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인도의 전통농업 - 전통 제방 조하드 2

 

 

 

지역사회의 힘을 믿다

 

라헨드라 싱Rajendra Singh 씨는 가뭄에 고통을 받던 라자스탄주 동부의 물을 보전하는 데 성공했다. 싱 씨가 일하기 시작했을 무렵 이 지역은 물이 너무 부족하여, 정부에서는 지하수의 높이가 낮아지는 ‘어둠의 영역’이라고 분류했다. 하지만 10년 뒤 지하수의 높이는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회복되어, 정부에서는 더 이상 보호가 필요 없는 ‘밝은 영역’이라고 분류했다. 아라바리강의 기적은 국제사회에서도 주목을 받아 많은 상을 받았다. 싱 씨는 엘 로드로 수맥을 찾는 사람,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고, 이 성과로 2001년 로마에서 라몬 막사이사이상도 받았다. 하지만 라헨드라 싱 씨는 수상하면서 오늘은 라자스탄주 사람들의 전통 지혜가 승인된 날이기도 하다며 “자신은 단순히 정리만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농촌 지역사회가 높이 평가받은 것입니다. 물을 보전한 기적은 우리의 조직에게 원조를 받은 마을 사람들의 협력으로 가능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생활수준을 개선하고자 시도하면서 인내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지역사회는 창조적으로 사회변혁을 이룰 잠재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잠들어 있는 지혜의 창고를 열어 그것이 기능하도록 장려했을 뿐입니다.”

 

현지의 행정 당국은 죽어 있었다. 그래서 라헨드라 씨 들은 관료 기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 마을 사람들과 대면했다.

 

“일에 착수했을 때, 우리는 정부의 원조 계획과는 전혀 다른 전략을 채용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활동에서도 마을 사람들을 이해 당사자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지속성을 확보하게 했습니다.”

 

최초의 조하드는 완성하는 데에 3년이 걸렸지만, 4년째에는 50개의 조하드를, 5년째에는 약 100개를 쌓을 수 있었다.

 

“최초의 고팔푸라 마을에서는 성과를 거두는 데 3년이 걸렸습니다. 그렇지만 이듬해에는 45개의 마을에서 같은 일을 달성했습니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해서 그렇습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 성공한 이야기를 알려, 인접한 마을이 힘을 모아 또 다른 성공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데 영향을 미친 점입니다.”

 

라헨드라 싱 씨는 활동 상황을 파악하고자 마을 사람의 일원이 되어 함께 살았다.

 

“그렇지만 말로는 이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흙과 물을 지역사회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한 뒤에만 방법론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과 함께 살아 보지 않으면 그들이 이해하는 물과 흙의 관계를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전통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타룬 바라트 조합은 외부에서 아무런 원조를 쓰지 않고도 지역의 지식을 적용하는 것만으로 사업을 지속가능하게 반복할 수 있었습니다.”

 

조하드 건설의 수익자인 마을 사람들이 현금 등으로 부담한 경비는 건설비의 1/4에서 1/3이었다. 나머지 경비를 부담한 것은 타룬 조합으로, 조합은 포드 재단Ford Foundation, 옥스팜Oxfam, 다양한 유럽의 정부 기관, 인도 정부와 라자스탄 주정부에게 지원을 받았다. 또 라헨드라 싱 씨 말고 직원 모두는 마을 출신으로 뽑아, 이러한 경비가 현금이나 고용의 형태로 마을로 이어졌다.

하지만 조하드를 건설하기 위한 모든 노동력을 제공한 것은 현지의 마을 사람이었다. 또 상근직원에 더해 230명의 시간제노동도 있었고, 몇 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조하드의 설계와 건설을 지원했다.

외부에서 전문가와 기술자를 초빙하지도 않고, 조하드를 쌓을 곳을 정하는 일부터 구조를 설계하는 일까지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참가로 건설되었다. 그 공사비와 유지관리비도 지역사회가 부담하고, 스스로 정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필요 요건을 만족시켰다.

이러한 활동이 전개된 배경에는 라헨드라 싱 씨의 경력이 있다. 그는 학생시절부터 자야 나라얀Jaya prakash Narayan의 삼푸르나 크란티Sampurna Kranti 혁명운동에 관여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천연자원을 이용하기 위하여 대중을 동원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라헨드라 싱 씨가 1985년 가장 처음으로 마을을 찾았을 때는, 마을의 극단적인 반대에 부딪쳐 테러리스트라는 딱지가 붙기도 했다. 또 1990년대 전반 사리스카 호랑이의 성역을 보전하면서는, 대리석 광산의 이익과 대립하여 광산 소유자들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았다. 라헨드라 싱 씨는 이렇게 기억한다.

 

“조하드를 건설한 뒤에도, 사리스카 주변의 못이나 호수의 물높이가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곧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지요. 사라지는 물을 더듬어 찾아가니, 광산 측이 파놓은 구덩이에 모여 있었습니다.”

 

싱 씨 들은 이 문제로 법원에 고소를 하여 진정서가 최고재판소까지 올라갔다. 1991년 법원은 생태적으로 위태로운 아라발리 언덕에서 계속 채굴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1992년 5월에는 환경산림성이 언덕에서 채굴을 금한다는 통고를 내렸다. 최종적으로는 공원에 크나큰 손상을 입히고 있던 성역 주변과 완충지대에서 운영되는 470개의 채석장이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성역의 물무늬 특성을 이해하고 검소하게 살다

 

조하드가 성공한 것은 성역의 물무늬 특성을 활용한 데에 있다. 라헨드라 싱 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 17년, 우리는 알와르, 자이푸르Jaipur, 사바이 마도푸르Savai Maadhopur, 카롤리Karoli와 각지를 건조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100년 동안의 강우 그래프를 연구하면, 강우량이 불규칙하지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6년 비가 적은 해의 다음에는, 2년 정도 비가 많은 해가 이어집니다. 이처럼 주기가 되풀이되고 있다면 알맞은 방법으로 빗물을 모아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라헨드라 씨는 다른 지역에서도 라자스탄주처럼 가뭄을 극복할 수 있다며 “확실히 할 수 있습니다. 인도만이 아닌 아시아 전역에서 가능합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끝도 없이 물을 이용하는 생활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물이 한정된 자원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강수량과 인구밀도는 균형을 이루지만, 물을 이용하는 데에는 균형이 전혀 없고 누구나 더 많은 물을 쓰고자 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가난한 사람의 버터기름(poor man's ghee)처럼 물을 쓴다면, 어떤 마을의 누구도 인도에서는 물 부족에 직면하겠죠.”

 

인도에서 가장 강수량이 적은 곳은 라자스탄주의 자이살메르Jaisalmer와 바드메르Badmer의 건조 지대인데, 그곳에는 집마다 음용수나 집에서 쓸 물을 받는 물통과 일반 용도나 가축이 마시는 못(talab)도 있다. 그들은 지하에 있는 모래에서 음료수를 얻고자 염분을 머금은 지하수의 지층을 석고로 분리하는 쿠인야Kuinya를 써 왔다. 한편 비하르Bihar주처럼 물이 넘쳐 해마다 홍수가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넘치는 물을 거두는 아하르-파인Ahar-Pyne이라 부르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갠지스강에서 넘쳐 오른 물은 파인이라 부르는 수로를 통해 최대 30~40㎞나 이동하고, 아하르ahar라고 부르는 물통을 채운다. 이것이 1년 동안 물과 모래와 찰흙의 중간 굵기의 흙이 지속적으로 분배되도록 해왔다.

이처럼 인도의 전통 지혜는 자연과 함께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살기 위하여 사회에 유용한 실용적 방법을 개발해 왔다. 지역의 다양한 기후를 존중하고, 혹독한 기후나 지리 조건에서도 각각의 지역에 알맞은 특정 과학과 관련 공학, 기술체계를 개발했다. 게다가 과거 몇 천 년 동안이나 매우 건전한 상태로 숲과 물 등의 천연자원을 보전한 데에는, 인간은 자연의 테두리 안에서 살되 탐욕을 부리면 안 된다는 환경에 우수한 전통문화(dharma/parampara)가 있었다.

 

 

전통의 손실과 그 결과

 

그런데 과거 20년 동안 이 고대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라헨드라 싱 씨는 산업혁명, 교육혁명, 녹색혁명, 개발혁명, 민영화와 정보기술혁명과 유럽에서 건너온 ‘자연을 개발해야 한다’는 사상이 자연에 대한 외경이란 관념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경고한다.

 

“식민지 정부에서 독립한 근대국가는 농촌 지역사회에서 그 권리와 책임을 빼앗고, 심지어 하천마저도 법적(벌목 허가, 하천의 직선화)으로 탈취했습니다. 교육혁명은 전통과 구두 지식이 빈곤의 원인이라고 사람들을 호도했습니다. 근대 교육과 근대화란 헛된 꿈이 지역사회의 조직을 해체해 버렸습니다. 독립한 뒤에는 모든 권력을 장악한 정부가 개발과 사회주의적인 ‘행복’을 관리한다는 환상을 심었습니다만, 그것도 지금은 이미 무능한 현실임이 밝혀지고 자본주의 제국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다국적기업과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첨단기술, 유전자조작 기술과 IT는 더욱더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겁니다.”

 

라헨드라 싱 씨는 거듭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기술자의 사상이라고 지적한다.

 

“교육을 받은 기술자들은 공유자원의 책임 있는 경영을 재발견하고 있는 듯합니다만, 조하드와 같은 입증된 고대의 전통, 지역의 전통을 무시하고, 인공적으로 지하수를 늘리는 일처럼 번거로운 기술을 쓰고 있습니다. 기술자들은 석회나 열대림 대신에 시멘트, 벽돌로 만든 돔 대신에 콘크리트 슬라브를 씁니다. 곧 자신들의 한정된 이해 수준으로, 전통과 그것이 지닌 관련성을 끌어내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서양 사회에는 지속성이 없다고 경고한다.

 

“오랜 세월에 걸친 우리 사회의 노예제도와 부정적인 힘이, 우리를 장애자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마을은 믿음의 부족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만약 누군가가 그들과 하나가 되어 도덕심을 높인다면, 사회는 자각하고 새로운 희망을 품고 움직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한 목발이 되었습니다. 지역사회가 그 힘을 회복하고 자립하여 움직이기 시작하기까지에는 목발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열의를 뒷받침하는 많은 젊은이의 열광을 등에 업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양을 보면, 그 나라들은 사치품으로 변환하려고 천연자원을 모조리 캐내고 있습니다. 이 방식으로 천연자원은 고갈되고 맙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사례가 아닙니다. 바야흐로 우리가 우리의 통찰을 써서 적절하게 천연자원을 이용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시대는 우리의 것이 되겠죠.”

 

 

선주민의 지식을 다시 찾다

 

인도에서는 물을 얻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공통된 점은 아래와 같다.

 

지역 자원과 기술을 활용

분산된 지역사회에서 경영하는 물 관리

천연자원의 지속가능한 보전과 활용

선주민의 지식을 이용한 체계의 부활

전통적인 체계를 이해한 제3자의 개입과 선주민의 지식 활용

토지, 물, 숲 주변에서 지역사회가 계획에 참여하여 활동

옛 시설의 수복과 새로운 시설 구축에 참가

마을과 유역에서 새로운 조직의 활동

 

라헨드라 싱 씨가 실천한 방식은 옛날 찬드라굽타 마우랴Chandragupta Maurya(기원전 321~297년)의 조언자이자 대신이기도 한 카우틸야Kautilya가 쓴 통치문인 아르타샤스트라Arthashastra와도 비슷하다. 아르타샤스트라는 각 지역사회가 운영하는 물 관리의 법적·경제적 범위를 모두 망라한다.

예를 들면 통치자는 수로 건설에 참가한 사람에게 토지, 도로, 나무, 시설을 제공해야 했다. 참가하지 않는 사람은 기부금을 지불해야 하고, 시설의 이익을 얻을 권리도 부여되지 않았다. 또 소유권이나 새로운 시설과 고대의 시설, 수리된 시설의 유지에 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가령 자신의 수원水源이 있는 곳일지라도 관개시설의 모든 수익자는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서 새로운 시설을 만든 사람은 세금이 공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 규정은 수로의 경제적인 면을 보호하는 조항에 지나지 않고, 진짜 동기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지역사회의 못과 물통, 수로 건설에 참가한 동기는 자존심의 문제로서, 그것을 종교적 공적이라 생각했다.

또 이러한 고대 전통 공학의 기술적 측면은 실천과 구전으로 전승되어 서서히 완성되었기 때문에, 근대와 같은 의미의 기록 자료는 거의 없다. 게다가 인도에서 이 지식은 존경받는 연장자나 구루(종교지도자)의 지시에 바탕을 두는 실천으로 전승되었다. 몇 세기나 걸쳐 토양, 물, 숲, 야생생물, 환경 전체를 현지 주민의 공유자원이라 생각한 것이 지역사회가 받아들인 세계관이었다.

라헨드라 싱 씨의 활동은 교육이나 숲 보호와 여러 갈래에 걸쳐 있는데, 그는 약용식물이나 그 이용법도 연구하고 있다. 비캄푸리에서 타룬 조합은 아유르베다 센터와 실험실도 가지고 있다. 싱 씨는 대학원에 다닐 때 힌두문학을 공부했는데, 그 전공 분야가 아유르베다 의학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아유르베다의 의사라면 약으로 사람들을 치료했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넓히려고 합니다. 이는 사회가 믿음과 책임감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요. 나는 사람들의 영혼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인용문헌

 (1) Aman Namra, A river is reborn,The Hindu Business Line,June05, 2000.

 (2) Volume 18 - Issue 17, Aug. 18 - 31, 2001.

 (3) Civil Society Information Exchange Pvt. March 2002.

 (4) Patrick McCully, Water-Harvesting in India Transforms Lives, World Rivers Review,Dec2002.

 (5) Rajendra Singh, Indigenous systems of water management and their modern applications, Organiser, 16 Aug, 2009.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