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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씨앗-작물

파주 등원농원 노지딸기

by 石基 2012.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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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설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딸기의 비율이 90%를 돌파한 이 시대에 노지에서 딸기를 재배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희귀하게 보인다. 이런 환경에서 이 기사에서처럼 노지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일은 아주 귀한 사례가 되었다. 제철 농산물이, 제철에 나오는 딸기가 이상하게 보이는 이런 세상이란... 



제철에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제대로 자란 노지 딸기는 유난히 씨가 노랗고 옹골지다. 이쯤 돼야 딸기는 향과 맛을 제대로 지니게 된다.


생각지도 않은 통화였다. 꽤 오래전부터 건강한 제철 식재료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으면, 여기저기에서 '제철 딸기'를 먹고 싶다고 떠들고 다녔다. 그런데 독자 한 분이 전화를 하신 것이다. 요지인즉슨, 자신은 딸기 농사를 짓는 사람인데 진짜 제철 딸기를 생산하니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흰 눈 속의 딸기'는 이제 범상한 일이 되어 버렸다. 흰 눈 펄펄 날리는 1월에, 마치 제철이나 맞은 것처럼 노점상에서 함지박 가득가득 딸기를 쌓아놓고 파는 것을 처음 봤을 때는 꽤나 충격이었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으며 다가가 값을 물어보니 5월 가격에 비해 크게 비싸지도 않았다. 게다가 크고 굵은 딸기가 맛도 꽤 달았다. 그러나 마음은 참 복잡했다. 이런 농업기술에 대한 감탄이 먼저였지만, 다른 한편으론 철을 거슬러 키우려니 농약이나 비료를 더 많이 쓰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비싼 시설비·난방비, 거기에 수분을 위한 벌통까지 갖다 놓고 키워야 했을 텐데, 이렇게 싸게 팔아서 어떻게 수지를 맞출까 하는 안타까움에 한숨까지 나왔다.

제철 딸기가 자취를 감춘 것도 아마 이즈음이었을 것이다. 원래 딸기의 제철은 5월 하순부터 6월까지인데, 요즘은 5월 중순이 못 되어 딸기가 사라진다. 노지 것은 아니더라도 제철에 근접한 딸기를 먹겠다고 과일가게 앞을 꾹 참고 지나가기를 몇 달 계속하다가, 결국 딸기 철을 놓쳐버린 해에는 정말 화가 나기도 했다.

도대체 누굴 위해서 겨울에 딸기를 생산하고 사 먹어야 하는 걸까. 한정된 땅에서 긴 기간 생산하려면 시설 재배가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비단 딸기만이 아니라 패션에서조차 조금 철 이르게 입고 나서야 패셔니스타 취급을 받으니, 소비에서 남들보다 조금 앞서가고 싶은 우리들의 조급증도 한몫했으리라. 겨울 딸기가 비싸고 귀한 취급을 받으니 너도나도 생산했고, 공급이 늘어나다 보니 값은 점점 떨어졌으리라. 정작 노지에서 제철 딸기를 생산하고 싶어도, 싸구려 취급 받는 끝물에 새 물건 내놓는 어리석은 짓을 하긴 힘들 것이다. 그러니 도시의 소비자들은 제철 딸기를 먹고 싶어도 사 먹을 곳이 없게 되어 버린 게 아닐까.

등원농원 이병도 대표가 딸기밭을 관리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고설재배와 달리 하루 종일 구부리고 일을 한다. 그래도 작물은 '땅심'으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경기도 파주 뇌조리의 등원농원을 찾아가는 마음은 다소 조마조마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옛날 방식으로 노지에서 딸기를 재배한다니 그건 안심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맛이 없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이천 시골에 살 때 우리 텃밭에도 딸기를 심었었다. 그냥 내버려 두어도 저절로 순이 뻗어나가 새끼를 치고 잘 자랐다. 딸기 산지로 유명한 논산에서 딸기축제를 하는 때가 4월 초인데, 그때 노지에서는 겨우 새순이 올라왔다. 4월 말과 5월 초에 꽃이 피었고, 6월이 돼서야 딸기는 익었다. 그 딸기 맛은 아주 진했다. 무엇보다 딸기 특유의 향이, 비닐하우스 딸기의 몇 배는 된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 맛에 길이 들자, 입맛 까다로운 남편은 5월이 되기 전에는 딸기를 먹지 않았다. 어쩌다 사다 주면 "무슨 딸기가 아무 향이 없어? 무화과도 아니고 말이야"라고 독설을 해댔다. 그러나 우리 텃밭 딸기맛은 확실히 덜 달고 시었다. 그러니 걱정이 될 수밖에. 혹시 제철에 제대로 키운 건강한 딸기가, 내가 텃밭에서 키운 것처럼 단맛이 적고 신맛이 너무 강하면 보통 소비자들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제 옛날처럼 신 딸기는 먹지 않는다고, 예전에는 딸기가 시어서 설탕을 찍어 먹을 정도였는데 겨울 시설재배 딸기는 시지 않고 달아서 맛이 있다고들 했다.

그러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등원농원의 6600㎡(2000평) 딸기밭에 주렁주렁 달린 딸기는, 씨 색깔이 노랗고 탱탱해 딸기 전체에서 금적색(金赤色)이 풍겼다. 직접 손으로 따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와! 입에서 딸기 향이 확 퍼지는데 심지어 달기까지 하다. 당도가 웬만한 시설재배 딸기보다 훨씬 높았다. 이 정도 당도라면 절대로 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신맛과 단맛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아주 조화로운 딸기 맛이었던 것이다. 이럴 때 흔히 "바로 이 맛이야!"라고 말하게 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맛은 처음이야!"라고 하는 것이 옳다. 예전에 먹던 노지 딸기에서도 이렇게 달고 맛있는 딸기는 거의 먹어보지 못했다. 내가 텃밭에서 키운 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당도였기 때문이다.

농약을 쓰지 않으니 밭에 거미가 많다. 이 거미들은 날파리들을 잡아먹는 고마운 놈들이다.

등원농원의 이병도(49) 대표는 대를 이어 딸기 농사를 짓는 '딸기 전문가'다. 선친은 일산에서 딸기 농사를 지었다. 1989년 일산 신도시가 개발되자 이곳 파주로 옮겨 왔다. 한때 농사를 그만두고 서점을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결국 다시 딸기 농사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냥 되돌아온 것만은 아니었다. 세상이 달라졌는데 옛날식 노지 딸기를, 그것도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친환경으로 지으니, 그는 이제 주변에서 '미친 사람' 소리를 듣는 농사꾼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그의 밭은 그 흔한 비닐 멀칭(mulching·땅 표면을 덮어주는 것)도 하지 않으니 말이다. 흙 표면에 비닐을 덮고 구멍을 뚫어 작물을 심는 비닐 멀칭으로 키우면, 잡풀이 자라지 못해 관리가 편하다. 그런데 이 밭에는 짚으로 멀칭을 했다. 그러니 일일이 손으로 김을 매야 한다. 이 대표는 비닐을 씌우면 흙에 통풍이 잘 안 돼 유해 곰팡이가 피기 쉽고, 농약 없이 키우기가 더 힘들어진다고 했다. 밭을 들여다보니 흙은 건강하게 푹신푹신했고, 거미와 벌레들이 바쁘게 돌아다녔다. 한여름에도 낮은 땅에 구부리고 김매고 새순 정리를 해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비닐하우스에서 관리 편의를 위해 지상 1m 위치에서 배양토와 양액(養液)으로 키우는 고설재배 방식의 딸기를 한마디로 '공장 딸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퇴비와 유산균 등으로 화학비료와 농약을 대신하는 법을 터득하느라 몇 년을 고생했다. 지금도 딸기 철이 다 지나간 후에 출하가 되는 탓에 제대로 판로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확신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탁월한 맛'이다. 80년대 아버지가 그의 이름을 붙여 '병도딸기'라는 이름으로 생산하던 딸기는 꽤 유명했다고 한다. 당시 한양쇼핑과 쁘렝땅백화점에 납품을 했을 만큼 맛과 향이 뛰어났다. 지금도 그의 딸기는 한 번 맛을 본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인다. 그의 딸기는 대부분 농장에서 직접 소매로 판다. 주변 공장에서 직원 간식용으로 사 가는 양도 꽤 많단다.

딸기밭에는 그 흔한 비닐 멀칭도 하지 않았다. 제초제도 안 쓰고 비닐도 안 덮은 흙이니 잡초는 일일이 손으로 김을 매 제거해야 한다.

취재를 하는 짧은 시간 안에도, 지나가던 우편집배원이 오토바이를 세우고 "퇴근 때 사갈 테니, 제 것 좀 남겨놓아 주세요" 한다. 안주인은, 구태여 마다하는 집배원에게 딸기 한 바구니를 안겨서 보낸다. 일단 많은 사람에게 맛을 보여주려고 한단다. 노지 딸기는 시고 맛이 없다는 편견이 강해서, 시장의 소비자들은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입소문을 타고 팔리는 게 훨씬 낫단다. 이렇게 소매 판매가 중요한데, 택배 판매를 하지 못하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아무래도 택배로는 아기피부 같은 딸기가 흠집 없이 배달되기를 기대하긴 힘들다.

팔고 남은 딸기는 딸기잼을 만들어 판다. 보통 전문가들은 딸기잼을 맛있게 만들려면, 딸기잼에 레몬즙을 섞으라고 권한다. 요즘 딸기가 그저 달고 싱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딸기는 워낙 맛이 진해서, 그저 설탕만 넣고 천천히 끓이니 새콤달콤하고 향취 높은 딸기잼이 됐다. 물론 공장제 딸기잼처럼 한천 같은 것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진짜 딸기잼 말이다.

이러니 초여름에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딸기 철은 6월 말이나 7월 초에 끝난다. 이 한 달 동안 뻔질나게 파주 딸기밭에 드나들게 생긴 것이다. 맛을 안 봤으면 모르되, 이 맛을 안 이상 어찌 이걸 모른 체한단 말인가.  

글=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 ymlee0216@hanmail.net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shotgunjoongang.co.kr >

이영미.권혁재 기자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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