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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씨앗-작물

농진청의 다양한 벼 품종 - 신품종 위주

by 石基 2010.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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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4일 농촌진흥청 벼 연구소를 방문하여 실험 논을 보았습니다.

8만 5천 평의 면적에 10만 종의 벼가 있다고 하더군요.

아래의 사진을 보시면 대략 그 규모가 짐작이 되실려나요?

 

 

원래는 11만 평에 가까운 넓이였다는데 도시가 개발되면서 길로 잘리고 뭐하고 하다가 이렇게 줄었다고 합니다.

과연 1906년 일본이 주도하여 건립된 권업모범장다운 규모입니다.

농진청에서는 2006년 설립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는데... 모르겠습니다. 엄밀히 말하여 정통성을 따지자면 해방 이후부터 따져야 하는 것이 아닌지...

아무튼 이곳에서 다양한 벼를 볼 수 있어 재밌었습니다. 토종 벼도 꽤 있는 듯했으나, 그건 내일(9월 13일) 다시 한 번 찾아가서 더 보도록 하고(그나저나 비가 오지 않아야 할 텐데요...) 먼저 새로 육종한 신품종을 중심으로 살펴보지요.

 

먼저 동진1호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동진강 근처의 시험장에서 육종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직파에 알맞다고 하니 건답직파를 원하시면 이 벼를 이용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추청(아끼바리)입니다. 도열병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네요.

 

 

 

다음 남평. 이것도 전라도 쪽의 지명에서 따왔네요.

 

 

 

 

 

일미는 맛이 좋다는 뜻에서 붙였다고 합니다.

 

 

 

일품도 '정말 일품이네'라는 말에서 왔지요.

 

 

 

동진을 더 개량한 신동진입니다.

 

 

 

이 화영이란 벼는 이삭이 정말 탐스러웠습니다. 화영華榮일지 무엇일지 모르겠는데, 이삭만 보면 정말 화려합니다.

 

 

 

철원 오대쌀로 잘 알려진 오대벼입니다. 조생이라더니 이날 벌써 가장 먼저 누렇게 익어가고 있더군요. 어제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 님의 말씀을 들으니, 2년 전 이 오대벼의 쌀겨가 캐나다 밴쿠버에 수출되어 100g에 5달러에 팔리고 있었답니다.

 

 

 

다음은 칠보입니다. 최고품질이란 글자가 보이시나요? 가장 뛰어난 맛을 보여주는 벼에게만 주어지는 최고품질을 획득한 품종입니다.

 

 

 

호품. '품질이 좋다'는 뜻일까요? 이 벼는 수확량이 엄청나서 300평에 600kg까지 나온다고 합니다. 참으로 엄청난 육종 기술입니다. 더구나 밥맛도 최고품질이라고 하니 말 다했지요. 앞으로 이 벼가 우리나라의 들녘을 차지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벌써 추청 대신 호품이 서서히 그 재배면적을 넓혀 가고 있다고 하네요. 일본에서 들어온 고시히카리, 아키바리 등등의 벼가 이제 우리 기술로 육종한 벼로 바뀔 날이 왔네요.

이건 여담인데, 이곳에서 연구하고 있는 분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 정책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더군요. MB라고 부르며 호품처럼 좋은 벼를 육종해도 걱정이랍니다. '아니 이렇게 수확량이 많은 벼를 개발하면, 안 그래도 쌀이 남아 도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한 소리 듣고 있답니다. 농업정책이 산으로 가나 봅니다. 머릿속에 "돈"만 들어 있는 사람들이 어찌 국가의 요직에 앉을 수 있는지... 국민의 먹을거리와 교육, 의료는 적어도 100년은 내다보며 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몇 년 앞만, 코 앞의 돈만 생각하는 인물들을 가려서 뽑아야겠습니다.

 

 

 

오대벼에 이어 운광이란 품종이 육종되었습니다. 오대와 같이 조생에 추위에 강한데다가 최고품질의 맛을 보장합니다. 서서히 철원 오대쌀도 철원 운광쌀로 바뀌지 않을까 예측해 봅니다.

 

 

 

다음은 미광입니다. 이건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어서 설명을 잘 듣지 못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다산이 아니라, 多産입니다. 얼마나 벼가 많이 나는지 특성도 초다수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한달 뒤(6월 25일)에 심은 똑같은 다산인데, 곤파스란 태풍에 스르륵 쓰러져 버렸습니다. 참, 농진청에서 그러는데 벼를 심는 가장 좋은 시기를 5월 25일 무렵이라고 하더군요. 옛날 농사에서는 6월 25일쯤이었지요. 그때는 밀보리 이모작도 해야 하고, 지하수를 뚫어서 쓰는 게 아니라 빗물을 기다렸다가 모를 내야 하니 장마가 찾아오는 무렵인 그때가 가장 적기였습니다.

 

 

 

다음은 한마음입니다. 이 벼도 '초다수'입니다.

 

 

 

가만히 벼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니 이런 노란 줄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벼를 심는 줄 간격입니다. 못줄을 하나만 띄워도 두 개를 쓰는 효과를 낼 수 있겠네요. 그만큼 더 반듯하게 더 빨리 모내기를 마칠 수 있겠습니다. 이곳은 실험 논이다보니 모든 벼를 손모로 심는다고 합니다.

 

 

 

현미 전용으로 나온 백진주입니다. 껍질을 벗기기 쉽겠네요.

 

 

 

설명을 들으며 나아가다가 발견한 거미입니다. 실험 논에는 농약도 거의 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검은 껍질의 흑설입니다. 검은 눈이란 뜻이겠지요. 이름을 재밌게 잘 지었네요.

 

 

독특한 색이라 한 장 더 찍어 보았습니다.

 

 

 

다음은 쌀에서 향이 난다는 미향입니다. 향기나는 쌀을 처음 맛본 건 김포의 자광미로 지은 밥을 먹을 때였습니다. 그곳에 취재를 갔을 때였는데, 마침 밥이 있다며 주셨지요. 한 입 먹어보고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냥 몇 숟갈 정신없이 퍼먹었습니다. 그때의 맛이 각인되어 지금 다시 떠올려도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이 벼도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목우입니다. 소를 키우는 벼라는 뜻입니다. 과연 키가 엄청납니다. 저보다 조금 더 크니 2m나 되더군요. 만생인데 이제 이삭이 조금씩 패고 있었습니다. 이삭은 잎의 중간쯤 되는 곳에서 패고 있었습니다. 참 독특한 벼를 육종했네요. 앞으로 벼 수확량이 너무 많다고 난리치면 그냥 논에다 이 벼를 심어서 사료용으로 수확하고, 그걸로 먹여서 살찌운 소나 먹어야 할까요?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나오는 입구에 마침 몇 종류의 옛날 벼가 있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걸 마저 보고 마치겠습니다.

 

먼저 다마금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 많이 심던 벼입니다.

흔히들 이 벼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토종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본이 새로 육종한 품종입니다.

일본 도쿄 근처에 보면 多摩川이 있는데 그곳 어딘가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만, 정확한 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일본식으로 부르면 '다마니시키'라고 합니다.

옛날 벼의 특징이라면, 첫째 까락이 있는 것들이 많다. 둘째 잘 쓰러진다. 이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첫째는 새의 피해를 막기 위함이 아닐까 합니다. 또 둘째는 화학비료가 없던 시절, 그에 적응한 벼가 화학비료의 맛을 보고 쭈욱 엄청 자라버리기에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다마금의 이삭이 잘 보이시죠? 저 까락이 수확하고 관리하는 데에는 불편하지만 새들을 막는 좋은 무기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번에 기장과 조를 심었는데, 기장은 참새에게 거의 먹혔지만 조는 그렇지 않더군요. 둘의 차이는 바로 수염이 있냐 없냐였습니다. 거기에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 까락은 괜히 있는게 아니구나... 새에게 먹히는 걸 막고자 생긴 거구나... 옛날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관리하기 어려운 까락을 괜시리 두었을까? 바로 새 때문일 수도 있겠다...

 

 

 

다음은 은방주입니다. 긴보즈銀坊主도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품종입니다. 아무튼 이것도 옛날 벼인 만큼 화학비료 냄새만 맡아도 엄청 자라기에 잘 쓰러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화학비료를 주지 않는 곳이라면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요.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무조건 좋은 것도, 무조건 나쁜 것도 없습니다. 벼의 특성을 알면 그걸 이용해서 그에 맞는 조건에다 활용하면 될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조동지입니다. 이 벼야말로 진정한 토종이라 할 수 있지요. 일제강점기 농사시험장에서 우리나라의 토종 벼를 싸그리 조사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조선 중부 이하의 전역에 걸쳐 가장 많이 심던 벼가 바로 이 조동지였습니다. 동지란 벼슬을 가진 조씨가 누구였는지 몰라도, 그 사람이 소유한 논에서 육종이 된 것일까요? 그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 벼는 일제가 들여온 은방주, 다마금과 달리 조선사람들이 가장 널리 심던 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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