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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농법

사람이나 짐승이나 똑같다

by 石基 2009.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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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간에서 소를 끌고 나오는 정동영 어르신. 거름의 생산기지인 외양간부터 닭장과 뒷간까지 한자리에 모여 있는 전형적인 우리의 옛 농가이다. 지게와 같은 농기구는 모두 손수 만들어 쓰신다.

 

한 해 농사의 첫 단추는 뭐니 뭐니 해도 땅을 갈아엎고 골을 타거나 두둑을 내는 일이다. 예전에는 소와 사람이 하나가 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던 일을, 이제는 편리하고 효율 좋은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비탈밭이 많아 기계가 들어가기 어려운 두메산골이나 기계에 익숙하지 않으신 어르신들이나 소를 부릴 뿐이다.

그 때문에 쟁기질을 취재하고자 일소를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물론 잘 몰라서 그렇지 지금도 곳곳에는 많이 있을 테지만, 접근하기 쉬운 가까운 거리로 범위를 좁히다 보니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 해마다 봄이면 신문이나 방송에 꼭 쟁기질하는 모습이 나온다는 것을 떠올렸다. 곧바로 신문을 뒤져 찾은 분이 홍성군 서부면 신리에 사시는 정동영(68) 어르신이다.

정동영 어르신은 14살부터 쟁기질을 시작했다고 한다. 동네 아저씨들이 쟁기질하고 있으면 그걸 어깨 너머 유심히 보다가 하루는 아저씨께 부탁하여 본인이 직접 하게 되었다. 15살 때부터는 논 10마지기씩 갈았다고 하시니, 경력 54년의 훌륭한 쟁기꾼이시다. 50년 남짓 일소를 길들이다 보니, 이제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처음 농우소(일소)를 사올 때부터 한눈에 이게 제대로 길이 들지 아닐지를 아신단다. 정동영 어르신만의 농우소 판별법은 이렇다.

첫째, 꼬랑지(꼬리)가 길 것. 왜 꼬랑지가 길어야 좋은지 여러 번 되물었지만, 그건 꼬랑지가 길어야 나중에 팔 때도 좋은 값을 받기 때문이라는 말씀만 들었다. 아마 꼬리가 길면 균형 감각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닐까?

둘째, 뱃대(가슴팍)가 벌어져 있을 것. 이런 소는 처음에 길을 잡기는 힘들어도, 일단 길만 잡히면 힘이 좋아 일을 잘한다고 한다.

셋째, 발굽이 좀 벌어지고 무뚝하며 곧을 것. 발굽이 벌어지지 않으면 쟁기질할 때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한다. 하긴 사람의 발만 생각해도 발가락이 하나라도 없으면 제대로 걷기도 힘들다. 무뚝해야 하는 것은 논밭에서 일하며 돌 같은 것을 밟아도 발굽이 깨지거나 상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소도 사람처럼 성질이 제각각이라 애초에 성질 사나운 소는 사지를 말아야 한다고 하신다. 그걸 어떻게 구분할 수 있냐고 여쭈니 소도 사람과 똑같다며 표정만 보면 사나운 소는 대번에 얼굴에 드러난다고 한다.

소를 사오면 길을 들이기 시작하는데, 지금 키우고 있는 소는 사온 것이 아니라 내가 본 사진에 있는 소가 낳은 새끼라고 한다. 4년 전 그때 사진에 나온 소는 이미 다른 사람한테 팔고, 지금 소는 한창 길들이고 있는지라 아직 쟁기질은 서툰 편이다. 일소는 주로 길을 잡기 어려운 외지의 노인네들이 와서 사는데, 처음 사온 값의 2배를 받는다고 한다. 만약 장사꾼에게 넘기면 15~20%의 거간비를 뗀다고 하니, 가능하면 뭐든지 직거래가 서로에게 좋겠다.

 

발굽이 무뚝하고 벌어진 것이 좋은 일소의 조건이다. 

 

 

길들이기

 

소는 보통 어미젖 떼고 대여섯 달이면 코뚜레를 꿴다. 옛날에는 젖 떼고 석 달이면 코뚜레를 꿰는데 이제는 그때보다는 늦어졌다. 코뚜레를 만드는 나무는 전국 어디를 막론하고 노간주나무를 쓴다. 이곳에서는 노가지나무라고 부르는데, 이 나무만이 불에 살살 구우며 둥글게 말 수 있단다.

코뚜레를 꿰고 2~3년 지나면 본격적으로 일소로 길들이기 시작한다. 길을 잡을 때는 늘 사람과 함께 끄싱게를 끌며 길을 오간다. 소의 성질에 따라서 너덧 달 남짓 걸린다고 한다. 소가 끄싱게를 끌 때는 처음인지라 성질을 부리기 쉬운데 그럴 때면 살살 달래며 코뚜레를 잡고 따라다녀야 한다. 소를 길들이는 일은 일방적으로 소가 사람에 맞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그 소에 맞춰 길들여지는 과정인 듯하다.

소가 끄싱게를 끄는 일에 익숙해지면 큰 돌을 얹고도 끌게 하여 점점 쟁기질에 알맞은 힘을 키운다. 그렇게 쟁기질을 하기까지 길들이는 공은 보통 2년 가까운 시간이 든다고 한다. 처음 아무것도 모를 때는 대충 몇 달만 길들이면 소로 쟁기질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제대로 일소가 되는데 2년 남짓 걸린다는 말에 그 세월하며 돌보는 데 드는 공력이며 왜 사람들이 소를 버리고 농기계를 부리게 되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럼 소는 몇 살까지 일할까? 얼마 전 엄청난 인기를 누린 ‘워낭소리’에 나오는 소는 무려 40살까지 할아버지와 함께했는데, 정동영 어르신의 사정은 어떨까? 보통은 12살까지 일을 시킨다고 하신다. 드물게 20살까지 부린 적도 있는데, 그렇게 나이가 들면 사람하고 똑같이 이도 빠져서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는다고. 사람이나 동물이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슬픈 일일까, 아니면 자연스레 시드는 일일까? 아직은 문득문득 나이가 든다는 게 슬플 때도 있다. 속 깊은 울림을 내는 통이 되는 일, 곧 곱게 늙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 어르신을 만날 때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건 나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쟁기질의 실제

 

이제 본격적으로 쟁기질하는 일로 넘어가자. 먼저 소를 부리는 소리는 이렇다. 앞으로 가자고 할 때는 “이랴”, 제자리에 서라고 할 때는 “와”라고 외친다. 소가 똑바로 나아가지 않거나 오른쪽으로 돌 때는 오른손에 잡은 고삐줄로 툭툭 치며 “어뗘뗘뗘” 외치고, 특별히 왼쪽으로 방향을 바꿀 때는 “쩌쩌쩌쩌”라고 하며 고삐줄을 왼쪽으로 넘겨 톡톡 당겨 준다. 나중에 쟁기꾼과 눈빛만으로도 통하면 자기가 알아서 서야 할 때 서고 가야 할 때 간다고 하니 참 대견할 뿐이다.

하루에 쟁기질할 수 있는 넓이는 아침 6~7시쯤부터 오후 6~7시까지 점심에 1시간 정도 쉬면서 한다면, 논이 7~8마지기(1마지기 200평), 밭은 1700~1800평쯤이다. 그렇게까지 일하면 당연히 지치기 마련이라, 그럴 때는 미리 찹쌀을 물에 담갔다가 먹이면 힘을 냈다고 한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소먹이로 넘어갔다. 예전에는 소에게 여름에는 깔(꼴)을 베다가 먹이고, 겨울에는 여물을 쑤어 줬다. 하지만 요즘에는 사료에 물과 짚을 섞어서 먹인다고 한다. 사료만 먹이면 소가 먹고 체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짚을 섞어 주는 것이 좋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사람이 밥은 굶을지언정 소는 꼭 먹였다고 하니 소가 얼마나 중요한 구성원이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짚을 섞여 먹이는 건 소의 소화 기능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병 때문이기도 하다. 사료만 먹이는 게 아니면 병에 걸리는 일도 없다는 말에 소 역시 먹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옛날처럼 짚으로만 소를 먹이려면 소 1마리에 적어도 논이 1200평은 있어야 한단다. 그러니 예전에는 논이 많은 집에서나 소를 길렀다는 말이 이해된다. 그렇게 소를 먹이지 못하는 집에서는 소를 빌려다 쓰고, 사람이 이틀 정도 가서 일해야 했다.

작물마다 쟁기질하는 방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여쭈니 돌아오는 답이 걸작이다. “대중 있깐유.” 그렇다. 농사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조건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그에 알맞게 방법을 달리할 뿐이다. 그건 이론으로 정립된 것도 아니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오랜 세월을 거치며 체득된 삶일 뿐이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어 끈질기게 어르신의 답을 듣고자 했다. 가을에 밀·보리를 심을 때는 쟁기질로 삭갈이(밭을 전체적으로 싹 가는 방법)하여 쇠스랑으로 골만 타서 심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외줄(쟁기질로 2번을 오가서 약 60㎝의 두둑을 짓는 방법. 두거웃지기라고 함)을 지어 심기도 한단다. 그리고 거기에 콩을 심을 때는 밀·보리 수확이 끝날 때쯤 자라도록 시기를 맞춰 심기도 하고, 밀·보리를 거둔 다음 그 자리에 콩을 뿌리고 쟁기질하여 흙을 덮기도 한다. 참깨나 들깨 같은 경우에는 보통 네거웃지기(쟁기질로 4번을 오가서 두둑 하나를 짓는 방법. 이럴 경우 1~1.2m의 두둑이 생김)로 두둑을 만들어 심는다고 한다.

밭을 쟁기질하는 일은 그래도 논을 가는 일보다는 쉬운 편이라고 한다. 논은 보통 깊이 20㎝ 정도는 갈아야 하기에 그렇다고 한다. 양력 3월, 그러니까 얼음이 풀리면 무조건 아시갈이(초경初耕, 애벌갈이)를 시작하고, 그러고 나서 한 달 뒤에는 두벌갈이(재경再耕)에 들어간다. 두벌갈이할 때에는 물을 넣고 갈기 때문이기도 하여 더 쉽게 갈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써레질은 그보다도 훨씬 더 쉽고.

옛날에는 할 수 있으면 꼭 가을갈이를 했다고 한다. 가을갈이를 해 놓으면 땅이 썩으니까 다음해에 농사가 더 잘되기 때문이라 한다. 가을갈이를 하면 확실히 풀도 덜 나고, 비료도 더 적게 줘도 된다고 하니, 부지런한 농부는 가을갈이를 빼먹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건 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밭도 그렇단다.

 

 

외양간에서 흘러나오는 소의 오줌이 저절로 두엄자리로 흘러가게 설계하셨다. 두엄자리는 외양간 바로 앞에 두어 똥을 치우고 거름을 내기 쉽게 만들었다.

 

 

 

경제논리가 아닌 생명의 논리

 

정동영 어르신 댁의 소는 벌써 두 배나 새끼를 깠다고 한다. 요즘은 수의사가 인공수정을 시키지만, 15년 전만 해도 인근의 덕전리에 씨소가 있었다. 수의사가 인공수정을 시키는 데는 3만 5천 원의 비용이 드는데, 예전에 자연스럽게 짝짓기시킬 때는 지금보다 비용이 훨씬 쌌다고 한다. 소의 짝짓기는 수소가 암소에 올라타기만 하면 일이 끝난다고 한다. 덩치는 크지만 올라타자마자 짝짓기가 끝난다는 말에 재밌었다. 짝짓기의 성공 여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알 수 있는데, 새끼가 들어설라치면 암소가 짝짓기하자마자 풀썩 주저앉는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새끼가 들어서지 않는다니 신기할 뿐이다. 인공수정으로 새끼를 넣으면 혈통도 좋고 더 잘 크지만, 예전의 소와 비교하면 일시키기는 훨씬 좋지 않다고 하신다. 왜 그런 차이가 나는지는, 겨·풀 주며 관리를 더 세심하게 잘하고 주인과 정이 들어 그렇지 않겠냐고 하신다.

가끔 축사에서 살고 있는 소를 보면 살아 있는 생명이 아닌 고깃덩어리로 보일 때가 있다. 살아 있는 생명이건 아니건 관심을 쏟고 정을 나누면 그만큼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무엇이 된다. 쟁기질도 그런 맥락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경제가치와 효율 면에서 따지자면 쟁기질은 농기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굳이 쟁기질의 경제적 효율을 따지자면, 풀을 줄여서 노동력을 절감하는 효과와 땅을 기름지게 해 비료를 적게 써도 된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그밖에 보이지 않는 효과와 장점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시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정동영 어르신께서 어째서 편리하다고 생각하시는 기계를 놔두고 굳이 소쟁기질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은근슬쩍 여쭈어 보았다.

“남한테 갈아 달라고 아쉬운 소리 안 하고 내 편리한 대로 할 수 있고, …….”

평생을 한눈팔지 않고 자식을 낳아 기르며 성실하게 농사만 지으신 어르신, 그분의 입에서는 특별한 뜻이 담긴 말씀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소와 함께 가족을 지키며 살아오신 우리의 평범한 이웃 어른이실 뿐이다. 우리의 문화와 역사는 뜻이 거창한 사람이 지켜온 것이 아니다. 우리와 그 이웃, 이름 없는 그네들이 꿋꿋하게 지켜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동영 어르신 댁의 광. 한눈에 보아도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저기 놓인 씨앗도 토종일 법하다. 그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쟁기질하는 날 찾아뵙고 여쭈어 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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