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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역자 후기가 새로 실리니, 나중에 여기로 가서 책을 삽니다. http://bit.ly/10gOzn5




농업이 문명을 움직인다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봄, 여름마다 농촌활동을 가곤 했다. 그때 우리가 내세운 구호 가운데 하나는 “먹어야 산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인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여,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은 먹을거리를 토대로 성립 수밖에 없고, 그것을 제대로 생산·공급하지 못하면 무너지게 되어 있다. 농업이 문명을 움직이는 것이다.


내가 처음 전통농업에 관심을 계기는 귀농학교를 마치고 2003년에 주말농장을 시작하면서이다.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던 나로서는 농사야말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업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런 방식으로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그렇다면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없던 옛날에는 어떻게 농사를 지었을까?’ 하는 점이 궁금해졌다.


그때 나에게 찾아온 자료가 다카하시 노보루高橋昇라는 일본 농학자의 <조선 반도의 농법과 농민>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고농서와 무척이나 달랐다. 조선시대의 농서보다 더 체계적으로 정리고, 현장을 중심으로 조사 현실감과 생동감을 갖추고 있었으며, 지금에라도 다시 활용해볼 만한 농법들이 눈에 보였다.


그러나 일본어라는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누군가 이 좋은 자료를 번역해 줄 것이라 믿으며 그냥 돌아섰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도저히 내용이 궁금하여 참을 수 없었다. 결국, 1,400쪽에 달하는 자료를 조금씩 복사해서 집으로 가지고 와서 일본어를 공부하며 번역을 시작했다. 다행히 한자가 많이 나와서 그나마 더듬더듬 진행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자료에 나오는 일본어는 옛날 일본말인지라 요즘 나오는 책과는 표현이 조금 다르다.


이 일을 마치기까지 거의 5년 정도가 걸렸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농업을 바라보는 나의 눈도 조금은 열리게 되었다. 내가 깨달은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와 현재의 사회 구조가 변화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농업이 국가의 중심 산업이었지만 현재는 상공업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70% 이상이던 농민 인구가 지금은 6% 이하로 급감했다. 이렇게 농민이 줄어 요인은 과거처럼 많은 사람이 농업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그 이상의 생산량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확 품종이 개발되고, 사람이 직접 손으로 씨앗을 심고 김을 매고 수확을 하던 일을 농기계가 대신한다. 집에서 자급을 위해 재배하던 다양한 작물들은 시장에 내다 팔 몇 가지 품목으로 줄어들고, 규모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이를 통해서 과거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도록 생산량이 증가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들도 존재한다.


먼저, 토종 종자가 사라졌다. ‘토종 종자’는 어느 지역에서 과거부터 재배해오던 작물로서, 그 지역의 기후와 풍토에 잘 적응한 종자를 가리킨다. 환경에 맞게 자란 토종 종자는 그것을 재배하던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다. 토종 종자는 같은 품종 안에서도 일찍 익는 것이 있는가 하면 늦게 익는 것도 있고, 또 가뭄에 강한 것이 있는가 하면 높은 습도에 잘 견디는 것도 있다. 토종 종자들의 이렇게 다양한 특성 덕분에 나쁜 기후 조건이 찾아오더라도 최소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 또한, 토종 종자는 ‘수평저항성’이란 특징이 있다. 이는 다수확에 초점을 맞추어 개량한 종자보다 수확량 떨어지지만, 여러 가지 병해충에는 더 잘 버티는 특성이다. 이에 반하여 ‘수직저항성’을 갖는 개량종은 특정 병해충에는 강해서 수확량을 최대로 올릴 수 있으나, 의도하지 않았던 병해충이 발생하면 전멸할 위험도 안고 있다.


둘째, 다양한 농법이 사라졌다. 다양한 농법의 기초는 바로 종자의 다양성에 있다. 여러 가지 특성을 지닌 다양한 종자를 농사지으면서 그에 맞는 독특한 농법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농부들은 여러 종자를 섞어 기르면서 각 종자의 특성을 이용해 노동력을 덜거나 작물이 더 잘 자라게 했다. 특히 콩을 활용한 농법이 많았다. 예를 들어 옥수수와 덩굴강낭콩을 같이 심어서 옥수숫대가 자연스럽게 덩굴강낭콩의 지주 역할을 하도록 하거나, 콩과 식물이 지닌 질소를 고정하는 기능을 이용해 콩밭에 옥수수나 수수처럼 다비성 작물을 심는다든지 하는 것이다. 밀·보리 같은 맥류의 뒷그루로 콩과 작물을 심으면, 맥류의 타감 작용으로 제초 노력을 덜면서 콩과의 능력 덕분에 땅심을 회복할 수 있다. 이밖에 마늘밭에 상추를 심어 싹이 잘 트고 잘 자라게 하는 것 역시 종자 간의 상호작용을 이용한 농법이다. 이런 다양한 농법이 종자가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셋째, 논밭에서 작물과 함께 살아가던 많은 생물이 사라졌다. 농사를 지을 때 화학비료나 농약 같은 화학물질에 의존하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논은 벼만 자라는 곳이 아니라 물방개, 잠자리라든지, 개구리, 드렁허리, 미꾸라지, 붕어 등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그러한 생명의 공간에 몇몇 해충을 잡기 위해서 농약을 살포하면서, 해충만이 아니라 익충도, 그리고 수많은 생물도 쫓겨나게 되었다. 논은 인간이 원하는 벼만 자라도록 허용된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밭도 원래는 재배하는 작물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수많은 미생물부터 땅강아지, 두더지, 거미, 메뚜기 등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화학물질에 쫓겨서 밭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쫓겨난 생물들이 제공하던 생태 서비스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아직 자세히 모를 뿐이다. 늙은 농부들을 만나러 다니며 “옛날에는 농약도 없는데 어떻게 병해충 문제를 해결했나요?”라고 물으면 열이면 열 모두 하시는 말씀이, “옛날에는 지금처럼 병해충이 심하지 않았어”라는 대답이었다. 본인도 평생 농사지으면서도 요즘처럼 병해충이 심한 건 처음이라고 하신다.


넷째, 농민이 사라졌다. 농민이 사라지면 단순히 농민 한 사람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가 지니고 있는 씨앗과 농법과 경험 등이 한꺼번에 모두 사라진다. 그래서 나이 든 농부, 즉 ‘노농老農의 죽음은 박물관이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도 존재한다. 어찌 보면 늙은 농부는 경험 과학의 총체이다. 한 지역에 오랫동안 머물며 살면서 농사를 지었기에 그 지역 언제 날이 풀리는지, 어느 무렵 비가 자주 오는지, 태풍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흙 성질이 어떠한지, 어떤 농사가 적합한지 등에 빠삭하다. 종자를 받는 방법부터 저장하는 방법까지 농사와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한 경험을 앞서 한 소중한 인적 자원이다. 그러나 과학 영농이 발전하면서 그들의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다. 이제 늙은 농부의 경험보다 해당 분야 전문가의 말이 더 신빙성을 갖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전문가는 교본에 적혀 있는 대로만 아는 사람일 뿐, 지역과 현장에서는 경험 많은 사람의 판단이 더 정확할 때가 많은 법이다.


마지막으로, 농촌이 사라지고 있다. 수많은 농민이 자신이 농사지으며 살던 터전을 떠나면서 농촌은 황량한 공간이 되었다. 이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마을이 허다하며, 농촌에 있는 학교들은 차례로 폐교가 되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노인들만 사는 거대한 무덤과도 같은 공간이 되어 버렸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농촌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의 고령층이 약 34% 정도로 전체 농민 인구의 1/3을 차지한다. 그리고 50대 이상이 약 88%로 장년층이 대부분인 현실이다. 농담 삼아, 농촌에 가면 60대도 청년회 회원으로 활동한다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농담이 아니라 진짜 그렇다. 70대도 80대 눈치를 보며 경로당에 들어간다고 하는 이야기조차 들린다. 정확히 말하면, 농촌에 노인들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곧 농촌에 미래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농업은 살아 있어도 농촌은 사라진 이상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농업 경영인은 중소도시에 살면서 한 번씩 농업 지역으로 출퇴근하고, 외국인 노동자나 일꾼들이 농업 지역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일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 같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보인다.




전통농업은 고릿적 이야기가 아니다


전통농업은 녹슬어서 쓸모없어져 버린 호미가 아니다. 녹슨 것 같은 호미도 다시 사용하거나 대장간에 가져가 다시 벼리기만 하면 잘 쓸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전통농업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도 없으며, 또 무조건 옛날 방식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옛날을 조건 없이 답습하기보다는 그 안에 숨은 원리를 찾고, 그를 바탕으로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 책에서 다룬, 세계 각지의 사례들이 그 좋은 예이다.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거의 사라져서 주로 제3세계의 사례들만 다루고 있지만, 최근 한국에 부는 도시농업의 바람과 함께 전통농업이 지닌 잠재력에 새롭게 주목할 수 있어서 재미있다. 도시농업은 일차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농업이 아니라 집에서 먹을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만큼 돈에서 자유로우므로 수확량이 좀 적더라도 토종 종자를 심고, 농약과 화학비료 등을 사용하지 않는 전통농업의 방식을 활용하기에 충분하다. 이는 비단 도시에서만 가능한 방법이 아니다. 충분히 농촌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 현재 적극 추진하고 있는 농업의 6차 산업화와 함께, 지역마다 행해오던 독특한 전통 방식의 농업과 토종 종자를 활용한다면 좋은 지역개발 사례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은 덤이다.


‘전통농업傳統農業’은 ‘전통全通 농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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