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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민속학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일본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자료. 좀 정리는 된다만, 우리나라의 민속학은 도대체 무어냐?



민속학은 학문 영역의 하나. 고도의 문명을 가진 여러 나라에서 자국민의 일상생활문화의 역사를 민간전승을 주로 자료로 하여 재구성하려 하는 학문. 민족학이나 문화인류학의 근접영역.



개요


민속학은 풍속과 관습, 전설, 민담, 가요, 생활용구, 가옥 등 옛날부터 민간에서 전승되어 왔던 유무형의 민속자료를 기초로 인간의 생업 속에서 전승되어 왔던 현상의 역사적 변천을 밝히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의 생활문화를 상대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학문이다.

이 학문은 근대화에 의하여 많은 민속자료가 사라지려고 할 때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의 낭만주의적인 동경과 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탄생한 젊은 학문으로,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의 민속학은 유럽, 특히 영국의 케임브리지 학파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國男와 오리쿠치 시노부折口信夫 들에 의해 근대과학으로 완성되었다. 보통은 folklore의 번역인데, folklore는 민간전승(민속) 그 자체를 가리키기에 영어권에서는 민속학을 Folklore-Studies나 Folkloristics이라고 부르는 일도 적지 않다.

인간의 생활에는 탄생부터 육아, 결혼,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식이 따른다. 이러한 통과의례와는 따르 평소의 의식주와 제례 등에도 다양한 풍습, 습관, 관습이 있다. 이러한 풍습에는 그 유래를 잊은 채, 또는 시대와 함께 변화하여 원래의 원형을 모르는 채로 행해지는 것도 있다. 민속학은 또한 이러한 습속의 철저한 검증을 통하여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해명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민속학의 학문으로서의 여러 특징


시대와 학자에 따라서 그 정의는 여러 갈래이기에 개괄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대략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 학문이다.

1. 연구의 목적은 어떤 민족의 전통적인 문화, 신앙, 풍속, 관습, 사고의 양식을 해명하는 데에 있다. 또 이러한 대상의 역사적 변천과 함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원초적 형태를 밝히려고 하는 경향을 가진다.

2. 연구의 대상이 자민족의 기층문화인 경우는 다른 민족의 사례를 자민족의 보조자료로 쓰는 경우가 많다.

3. 연구의 방법으로서 문헌자료 말고도 현대사회에 잔존한 문화, 풍습, 사고의 양식을 중시한다. 이 때문에 현지조사로 자료를 수집한다.

4. 또한 미개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민족의 문화, 풍습, 사고의 양식을 인간의 기본적인 정신활동에 나타난다고 생각하여, 이를 연구의 자료 또는 보조자료로 하는 일도 많다(이 점에 대하여 현재는 포스트-식민주의의 입장에서 비판이 일어난다). ‘미개’와 ‘고대(始原)의 동일시는 민속학의 특색 가운데 하나다.

5. 현대인이 무의식 중에 행하는 것, 또는 합리적으로 설명하면서 행하고 있는 것 안에 고대적인 의미를 발견한다는 형태의 연구가 많다.

6. 일본에서는 문학연구·비평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 점에서 문화인류학·민족학과는 다른 특색이 있다.

7. 특히 일본의 민속학 연구에서는 그 초기에 큰 영향을 미친 야나기타 구니오, 오리쿠치 시노부 두 사람이 강렬한 개성의 소유자로, 서구에서 도래한 학문의 방법을 소화하여 일본 독자의 민속학을 완성했기에 ‘야나기다학柳田学’ ‘오리쿠치학折口学’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또 야나기다 자신은 ‘신국학新国学’이라 부르며 민속학의 체계화를 시도하고, 근세 이후 국학의 영향도 강하다.

8. 일본 민속학은 ‘재야의 학’으로 표현되고, 다른 여러 학문과 비교할 때 가장 특이한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재야와 아카데미즘(민속학을 직업으로 하는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않는, 학력과 직업에 관계없이 민속 현상에 흥미와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학문이란 느낌으로 쓰이고 있다. 이 때문에 보통 ‘재야의 민속학자’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반대로 ‘대학의 민속학자’라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9. 일본에서는 민속 또는 민속학이란 용어가 일반에서는 통하기 어려운 점이 있고, 민족학(문화인류학)과 혼동되거나 민족이란 말에서 정치적인 활동과 연구를 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 일이 많다. 언론과 출판에서도 ‘민족문화재’나 ‘민족자료관’이란 오타를 많이 볼 수 있다(물론 진짜 ‘민족자료관’도 존재한다). 대학에서는 ‘분쟁 등의 민족문재를 배우고 싶다’ ‘아이누 민족을 공부하고 싶다’는 이유로 민속학 연구회의 문을 두드리는 학생이 있는 것도 신입생이 많은 시기에 자주 있는 모습이다(민족학에 대해서는 인접학문도 있기에 연구회와 학회 안에는 연구대상을 포함하고 있는 단체도 있다).



민속학사


일본에서 민속학이라고 할 경우 일반에서는 일본 민속학을 가리키지만, 해외를 보면 19세기 구미를 중심으로 많은 나라에서 민속학에 해당하는 학문이 탄생했다. 탄생의 경위는 나라마다 정치적·사회적 상황이나 민족학(문화인류학) 등과의 관계에 따라서 다양한데다가, 다른 사회과학과 같이 국제적 교류가 활발하지 않고 나라마다 독자적으로 진전을 해오기도 하여 통틀어 민속학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유럽의 민속학


유럽에서 민속학적 관심이 높아진 배경에는 근대화와 도시화, 또는 자본주의화에 따른 급격한 사회변화를 앞두고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낭만적인 동경과 민족의식의 고조가 존재한다.



영국, 프랑스 민속학


영국에서는 1846년 톰즈William John Thoms가 고대문화의 흔적과 민요를 folklore라고 이름을 붙이고 민속학 연구의 선구자가 되었는데, 학문의 조직화로는 1878년 조지 로렌스 곰므George Laurence Gomme 들이 런던에 “민속학 협회Folklore Society"를 설립한 시기를 기점으로 한다. 진화주의 인류학이 파급력을 지녔던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민속학도 서민의 습속에 보이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잔존(Survival)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함께, 자민족뿐만 아니라 해외 식민지를 관심에 넣는 등 인류학과의 근접성이 뚜렷하다고 인정된다. 그것은 1885년에 민속학 협회가 설립된 프랑스도 마찬가지이고, 20세기 초에 피에르 상티브Pierre Saintyves, 로베르트 에르츠Robert Hertz, 루시앙 레비브루흐Lucien Levi-Bruhl, 아놀드 반 헤넬프Arnold van Gennep라고 하는 학자가 근대적인 민속학·인류학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의 접근법에 같고 다른 점이 있다고 해도, 민간전승의 기원을 소급하여 원시적인 민족 심리를 규명하는 일을 중시한 점에서는 대체로 공통된다. 또 에르츠와 레비브루흐는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와 에밀 듀케임Emile Durkheim 등과 가깝고, 반 헤넬프도 뒤에 빅토르 터너Victor Turner에게 영향을 미치는 등 인류학이나 사회학과 뗄 수 없는 위치에 있었던 점도 프랑스 민속학 연구의 특징이다.



독일 민속학


한편 유럽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했던 독일은 민속학은 폴크스쿤데Volkskunde라고 부르며, 독일민족·국민에게 공통된 정신의 발견이란 민족주의적 색깔이 짙은 학문이었다. 원래 독일어권에서는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드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와 동화작가와 학자로 유명한 그림 형제가 독일 낭만주의와 게르마니스틱, 신화학에 바탕한 민요나 설화의 민속학적 연구를 행했는데, 1850년대 폴크스쿤데란 이름으로 과학적인 학문 체계를 정비한 것은 빌헬름 하인리히 릴Wilhelm Heinrich Riehl이다. 공업의 발전에 따른 농촌의 피폐를 앞두고 릴은 사회정책적인 의도를 담아 전통 습속의 연구를 통하여 독일의 통일적인 민족정신을 발견하려는 점에 민속학의 목적을 정했다. 1891년에는 베를린에서 민속학 협회가 설립되고, 또 20세기 전반에는 처음으로 대학에서 민속학과로 나아가 오토 라우페Otto Lauffer, 『독일 민속지도』를 편집한 스위스의 에두아르드 호프만 크라이어Eduard Hoffman-Kryer, 민족심리학의 아돌프 스패머Adolf Spamer, 상층문화/기층문화의 이원이론을 제출한 한스 나오만Hans Naumann 등 많은 이론가가 나왔다.

그러나 현행 습속을 고대와 연속성(Kontinuität)이 있다고 파악하고 농촌 생활과 농민에게서 원초적 독일 민족정신을 발견하려는 민속학은 본질적으로 민족주의적 정치 이데올로기에 빠지기 쉬운 성격을 가지고 있어, 1933년 이후 국가사회주의 시대에는 국민 통치 및 인종주의의 국책 학문으로 빠졌다. 많은 학자는 나치즘에 동조하는 연구를 하여 적지 않은 학자가 나치당원으로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하고 선전물을 만들고 민속행사를 창출하는 데 관여했다. 그 때문에 전후의 서독 민속학계는 완전히 학문으로서의 신뢰를 잃고 폴크스쿤데의 정치성을 자기비판하는 것을 원동력으로 재출발을 도모하게 된다. 뮌헨대학에서는 한스 모저Hans Moser가 중심이 되어 민족주의와 매우 친화적인 과거 소급형 방법을 버리고, 더욱 실증적인 역사민속학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한다. 또 모저와 튀빙겐대학의 헤르만 바우징거Hermann Bausinger는 포크로리스무스Folklorismus란 개념을 제안하는 것으로, 관광화된 축제 행사와 새롭게 창출된 습속을 민속학의 대상으로 넣고, 변화하기 어려운 전통습속만을 고집하는 낡은 민속학에서 벗어나려 시도했다. 바우징거는 1971년 튀빙겐대학의 연구소에서 폴크스쿤데란 이름을 폐지하고, 대신 경험주의적 문화연구소(Institut fur Empirische Kulturwissenschaft)란 이름을 달았다. 이처럼 1970년대 이후 독일 민속학에서는 전쟁 이전을 청산한다는 것을 상징하듯이 폴크스쿤데란 이름이 사라지는 동시에 그 방법도 역사주의로부터 문화인류학과 역사사회학 등 사회과학 쪽으로 크게 변모하고 있다.



일본 민속학


일본의 민속학은 근세에 국학国学과 본ㅊ학本草学에서도 원류가 보이는데, 본격적인 연구가 개시된 것은 19세기 말이다. 하나의 효시가 되는 것은 츠보이 마사고로坪井正五郎가 도쿄 인류학회를 출범한 1886년으로, 민족학·민속학·자연인류학·고고학 등을 포함하는 ‘인류학’의 연구로 ‘토속土俗’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한편 니토베 이나조新渡戸稲造 들과 촌락 연구회를 하고 있던 농상무성農商務省 관료인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國男는 1909년 미야자키현宮崎県 椎葉村에서 듣고 쓴 수렵이야기를「노치노카리노코토바노키後狩詞記」라는 이름으로 자비 출판하고, 야나기다柳田 민속학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1913년부터는 잡지『향토연구郷土研究』를 창간함과 함께 당시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미나카타 쿠마구스南方熊楠에게 곰므가 지은 『The handbook of folklore(민속학편람)』을 빌려 지금까지 취미오락으로 여기던 민속학을 학문으로 체계화하는 이치를 깨달았다.

유럽 민속학과 문화인류학이 잔존이란 개념에 따라 고대와의 연속성을 가진 기층문화를 밝히려고 한 반면, 야나기다柳田는 사람들의 생활향상을 초기의 동기부여로 하여 민속학의 목적은 서민 생활의 역사적 변천과 동시대의 생활문화와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나기다柳田가 민속학을 구축하려고 했던 의도는 중층적인데, 첫째는 서민의 생활사를 간과하는 기존의 문헌사학에 대한 안티테제이고, 둘째는 진화주의적인 민족학과 ‘토속학’의 구분이며, 셋째는 지방 개량운동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국내 문화정책에 대항 담론으로 시대 상황을 반영한 다양한 기도를 꾀하고 있었다고 한다.

1935년에는 야나기다柳田를 중심으로 「민간전승 모임」을 설립하고, 기관지의 발간과 민속학 강습회를 열었다. 또 그 시대에 야나기다는 개설서를 정력적으로 집필하여, 민속학사에서는 학문으로서의 조직과 방법이 정리된 1930년대 중반을 민속학의 완성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1949년「민간전승 모임(民間伝承の会)」은 일본 민속학회라고 개칭하고, 이 무렵부터 대학에도 민속학 강좌가 개설되었다. 지금까지의 민속학은 야나기다 저택에서 열리는 목요 모임이나 잡지에서 야나기다가 직접 민속학도를 지도하고, 그 성과가 자식을 통하여 전국으로 퍼진다고 하는 의미에서 아카데미즘 밖에서 전개한 일종의 운동체였지만, 전후의 학제 안에서 도쿄 교육대학과 국학원대학國學院大學, 성성대학成城大学 등에서 전문 교육이 시작됨에 따라 현재에까지 이르는 교육·연구의 제도적 구조가 탄생했다.



민속학 연구법


민속학의 조사방법으로는 서민의 생활을 총체적으로 파악한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농산어촌農山漁村을 중심으로 한 마을에 머물면서 듣기(듣고 쓰기) 조사와 종이 자료를 포함한 문자자료(금석문, 건물에 대한 기록표 등)의 수집, 건축물과 민구 등 물질문화의 기록, 또는 생업, 공동노동, 연중행사, 인생의례 등의 장소에 참여 관찰, 그리고 민속지의 기술이 주체가 된다.현지조사의 축적으로 민족지를 묘사하는 것을 중시한다는 의미에서는 문화인류학의 방법과 유사하지만, マリノフスキー 이후의 근대 인류학이 연구자 개인에 의한 몇 개월~몇 년의 장기 체류 조사를 기본으로 하는 반면, 민속학에서는 며칠~몇 개월 단위로 중단기 조사를 되풀이한다는 일이 많고, 또 복수 연구자에 의한 공동조사가 실시되는 일도 많다.

초기의 민속학에서는 일본 각지에서 모은 민속자료를 유형화·비교하고, 일본 전체의 틀 안에서 민속 현상의 역사적 변천을 밝힌다는 「重出立証法」이 채택되었다. 조지 곰amGeorge L. Gomme의 저작을 바탕으로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国男가 제창한 이러한 방법론은 오랫동안 민속학의 기초 이론이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야마구치 아사타로山口麻太郎와 와카모리 타로和歌森太郎 등으로부터는 민속의 지역성의 과소평가하는 방법론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민속학사의 안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비판은 후쿠다 아지오福田アジオ에 의한 것으로, 민속을 일본 전체의 비교가 아니라 그것이 전승되는 마을과 신앙조직 등과 분리하지 않고 분석해야 한다는 「개별분석법個別分析法」을 제창했다. 구조기능주의 인류학의 영향이 짙은 후쿠다의 방법은 촌락 사회에서 민속을 파악하여 그것이 생활 속에서 서로 연관하면서 전체로서 가지고 있는 의미를 밝히려고 한다. 민족 전체 규모의 커다란 역사를 좇아 왔던 이전의 민속학에 비하여, 후쿠다의 방법론은 소규모 마을의 역사 그 자체를 더 실증적으로 그리려고 한 점에 특색이 있고, 같은 세대의 미야타宮田登가 제창한 지역민속학과 탈-야나기다 민속학의 방법론으로 영향을 미쳤다.

원래 민속학은 문화인류학과 사회학, 종교학, 역사학 등 여러 분야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생활사 연구와 퍼포먼스 이론, 사회사, 신체론身体論 등 연구대상에 따라서 그 분야에 통하는 방법론이 쓰이는 일도 많다. 아무튼 민속학의 연구방법은 분석적(Analytical)이라기보다는 기술적(Descriptive)이고, 대상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두터운 기술記述(길버트 라일)을 목표로 이른바 질적質的연구의 하나로 자리매김된다.



연구대상과 자료


생활(의, 식, 민가, 민구)

풍습(가족제도, 사회제도, 통과의례, 사회집단, 생업과 생산, 사계절의 행사, 축제, 놀이, 경기, 오락)

설화·가곡·속담(전설과 옛날이야기, 민요, 속요, 격언시, 수수께끼 등)

신앙(불교, 유교, 영혼과 내세, 전조와 점, 마술, 질병과 민간요법)

위에 열거한 전승되어 온 다양한 민속 현상이 민속학의 연구대상이라 설명되는 것이 많은데, 독일의 민속학자 한스 나우만은 민속학의 연구대상을 ‘기층문화,’ 곧 표층문화에 대하여 소박하고 집단적 또 유형적인 일상생활문화, 전승성이 짙은 문화라고 한다. 아무튼 위에 제시한 각각은 민속학의 기본 자료이며, 그런 의미에서 민속자료라고 불린다.

‘민속자료’란 말의 사용은 야니기다 쿠니오가 최초이고 오니쿠치 시노부折口信夫도 쓰고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처음부터 확실히 규정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야니기다는『민간전승론民間伝承論』에서,

눈에 보이는 자료 <체비体碑>…예를 들어 연구자가 여행하면서라도 보려고 한다면 볼 수 있는 형태를 지닌 사물 행위 전승.

귀에 들리는 언어 자료 <구비口碑>…현지의 말에 통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구두전승. 언어예술.

심의心意 감각에 호소하여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자료 <심비心碑>…외지인은 알 수 없는 같은 지역사람, 같은 나라 사람의 감각에 의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심의 전승.

이라는 3분법을 제시하고, 또 이를 1. 유형문화·생활기술지―나그네의 학, 2. 언어예술·구승문예―임시거처자의 학, 3. 생활해설·생활관념·생활의 여러 양식―같은 지역사람의 학이라고 하는 식으로 취지를 설명한다.

한편 오니쿠치折口는,

1. 주기전승(연중행사)

2. 계급전승(노약老若 제도·성별·직업·천성에 따른 구별)

3. 조형전승

4. 행동전승(무용·연극)

5. 언어전승(속담, 가요, 전설·설화)

라고 민속자료를 분류하고 있다.

널리「민속자료民俗資料」란 용어가 일반에 정착하고 명확한 개념 규정이 법령으로 제정된 것은 1954년「문화재보호법」의 제1차 개정에서「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및 이에 쓰이는 의복, 기구, 가옥, 기타 물건에 우리 국민의 생활 추이를 이해하기 위해 빠뜨릴 수 없는 것」이란 문화재의 하나로 보호 대상이 된 이후였다. 이후 문화청 문화재보호부(현재 문화재부)에 의해서「무형 민속자료 기록」 등도 편찬되기에 이른다.

「민속자료」란 명칭과 함께 그 안에 자료 가치가 높은 것이 문화재가 되어 보호의 대상이 된다는 이유가 사회에 퍼져, 오늘날에는 문화재의 분류 명칭인 ‘민속자료’가「민속문화재民俗文化財」라고 개칭되었다. 그 한편에서 현대는 문화재 지정의 유무와 관계 없이, 민속학에서 서민 생활사의 추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한 전승자료 전반을 민속자료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 민속학의 변화


도시화에 따라 민속학이 주요 대상으로 했던 폐쇄성이 높은 농촌은 실질적으로 소멸하고, 언뜻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보존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지역에서도 과소화와 관광개발, 산업구조의 변화 등 옛 유형의 민속조사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또 민속학의 여명기에는 일본의 인구 대다수를 점하던 농촌인구도 현재는 도시인구에 압도되어, 도시주민 및 도시의 생활양식이 일반성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대상의 변화에 대하여 현대의 민속학은 다양한 새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민속의 소멸」이 활발히 논의된 1970~1980년대에 걸쳐서는, 도시민속학의 붐과 미국민속학의 영향을 받았던 도시전설 연구가 융성했다. 또 1990년대 이후는 관광인류학의 영향을 받아 지역개발·관광화의 연구, 문화재 제도의 연구 등 현대사회의 체계와 지역의 관계를 묻는 움직임이 늘었다. 더욱이 이 시기에는 국민국가론 비판의 문맥으로부터 야나기다 구니오의 민속학 관점에 대한 비판적 검증이 활발히 이루어져, 야나기다 민속학이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유랑민(漂泊民) 등의 이른바 산카サンカ,「서민이 아닌 사람」, 성性을 주제로 한 연구에 초점을 맞추는 일도 늘었다.

또한 한국과 대만, 중국, 몽골, 동남아시아 등에서 비교민속학의 관점에서 현지조사를 실시하고, 유럽의 마을을 조사하는 시도도 나타났다.



재야의 학으로서의 일본 민속학


전후 학문으로서 민속학의 체계가 대략 완성되고 대학 등에서는 연구가 활발해졌지만, 민간에서 연구활동이 수축된 것은 아니고 ‘재야’와 ‘아카데미즘’이 혼재 또는 병립하는 일본 민속학의 독특한 연구 체제가 존재한다.

‘재야’에서는 전쟁 전부터 일본 각지에 지방학회라 부르는 학회, 연구회가 조직되어, 지역에 뿌리를 둔 연구활동이 이루어지며 일본 민속학의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모임의 이름에 都道府県의 이름을 딴 단체가 많다. 석불(석조물), 특정 종파 등의 전문특화된 연구단체도 많이 설립되어, 지역과 분야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자치단체 향토지 및 문화재 조사에도 활약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민속학 관계 대학원 교육이 충실해지고, 국학원대학과 성성대학成城大学, 카나가와神奈川대학, 츠쿠바대학筑波大学 등이 유명하다. 또 1950년대에 정규 학과, 연구과 외에 학생과 졸업생, 교직원 등을 대상으로 한 연구회, 학생 동아리가 많이 설립되었다. 정과正課 수업 등과 연계하여 연구와 교육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국학원대학, 성성대학 등의 학생동아리), 민속조사(민속채집)과 자료 수집에 특화되거나(중앙대학의 연구회 등) 형식, 목적은 다양하지만 모두 민속자료 수집과 연구자 양성에 크게 기여하는 등 일본 민속학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연구단체의 대개는 입회할 때 직업, 학력, 주소 등을 따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고, 일본 민속학회도 민속학에 관심이 있고 회비납부 등의 일반적인 조건을 제하고는 회원자격을 특별히 정하지 않고 있다(단 회원에 의한 소개와 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회원자격을 특별히 정하지 않아, 민속 현상에 관심이 있는 것 말고는 서로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기능이 있다. 연구를 하는 사람의 직업은 민속학의 연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 말고 회사원, 공무원, 자영업, 주부, 농업, 무직(정년퇴직한 사람 등) 등 다양하고, 학생과 대학 등의 연구자에는 민속학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사람(전혀 관계 없는 분야)도 있다. 이에 의해 학회 등에서의 발표와 모임에서 자칭으로 거주하는 都道府県의 이름과 성명을 대는 관습이 행해져 왔는데, 최근에는 재적연구기관 이름을 자칭하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덧붙여서 연구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연구자가 재직한 회사명을 직함으로 대거나 무직·주부 등의 직업명으로 자칭하는 일은 거의 없다.

연구직 이외의 사람이 연구를 계속하는 데에는 본인의 의지, 가족의 협력, 경제적 여유(연구비용은 원칙적으로 자기부담. 특히 민속 현지조사할 때 교통비와 체재비, 자료의 구입비가 많아짐), 시간적 여유 등의 일정한 요건이 필요해진다. 봉급생활자(특히 공무원)는 겸직이나 부업이라고 오해받거나 “취미에 얽매여 있다”고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직장의 이해도 필요한 경우가 있다.

민속학 연구자의 정의도 이렇게 된다면 모호해진다. 현지의 義経와 弘法大師의 전설 등이 실화라는 것을 실증하려고 자료 수집에 분주한 사람이나 이른바 향토사학자라고 불리는 사람에는 민속학 연구자를 자칭하는 사람이 가끔 있어, 누구나 ‘연구자’라고 자칭해 버리는 문제도 있다.

일본 민속학의 중심적인 기관은 일본 민속학회이고, 본격적 연구를 행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회원으로 있다(이 학회의 역사에 야나기다柳田가 크게 관여하고 있기에 “反 야나기다柳田”의 연구자 가운데는 가입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일본 민속학회 회원=민속학자라는 구도가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또한 이 학회의 회원에는 회원명부의 정보 범위에서 최근에는 대학 등의 연구자, 박물관 학예사, 문화재 관계자 등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또 현재 이 학회의 임원은 거의 전원이 대학 등의 연구자라서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

연구를 시작한 계기도 다양하여, 단순히 자신이 사는 지역의 문화 풍습에 관심을 가진 것에서부터 다른 분야(사회학·역사학·경제학·농학 등)의 연구자·출신자가 인접 분야로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사람, 민속 현상에 관련이 있는 취미(역사 답사, 여행, 철도, 등산, 신사와 절 순회 등)를 통하여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사람 등 다종다양하다. 민속학 자체가 다른 여러 학문 등과 밀접하게 유기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 대학생이 민속학 관계의 대학·연구실·동아리에 들어간 이유로는「시골이 좋다」, 「요괴와 도시전설에 흥미가 있다」, 「민요, 옛이야기가 좋다」, 「박물관에 취직하고 싶다」 등을 드는 사람이 많고, 입학 초기에 학문 체계로서의 민속학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비교적 적다.

민속학계에서 재야와 아카데미즘에 관한 논의는 직업 등에 따른 구별(차별), 일본 민속학사에서 많은 민간 연구자의 공적 등의 문제가 있기에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았다(최근에는 2005년 제57회 일본 민속학회 연보에서「재야의 학문과 아카데미즘」이 주제로 다루어졌다). 논의를 잘못하면 학력과 직업에 따라서 대립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또 대학 등의 연구자 중에는 재야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이들을 배제하고 대학 등에 소속된 직업 민속학자만 민속을 연구하는 「보통의 학문」이 되어야 하며, 고고학과 천문학과 같이 민속학자와 민속학 관심자라는 형태로 느슨하게라도 구별해야 한다는 논조도 있다.

재야성을 띤다는 특성으로 대학 관계자를 제외하고 상하관계나 사제관계도 거의 없어 다른 분야의 연구자로부터 자유로운 학풍이라 평가받는 일도 많다. 그러나 반면 “아마나 연구”라는 분위기나 특히 지방학회에서 학술연구적인 사고와 논문집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정서적·취미적이란 야유를 받거나 요괴와 사투리, 민요, 전래동화 등 “아마추어”가 하는 분야를 포함하는 것이기에 민속학을 비과학적인 것이라 파악하는 사람도 많다. 또 다른 학문 분야와 여러 취미, 해외의 민속학계 등과 연대와 공유할 수 있는 분야가 많지만, 지금까지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일본 민속학계는 앞으로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민속학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물론, 이러한 다른 분야와 사회와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 모색하게 된다.



일본 민속학의 분야


역사민속학, 도시민속학, 종교민속학, 환경민속학, 비교민속학, 지역민속학, 불교민속학, 여성민속학, 응용민속학, 민구학, 신화학, 민속예능연구, 구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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