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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문서자료

[스크랩] 24절기 해설

by 石基 2008.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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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역曆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계절의 변화를 알기 위해서다. 특히 농경 사회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농사를 짓기 위하여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데에 가장 좋은 날씨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든 달력 가운데 음력은 달의 운동에 근거하여 만들기 때문에 달의 변화는 잘 나타내지만 해의 움직임은 잘 나타내지 못한다. 계절의 변화는 해의 운동에 따라 결정되기에 음력 날짜와 계절의 변화가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음력에는 계절의 변화, 즉 해의 운동을 표시하는 24절기(또는 24기)를 도입하여 같이 사용한다. 따라서 음력은 해의 움직임을 24절기로 표시하기 때문에 태음태양력(우리가 흔히 음력이라 말하는 것은 원래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의 준말이다. 여기서 ‘음陰’은 ‘달’을 뜻하고, ‘양陽’은 ‘해’를 뜻함)이라고 한다. 즉 달(태음)과 해(태양)의 운동을 모두 고려하는 역법이란 뜻이다.

 

▲ 하늘에서 태양이 1년 동안 지나가는 경로를 황도(the Ecliptic)라고 부른다. 이는 지구의 공전운동 때문에 상대적으로 태양의 위치가 하루에 1°씩 천구 상에서 이동하여 생기는 궤도다. 따라서 실제로는 지구가 공간에서 움직이는 길이 황도다.


그러한 24절기는 해의 운동에 근거한 것으로서 춘분점春分點(해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해 적도를 통과하는 점)부터 해가 움직이는 길인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 15˚ 간격으로 나누어 24개의 점을 정하여 해가 그 점을 지나는 시기를 말한다. 이렇게 24절기×15˚= 360˚가 되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천구 위에서 해의 위치가 황도로 0˚일 때는 춘분이고, 15˚일 때는 청명이며, 쭉 나아가 300˚일 때는 대한이 된다.

이 24절기는 계절의 특성을 알려주지만 우리나라의 기후에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는다. 24절기의 이름을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 지방의 기상 상태에 맞춰 붙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처럼 인간의 지나친 활동으로 기상 이변이 심화되는 등 하루가 다르게 여러 조건이 변하는 상황에서는 점점 들어맞지 않게 될 것이다.


아무튼 절기는 이처럼 음력을 쓰는 농경 사회의 필요에 따라 양력과 관계없이 만들었지만, 해의 운동을 바탕으로 한 탓에 결과적으로 양력 날짜와 일치한다. 실제로 달력을 놓고 24절기를 보면 양력으로 달마다 4∼8일 사이와 19∼23일 사이에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절기와 절기 사이는 대부분 15일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14일이나 16일이 되기도 한다. 이는 지구의 공전 궤도가 타원형이라서 해를 15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절기를 쟀을까? “농경 사회에서는 해, 별의 움직임을 재는 천문학이 아주 중요해 조선시대에는 혼천의, 간의 등으로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했고, 이를 증보문헌비고나 칠정산 내․외편에 기록했다'고 한다.


그럼 이제는 각 절기별로 자세히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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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


봄을 상징하는 입춘은 24절기 가운데 첫 번째로 새로운 해의 시작을 의미한다. 예부터 입춘 절기가 되면 농가에서는 농사를 준비했다. 그 풍습은 아직도 남아 안산에서는 입춘을 기준으로 고추씨를 심는다. 옛날에는 아낙들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고, 남정네들은 겨우내 넣어 둔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며 한 해 농사에 대비했다. 소를 보살피고, 재거름을 부지런히 재워 두며, 뽕나무밭에는 오줌을 주고, 겨우내 묵었던 뒷간을 퍼서 똥으로 두엄을 만들기도 했다. 바야흐로 점점 바빠지기 시작하는 때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또 이날 내리는 비는 만물을 소생시킨다 하여 반겼고, 입춘 때 받아둔 물을 마시고 부부가 동침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소중히 여겼으니 아이, 특히 아들을 원하는 분들은 한 번 따라 할 만하다. 그리고 ‘입춘 한파’라고 하여 ‘입춘 추위가 김장독 깬다’고 어쩌다가 매서운 추위가 몰려와 봄을 시샘하기도 한다.

입춘날 농가에서는 대문이나 집안 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였다. 여기에는 한 해의 무사태평과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으니 미신이라 여기지 말고 전통을 지키는 것도 좋겠다. 더불어 그에는 어둡고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음을 자축하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예전에 농가에서는 이 날 보리 뿌리를 뽑아서 그 뿌리의 많고 적음으로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보리뿌리점(麥根占)을 쳤다. 여주인이 소복을 하고 땅의 신에게 삼배를 올린 뒤, 보리 뿌리를 뽑아 세 가닥이면 풍년,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또 부녀자들이 오곡을 솥에 넣고 볶을 때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온 곡식이 그 해 풍작을 이룬다고 믿었다.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 이를 ‘입춘굿’이라고 한다. 이 놀이는 지금도 제주도에서 하고 있으니 여건이 되는 분은 직접 가서 구경할 수도 있다. 입춘굿은 무당 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신방首神房이 맡아서 하고, 많은 사람들이 구경한다. 이때 농악대를 앞세우고 집집마다 방문하여 걸립乞粒(동네에 경비를 쓸 일이 있을 때 여러 사람들이 패를 짜서 각처로 다니면서 풍물을 치고 재주를 부리며 돈이나 곡식을 구하는 일)을 하고, 상주上主, 옥황상제, 토신, 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을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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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雨水


옛 세시기에 “입춘이 지나면 동해동풍이라 차가운 북풍이 걷히고 동풍이 불면서 얼었던 강물이 녹기 시작한다”고 했다. 또한 “우수․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했다. 이 말처럼 우수는 눈이 비로 바뀌면서 얼었던 땅이 녹고 따뜻한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절기라는 뜻이다.

겨울 추위가 가시고 봄기운이 온 산천에 가득하니, 산과 들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동물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이제 농부는 논밭에 있는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해 논․밭두렁 태우기를 하는 등 본격적인 농사 준비에 들어간다. 논․밭두렁 태우기는 겨울 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각종 병충해를 박멸해 농작물의 병충해를 예방하려고 시작된 풍습이다. 농약이 변변찮던 시절에 병충해 예방과 논․밭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꼭 논․밭두렁 태우기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농약이 생기고, 효과에 대한 의문과 산불 위험 때문에 점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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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驚蟄 


경칩은 글자 그대로 땅속에서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무렵이다. 개구리들은 번식기인 봄을 맞아 물이 괸 곳에 알을 까는데, 그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픈 데 좋을 뿐만 아니라 몸을 보한다고 하여 경칩일에 개구리알을 먹는 풍속이 있다. 지방에 따라서는 도롱뇽 알을 건져 먹기도 한다.

경칩에는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했다. 경칩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이날 흙벽을 바르는 지방도 있었다. 빈대가 심한 집은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면 빈대가 없어진다는 속설도 있다.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나오고, 동삼석달 땅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버러지도 꿈틀거린다는 경칩 때가 되면 담배모를 심고 과일밭을 가꾸는 등 농사가 본격화된다. 경칩 때는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완전히 겨울잠을 깨는데, 이를 '식물기간'이라 한다. 보리, 밀, 시금치, 우엉 등 겨울나기에 들어갔던 농작물들도 생육을 개시한다. 이때 바야흐로 농촌의 봄이 시작한다. 씨뿌리는 수고가 없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듯이, 경칩 때부터 부지런히 서두르고 씨를 뿌려야 풍요로운 가을을 맞을 수 있다.

동지부터 81일이 지나면(경칩 무렵) 추위가 완전히 물러가는데, 81일을 9일 단위로 나누어(9×9=81) 농부들은 구구가九九歌를 불렀다. 구구가는 긴 겨울 동안 농사를 손 놓아 게을러진 것을 추스리고, 자연현상을 관철하면서 농사 시기를 살피고자 한 것이다. 그 가운데 아홉째 마지막 경칩 무렵의 노래는 “밭가는 소의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하여 ‘구구경우九九耕牛’라 불렀다.

이때쯤이면 농가에서는 장을 담근다. 장 담그는 일은 가정의 한 해 농사라 할 만큼 중요하다. 훌륭한 장맛의 비결은 좋은 재료 선택(콩, 소금, 물)과 주부의 손끝 정성에 있다. 잘 씻어 말린 장독에 메주를 넣고, 체에 받쳐 거른 소금물을 메주가 잠길 정도로 붓는다. 그리고 고추, 참숯 등을 넣는다. 고추의 붉은색은 악귀를 쫓는다 하고, 참숯은 살균 작용을 하기에 꼭 넣는다. 장을 담근 장독에는 잡귀가 들지 못하도록 왼새끼를 꼬아 솔잎, 고추, 한지를 끼운 금줄을 쳐 장맛을 지켰다. 반찬이 변변찮던 시절 농가에서는 맛의 근원이었던 장을 무척 아꼈다. 안동 지방에서 알아준다는 종가집 종부는 “진짜 올장 담그기는 정월에 해야 해. 요즘이사 삼월도 좋고 사월도 좋지만 그러면 장맛이 제대로 안 나. 티가 쓸고, 곰팡이와 구더기가 잘 들어 장맛이 영 파이지”라고 충고한다.

날이 완전히 풀리는 경칩 때가 되면 겨우내 똥이 쌓인 변소를 푼다. 똥은 직접 논밭에 뿌리기도 하지만, 집 한켠에 쌓아 놓은 두엄더미에 파묻어서 몇 달 동안 잘 썩혀 논밭에 거름을 내었다. 두엄은 똥이나 외양간에서 나온 쇠똥, 돼지우리에서 나온 돼지똥, 염소똥, 닭똥, 누에똥 등 각종 찌끼가 섞인 거름인데, 주재료는 역시 똥이다. 금비金肥를 양약이라 한다면 두엄은 한약이라고 할 수 있다. 농토에 보약 같던 두엄은 지력을 높이는 성질이 있다. 우리 조상들이 두엄 만들기에 열을 올린 이유도 바로 지력을 높여서 생산량을 늘리려고 하는 데 이유가 있었다. 실학자 연암 박지원도 󰡔과농소초課農小抄󰡕에서 두엄이 얼마나 농사에 중요한지 밝히고 있다. 금비는 질소, 인산, 가리로 대변되는데, 우리 조상들은 금비 대신 두엄과 똥, 아궁이의 재(灰) 등을 농사에 썼다. 그것도 모자라서 땟물이나 구정물조차 거름으로 만들고, 오줌도 아무데서나 누지 말고 꼭 집에서 누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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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春分


낮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겨울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때다. 추운 북쪽 지방에서도 “추위는 춘분까지”라고 했다. 일 년 가운데 춘분부터 약 20여 일이 가장 기온이 많이 상승하는 때다. 이때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난춘暖春 시기로서 한 해 가운데 농부들이 일하기 가장 좋은 때다. 이때를 두고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루 밭을 갈지 않으면 일 년 내내 배부르지 못하다”고 했듯이, 동양에서는 이 날을 농경일로 삼고 씨앗을 뿌렸다. 춘분 때는 이웃끼리 서로 씨앗을 바꾸어 씨를 골랐다.

겨울철 언 땅이 풀리면서 연약해진 논․밭두렁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말뚝을 박았다. 또 천둥지기와 물이 귀한 논에는 물을 받기 위해 도구를 치기도 했다.

옛말에 “2월에는 천하의 만민이 모두 농사를 시작하는 달”이라 했다. 2월의 농사일은 대부분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즉 두엄 만들기, 마늘밭․보리밭 거름주기, 논에 흙넣기, 비닐하우스에 고추․참외 씨뿌리기, 과수의 가지치기, 장 담그기, 고구마 싹틔우기 등 다 들기가 바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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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淸明


음력 3월에는 청명과 곡우가 있다. 청명은 보통 한식과 겹치거나(6년에 한번씩) 하루 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매일반”이라 했다.

청명이 되면 비로소 봄밭갈이를 한다. 천둥지기나 물이 모자란 논에는 봄철 논물 가두기를 한다. 논물을 가두었다가 물이 모자란 모내기 때 요긴하게 쓰자는 것인데, 가둔 물은 대부분 봄가뭄에 마르기 마련이다. 논물 가두기는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나 농민들에게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예부터 “한식날 논물은 비상보다 더 독하다”고 했다. 농가에서는 논물을 가두어 두면 지력이 소진하고, 논갈이에 지장이 있어 기피했다. 그러나 관官에서는 이를 모른 채 일방적으로 “봄철 논물 가두기 강력 추진”하는 바람에 논물 가두기는 농민을 무시한 전시 행정의 표본이 되었다. 현재는 저수지의 확충, 농업용수의 개발, 양수기의 보급 등으로 사라졌다.

청명 때는 삐삐 또는 삘기라 부르는 띠(牙)의 어린 순이 돋는데, 군것질거리가 없던 시절에는 아이들이 다투어 뽑아 먹기도 했다.

청명․한식 때가 되면 특히 바람이 심하여 불이 나기 쉬우므로 한식날은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밥을 그냥 먹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에 충신이던 개지추介之推가 타 죽은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찬밥을 먹는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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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穀雨


곡식에 필요한 비가 내린다는 곡우는 옛날에는 농사에 가장 중요한 절기 가운데 하나였다. 곡우 때 못자리를 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농사인 벼농사의 씨뿌리기를 하는 날이므로 죄인도 잡아가지 않을 정도였다. 나라에서는 농민들에게 곡우임을 알려 볍씨를 내주고 못자리를 권장하는 행사로 법석을 떨었다. 이 무렵이면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가 내리고, 그 물로 못자리를 한다. 물이 꼭 필요한 곡우 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나 마른다”고 걱정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때 볍씨를 담그는데, 특히 볍씨를 담글 때는 여러 금기 사항이 있었다. 상가喪家에 들렀거나 부정한 일을 보고 했을 때는 집 앞에 불을 놓고 그 불을 쬐어 악귀를 태운 뒤, 정갈히 씻고 볍씨를 담가야 부정이 타지 않는다고 했다. 부정한 채로 볍씨를 담그면 싹이 트지 않아 농사를 망친다고 보았다.

음력 3월은 강풍 때문에 비닐하우스가 날아가는 피해를 입기도 하고, 고온건조한 ‘높새바람’이 불어 농작물에 막대한 해를 입히기도 한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산내린 바람(높새바람) 맞으면 잔디 끝도 마른다”고 바짝 긴장했다. 또 황사가 날아와 산천을 온통 누런 먼지로 뒤덮기도 한다.

2월 말에서 시작한 농사일을 3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진행한다. 이는 각 농작물을 심는 시기가 3월에 집중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볍씨 소독, 못자리 만들기, 고구마 싹틔우기, 시금치․배추․열무 등 봄채소 심기, 호박․고추․조 심기, 봄보리 갈기(심기), 겨울보리 아시․두벌매기, 감자 심기, 마늘 웃거름 주기 등이다.

한 해 가운데 가장 날씨가 변덕스러운 때이므로 농가에서는 늦서리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청명․곡우가 낀 음력 3월은 황사가 많은 계절이다. 몽골의 건조 지대와 중국 황하 지방에서 불어오는 황사는 우리나라 곳곳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 황사가 끼면 하늘이 누런 먼지로 뒤덮이고 가시거리가 짧아진다. 또한 햇볕을 가려 농작물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고, 각종 기관지염과 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누런 모래먼지가 만 길까지 뻗쳐 있다 하여 “황사만장黃砂萬丈”이라 부르는 황사는 비가 내리면 누런색이라고 ‘황우黃雨’라 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별 이로움 없이 해만 끼치기로 악명 높은 황사지만 농작물에 좋은 역할을 하기도 있다. 예부터 적조 방제나 물고기의 질병 치료를 위해 황토를 사용했듯이 황사는 호수의 산성화를 막는 중화제 역할을 한다. 또한 토양의 산성화를 막고 식물 성장의 촉진제 역할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사에는 식물의 영양분인 칼슘, 마그네슘이 평소 대기보다 많아서 식물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곡우 때는 한창 나무에 물이 오르는 때다. 그래서 고로쇠나무를 비롯한 나무 수맥을 받아먹으면 위장병이 낫는다 하여 즐겨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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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立夏 


입하는 말 그대로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입하가 되면 농작물도 자라지만 해충도 번성하고 잡초까지 자라서 이것을 제거하는 행사를 권장했다.

입하에 이르면 그동안 일교차가 크고 변화 많던 날씨는 안정되고, 천지만물이 무성히 자라기 시작한다. 잎새를 틔운 나뭇잎은 윤기를 더하고, 그렇지 않은 나무들은 마지막으로 싹을 틔워 푸르른 여름으로 넘어가고자 몸부림친다. 이때 마을에는 한두 그루쯤 있는 이팝나무에서 흰꽃이 핀다. 꽃이 마치 흰 쌀밥 같이 온 나뭇가지를 뒤덮으며 피는데, 꽃이 한꺼번에 잘 피면 풍년이 들고 꽃이 신통치 않으면 흉년이 들 징조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은 쌀밥나무라 부른 이팝나무를 통해 그해의 풍흉을 점쳤다.

계절의 여왕은 바로 이때다. 산에는 뻐꾸기가 울고, 들에는 온갖 나물들이 지천으로 돋아나 입맛을 돋운다. 녹음이 무성해지고 농가에서는 못자리 돌보기 같은 농사일이 한창일 때다. “입하가 지나면 여름”이라 했지만 산간 지방에서는 우박이 내려 담배, 깻잎, 고추 등 어린 모종이 해를 입기도 한다. 또 높새바람이 불어 농작물의 잎을 바짝 말리는 해를 입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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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小滿 


농가월령가에 “4월이라 맹하孟夏 소만 절기로다”라 했다. 소만이 되면 보리가 익어 가고, 산에서는 부엉이가 운다. 이때쯤이면 ‘보릿고개’란 말이 날 정도로 내남없이 양식이 떨어져 가난하고 힘겹게 연명하던 시기다.

산과 들판은 신록이 우거져 푸르게 변하고 ‘추맥秋麥’과 ‘죽맥竹麥’이 나타난다. 음력 3, 4월이면 ‘권농의 달’이라 하여 매우 바쁜 때다. 봄바람과 더불어 모판을 만들면서부터 농사일이 바빠진다. 경운기와 트랙터를 이용한 논갈이, 모판 만들고 볍씨 뿌리기, 올콩심기, 면화․참깨․아주까리 심기, 봄누에치기, 3월에 심은 채소류 관리 및 김매기, 소․돼지 등 교미시키기가 그것이다.

소만에 이르면 남쪽 따뜻한 지방에서부터 감자꽃이 피기 시작한다. 감자꽃이 필 때면 아이들은 권태응의 동시 “감자꽃”을 즐겨 부르며 놀았다.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파 보나마나 자주감자

하얀꽃 핀 건 하얀감자

파 보나마나 하얀감자


이 노래처럼 하얀꽃 핀 것은 하얀 감자가 달리고, 자주꽃 핀 것은 자주감자가 달린다. 아이들은 이 동시에다 그들 나름의 신명나는 후렴을 지어 부르며 놀았다.


조선꽃 핀 건 조선감자

파 보나마나 조선감자

왜놈꽃 핀 건 왜놈감자

파 보나마나 왜놈감자

 

자주감자는 일명 ‘돼지감자’라 불렀다. 생명력이 왕성해 우리 토질에서 잘된다. 하지만 맵고 아려서 어린애들은 잘 안 먹으려고 하여 자연히 어머니들 몫이었다. 하얀꽃 피는 하얀 감자는 맛이 좋아 아이들이 즐겨 먹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때문에 평지에서는 이어짓기 어려웠다. 자연히 맛은 떨어지지만 소출이 많은 자주감자를 많이 심었다. 요즘에야 고랭지 지역에서 재배한 씨감자가 있지만 당시만 해도 씨감자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대관령과 봉화에서 바이러스에 강한 흰 씨감자를 생산하면서 하얀 감자가 대대적으로 보급되었다. 그 결과 자주감자는 차츰 사라져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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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종芒種 


망종은 보리를 먹기 시작하고, 볏모를 심는 때다. 망종은 말 그대로 까라기 씨앗이라는 뜻이니, 까끄라기가 있는 보리를 수확하는 것을 뜻한다. 망종이 일찍 들면 보리농사가 잘되고, 늦게 들면 나쁘다고 했다. 망종까지는 보리를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을 갈아 콩도 심는다. 망종을 넘기면 모내기가 늦어지고, 바람에 보리가 넘어져 수확하기가 어렵다. 특히 보리는 “씨 뿌릴 때는 100일, 거둘 때는 3일”이라고 할 정도로 시간이 촉박했다. 보리를 거둔 뒤에는 보리깍대기를 태워야 모내기하기에 편리하다. 그리고 모를 심어도 빨리 사름(뿌리 활착)한다. 그래서 보리를 다 거둔 논마다 보리깍대기 태우는 연기로 장관을 이룬다.

농가에서는 이맘때쯤이면 보리 수확과 모내기가 바로 이어져 무척 바쁘다. 이때의 바쁨을 일러 “발등에 오줌 싼다”고 했다. 이와 같이 망종 때는 농사일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일을 멈추는 것을 잊는다고 ‘망종忘終’이라고도 했다. 말 그대로 농번기의 최고 절정기다. 보리 수확과 타작이 끝나는 망종 때부터 대대적으로 모내기를 시작한다. 특히 이모작을 하는 남부 지방에서는 보리나 밀을 베랴, 논 갈고 써레질하고 모심으랴,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이렇게 바쁘다 보니 자연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 “별보고 나가 별보고 들어온다”는 말까지 생겼다.

이때의 바쁨을 이문구는 동시 “오뉴월”에서 이렇게 감칠맛 나게 표현했다.


엄마는 아침부터 밭에서 살고

아빠는 저녁까지 논에서 살고

아기는 저물도록 나가서 놀고

오뉴월 긴긴 해에 집이 비어서

더부살이 제비가 집을 봐주네

 

모심기는 또 얼마나 괴로운 일이던가! 논에 물이 많으면 심어도 모가 곧 뽑히고, 적으면 구덩이가 쉽게 드러나 뿌리가 마른다. 또 모를 심으면 며칠 동안 모 끝이 하얗게 마르는 죽사름을 시작한다. 못자리에 있다가 옮겨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잠시 죽은 듯이 있다가 뿌리를 내리며 다시 기운차게 살아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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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夏至 


하지는 한 해 가운데 낮이 가장 긴 날이다. 하지가 되면 묵정밭과 산야는 희디흰 개망초꽃으로 뒤덮인다. 옛날에 보온용 비닐 못자리가 나오기 전 남부 이모작 지대에서는 하지 ‘전삼일 후삼일’이라 하여 그때가 모내기에 적기였다. 지금은 보온용 못자리 설치로 모내기가 빨라져서 하지 때가 되면 모는 새 뿌리를 내려 날마다 더욱 굳어진다.

대체로 늦모내기가 끝나는 하지부터는 거름주기와 벼 병충해 방제 작업에 들어간다. 장마와 가뭄에도 대비해야 하는 만큼 이때는 한 해 가운데 추수와 더불어 가장 바쁜 때다. 메밀 심기, 누에치기, 감자 캐기, 고추밭 매기, 마늘 캐기 및 말리기, 보리 수확 및 타작, 보리 수매, 모내기, 모낸 논 웃거름주기 등이다. 그루갈이용 늦콩 심기, 또 삼을 수확한다. 삼 농사를 짓는 농가는 모내기보다 더 바빠 이때는 아예 잠을 못 잔다고 할 정도다. 보리를 타작한 농가는 할매단지에 가을추수하고 넣어 놓은 쌀을 꺼내고 보리를 넣어서 잘 모신다.

벼농사의 경우 모내기가 끝나면 김매기(지역에 따라서는 논매기라 한다)가 뒤따른다. 벼가 패기(출수기)까지 두세 번에 걸쳐 김매기가 이어진다. 처음 매는 김을 초벌매기(애벌․아이․아시매기라고도 함)라 한다. 초벌매기하고 3주쯤 지나면 두벌매기가 이어지고, 잡초가 많은 논이나 알뜰한 농가, 일손이 많은 농가에서는 세벌매기까지 한다. 그러나 요즘 김매기를 하는 논은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논을 빼고는 거의 없다. 두레 김매기를 통해 이웃끼리 도타운 정을 나눌 줄 알았던 우리네 아름다운 전통은 사라졌다. 그와 함께 각종 기계와 농약으로 지렁이와 구더기, 여러 벌레들이 우글거리던 우리네 옛 땅도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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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小暑


‘작은 더위’라는 소서부터 본격적으로 더운 날씨에 들어간다. 이맘때가 되면 벼는 출수기를 맞는다. 벼논에서는 잎도열병과 멸구를 방제하기 위해 1차 농약을 친다. 물약을 치기도 하고 손으로 뿌리는 농약을 치기도 한다.

농가에서는 장마기와 가뭄기가 겹치는 이때 논물 관리와 무너지기 쉬운 논둑 관리, 가뭄에 대비해 양수기를 설치한다.


젊은이 하는 일이

김매기뿐이로다

논밭을 갈마들여

삼사차 돌려 맬 제

날 새면 호미들고

긴긴해 쉴 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막혀 기진 할 둣

 

위와 같이 이때는 김매기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요즘은 다양한 제초제와 기계를 가지고 손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제초제와 농약 살포는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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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大暑


‘큰 더위’인 대서는 겨울인 대한부터 꼭 6개월이 되는 날이다. 한 해 가운데 가장 더운 시기로 특히 대서 이후 20여 일이 가장 무더운 때다. ‘불볕더위’ ‘찜통더위’도 이때에 해당한다. 밤에도 열대야 현상이 일어나며 더위 때문에 “염소뿔이 녹는다”고 할 정도다. 특히 무더위를 초․중․말 삼복으로 나누어 소서․대서라는 큰 명칭을 붙인 것도 무더위를 대비하라고 농민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대서 때는 뜨거운 태양과 많은 비 때문에 벼를 비롯한 모든 작물이 잘 자라 “오뉴월 장마에 돌도 큰다”고 한다. 이때는 더운 날씨 때문에 발생하는 문고병과 이화명흑나방 등을 예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논두렁에 웃자란 풀들이 벼를 덮을 수도 있기에 논두렁 풀도 벤다. 논두렁에 심은 두렁걸이 콩․팥도, 고구마밭의 풀도 이때 매고 북돋아 주어야 한다.

여름철 잦은 비와 고온다습한 날씨는 벼에 바람 한 줌 통하지 않게 한다. 이렇게 되면 벼 줄기가 썩어 들어가는데, 이 병을 문고병(또는 몽고병)이라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많은 벼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며 함께 있어도 썩지 않고 잘 자란다. 그것은 벼들 스스로 최소한 자기 존재를 지킬 수 있는 거리와 여유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 듯 벼들도 자기 세계를 지키며 사는 것이다. 농가에서는 대서가 낀 “삼복에 비가 오면 대추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음력 6월은 보리, 밀을 위시해 노지용 수박, 참외 등 각종 과일들이 생산되는 때다. 벼를 비롯해 그동안 경작한 농사가 가을 수확을 기다리는 시기로서 농군들의 일손도 다른 달보다 한가한 때다.

5월에 이어 6월도 이모작 지대와 특수작물을 수확한 논에서는 늦모내기가 이어진다. 연이어 그동안 심었던 호박, 고추, 콩 등을 솎고, 김을 매고 북돋워 준다. 잎담배도 따로 말린다. 두엄 만들기, 삼베 하기, 논 물빼기와 물대기도 소서․대서 절기의 중요한 일이다.

7~8월은 본격적인 장마 시기로 쌀 생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특히 집중적으로 오는 태풍과 비도 문제지만, 오랫동안 계속되는 장마는 냉해와 병충해 등을 유발해 벼의 생육에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 이때는 벼와 옥수수, 밤, 감 등 작물의 알곡이 열리는 시기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가뭄이 심해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벼논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진다. 벼들이 누렇게 타 들어가면 농민들의 마음도 시커멓게 타 들어간다. 오랫동안 한발이 계속되면 마을 단위로 기우제를 지낸다. 그것도 신통치 않으면 장을 옮겨 섰다. 비가 내리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인 것이다. 농민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단지 안에 도마뱀을 잡아넣고, 병에다 버들가지를 꽂아 두며 비가 오길 원했다.

벼농사에서 가장 무서운 복병은 가뭄과 냉해다. 옛날에는 가뭄이 가장 큰 피해를 입혔으나 오늘날에는 저수지의 축조로 천둥지기가 많이 사라지고 양수기 등 농기계가 발달하여 그다지 심각한 해를 입히지 못한다. 그보다는 오랫동안 날씨가 차가워지고 비만 내리는 냉해는 현대 과학으로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 그저 구멍 뚫린 하늘을 쳐다보며 원망만 할 뿐이다. 얼마나 복장 터지고 심장이 상했으면 “냉해가 진 해는 이삭이 달리지 않아 벼를 붙잡고 운다”고 했을까? 여름철 때이른 잦은 강우와 냉해는 잎도열병, 이삭도열병 등 각종 병충해를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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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立秋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것이 입추다. 입추라 해도 더위는 여전하여 ‘잔서(늦더위)’가 계속된다. 이때쯤이면 김장용 무․배추를 심기 시작한다. 벼논에서는 목도열병과 벼멸구를 막기 위해 농약을 친다. 특히 이때는 태풍과 장마가 오면 자주 발생하는 목도열병과 고온이 지속되면 주로 발생하는 벼멸구 피해가 심하다. 목도열병은 일반 벼에 더 심하게 나타난다.

또 뜻밖의 복병, 사리가 도사리고 있다. 사리는 한 달에 음력 2~4일과 17~19일에 두 번 생기는데, 그러한 사리 가운데 우리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때가 음력 7월 보름 전후다. 이 무렵은 백중 무렵으로 사리 현상이 드높다 하여 ‘백중사리’라고 부른다. 바다의 수면이 올라가는 사리 현상은 태양과 달의 위치가 지구―달―해 또는 해―달―지구일 때 해와 달의 인력이 합쳐져 지구의 바닷물을 끌어당겨 생긴다. 이 때문에 바닷물의 수위가 최고가 되어 낮은 지대의 농작물에 피해를 끼친다. 이때는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해수면 상승으로 인천, 안산, 평택, 보령, 군산, 목포, 여수, 광양, 통영, 부산 등 저지대는 침수 피해를 입는다. 특히 평택 지방은 바닷물 높이가 9m 53cm미터까지 올라가 애써 가꾼 농작물이 온통 잠겨 농민을 깊은 시름에 빠뜨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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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處暑


여름이 지나 더위도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한다고 하여 ‘처서’라 불렀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농부들은 익어 가는 곡식을 바라보며 농기구를 씻어 둘 채비를 한다. 조상들은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밭두렁이나 산소를 벌초했다.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말리는 일도 이 무렵에 한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처럼 파리, 모기의 성화도 줄어든다. 한편 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에 곡식 천 석을 감한다”든지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곡식이 준다”는 속담처럼 처서에 오는 비는 흉작을 불러온다는 믿음이 영·호남 지역에 전해 온다. 그만큼 처서의 맑은 날은 농사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예부터 처서날이 잔잔하면 농작물이 풍성하다고 했다.

입추·처서가 든 7월은 논에 ‘지심 맨다’하여 세벌매기를 한다. 피 뽑기, 논두렁 풀베기를 하고, 참깨를 털고 옥수수를 수확한다. 또 김장용 무·배추 갈기, 논밭 웃거름 주기를 한다. 농가에서는 7월을 ‘어정 7월이요, 동동 8월’이라 부르기도 한다. 7월은 한가해 어정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8월은 추수하느라 일손이 바빠 발을 구르며 지낸다는 말이다. 그러나 7월도 생각보다는 일거리가 많다. 특히 태풍이 오거나 가뭄이 오면 농민의 일거리가 그만큼 늘어난다. 논물도 조정해야 하고, 장마 뒤에는 더 극성을 부리는 벼 병충해 방제도 빠뜨릴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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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白露 


하얀 이슬 산들바람 가을을 보내주자

발 밖의 물과 하늘 청망한 가을일레

앞산에 잎새 지고 매미소리 멀어져

막대 끌고 나와 보니 곳마다 가을일레

―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 󰡔사계시四季時󰡕 중


백로는 들녘의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때다. 이때가 되면 고추는 더욱 붉은 색을 띠기 시작한다. 맑은 날이 이어지고 기온도 적당하여 오곡백과가 여무는 데 더없이 좋은 날이다. “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하여 오곡백과가 여무는 데 지장이 있음을 걱정했다. 초가을인 이때는 가끔 기온이 뚝 떨어지는 ‘조냉早冷’ 현상이 나타나 농작물의 자람과 결실을 방해해 수확을 줄어들게 한다.

백로에 접어들면 밤하늘에 더러 순간적으로 빛이 번쩍일 때가 있다. 농부들은 이를 두고 벼이삭이 패고 익는 것이 낮 동안 부족해 밤에도 하늘이 보탠다고 한다. 이 빛의 번쩍임이 잦을수록 풍년이 든다고 한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가운데 한낮에는 초가을의 노염老炎이 벼농사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벼 이삭이 여물어 가는 등숙기登熟期(양력 8월 중순~9월 말)의 고온 청명한 날씨는 벼농사에 더없이 좋고, 일조량이 많을수록 수확량도 많아진다. 이때의 햇살과 더위야말로 농작물에는 보약과 다름없다. 중위도 지방의 농사는 그동안 여름 장마 때문에 못자란 벼나 과일들도 늦더위에 알이 충실해지고 과일은 단맛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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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秋分


들판 어디서나 귀뚜라미가 울고, 바람에 마르는 콩꼬투리 툭툭 터지는 소리와 조 이삭, 수수 이삭 여물어 가는 청명한 가을 하늘.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의 들녘에 서면 곡식들 여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수수와 조가 늘어 뺀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들판의 벼는 강렬한 햇빛과 천둥, 폭우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개를 숙인다. 머잖아 쌀알로 열매 맺을 알곡들이 황금빛 바다를 이루어 빛나는 때다. 없는 이웃 논바닥을 피바다로 만드니, 이웃집 농부들의 수군거림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피사리를 확실히 해야 한다.

이맘때는 여름내 짙푸르기만 하던 들이 하루가 다르게 누릿누릿 물들어 간다. 또 고추가 익기 시작하므로 때때로 따서 말린다. 가을 누에치기, 건초 장만하기, 반찬용 콩잎을 따기도 한다. 논물 빼고 도구치기, 마지막 논두렁 베기, 병·충해 방제, 논에 피사리 등 수확을 앞두고 관리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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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로寒露 


찬 이슬 맺히는 한로에 접어들면 농부들은 잠시 머뭇거릴 겨를도 없다. 새벽밥 해먹고 들에 나가 밤늦도록 일을 한다. 한로에는 찬 이슬 머금은 국화꽃 향기 그윽하고,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진다. 이즈음 기온이 더욱 내려가니, 늦가을 서리 내리기 전에 빨리 추수를 끝내려고 농촌은 바쁘기 그지없다.

벼이삭 소리 슬슬 서걱이고 곡식과 과일이 결실을 맺는 때 북에서부터 남으로 내려오는 벼들의 황금빛 물결에 맞추어 벼베기가 시작되고, 단풍은 춤추듯 그 붉은 자태를 뽐내기 시작한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높다. 벼가 여물어 들판이 황금물결로 출렁일 때 농부들은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벼를 베거나 타작하는 날은 무슨 잔칫날처럼 부산하고 고될망정 수확을 하는 농부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친다. 예전엔 길손이 지나면 꼭 불러 새참이나 점심을 함께 권하고,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돌려 먹을 줄 알았다. 그러나 요즘의 가을 들판은 너무도 다르다. 주인은 논둑에서 어정거리는 동안 콤바인이 굉음을 울리며 순식간에 논을 오가며 벼를 담은 가마니를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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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강霜降


된서리가 내려 천지가 눈이 온 듯 뽀얗게 뒤덮이는 때다. 이때쯤이면 각 시·군의 엽연초 조합에서 잎담배 수매가 시작된다. 과거 수입 담배가 들어오기 전 잎담배가 제값을 받을 때는 담배 수매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그 지역은 흥청거렸다. 담배 등급을 판정하는 심사관들이 묵는 여관에는 조금이라도 나은 판정가를 받으려고 술 접대가 한창이었고, 수매가 시작되는 날이면 목돈을 쥔 사람들을 유혹하는 장사꾼이 도처에서 모여들어 흥청거렸다. 목돈을 손에 쥔 농민들은 할 일없이 어슬렁거리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더러는 제 기분에 취한 나머지 고생해 지은 담배값을 기생집이나 사기꾼에 홀라당 털리기도 했다.

상강은 보리 심기 가장 좋은 때다. 가을 추수가 끝나기 무섭게 이모작 지대인 남부 지방에서는 보리를 심는다. 보리 심기가 늦어지면 동해凍害를 입을 우려도 있고, 수확량도 급감한다. 또 보리를 늦게 심으면 이듬해 보리가 늦게 익어 베기도 늦어져 모내기도 늦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이 시기를 놓칠까 봐 발을 동동 구른다.

명을 다한 잎새들은 겨울 맞을 준비를 한다. 보름 동안의 준비가 겨울을 얼마나 알차고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느냐를 좌지우지한다. 조금 있으면 입동, 농촌은 막바지 가을걷이로 바쁘다. 가을 동안 잘 익은 호박 따 들이랴, 밤·감 따랴, 조·수수 수확하랴, 서리 오기 전 고추 따랴, 깻잎 따랴, 고구마 캐랴, 콩 타작하랴, 농부는 고단한 몸을 추스릴 겨를도 없이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들판에서 산다. 논갈이 및 가을보리 심기, 마늘 심기와 양파 모종 옮겨심기도 이맘때가 절정이다. 일손이 많이 가는 마늘 농사는 집집이 모여 품앗이 형태로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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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立冬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 김남주 시 󰡔옛 마을을 지나며󰡕


찬서리 내리고 집 한쪽 감나무 끝에는 까치밥만 남아 홀로 외로운 때가 입동이다. 바야흐로 겨울의 시작이다. 일순간 몰아치는 바람은 짧았던 가을의 끝임을 알리고 벌써 긴 겨울이 시작됨을 고한다. 이때쯤이면 가을걷이도 어느덧 끝나고 바쁜 일손을 털고 한숨 돌리는 때다. 농부들은 자연의 변화를 직감하고 기나긴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입동은 겨울을 앞두고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시점이다. 농가에서는 서리 피해를 막고 알이 꽉 찬 배추를 얻기 위해 배추 묶기에 들어가고, 서리에 약한 무는 뽑아 구덩이를 파고 저장한다.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추분에서 46일이면 입동立冬인데, 초목이 다 죽는다”고 했다. 바야흐로 겨울의 문턱이요, 시작이다. 겨울을 나는 동물들은 겨울잠에 들 준비를 하고, 푸르게 자라던 풀이며 무성하던 나무들은 왕성한 자람을 멈추고 잎을 떨구고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이맘때면 수확을 끝낸 들판에서는 소의 중요한 겨울 먹이인 볏짚을 모은다. 모든 볏짚은 농가 마당에 보기 좋게 쌓아 두기도 하고, 논배미에 단출히 모아두기도 한다. 농가의 큰 일꾼이자 초식동물인 소에게 볏짚 같은 풀은 없어서는 안 되는 먹이다.

입동은 천지만물이 양에서 음으로 변하는 때다. 이제 길고 고통스러운 겨울의 시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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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雪


입동 뒤에는 소설이 있다. 입동이 지나면 첫눈이 내린다하여 소설이라 했다. 소설에는 눈이 적게, 대설에는 많이 온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고 했듯이 첫얼음과 첫눈이 찾아들기에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 호박오가리, 곶감 말리기 등 대대적인 겨울나기 채비를 한다. 농가월령가에도 겨울 채비를 노래한다.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방고래 구들질과       바람벽 맥질하기

창호도 발라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수숫대로 터울하고    외양간에 떼적 치고

우리집 부녀들아       겨울 옷 지었느냐


이러한 겨울 채비 가운데 가장 큰 일은 뭐니뭐니해도 김장이다. 오죽하면 “김장하니 삼동 걱정 덜었다”고 하겠는가? 김장독은 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 구덩이를 파고 묻는다. 천지가 잠들고 생명이 얼어붙는 겨울철, 김치는 싱싱한 야채 대용으로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훌륭한 음식이다. 김치는 새 나물이 돋는 이듬해 봄까지 더할 수 없는 영양분이자 겨울철 가장 사랑받는 반찬이다. 

음력 시월은 ‘농공農功을 필畢’하는 달이다. 추수를 끝내고 아무 걱정 없이 놀 수 있는 달이라 하여 ‘상달’이라 했고, 일하지 않고 놀고 먹을 수 있어 ‘공달’이라 했다. 농가에서는 배추와 무를 절여서 김장을 담그고, 들나물도 절여 담그며 겨울을 준비한다. 이때는 벼 말리기 및 저장, 추곡 수매와 담배 수매를 빼면 큰일이 없다. 소 먹이용 볏짚 모으기, 무·배추 수확․저장, 시래기 엮어 달기, 목화 따기 등 조촐한 일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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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大雪 


11월은 중동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 󰡔농가월령가󰡕가운데 십일월령


소설 뒤 대설을 놓은 것은 동지를 앞두고 이때쯤 눈다운 눈이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마다 눈이 고르게 오는 것이 아니어서 대설이라고 해도 어느 해는 소설보다 적게 오기도 한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있다. 눈이 많이 내리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동해凍害가 적어 보리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부네야 네 할 일 메주 쑬 일 남았도다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

― 󰡔농가월령가󰡕 가운데 십일월령


농사일을 끝내고 한가해지면 가정에선 누런 콩을 쑤어 메주를 만들기 시작한다. 메주를 잘 만들어야 한 해 반찬의 밑천이 되는 장맛이 제대로 나기에 온갖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잘 씻은 콩을 고온에서 빨리 익히는 것이 중요한데, 손으로 비벼서 뭉그러질 때까지 충분히 익힌다. 삶은 콩은 소쿠리에 담아 물을 뺀 뒤, 둥글넓적하거나 네모난 모양을 만든다. 모양을 갖춘 메주를 그대로 며칠 방에 두어 말린 뒤, 짚을 깔고 서로 붙지 않게 해서 곰팡이가 나도록 띄운다. 알맞게 뜨면 짚으로 열십자로 묶어 매달아 둔다. 메주 달 때는 대개 짚을 쓰는데, 이는 짚에 효소가 있어 푸른곰팡이가 잘 번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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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 


동지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해가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밤의 길이가 한 해 가운데 가장 긴 날이다. 이 날이 지나면 낮 길이가 1분씩 길어진다. 옛 사람들은 이를 해가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날로 삼기도 했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동지 팥죽은 먼저 사당에 올리고, 여러 그릇에 나누어 퍼서 장독, 곳간, 헛간, 방 등에 놓아둔다. 그리고 대문과 벽, 곳간 등에 뿌리기도 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팥죽의 붉은 색이 잡귀를 몰아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지 팥죽은 잔병을 없애고 건강해지며 액을 면할 수 있게 한다고 하여 이웃끼리 서로 나누어 먹었다.

동지 때는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는데, 이 추위가 닥치기 전 보리밟기를 한다. 이때는 땅속의 물기가 얼어 부피가 커지면서 지면을 밀어 올리는 서릿발 때문에 보리 뿌리가 뜨는 것을 막고 웃자람을 방지하기 위해 보리밟기를 한다.

동짓날 한겨울 기나긴 밤에는 새해를 대비해 복조리와 복주머니를 만들었다. 복조리는 산죽을 쪄 와 사등분으로 쪼개어 햇볕에 말리고 물에 담근 뒤 그늘에서 말려 만든다. 쌀에 든 돌이나 이물질을 가려낼 때 쓰는 복조리는 새해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복을 사라며 “복 조리 사려”를 외치며 팔러 다녔다. 대보름이 지난 뒤 팔러 다니면 상놈이라고 욕을 먹기도 했다. 복조리를 부엌 부뚜막이나 벽에 걸어 두고 복이 그득 들어오기를 기원했다.

음력 십일월부터는 농한기다. 이때는 사네들보다 아녀자들이 할 일이 더 많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들기 위한 메주 쑤기로 부산할 때다. 무말랭이, 토란 줄기, 호박오가리 등 각종 나물을 말리고 거두기에 겨울 짧은 해가 아쉽기만 할 때다.

겨울밤이면 농부들은 동네 사랑방에 모여 내년 농사에 쓸 새끼를 꼬기도 하고 짚신이며 망태기를 삼기도 했다. 더러 손재주 좋은 이들은 윷놀이와 곡식을 말릴 때 쓰는 멍석, 음식을 보관하는 봉새기, 재를 밭에 뿌릴 때 쓰는 삼태기, 배낭의 일종인 조루막, 풀 베어 담는 꼴망태 등 다양한 생활 용품을 만들었다. 졸음이 몰려올쯤이면 쌈지 담배를 꼬실리다가 이내 아낙네들이 삶아 온 고구마를 먹으며 마을 소식들이 오갔다. 이듬해 소작료 얘기며 부당한 물세 때문에 복장이 터진다는 얘기며 안산 너머 닭실골짝 김서방네는 소작료 때문에 논주인과 다투다 부치던 논을 뺏겨 내년 살길이 막막하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안방에서는 동네 아낙들과 고구마에 동치미를 들이키며 바느질을 하다 말고 강부잣집 딸년은 시집가 잘 산다는 얘기며, 양달마을 박서방은 술집 작부와 눈이 맞아 도망을 쳤다는 얘기들이 오갔다. 그때쯤이면 어린 것은 아이스크림 같은 겨울 감홍시를 입이 벌겋도록 칠하며 먹다 말고 어미 무릎을 베고 잠이 들곤 했다. 이제는 산업사회라는 험한 상황이 아름다운 겨울의 낭만을 사라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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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小寒


소한은 해가 양력으로 바뀌고 처음 나타나는 절기다. 소한 때는 ‘정초 한파’라 불리는 강추위가 몰려오는 때다. ‘소한땜’이 아니라도 이때는 전국이 최저기온을 나타낸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든지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고 할 정도로 추웠다. 농가에서는 소한부터 날이 풀리는 입춘 전까지 약 한 달 동안 혹한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에서는 문 밖 출입이 어려우므로 땔감과 먹을 것을 집안에 충분히 비치해야 했다.

빈 들판에 눈이 내리면, 특히 동짓달과 섣달에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눈은 보리 이불이다”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 “함박눈 내리면 풍년 든다”고 반겼다. 눈을 풍년의 징조로 본 것이다. 또 눈은 “첫눈 먹으면 감기에 안 걸린다” “장사지낼 때 눈 오면 좋다” “첫눈에 넘어지면 재수 좋다”며 눈을 상서祥瑞롭게 보았다.

겨울 농사의 중요한 몫은 보리다. 보리 하면 경상도 특히 경북을 연상한다. 오죽하면 경상도 하면 “보리 문디”라고 까지 했을까? 경상북도의 대다수 농지는 보리 재배의 적지이자 논보리 이모작이 가능해 일찍부터 보리 재배가 성했던 곳이다. 한시라도 땅을 놀리면 벌 받는 줄 알았던 부지런한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은 보리를 심어 자식들을 부양하고 그것을 팔아 농가의 농사 밑천으로 사용하곤 했다.

특이한 것은 가을보리 씨를 이듬해 봄에 심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가을보리는 혹독한 겨울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데 따뜻한 봄에 심으니 자신의 성질을 잃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가을보리를 봄에 심어 열매 맺게 하려면 ‘춘화처리’라는 것을 해야 한다. 춘화처리란 가을보리가 추운 대지에 뿌리내려 겨울을 나듯 보리씨를 추운 곳에 일정 기간 보관했다 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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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大寒 


대한은 24절기의 마지막 절기다. 소한 추위는 대한에 오면 절정에 달한다. 대한은 한 해 가운데 가장 추운 때다. 시베리아 기단의 맹위로 추운 날이 계속된다. 이때는 또 건조한 날씨로 불이 나기 쉽고, 가뭄이 들 때가 많아 보리 등 겨울 농작물에 피해를 끼친다. 옛날에는 소한·대한 때는 꿈쩍도 않고 집에만 있었지만 요즘은 비닐하우스를 비롯한 여러 특용작물 재배로 바쁘다.

대한 때면 눈 덮힌 겨울 들판에 황량함만이 남아 있다. 이 죽어 있는 땅에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올 것 같은 희망 따위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죽어 자빠진 땅에도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

무릇 농경 사회에서 겨울 석 달은 농한기로, 다음해 농사를 위한 휴식·준비의 시기였다. 그러나 농촌에 휘몰아친 변화의 바람은 결코 농한기에 안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농한기를 부지런히 움직인 이가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벼농사 중심의 농가는 본격적인 농한기에 해당한다. 기껏해야 보리밭에 거름내기, 농기구 손질, 겨울 땔감 준비 등이 있을 뿐이다. 예전에는 가마니 짜기, 새끼 꼬기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겨울에는 특별히 힘쓸 일도 없고 나무나 한두 짐씩 하는 것 말고는 대부분 놀고먹기에 삼시 세 끼 밥 먹기가 죄스러워 점심 한 끼는 반드시 죽을 먹었다. 이는 쌀을 아끼려는 눈물겨운 노력이자 일하지 않고는 밥을 먹지 않겠다는 투철한 노동 정신이 스민 것이다.

출처 : 돌터
글쓴이 : 김석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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