농서農書>는 화북, 화중의 농법을 비교한 재래 농기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639년 간행된 서광계徐光啓의 <농정전서農政全書>는 고래의 농학자의 설과 당시 유럽의 농업기술을 소개한 농정의 집대성입니다. 이상이 중국의 논과 밭농사에 관한 농기구를 일본에 소개한 농서입니다.

 

한편, 일본에서 농서의 성립은 16세기 후반인 1629년부터 1654년 사이의 전국시대 이요伊予의 무장 도이키 요요시土居淸良가 마츠우라 소우안松浦宗案에게 농업에 대하여 설문하여 그에 답한 것을 마츠우라가 적어 올린 <청량기淸良記> 30권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특히 제7권은 농업에 대하여 기재되어 이를 <친민감월집親民鑑月集>이라고 별도로 부르고 있습니다.  

 

계속하여 1682년에는 미카와三河, 엔슈遠州 지방의 농업기술을 정리한 전15권 작자 미상의 <백성전기百姓伝記>. 1684년에 사세 요지에몬佐瀬与次右衛門이 지은 <아이즈농서会津農書>는 상권은 벼농사, 중권은 밭농사, 하권은 농가경영의 3권으로 구성되어 아이즈의 농업기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697년 미야자키 야수사다宮崎安貞가 지은 <농업전서農業全書>는 키나이畿内를 중심으로 해 산요우도山陽道, 키이紀伊 지방 등을 조사해 농민에게서 듣고 적은 걸 바탕으로 전10권을 저술하여 일본 최초의 종합적 농서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 농학자 서광계의 영향을 받아 농기구 그림은 그려놓았지만 그 사용법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에도江戶 시대의 3대 농학자(미야자키 야수사다, 사토 노부히로佐藤信淵, 오쿠라 나가츠네大蔵永常)의 한 사람인 오쿠라 나가츠네는 미야자키 야수사의 영향을 받아, 1822년에 각지를 여행한 견문에 기반하여 42종류, 110점의 농기구에 대하여 <농구편리론農具便利論>(그림1)을 저술했습니다. 그 내용은 농기구의 각 부분의 치수, 각도 및 무게와 지면에서부터 자루의 끝까지의 길이, 사용처의 토성까지 농기구와의 관계를 농민도 읽기 쉬운 가나로 기재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용법이 난해한 농기구에 대해서는 그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지금까지 없던 획기적인 농서로 메이지明治 30년대까지 복각간행되었습니다. 그 이후도 서양 농기구에 관한 서적이 출판되었는데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농구편리론>(그림2)이 인용되어, 명저의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1
그림2

 

 

이 이전에 사츠마薩摩 번주 시마즈 시게히데島津重豪의 의향에 의해 1804년 소한曾槃이 지은 <성형도설成形圖說>은 농업의 백과전서라 불리는데, 그곳의 해설은 만엽집과 농정전서로부터 인용하고, 번의 식산흥업을 위한 서적이기도 하며, 무사의 교양서라고도 불렸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 농업에 정통한 지방의 독농가, 즉 메이지 시대의 3대 노농의 하나인 <노농만경록老農晩耕錄>의 저자 이시카와 리치노스케石川理紀之助는 아키타현秋田県 센보쿠仙北 지방의 가난한 마을에서 구제 지도를 행했다. 이와 같이 일본에서는 벼농사, 밭농사 등에 대하여 다수의 농서가 간행되어 농업기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무로마치 시대 이후 근대까지, 농민은 풍년만작豊年滿作(그림3)을 염원하고 사계절마다 벼농사의 농경방법을 그린 <사계경작도四季耕作圖>가 그림의 첫머리에 받아들여져 각지의 신사에 봉납되어 그 몇 개인가가 현존해 있습니다. <타와라카사네たわらかさね 경작 두루말이 그림>(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두, 작자 미상)은 성형도설과 마찬가지로 다이묘와 무가의 자제에게 농업의 과정을 가르치기 위하여 농경의 연중행사를 그렸습니다. <광익국산고広益国産考>(1844년 오쿠라 나가츠네 저)는 전7권, 그의 생애의 견문이 집대성된 서적입니다. 

 

 

그리고 메이지 6년 일본은 4월부터 8월까지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 각 부현에서 박물국에 제출된 출품물의 도설을 박물국  여러 산물의 제조과정을 중심으로 도해한 <교초敎草>(그림 4, 5)가 있습니다. 

 

 

 

메이지 벼농사 농법은 토지개량에 의한 습논의 건논화, 쟁기를 이용하던 우마에 의한 깊이갈이, 시비 기술의 개량, 볍씨의 소금물가리기나 좁고 긴 장방형 물못자리 등이 보급되어 종래에 비해 그 수확량과 노동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이 농법을 교초에 의하여 보급하려고 시도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다나카 요시오田中芳男(1838-1916)입니다. 또 다나카는 일본에 박물관을 탄생시킨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다나카 요시오(농대의 전신 도쿄 고등농학교의 초대 교장)은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물에 즉한 지식의 개명"으로, 더 상세한 자료정보의 제공방법으로 서적이나 그림(그림 6, 7, 8, 9, 10)이 필요하다고 기술합니다. <교초>는 그에 해당하는 것의 하나입니다. 올바른 정보란 실물과 활자와 그림이 조합되어야 진실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 사상은 농대의 도서관 창설 당시부터 표본(실물자료), 도서, 도해(족자에 탁본, 현재는 사진, 영상)의 세 기둥으로 정보가 성립된다는 점을 개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학을 최우선으로 삼는 농학, 농업에서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것으로, 그것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농업의 발전에는 "옛것을 익혀서 새로운 걸 안다"는 이념에 따라 전통의 기초 위에 세우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독창적인 실학이 되는 것입니다(그림 11, 12, 13).

 

 

 

 

 

 

 

제3장   괭이

 

   1.  괭이의 기원

 

지금으로부터 약 1만5천 년 전에 농경 기원의 하나로 뿌리채소 농경문화가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얌이나 타로를 재배, 수확하기 위한 도구로 봉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을 뒤지개掘棒(하라노 코오조原野耕三 씨에 의하면 동남아시아의 화전 농경을 행하는 소수민족이 현재도 사용하고 있음)라 부르고, 현재도 사용하는 소수민족이 있습니다. 현재의 괭이는 이 뒤지개의 끝부분이 넓어지고 현재의 발쟁기(踏鋤) 형태가 된 뒤, 결국은 자루에 날판(刃床) 부분이 덧붙여진 괭이가 되었습니다.  그뒤 뿌리채소 재배는 서남아시아에 도달하고, 맥류 농사와 우마의 가축화가 행해져 말과 소에 의한 쟁기질에 의한 경작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럼 일본에서는 언제쯤부터 괭이가 존재했을까? 지금으로부터 대략 1400년 전 야요이 시대에 벼농사 농경이 존재했습니다. 야요이 시대의 전기에는 목욕통(날판 부분)에 구멍을 뚫고, 곧은 자루를 장착한 괭이가 후쿠오카현의 이타즈케板付 유적, 시즈오카의 토로登呂 유적, 미에현 츠시津市의 노소納所 유적, 비사이시尾西市 오카시마岡島 유적, 토요하시시豊橋市 우리고爪郷 유적, 토요타시豊田市 가와하라川原 유적 등에서 목제 괭이가 출토되었습니다. 아이치현 기요스시淸須市의 아사히朝日 유적(중기 후엽)에서 출토된 괭이에 양끝을 접어 구부린 철날을 장착한 흔적이라 생각되는 목욕통 부분이 보고되었습니다. 이들 출토품의 재질은 북가시나무, 가시나무, 주목 등입니다. 현재도 날판 부분의 철을 제하면 목욕통과 자루의 재질은 야요이 시대와 바뀌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타즈케 유적에서 발굴하다 도랑의 벽면에서도 철날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 그리고 철기시대로 변천했다고 합니다만, 일본에서는 청동기 시대(야요이 후기부터 일본제 청동기가 나타남)가 없이 야요이 시대에 철기문화가 벼농사와 함께 한반도로부터 이입된 것이라 합니다. 

 

그럼 야요이 문화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물으면 오카자키 타카시岡崎敬 씨의 고고학적인 자료에 기반하면 양자강 하류(강남 지방)에서 해안을 따라 북상하고, 산동반도, 조선의 서남해안을 거쳐서 북규슈에 전해졌다는 설이 정설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설을 이시게 나오미치石毛直道 씨는 돌칼을 이삭 자르는 데 사용하며 이는 동남아시아에는 없는 도구이고, 세계에서 동아시아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석기라고 지지하고 있습니다. 또, 야요이 시대에는 목제의 괭이는 갈이용과 진흙을 뒤섞는 두 가지 기능을 가진 것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키노시타 타다시木下忠 씨의 일본의 고고학 3권 <농구農具>에 의하면 경운용 찍는괭이(打鍬)는 자루와 날판 사이 부분의 폭이 좁고 두터우며 자루가 이루는 각도는 60-80도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다른 하나인 진흙을 뒤섞고 고르는 데 쓰는 건 자루와 날판 사이 부분의 폭이 찍는괭이에 비해 넓고 얇으며, 자루가 이루는 각도는 40도 정도의 당기는쟁기(引鍬)입니다. 이외에 날이 몇 개인 갈래괭이(股鍬)나 흙의 이동, 구멍 파기 등에 쓰는 발쟁기 등도 출토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시기의 출토품은 모두 목제입니다.

 

그럼 언제쯤부터 철이 괭이나 낫에 쓰였는가 하면 츠데 히로시都出比呂志 씨에 의하면 1세기 말에 한반도에는 그 유사품이 없고 일본 독자의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 일본에서는 철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이입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일반에는 보급되지 않고 일부의 계층만이 사용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5세기가 되면 한반도의 삼국시대(신라)의 철제 낫과 같은 것이 일본에도 존재했습니다. 중국 화북의 전국시대에는 철제 농기구가 이미 존재하고,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도래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중국의 가래(鋤)는 일본의 괭이에 해당하고, 괭이는 거꾸로 가래로서 의미가 정반대입니다.

 

 

   2.  괭이의 형태

괭이는 용도나 흙의 성질에 의해, 날판 부분의 모양과 자루의 길이, 자루의 각도, 무게 등이 그 형태를 다르게 만든다고 합니다. 기본으로 하는 모양은 괭이 자루의 끝이 지면에서부터 사용자가 직립한 자세로 허리 높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업을 계속해도 쉬이 피곤해지지 않는 자세입니다. 즉 어떤 각도를 가진 괭이라도 이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다만 어떤 일에도 예외가 있듯이, 히고肥後 괭이나 사츠마薩摩 괭이는 날판 부분과 자루의 길이가 동일하든지, 또는 자루의 길이가 조금 깁니다. 자루의 끝은 허리의 위치에 있지만 허리를 구부려 쭈그린 자세의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날판 부분의 재질과 형태에 의한 분류(그림14)

 

 

 

-나무 괭이 ... 목욕통, 자루는 가시나무나 북가시나무, 주목, 참가시나무, 밤나무. 일부 지역에서는 두렁치기용으로 사용(그림15).

 

-목욕통 괭이 ... 날끝은 철로 자루 및 목욕통은 목제. 두둑짓기, 북주기, 사이갈이 김매기, 경운, 수확, 두렁깎기, 두렁치기, 옮겨심기, 흙 다지기 등

 

-삽괭이 ... 자루는 목제이고 날 부분은 철. 또 날 부분에 2-3개의 구멍이 있어 이것을 창문괭이라 한다. 용도는 목욕통 괭이에 준한다(그림16).

 

-빗츄備中 괭이 ... 자루는 목제이고 날 부분은 철로 2-5개의 갈래. 주로 논의 경운, 흙부수기, 두렁치기할 때 진흙을 두렁에 붙인다. 점토질의 밭, 논의 경운

 

 

   3.  특수한 용도

 

-죽순 캐기 ... 삽괭이

-나무 심기, 개간용 괭이 ... 날판 부분은 두텁고 은행잎 모양을 하며, 날끝은 포물선을 그린다(그림17).

 

 

-연근 캐기 ... 목욕통 쟁기로 자루가 짧고 자루의 각도가 예각

-고구마, 토란 캐기 ... 빗츄 괭이를 쓰고, 줄기 부분의 손상을 막습니다. 

-벼 그루 자르기 ... 벼 그루를 한 그루씩 지면으로부터 잘라 해충 등의 월동을 방지하는 삽괭이

-땅 다지기 행사, 나무심기 행사, 건축의 지형 ... 나무 괭이

-점토와 자른 볏짚을 반죽해 흙벽을 만든다 ... 삽괭이

-석회, 마, 종이 등의 여물과 바닷풀을 쪄서 반죽해 회반죽을 만든다 ... 나무 괭이

 

 

 

   4.  자루와 날 부분의 각도에 의한 분류

-찍는괭이 ... 경운, 개간, 모종의 옮겨심기를 목적으로 하고, 그 자루의 각도는 60-70도, 자루 길이는 60-120cm, 자루의 끝은 두꺼워져 미끄러짐을 방지합니다. 삽괭이에 속하고, 중점토나 모래자갈에 적합합니다. 

-당기는괭이 ... 가볍고 다루기 쉬우며, 자루의 각도는 40-45도이고 약간 사질토양에 적합한 괭이입니다. 

-찍고당기는괭이 ... 주로 밭의 두둑짓기를 하고(그림18), 흙 붙이기, 사이갈이 김매기를 목적으로 한 괭이로, 자루의 각도는 50도 정도이고 자루 길이는 40-150cm.

 

 

   5.  특수한 형태의 괭이. 아마쿠사天草 괭이, 사츠마薩摩 괭이

 

특수한 형태의 괭이 아마쿠사 괭이, 사츠마 괭이는 목욕통 괭이에 속하고, 주로 논밭의 경운, 밭의 사이갈이 김매기, 두둑짓기를 목적으로 합니다. 자루의 각도는 20-35도이고 자루 길이는 40-60cm로 날판 부분과 자루의 길이가 동일합니다(그림19).

 

 

 

   6.  토양 성질에 의한 괭이의 형태

토양 알갱이의 조성에 의하여 입자를 아래와 같이 분류합니다.

-거친 모래 : 0.25-2mm ... 목욕통 괭이, 삽괭이의 찍는괭이, 찍고당기는괭이, 당기는괭이 모두 사용 가능. 

-가는 모래 : 0.05-0.2mm ... 당기는괭이, 찍는괭이, 삽괭이, 목욕통 괭이의 사용이 적합합니다. 

-미세 모래 : 0.01-0.05mm ... 당기는괭이, 찍는괭이, 삽괭이, 목욕통 괭이의 사용 가능.

-점토 : 0.01mm 이하 ... 찍는괭이, 빗츄 괭이가 적합합니다.

-가는흙 ... (굵기 2mm 이하의 토양 입자) 내부의 점토 함량에 의한다. 

-모래흙 ... 12.5% 이하 ... 찍는괭이, 당기는괭이, 찍고당기는괭이, 목욕통 괭이, 삽괭이의 사용이 적합합니다.

-사양토 ... 12.5-25% ... 찍는괭이, 당기는괭이, 찍고당기는괭이, 삽괭이의 사용이 적합합니다.

-양토 ... 37.5-50% ... 찍는괭이, 빗츄 괭이의 사용이 적합합니다.

 

 

   7.  괭이의 무게에 의한 분류(총중량)

-찍는괭이 ... 2.8kg 이상 ... 빗츄 괭이, 목욕통 괭이

-당기는괭이 ... 1.3kg 이상 ... 삽괭이, 목욕통 괭이

-찍고당기는괭이 ... 앞 두 가지의 중간 ... 빗츄 괭이, 목욕통 괭이

*남성과 여성이 사용하는 괭이의 중량 차이는 여성이 약 10% 가볍다. 

 

 

   8.  괭이를 사용하는 사람의 진행방향에 의한 분류

-전진 ... 논밭의 경운(그림20), 밭의 김매기, 벼의 포기 자르기, 두렁치기(그림21), 논의 쟁기질한 흙 부수기, 뿌리채소의 수확 등 ... 찍는괭이, 빗츄 괭이, 삽괭이, 목욕통 괭이를 사용.

 

-후퇴 ... 두둑짓기(그림22), 북주기, 뿌리채소의 수확, 옮겨심기 등 ... 찍고당기는괭이, 당기는괭이, 목욕통 괭이, 삽괭이, 빗츄 괭이를 사용합니다. 

 

*습논 경운을 할 경우, 진흙이 앞으로 튀어 자루와 사용자에게 걸려 작업효율을 손상시킵니다. 그래서 빗츄 괭이의 날 부분 끝보다 약간 큰 구멍의 대나무로 짠 판 모양의 것(치바에서는 다테라고 함)을 자루의 아래쪽에 장착하고, 진흙이 튀는 걸 막습니다(그림23). 종려나무의 잎자루를 장착하는 지역도 있습니다. 

 

 

 

 

   9.  괭이의 사용법

 

-찍는괭이 ... 오른손잡이 ... 왼손으로 자루의 끝(미끄럼 방지 부분)을 잡고 오른손은 왼손에서 어깨너비 정도 떨어진 부분을 잡으며 괭이를 휘두릅니다. 지면에 괭이가 박히는 동시에 오른손은 왼손의 앞으로 미끄러집니다. 두발은 어깨너비의 1.5배로 벌립니다. ... 빗츄 괭이, 목욕통, 삽괭이

                    왼손잡이 ... 오른손잡이의 반대가 됩니다.

 

-찍고당기는괭이 ... 오른손잡이 ... 왼손으로 자루의 끝을 잡고 오른손은 왼손에서 어깨너비의 위치를 잡으며, 괭이로 흙을 1 또는 2회 정도 파고 날 부분에 흙을 얹어 오른쪽으로 흙을 북돋아 두둑짓기를 행합니다. 발은 두둑 너비로 벌리고 오른발을 앞으로, 왼발을 뒤로 하고서 후퇴하면서 북돋우기를 합니다. ... 목욕통 괭이, 삽괭이, 창문괭이를 사용합니다.

                              왼손잡이 ... 오른손잡이와 반대로 합니다.

 

-당기는괭이 ... 오른손잡이, 왼손잡이 ... 찍고당기는 괭이에 준합니다. ... 목욕통 괭이, 삽괭이, 창문괭이를 사용.

 

*괭이자루의 잡는 위치와 발의 위치 관계

경운(논밭) ... 주로 쓰는 손은 괭이자루의 끝에서 어깨너비를 잡고, 다른 손은 괭이자루의 끝을 잡아 고정합니다. 괭이의 날 부분이 흙에 꽂히는 시점에는 주로 쓰는 손은 끝을 잡은 손과 가까이 인접해 있습니다. 또 괭이를 휘두르는 시점에는 주로 쓰는 손을 어깨너비의 위치로 되돌려 휘두릅니다. 즉, 주로 쓰는 손은 내리꽂을 때마다 다른 손과의 사이를 왕복하며 움직입니다. 

두발의 위치는 경운 진행방향으로 어깨너비의 1.5배로 벌리고 평행하게 섭니다. 괭이는 순차적으로 120cm 정도의 너비로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또는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한 괭이씩 경운합니다.

이외에 오른손잡이는 논의 경운에 빗츄 괭이를 사용하는 경우, 두둑 3개를 기준으로 왼쪽의 4번째 그루를 일으켜 뒤집고, 다음으로 오른쪽의 2번째 그루를 일으켜 뒤집습니다. 이렇게 연속하며 전진하기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옵니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와 반대로 시작점으로 되돌아와 전진합니다. 

또한 1년 내내 물이 있는 논의 경운 방법으로, 두둑 4개를 기준으로 왼쪽 그루를 1그루씩 뿌리부터 자르며 2그루를 하나로 겹쳐 앞쪽으로 북돋으면서 전진합니다. 오른쪽 그루도 똑같이 합니다.  이 작업의 그루 북돋우기는 왼쪽과 오른쪽을 교대로 행하기 때문에 주로 쓰는 손의 지점이 바뀌어 양손잡이가 아니면 효율적으로 경운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사용되는 괭이는 목욕통(치바현 도가네시東金市에서는 갑페라カッペラ라고 부름) 괭이입니다. 

갑페라

 

 

두둑짓기, 북돋우기(밭). 주로 쓰는 손은 경운의 자루 쥐는 법과 동일하지만 다른 손과의 사이를 왕복하는 건 별로 없고 거의 고정됩니다. 오른손잡이는 오른발을 두둑짓기가 종료된 고랑의 앞쪽에 놓습니다. 다른 발은 고랑을 교차하는 위치에서 오른발에서의 보폭과 같은 위치에 놓습니다. 즉, 왼발은 괭이 끝보다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고, 두둑을 넘은 자세로 후퇴합니다. 

오른손잡이는 흙으로 오른쪽에 북돋우기를 하고, 한 두둑을 마칠 때마다 시작점으로 되돌아갑니다. 왼손잡이는 왼쪽으로 북돋우기를 하며 반복해 시작점으로 되돌아갑니다. 요령 좋은 양손잡이는 시작점으로 돌아가지 않고 왕복하여 효율적입니다.

 

두렁치기(논두렁치기) ... 물이 새거나 무너진 두렁은 삽괭이, 목욕통 괭이로 풀 등을 깎아내고, 경운하지 않은 두렁 아래의 벼그루와 진흙(단단할 경우에는 발의 측면에서 가닥을 붙이면 블록 모양을 취하기 쉬움)을 빗츄 괭이로 두렁의 측면과 윗면에 놓습니다. 또, 그 뒷면을 사용해 진흙을 평평하게 하며 벼그루는 진흙 속으로 밀어넣습니다. 그런 다음, 삽괭이 또는 목욕통 괭이의 뒷면을 사용해 진흙을 문질러 평평하게 만듭니다. 맑은 날 작업하면 진흙이 건조해지기 쉬워서 신속해 작업해야 합니다. 만약 마른다면 다리로 물을 끼얹어 수분을 보충해 부드럽게 만든 다음 평평하게 합니다. 

 

 

 

   10.  괭이의 유지

괭이의 수리 ... 괭이의 날 부분은 바탕쇠에 강철을 연결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사용 빈도가 높으면 날끝 양단의 마모는 흙과의 마찰로 서서히 둥글어지고 강철이 사라집니다. 날끝 강철 부분의 너비는 약 9cm 정도입니다. 또한 자갈이 섞인 농지를 갈면 날끝이 자갈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을 경우 대장간에서 오래된 날끝을 제거하고 새로운 강철의 날끝으로 교환합니다. 이를 날걸이(先掛け)라고 합니다(그림24, 25).

그림24 원래 날은 점선까지 있었지만 닳아 없어져 날걸이를 한다

 

 

 

괭이는 신품을 한번 구입하면 날걸이로 수리하며 대대로 이어가게 됩니다. 괭이를 사용한 뒤에는 녹 방지를 위하여 흙을 털어내고, 수분을 제거합니다. 보관은 땅에 세워두지 않고, 벽에 걸대를 만들어 그곳에 걸어놓는 것이 최선입니다. 장기로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철 부분에 기름을 칠하여 녹을 방지합니다. 괭이는 사용하면 사용하는 만큼 번쩍입니다. 녹슨 괭이는 흙일에 나쁘고, 점질 토양에서는 날 부분의 앞뒤, 자루와 날 부분의 연결부 안쪽에 흙이 붙어 작업 효율이 떨어집니다. 달라붙은 흙을 떼어내려면 대나무 주걱 등으로 떼어냅니다. 주걱은 괭이자루의 아랫부분에 철사를 감아서 꽂아놓습니다(그림26). 또 괭이의 사용자가 허리에 끈을 매고 그 끝에 주걱을 묶어 놓습니다.

그림26 흙 제거용 주걱

 

 

 

   11.  갈이용 도구인 발가래(踏鋤)

발가래는 뒤지개에서 발달한 도구입니다. 뒤지개 끝부분의 너비를 넓힌 도구입니다. 뒤지개는 씨뿌리기, 옮겨심기, 수확 등에 사용하는데, 발가래는 뒤지개의 기능 이외에 경운, 흙의 이동, 구멍 파기, 주걱 등으로도 사용합니다. 발가래는 자루와 날판 부분이 일체이고 그 자루의 각도는 180도-160도이며 손잡이가 자루에 접합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고우슈江州 가래(오우미近江의 나라), 교우京 가래 등이라 불렸습니다(그림27). 발가래는 현재의 가늘고 긴 삽에 해당합니다. 자루와 목욕통이 일체화되어 그 끝에 날을 끼웠습니다. 이 형태의 발가래는 주로 습논의 경운, 배수용 도랑 파기 등에 사용됩니다. 또 나무 심을 때 옮겨심기, 캐기, 구멍 파기 등에도 쓰입니다. 사용법은 가래날의 어깨 부분을 발로 밟으면서 날끝을 흙에 찔러넣고, 자루 끝의 손잡이를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비틀며 앞면으로 쟁기를 넘어뜨립니다.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순차적으로 이동하고, 후퇴하면서 사용합니다. 날판 부분은 길이가 40-50cm이고 깊이갈이할 수 있습니다. 시가현滋賀県의 코토湖東에서는 고우슈 가래라 부르며 남자가 논을 경운하는 면적은 하루에 150평이었습니다. 이 지방에서는 경운을 깊이갈이, 거친갈이, 써리기의 3단계로 나누어 각각 발가래, 빗츄 괭이, 고무래(柄ぶり)로 행합니다. 그 뒤 말린풀(마른풀, 풋거름 등)을 갈아 넣습니다. 따라서 이 땅에는 평년작으로 300평당 10가마의 수확을 올린다고 합니다.

그림27 발가래

 

 

나막신 빗츄 가래

충적지의 논 경운에 사용합니다. 날판 부분의 길이는 60cm, 날 너비는 24cm, 자루 길이는 60cm, 날판 부분은 44cm. 날판 부분을 흙에 꽂아넣습니다. 

오른발 또는 왼발로 옆의 밟는 부분인 길이 60cm의 끝부분(나막신을 고정)을 밟고, 자루를 앞으로 끌어내리면서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비틉니다. 즉, 지레의 효과입니다. 여성도 깊이갈이하기가 쉽습니다(그림28).

그림28 나막신 가래

 

 

 

 

발가래

발가래는 밭의 전면을 경운할 때 사용합니다. 자루 각도는 60-20도. 자루 길이는 110-230cm. 날판 부분의 길이는 80-110cm. 날 너비는 15-27cm. 날끝은 주물 또는 강철을 사용합니다. 자루와 날판 부분은 자루와 턱을 괴는 곳, 새끼줄(철사)로 고정합니다(그림29, 30).

그림29 여자아이의 발쟁기

 

그림30 개량 발가래

 

사용방법은 오른손잡이는 오른발로 날판 부분의 오른쪽 어깨를 오른발로 밟고, 오른손은 자루의 앞쪽을, 왼손은 자루의 뒷쪽에서 어깨 위치의 높이로 쥐고 흙에 밟아 넣습니다. 자루를 앞쪽으로 밀어올리고 왼쪽으로 뒤집습니다. 

왼손잡이는 발쟁기의 쥐는 방법, 뒤집는 방법도 오른손잡이와 거꾸로입니다. 작업 자세는 거의 똑바로 서서 하기 때문에 다른 괭이에 비해 피로가 덜합니다. 자루괭이, 큰괭이, 주조 괭이, 손괭이, 삽, 텐가天鍬 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가래(타니히키谷引き, 텐가, 두둑짓기畝立て, 겐고헤에源五兵衛<사츠마> 가래, 통자루가래ずんがら鋤, 인걸이二挺掛け)

자루의 길이 150-180cm, 가래판의 길이 40-90cm, 한 줄기의 가래판 너비 9-15cm, 두 줄기의 가래판 너비 35cm, 용도는 사양토, 사토 지대의 밭 경운, 두둑짓기, 사이갈이 등에 손잡이를 쥐고, 후퇴하면서 사용합니다(그림31).

그림31 <농구편리론>에서

 

<참고문헌>
飯沼二郎, 堀尾尚志, <ものと人間の文化史 「農具」 > 1976년 재단법인 法政大学出版局
菊池俊彦, <図譜江戸時代の技術上> 1988년 주식회사 恒和出版
熊本日日新聞社編集局編集, <農魂 熊本の農具> 1977년 熊本日日新聞
東京農業大学図書館標本室 소장, <古農器具類写真目録> 1978년 東京農業大学図書館
埼玉県立歴史資料館, <麦作りとその用具> 1985년
長野県教育委員会 편집, <信州の民俗> 1969년 第一法規

 

 

참고

 

-일본 괭이의 변화상

 

 

-일본의 괭이별 날의 너비와 자루의 각도

 

-일본의 발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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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대평리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의 농기구 돌괭이. 길이는 24.4cm라고 한다. 






다음은 경남 산청에서 출토된 돌낫. 반달 돌칼과는 다른 형식으로 출토량은 적지만 한반도 전역에서 고르게 나온다. 날은 양쪽에서 갈아서 다듬었는데 안쪽으로 약간 휘어져 들어가 있어 끌어당기며 베는 데 적합하다. 길이는 보통 20-25cm 정도, 두께는 1cm 정도.





청동기 시대의 돌낫을 재현한 모습을 보면 상당히 정교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도구를 만든 이유는, 당연히 이런 도구가 매우 필요했기 때문이겠다. 돌낫의 길이 약 25cm, 자루를 포함한 전체 길이 48cm.




이상 사진은 모두 한국고고학콘텐츠연구원의 것이다. http://blog.daum.net/plascamp/655?fbclid=IwAR1aLFSIUpE4yYTs7egF5Je9wU6JS_uSx4CJAedBRVC3u_0YegCQ8IAbK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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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농민대회에서 '모터 달린 호미'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여, 이걸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혹시 외국에는 없을까 찾아보았다.

호미라는 형태가 조선만의 독특한 농기구이니 그보다 보편적인 괭이를 검색어로 하여 찾으니, 생각보다 많은 제품들이 나온다! 내가 이 땅 조선에 태어난 것이 한이로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저런 농기구를 손쉽게 구입해서 사용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모터 달린 호미는 없지만, 모터 달린 괭이는 많다. 우리도 이제 농부병의 주원인인 쪼그려앉아 일하는 관습을 버리자. 호미를 버리고 괭이를 쓰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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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있는 직업 대장장이. 

농기구를 사려고 철물점이라도 가면 값싼 중국산 호미와 낫이 차고 넘친다.

좋은 농기구를 구하고자 지방의 장터에 아직 남아 있는 대장간을 찾아가도 썩 마음에 드는 농기구를 만나기란 어렵다.


10년 전쯤인가, 농사짓는 사람들과 함께 일본으로 유람을 간 적이 있다.

모두들 일본 농기구에 뿅가서 몇 개씩 사들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때 사온 농기구는 특별히 벼르는 일이 없어도 아무 문제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저 일본의 쇠를 다루는 기술과 그걸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부러울 뿐이다.


아래 글을 보면 일본 대장간의 사정도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규모의 대장간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울 뿐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라. 한국에서 이런 곳을 찾을 수 있는지... 없다는 데에 500원 건다!


아무튼 글 말미에 나오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농사짓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다.

역시 사람은 바닥을 쳐야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한국도 2008년 광우병 사태 이후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확 높아진 기억이 난다.

또 다른 전환점이 다가오겠지. 그날이 오든 안 오든 난 오늘도 씨앗을 뿌리고 가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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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사토시 아이다 씨의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수많은 일본식 낫과 괭이 등으로부터 이 사람이 범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철제 날 괭이의 나무 손잡이를 들고 그는 “이게 보여요? 이건 야마나시현에서 포도나무의 껍질을 긁는 데 쓰려고 만든 겁니다. 옆에 있는 삼지창은 치바현의 땅콩 재배 농민을 위해 만든 것이고요. 그리고 저기 있는 길고 얇은 날의 농기구는 초봄에 교토에서 죽순을 캐는 데 쓰는 겁니다.” 아이다 씨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는 특정한 목적과 지역, 토양, 계절에 따라 사용하는 약 1만 가지의 농기구가 있다. 


51세의 아이다 씨는 푸른 산의 다락논에서 고품질 쌀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 니가타현 산조시에 있는 소규모 농기구 대장간인 아이다 합동공장의 대표이다. 이 마을은 17세기 이후부터 대장장이들의 공동체로 유명했는데, 지금도 부엌칼부터 분재가위까지 전문적으로 작은 금속을 가공하는 사업의 중심지이다. 오래된 목조건물에 있는 이 공장은 1930년 타다오 아이다 씨의 할머니의 시숙이 되는 사람이 설립했다. 이곳에서는 매년 14만 가지의 농기구와 부품 등을 손으로 제조한다.



모종삽... 그저 아름답다고밖에...



삼지창... 이걸로 땅콩을 캔다고 함. 좋은 농기구를 보면 욕심이 나서 시골 장터에 갈 때마다 대장간을 들르지만, 이런 건 품질은 결코 보지 못했다. 부럽다.



손낫... 이런 거 하나 정말, 꼭 갖고 싶다.



바깥의 조용한 골목을 지나 들어서니, 공장보단 농가처럼 보이는 작업장이 나타난다. 1층짜리 농촌의 민가 양식(전통적으로 농민들이 거주하던 형태)의 기와지붕을 인 높은 천장을 지닌 60평 규모의 이 건물은 약 70년 전에 지어졌다. 작업장 안은 재료와 기계로 정신이 없었다. 


대장간의 일꾼들 —귀마개와 고글을 끼고, 이마에는 땀을 닦는 수건을 묶었다— 은 부지런히 타고 있는 석탄 위에 금속을 녹였다. 40년 된 빛이 바랜 회녹색 기계들, 먼지 낀 시계, 어울리지 않는 의자와 주문을 가득 적어 놓은 칠판이 70년 된 농기구 제조 작업장을 대변하고 있다.


꼼꼼함과 정밀함에 전통 공예를 융합하여, 17명의 직원 —20세부터 77세까지— 이 4천 종의 다양한 농기구를 생산한다. 각각의 농기구는 일본열도의 산악 지형부터 토양, 기후, 작물의 종류에 따라 알맞게 만들어진다. 그들의 모든 작업을 잘 보여주는 것은 약 3500가지의 괭이이다. 봄철 죽순을 캐는 데 쓰는 괭이부터, 남성용 전통의상의 외투인 톰비와 비슷하게 생겨 그 이름으로 불리는 가벼운 종류의 괭이까지 다양하다.


각 농기구는 단순하고 기능적이다. 일본의 나무 손잡이는 카시라 불리는 떡갈나무로 만들어진다. 날카로운 날의 강철과 쇠날은 왜 그 옛날 닌자들이 농기구로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일꾼들은 우뚝 솟은 기계로 가득 찬 비좁은 방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좀 더 넓은 옆방으로 이동하기 전 농기구의 형판을 자르면서 일을 시작한다. 여기에서 그들은 집게로 뜨거운 석탄 위에 있던 금속을 집어 커다랗고 시끄러운 자동 망치 기계에 두들겨 멋지게 농기구를 만든다. 


옆방은 더 조용하다. 여기에서 일꾼들은 나무의자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 금속을 연마하여 날카롭게 날을 간다. 마지막으로 미리 구입한 나무 손잡이에 농기구를 끼운다. 


이러한 농기구는 평생 쓴다. 공장에서는 해마다 수천 개의 농기구를 수선하기도 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수요가 줄긴 했지만, 새로이 젊은 농부들이 농기구를 찾기 시작했다.



총 17명의 직원 가운데 쇠를 연마하는 3명의 직원.



공장의 설립자이자 현재 사장인 사토시 아이다 씨의 삼촌 타다오 아이다 씨. 




“농기구는 오래 사용할수록 주인의 몸에 맞게 길듭니다”라고 금융 판매원을 하다가 28세부터 이 사업을 시작한 아이다 씨가 설명한다. 


아이다 씨가 채소농사용 괭이를 집어들어 날을 살피자, 그의 근육질 팔뚝이 20년 넘는 대장간 일로 잔뼈가 굵은 그의 경력을 알 수 있게 한다. 


“농기구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아요”라고 그는 말한다. “연륜과 체력과 기술이 필요해요. 농기구 만드는 법을 배우는 데에 10년 정도 걸리죠.”


최근 공장에서는 새로 작은 공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경제적, 사회적 요구의 변화를 반영해 제품을 다각화하여 정원용 도구를 제조하는 기계를 들일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농민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는 한편, 대량으로 생산된 중국산 제품과 경쟁해야 한다. 


거기에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며 농민들의 수요가 급락했다. 한때 농산물로 유명했던 일본 북동부 현의 생산 —과 그에 대한 수요— 가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로 확 떨어졌다.



공장 입구. 상호는 아이다 합동공장.



타다오 씨의 부인 에미코 아이다 씨.



사무실에 전시되어 있는 괭이, 낫, 쇠스랑 등의 모습.




그러나 재해의 여파 속에서 새로운 유형의 농부가 나타났다. 아이다 씨는 방치된 농지를 개간하여 직접 농사짓는 일본의 젊은이들의 농기구에 대한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핵발전소 사고 이후 바뀌었어요” 그는 말한다. “식품안전에 대해 엄청 신경을 쓰고 있죠. 사람들은 안전한 과일과 채소, 쌀을 먹고자 해서 스스로 자기 먹을거리를 재배하기 시작했어요.”


현재 20살짜리 조카에게 대장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아이다 씨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람은 늘 먹어야 살 수 있을 겁니다. 농기구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라고 덧붙인다.




http://modernfarmer.com/2013/09/pitchfork-perfect/?utm_source=rss&utm_medium=rss&utm_campaign=pitchfork-per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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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풀이 싫다. 아무리 뽑아도 풀은 계속 난다. 제초제 없이 풀을 없애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답: 유기농업에서 풀을 제어하는 최고이자 유일한 방법은 물리적인 것이다. 괭이 또는 손으로 풀을 뽑아라. 한 가지 최선의 방법은 작물을 심기 전에 미리 깨끗이 매는 것이다. 그래도 10~15일 뒤에는 풀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장담할 수 있다. 풀 때문에 정말 상황이 안 좋다면, 작물을 심기 전에 풀을 제거해라. 풀이 나기 시작할 때 쟁기질하고 두둑을 짓고 물을 대고 긁어낸 다음 작물을 심어라. 특히 풀이 너무 무성한 곳에서는 작물을 심기 전에 몇 번에 걸쳐 풀을 제거한 다음 심으라고 권하고 싶다. 

문: 풀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왜 풀은 우릴 내버려두지 않는가?

답: 풀 씨앗은행 저장소라는 말이 있다. 흙이 바로 그것이다. 흙에는 풀의 씨앗이 가득하여 끝없이 공급된다. 황당하지. 보통 명아주나 아마란스, 쇠비름 같은 풀의 씨앗은 40~80년 동안 흙속에서 휴면상태에 있다가 싹이 나기도 한다. 

지나친 의인화일 수도 있지만, 풀은 똑똑하다. 민들레 씨앗 같은 것은 바람에 날린다. 어떤 씨앗은 포유류의 털에 달라붙게 생기기도 했다. 사람에게는 양말 같은 데 붙는다. 그들이 씨앗을 퍼뜨리는 전략은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다. 그들은 흙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조건이 모두 좋거나 토양이 활성화되었을 때 —일명 네가 농사지을 때— 자라기 시작한다. 흙을 갈면 토양에 공기가 통하고 빛이 들어가고 물을 머금는다. 이러한 것들이 풀의 성장을 자극한다. 아마란스나 명아주는 보름달의 빛처럼 적은 빛으로도 싹이 튼다. 그래서 다른 요인이 없더라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싹이 트는 것이다. 

문: 좀 무시무시하다. 나는 우리 발 아래에 있을 똑똑하고 강력한 풀의 군대가 떠오른다. 지금 나에게 늑대인간 풀이라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답: 맞다, 좀 무시무시하다. 풀은 작물보다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대조적으로 작물은 멍청하다. 풀은 더 똑똑하고 강하며,  귀여운 상추를 드잡이하려고 오고 있다. 

문: 두둥…. 그럼 우린 씨앗은행에 관해 별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텃밭에 풀이 자라는 걸 최소화할 수 있는가?

답: 더 많은 풀이 나도록 기여할 수도 있다. 그러니 풀이 씨앗을 맺도록 하지 말라. 그들은 빨리 싹이 터서 크게 자라고, 얼른 성숙하여 일찍 씨앗을 맺는다. 그렇게 놔두지 말라. 제거하여 아직 씨앗이 맺히지 않았다면 퇴비더미에 넣어라. 풀은 영양을 순환시키는 좋은 거름의 재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풀에 씨앗이 맺혔는지 확인하라. 퇴비에 씨앗이 들어가면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씨앗이 맺히지 않았으면 괜찮을 테지만, 씨앗이 맺혔으면 결국 텃밭에서 자랄 것이다. 물론, 풀을 최소화하는 또 다른 방법은 괭이 또는 양 손을 이용해 김을 매는 것이다. 

문: 괭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왜 그걸 권하는가?

답: 맞다! 괭이는 중요하다. 풀이 처음 났을 때, 내가 좋아하는 도구는 제초괭이이다. 그건 좁고 날카로운 날이 달려 있으며, 서서 사용하도록 만들어졌다. 이 괭이를 가지고 어린 풀을 잡을 수 있다. 풀이 땅을 뚫고 나온 지 2~3일 뒤, 흙을 찌르면 작고 하얀 풀의 줄기가 보일 것이다. 이때는 괭이로 흙을 살살 긁기만 해도 잡을 수 있다. 이 괭이는 구식 삼각날의 괭이와 달리 흙을 너무 뒤집어엎지 않는다. 


위 사진의 가운데가 바로 제초괭이. 왼쪽은 한국에서 딸깍이라 불리는 풀을 매는 도구이고, 오른쪽이 구식 삼각괭이인 듯함.


유투브에 제초괭이를 사용하는 좋은 영상이 있다. 물론, 나이든 사람이 김매는 모습이 조금 지루할지도 모르지만 정말 멋지다! 쉬워 보이지만 요령이 필요하다. 우린 그렇게 쉽게 하지 못한다. 우린 아마 상추까지 긁어버릴지 모른다. 

다음 단계는 딸깍이 괭이이다. 이 괭이는 앞뒤로 움직이면서 다음 단계까지 자란 풀을 제거하는데, 흙을 조금 파헤친다. 약간 더 파괴적이지만 잘 작동한다. 

구식 삼각괭이 가운데 하나를 사용하려 한다면, 아마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 것이다. 물론 일하면서 짜증 좀 날 것이다. 

어떤 도구를 사용하든 느낄 좌절감의 하나는 마음먹은 곳에 제대로 쓰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작물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도구를 손에 익히는 수밖에 없다. 밭이 양토라면, 말 그대로 괭이로 흙을 마사지하듯 할 수 있다. 그럼 어떤 도구를 쓰는 것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제초괭이에는 호미처럼 자루가 짧은 것도 있다. 

문: 짧은 자루의 괭이가 지닌 부정적인 면도 언급해야 한다. 1975년 농업노동자 권리운동(el cortito)으로 캘리포니아에서는 짧은 자루의 괭이 사용을 불법화했다. 농업노동자에게 고통과 부상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답: 맞다, 그건 잔인했다. 그러나 이 맥락에서, 텃밭 농부나 소농이라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호미 종류는 현명하게 사용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문: 그럼 어떻게 텃밭 농부가 제초를 잘할 수 있는가? 이야기가 끝났는가?

답: 아니다. 텃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는 손으로 김을 매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땅에 가까이 다가가 김을 매면, 흙을 느끼면서 전체를 관찰할 수 있다. 그렇게 텃밭의 여러 측면에 대한 좋은 통찰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떤 일을 하고 하지 말지 알 수 있다. 나의 고인이 된 훌륭한 텃밭 농부 Hardy Hansen은 텃밭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여보게, 자네는 좋은 사람을 알 수 있네, 좋은 사람은 자신의 손과 무릎을 굽혀 풀을 매기를 두려워하지 않아. 그들은 그걸 좋아하네.” 손으로 김매기는 텃밭 농부들에게는 용기의 증표 같은 것이다. 

문: 난 손으로 김매는 걸 좋아한다. 자리에 앉아 명상을 하듯 한다. 

답: 그렇다, 그게 명상일 수도, 고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랑의 끝에서, 두둑의 끝에서 이런 느낌을 받는다. 돌아서서 바라보고는 꽝! 그렇게 해봐라. 그럼 당신이 만든 과정을 볼 수 있다. 

문: 그렇지 않으면 화염방사기를 메고 불태울 수도 있다. 

답: 맞다, 개인의 안전이나 화재의 안전이란 측면에서 최고의 방법은 아니지만 확실하긴 하다. 불로 태울 수도 있다. 이건 전쟁이다. 무기를 뽑아들고 공격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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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여러 장의 사진을 마련했습니다. 좀 길지만 재밌게 봐 주세요. 우리의 농기구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비슷한지 보시면 재밌을 겁니다.

 

먼저 아래의 사진은 수확용 농기구입니다.  

 

가장 위의 명찰은 '가루카마', 곧 베는 낫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왜낫이라 부르는 그 종류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왜낫보다는 자루가 더 긴 듯합니다.

그 다음은 주걱이란 뜻의 '헤라'입니다. 설명서를 보면 대나무로 만들어 이삭을 자르는 데 쓴다고 합니다. 이삭을 자르는 대나무칼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삭만 자르기도 하는 조나 기장을 수확할 때 쓰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니면 적은 양의 벼를 수확할 때도 썼을 수 있겠습니다.

다음은 '야스리'입니다. 많이 들어보셨지요. 무엇을 가는 데 쓰는 줄입니다. 이걸로 앞에 본 대나무 주걱 등의 이삭용 나무칼을 갈았다고 하네요.

맨 아래에 있는 것도 이미 설명한 주걱입니다.

 

다음은 밥그릇과 같은 다양한 공기입니다. 우리랑 발음도 비슷해서 '고키'라고 부릅니다. 혹시 한반도에서 넘어간 문화의 흔적은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이 사진은 일본의 지게입니다. 솔직히 이걸 발견하고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 지게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한 도구인지 알았거든요. 미군이 한국전쟁 때 A프레임이라며 감탄했다느니, 세계에 이런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운반도구가 없다느니 하는 말에 혹~했지 뭡니까. 이제 그런 우월성이랄까 그런 걸 벗어 던져야겠습니다. 세상에는 나만 잘난 건 없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쓰면 저기서는 저기에 맞게 저렇게 쓸 뿐...

 

 다음은 괭이입니다. 왼쪽의 것은 부대밭을 경작할 때 쓴다는 넓은날 괭이입니다. 오른쪽의 것도 부대밭을 갈 때 쓰는데, 날이 좁은 걸로 봐서 돌이 좀 있는 곳에서 쓰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특히 이 구마모토 지역은 화산토로 이루어진 곳이라 흙이 부슬부슬합니다. 그 때문인지 우리의 괭이가 주둥이가 뾰족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 특이합니다.

 

 

다음은 오른쪽부터 쟁기와 '아와마키', '데스키', '츠치이레'라는 농기구입니다.

쟁기는 워낙 유명하니 다들 아실 테지만, 가만히 보면 흙밥을 한쪽으로 넘기는 역할을 하는 볏이 나무로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예 처음 만들 때부터 일체형으로 한 것인지, 다른 나무를 깎아 만들어서 붙인 것인지는 가까이 다가가서 보지 못하여 아쉽게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볏을 쇠로 만들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런 형태는 처음 보았습니다.

다음 '아와마키'는 글자 그대로 풀면 '조를 감음'이란 말입니다. 조를 뿌린 다음에 이걸로 흙을 긁어서 덮는 데 쓰는 농기구입니다.

'데스키'는 밀, 보리나 채소를 기를 때 이걸 써서 고랑의 흙을 퍼서 뿌리에 북을 주는 데 씁니다. 우리나라에는 따로 이런 농기구가 있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호미나 괭이, 아니면 후치로 사이를 갈아서 했을 일입니다. 아래 사진으로 조금 더 자세히 보시죠.

 

마지막으로 아래는 '츠치이레', 곧 흙넣기라는 농기구입니다. 이건 제가 번역하고 있는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에도 자주 나옵니다. 이것 때문에 뭔지 몰라서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지 모릅니다. 결국 인터넷이란 문명의 이기에 도움을 받아 일본사이트를 뒤지고 헤맨 끝에 찾았지요. 찾고 나서도 뭐라고 번역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습니다. 지금도 정확히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잠깐 쓰이다 사라졌기에 그렇습니다. 아무튼 이건 밀, 보리 농사를 지을 때 잘 자라도록 고랑의 흙을 퍼올려서 밑동에 북을 주는 데 쓰는 농기구 입니다. 앞의 뾰족한 부분을 통해 흙을 퍼 올린 다음, 망이 있는 부분에 올라온 흙을 밀, 보리 위에서 탁탁 털면 절로 밀, 보리 위로 떨어져 북을 주는 원리가 아닐까 합니다.

 

위의 사진의 농기구는 콩을 심는 파종기입니다. 저 통에 콩을 넣고, 주둥이를 땅에 푹 쑤셔 박은 다음 흔들거나 하여 또로록 콩을 흘려 넣었을 겁니다.

 

다음은 위에서부터 '옹바',  '야마코',  '오코'라고 부르는 농기구입니다. 야마코와 오코는 전체의 모습이 나오지 않았으니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그냥 대충 설명하자면, 짐을 나르는 도구인데 양쪽에 물건을 매달고 등에 지는 도구입니다. 물통 옮기는 모습을 떠올리시면 될 겁니다.

옹바는 곡물을 탈곡할 때 이걸로 두드려서 껍질을 벗기는 농기구라고 합니다. 저는 처음에 생김새만 보고 흙덩이를 부수는 데 쓰는 줄 알았는데, 일본의 흙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떠올리고는 그렇구나 했습니다.

 

다음은 망태기입니다. 일본에서는 '후고'라고 부르네요. 

 

키와 씨앗을 담아 놓는 통입니다.  

 

이게 아주 재밌는 농기구입니다. 우리의 도리깨와 똑같은데, 오른쪽에 통나무를 달아 놓은 것은 콩이나 팥을 떨 때 쓰는 것이고, 왼쪽의 것은 일반적으로 쓰는 도리깨입니다. 용도에 따라 도리꺠를 달리 썼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냥 하나로만 다 하는데 말입니다. 

 

풍구와 매통입니다. 풍구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농기구의 하나입니다. 날려고르기를 하는 데 쓰는 것이죠. 매통은 곡물의 껍질을 벗기는 데 쓰는 농기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쓰던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들어온 홀태 또는 그네라는 농기구입니다. 일본 이름으로는 千齒라고 하여 이가 많다는 뜻으로 불렸습니다. 이게 들어왔을 때 작업효율은 기존에 하던 방식에 비해 훨씬 좋은데, 상하는 벼나 덜 떨리는 것이 많이 생긴다고 하여 꺼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건 벼를 베는 데 쓰는 낫입니다. 벼베기 전용 낫이라고 할까요. 벼 베는 데 맞게 특화된 것인가 봅니다. 낫의 날을 보면 톱니를 넣어 놓아 줄기를 쉽게 벨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세심한 일본인의 특성이 이런 농기구에서도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건 '오테'라고 부르는 농기구입니다. 아래의 사진과 한 묶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벼에 벌레가 생기면 먼저 아래의 도구로 물에 훅훅 석유를 뿌립니다. 그럼 논물 위로 기름막이 형성됩니다. 거기에다 이 오테라는 도구라 벼를 휙 쳐서 거기에 붙은 벌레들을 기름막에 떨어뜨려 죽이는 농기구입니다. 지난 여름 산청에 임봉재 선생님을 만나고 왔을 때, 거제에서도 석유를 이용해 벼에 생기는 벌레를 죽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는 그냥 석유를 깡통에 넣어 허리에 차고 숟가락으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더 효과적으로 그 일을 했네요.

 

 

 아래의 사진은 써레입니다. 우리의 써레와 이도 좀 다르고, 형태도 좀 다릅니다.

 

마지막으로 구마모토 특유의 괭이인 거름뒤집는 괭이입니다. 설명을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괭이는 사용하는 토지에 따라서 여러 형태를 가집니다. 구마모토의 화산재 토지에서는 특색 있는 거름뒤집는 괭이를 썼습니다. 그 형태는 잛은 자루에 폭이 넓은 날을 붙인, 자루와 날이 이루는 각도도 매우 작습니다. 사람들은 대지에 발을 버티고 서서, 허리를 구부리고 힘껏 괭이질을 합니다. 기어가는 듯한 모습으로 일해서 '기는 괭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뭐라 하든 메마른 '검은 머슴'을 깊이 가는 데에는 가장 쓰기 좋은 괭이입니다."  

아무튼 자루도 짧고 각도 작아서 이걸 쓰려면 허리 한 번 제대로 펴기 힘들었을 듯합니다. 아니면 산비탈에서 썼다면 오히려 편했을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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