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인의 살 내음이 매화 향에 비견하리’ |
김석기의 <노거수>를 찾아서 ⑤ 노리울 매화농원과 농막 |
동막골에서 나와 다시 수암 쪽으로 나아간다. 수인산업도로, 곧 42번 도로는 정말 위협적이다. 어찌나 차들이 쌩쌩 달리는지 갓길로 가지만 늘 두렵다. 졸음운전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대로 이 세상과 안녕을 고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따른다. 길은 사람과 문물을 가져온다.
그래서 길은 사람 몸의 혈관에 곧잘 비유되곤 한다. 얼마나 길이 잘 뚫려 있느냐에 따라 문명의 발전이 좌우될 정도다. 경제개발을 시작하던 무렵, 가장 처음 한 일이 고속도로를 뚫은 일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으랴! 하지만 길이 너무 지나치게 뚫리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점점 사라진다. 인심이나 가치, 문화 등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저마다 개성을 지니며 어울리는 통일이 아니라 획일이 판을 치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틀렸다고 뭇매를 맞고 쫓겨난다. 요즘 사람들이 잘 구분해서 쓰지 않는 말이 있다. 그건 바로 “다르다”와 “틀리다”이다. 우린 이제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왜 누군가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지배한다’고도 하지 않았는가?
수암으로 넘어가는 야트막한 언덕 옆에 노리울이란 마을이 있다. 전부터 한 번 들러서 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잘되었다. 저 깊숙한 곳부터 무엇이 있는지,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둘러보자. 따사로운 봄 햇살을 즐기며 안쪽으로 다시 안쪽으로 찾아가니 멀리서도 대번에 매화임을 알 수 있는 향기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엄청난 매화 군락지가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매실이 유행하면서 매화를 참 많이도 심었다. 가장 유명한 곳은 아무래도 섬진강 주변일 것이다. 그러나 섬진강 매화도 좋지만 거기까지 가느라 들이는 시간과 노력, 무엇보다 에너지와 돈 대신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즐기는 건 어떨까? 매화를 즐기곤 바로 뒷산으로 올라 수리산까지 한 번에 품을 수 있다. 마이 카(My Car) 시대가 오면서 쉬는 날이면 다들 머리 싸매고 어디를 갈까 고심한다. 왜 내가 사는 동네 골목을 느긋하게 거닐며 사람을 만나고 묘미를 즐기려고는 하지 않을까? 너무 당연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찾았던 4월 초, 이 농원에는 매화가 한창이었다. 멀리서도 매화 향기에 취해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 달콤함이란 어느 여인의 살 냄새에서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 꽃냄새에 취해 저절로 발길이 매화를 향해 나아간다. 벌들도 꿀을 모으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주인아저씨를 찾으려고 한참을 돌아다니니 한쪽 구석에는 맑은 샘도 있다. 물맛이 좋구나. 이곳도 아직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의 샘이구나. 마침 물을 뜨고 있는 아저씨가 있어 이 농원의 주인인지 물었다. 자신은 주인이 아니라 이 아랫밭에 가끔 오면서 농사를 짓는단다. 농사로는 수입이 안 되고 땅은 놀리기가 뭐해서 조금 있는 땅에 먹을거리나 조금 심고 돈은 다른 일로 벌고 있다며, 물맛이 좋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럼 주인이 어디에 있는지 행방을 묻고 다시 찾아 나섰다. 혹시 들어오는 입구에서 본 할아버지가 아닐까? 닭장을 고치고 있던 할아버지가 생각나 찾아가 조심스레 이 농원의 주인이냐고 여쭈니, 맞다고 하신다. 매화가 참 좋다고 언제부터 여기서 이렇게 예쁘게 꾸미고 사시는지 은근히 기대하며 여쭈었다. 하지만 자신은 7년 전 여기에 들어오면서 매화를 심은 것이란 조금은 실망스런 답을 하신다. 오래 사신 토박이이시길 기대했는데 아쉽다. 정말 토박이를 만나기 어려운 곳이 여기 안산이다. 다들 어디로 어떻게 흩어지셨는지 모르겠다.
이 현판은 모두 할아버지께서 직접 쓰고 새기신 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四海之內皆爲兄弟(세상의 모든 것이 다 형제다)”, “桃李不言下自成跡(복숭아와 자두는 말하지 않고 스스로 이룬 것을 내려놓는다)”, “待人春風持己秋霜(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하고 자신을 다잡을 때는 가을서리처럼 하라)” 논어, 사기, 채근담에 나오는 글귀들로서, 하나하나 모두 마음에 깊이 새길 만하다. 7년 전 이곳에 들어오실 생각을 하신 것이나, 농원을 꾸미신 손길로 보거니와 보통 분이 아니신 듯하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오늘은 시간이 부족하다. 또 난데없이 불쑥 찾아온 객이니 더욱 그렇다. 언제 다시 한 번 찾아와 찬찬히 즐길 수 있길 바랄 뿐이다. |
'농담 > 雜다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암 회화나무, ‘큰 인물이 나온다’ (0) | 2009.05.28 |
---|---|
수암봉 본래 이름 ‘매봉재’, 아시나요? (0) | 2009.05.28 |
‘Welcome To’ 먹고 살기 좋은 곳, ‘동막골’ (0) | 2009.05.28 |
“내 이름 ‘시랑’을 돌려주세요” (0) | 2009.05.28 |
점성동→일동, 구룡동→이동, 시곡동→사동? (0) | 2009.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