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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 회화나무, ‘큰 인물이 나온다’
김석기의 <노거수>를 찾아서 ⑦ 양반집서 심었다는 회화나무

 

 

수암에는 전에 몇 번 온 적이 있지만, 이 길로는 처음이라 조금 헤맸다. 마침 놀이터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놀러 나와 계셔서 뭐 주워들은 것 좀 없을까 다가가 인사를 여쭈었다.

“할머니, 여기 큰 나무가 어디에 있어요?”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하시는데 벌집을 건드린 것 같다. 지난 겨울 토종을 수집하러 다녔을 때도 그랬다. 할머니 한 분을 붙들고 말을 붙이다 보면 이런 씨앗도 나오고 저런 씨앗도 나오는데, 경로당 같은 곳에 가서 여러 할머니들께 여쭈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대강 나무의 위치만 파악하고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럼 다들 여기서 오래 사신 건가요?”

이 물음에는 어째 대답이 영 시원치 않다. 다들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으셨단다. 안산을 다니다 보면 토박이를 만나기가 참 힘들다. 참빗으로 훑듯이 다녀야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수박 겉핥기식으로는 더더욱 그렇다.

어쨌든 할머니들이 알려주신 대로 따라가니 마침내 큰 나무 한 그루를 찾았다. 그건 바로 회화나무다. 회화나무는 옛날부터 양반집에서 심기로 유명한 나무다. 잎사귀를 본 분은 잘 알겠지만 아카시처럼 전형적인 콩과인데, 원산지인 중국 북부에서 들어왔다고 추정한다.


 

중국에서는 집에 회화나무를 심어야 큰 학자나 인물이 나온다고 여기고, 출세한 사람이 나오면 그 상징으로 뜰에 심기도 했다. 그래서 영어로는 Chinese Scolar Tree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그 영향을 받아 양반집에서 주로 이 나무를 심은 것이다.

처음 이 나무를 만난 것은 서울에서였다. 정독도서관 입구에 보면 큰 나무가 하나 서 있는데, 그 나무가 회화나무였다. 그에 얽힌 추억은 없어 더 이상 떠오르는 건 없지만, 아무튼 그 나무 덕에 회화나무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다. 여기 수암에 서 있는 회화나무는 다른 어느 곳의 나무 못지않게 멋들어진 모습을 뽐내고 있다.

 

 

밑동은 어른 너댓이 둘러 안아야 품에 담을 정도로 굵다. 다행히 주변에 집이 없어 마음껏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을 수 있어 이렇게 잘 크고 있다. 장상동에서 보았던 은행나무의 초라한 모습에 비하면 정말 떳떳한 기품을 느낄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원줄기에서 자라고 있는 새끼 나무다. 등산객들이 오가며 재밌다고 다들 쳐다보고 한마디씩 나누는 걸 보았는데, 확실히 여느 나무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나무의 생리를 잘 모르니 그것이 왜 그런지는 전문가에게 물어봐야겠다.

 

마침 나무 밑에는 갓을 뜯고 계신 두 아주머니가 계셨다. 차림으로 보아 등산객은 아니신 듯하고, 혹시 이 나무와 관련하여 뭔가 재미난 이야기가 없을까 말을 건넸다.

나무를 찍는 내 모습이 특이하다고 여기셨는지 이건 사진을 찍어 뭐하냐고 그러신다.

그냥 멋있어서 남기려고 한다며 받아넘기고 이야기를 시작하니, 원래 살기는 저 아랫동네 그러니까 장하동 쪽에 산다며 오늘은 나물이나 캐러 나왔다고 하신다.

그래서 이 동네는 잘 모르신다고. 그러면서 저기에도 큰 나무들이 많으니 거기도 가서 사진을 찍으라고 일러주신다.

말씀하신 곳은 관아터라는 직감이 왔다. 모르고 지나다닐 때는 ‘큰 나무가 있구나’ 하며 다니던 길인데, 이렇게 의식을 하며 다니니 또 새롭다. 정말 누구의 말마따나 아는 만큼 보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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