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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농업 관련 책을 읽다 보면 마주치는 단어 가운데 하나로 "Agricultural extension"이 있다.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단어를 한국어로 옮기려고 사전을 찾아보고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어 사전에서 Agricultural extension은 "농촌農村 지도指導"라고 번역되어 있다. '指導'가 무엇인가? 바로 어떤 방향으로 남을 가르쳐 이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농촌 지도'라는 말 자체에 이미 무지몽매한 농민을 가르쳐 계몽시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엘리트들의 근대적인 선민의식이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런데 extension이 무슨 뜻인가? 원래의 뜻은 1. (세력, 영향력, 혜택 등의) 확대, 2. 증축, 3. (기간의) 연장, 4. 사회교육 등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기존의 것을 더욱 넓힘으로써, 또는 그렇게 하도록 도움으로써 그 힘을 키운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다. 여기에 전제되어 있는 일종의 '확장되는 주체'들이 지도라는 말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인식에서는 익스텐션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체성, 자율성이란 것은 없다고 전제되기 쉽다. 그저 어리석거나 아직 제대로 모르는 상태의 수동적 객체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농촌 지도라는 말의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 궁금하여 네이버에 검색하니 교육학 용어사전에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농촌지도는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일반 시민에게 대학 교육을 공개한 시민교육(extension education)에서 유래하며, 농촌지도사업은 미국의 코넬 대학에서 교수들이 영농문제 해결을 시도한 것에서 유래한다(agricultural extension service).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식량증산이라는 국가정책으로 행정독려식 지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교육적 계도 수단의 필요에 의하여 발생하였다. 1947년 국립농사개량원, 1949년 농업기술원, 1956년 중앙농업기술원, 1957년 농사원 시대를 거쳐 1962년에 제정된 농촌진흥법을 토대로 농촌진흥청(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RDA)이 발족하면서 현재의 농촌지도사업이 정착되었다."
여기서도 나오듯이 extension은 영국에서 원래 평생학습이나 시민 교육을 하는 사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오면 농사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시도한 '서비스'의 일환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던 것이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군부독재 세력이 당면한 사회적 과제였던 식량 증산을 위한 하나의 사업으로 밀어붙이면서 지도라는 말로 탈바꿈된 것이 아닐까? 상명하복에 익숙한 세력에게 확장이니 확대, 또는 서비스라는 개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50여 년 이상 흘러온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농촌이 자율적 주체들이 스스로의 역량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확장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며 살아가는 공간으로 있는지 어떤지, 나는 그곳에 살지 않기에 무어라 확답하기가 어렵다.
지금도 여러 사람들이 농촌과 농민을 살리기 위한 여러 정책이나 계획들을 논의하고 만들고자 동분서주하는 것으로 안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농촌 안의 개개인들이 자신들이 지닌 자율성과 주체성, 자발성 등을 완전히 깨닫고 힘을 합쳐 발휘할 수 있는지의 여부일 것 같다. 나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 및 여력, 그리고 실패의 경험 등이 주어지면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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