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의 본질
- 수의 이모저모
- 수의 마음
만물을 적셔주는 물은 항상 움직이기를 좋아한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물기를 거부하니, 머물면 썩어버리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기 때문에 언뜻 보면 꿍꿍이가 많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간혹 음모가 많은 사람이나 사기꾼 등의 오해도 받는다.
혼돈→음→음중의 음→다시 음양으로 분리→십간의 임계(壬癸)
陽(壬) : 바다, 호수, 강, 도량이 넓음, 지혜로움,
陰(癸) : 샘물, 옹달샘, 생수, 유동적, 궁리가 많음,
물은 지혜라고 했다. 지자요수(智者樂水)라고 하는 말도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사람의 지혜도 흐르는 물처럼 항상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선 지는 몰라도 물로 태어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도 생각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이것도 어쩌면 물의 영향일 거라고 생각을 해본다.
지구상에서 공기 다음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존재했던 성분이 물이다. 공기에서 물이 생겨났다고 한다면 생명체는 물에서 나타났다고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물질 중에 하나라는 점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본다면, 역시 지혜의 상징성으로 활용을 해도 될 것으로 보인다. 즉 지혜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두고 연구하고 경험하고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에야 얻어지는 삶의 경험, 그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적에 물의 오상(五常)이 지(智)라고 하는 것에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낭월이의 사유방식은 주로 이런 식이다. 혹 이렇게 반문을 하실런지도 모르겠다.
"보쇼! 물이 무슨 생각을 한단 말이오... 원 씨알이 멕히는 말을 해야지.. 않그렇소?"
아마도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는데, 낭월이의 생각은 또 다르다. 삼라만상의 일체 유정 무정물을 통틀어서 모두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길가를 뒹구는 돌멩이나 허공중을 나르는 먼지알갱이, 그리고 못이나, 망치에도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라고 대든다면 달리 할말이 없지만, 그래도 일체의 유형무형의 물질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고 하는 말에 동의를 하는 마음이다.
전에 '우주심과 정신물리학'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에서 저자는 바위의 자아발전형태를 재미있게 그림을 곁들여서 설명을 했던 장면이 있었다. 주요 내용을 보면, 바위가 처음에는 그냥 스스로 잠을 자는 듯한 마음으로 지내다가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와서 절을 하고 소원을 빌고, 자꾸 이것이 쌓이면 결국 그 바위는 일종의 신격(神格)내지는 인격(人格)이 생긴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러한 이론을 전개하는 이면에는 바위에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생각이 움직이는 형태를 파장이라는 말로 바꿔서 하기는 했지만, 같은 의미로 해석이 된다.
그리고 물체가 견고하면 생각(또는 파장)도 미미하게 움직이고, 물체가 유연하면 생각도 유연하고 자유로울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볼 수가 있겠다. 앞에서 나무와 불과 흙, 그리고 금에 대한 생각을 해 봤지만, 각기 생긴 대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무는 나무의 형상대로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하는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고, 불은 또 그렇게 사방으로 활발하게 뻗어나가는 형태의 심성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불이 가장 활발한 성분이라고 하겠다. 또 바위는 견고한 주체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삼을만한 장면인데 여기에서 보이는 물은 그 본성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처음으로)
(1) 물의 본질
물은 아래로만 흘러간다고 한다. 눈으로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는데, 과연 물의 실상은 어떤가 생각을 해볼 일이다. 얼핏 보기에는 아래로만 흘러간다고 생각이 되지만, 실은 아래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응고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보았다. 응고를 하는데 빈곳이 있으니까 그곳을 채우려고 움직이는 것이 결국은 아래로만 흘러가는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가정을 해본다. 그러니까 물이 흐르는 것은 응고를 하려고 뭉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는 것은 물이 응고하는 성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고, 또 응고를 하는 성분이 종자(種子)를 만들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좀더 확대해서 생각해보는 까닭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물을 흐름을 지켜보고 있자니까 문득 '물은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응고하고 있는 와중일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것이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히 자유자재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물의 구조에 연결을 시켜보면 참으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행의 구조 중에서 물처럼 유연한 구조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몸이 건강할 적에는 유연한 것이 기본이다. 어린아이는 그 몸이 유연하기 때문에 높은데 에서 떨어져도 여간해서는 잘 다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성인도 그냥 넘어졌을 때 보다는 술에 취해서 넘어졌을 때가 덜 다친다고 한다. 역시 술이 인간의 굳어진 몸을 유연하게 해 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끌어다 넣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경기도 신갈에 '이정운'이라고 하는 여인이 있다. 이 분은 기술이 하나 있는데, 사람의 굳어진 몸을 주무르면 부드럽게 된다. 물론 병원에서 무슨 디스크라고 하건 말건 별로 개의치 않는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심지어는 간암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냥 간 부위가 굳어 있으니까 유통이 되지 않는단다. 그러므로 만져서 부드럽게 해주면 건강해 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주무르다 보면 굳은 것이 부드럽게 되고, 결국은 치료라고 하는 형태로 진행이 되는 모양이다.
"완전히 굳어지면 죽어버린 것이고, 만져봐서 아프다는 통증이 느껴지면 아직은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냥 주물러 보는 거지요뭐 하하."
이렇게 깔깔거리고 웃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게 되는데, 이 여성의 사주에서 태어난 날은 바로 물이었다. 낭월이도 선천적으로 굳어지기 쉬운 불건강체(不健康體)의 몸을 타고났던지 한동안 건강이 불량해서 고생을 했는데, 이 선생을 만나서 몸이 유연해져서는 이렇게 명리학의 연구를 계속 잘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묘한 재주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조그마한 나라지만 이렇게 구석구석에는 특별한 재주를 갖고서 자기 나름대로 중생구제의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비록 당당하게 의료면허증이 없어서 치료를 한다는 말은 못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치료든 건강요법이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렇게 굳어있는 사람의 몸을 유연하게 풀어주면서 고통을 덜어주고 있으니 낭월이가 보기에는 틀림없는 '약손'이었다. 그런데 만져줄 적에 너무나 징그럽게 아픈 것은 참 불만이다.
여담이 길어졌나보다. 이렇게 유연한 것이 건강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한 생각이 들어서 잡담을 했다. 그러고 보니까 죽은 사람은 몸이 굳어버린다는 간단한 진리를 읽어내게 된다. 그러니까 살아있더라도 몸이 부분적으로 굳어버린다면 점차로 죽어 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유방을 만져봐서 뭔가 단단한 것이 집히면 암을 의심하라고 하는 자가진단법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떠오른다.
이렇게 단단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물의 유연함이 자랑스럽게 떠오른다. 동그란 그릇에 담으면 동그랗게, 길다란 병에 담으면 병 모양으로 삽시간에 변하는 물의 유연함은 그 어떤 물질로도 대신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물에 소속된 형태들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관찰을 해보도록 하자. 그 동안 도표를 주욱 봐서 아시겠지만, 같은 제목으로 각기 오행의 특징적인 면을 관찰해보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물의 이모저모
분류 |
설 명 |
형상 |
물처럼 생겼다. |
나무 |
나무에서는 수분에 해당하는 것과 씨앗 성분이다. |
기하학 |
타원형의 모습으로 표하면서 불규칙한 형상이다. |
수리학 |
선천수로는 1과 6이고, 후천수로는 9와 10이다. |
음양 |
순음의 체로써 극음(極陰)에 해당한다. |
인생 |
노년시절을 나타내며 휴식기이다. |
인체 |
70%라는 인체의 수분이 수에 해당한다. |
장기 |
신장(腎臟)과 방광(膀胱)을 수의 장기에 넣는다. |
기관 |
귀는 수의 정기가 발산되는 영역이다. |
방위 |
동서남북에서는 북방(北方)을 나타낸다. |
색채 |
삼원색에서는 없는 흑색(黑色)을 수의 상징으로 취한다. |
계절 |
일년의 사계절로는 겨울에 해당한다. |
심리학 |
깊이 생각하는 현자의 성격이다. |
지구 |
세계지도로 논할 적에는 러시아 부근이고, 알래스카도 수의 기운이 강한 성분이다. |
한반도 |
한국에서는 함경도를 수기운이 많은 동네로 본다. |
자동차 |
국가기관에서 사용하는 차량이 해당한다. |
차구조 |
냉각기관인 라디에터와 오일부분이 물과 공통적이다. |
음성 |
'마' '바' '파'가 수의 소리에 해당한다. |
컴퓨터 |
최종 마무리단계인 프린터나 디스켓, 하드디스크이다. |
s/w |
운영체제인 윈도우즈, 도스, 또는 os/2, 유닉스 등이다. 이들은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지혜로움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들이 아니면 다른 프로그램들도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2) 물의 마음
다른 것들도 인생에 비추어서 생각을 해봤으니 이번에도 한번 물과 인생에 대한 생각을 해보자. 흔히 하는 말이 사람은 늙어봐야 안다고 했다. 젊어서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말은 아니겠지만, 나이를 먹어보면 그 사람이 젊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게 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 우리 명리학도(命理學徒)는 이러한 말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고 본다. 무엇 하나라도 간과(看過)해서는 안되는 것이 학자인데, 하물며 인생의 운명을 연구하는 명리학자라면 이러한 말의 의미가 무슨 깊은 뜻(?)이 있는지 정도는 생각하고 파악해둬야 할 것이라는 사명감 비슷한 것이 들기도 한다. 그럼 낭월이가 파악하고 있는 '늙어봐야 안다.'는 말의 의미를 말씀드리겠다.
노년(老年)의 시기를 오행에서는 물에 해당한다고 보자. 그리고서 물의 형태를 생각해 보았다. 그랬더니, 물의 형태는 삼체(三體)의 변신이 모두 가능하다는 간단한 이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삼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만 별 것은 아니고, 기체(氣體), 액체(液體), 고체(固體)의 삼체를 말하는 것이다. 원래가 별것도 아닌 것을 수다스럽게 늘어놓는 것이 낭월이의 특징이니 도리 없는 일이지만, 사실은 이렇게 평범하게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 속에서 의외로 깊이 있는 말씀을 듣기도 하므로 가볍게 여길 것은 하나도 없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인생의 늙음을 고체처럼 단단하게 굳어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액체처럼 유연하게 보낼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기체처럼 아예 승화되어 버릴 것인가?'
가) 기체(氣體)의 노년(老年)
이렇게 질문을 한다면 어느 것을 선택을 할 것인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아마도 기체처럼 살게 된다면 우리는 신선이라는 말로 불러야 할는지도 모른다. 신선은 우화등선(羽化登仙)을 한다고 하는데, 우화등선이란 날개나 생겨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말인가 보다. 그렇지만 육신에 날개가 나기야 하랴 싶다. 다만 그만큼 몸이 가벼워진다는 말로 새겨들어 본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는 일생을 얼마나 피나게 수련했는가에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수행을 한 사람의 몫은 기체로 존재하는 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범인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영역이므로 접근 불가한 대목일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기체로 된 물(老年)은 세간에서 살면서도 아무런 속박이 없이 그렇게 자유롭게 살다가 간다. 전혀 틀에 매이지도 않고 혈연이나 명예욕에 사로잡혀서 늘그막에 재판정에서 사형을 선고받는 치욕을 당하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주리면 먹고, 곤하면 잔다.'는 서산대사의 말대로 인 것이다. 과연 어떻게 늙어야 이렇게 될 것인가... 나 자신도 늙으면 이렇게 될 수가 있을까... 참으로 고민스러운 대목이라고 하겠다. 너무나 부럽지만 정진을 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얻어질 수가 없는 경지이기에 평생 게으름이 특기인 낭월이로써는 참으로 가능성이 없는 분야이다.
나) 고체(固體)의 노년(老年)
다음으로 반대적인 입장에 있는 고체를 생각해보자. 늙으면 모든 것이 굳어진다. 몸도 마음도 그렇게 굳어지는 것이다. 손발도 예전 같지가 않고, 허리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뿐이랴, 머리조차도 예전처럼 활발하게 움직이지가 않는 것도 또한 어쩔 수가 없는 현실인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늙어 가는 모습의 공통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은 숙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자식들은 세대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상대를 하지 않는다. 세대차이가 나는 이유는 이해력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늙은이가 젊은 자식들의 생각을 따라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 어쩌면 더욱 적절한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괄시를 받아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평생을 그렇게 자신의 영역만을 주장하면서 살아온 삶이라면 늙어서도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많이 경험하고 많이 생각한 사람이 훨씬 상대하기가 좋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느낀다. 도회지에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상대를 해본 사람은 이해력이 상대적으로 넓다. 이기적인 듯 해도 실제로 대화를 나눠보면 남의 입장을 훨씬 더 잘 이해하는 것이 도회지의 사람들이다.
반면에 시골에서만 살아온 사람은 어떤가? 흔히 말하기를 시골사람의 순박함을 이야기한다. 물론 사실이다. 도시의 찌들은 상황의 각박함은 없을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해타산에 관계된 일로 의견대립이 되어보라 전혀 말이 들어가지를 않는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서 깜짝 놀리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 시골사람의 순박함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던 사람이라면 그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외골수로 자신의 입장만을 강조한다. 전에 고물행상을 할 적에, 고물상 주인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시골사람이 더 무섭다구, 물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하고는 싸울 생각을 말아야 한다구, 이해력이 없어서 설명을 해봐야 몰라, 그러니까 웬만하면 그냥 피하라구 장사하러 다니려면 별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말이야."
하고 조언을 해줬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뭘 그러랴... 싶었는데, 실제로 돌아다니면서 그러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과연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좁은 공간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사고력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상대하는 사람들도 항상 그 동네의 그 사람들 뿐인바 에랴...
물론 시골에 살아도 교제의 폭이 넓은 사람은 예외겠지만, 보통 그렇게 농촌에서 늙은 사람의 사고력은 아무래도 굳어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그래서 환경도 무시할 수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실은 사주팔자의 형태로써 살펴봐도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의 격국은 도회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의 격국에 비해서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것도 사주팔자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소위 말하는 '전문화의 시대'에 얻어진 부산물이라는 생각도 해보기는 하는데, 사람이 자신의 학교를 나와서 자신의 전문분야에서만 일생을 일하다가 그 연구실에서 정년퇴직을 한 사람의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많은 생각이야 하였겠지만, 그 '깊이'에 대해서는 탓을 할 것이 없겠으나, '넓이'에 대해서는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 뻔하다. 넓지 않은 시야도 고정관념이 강하게 작용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서는 일류의 권위를 자랑하지만, 연구실만 벗어나면 모두가 생소한 것들뿐이라면 이 사람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 생소한 분야로 파고 들것인가? 아니면 도로 연구실로 들어가서 자신에게 익숙한 분야에 대해서나 연구를 할 것인가? 연구실로 도로 들어가 버린 사람이라면 이 사람도 아마 고체의 노년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대열에 서야 할 것이다.
다) 액체(液體)의 노년(老年)
액체는 그래도 물의 본연의 모습은 잃지 않고 있다고 생각된다. 기화(氣化)까지는 바라지도 못하겠지만, 얼음 덩어리는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몸도 마음도 유연한 노년이라면 그런 대로 멋진 인생이라고 할만 하지 않으랴 싶다. 언제나 새로운 사람과 더불어서 공통의 화제로 한참을 이야기 나눌 수가 있는 여유로움은 물의 특성이다. 여기에서 장자(莊子)의 한 토막을 말씀드리고 싶다.
천하의 성군이라는 요임금이 변방을 순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성문을 지키던 문지기가 임금에게 인사를 드리면서 축수의 기원들 드렸다.
"성군이시어, 장수를 누리소서!"
"싫으네,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아서 말이야."
"그럼 임금이시어, 부유하소서!"
"그도 싫으네, 부자가 되면 귀찮은 일이 많아지걸랑."
"임금이시어, 백자천손(百子千孫)하소서!"
"싫으네, 자식이 많으면 골치가 아퍼."
그러자 국경을 지키던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처음에 당신이 성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만나보니까 그저 군자(君子)정도밖에 인된다는 것을 알겠군요. 하늘은 만민에게 일거리를 주는 법이거늘 아들이 많은들 무슨 걱정거리가 되겠습니까? 또 재물이 많으면 사람들에게 나눠줘버리면 편안할 것이고, 이렇게 해서 천하가 편안해져서 다스림이 없이도 잘 다스려 진다면 천년을 살은들 골치 아플 일이 뭡니까?"
이렇게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이 이야기가 장자의 어느 편에 있었는지는 기억력이 부실해서 잘 모르겠는데, 대략 이야기는 비슷할 것이다. 이야기를 보건대, 요임금도 굳어있었던 모양이다.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력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실제로 그랬는지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늘그막에 이렇게 성지기의 말대로 유연한 마음으로 살수가 있느냐 하는 점이 중요할 뿐이다.
이러한 정도의 사고방식이라면 기체까지는 몰라도 액체로써는 충분하리라고 생각되어서 한 말씀 드려봤다. 장자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내용들이 많아서 열심히 읽었던 책 중에 하나였는데, 그 중에서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이야기이다. 벗님은 이렇게 세 가지의 노년이 있으니 어느 노년을 맞이하게 될는지 조용히 한번쯤은 생각을 해보는 것도 무익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멋진 생의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오상(五常)에서의 지혜(智慧)가 늙은이에게 해당한다는 말과 일치한다. 오죽하면 우리 속담에 '늙은 쥐가 항아리를 뚫는다.'고 하겠는가? 하다못해 한 마리의 쥐도 늙으면 그 단단한 항아리를 구멍낼 요령을 터득하고 있다는 말이니 하물며 인간이 되어서 이렇게 지혜가 없어서야 정말 어디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하겠는가? 아무래도 젊은 사람의 머터로운 삶을 보면서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보는 늘그막의 유유자적함은 늙어보지 못하고서는 맛보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옛 이야기 중에 한가지 생각나는 것은, 고려장 시절에 어느 정승이 중국으로부터 받은 어려운 퀴즈를 받고 고민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니까 고려장의 시기가 도래했는데도 차마 자식이 아버지를 매장할 수가 없어서 마루아래의 비밀 방에서 숨어살으시던 노부(老父)께서 아주 간단하게 정답을 일러주셔서 위기를 모면하고는 왕에게 그 연유를 말씀드리고 결국 고려장이라는 풍습을 없애버린 기가 막힌 노인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학교에서 한번쯤 듣고 지나간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모든 경험을 후학들에게 나눠줄 수가 있는 노년(老年)이 되고, 젊은 제자들이 헛된 길을 헤매는 시간낭비를 줄여주기도 하니 참으로 멋진 노인의 지혜이다. 그렇게 늙었다면 자연의 법리에 잘 따른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인생의 마무리를 저녁노을의 장엄한 황혼처럼 물들이는 것이 五行에 있어서의 水에서 배울 공부라고 생각한다. 물은 응고(凝固)하는 성분이다. 그래서 늙은이는 뭔가를 마음에 뭉쳐둔다. 자신의 일생을 정리해서 마음에 묻어 둘 수도 있고, 아들 며느리가 자신을 서운하게 했다는 것을 마음에 뭉쳐둘 수도 있다.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 저장하는 것이 물이다. 노인네가 꽁하고 서운해한다고 젊은 사람들은 섭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뭉쳐지는 것이 또한 노인이고 물의 본성이다.
물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인생의 마무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五行論을 잘못 배운 것이라고 하겠다. 물이 도둑놈이나 사기꾼이 아니라, 이렇게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지혜라는 것도 여기서 알아 둬야 할 중요한 물의 마음이다. 실제로 물은 쉬임없이 움직인다. 고요하다고 하는 아침바다도 기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어려서 안면도의 해변에서 자랐기 때문에 바다의 구조를 대략 이해한다. 특히 갯펄만 보이다가도 어김없이 푸른 물로 채우는 바다의 조수는 언제나 신비한 대상이었다. 이렇게 쉬임없이 움직이는 물을 생각하면서 인간의 지혜가 물을 닮았다는 옛 어르신의 말씀에 공감을 하게된다.
또 하나의 물은 다음의 세대로 연결이 되는 통과다리라는 점이다. 물이 응고를 한 자료를 모아서 다음의 세대를 위해서 저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대뇌에 축적이 된다고 한다. 대뇌는 인간이라는 생물이 진화의 과정을 거쳐오면서 변화된 뇌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구피질 신피질하면서 구조분석을 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초창기에 물에서 생명이 발생했을 적에 입력된 생활정보가 뇌에 보존되고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렇다고 본다면 이 뇌는 자료보관소라고 할 수 있겠고, 그러한 맥락에서 뇌는 오행이 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법하다. 사실 머리 속에는 수없이 많은 신비한 구조가 후학의 접근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전생의 기억이 과연 뇌의 어느 부분에 저장이 되어 있는지도 참으로 궁금하다.
불가에서 도를 닦아 가는 과정에서 숙명통(宿命通)이라는 신통력이 발생하는 시기가 있다. 글자 그대로 과거의 운명을 모조리 알게 되는 신통력이 숙명통인데 이러한 신통력이 생기면 자신을 포함해서 어떤 사람이던지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해서 거울을 보듯이 훤하게 알아본다고 한다. 이 숙명통을 얻게 되면 그 사람의 이번 생에서의 과거뿐 아니라 전생과 또 전 전생의 일생을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도 알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것을 알게되는 것은 어떤 귀신이 이 도인을 따라다니면서 그 사람의 전생을 일러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서 과거의 연결고리에 해당하는 뇌의 기능이 잠에서 깨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이러한 저장창고의 문을 어떤 지혜의 열쇠로 열기만 한다면 자신의 과거 모든 생에 대한 보관자료를 읽어 볼 수가 있다고 하는데, 자신의 보관창고를 여는 열쇠를 얻었다면 다른 사람의 보관창고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열쇠로도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여섯 가지의 신통력 중에서 과거의 기억을 다시 읽어볼 수 있는 숙명통은 참으로 매력적인 능력이라고 하겠다. 요즘 서점 가에서는 전생의 여행에 대한 흥미 있는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한데, 이러한 것을 보면서 역시 사람은 전생에 대해서 흥미를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상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은 자신의 뇌의 기능 중에서 극히 일부분만을 사용하다가 죽는다고 한다. 2%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소수점 이하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활용성은 대개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정도에서 머무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 바로 전생의 기억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게 되는데는 크게 무리가 없다고 본다. 전생에 한 일은 습관이 되어서 어쩐지 그 일을 되풀이하면 오래 전에부터 익숙하게 해왔던 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료의 보관소가 바로 뇌라는 구조인데, 이 뇌라는 구조는 이번 생에서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에 불과하지만 이미 이 뇌속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전생의 모든 영상자료를 한 부 복사해서 갖고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어느 날 전혀 이번 생에는 와본 적이 없는 장소에 도달 했을 적에 그 공간이 아주 오래 전에 머물렀던 것같이 편안하고 익숙한 상황이 되어서 당황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 모양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오행으로 치면 水의 기능에 해당하고 그 중에서도 저장하는 기능에 포함된다고 생각이 된다.
이 수의 기능이 나무의 씨앗을 만들어서 보관을 하는데 그 응고력이 좋기 때문에 천년 묵은 은행나무의 자료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뉴스를 통해서 보니까, 피라미드 속에서 씨앗을 얻어다가 심었는데 그 씨앗에서는 2천년 전의 토마토가 열렸다고 하는 보고를 보면서 과연 씨앗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물의 힘이라고도 느꼈으니 이렇게 구석구석에서 접하는 소식들에서 五行의 참 소식이 무엇인가를 항상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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