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농경세시에 대한 선행연구는 주로 그 의미 탐구에 주력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농업생산 형태의 변화에 따른 농경세시의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전통농업의 주기성이 왜, 어떻게 변했는지 따지고, 이를 토대로 농경세시의 하나인 초연의 변화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초연이란 파종과 모내기 이후 가장 힘이 드는 김매기를 끝내고 음력 7월에 열던 농민의 축제이자 농경의례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洗鋤會·洗鋤宴이라 기록하고, 농민들은 지역에 따라 호미씻이·호미걸이·풋굿·백중놀이·머슴놀이·농사장원 등이라 불렀다. 이러한 초연은 특히 논매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라 보는데,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조선의 향토오락?을 보면 초연이 밀집된 지역은 논농사가 왕성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초연이 변화하는 원인을 1970년대 제초제가 널리 쓰이면서 논·밭매기와 같은 제초작업이 소멸된 데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초연이 완전히 소멸된 것이 아니라, ‘매기 먹는 날’이란 형태로 대체 또는 재형성(re-elaboration)되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곧 민속의 변화과정을 기술경제적 변동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이 해명한다.
농업생산형태의 변화 → 노동주기의 변화 → 전통적인 초연의 성격 변화
2. 조사지역의 특성
조사지역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의 자연촌락(新基, 川前, 深川, 布点, 掛壁)이다. 이곳은 산간지역이라 일교차가 크고, 눈비가 많으며, 무상일수가 짧은 것이 특징이다. 그 때문에 비닐을 일찍부터 사용했다고 한다. 마을 간의 연대와 그 변화상은 표1을 참조하겠다.
마을 | 1960년대까지 | 1980년대 이후 | 비고 | ||||||||
농업노동 | 상여계 | 동제 | 초연 | 들판 | 농업노동 | 상여계 | 동제 | 초연 | 들판 | ||
신기 | ◎ | ◎ | ◎ | ◎ | ◎ | ◎ | ◎ | 소멸 | ◎ | ◎ | |
포점 | ○ | ◎ | ○ | ○ | ○ | ○/◎ | ◎ | ○ | ○ | ○ | |
심천 | ◇ | ◇ | ◇ | ◇ | ◇ | ◇ | ◇ | ◇ | ◇ | ◇ | |
석달암 | ◇ | ◇ | ◇ | ◇ | ◇ | ◇ | ◇ | ◇ | ◇ | ◇ | 1989년 소멸 |
천전 | □ | △ | 소멸 | □ | □ | □/△ | △ | 소멸 | △ | □ | |
괘벽 | △ | △ | △ | △ | □ | △/□ | △ | △ | △ | □ |
위와 같은 마을 운영의 변화는 가구수의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며, 고령화에도 그 원인이 있다. 1965년과 1998년을 비교하면 가구수의 감소율은 45.5%, 인구 감소율은 76.8%이었다. 또한 이 지역의 1998년 농가당 농지의 평균 소유면적은 2436.5평, 평균 경작면적은 4175.1평이다. 그리고 1998년 현재 마을마다 품앗이 결성의 빈도에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품앗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인데, 이 지역은 품삯이 저렴하여 현금보다는 품으로 되돌려 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3. 전통적 농업생산 형태하 초연의 의미와 기능
1970년대 전반까지는 식량작물과 식량보조작물을 재배하는 데 주력하는 자급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1년을 주기로 보면 크게 농번기와 농한기가 교차하고, 그 사이사이에 자연조건, 노동력, 농업노동의 적기, 작물의 생육기간과 특성이 결합되면서 형성된 준농번기(=준농한기)가 끼어 있다. 바로 그 준농번기에 해당하는 8월에 초연이란 농경의례가 마을 단위로 행해졌다. 이러한 초연은 주민들이 농번기에 품을 품으로 돌려주는 순환적 교환의 품앗이 형태로 함께 일하는 촌락 단위의 공동체적 노동 때문에 가능했다.
4. 상품생산 농업형태하 초연의 대체의례 등장
1)상품생산농업과 노동주기
1970년대 후반 식량작물보다 환금작물을 재배하는 쪽으로 농업의 형태가 전환된다. 그 대표적인 작물이 담배와 고추다. 담배는 경작비용을 엽연초생산협동조합에서 선지원 후상환의 방식으로 주어서 가난한 소농들이 안정적으로 농업생산을 지속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농민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환금작물인 고추는, 전통적으로 “우리가 수비고추의 명맥을 계승해야만 영양고추의 명성이 계속된다”고 하는 작물이었다. 실제로 이 지역은 1960년대부터 고추의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특산지로 분류되었는데, 1978년 고추 가격의 폭등은 이후 농민들이 지속적으로 고추 재배에 전력하는 기제가 되었을 것이다. 두 작물을 환금작물로 선택한 다른 요인으로는 이곳이 시장에서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하다는 지리적 여건이 있다. 두 작물은 저장성이 좋고 운송비가 덜 드는 특징이 있다. 또한 산간 경사지 밭이라 물빠짐이 좋고 하절기 일교차가 큰 편이라는 토질과 기상조건도 작용했을 것이다. 1995년부터는 울릉도에서 중점적으로 재배하는 천궁을 중요한 환금작물로 재배하기 시작한다. 천궁은 농약을 많이 쳐야 하지만 품이 덜 들기에 고령화가 진행된 이 지역에서 선택을 받았다.
이와 같이 이 지역에서는 상품생산 전략에 따라 답작의 최소화, 답작의 전작화가 진행되었는데, 이런 농업생산 형태는 환금작물을 위주로 하는 상품생산농업이라 규정할 수 있다. 환금작물을 대량재배하면서 비닐을 사용하는 시설농업으로 진행되었고, 시설농업은 농약·제초제·화학비료 등에 의해 지탱되기에 이를 다시 시설·화학농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설·화학농업은 파종기를 3개월 앞당겨 놓는 등 영농활동의 시간 흐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절기 | 예전 밭농사 | 현재 밭농사 |
입춘 | 하우스 묘상 준비, 발열재 준비, 고추·담배 파종 등 | |
우수 | ||
경칩 | 고추·담배 묘상 김매기·시비 등 | |
춘분 | 보리밭 매기 | |
청명 | 밀·보리밭 매기 | 밭갈이, 마늘 시비, 담배 그루뽑기, 감자밭 갈이, 담배밭 퇴비·골타기, 고추 포트 제초, 감자 파종, 담배 묘상살충제, 담배 이식, 고추 퇴비·갈이, 땅콩 비닐피복 파종 등 |
곡우 | 밭갈이, 여러 밭작물 파종 | |
입하 | 감자밭 매기 | 고추밭 비닐피복, 고추밭 철주, 담배밭 통풍구, 담배수박·고구마밭 갈이, 고추 이식, 담배 복토 등 |
소만 | 밭매기(콩·고추·옥수수·감자·수수) | |
망종 | 밭매기(콩·옥수수·수수), 감자 수확 | 담배밭 콩 間耕, 고구마 비닐피복·이식, 고추밭· 담배밭 제초·제초제, 담배 적심, 담배 수확 등 |
하지 | 수확·타작(밀·보리), 고추밭 매기 | |
소서 | 고추밭 매기 | 담배 적심·수확, 고추밭 제초·농약, 메밀 파종 등 |
대서 | 조·고추밭 매기, 담배 수확 | |
입추 | 조·고추밭 매기, 담배 수확 | 담배 적심, 담배밭 농약·제초제, 담배 수확, 고추밭 농약, 옥수수 파종, 고추 수확 등 |
처서 | 고추·담배 수확 | |
백로 | 고추 수확 | 담배 조리, 고추 수확, 고추밭 농약, 옥수수밭 추비, 참깨 수확, 담배밭 제초제, 고추밭 철주·비닐 제거 등 |
추분 | 고추 수확 | |
한로 | 여러 밭작물 수확·타작 | 고추밭 비닐 제거, 들깨 수확, 고추 줄기뽑기, 기장·메밀·팥 수확, 담배 포장, 콩 운반·탈곡, 담배밭 비닐 제거 등 |
상강 | 보리밭 거름내기 | |
입동 | 가을갈이, 마늘·밀·보리 파종, 못다한 타작 | 담배밭 비닐 제거, 옥수수 걷기·운반, 고추 묘상 하우스 설치, 마늘밭 기비, 감자수확 등 |
소설 | ||
대설 | ||
동지 | ||
소한 | 고추 하우스 손질 | |
대한 | ||
절기 | 예전 논농사 | 현재 논농사 |
입춘 | ||
우수 | ||
경칩 | ||
춘분 | 논갈이 | |
청명 | 논갈이, 보 정비 | 논갈이, 볍씨 소독·담그기, 벼못자리, 못자리 물대기 |
곡우 | 못자리 | |
입하 | 모내기 | |
소만 | ||
망종 | 논갈이, 써레질, 모내기 | 벼 추비 |
하지 | 논갈이, 써레질, 모내기(2모작) | |
소서 | ||
대서 | 논매기 | |
입추 | 논매기 | |
처서 | ||
백로 | 벼 콤바인 탈곡 | |
추분 | 올벼 수확 | |
한로 | 수확·타작 | 수작업 벼베기, 벼 걷기, 볏짚 정리, 콤바인 탈곡 |
상강 | 수확·타작 | |
입동 | 가을갈이, 타작 | |
소설 | ||
대설 | ||
동지 | ||
소한 | ||
대한 |
시설·화학농업에서는 전통농업과 달리 2~3월부터 농사일이 시작되어, 4~5월 비닐 시설의 설치와 담배·고추 모종의 이식과 여러 밭작물 파종 등으로 가장 바쁜 농번기를 맞는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모내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6월이 되면 “모내기 마치면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고, 담배잎을 딸 때부터 또 바빠진다”는 준농한기에 접어든다. 이는 밀·보리의 수확·타작과 모내기로 바쁘던 전통농업의 영농일정과 차이가 나는 점이다. 7~8월은 담배의 적심·수확, 제초제·농약 살포, 비료 시비, 담배 건조 등으로 바빠지고, 8월 하순~9월 하순까지는 고추를 수확해 말리며 담배 조리하는 데 많은 노동력이 든다. 9월 하순~10월 초순 벼를 수확·탈곡하고, 이와 맞물려 대부분의 밭작물도 수확한다. 그러고 11월까지 고추·담배의 부산물, 자재 등을 걷고 정리한 뒤 12~1월 농한기를 맞이한다. 반면 전통농업에서는 9월에는 특별히 바쁜 일이 없어 풀베기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10월부터 본격적인 수확기에 들어가 수확·탈곡이 끝나가는 11월 초순에 가을갈이, 밀·보리 등을 파종했다. 이러한 두 농업형태 사이의 연간 농업주기의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통 | 준농번기(이른봄)→농번기(봄)→준농번기(초여름)→농번기(여름)→준농번기(초가을)→농번기(가을)→농한기(겨울) |
시설· 화학 | 농번기(봄)→준농번기(초여름)→농번기(여름~가을)→농한기(겨울)→준농번기(늦겨울) |
2) 초연의 재편성과 기능 변화
1970년대 제초제의 도입으로 공동 논매기가 중단되며 초연이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초연이 사라진 것은 비닐이 등장하면서부터, 곧 시설·화학농업으로 환금작물을 대량재배하면서 농업노동 주기의 변화와 함께한다. 초연을 대신하여 이전부터 마을 단위의 ‘모내기 공사’가 끝난 뒤 하루 쉬던 날이, 1980년대 이후 ‘매기 먹는 날’ 또는 ‘품값 계산하는 날’이란 이름으로 활성화된다. 이는 새로운 농업형태로 이식기 노동량이 급증하면서 품앗이 관계가 후속작업인 모내기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환금작물 이식과 모내기를 품앗이로 하면서 품값의 정산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매기 먹는 날은 시기만 다를 뿐, 초연이 이루어지던 같은 공간에서 그때와 비슷한 음식을 마련하여 먹고 노는 날이다. 또 “내가 누구에게 얼마를 줄 것이 있는지,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은 얼마인지 미리 계산해서 간다. 현장에서 그것을 확인하고 서로 지불한다”고 하는 봄철 밭농사와 모내기의 품앗이 노동을 총결산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처럼 상품경제 농업이 진전되면서 생긴 매기 먹는 날은 휴식적·유희적 기능만이 아니라 노동교환 관계를 정산하는 기능도 담당한다.
5. 맺음말
농경세시 의례는 농업생산 형태의 산물이기에 그것이 변화하면 농경세시도 변할 수밖에 없다. 농업생산 형태는 농업기술의 발달과 국가 차원의 사회경제 변동이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자급이 목적이던 1970년대 전반기까지 논농사에서는 제초작업이 무더운 계절에 집중되어 있는 힘든 일이었기에 공동작업이 필요했고, 밭농사에서는 제초작업만 품앗이로 이루어졌다. 이런 힘든 제초작업을 완료하면 그해 농사는 수확만 남겨두는 시점에 농민들은 마을 단위로 초연을 열어 고통스런 농번기를 보내고 새로운 영농주기를 맞이했다. 그러다 1970년대 중엽부터 제초제가 김매기를 대체하면서 초연의 의미와 기능은 크게 위축되었고, 결정적으로 상품생산농업이 1980년대 이후 대폭 확대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새로운 재배법으로 노동주기가 변화하면서 초연을 대신하여 봄철 환금작물의 이식과 모내기를 끝낸 뒤 품을 계산하며 하루 쉬는 ‘매기 먹는 날’이 강력하게 부상한다. 전통농업의 형태에서 이 날은 그 존재가 흐릿했으나, 초연이 사라지면서 그 기능이 매기 먹는 날로 재형성·재창조된 것이다. 매기 먹는 날은 초연의 축제라는 성격을 이어받고, 품을 계산하는 날이란 점에서는 어느 정도 변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농업생산형태의 변화는 농업노동주기를 변화시키고, 그것은 다시 농경세시 의례의 시기와 성격을 변모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논평문
1970년대 산업화와 그에 따른 한국 사회의 변화는 농업과 농촌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호미씻이·호미걸이 등으로도 불리는 草宴의 변화이다. 필자는 농경세시 의례는 농업생산 형태의 산물로서, 그 형태의 변화는 농경세시 의례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 주목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농업생산 형태의 변화는 자급을 목적으로 하는 식량작물에서 환금작물을 위주로 하는 시설·화학농업으로의 변화이다. 이를 경북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에 있는 다섯 곳의 자연촌락을 조사하여 확인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산업화 이후 이농 등에 따른 농업노동력 감소와 제초제와 같은 새로운 농업기술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농업노동에 변화가 발생했고, 이후 환금작물의 대량재배가 확산되면서 시작된 시설·화학농업으로 초연의 본래 의미가 사라지고 소멸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를 대신하여 예전에는 큰 의미가 없었던 모를 내고 하루 쉬던 날이 새롭게 ‘매기 먹는 날’로 활성화되어 초연의 성격을 대신하고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앞으로 이 논문을 단초로 산간지역만이 아닌 더욱 다양한 지역―평야지대나 도서지역 등―에서 농업생산 형태의 변화로 전통적인 농경세시 의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조사·연구하여, 각 지역별로 어떤 유사점이 있고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확인한다면 흥미로운 주제가 될 듯하다. 또한 조사 당시인 1998년보다 노동력 감소와 고령화가 심각해지고 환금작물이 더 다양화되었을 현 시점에, 이 논문에서 밝힌 ‘매기 먹는 날’은 현재 어떻게 변모되었는지 조사·연구하는 작업도 필요할 듯하다.
끝으로 논문의 내용 가운데 이 지역에서는 품과 현금의 교환도 ‘품앗이’라고 부르는 것인지 궁금하며, 또 <표6>에 나오는 ‘노지직파재배 고추’의 파종이 6월 초순이라는 점에 대한 확인을 부탁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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