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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문서자료

[스크랩] 오행 설명

by 石基 2008.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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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목의 본질
  2. 목의 이모저모
  3. 목의 마음


나무 목이다. 나무라고 하는 것이 뭐냐고 묻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한국 사람이라면 말이다. 이 한 글자를 음미하면서 오행의 20%를 알게되는 것이다.

우선 보기에 가장 변화가 분명하다. 나무의 종류를 보면서 목을 이해한다. 물론 물질적인 것이 모두 다는 아니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가장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하기에 용이한 성분이기도 한 까닭이다. 목은 그 본성이 仁이라는 것으로 꾸며져 있다. 그래서 목의 성분이 강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질다고 한다. 그러나 목이 지나치면 불인(不仁)이 되는 것은 같은 木의 陰陽에 불과하다.

혼돈→양→양중의 음→다시 음양으로 분리→십간의 갑을(甲乙)

陽(甲) : 소나무, 은행나무, 대들보, 추진력, 벋어나가는 기운,

陰(乙) : 잔디, 곡식, 잡초, 넝쿨식물, 지구력, 적응성

이러한 기본적인 성분을 갖고 있는 목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린 시절을 나타낸다. 맹모삼천(孟母三遷)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어려서는 환경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뜻이 여실하다. 그런데 과연 나무라는 구조를 볼 적에 환경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나게 느낀다. 바위주변에 떨어진 도토리와 기름진 토양에 떨어진 도토리는 그 성장하는 환경에서 얻는 차이점을 여실하게 느낄 수가 있겠기 때문이다. 물론 木이라는 것이 완전히 나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연계에서 가장 목을 닮은 것은 나무라고 하는데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자평진전(子平眞詮)에서는 양목을 일러서 목의 기운(氣運)이라고 하고, 음목을 일러서는 목의 질(質)이라고 표현했다. 음양을 기와 질로써 구분한 듯 한데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본다. 음양이 원칙적으로는 물질과 기운으로 분별을 할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라도 구분을 시도하는 것은 음과 양을 어떻게 하면 좀더 가까이서 이해를 해볼 것인가 하는 생각이 된다.

목은 기본이 발산하는 성분이다. 그 성분이 주변에서는 식물성(植物性)에 가장 많은가 보다. 식물은 자란다는 의미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 볼 적에 木이라고 하는 것은 이점이 특별하다고 본다. 이렇게 성장하는 성분은 사람에게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도 어린 사람에게 많다고 봐서 사람에게는 어린 시절을 청춘기(靑春期)라고 한다. 청춘에서는 木이라는 이미지가 상당히 강하다. 푸를 청은 목의 색깔을 의미한다. 봄 춘도 목의 계절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의 木인 청년기에는 항상 미래를 생각하고 기분에 좌우되고 꿈이 많고 육체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하고 있다. 사소한 억압에도 견디기 힘들어하고, 하고 싶은 것을 자제하는 힘도 부족하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너무나도 木을 닮았다. 그래서 이러한 주변을 보면서 목을 이해하는 것이다.

목은 인내심이 부족한 반면에 순수하기도 하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할 적에 참가해보면 사회와 타협하지 않는 순수함이 배어있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순수한 것도 또한 목이라고 한다.

그리고 목은 또 욕심이 많다. 청년들은 뭔가 자신의 목적달성이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래선지 몰라도 항상 일에 집착을 한다. 그러한 점은 일단은 바람직하지만 역시 적당한 것이 보기에도 좋다. 뭐든지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또한 좌절을 하기도 하는 청춘은 아무래도 좀 덜자란듯 하다. 목의 기본성분이 희망(希望)이기 때문일 것이다.

목의 양은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한다. 앞으로만 나가려고 하는 것은 용수철과도 같은 의미가 있다. 어린아이들은 항상 미래에만 관심이 있다. 과거라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직 미래에만 마음이 가는 것은 목의 시기라서 그렇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몇 살 더 먹으면 학교에 가느냐?

몇 밤 더 자면 생일이 되느냐?

항상 이와 같은 질문을 입에 달고 있다. 이것도 역시 목의 성분으로 이해를 한다. 목은 언제나 이와 같이 희망을 포함한다. 희망과 욕심이 비례한다는 것도 재미있다. 욕심이 없으면 목숨을 달아놓고 일을 추진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젊음이란 그렇게 한가지 일을 향해서 돌진을 할 적에는 좌우를 돌아보지 않는다. 좌우를 살피기 시작했다면 이미 木의 성분을 벗어났다고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사회가 부패했다고 시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앞만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패를 한 이유라든지 사람이 살아가는 여러 가지 이유 등을 생각하다 보면, 모든 부조리도 이해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조리가 진리라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렇게 허구헌날 길거리에서 최루탄을 마시면서 시위에 가담을 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사회가 공평해지지 않으면 굶어 죽어도 좋다는 식으로 일을 삼아서 떠들고 다니던 친구도 군대를 다녀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위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아직 철이 덜 들었군.'하면서 혀를 찬다. 정말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목의 기운이 어느덧 火의 기운으로 변해서일까? (처음으로)

(1) 목의 본질(本質)

목의 기본적인 구조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는데, 이번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목에 연결된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도록 한다. 우선 목을 의미하는 여러 가지에 대해서 살펴볼 적에, 온갖 모양은 다르지만 각기 그 내부에 흐르는 어떤 느낌이랄지... 그런 것에서 일관된 목이라고 할 수 있는 성분의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한 구조에 대해서 가능한 상세하게 생각을 해보도록 한다.

목의 이모저모

분류

설 명

형상 

나무처럼 생겼다.

나무

나무에서는 성장부분인 잎눈이 특히 목의 성분이다.

도형

직선이나 곡선이다. 그래서 곡직(曲直)이라는 말을 한다. 

수리

선천수로는 3과 8이고, 후천수로는 1과 2이다. 

음양

양의 체이면서 음의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인생

유년시절을 나타낸다. 성장기이다.

인체

신경조직이 나무와 흡사하게 생겼다.

장기

간장(肝臟)과 담(膽)을 목의 배열에 넣는다.

기관

시신경의 분야는 목의 기운이 발산되는 영역이다.

방위

동서남북에서는 동방(東方)을 나타낸다.

색채

삼원색에서는 청색(靑色)을 목의 상징으로 취한다.

계절

일년의 사계절로는 봄에 해당한다.

심리학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같은 성격이다. 

지구 

세계지도로 논할 적에는 동북아시아 특히 극동이 해당하고, 한국과 일본이 가장 강하게 목의 성분이다.

한반도

한국에서는 강원도를 목기운이 많은 동네로 본다.

자동차

스포츠카의 고속위주는 목에 해당한다. 

차구조

엑세레이터는 앞으로만 나가는 목과 공통적이다. 

음성

'?' 과 '쑁'이 목의 소리에 해당한다.

컴퓨터

입력장치인 키보드나 마우스 또는 스케너가 해당한다.

s/w

저장성보다는 앞으로 진행하는 성분으로 게임종류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주변 사물에서 목에 연관된 것을 찾아본다. 이 분류법에는 목의 특성을 갖고서 찾게 되는데, 어느 물질이던지 그 물질이 독립된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한다면 그 중에서는 틀림없이 목에 해당하는 원리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서 면밀하게 살피다 보면 그럴 싸~ 한 장면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20가지로 종류를 나열해서 목에 해당하는 성분을 찾아 봤듯이, 이제 또 여기에다가 추가로 자신의 종사하는 일에서도 얼마든지 목에 해당하는 구조를 찾아서 넣을 수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이 명리의 공부는 이렇게 기본적인 구조를 이해하고서는 스스로 또 다른 유형을 찾아서 자꾸 확대해석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뭔가를 얻게 되고 그래서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주어진 자료만 갖고서 대입을 시키고 스스로 궁리를 하는 것이 없다면 아마도 그 자리에 머물러서 더 이상은 발전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있는 눈으로 부지런히 연구하고 궁리하는 마음이 소위 말하는 '대가(大家)'라고 하는 대열에 가장 빠른 시간에 진입을 하게 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과연 목의 본질은 무엇일까? 가장 뚜렷한 성분이라고 한다면 처음의 시작에 해당한다는 점과, 매우 활발한 움직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움직임은 사방팔방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 향해서 나아간다는 집중감도 포함한다. 그러니까 폭탄이 사방으로 튀는 것과는 다르게 한 방향으로 뻗어 가는 불꽃놀이의 폭죽을 연상해본다. 나무도 뭔가 자신의 목적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성분이 강한 것이지 아무렇게나 사방팔방으로 가지를 뻗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면서 이러한 추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발산되는 성분이면서도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은 화(火)의 구조와 비교해서 본다면, 아직은 덜 성숙한 양(陽)이기 때문이라고 하겠는데, 빛이 산지사방으로 발산되는 것과 비교하면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성분이 가장 목의 특징다운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성장하는 구조가 눈에 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다섯가지의 오행 중에서 목처럼 생사의 경지를 들락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오행도 없다고 하겠다. 특이하게도 삶이라는 형태를 말할 수가 있는 형태인 목은 다른 네 가지에 비교해서 분명한 특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대강 이러한 정도로 목의 특징에 대해서 정리를 해본다.

(2) 목의 마음

목의 형상에 대해서는 설명을 드렸는데, 이번에는 목에 해당하는 마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한마디로 한다면 목의 마음은 미래지향적이라는 것으로 대신할 수가 있을 것이다. 언제나 앞을 향해서 나간다. 그 모델은 20세 이전의 사람에게서도 찾아볼 수가 있겠다. 어린아이들이 항상 앞만을 쳐다보고서 가는데, 전후좌우를 살피는 기능은 아예 없다고 본다. 그래서 길을 건널 경우에도 길 저편에 어머니가 있으면 옆에서 차가 오거나 말거나 그냥 내달리는 경우가 있어서 도로사고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보고를 본 기억이 난다. 물론 교육을 통해서 이러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겠지만, 그 본성은 좌우를 살피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기본인 것이다. 이런 마음이 바로 목의 마음이라고 보자는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보면서도 목의 마음을 감지해본다. 나무는 어디에 있던지 위로 자란다. 장마 비에 지반이 무너져서 나무가 옆으로 쓰러지게 되면 그냥 그 방향대로 옆으로 자라는 게 아니라, 다시 그 위치에서 위로 새순을 만들어서 90도의 각도를 유지한 채 그냥 위로 자란다. 그러니까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는 '위로'라는 말로 해야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비교적 단순하고 솔직하다. 복잡한 것을 추리하고 연구하는 데에는 선천적으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오히려 단순한 일에서 탁월한 진취력을 발휘한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리고 시작을 잘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일을 잘 벌린다. 벌리는 것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마무리가 신통하지 못하다고도 본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이 재미있어서 놀다가는 갑자기 싫증이 나버리면 언제 그렇게 열심히 놀았냐는 듯이 놀던 기구들을 내팽개쳐버리고는 금새 또 다른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한반도는 지구에서 볼 적에 목의 방향에 속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작을 잘 하는 민족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도 있겠는데, 무슨 일이던지 시작은 잘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을 하는데, 또한 반대로 마무리는 신통치가 못한 경우를 너무나 허다하게 접한다. 스포츠경기에서도 이 재능은 유감없이 발휘가 된다. 특히 축구경기장에서는 언제나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항상 마무리가 부족하기 때문인데, 이 마무리를 강화시킨다고 한 것이 20년도 넘은 것으로 기억되는데 아직도 잘 안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과연 우리 한반도는 마무리에 부족한 민족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상품을 봐도 짐작이 간다. 처음에는 멋지고 그럴싸한 제품이 나온다. 그래서 좋다고 생각하고 무심결에 사용을 하다보면 어느덧 그 상품은 왜곡되기 시작해서 불순물이 삽입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완전히 불량품에 가까운 제품으로 둔갑을 하게 되는 것도 또한 한반도의 토양에 의한 영향이라고 하면 너무나 무책임한 말이 될 것 같다만, 어쩌겠는가? 또한 이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담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물어보면 국산담배는 피워주고 싶어도 짜증이 나고 얄미워서 사주기가 싫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처음에는 맛이 그런 대로 피울 만 한데 언제부턴가는 서서히 맛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급기야 "이거 담배 맛이 왜이래?" 소리가 나오게 되면 머지 않아서 담뱃값 인상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맛을 보면서 담배값의 움직임을 느낄 수가 있다고 한다. 반면에 수입담배는 한번 그 담배의 맛을 들여놓으면 언제라도 항시 그 맛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전매청에서 하는 행동거지가 얄미워서 국산담배를 피우기가 싫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낭월이도 생각해 볼 적에, 국산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특별히 세금에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니고, 피울 때마다 불쾌한 기분이 든다면 담배를 피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결코 건강에 좋을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는 것은 간단하고, 그렇다면 내돈 내고 내가 즐기는데 기분조차 나빠가면서 국산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권유를 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는 상투적인 수법이 애국심에 호소를 하는 것인데, 이것도 옛날의 이야기이지 요즘처럼 개방이 되어 가는 시대에는 참으로 영양가 없는 잠꼬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을 하는 사람들이 딱하게도 생각되고, 또 한편 역학을 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목의 영향을 받아서 시작은 잘하고 마무리는 잘 못하는 특성으로 인한 것이겠거니... 하면서 포기를 하는 마음도 드는 것이다. 결국은 이러한 것들이 모두 목의 특성이라는 결론을 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 아닌 결론인 듯 하다.

목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서 참으로 한국이라는 특성을 잘 대변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것은 동글동글한 지구에서도 동서남북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기도 한다. 한반도가 동쪽이라는 것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을 했다고 해서만도 아니다. 서양의 사람들도 한반도를 동방으로 보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것은 뭔가 땅의 움직임에서 동서라는 기준이 애당초에 마련된 것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처음으로)

 
 

 


  1. 화의 본질
  2. 화의 이모저모
  3. 불의 마음


불은 밝음으로서 그 본성을 삼는다. 그래서 모든 것을 분명하게 처리한다. 이를 일러서 예(禮)라고 한다. 그러나 또한 무례하기도 한 것이니, 지나치게 불이 많으면 예도 또한 무례하게 된다고 한다. 즉 지나친 사양은 결례라는 말과도 통한다고 하겠다. 그러고 보면 예와 무례는 같은 종이의 양면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혼돈→양→양중의 양→다시 음양으로 분리→십간의 병정(丙丁)

陽(丙) : 태양, 폭발력, 난폭, 투쟁적, 예의, 선명함,

陰(丁) : 달, 문명(文明), 학자, 희생, 봉사, 헌신,

불은 언제나 인간의 문명과 함께 해왔다. 인간이 불을 발견한 이래로 다른 동물들과는 선명하게 구별되는 독특한 文化라는 것을 만들어 온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볼 적에 인간에게 있어서 불은 꽃이라고도 할만 하다. 우선 불은 그 본성이 밝음이라고 하는데, 사람에게도 가장 사리에 밝은 시절이 있다. 즉 청년(靑年)의 인생을 말한다. 대략 나이로 치면 25세 이후라고 보면 될듯하다. 初年의 少年기에는 모든 일이 어설프고 풋내가 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나이 30을 전후하면 이때는 천방지축이 뭔지는 이해한다. 그리고 뭔가 밝은 생각으로 인생을 설계하게 되는 것이다. 다분히 감정적으로 일을 대하기보다는 보다 사리분별을 하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서 일생동안 업으로 삼을 일을 냉정하게 구하기도 한다. 이 火의 나이가 되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감정적으로 동분서주(東奔西走)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일러서 '철이 덜든 사람' 이라고 이름한다.

그래서 누구나 그 나이에 어울리는 생각과 행동이 있는 모양이다. 너무 어린 녀석이 사리에 밝으면 애늙은이라고 해서 징그럽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불의 기운이 발생해야 할 나이에 또 천방지축을 못 면하면 역시 사람들이 걱정을 하는 것이다. 이 나이에는 가정을 꾸미고 자식을 얻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면서 애아범이라던 지 애어미라는 말에 어울리게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렇지 못하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다른 생명체에게 없는 오행을 골고루 갖고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오행을 골고루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음양오행으로 비추어서 길흉을 판단할 수가 있다고 한다. 다른 동물들은 이렇게 오행을 고르게 갖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명의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장난으로라도 집에서 강아지가 태어난 시간을 잡아서 사주풀이에 응용을 해봐도 전혀 맞을 리가 없다고 한다. 사주라는 학문은 오행의 기운을 고르게 받고 태어난 인간에게만 적용해야 한다는 이론을 많은 명리학자분들이 말씀하셨다.

불은 정열이라고 말한다. 정열은 인생의 꽃이다. 그래서 정열은 사랑과도 맞먹는다. 사실 20세 이전에 그렇게 몰려다니면서 시위를 하던 친구들도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 이제는 사랑을 찾아다닌다. 사랑을 애인에게 고백할 적에는 뭐라고 말을 하는가? '불타는 사랑을 그대에게'라고 말을 해야 뭔가 분위기가 잡힌다. '물 같은 내 사랑을 그대에게 준다.'고 한다면 이게 무슨 맥주 김빠지는 소린가? 할 것이다.

불과 사랑은 뗄래야 뗄 수가 없을 정도로 흡사하다. 장미꽃은 사랑을 닮았지 결코 죽음을 연상하기 어렵다. 장미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언제가 그 자리에 어울리는 모양새가 있는가보다. 이 사랑과 장미꽃은 인생이 불의 시기를 맞이했을 때에 생기는 일이다.

(1) 화의 본질

불이 폭발하는 성분이라고 볼 적에 이것은 가장 화의 구조를 잘 대변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가하게 한 방향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분주하게 동서남북으로 뛰어 다니는 성분이라고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화의 특성이 양중지양(陽中之陽)으로써 극양(極陽)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 양은 구석구석에 빛을 전달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을 다양한 사물의 구조를 통해서 관찰해 봄으로써 이해를 돕도록 하자.

화의 이모저모

분류

설 명

형상 

불처럼 생겼다.

나무

나무에서는 꽃이 특히 화의 성분이다.

도형

불규칙한 직선이다. 그래서 염상(炎上)이라는 말을 한다. 

수리

선천수로는 2와 7이고, 후천수로는 3과 4이다. 

음양

체와 용이 모두 양으로 순양(純陽) 또는 극양(極陽)이다.

인생

청년시절을 나타낸다. 결혼기이다.

인체

순환기능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불과 흡사하게 생겼다.

장기

심장(心臟)과 소장(小腸)을 화의 배열에 넣는다.

기관

안광(眼光) 즉 시력은 화기운이 발산되는 영역이다.

방위

동서남북에서는 남방(南方)을 나타낸다.

색채

삼원색에서는 적색(赤色)을 화의 상징으로 취한다.

계절

일년의 사계절로는 여름에 해당한다.

심리

선악을 분별하고, 시비를 가리려고 하는 성격이다. 

지구 

세계지도로 논할 적에는 적도부근, 인도 등을 생각하고, 인종으로는 흑인을 상징이다.

한반도

한국에서는 경상도를 화기운이 많은 동네로 본다.

자동차

놀러 다니는 레져용 차량, 관광차량은 화의 성분이다. 

차구조 

전기부분인 받데리와 연계하는 장치들은 불에 해당한다. 그 중에서도 라이트장치 등이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음성

'遁' '?' '?' ' ?는 화의 소리에 해당한다.

컴퓨터

보여주는 기능인데, 그 중에서도 모니터가 해당한다.

s/w 

계산을 하고 보여주는 형태의 정확성을 요하는 것이다. 즉 스프레드시트 종류인 엑셀이나, 로터스123등이 해당한다.

이러한 종류로써 불에 해한 본질을 이해하도록 한다. 형상별로는 목의 시작하는 분위기가 좀더 진행된 형태라고 보겠다. 목이라는 것이 마음을 음양으로 본다고 하면, 아직은 양이 덜된 구조로 짜여져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목의 마음은 불에 있는 것이지 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된다. 목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 속에는 불로 나아간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봐도 좋겠다.

(2) 불의 마음

이번에는 불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애초에 불의 마음은 정열적인 청춘의 마음이라고 했는데, 특히 밝음이라고 하는 마음을 빼 놓을 수가 없다고 본다. 불은 그 자체가 빛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별을 불이라고 보는 것도, 바로 그 자체가 밝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에 속하는 마음도 침침한 것이 아니라 명확한 것을 말하게 된다. 옳으면 옳고 나쁘면 나쁜 것이다. 불에게 있어서는 아리송한 답변은 없다고 봐도 좋다. 언제나 명확하게 구분을 해야 만이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선생님의 성분에서 불의 구조로 되어있다면 그 반의 학생들은 모두 피곤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항상 상과 벌이 분명하기 때문에 달리 토를 달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여유가 없어 보이는 점도 포함된다.

지금의 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가장 현실성이 높은 성분이라고 본다. 목이 미래지향적이라는 것과 비교한다면 불의 마음은 '현재충실형'이라고 하면 어떨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판단을 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인생으로 생각해 본다면, 청춘은 지금의 순간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건다고 하는 말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오늘을 마셔버리고 모든 것을 잊고서 춤을 추는 것도 청춘이기에 가능한 것이고, 내일 일을 하기 위해서는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도 불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오로지 오늘 저녁의 이 파티에서 모든 것을 맡기고서 신나게 밤을 새워서 놀기만 하면 되는 것도 청춘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목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내일을 위해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이 밤에 더 강하듯이, 청춘도 밤에 더 강하다. 낮에는 이런저런 허울에 신경이 쓰여서 마음대로 즐기지 못한다고 한다면, 밤에는 그야말로 완전하게 자신들만의 공간을 얻어서 아무 구애를 받지 않고서 젊음을 불태울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성분이 젊은이들에게 모두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확률적으로 볼 적에 화의 성분이 많은 시기이니만큼 충동적인 성분이 많고 그래서 또한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분위기에 휩쓸리는 구조라고 볼 수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만약에 젊은 사람이 '만약'이라는 사슬에 매여서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남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심지어는 '애늙은이'라는 말도 들을 가능성이 있다. 비록 실수는 많다고 하더라도 또한 젊었기에 오히려 실수조차도 아름다울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실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발전을 하기도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항상 조심만 하는 사람의 소심한 마음으로는 뭔가 모험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정신이 결려된다고 본다. 그래서 젊은이는 불의 기운이 펄펄 넘치는 게 아름답고, 늙은이는 사려가 깊은 것이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비록 실수를 할 망정 젊은 불은 그렇게 펄펄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서 우쭐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마음이 불의 참마음이라고 생각된다. (처음으로)


 
 

 


  1. 토의 본질
  2. 토의 이모저모
  3. 토의 마음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고, 그래서 흙을 인간의 완전한 고향이라고 하겠다. 토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 믿음과도 상응한다. 믿음이란 신용(信用)과도 같은 말이다. 흙은 또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성분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토의 기운이 지나치다면, 자칫 고독하고 폐쇄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혼돈→변화하지 않음→음양중립→오행의 항목에서 구체적인 물상(物象)을 얻어서 음양으로 분리→십간의 무기(戊己)

陽(戊) : 지리산, 메마른 고원, 고독, 신의,

陰(己) : 문전옥답, 비습(卑濕), 저장성, 사랑,

토는 음도 양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기본 구조가 信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토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노력한 만큼 되돌려 준다는 말이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정직한 토를 보면서 믿음이라는 기본성분을 이해해본다. 목의 일직선적인 집중력과 화의 산만함과 비교한다면 토는 상당히 여유가 생긴 형태라고 하겠다.

음양에서 사상(四象)으로 나뉠 적에는 토라는 개념이 빠졌다. 당연히 토가 있었을 것인데도 빠진 이유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었겠지만, 아마도 개성이 없다보니까 제외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실 다섯가지의 기본구조 중에서 土만큼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없다. 그만큼 토를 이해한다면 이미 고수의 대열에 낀 것이라고 할만도 하다.

하건충(何建忠) 선생은 四象에서 토가 추가되는 이유를 원래 혼돈(전체)이라고 했던 성분이 그대로 하강(下降)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은 혼돈에서 음양으로 분리가 되었을 적에도 이미 원래의 혼돈성분은 토화(土化)되어서 음양의 사이에 자리를 틀고 앉은 것이다. 이것을 中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음양에서는 완전히 빠져버렸던 것이다. '陰陽中'으로 태극이 나타나 있는 것은 우리 나라의 삼태극(三太極) 뿐이다. 세계의 어디를 봐도 삼태극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이 좁은 한반도에서만 삼대원소인 삼태극의 표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장차 한반도에서 지구를 통솔할 기미가 보인다는 최근 선지자들의 예언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렇게 선조 대대로 음양이라는 사이에 중간에 해당하는 성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민족이라면 장차 세계통일의 주역이 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土라는 구조로 되어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동안에는 그냥 뒤에 가려져 있다가 五行으로 분화되면서 비로소 스스로 등장을 하는 것이 토의 성분이다. 그리고 토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는 잘 보이지 않아서 인식하기가 어려웠는데 여기에서 土라고 하는 성분으로 개별적인 작용을 하기 때문에 비로소 이 성분에 대해서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피라미드라는 물건이 자연의 신비한 기운을 모으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여러 분야에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해서 지금은 피라미드의 기를 이용하는 기구들이 상당부분 외국에서 호황을 누리면서 팔려나간다고 한다. 그런데 피라미드는 면이 4면이다. 서로 대립을 이루면서 모여져 있으면서 결국은 맨 끝에서 서로 만나게 되어있다. 그러려니까 어쩔 수없이 삼각형으로 생겼나보다. 그런데 이것을 五行이라고 하는 구조로써 설명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네 가지의 면은 四行이라고 보면 어떨까 싶다. 사행이라는 것은 木火金水를 말한다. 이들은 서로 대립이 되는 형태의 구조로 되어있다. 金木이 서로 대립되고, 水火가 역시 서로 대립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대립을 통일시키거나 견제하고 있는 것이 바로 土라는 一行이다. 이 토가 없다면 영원한 대립만이 존재한다.

그러면 피라미드에는 오행 중에서 土에 해당하는 성분이 없는 것일까 하고 궁리를 해봤다. 그런데 피라미드의 내부에서는 놀라운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우주의 기운이 한자리에 모여서 대단한 파워를 연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파워는 바로 四行이 모여서 한 덩어리가 되는 어떤 보이지 않는 비밀이 있다고 생각되어서 궁리를 해본 결과 바로 이렇게 사면에서 들어온 기운을 한 덩어리로 응축하는 성분이 土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본적인 五行論에서도 서로의 특별한 기운이 대립하고 있는 것을 별 특색이 없는 土라는 것이 어우러지게 하고 조절하는 중화(中和)의 성분이라고 한다. 이로 본다면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할 것만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피라미드에서도 토의 작용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토라는 성분은 이렇게 겉으로 봐서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참으로 신비한 물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토의 성분을 구석구석 이해한다면 당연히 '오행도사'가 되리라고 생각해 본다.

너무 토에 대한 예찬만 늘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토에도 당연히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야 음양의 이론에 걸맞기 때문이다. 단점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폐쇄성이 아닐까 싶다. 토라는 것은 푸욱 파묻혀서 있으니, 앞으로 나아가는 생동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처럼 초점이 뚜렷한 것도 아니므로 옆에서 보는 사람은 항상 답답한 마음이 든다.

누가 시위 행렬에 가담하기를 권한다면 토는 그렇게 말한다. '그 사람들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네요. 그렇지만 이렇게 나서서 강제적으로 밀고 간다고 해서 일이 다 되는 것도 아니구먼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서 서로 타협을 해보는 게 어떨까요?' 라고 말하기가 십상이다. 그러므로 성질 급한 木이 볼 적에는 정말로 한대 후려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답답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힘없는 백성을 괄시하고 착취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렇지만 토는 전혀 묵묵부답이다. 참 답답한 인사다. (처음으로)

(1) 토의 본질

토의 본질은 어느 것과도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오행에서 토를 제외한 다른 네 가지의 성분들은 서로 대립을 하지만, 토가 있음으로 해서 서로 화평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자평진전에서는 토는 충기(沖氣)로써 발생했다고 하는데, 충기라는 것은 금목(金木)과 수화(水火)가 서로 대립을 하는 과정에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발생한 기운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른 성분들은 모두 토라고 하는 과정과 인연을 맺게 됨으로써 서로 창조의 성분이 활용되는 관계를 갖는 것이다.

마치 자동차에서의 변속기인 기어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자동차가 달리면서 가속이 되면 기어를 변속해줘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빠른 속도로 나아갈 수가 없다. 1단에서 2단으로 변속을 하고, 또 2단에서 3단으로 변속을 해나가면서 가속을 시키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 순서를 무시하고서 1단에서 단번에 5단으로 변속을 한다면 차량에는 상당히 무리가 갈 것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렇게 변속을 하더라도 일단 기어는 필요한 것이다. 기어가 없이 그냥 1단만으로 주행을 할 수는 없는 것이 현재의 자동차 구조임이 분명하다.

혹은 '노기어'라는 말을 하는 오토밋션을 떠올리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토라고 하는 것도, 그 내부에서는 엄연히 기어가 작동을 하고 있다. 다만 손으로 변속하는 것을 기계장치가 자동으로 해주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렇게 자동차를 비유로 해서 생각을 해봤지만, 토의 자신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없어서는 않되는 형태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을 일러서 토의 본질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특징은 지지(地支)의 배열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나중에 지지에 대한 항목에서 언급을 하겠지만, 참고삼아 말씀을 드린다면 진술축미(辰戌丑未)라고 하는 네 개의 지지는 모두 토로써 각기 계절의 끝에 붙어 있으면서 서로의 오행을 연결시켜주는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중간에는 진토(辰土)라는 성분이 변속을 하고 있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에서는 미토(未土)라는 성분이 기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술토(戌土)의 작용을 거쳐야 하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데 에는 축토(丑土)가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이 토의 본질이라고 보겠는데, 다시 표를 통해서 토에 해당하는 성분이라고 생각되는 각각의 기능들을 생각해보도록 한다.

토의 이모저모

분류

설 명

형상 

흙처럼 생겼다.

나무

나무에서는 결실부분인 열매의 과육(果肉) 성분이다.

도형

동그라미의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수리

선천수로는 5와 10이고, 후천수로는 5와 6이다. 

음양

음과 양의 중간적인 위치에서 조절을 하고있다.

인생

중년시절을 나타낸다. 완숙기이다.

인체

소화조직이 토와 연결되어 설명된다.

장기

비장(脾臟)과 위(胃)를 토의 배열에 넣는다.

기관

입은 토의 성분이 발산되는 영역이다.

방위

동서남북에서는 중앙(中央)을 나타낸다.

색채

삼원색에서는 황색(黃色)을 토의 상징으로 취한다.

계절

일년의 사계절 로는 환절기에 해당한다.

심리학

완숙한 성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성격이다. 

지구 

세계지도로 논할 적에는 중앙부위에 해당하며 특히 중국을 토의 성분이 강한 것으로 본다.

한반도

한국에서는 충청도를 토기운이 많은 동네로 본다.

자동차

대중교통인 버스는 토의 구조에 어울린다.

차구조

기아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조절하는 토와 공통적이다.

음성

'둁' 과 '큁'이 토의 소리에 해당한다.

컴퓨터 

메모리에 해당하는 램인데, 편견없이 어떠한 프로그램이던지 사용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즉 중용의 개념이다.

s/w 

수없이 많은 종류의 자료를 보관하고 활용하는 데이터베이스 종류이다.

몇 가지의 형상을 통해서 토에 대한 이해를 도와보려고 만들어 본 표이다. 물론 더러는 엉성한 의미가 있겠지만, 그 바닥에 흐르는 것에서 취상(取象)하였다는 것을 참조해서 음미해 주시기 바란다. 이것은 각각의 오행에 대한 표에 대해서 모두 공통된 말씀이다.

이 정도로 상세하게 말씀을 드렸으니 대략 토라고 하는 성분에 대해서 이해를 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요령을 말씀드린다면, 낭월이의 글은 머리로 외우려고 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껴보시기를 권한다. 그 바닥에 흐르는 기운을 읽으시는 것이 훨씬 이해를 도울 것이다. 스파르타식으로 열심히 외우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활용성이 떨어지는 단점도 부인을 할 수가 없다. 외우기보다는 이해를 함으로써 무한히 넓은 활용 성을 얻게 되는 장점이,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이면에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처음으로)

(2) 토의 마음

이번에는 정신적인 면에서 토를 살펴보도록 한다. 말은 이렇게 해도 실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뒤범벅이 되어있다는 것을 느끼실 것이다. 그래도 가능하면 정신적인 면을 고려해서 설명을 드려본다. 토의 본질에서는 대체로 형상적인 면에서 토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는데, 토의 정신에는 어떠한 것이 흐르고 있을까?

우선 인생살이로 견주어서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시기를 인생으로 따진다면 아마도 40대 중반이 아닐까 싶다. 대략 40대가 되면 사람의 개성이 서서히 없어진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인 특성보다는 환경 적인 직장의 영향과 가정적인 영향이 서로 어울러져서 형성된 中和(?)적인 분위기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기라고 생각이 된다.

木火의 시기에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계획만을 많이 세웠다고 한다면 이때에는 이제 뭔가 생의 과거(過去)를 돌이켜보는 나이가 될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자신이 뭘 이뤄놓았는지 조용히 음미하는 나이가 바로 40대의 중반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될 일과 불가능한 일을 판단하고 다시 재정비를 하는 심사숙고하는 인생이라고 본다.

이때에 자칫 삐끗하면 인생의 설계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시기를 경과한 사람은 뭔가 생각이 깊은 사람의 냄새가 풍긴다. 그래서 생각컨데 30전에 죽는 사람들은 토와 같은 중후한 맛을 못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된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신 '사십 불혹(四十不惑)'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정확히 들어맞는 이야기가 된다. 그 이전에는 뭔가 시행착오도 해보면서 뭔가 새로운 도전도 해보면서 그렇게 활발하게 실험적인 인생을 살아왔다면 이제는 자신이 태어나면서 무슨 업을 타고났는지 깊이 생각해보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타고난 천명(天命)에 순응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나이 이것이 바로 土로써 설명을 해보는 中年의 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중년은 청년과 노년의 교체시기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펄펄 날뛰면서 용기 백배하는 젊음과, 뭔가 생각이 깊은 50대의 이후에 느끼는 모습의 중간역할인 40대에는 분명히 뭔가 생각을 할 점이 많을 것 같다. 자신만을 생각하던 시절에서 세상은 혼자서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비로소 전개되는 것이다. 이럴 즈음에는 생각도 매우 복잡해진다. 단순한 직선형에서 산만한 분산형으로... 이번에는 다시 융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원(圓)의 형태로 변환되는 과정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그 동안 배우고 느꼈던 모든 자료들이 이 시기에서 하나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보겠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파악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도 알게 되는 시기에 해당하니까, 공자 님도 40에 천명(天命)을 알게 되었다고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일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이렇게만 되면 전혀 흔들리지 않고서 자신의 길을 갈 수가 있겠기 때문이다. 사람이 흔들리는 것은 자신의 일을 찾지 못했을 때이다. 자신의 몫에 대해서만 분명하게 파악을 했다면 흔들릴 필요가 없겠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1. 금의 본질
  2. 금의 이모저모
  3. 금의 마음


가장 강건한 성분이다. 그리고 의리(義理)를 가장 중히 여기는 성분이기도 하다. 뜻이 통하는 벗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만, 운세가 불량할 적에는 자칫 침체가 잘 되는 단점도 있다.

혼돈→음→음중의 양→다시 음양으로 분리→십간의 경신(庚辛)

陽(庚) : 바위, 강인함, 인내, 살기, 천진함,

陰(辛) : 보석, 냉혹, 피를 두려워하지 않음, 표현욕구,

금은 금속이 대표적인 물질이다. 그리고 바위와 같은 원석이 양의 금에 해당하고, 가공이 되었다고 보는 순도가 높은 금속은 음의 금이라고 통상 이해를 한다. 그러면 금은 과연 무엇일까? 木을 극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봐서 바위라고 하면서도 살기(殺氣)를 띄고 있는 기운이라고 하기도 한다.

적천수(滴天髓)에서는 금을 일러서 숙살지기(肅殺之氣)라고 했다. 즉 생명을 죽이는 힘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한 근거는 있다. 가을을 일러서 금왕지절(金旺之節)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금의 기운이 강하니까 가을에 모든 산천의 초목이 시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金에다가 '살기(殺氣)'라는 살벌한 기운을 집어넣었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인생살이에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필요 없는 이치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전제할 적에 금의 기운은 과연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금의 맛은 맵다고 한다. 매운 맛이라는 것에서 드는 느낌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꼭 매운 맛을 봐야 알겠어?" 라는 말속에는 뭔가 상당히 협박적인 분위기가 서려있어보인다. 그것이 바로 金氣의 숙살지기라고 하는 금 성분인 것이다. 그러니까 시집살이의 고달픔에 대해서도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고추당추 맵다한들 시집살이보다 더 매울까" 하는 말 말이다. 이렇게 매운 맛은 맛의 오행 중에서 금의 맛이다. 가령 목의 맛은 신맛인데, "시집살이가 새콤하다"라는 말을 한다면 어느 누구도 고생한다고 말을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시집살이가 맵싸~하다"라고 해야 '흠.. 좀 힘이 드는 모양이구먼...'하는 느낌이 든다. (처음으로)

(1) 금의 본질

금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적에는 금속(金屬)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더 나아가서는 광물질(鑛物質)도 생각해봐야한다. 금속이 광물질에 포함이 되기 때문이다. 금속 또는 광물질은 고열(高熱)을 받을수록 단단해진다. 옛날 무림시절(武林時節)에는 칼이나 창이나 철추나 도끼 등등 무기를 생각해 볼 적에 모두 철(鐵)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당시에는 무공도 무공이지만, 무기에도 매우 열성적인 관심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무기 중에서도 좀더 단단한 철로 만든 무기를 원했고, 그 결과로 어느 산에서 나는 철로 만든 칼이 명검이라는 말이 생겨난다. 그러면 그 철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또 그렇게 구해서 만들어진 철은 천 번의 단금질을 통해서 더욱 강한 쇠로 변해간다. 그렇게 불 속과 물 속을 드나들면서 단련이 된 쇠는 드디어 강력한 보검(寶劍)이 되고, 이 칼은 수많은 무림에서 쟁탈의 표적이 되었다. 단지 한 자루의 검(劍)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스러져간다.

무공의 차이가 난다면 무기는 별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대등한 무공이라고 한다면 무기는 대단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무술이 높으면 높을수록 검에 대한 간절한 욕망도 배가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쇠는 단단할수록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된다.

아니 구태여 소설적인 명검에 대한 이야기만도 아니다. 한옥 집을 지으려면 당연히 주춧돌이 필요한데, 여기서도 단단할수록 좋은 주춧돌이 된다. 명색이 돌이라고 한다면 아무렴 기둥보다야 덜 단단하겠는가만, 그래도 주춧돌이라고 한다면 가장 단단한 돌이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면에서 금에 해당하는 성분은 단단해야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고, 그 단단함은 매우 높은 고열을 견디고 나온 다음에 얻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금에 대한 형상은 일일이 열거를 할 수가 없는 고로 역시 표를 이용해서 간결하게 정리해서 생각해보도록 한다.

금의 이모저모

분류

설 명

형상 

금속이나 바위처럼 생겼다.

나무

나무에서는 목질의 견고한 부분이 금의 성분이다.

도형

모나고 울퉁불퉁한 모양을 같고 있다.

수리

선천수로는 4와 9이고, 후천수로는 7과 8이다. 

음양

음의 체이면서 양의 성분을 담고있다.

인생

장년시절을 나타낸다. 마무리 단계이다.

인체

골조(骨組)가 금의 오행을 갖고 있다고 본다.

장기

폐장(肺臟)과 대장(大腸)을 금에 넣는다.

기관

코는 금의 기관이 외부와 연결되는 영역이다.

방위

동서남북에서는 서방(西方)을 나타낸다.

색채

삼원색에 없는 백색(白色)을 금의 상징으로 취한다.

계절

일년의 사계절로는 가을에 해당한다.

심리학

중후하고 무게 있는 성격이다. 

지구 

세계지도로 논할 적에는 유럽을 나타내고, 특히 프랑스나 영국, 그리고 미국까지도 금에 속하는 성분이다.

한반도

한국에서는 전라도를 금기운이 많은 동네로 본다.

자동차

한가지 용도로 쓰이는 차량은 모두 금의 성분으로 본다.

차구조

브레이크는 금의 기능으로 본다. 

음성

'걁' '롁' '쁁' 이 금의 소리에 해당한다.

컴퓨터

롬바이오스와 시모스 등 각인(刻印)된 부분이 해당한다.

s/w

고정되어 있는 형태로써 사전종류이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금에 대한 것을 이해해본다. 일례로 자동차를 생각해본다면, 브레이크가 금에 해당한다고 보는데, 금극목(金剋木)하는 성분은 나중에 이해하게 되겠거니와, 목의 성분인 엑셀레이터를 강력하게 견제하는 기능인 브레이크, 이것은 완전히 일치를 하는 구조이다. 속도를 낼 수가 있는 것은 브레이크가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 분명한데 만약에 브레이크가 고장이 났다고 한다면 이 차량은 시속 10km도 달릴 수가 없을 것이 뻔하다. 물론 죽을 작정을 한다면 예외이겠지만 말이다.

강력한 제동장치가 있기 때문에 시속 160km로 달리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금의 기능은 뭔가 달리는 속도를 멈추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성분은 가을이라는 계절에서도 의연하게 살아있다. 아시다시피 가을에는 모든 생명체들이 성장을 멈추어 가는 계절이다. 산천초목이 그렇고 모든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곰이나 개구리는 아예 땅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자연에서 생기(生氣)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내년 봄에 다시 생기가 발동하면 뛰어 나올 것을 기약하고서 조용하게 숨어버리는 것이 자연의 모습이다. 이러한 자연의 모습에서 금의 기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2) 금의 마음

역시 금의 마음도 인생에 견주어서 생각을 해보도록 한다. 金의 기운이 인생으로 따지면 중년을 넘어서 초로(初老)라고 볼 수 있겠다. 나이로 치면 50대라고 보자. 이 때에는 뭔가 일생동안 벌여놓은 일에 대한 결실을 생각하는 시기라고 생각된다. 학자의 길을 걸어왔다면 학문으로써 인정을 받을 시기가 될 것이고, 사업가로써 살아왔다면 재물을 상당부분 모았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가정적으로도 자녀가 이미 성장을 하고 머지 않아서 결혼을 시킬 준비도 할 것으로 봐서 분명히 인생의 결실을 생각하는 시기라고 하겠다. 그러한 시기에 숙살지기인 金의 기운이 작용을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여기서 숙살지기(肅殺之氣)는 사방으로 벋어나가는 가지에 대한 작용을 억제시키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이 오십에 무슨 일을 새롭게 한다고 하면 말리고 싶어진다. 특히 대표적인 사람이 있는데, 바로 정년퇴직을 한 교사이다. 일생동안 교직에 종사하면서 사도(師道)의 길을 걸어온 선생님은 항상 재물에 대한 탐심을 통제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언제나 후학들이 바르게 스스로 목적을 갖고 살아가도록 일생동안 목이 따갑게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왔다.

이제 그 일이 나이에 밀려서 물러나게 되었고, 교육에 종사했다는 댓가로 얼마간의 퇴직금이 주어진다. 보통은 그렇게 일을 마치고서는 조용하게 시골의 전원생활에 젖어 들어서 일생동안 연구하고 싶었던 많은 자료들을 정리하고 책으로 저술하면서 보내게 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본다.

그런데 어떤 선생님들은 갑자기 큰돈이 손에 들어오자, 일생동안 넉넉하지 못한 박봉으로 가족들에게 항상 불편을 주었던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일생동안 교직자로써 인정을 받아왔던 것처럼 이제는 그 돈을 이용해서 재물로 인한 욕구를 채워보고 싶어진다. 안전하게만 굴린다면 아마도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 생길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서 사업가에게 의뢰를 한다. 역시 돈은 돈의 전문가에게 묻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업가는 또 일생을 교단에서 고지식하게 바른 길로 살아가는 것만 이야기하던 선생님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서 사업조언을 해주면 참으로 철이 든 사업가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업가는 돈의 냄새만 맡으면 죽었다가도 되살아난다. 그래서 이 선생님에게 돈을 두 배, 세 배, 아니 열 배로 뻥튀기 할 수 있는 방법을 입에 거품을 물고서 설명을 한다.

물론 사업가의 안목으로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업가가 볼 적에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선생님 망하도록 조언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말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면서 사업가의 가르침에 따라서 돈을 투자하게 된다. 여기서 커다란 실수를 하고 마는 것이다. 그 사업가는 거래처에서 돈을 주지 않으면 얼음장도 놓고, 정 안되면 집달리를 시키던지 고소라도 하는 것이 사업이라고 생각하겠는데, 이 선생님은 그렇게 어려움이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모두가 자신의 생각대로 인과의 법칙대로 하나하나 풀려나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사실 사업가의 말을 듣다 보면 정말로 금새 돈방석에 올라앉을 것만 같은 것이 대단히 매력적이다. 사업가는 돈의 생리를 잘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두 배가되고 세 배가 된다는 점에 훤하지만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순리로만 흘러서 돈이 모일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업가는 처음으로 돈을 벌어보려고 나선 신출내기 사업후배에게 불길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장 잘 될 수 있는 조언만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사업가의 청사진만 믿고서 일생동안 받은 퇴직금을 모두 집어넣고는 일을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뭔가 될듯 하더니만 한가지 두 가지 서서히 막히기 시작한다.

그러면 선생님은 다시 사업가를 찾아가서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자문을 구한다. 그러면 사업가는 당연히 돈을 주지 않는 거래처에는 강력하게 나가야 그 놈들이 돈을 준다고 방법을 일러준다. 그리고서 그 사업가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한다면 성공을 할 확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업가는 그렇게 할 수가 있어도 선생님은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퇴직금으로 시작한 사업은 보나마나 실패작으로 끝날 확률이 90% 이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를 생각해 보건대, 선생님으로 일생을 보낸 학자는 늘그막에 사업을 벌이는 것은 금의 시기라는 하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숙살지기라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종자를 뿌리는 봄에나 계획을 새웠어야 할 일을 늘그막의 인생의 가을에 시작을 했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자연은 냉정하다. 인정도 사정도 없다. 자신이 인생의 결실을 생각할 나이가 되면 결실만을 생각하고 마무리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한 살림살이이다. 다시 새롭게 일을 꾸미는 것은 전혀 자연의 이치를 모르고 언제나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철이 들든 사람들이 스스로 실수를 저질러 놓고는 결국 하늘만 원망하겠지만 하늘이 무슨 인정이 있겠는가?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보면 그러한 말이 나온다. '神은 인간을 제사 지낼 때 쓰는 짚으로 만든 인형처럼 대한다. 사람이 제사를 지낼 적에는 짚으로 사람을 만들어서 잘 모시고 있다가, 제사를 끝내고서는 길바닥에 버린다. 신도 필요할 적에는 인간을 사용을 하고는 필요가 없으면 그렇게 버린다. 신은 자비롭지도 무섭지도 않다. 그저 그렇게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대할 뿐이다.

이렇게 자연의 섭리를 알고 보면 나이 50에는 금의 기운을 받고 있는 인생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마도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이웃에게나 좋은 일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에 있어서의 금은 인생에 있어서는 이러한 법문을 설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五行 중에서 金에 해당하는 영역에서 깊이 생각해볼 분야라고 본다. (처음으로)


 

 


  1. 수의 본질
  2. 수의 이모저모
  3. 수의 마음


만물을 적셔주는 물은 항상 움직이기를 좋아한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물기를 거부하니, 머물면 썩어버리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기 때문에 언뜻 보면 꿍꿍이가 많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간혹 음모가 많은 사람이나 사기꾼 등의 오해도 받는다.

혼돈→음→음중의 음→다시 음양으로 분리→십간의 임계(壬癸)

陽(壬) : 바다, 호수, 강, 도량이 넓음, 지혜로움,

陰(癸) : 샘물, 옹달샘, 생수, 유동적, 궁리가 많음,

물은 지혜라고 했다. 지자요수(智者樂水)라고 하는 말도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사람의 지혜도 흐르는 물처럼 항상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선 지는 몰라도 물로 태어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도 생각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이것도 어쩌면 물의 영향일 거라고 생각을 해본다.

지구상에서 공기 다음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존재했던 성분이 물이다. 공기에서 물이 생겨났다고 한다면 생명체는 물에서 나타났다고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물질 중에 하나라는 점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본다면, 역시 지혜의 상징성으로 활용을 해도 될 것으로 보인다. 즉 지혜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두고 연구하고 경험하고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에야 얻어지는 삶의 경험, 그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적에 물의 오상(五常)이 지(智)라고 하는 것에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낭월이의 사유방식은 주로 이런 식이다. 혹 이렇게 반문을 하실런지도 모르겠다.

"보쇼! 물이 무슨 생각을 한단 말이오... 원 씨알이 멕히는 말을 해야지.. 않그렇소?"

아마도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는데, 낭월이의 생각은 또 다르다. 삼라만상의 일체 유정 무정물을 통틀어서 모두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길가를 뒹구는 돌멩이나 허공중을 나르는 먼지알갱이, 그리고 못이나, 망치에도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라고 대든다면 달리 할말이 없지만, 그래도 일체의 유형무형의 물질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고 하는 말에 동의를 하는 마음이다.

전에 '우주심과 정신물리학'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에서 저자는 바위의 자아발전형태를 재미있게 그림을 곁들여서 설명을 했던 장면이 있었다. 주요 내용을 보면, 바위가 처음에는 그냥 스스로 잠을 자는 듯한 마음으로 지내다가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와서 절을 하고 소원을 빌고, 자꾸 이것이 쌓이면 결국 그 바위는 일종의 신격(神格)내지는 인격(人格)이 생긴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러한 이론을 전개하는 이면에는 바위에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생각이 움직이는 형태를 파장이라는 말로 바꿔서 하기는 했지만, 같은 의미로 해석이 된다.

그리고 물체가 견고하면 생각(또는 파장)도 미미하게 움직이고, 물체가 유연하면 생각도 유연하고 자유로울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볼 수가 있겠다. 앞에서 나무와 불과 흙, 그리고 금에 대한 생각을 해 봤지만, 각기 생긴 대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무는 나무의 형상대로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하는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고, 불은 또 그렇게 사방으로 활발하게 뻗어나가는 형태의 심성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불이 가장 활발한 성분이라고 하겠다. 또 바위는 견고한 주체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삼을만한 장면인데 여기에서 보이는 물은 그 본성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처음으로)

(1) 물의 본질

물은 아래로만 흘러간다고 한다. 눈으로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는데, 과연 물의 실상은 어떤가 생각을 해볼 일이다. 얼핏 보기에는 아래로만 흘러간다고 생각이 되지만, 실은 아래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응고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보았다. 응고를 하는데 빈곳이 있으니까 그곳을 채우려고 움직이는 것이 결국은 아래로만 흘러가는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가정을 해본다. 그러니까 물이 흐르는 것은 응고를 하려고 뭉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는 것은 물이 응고하는 성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고, 또 응고를 하는 성분이 종자(種子)를 만들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좀더 확대해서 생각해보는 까닭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물을 흐름을 지켜보고 있자니까 문득 '물은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응고하고 있는 와중일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것이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히 자유자재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물의 구조에 연결을 시켜보면 참으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행의 구조 중에서 물처럼 유연한 구조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몸이 건강할 적에는 유연한 것이 기본이다. 어린아이는 그 몸이 유연하기 때문에 높은데 에서 떨어져도 여간해서는 잘 다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성인도 그냥 넘어졌을 때 보다는 술에 취해서 넘어졌을 때가 덜 다친다고 한다. 역시 술이 인간의 굳어진 몸을 유연하게 해 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끌어다 넣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경기도 신갈에 '이정운'이라고 하는 여인이 있다. 이 분은 기술이 하나 있는데, 사람의 굳어진 몸을 주무르면 부드럽게 된다. 물론 병원에서 무슨 디스크라고 하건 말건 별로 개의치 않는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심지어는 간암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냥 간 부위가 굳어 있으니까 유통이 되지 않는단다. 그러므로 만져서 부드럽게 해주면 건강해 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주무르다 보면 굳은 것이 부드럽게 되고, 결국은 치료라고 하는 형태로 진행이 되는 모양이다.

"완전히 굳어지면 죽어버린 것이고, 만져봐서 아프다는 통증이 느껴지면 아직은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냥 주물러 보는 거지요뭐 하하."

이렇게 깔깔거리고 웃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게 되는데, 이 여성의 사주에서 태어난 날은 바로 물이었다. 낭월이도 선천적으로 굳어지기 쉬운 불건강체(不健康體)의 몸을 타고났던지 한동안 건강이 불량해서 고생을 했는데, 이 선생을 만나서 몸이 유연해져서는 이렇게 명리학의 연구를 계속 잘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묘한 재주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조그마한 나라지만 이렇게 구석구석에는 특별한 재주를 갖고서 자기 나름대로 중생구제의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비록 당당하게 의료면허증이 없어서 치료를 한다는 말은 못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치료든 건강요법이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렇게 굳어있는 사람의 몸을 유연하게 풀어주면서 고통을 덜어주고 있으니 낭월이가 보기에는 틀림없는 '약손'이었다. 그런데 만져줄 적에 너무나 징그럽게 아픈 것은 참 불만이다.

여담이 길어졌나보다. 이렇게 유연한 것이 건강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한 생각이 들어서 잡담을 했다. 그러고 보니까 죽은 사람은 몸이 굳어버린다는 간단한 진리를 읽어내게 된다. 그러니까 살아있더라도 몸이 부분적으로 굳어버린다면 점차로 죽어 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유방을 만져봐서 뭔가 단단한 것이 집히면 암을 의심하라고 하는 자가진단법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떠오른다.

이렇게 단단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물의 유연함이 자랑스럽게 떠오른다. 동그란 그릇에 담으면 동그랗게, 길다란 병에 담으면 병 모양으로 삽시간에 변하는 물의 유연함은 그 어떤 물질로도 대신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물에 소속된 형태들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관찰을 해보도록 하자. 그 동안 도표를 주욱 봐서 아시겠지만, 같은 제목으로 각기 오행의 특징적인 면을 관찰해보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물의 이모저모

분류

설 명

형상 

물처럼 생겼다.

나무

나무에서는 수분에 해당하는 것과 씨앗 성분이다.

기하학

타원형의 모습으로 표하면서 불규칙한 형상이다. 

수리학

선천수로는 1과 6이고, 후천수로는 9와 10이다. 

음양

순음의 체로써 극음(極陰)에 해당한다.

인생

노년시절을 나타내며 휴식기이다.

인체

70%라는 인체의 수분이 수에 해당한다.

장기

신장(腎臟)과 방광(膀胱)을 수의 장기에 넣는다.

기관

귀는 수의 정기가 발산되는 영역이다.

방위

동서남북에서는 북방(北方)을 나타낸다.

색채

삼원색에서는 없는 흑색(黑色)을 수의 상징으로 취한다.

계절

일년의 사계절로는 겨울에 해당한다.

심리학

깊이 생각하는 현자의 성격이다.

지구 

세계지도로 논할 적에는 러시아 부근이고, 알래스카도 수의 기운이 강한 성분이다.

한반도

한국에서는 함경도를 수기운이 많은 동네로 본다.

자동차

국가기관에서 사용하는 차량이 해당한다.

차구조

냉각기관인 라디에터와 오일부분이 물과 공통적이다.

음성

'마' '바' '파'가 수의 소리에 해당한다.

컴퓨터

최종 마무리단계인 프린터나 디스켓, 하드디스크이다.

s/w 
 

운영체제인 윈도우즈, 도스, 또는 os/2, 유닉스 등이다. 이들은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지혜로움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들이 아니면 다른 프로그램들도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 물의 마음

다른 것들도 인생에 비추어서 생각을 해봤으니 이번에도 한번 물과 인생에 대한 생각을 해보자. 흔히 하는 말이 사람은 늙어봐야 안다고 했다. 젊어서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말은 아니겠지만, 나이를 먹어보면 그 사람이 젊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게 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 우리 명리학도(命理學徒)는 이러한 말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고 본다. 무엇 하나라도 간과(看過)해서는 안되는 것이 학자인데, 하물며 인생의 운명을 연구하는 명리학자라면 이러한 말의 의미가 무슨 깊은 뜻(?)이 있는지 정도는 생각하고 파악해둬야 할 것이라는 사명감 비슷한 것이 들기도 한다. 그럼 낭월이가 파악하고 있는 '늙어봐야 안다.'는 말의 의미를 말씀드리겠다.

노년(老年)의 시기를 오행에서는 물에 해당한다고 보자. 그리고서 물의 형태를 생각해 보았다. 그랬더니, 물의 형태는 삼체(三體)의 변신이 모두 가능하다는 간단한 이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삼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만 별 것은 아니고, 기체(氣體), 액체(液體), 고체(固體)의 삼체를 말하는 것이다. 원래가 별것도 아닌 것을 수다스럽게 늘어놓는 것이 낭월이의 특징이니 도리 없는 일이지만, 사실은 이렇게 평범하게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 속에서 의외로 깊이 있는 말씀을 듣기도 하므로 가볍게 여길 것은 하나도 없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인생의 늙음을 고체처럼 단단하게 굳어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액체처럼 유연하게 보낼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기체처럼 아예 승화되어 버릴 것인가?'

가) 기체(氣體)의 노년(老年)

이렇게 질문을 한다면 어느 것을 선택을 할 것인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아마도 기체처럼 살게 된다면 우리는 신선이라는 말로 불러야 할는지도 모른다. 신선은 우화등선(羽化登仙)을 한다고 하는데, 우화등선이란 날개나 생겨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말인가 보다. 그렇지만 육신에 날개가 나기야 하랴 싶다. 다만 그만큼 몸이 가벼워진다는 말로 새겨들어 본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는 일생을 얼마나 피나게 수련했는가에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수행을 한 사람의 몫은 기체로 존재하는 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범인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영역이므로 접근 불가한 대목일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기체로 된 물(老年)은 세간에서 살면서도 아무런 속박이 없이 그렇게 자유롭게 살다가 간다. 전혀 틀에 매이지도 않고 혈연이나 명예욕에 사로잡혀서 늘그막에 재판정에서 사형을 선고받는 치욕을 당하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주리면 먹고, 곤하면 잔다.'는 서산대사의 말대로 인 것이다. 과연 어떻게 늙어야 이렇게 될 것인가... 나 자신도 늙으면 이렇게 될 수가 있을까... 참으로 고민스러운 대목이라고 하겠다. 너무나 부럽지만 정진을 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얻어질 수가 없는 경지이기에 평생 게으름이 특기인 낭월이로써는 참으로 가능성이 없는 분야이다.

나) 고체(固體)의 노년(老年)

다음으로 반대적인 입장에 있는 고체를 생각해보자. 늙으면 모든 것이 굳어진다. 몸도 마음도 그렇게 굳어지는 것이다. 손발도 예전 같지가 않고, 허리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뿐이랴, 머리조차도 예전처럼 활발하게 움직이지가 않는 것도 또한 어쩔 수가 없는 현실인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늙어 가는 모습의 공통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은 숙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자식들은 세대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상대를 하지 않는다. 세대차이가 나는 이유는 이해력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늙은이가 젊은 자식들의 생각을 따라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 어쩌면 더욱 적절한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괄시를 받아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평생을 그렇게 자신의 영역만을 주장하면서 살아온 삶이라면 늙어서도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많이 경험하고 많이 생각한 사람이 훨씬 상대하기가 좋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느낀다. 도회지에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상대를 해본 사람은 이해력이 상대적으로 넓다. 이기적인 듯 해도 실제로 대화를 나눠보면 남의 입장을 훨씬 더 잘 이해하는 것이 도회지의 사람들이다.

반면에 시골에서만 살아온 사람은 어떤가? 흔히 말하기를 시골사람의 순박함을 이야기한다. 물론 사실이다. 도시의 찌들은 상황의 각박함은 없을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해타산에 관계된 일로 의견대립이 되어보라 전혀 말이 들어가지를 않는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서 깜짝 놀리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 시골사람의 순박함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던 사람이라면 그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외골수로 자신의 입장만을 강조한다. 전에 고물행상을 할 적에, 고물상 주인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시골사람이 더 무섭다구, 물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하고는 싸울 생각을 말아야 한다구, 이해력이 없어서 설명을 해봐야 몰라, 그러니까 웬만하면 그냥 피하라구 장사하러 다니려면 별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말이야."

하고 조언을 해줬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뭘 그러랴... 싶었는데, 실제로 돌아다니면서 그러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과연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좁은 공간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사고력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상대하는 사람들도 항상 그 동네의 그 사람들 뿐인바 에랴...

물론 시골에 살아도 교제의 폭이 넓은 사람은 예외겠지만, 보통 그렇게 농촌에서 늙은 사람의 사고력은 아무래도 굳어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그래서 환경도 무시할 수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실은 사주팔자의 형태로써 살펴봐도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의 격국은 도회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의 격국에 비해서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것도 사주팔자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소위 말하는 '전문화의 시대'에 얻어진 부산물이라는 생각도 해보기는 하는데, 사람이 자신의 학교를 나와서 자신의 전문분야에서만 일생을 일하다가 그 연구실에서 정년퇴직을 한 사람의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많은 생각이야 하였겠지만, 그 '깊이'에 대해서는 탓을 할 것이 없겠으나, '넓이'에 대해서는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 뻔하다. 넓지 않은 시야도 고정관념이 강하게 작용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서는 일류의 권위를 자랑하지만, 연구실만 벗어나면 모두가 생소한 것들뿐이라면 이 사람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 생소한 분야로 파고 들것인가? 아니면 도로 연구실로 들어가서 자신에게 익숙한 분야에 대해서나 연구를 할 것인가? 연구실로 도로 들어가 버린 사람이라면 이 사람도 아마 고체의 노년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대열에 서야 할 것이다.

다) 액체(液體)의 노년(老年)

액체는 그래도 물의 본연의 모습은 잃지 않고 있다고 생각된다. 기화(氣化)까지는 바라지도 못하겠지만, 얼음 덩어리는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몸도 마음도 유연한 노년이라면 그런 대로 멋진 인생이라고 할만 하지 않으랴 싶다. 언제나 새로운 사람과 더불어서 공통의 화제로 한참을 이야기 나눌 수가 있는 여유로움은 물의 특성이다. 여기에서 장자(莊子)의 한 토막을 말씀드리고 싶다.

천하의 성군이라는 요임금이 변방을 순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성문을 지키던 문지기가 임금에게 인사를 드리면서 축수의 기원들 드렸다.

"성군이시어, 장수를 누리소서!"

"싫으네,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아서 말이야."

"그럼 임금이시어, 부유하소서!"

"그도 싫으네, 부자가 되면 귀찮은 일이 많아지걸랑."

"임금이시어, 백자천손(百子千孫)하소서!"

"싫으네, 자식이 많으면 골치가 아퍼."

그러자 국경을 지키던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처음에 당신이 성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만나보니까 그저 군자(君子)정도밖에 인된다는 것을 알겠군요. 하늘은 만민에게 일거리를 주는 법이거늘 아들이 많은들 무슨 걱정거리가 되겠습니까? 또 재물이 많으면 사람들에게 나눠줘버리면 편안할 것이고, 이렇게 해서 천하가 편안해져서 다스림이 없이도 잘 다스려 진다면 천년을 살은들 골치 아플 일이 뭡니까?"

이렇게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이 이야기가 장자의 어느 편에 있었는지는 기억력이 부실해서 잘 모르겠는데, 대략 이야기는 비슷할 것이다. 이야기를 보건대, 요임금도 굳어있었던 모양이다.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력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실제로 그랬는지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늘그막에 이렇게 성지기의 말대로 유연한 마음으로 살수가 있느냐 하는 점이 중요할 뿐이다.

이러한 정도의 사고방식이라면 기체까지는 몰라도 액체로써는 충분하리라고 생각되어서 한 말씀 드려봤다. 장자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내용들이 많아서 열심히 읽었던 책 중에 하나였는데, 그 중에서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이야기이다. 벗님은 이렇게 세 가지의 노년이 있으니 어느 노년을 맞이하게 될는지 조용히 한번쯤은 생각을 해보는 것도 무익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멋진 생의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오상(五常)에서의 지혜(智慧)가 늙은이에게 해당한다는 말과 일치한다. 오죽하면 우리 속담에 '늙은 쥐가 항아리를 뚫는다.'고 하겠는가? 하다못해 한 마리의 쥐도 늙으면 그 단단한 항아리를 구멍낼 요령을 터득하고 있다는 말이니 하물며 인간이 되어서 이렇게 지혜가 없어서야 정말 어디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하겠는가? 아무래도 젊은 사람의 머터로운 삶을 보면서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보는 늘그막의 유유자적함은 늙어보지 못하고서는 맛보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옛 이야기 중에 한가지 생각나는 것은, 고려장 시절에 어느 정승이 중국으로부터 받은 어려운 퀴즈를 받고 고민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니까 고려장의 시기가 도래했는데도 차마 자식이 아버지를 매장할 수가 없어서 마루아래의 비밀 방에서 숨어살으시던 노부(老父)께서 아주 간단하게 정답을 일러주셔서 위기를 모면하고는 왕에게 그 연유를 말씀드리고 결국 고려장이라는 풍습을 없애버린 기가 막힌 노인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학교에서 한번쯤 듣고 지나간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모든 경험을 후학들에게 나눠줄 수가 있는 노년(老年)이 되고, 젊은 제자들이 헛된 길을 헤매는 시간낭비를 줄여주기도 하니 참으로 멋진 노인의 지혜이다. 그렇게 늙었다면 자연의 법리에 잘 따른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인생의 마무리를 저녁노을의 장엄한 황혼처럼 물들이는 것이 五行에 있어서의 水에서 배울 공부라고 생각한다. 물은 응고(凝固)하는 성분이다. 그래서 늙은이는 뭔가를 마음에 뭉쳐둔다. 자신의 일생을 정리해서 마음에 묻어 둘 수도 있고, 아들 며느리가 자신을 서운하게 했다는 것을 마음에 뭉쳐둘 수도 있다.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 저장하는 것이 물이다. 노인네가 꽁하고 서운해한다고 젊은 사람들은 섭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뭉쳐지는 것이 또한 노인이고 물의 본성이다.

물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인생의 마무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五行論을 잘못 배운 것이라고 하겠다. 물이 도둑놈이나 사기꾼이 아니라, 이렇게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지혜라는 것도 여기서 알아 둬야 할 중요한 물의 마음이다. 실제로 물은 쉬임없이 움직인다. 고요하다고 하는 아침바다도 기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어려서 안면도의 해변에서 자랐기 때문에 바다의 구조를 대략 이해한다. 특히 갯펄만 보이다가도 어김없이 푸른 물로 채우는 바다의 조수는 언제나 신비한 대상이었다. 이렇게 쉬임없이 움직이는 물을 생각하면서 인간의 지혜가 물을 닮았다는 옛 어르신의 말씀에 공감을 하게된다.

또 하나의 물은 다음의 세대로 연결이 되는 통과다리라는 점이다. 물이 응고를 한 자료를 모아서 다음의 세대를 위해서 저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대뇌에 축적이 된다고 한다. 대뇌는 인간이라는 생물이 진화의 과정을 거쳐오면서 변화된 뇌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구피질 신피질하면서 구조분석을 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초창기에 물에서 생명이 발생했을 적에 입력된 생활정보가 뇌에 보존되고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렇다고 본다면 이 뇌는 자료보관소라고 할 수 있겠고, 그러한 맥락에서 뇌는 오행이 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법하다. 사실 머리 속에는 수없이 많은 신비한 구조가 후학의 접근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전생의 기억이 과연 뇌의 어느 부분에 저장이 되어 있는지도 참으로 궁금하다.

불가에서 도를 닦아 가는 과정에서 숙명통(宿命通)이라는 신통력이 발생하는 시기가 있다. 글자 그대로 과거의 운명을 모조리 알게 되는 신통력이 숙명통인데 이러한 신통력이 생기면 자신을 포함해서 어떤 사람이던지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해서 거울을 보듯이 훤하게 알아본다고 한다. 이 숙명통을 얻게 되면 그 사람의 이번 생에서의 과거뿐 아니라 전생과 또 전 전생의 일생을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도 알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것을 알게되는 것은 어떤 귀신이 이 도인을 따라다니면서 그 사람의 전생을 일러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서 과거의 연결고리에 해당하는 뇌의 기능이 잠에서 깨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이러한 저장창고의 문을 어떤 지혜의 열쇠로 열기만 한다면 자신의 과거 모든 생에 대한 보관자료를 읽어 볼 수가 있다고 하는데, 자신의 보관창고를 여는 열쇠를 얻었다면 다른 사람의 보관창고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열쇠로도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여섯 가지의 신통력 중에서 과거의 기억을 다시 읽어볼 수 있는 숙명통은 참으로 매력적인 능력이라고 하겠다. 요즘 서점 가에서는 전생의 여행에 대한 흥미 있는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한데, 이러한 것을 보면서 역시 사람은 전생에 대해서 흥미를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상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은 자신의 뇌의 기능 중에서 극히 일부분만을 사용하다가 죽는다고 한다. 2%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소수점 이하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활용성은 대개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정도에서 머무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 바로 전생의 기억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게 되는데는 크게 무리가 없다고 본다. 전생에 한 일은 습관이 되어서 어쩐지 그 일을 되풀이하면 오래 전에부터 익숙하게 해왔던 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료의 보관소가 바로 뇌라는 구조인데, 이 뇌라는 구조는 이번 생에서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에 불과하지만 이미 이 뇌속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전생의 모든 영상자료를 한 부 복사해서 갖고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어느 날 전혀 이번 생에는 와본 적이 없는 장소에 도달 했을 적에 그 공간이 아주 오래 전에 머물렀던 것같이 편안하고 익숙한 상황이 되어서 당황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 모양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오행으로 치면 水의 기능에 해당하고 그 중에서도 저장하는 기능에 포함된다고 생각이 된다.

이 수의 기능이 나무의 씨앗을 만들어서 보관을 하는데 그 응고력이 좋기 때문에 천년 묵은 은행나무의 자료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뉴스를 통해서 보니까, 피라미드 속에서 씨앗을 얻어다가 심었는데 그 씨앗에서는 2천년 전의 토마토가 열렸다고 하는 보고를 보면서 과연 씨앗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물의 힘이라고도 느꼈으니 이렇게 구석구석에서 접하는 소식들에서 五行의 참 소식이 무엇인가를 항상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처음으로)


 
출처 : 돌터
글쓴이 : 金石基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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