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8일, 구름은 잔뜩이지만 날은 따뜻하다. 어제 질펀하게 놀았던 성락재星落齋에 잠시 들렀다. 잠시 볼일을 보러 밖에 나갔다 제주의 밤하늘에서 쏟아질 듯한 별을 보고 떠오른 것이 이 집의 이름이 되었다. 이 집의 주인 어른은 아스팔트와 관련된 큰 사업을 하고 있는 분인데, 매화에 미쳐 전국에 있는 이름난 매화는 전부 제주로 모아왔다. 오늘은 출발에 앞서 잠시 그걸 보러 온 것이다.
좋은 시설에서 건강히 자라고 있는 무수한 매화나무들. 12월 말인데 벌써 꽃망울이...
어떤 것은 벌써 활짝 피기까지 했다. 제주라서 가능한 일이...
오늘은 대정읍 신평리 쪽부터 훑어 나가려 한다. 열심히, 부지런히 돌아다니지만 오늘도 별 소득은 없다. 중산간과 해안의 마을은 확실히 차이가 크다. 신평리 364번지에서 땅가지라는 것만 하나 얻었다. 그것도 주인이 자리를 비워서 대문의 명패를 살피고, 우편물을 뒤져 간신히 주소와 이름을 알아낸 것이다. 그와 함께 77번지의 김재범 씨의 집에서는 호박을 하나 얻었는데, 이 호박은 골이 없는 게 특징이다. 그 이후에는 길거리에 자라고 있던 염주와 부용, 댑싸리를 채집했다. 댑싸리는 얼마나 키가 크던지 내 키를 훌쩍 넘어 2m 이상이었다.
길거리에서 채집한 댑싸리. 키가 얼마나 큰지 담장 위로 삐죽 올라왔다.
길을 헤매고 돌아다니면서 본 한 집의 창고 벽. 보통 흙만으로 벽을 치는데, 제주에서는 돌이 흔해서 그런지 돌이 박혀 있다.
제주의 돌담. 참 잘 주워다 쌓았다. 이런 일을 하는 기술자도 따로 있었다는데 다음에 만나면 재밌겠다.
이제 중산간으로 올라간다. 이번 행선지는 서광동리. 중산간으로 올라가는 만큼 뭔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 제주는 흙과 돌이 물을 잘 머금지 못하고 뱉기에 꼭 물이 있는 곳에 마을이 생겼다고 한다. 요즘 새로 생긴 마을이 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제주에서 마을이 있는 곳은 물과 관계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헌데 요즘 중산간에서까지 농사를 지으면서 지하수를 엄청 퍼올려 농사를 짓고 있다. 이게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언젠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제주를 다니면서 본 개천에서는 물을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원래 제주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지하수를 뽑아 쓰면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이다.
서광동리에 올라 기대를 안고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한 할머니를 만났다. 가까이 다가가 인사 하고 말을 건네니, 이 동네도 다 감귤을 많이 하고 자기 집에 콩이 좀 있다고 하신다. 고정순(63) 할머니의 집인 서광동리 261번지에 찾아가서 두 종류의 준자리콩을 얻을 수 있었다. 하나는 올씨이고 다른 하나는 늦씨인데, 늦씨가 더 맛있다고 한다. 크기는 더 작고 노랗다. 이후는 더 볼 곳이 없어 다시 차를 타고 더 윗쪽인 동광리로 이동했다.
동광리 499번지에 사시는 고순조(66) 할머니 댁에서는 한창 김장을 담그고 계셨다. 딸인지 며느리인지 두세 명과 함께 열심히 속을 버무리고 계신 할머니께 맛있는 김장김치도 하나 얻어 먹고 토종에 대해 물었다. 정신 없으신 와중에 저기 콩을 예전부터 심던 것이라며 일러주셔서 몇 움큼 얻어 왔다. 이건 장콩으로 쓰는데, 올씨이고 연두색을 띠고 있다. 더 있는 건 귀찮게 하는 일이라 생각하여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왔다.
이곳에도 일본에 나가 돈을 벌어 마을을 도운 사람의 기념비가 서 있다. 제주와 일본은 그 가까운 거리만큼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고픈 배를 안고 잠시 식당에 들렀다. 마침 동광리 마전동에 식당 하나가 보여 생각할 것도 없이 그리로 들어갔다. 다들 국물을 먹으며 속을 풀고, 곧바로 토종 수집에 나섰다.
이번은 지도로 보면 더 윗쪽이라 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곳이다. 바로 광평리라는 곳이다. 중산간이지만 너른 들이 있기에 광평리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런 곳인만큼 예전부터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토종이 있을 법하기에 기대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이곳은 너무 높아서 외진 곳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았다. 기껏해야 서너 집이 전부일 뿐이다. 이렇게 된 거 한 집 한 집 하나하나 들러서 물어보아야겠다.
광평리 200번지에 사시는 구춘옥(76) 할머니 댁에서 메밀을 하나 얻고, 광평리 192번지에 사시는 김호정(78) 할머니께는 들깨를 하나 얻고, 광평리 194번지의 박만희(75) 할머니에게는 팥을 하나 얻고, 광평리 194-2번지의 장영자(67) 할머니에게는 약콩과 덩굴강낭콩, 장콩을 얻었다.
구춘옥 할머니 댁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쟁기. 예전에는 전부 이걸로 밭을 일궈 농사를 지었지만 이제는 이렇게 먼지만 뽀얗게 앉아 있다. 그래도 어디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하고 계셔서 좋은 걸 볼 수 있었다.
광평리 192번지의 김호정 할머니. 원래는 뭍에서 살다가 제주로 들어왔다고 하신다. 나이가 들면서 몸에 불편한 곳이 많이 생겨 농사는 많이 짓지 않는다고 하신다.
광평리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마을을 들렀으나,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대신 금송을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 봤는데 나무의 모양이 참 예뻤다.
동백 공원의 산책로. 광평리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동백 XXXX 공원. 새로 조성한 산책로에 멧돌이 박혀 있어 한 장 찍었다. 어디 민속품 가게에서 한 번에 잔뜩 사다가 박아 놓았나 보다. 우리에게 과거와 전통은 이런 취급을 받고 있지 않는가 생각하게 만든다.
한참을 내려와 서귀포시 쪽의 군남동에 들렀다. 이곳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감귤나무 천지다. 다른 건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감귤 밭만 신나게 헤매고 다니다가 한 집의 텃밭에 차를 멈췄다. 저쪽 구석에 갓이 자라고 있는 걸 안완식 박사님이 놓치지 않고 발견하셨다. 그렇게 군남동 947번지 구남준(57) 씨의 집에서 적갓 씨를 얻었다. 이건 파란 것보다 맛이 좋고 향이 짙으며 맵다고 한다.
군남동의 적갓. 때깔이 참 좋다.
이후 서귀포 쪽으로 내려가 중문 쪽에 숙소를 잡으러 가다가 보니, 마침 오늘이 중문 장날이었다. 장을 한바퀴 돌며 토종이 없나 뒤지고, 안완식 박사 님께 뜨뜻한 개량한복을 한 벌 얻어 입었다. 이거 토종보다 더 큰 수확이다. 참고로 중문 5일장은 3, 8일, 모슬포는 1, 6일, 서귀포는 4, 9일이란다.
오늘의 숙소는 천제모텔에 방을 잡았다. 밤에는 제주 여성농민회의 김정임 선생님에 찾아오셔 그동안의 성과와 결과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라도와 가파도의 농업 사정은 어떠한지 정보를 들었다. 두 섬은 어업이 주라서 별 건 없을 거라 한다. 오늘은 이렇게 하루가 지났다. 이제 사흘 남았다.
'농담 > 씨앗-작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종 수집 조사 후기 25일째 - 제주의 민속 (0) | 2009.09.27 |
---|---|
토종 수집 조사 후기 24일째 - 중문을 지나 성읍으로 (0) | 2009.09.27 |
토종 수집 조사 후기 22일째 - 마침내 단지 무를 만나다!? (0) | 2009.09.22 |
토종 수집 조사 후기 21일째 - 단지 무는 오늘도 만나지 못하다 (0) | 2009.09.22 |
토종 수집 조사 후기 20일째 - 다시 집으로 (0) | 2009.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