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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대신 <밥의 노래>였으면 어땠을까? 

어릴 때 마루에서 한참을 내려가는 부엌에서 가마솥에다 밥짓는 걸 보면서 자랐다. 가마솥에 쌀을 안치고 가마솥의 뚜껑을 잘 닫는다. 그리고는 나무간에서 나무를 가져다 불을 붙인다. 노간주나무를 불쏘시개로 쓰면 마치 북한군 기관총 쏘는 것 같은 소리가 나서 너무 재밌었다. 당시는 텔레비전에서 '배달의 기수'와 '전우'가 방영되고, 해마다 봄이면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다 죽었다던 이승복 형아에 대한 글을 써서 제출하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나는 집이 산에 있는 덕에 삐라도 많이 주워다 내서 상도 받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센불이 가마솥을 데워 물이 끓으면서 밥알이 춤춘다. 이윽고 가마솥 뚜껑에서는 김이 새어 나오면서 들썩이며 춤을 추기까지 한다. 이제 불을 빼야 한다. 불을 줄이고 은근한 세기로 계속 뜸을 들인다. 가마솥에 흐른 물기는 행주로 훔친다. 그러면서 가마솥을 한번씩 닦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부뚜막은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었다. 밥냄새, 기름냄새, 반찬냄새, 연기냄새, 나를 감싸던 불의 따뜻한 감촉 등이 너무 좋았다. 소죽을 끓일 때면 그 군침도는 구수한 냄새가 정말 좋았다. 나무들이 불에 타며 내는 소리도 좋았다. 덜 마른 나무는 물이 베어나오며 연신 피식피식 소리가 났다. 장작이 따닥 소리를 내며 튀어오르는 소리도 있었다. 부엌의 작은 창으로 들어오던 햇살도 기억난다. 부엌 바닥에 깔리던 연기도 재미났다. 

그러던 부엌과 부뚜막은 어느 날인가 입식 부엌의 형태가 도입되면서 바뀌었다. 아궁이는 이제 소죽이나 물을 끓이는 일 말고는 잘 쓰이지 않게 되었다. 석유 곤로가 먼저 들어왔고, 나중에 가스렌지와 연탄보일러도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궁이에서는 불길이 사라졌고, 부엌을 관장한다던 조왕신도 그렇게 자신의 자리와 할일을 잃고 소멸되었다. 부뚜막의 붇은 완전히 죽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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