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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 FAO, IFAD(국제농업개발기금), UNCTAD(유엔 무역개발회의)가 최근 제시한 일곱 가지 '책임 있는 농업투자 원칙'은 대규모 토지 투자를 추진하여 투자자와 공동체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원칙이 선의에 기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실제로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 


자국의 식량과 원재료를 공급하고, 생물연료를 확보하거나 나무를 심어 탄소를 저장한다며 보조금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민간 투자자와 국가 차원에서 세계의 수백 만 헥타르라는 토지를 구입하거나 빌리기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났다. 월가의 은행과 투기자본을 포함하여 선진국의 투자자들은 토지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를 불안정한 금융 상황에서 안전한 피난처라고 보고 있다. 

이런 현상은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2006년 이후 프랑스의 농지 면적과 비슷한 1500~2000만 헥타르의 농지가 해외 투자자들의 거래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는 큰 위험이 뒤따른다. 오랫동안 관습적인 권리에 기초하여 생계를 위해 이용되던 대개의 토지가 '유휴지' 또는 '농업을 위한 유보지'로 취급되며 이러한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공공의 이익'이란 명분으로 퇴거 명령이 내려지고,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거나 그곳에 살던 주민과 협의하지도 않고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프리카에서 농촌 지역의 토지는 국유지라 여겨지는 경우가 많아 정부에서는 마치 그 토지가 본래부터 자신의 것인양 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대토지 소유자와 소농의 격차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남아시아에서는 오랫동안 생활하던 토지에서 쫓겨나고 그곳이 팜유 농장이나 특별경제구역, 숲 보전 지역 등으로 바뀌며 이주하는 주민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처하고자 제기된 것이 바로 이 원칙이지만, 이는 단지 자발적으로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식량권과 자연자원의 편리를 누릴 권리, 그 생존 양식을 빼앗기지 않을 권리 등 인권을 보장하라고 정부에게 요구해야 한다. 그 원칙은 인권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책임을 완수할 수 없다. 

또 대규모 농장을 만들려고 투자자에게 토지를 양도해야 한다는 주장과 더욱 공평하게 토지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기 위하여 토지를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 사이의 대립이 있다. 여러 정부는 몇 번에 걸쳐 토지 분배를 추구하겠다고 약속하였고, 최근 2006년에 개최된 '농지 개혁과 농촌개발에 관한 국제회의'에서는 그 약속을 되풀이했다. 
 
어떤 원칙을 책정하는가와 관련된 더욱 중요한 문제가 존재한다. 대규모 농업투자를 추진하려는 근거에는 기아 대책을 세우려면 더 많은 식량 생산을 추진해야 하는데 현재는 농업투자가 부족한 점이 장애가 된다는 사고방식이 있다. 그래서 농업에 대한 투자를 촉진해야 하며, 그에 부과된 규칙은 투자를 억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도, 또한 대책도 모두 잘못된 것이다. 기아와 영양부족은 식량 생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빈곤과 불평등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이는 세계의 75%의 빈곤층이 살고 있는 농촌 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과거 농업개발은 대규모이고 자본투입형의 농업을 추진하며 지방의 공동체에서 식량을 공급하던 소농에 대해서는 등한시해 왔다. 또 나날이 경쟁적이 되는 환경에서 정부는 농업노동자를 착취에서 보호하는 일에 실패했다. 그래서 오늘날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70%가 이러한 소농과 농업노동자가 되었다. 
 
대규모 농업, 기계화된 농업으로 전환하려고 추진하여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악화시키기만 할 것이다. 대규모이고 기자재가 정비된 농업생산자는 경쟁력을 가지고 시장에 값싼 생산물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시장 가격에는 반영되지 않는 높은 사회적 비용을 만들어 낸다. 
 
한편 소농의 생산비는 비록 높지만 단위면적당 생산성은 더 높은 경우가 많다. 토지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여러 작물과 가축을 보완적으로 조합하여 성공하고 있다. 그 농업은 외부의 투입재에 적게 의존하고 기계화도 이루어지지 않은 대신 높은 노동집약성을 요구한다.
 
만약 소농이 시장에서 대규모 생산자와 함께 경쟁한다면 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소농은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높은 공익을 제공한다. 그들은 농업 다양성, 생물다양성의 유지에 공헌하고, 농촌 지역사회에 가격변동과 기후변화에 대한 저항력을 제공하며, 환경보전에도 도움을 준다. 
 
대규모 농업투자는 이러한 농업 세계의 관계성을 파괴해 버린다.뚜렷하게 불평등한 경쟁을 심화시키고, 농촌사회를 와해시킬 것이 틀림없다. 
 
물론 농업투자는 책임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 많은 사람이 최근 식량 가격의 폭등으로 야기된 우려를 투자의 기회로 파악하는데, 기회와 해결책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개발도상국의 농업 생산을 다시 일으키려면 적어도 연간 300억 달러가 필요하다. 이는 세계 국내총생산의 0.05%에 맞먹는다. 그러나 금액이 아니라 어떠한 농업을 지원하는가 하는 쪽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힘을 가진 소수의 경제적 부자들이 대규모 단작형 농업을 촉진하면 소농과 가족농의 어려움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고, 또 이미 온실가스 배출의 1/3을 담당하는 공업형 농업 모델을 촉진시킬 것이다. 

사회적, 환경적으로 더욱 지속적인 농업개발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소농을 책임지고 파괴하려고 하는 모습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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