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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엥겔지수가 높은 게 나쁘지 않다고 본다. 물론 소득이 워낙 적어서, 하루에 1달러도 못 벌어 버는 돈의 대부분을 먹고사는 일에 투여할 수밖에 없다는 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않는 나라들에서는, 오히려 엥겔지수가 높다는 건 좋은 먹을거리에 돈을 쓰며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요즘은 통계, 즉 숫자의 세상이라서 모든 것을 숫자로 설명하고 증명해야 한다. 허나 나는 숫자 말고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그 뭐시냐 질적연구인가 양적연구인가 하는 아무튼 그런 방식이 오히려 우리의 삶을 더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통계를 기준으로 내 삶을 보면 난 그리 부유한 편이 아니지만, 식재료에 쓰는 돈은 비슷한 소득수준의 사람들보다 더 많을 것이다. 돈도 없으면서 생협을 이용하고 직거래를 이용하고 그래서 그럴 것이다. 곧, 엥겔지수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보다 높다는 말이다. 그래도 난 그걸 통해서 만족을 느끼고 함께 어울려 사는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자위한다.


유기농산물에 대해서 이런 관점이 퍼져야 하지 않을까? 주변에서 보면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서 농민이 어떻고, 농업이 어떻고 하는 것보다 중국산처럼 못 믿을 농산물보다, 농약을 친 농산물보다 이게 더 좋은 거니까 비싸게 주고 사서 먹는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런 사람들은 유기농이라면 수입농산물이라도 거리낌 없이 선택해서 먹는다. 이게 뭔가??? 유기농이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난 유기농이 최고는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가급적 유기적으로 생산된 농산물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나의 소비성향이 커다란 돌덩어리가 굴러가는 것 같은 이 세상을 조금씩이나마 미약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돌멩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 그래도 싼 게 있으면 일단 덥썩 손이 가는 건 인간인지라 어쩔 수가 없다. 그럴 때 나에게 브레이크를 거는 건 내가 조그맣게라도 농사를 짓고 있다는 사실이다. 


운전을 할 때 앞으로 나아가기는 쉽다. 오히려 어려운 건 멈춰야 할 때 멈추는 일이다. 신호등에 주황불이 들어올 때, 그 주황불은 멈추는 걸 준비하라고 알리는 신호이지 그냥 얼른 지나치라는 신호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걸 보며 그냥 지나치곤 한다. 그러면서 '아싸, 신호에 안 걸렸다' 하면서 속으로 좋아한다. 누구나 그러지 않을까? 그게 인간이 아닐까? 지금은 절대적으로 브레이크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안에서 나에게 브레이크, 즉 한 박자 느리게 나를 돌아보는 계기를 주는 것은 바로 농사다. 


아무리 농업 문제가 어떻고, 식량체계가 어떻고 떠들어도 개개인의 삶이 그런 주장과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면 허공에 뜬 소리밖에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작지만 소중한 텃밭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작은 텃밭에서 일하며 내 삶이 이렇게 나아가도 좋을지 고민하게 된다면 참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몸이 소우주라고 하지 않는가. 내 작은 몸뚱아리가 저 커다란 우주 공간을 담고 있듯이, 나의 작은 텃밭이 우리 사회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조금은 느리지만, 그리고 수확도 적지만, 호미를 들고 땅을 갈고 풀을 뽑으며 난 오늘도 생각에 잠긴다. 


그러니까 얼른 봄이여 오라! 농사짓고 싶어 근질거려 죽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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