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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중학생 때였을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 소풍으로 서울대공원에 갔다. 그리고 마침 그 시기는 파충류 특별전을 하던 때였다. 파충류는 징그럽고 하여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할일도 없고 그냥 뱀이나 구경하자며 갔다.

우리가 찾아간 시간은 뱀들의 식사시간이었나 보다. 사육사가 뱀들의 먹이로 하얗고 눈이 빨간 작은 쥐들을 뱀이 있는 칸마다 넣어주었다.


우리는 뱀들이 한 입에 쥐를 삼키는 장면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흥분에 들떴다. 생각해보라. 소풍의 무료함에 지친 한창 호기심과 혈기가 왕성한 사내아이들에게 그런 장면이 어떠한 자극을 줄지 말이다.


그런데 상상 이상의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쥐들이, 그 하얗고 작은, 쥐라는 걸 걷어내고 보면 참 귀엽고 예쁜 쥐들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기 시작했다. 특히나 약해 보이는 놈은 여지없이 다수의 공격을 받아 피를 흘리며 비틀대다가 결국 동종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때 받은 충격과 공포는 지금도 생생하여 잊히지 않는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러저러한 사건을 보고 들을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뱀의 우리에 넣어진 쥐들 같은 사람들. 극도의 공포와 그로 인한 광기에 사로잡힌 쥐들, 그리고 현재의 사람들이 중첩되어 보인다.

뱀을 공격하여 죽일 순 없고,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은 없으니 약자를 골라 죽임으로써 그를 해소하는 쥐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이 그와 무엇이 다른가?


무섭다. 나도 뱀의 우리 안에 넣어진 쥐의 한 마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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