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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간이 섭취하는 주곡을 꼽으면 밀, 보리, 벼, 옥수수 등으로서, 이는 모두 한해살이 식물에 해당됩니다. 즉, 사계절이란 1년 안에 1번만 농사가 이루어진 뒤 이듬해에는 다시 씨앗을 파종하거나 모내기를 해야 하지요. 그런데 최근 농사로 인한 기후변화의 책임이나 환경 파괴 등의 문제에 주목하며 여러해살이 곡식을 개발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토지 연구소(Land Institute)라는 곳이 유명합니다. 이 연구소에서는 개밀(Thinopyrum intermedium)로 알려진 벼과 식물을 이용해 컨자Kernza라고 하는 여러해살이 곡식을 육종해 보급하고 있습니다. 이 여러해살이 곡식 작물을 재배함으로써 토양에 덮개를 제공해 토양침식을 크게 줄이고, 자연생태계와 유사한 농업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 여러해살이 작물의 뿌리가 계속 토양에서 성장하며 여러 이로운 토양미생물을 번성하게 합니다. 즉, 그를 통해 해마다 되풀이되는 경운 작업을 피할 수 있지요.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을 통해 대기 중의 많은 탄소를 땅속으로 격리시켜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데에도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그림1 일반적인 한해살이 밀과 여러해살이 밀인 컨자의 뿌리 차이. 컨자의 뿌리는 그림처럼 땅속으로 깊고 풍성한 뻗어 여러 생태학적 이로움과 함께 기후변화 완화의 효과를 제공한다.




또 다른 사례는 가까운 일본에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카나가와현에 살고 있는 농민 오가와 마코토小川誠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분은 우리에게 익숙한 곡식인 벼를 여러해살이로 재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상상이 되나요, 벼가 여러해살이라니요? 벼는 해마다 새로 모내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오가와 씨가 여러해살이 벼를 농사짓게 된 건 이러했다고 합니다. 일본도 한국처럼 저출산 고령화의 직격타를 맞아 농촌에는 장기간 방치된 농경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약 20년 정도 장기간 방치된 휴경지를 2007년부터 빌려 벼농사를 짓게 되었답니다. <세상을 바꾸는 기적의 논>(살림, 2012)의 저자인 故 이와사와 노부오 씨의 벼농사처럼 ‘무경운’과 ‘겨울철 담수’를 실천하는 벼농사를 짓던 와중에, 지난해 베어낸 벼의 밑동에서 봄이 되면 새싹이 나와 자라는 데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래서 6년 전인 201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여러해살이 벼농사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림2 여러해살이 벼농사를 시도하고 있는 일본의 오가와 마코토 씨


그림3 겨울철 담수를 실천하는 오가와 씨의 논에서는 사진처럼 붓뚜껑말(Oedogonium) 같은 조류가 번성한다.



겨울에도 논에 물을 대어 놓아 여러 미생물과 수생동식물이 번성하며 월동하고, 무경운을 실천하기에 벼의 뿌리가 계속 살아 있으면서 그 세력을 확장해 벼가 지닌 본래의 힘이 발휘된다 합니다. 벼를 베어낸 지상부는 누렇게 시들어도 땅속의 줄기와 뿌리는 살아남아 계속 성장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3-4월이 되면 새로운 싹이 돋아 새로 모내기를 하지 않아도 여러해살이 식물처럼 계속해서 이삭을 맺게 됩니다.




그림4 월동한 벼의 밑동에서 봄이 되어 올라온 새싹의 모습


그림5 본격적으로 새끼치기에 들어간 여러해살이 벼의 모습.



밑동에서 자란 새싹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싶지만, 벼가 지닌 새끼치기 능력이 십분 발휘되며 새로 모내기한 것보다 오히려 더 일찍 세력이 좋게 자란다고 합니다. 하나의 밑동에서 보통 3배 이상의 줄기가 새끼치기를 하게 되어, 수확량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고 합니다. 모내기한 벼와의 차이점이라면, 여러해살이 벼는 그보다 빠른 7월부터 이삭이 패기 시작해 차례대로 계속해서 이삭이 팬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수확 작업이 마지막에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8월부터 10월까지 몇 번에 걸쳐 행해져야 합니다. 오가와 씨 본인은 이삭만 따는 작업을 2번 한 뒤, 10월 말쯤 완전히 벼를 베는 작업을 합니다. 여기서 잠깐, 벼의 이삭만 따는 수확은 고대부터 행해진 전통적인 농법이긴 합니다. 다들 잘 알고 있는 반달돌칼이 그 작업에 특화된 도구이지요. 동남아시아 일대의 소수민족들은 아직도 그러한 방식으로 벼를 수확하고 있습니다.


(반달돌칼로 이삭을 따는 수확 작업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http://blog.daum.net/plascamp/655?fbclid=IwAR1aLFSIUpE4yYTs7egF5Je9wU6JS_uSx4CJAedBRVC3u_0YegCQ8IAbKec)



그림6 모내기와 여러해살이 벼의 6월의 모습


그림7 여러해살이 벼는 사진처럼 순차적으로 이삭이 팬다. 그래서 기계화는 어렵지만, 다른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무경운과 겨울철 담수 이외에도 안정된 수온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해살이 벼농사를 시도하는 그의 논은 수온이 1년 내내 거의 15도 정도로 유지된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물속에서 벼의 땅속줄기가 성장하는 건 물론이고 여러 수생동식물이 번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상대적으로 매우 찬 온도(일반적인 논에서는 여름철 수온이 20-25도까지 상승)이기에 여러해살이 벼가 단련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겁니다. 또한 그의 경험에 의하면, 논의 물 깊이도 중요합니다. 겨울에도 5cm 이상 물을 대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듬해 새싹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자연환경에 잘 적응한 토종 벼 품종이 더 유리하다고 합니다. 본인은 카나가와현 사가미하라相模原에 살고 있는데, 그곳의 토종 벼인 희수찰(喜寿モチ)이란 찰벼와 사토지만(サトジマン)이란 메벼를 이용해 여러해살이 벼농사를 짓고 있답니다.


그는 여러해살이 벼농사는 될 수 있으면 인간의 손길을 주지 않는 편이 좋다고 지적합니다. 무경운은 물론, 가능하면 최대한 자연의 힘에 맡겨 쓸데없이 인간이 참견하지 않는 게 관건이라 합니다. 논에는 계속 물을 대 놓기에 풀이 자라기 어려워 김매기의 필요성도 적고, 또 벌레들이 논두렁 등지의 풀을 먹기 때문에 제초 역시 최대한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합니다. 이처럼 여러해살이 벼농사는 기계화가 어려워 농가소득으로 이어지기에는 난관이 많다는 단점은 있지만, 300평에 약 400kg 정도의 수확이 가능해 한 가족의 식량으로는 충분하다고 합니다. 즉, 소규모 가족농의 자급용 농사로 적격이라는 말이지요. 또한 기계를 쓰지 않고, 비료(오가와 씨는 볏짚만 거름으로 돌려줌)나 제초제 등의 농자재도 필요가 없이 생산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물론 못자리 등을 만들고 제초를 하는 노동력도 절감이 되지요. 바로 요즘 한국에서 권장되는 직파 벼 재배의 장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인간과 자연이 지속가능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참고 영상. 여러해살이 벼에 대해 설명하는 오가와 마코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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