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되살아나는 제국의 농법
빈곤, 게릴라, 알코올중독의 악순환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잉카제국 시대의 인구는 1000~1500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에서 들어온 천연두와 홍역 등에 면역이 없던 선주민들은 잠시도 버틸 수 없었다. 약 100년 동안 인구는 20%로 격감하고, 페루의 인구가 잉카 시대 수준으로 회복한 것은 겨우 1960년대에 들어서부터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안데스의 마을들은 고립과 심각한 사회적 소외에 계속 시달린다. 농촌에는 근대적인 설비가 부족하고, 전통적인 유산 제도에 따라 형제들끼리 토지를 분할하기에 수확량이 낮은 영세 농업은 더욱 소규모화 되어갔다. 게다가 1980년대 전반에 걸쳐서는 테러와 폭력의 바람이 불어왔다. 페루의 가장 가난한 지역의 하나인 팜파치리Pampachiri의 농민 후안 길렌Juan Guillen 씨는 이렇게 말한다.
“생존이 최우선 과제이고, 농업은 그 다음 두 번째였습니다.”
게릴라 조직인 ‘빛나는 길’과 페루 군 사이의 전투에 휘말리는 것을 두려워해 많은 가족이 도시로 떠났다. 지역사회는 부서지고 젊은이들도 더 나은 삶을 구하러 리마나 다른 도시로 나가고, 많은 농촌에서는 농사땅이 버려졌다. 지역사회의 조직과 제도 체제도 약화되었는데, 정부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고 쭉 무시해 왔다.
그런데 지금 미미하지만 안데스에 다시 희망의 불씨가 켜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계속 도시로 나가고 있지만, 이 10년 동안 몇 가족이 도시에서 산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돌아와 농사를 시작한 사람도 있다. 이런 움직임의 발단은 한 사람의 여성 앤 켄달 박사가 잉카 시대의 고대 계단밭을 재건하는 데에 정열을 태워, 1977년 쿠시차카 트러스트Cusichaca Trust를 설립하면서 시작된다.
사람들을 먹이는 100만㏊의 농지와 관개 체계
아직 대학원생이던 켄달 박사가 페루에 처음 방문한 때는 1968년이다. 잉카의 건축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쓴 그녀가 처음에 흥미가 있던 분야는 고고학이었다. 하지만 학위논문으로 잉카의 농촌 계획을 연구한 뒤, 농촌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1974년 이후에는 해마다 페루에서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
원래 트러스트는 마추픽추 유적과 가까운 쿠시차카Cusichaca 계곡에서 고고학 조사를 하려고 설립된 것이다. 쿠시차카 계곡의 발굴 조사를 통해 잉카가 생기기 전부터 골짜기에 많은 사람이 살며 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초기의 계단밭과 관개수로도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페루에서 가장 처음으로 위라Wira 또는 와리족Huari族이 계단밭과 초기의 관개시설을 구축한 것은 서기 600년 무렵이다. 계단밭을 만든 처음 목적은 토양침식을 막고자 해서였다. 하지만 계단밭과 관개 체계는 잉카 시대에 더욱 세련되게 발전했다. 예를 들면 쿠시차카 계곡에 계단밭을 만든 주목적은 잉카 시대 가장 신성한 작물이던 옥수수를 마추픽추에 공급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 쿠시차카 계곡에는 겨우 15세대만 자급 농사를 짓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토양학자와 식물학자, 환경학자의 조사를 통해 관개용수와 계단밭이 온전히 기능하던 잉카 시대에는 5000명을 먹여 살렸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쿠시차카 계곡의 농경지.
스페인 사람들이 건너오기 이전 잉카제국의 농업 생산성은 매우 높았다. 페루의 안데스 산지에서 고고학 조사를 통해 예전에는 100만㏊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단 사실도 밝혀졌다. 그리고 안데스 전역에 만들어놓은 수로가 본래대로라면 불모의 급경사인 계단밭에 물을 대어 몇 십만 명에게나 식량을 제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쿠스코 주변의 수로 대부분은 몇 세기나 방기되어 무너져 있다. 계단밭의 75%나 버려지고, 쿠시차카 계곡에서도 계단밭의 대부분은 무너지고 방치되어 유적이 되었다. 사람들이 과밀화된 도시로 나가고 있는 것도 안데스의 농사땅이 인구를 부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계단밭이 기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선주민들이 강제로 이주를 당해 괴멸하다시피 인구가 감소하여 계단밭을 유지할 노동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회경제적인 변화 때문이다.
되살아난 고대의 계단밭
그렇다면 고대의 기반 시설을 다시 쓰면 어떨까? 고대에 계단밭에 물을 대는 데에 쓰였던 7㎞ 길이의 퀴슈아르파타Quishuarpata 수로를 수복하는 시범사업이 선정되어, 잉카의 유적을 고쳤던 경험이 많은 석공들의 지도로 현지 주민들도 이 일을 함께했다. 수복 작업은 1983년에 끝났고, 쿠스코대학 농업연구소 KAYRA와 협동하여 계단밭도 다시 손보았다. 그 성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용수를 끌어오는 것으로 몇 세기나 불모지였던 약 45㏊의 농경지를 되살리고, 전통적인 안데스의 곡류인 퀴노아quinoa와 키위차kiwicha, 옥수수, 콩 등을 생산해 자급만 하던 현지 주민들이 과잉 생산된 농산물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수로를 고치고 있는 현지 주민들.
우루밤바Urubamba 계곡의 농민들도 쿠시차카 계곡의 성공에 감동하여, 1987년 쿠스코에서 80㎞ 떨어진 파타칸차 계곡 근교의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에서도 트러스트에 지원을 요청했다. 오얀따이땀보에서도 낮은 생산성이 지역사회의 정체와 인구 유출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 국제개발성(Departmen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으로부터 자금 원조를 얻어 여기에서도 수로의 재건이 시작된다. 농민들은 현지의 교사 겸 석공의 지도를 받으며 일했고, 석공은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나아갔다. 재건에는 4년의 세월이 걸렸는데, 1994년 6.4㎞의 푸마마르카Pumamarca 수로가 부활하고, 약 160㏊의 계단밭에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계단밭을 온전히 경작하면 건기에도 350가족의 2000명 이상이 풍족히 감자를 생산할 수 있다.
키위차. 이름 모를 서양 여성 분께는 죄송.
고고학과 전통 기술
켄달 박사는 말한다.
“수로는 크고 복잡하고, 서로 경사도 조금씩 다르고 배수구도 달리 있습니다. 적당히 물을 대려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건해야 합니다.”
현지 주민이 잉카 시대의 전통 기술로 수로를 수복할 수 있었던 것은, 켄달 박사가 건축과 고고학에 깊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잉카의 관개와 계단밭을 만드는 기술은 세련되었고, 그 건설에 투입된 노력에도 놀랄 만한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약간 경사진 산중턱의 돌담은 농지를 안정시킨다. 강한 햇살로 낮에 달구어졌다가 밤에 열을 방출한다. 그것이 미기후를 만들어 작물을 서리 피해로부터 지킨다.
계단밭을 재건하는 과정.
전형적인 건설 방법은 점토질 흙바닥에 현장에 있는 큰 돌을 앉히고, 그 위에 작은 돌과 흙을 겹쳐서 쌓아 나아간다. 그리고 가장 위의 1m는 특별히 잘 고른 좋은 흙을 쌓는다. 그것은 계단밭이 있는 곳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노동자들이 등에 지고 일부러 운반해온 것까지 있다. 이 구조 덕에 계단밭에는 빗물이 천천히 스며들고, 배수성도 좋은 동시에 토양의 보수성과 온도를 높이고 미생물 활동도 촉진한다. 그 결과 싹이 빨리 잘 트고 작물의 생육을 자극하여 수확량을 높일 수 있다.
“습윤한 환경에서 유기물은 서서히 분해되어 순환합니다. 화학비료는 전혀 쓰지 않으며, 농약은 자연스러운 생물자원 체계를 파괴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본래의 유기농법입니다.”
켄달 박사는 말한다. 잘 만든 계단밭은 거의 완전한 생물자원 체계로서, 관개를 통해 토지 생산성을 배로 늘릴 수 있다.
수로의 재건에는 일반적인 다른 개발 프로젝트에서 쓰는 시멘트가 아니라, 점토·모래·돌·선인장과 현지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재료만 썼다. 재건에 참여했던 오얀따이땀보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왜 근대적인 시멘트가 아니라 전통적인 점토를 쓰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켄달 박사는 말한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이 지역에서는 전통 기술이 바람직합니다. 점토는 시멘트보다 훨씬 물을 잘 머금고, 습도와 점성을 유지합니다. 시멘트는 지진이 나면 깨져서 산산이 부서져 버립니다.”
지금은 주민들도 전통 기술을 신뢰하고 있다. 수로 재건 프로젝트를 감독한 현지의 데이비드 카날David Canal 씨는 말한다.
“우리는 선조의 기술을 재발견했습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보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많은 기술이 있습니다. 근대적인 진보를 거절하지는 않지만, 고대의 방법이 더 알맞다면 우리는 그것을 써야 합니다.”
앞글에 나온 팜파치리는 약 2500명이 거주하며 목축업이 기간산업인 지역인데, 여기에서도 점토·돌·모래·선인장과 전통 기술을 사용해 수로와 계단밭을 재건하여 농민들의 수입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있다. 프로젝트의 기술자 톰 니칼스Tom Nickalls 씨는 말한다.
“관개용수 덕에 농업 생산은 급증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하늘바라기(天水) 농업에서는 어느 지역에 농사를 3년 지으면 다음에 약 7년은 묵혀야 합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물이 부족해서입니다. 그렇지만 계단밭에 관개를 하면 적어도 해마다 한그루짓기는 할 수 있고, 때로는 두그루짓기까지 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곧 10년 동안 3번 농사짓는 대신 10~15번이나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트러스트의 더글라스 월쉬Douglas Walsh 씨는 말한다.
“우리는 농민들이 계단밭에 관개하는 것을 지원하고자 외부에서 가져오는 시멘트와 다른 자재가 아니라 현지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자재를 활용합니다.”
시멘트는 몇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실어 와야 하고, 값도 비싸 자급 농민들의 수입을 넘어선다. 하지만 고대의 기술을 쓰면 아무것도 들여올 필요가 없다. 프로젝트에 관여한 앞에 나온 농민 후안 길렌 씨도 고대 기술을 이렇게 평가한다.
“잉카 사람들은 우수한 농학자였습니다. 그들은 지속적인 농업을 이해하고 있었죠. 스페인에게 정복당하면서 이것은 후퇴했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농업보다 광업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지역사회를 활성화시키다
가장 처음 계단밭이 재건된 쿠시차카 계곡에서는 지역사회 전체가 활성화되면서 주민들이 큰 성취감을 맛보았다. 그런데 이런 성과는 지속될까? 10년 뒤 이에 대해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러자 현지의 학교는 커졌고, 최초의 예배당이 건설되었으며, 인구도 늘어나 있었다. 젊은이들이 마을에 머물도록 할 유인책도 만들고 있었다. 이 시범사업의 실험을 통해 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간단하지만 참신한 개념이 등장했다.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던 지역의 잠재력을 활용하고, 최소한도의 기술을 지원하여 가난한 농촌 지역사회도 과제의 대부분을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관개 수로의 재건 및 연구와 함께 트러스트는 실천적인 농촌 개발에도 착수해 왔다. 예를 들면 오얀따이땀보에서는 오랜 세월 토지를 적절히 관리하지 않아 환경이 나빠지고 있었다. 혹사된 토양은 심하게 침식되어 고대에 있었던 숲마저 사라졌다. 그래서 프로젝트의 농학자와 현장 기술자들은 현지 농민을 대상으로 토양보전 교육을 마련하고, 재래종 나무를 심는 대규모 계획도 세웠다. 1991년에는 처음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공동 연수와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현지 주민들은 마을 근처를 흐르는 강에서 물을 길어오고 있었는데, 그 물이 오염되어 아이들이 전염병에 걸렸고 감자 중심의 식사도 빈약하여서 영양불량 상태였다. 프로젝트에서는 샘과 상류에서 오염되지 않은 물을 파이프로 끌어오는 값싼 비용의 상수도 계획을 지원하고, 이전에는 재배되지 않았던 양배추와 양상치, 양파를 생산하는 채소 텃밭도 장려했다. 채소 텃밭은 주로 여성들이 행하고 있는데, 식사의 질을 개선하고 생산물을 판매할 기회를 가져왔다.
또 오얀따이땀보 주변의 고립된 고지대의 지역사회는 관개용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온실과 환금용 채소밭이 도입되었다. 온실에서는 지금까지는 친숙하지 않은 고추, 토마토, 시금치, 래디시Radish 등의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데, 찾아온 사람들은 온실 안의 기온이 정글처럼 따뜻하다는 데에 놀란다. 다른 지역사회의 마을 사람들이 지원과 조언을 구하고자 오얀따이땀보로 발길을 옮기게 되었다. 그들도 수로를 재건하고 온실을 만드는 기술을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트러스트는 공동 연수를 통하여 몇몇 곳의 인근 마을 대표들을 훈련시켰다.
“우리는 우리가 한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도울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라고 데이비드 카날 씨는 말한다. 오얀따이땀보의 토지에는 새로이 도시에서 돌아오는 사람을 흡수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런데 쿠시차카 근교의 차마나Chamana에서는 평균수명이 늘어난 결과 새로운 가족은 늘어나지 않고 있다. 계곡의 외부 세계와 닿아, 의료와 가족계획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어서 인구는 안정화되고 있다.
“우리는 이 곤란한 승리의 은혜를 너무나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쿠시차카에서 재건된 계단밭에서 농사짓는 빅토르 파체코Victor Pacheco 씨와 그의 아내는 말한다.
켄달 박사의 쿠시차카 트러스트 프로젝트는 우루밤바 계곡에 있는 오얀따이땀보의 상류인 빠따깐차Patacancha에서 거의 10년을 활동해 왔다. 페루 농업성의 혼농임업 활동부국 프로나마체크스Pronamachecs와 협력하고, 농민과 농업 기술자 사이의 토론회를 통하여 계단밭을 재건하는 기술을 보급해 왔다. 또 대규모 선행 연구와 완전한 주민 참여에 바탕을 두고 개개의 가족·교사·지역사회의 대표와도 긴밀히 협동하고, 지방의 기관 및 마을부터 주 정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관과도 관계하며, 성별·건강·영양·환경보호·여성의 권한 위양과 폭넓은 프로젝트에 종사해 왔다. 통합 프로젝트는 1997년에 종료되었는데, 이후에는 현지에 NGO가 만들어져 각 지역에서 많은 국제개발기관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켄달 박사는 말한다.
“지역 개발에는 엄청난 자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안데스의 생활을 조사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찾아낸 가장 잘 익은 영역입니다.”
쿠시차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현지 주민들.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다
하지만 켄달 박사는 과거의 전통을 존중하더라도 감상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한다. 또 트러스트도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2000년 전의 사람들에게 분별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아주 적은 선택지밖에 없었고, 잘못도 저질렀습니다. 우리는 그를 통해 진보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박사의 고고학 연구는 현재의 환경 문제에도 빛을 던져준다. 예를 들면, 오얀따이땀보의 북동부에는 4000년이나 연속해서 농업이 이루어졌다는 증거가 있다. 그런데 켄달 박사는 부대밭 농업으로 인한 난개발이 약 1000년에 걸쳐 그 지역을 황폐하게 만들고 사막화했다고 지적한다. 꽃가루 연구를 통해 토양의 회복에 몇 세기나 걸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이 보여주는 바는 당시와 지금의 문제가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개발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고고학 연구는 미래에 귀중한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박사는 사회경제적 인자와 마찬가지로, 기후 변동도 초기의 농업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알아냈다. 예를 들면 와리와 잉카가 관개 체계를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당시의 가뭄이었다.
고대 잉카제국의 기초를 형성한 것은 농업의 혁신과 그 성공이었다. 그리고 선주민들의 농촌 지역사회가 시간을 들여 어떻게 환경과 대화해 왔는지를 분석하여 우리는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이는 남미만이 아니라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확립된 기술은 현대를 아우르는 문제에도 간단하고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Sally Bowen, Bringing the Inca Canals back to life, People & the Planet,18 Apr,2001.
(2) Peruvian farmers learn from history, BBC World Service's Discovery programme, 22 May, 2003.
(3) Andean Farming Communities, Cusichaca Trust Website.
(4) Cusichaca Rural Development Projects, Cusichaca Trust Website.
(6) Beginnings at Cusichaca, Cusichaca Trust Website.
(8) Agricultural Terraces and Irrigation Canals, Cusichaca Trust 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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