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다. 하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아침 매표소가 열기 전에 겸사 겸사 관광명소를 들른다. 입장료를 안 내도 되는 것은 물론, 오늘 돌아다녀야 하는 시간을 뺏지도 않을 만큼만 쬐끔 시간을 낸다. 정말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하시다. 어지간하면 다들 이런 곳에 와서는 놀러다닐 것 같은데 말이다. 하하
아무튼 그 짤막한 시간 동안 중문에서 가까운 천지연인가 천제연인가 하는 폭포를 구경했다. 어디인지도 확인 못하고 쓱...
다음은 주상절리가 있는 곳으로 차를 타고 가서 다시 한 번 쓱...
이거 무슨 수학 시간도 아니고 돌이, 돌이, 육각형이다. 하하. 이 무슨 일이...
그래서 이상하다 싶어 건너편을 보니 거기도 돌이 육각형이 삐죽 솟았다. 바다 색은 기가 막히네. 내가 본 바다 가운데 두 번째다. 첫 번째는 96년에 강릉에서 부산으로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본 바다 색깔. 그건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디 지중해를 가서 보면 달라질까나?
중문을 들른 뒤, 서귀포 5일장에서 왕콩(경북 영주)과 노랑갯나물(노란빛이 남)을 구입했다. 이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참을 돌다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런 걸 구입했다. 다음은 저 위에 돈네코인지 섭코인지로 올라갔다. 오르는 길에 집도 없고 한참 헤매긴 했다.
돈네코로 오르던 길에 바라본 제주도 남단. 군데 군데 허옇게 보이는 것은, 놀라지 마시라! 눈이 아니라 비닐하우스다! 비닐의 물결이 펼쳐진 모습.
상법호촌이라 지도에 표기된 곳으로 올랐는데 몇 집이 없다. 제주는 지도에 표기된 것과 실제 있는 집과 차이가 많다. 아예 사라진 마을도 많은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여기는 사람이 좀 사는 듯하여 다행이다. 일단 차를 세우고 돌아다니는데 무가 심상치 않다. 다른 곳에서 본 것과 달리 엄청 동그랗고 크다. 이건 단지무?
혹시나 하여 주인이 누구인지 찾았으나, 주인은 없고. 일단 많은 것 가운데 두 개만 뽑고 주인집으로 생각되는 곳에 편지와 선물을 남겼다. 그랬더니 나중에 전화가 왔다. 확실히 현물을 주고 오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많다. 아무것도 주지 않고 그냥 오면 도둑질한 것 같아 영 찝찝하지만, 뭔가 보답을 주고 오면 그렇지 않다.
돈네코에서 내려와서 여기저기 돌아봤지만 다들 감귤만 있다. 이럴 바에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한 번 인도할까? 70년 전 다카하시 노보루가 찾았던 마을로 이끌었다. 어쨌든 가는 길이고 하니 그렇게 간다한들 크게 시간을 뺏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찾은 보목리. 볼레낭이란 제주말의 나무가 많아 이런 이름이 정해졌다고 한다. 안완식 박사님께서 확실히 해주시기 위하여 아는 후배 가운데 제주 출신에게 전화하여 볼레낭이 뭐냐고 물으니, 보리수 나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보리수 나무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여기 제주도는 날씨가 따뜻하여 축축 늘어지는 나무가 주종이라고 알려주셨다.
70년 전에도 서 있었을지 모르는 팽나무. 여기는 보목리다. 이 마을을 좀 돌아다니다 할머니들을 만났는데, 토종은 둘째치고 다른 건 물어보기도 힘들어 관두었다. 다음에 찾아가면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은 보목리. 일단 Keep!
그리고서는 다시 차를 타고 출발!!! 표선면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본 동백꽃. 너무 예쁘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잘 꾸몄는데,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천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소박한 멋도 아니고, 아무튼 동백은 제주를 다니면서 안완식 박사님 덕에 참 잘 보았다. 내가 본 동백만 해도 여느 곳의 동백은 별 것 아닐 정도... 하하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읍민속마을을 들렀다. 민속마을이니 뭐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돌았는데 민속 말고는 볼 것이 없었다. 똥돼지... 새를 엮어 지붕을 이은 집... 말뼈로 만들었다는 골다공증 치료제... 똥돼지 볶음이 나오는 밥... 오매기술을 기대했는데 그 집은 문을 닫아 마실 수 없었다.
똥돼지... 그래도 먹을 것도 주고 물도 주니, 그냥 전시만 한 것과는 대우가 다른 셈.
물이 귀한 제주는 이렇게 빗물도 활용했다. 지금 돌아다녀보니 제주는 지하수를 너무 뽑아 써서 앞으로 물 부족으로 큰일이 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다시 이 시대로 돌아가야지 뭐.
성읍마을의 성. 이건 성이라기보다는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성이다. 성의 본연의 목적인 군사적인 방어는 하나도 없는 듯하다. 솔직히 나 같은 사람들이 달라붙으면 여기저기서 넘어갈 수 있는 정도다. 그러니 이건 목적보다 수단으로 세운 하나의 상징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주도 사람들을 이걸 통해서 눌러보자고 생각했겠지. 섬마을 사람들이 워낙 드세니 그런 권위도 필요했을지 모른다. 이런 짓을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놈들도 똑같이 반복했고, 그 뒤에 들어온 미군정을 업은 이승만 정권 사람들도 반복했으니... 뭍에 것들이라면 이가 갈릴 만도 하지 않는가?
성읍마을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다시 표선읍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 과정에서 불었던 바람, 정말 차를 흔들거리게 만드는 바람이었다. 감귤밭 사이로 난 길을 헤맨 기억, 지도에도 나오지 않아서 많이 당황했다. 마을 표시를 보고 갔건만 뜻하지 않은 폐촌, 그럴 때는 등에 땀이 쓱 흐를 정도로 같이 간 분들께 미안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이렇게 글로 푸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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