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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이었던 닐 마샬로프가 찍은 1968년도 봄의 농촌 풍경. 써레질하는 모습 뒤로 사람들은 모내기를 준비하고 있다.그건 그렇고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농사지을 수 있는 농사땅(경작지耕作地)에 거름을 냈으면 쟁기질을 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모두 소와 사람이 하나가 되어 일을 했지요. “이랴” “워~워” “마라” “왼나” 하는 소 부리는 소리가 새삼 떠오릅니다. 어릴 때 소와 함께 논을 갈던 어른을 바라보던 때를 기억하면 가슴이 퍼렇고 푸릅니다. 살짝 물 고인 논에 맑은 파란 하늘이 비치고, 소와 사람의 호흡이 장단을 맞추는 사이에 끼어드는 추임새. 소는 그 소리를 알아듣는 것인지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 신기하게도 사람 말을 기막히게 잘 알아듣습니다.



주한미군이었던 닐 마샬로프가 찍은 1968년도 봄의 농촌 풍경. 써레질하는 모습 뒤로 사람들은 모내기를 준비하고 있다.



소 얘기하니까 또 소 키우고 싶어서 맘이 근질근질합니다. 생일이나 기념일이 되면 선물이나 파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거 하는 대신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나중에 소나 한 마리 사 달라고 합니다. 쓸데없이 뭐 사는 데 돈 쓰지 않아도 되고, 귀찮게 기념일을 챙기지 않아도 되어 참 좋습니다. 무수한 날 가운데 기념일이 무슨 의미일까요.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소중할 뿐입니다.
아무튼 소로 하루갈이(일경日耕)할 수 있는 넓이(면적面積)가 보통 1200~1500평이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 일이면 사람도 진을 빼지 않고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경운기 같은 기계가 나오면서 얼마나 피곤하게 사는지 모릅니다. 물론 처음 그런 것을 만든 목적은 편리함이었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계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계의 속도에 맞춰 살아야 하니 사람들은 지치고, 그럴수록 진이 빠졌습니다. 힘든 것과 진이 빠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내가 쓸 수 있는 한도를 다 써서 다시 채워야 하는 상태를 힘들다고 한다면, 그걸 뛰어넘어 생명력을 갉아 먹은 상태가 진이 빠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건 제가 내린 정의니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아무튼 기계의 빛과 그림자처럼 모든 것에는 좋은 면과 좋지 않은 면이 함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요즘은 경운기도 한물갔고 트렉터로 모든 일을 처리합니다. 논이나 밭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트렉터 하니까 생각나는데, 요즘 많이 하는 로터리rotary를 어떤 말로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트렉터에 달려 있는 쇠날이 빙빙 돌아간다고 해서 로터리라고 했을 텐데 이제 밭을 갈면서 부수는 일을 그대로 로터리라고 합니다. 이런 말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이 말부터 따져보려고 합니다. 소로 하는 일과 비교하면 써레질에 맞먹지 않을까요? 물론 정확하게 맞먹을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써레질은 논에만 한 것이 아니라 밭에도 했습니다. 써레질의 목적은 흙부수기(쇄토碎土)와 흙고르기(平土), 수평잡기입니다. 이러한 써레질은 무지하게 중요한 일이라서 아무에게나 함부로 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논 같은 경우는 더 심했다고 합니다. 논에 비탈(경사傾斜)이 있으면 물이 한쪽으로 쏠리고, 그러면 큰일 나기 때문입니다. 밭 같은 경우는 그나마 별 상관이 없기에 아이들도 써레질을 했다고 합니다. 아이들 같은 경우 팔에 힘이 어른보다 모자라서 써레 위에 올라타거나 써레에 돌을 얹었다고 합니다.



로터리를 단 트렉터.



그렇게 중요했던 소가 이제는 혼자 쓰던 조용한 외양간(우사牛舍)에서 몰려나 좁아터진 곳에서 떼거지로 갇혀 지냅니다. 언젠가는 맛있는 고기가 되어서 밥상에 오를 날만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풀밭에 고삐가 매인 채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의 모습은 사진이나 머릿속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나마도 값싼 소고기들이 밀려오면 발붙일 곳이 사라질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10년 농촌에 사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더 하겠지요. 그래도 뜻있는 사람들이 지키기는 할 것입니다. 언젠가 뉴스를 보니 세계의 도시인구가 처음으로 농촌인구를 앞질렀다고 합니다. 지구는 점점 땅을 잃어 갑니다. 잃어버리기나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을 겁니다. 겉에 콘크리트며 아스팔트를 둘렀으니 얼마나 갑갑할까요. 숨 막혀 죽게 만들 참인지.
인간적인 기술이라고 하면 그것도 인간 중심적인 냄새가 나니 그렇고, 아무튼 자연에 알맞은 수준의 기술을 갖추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을 소비하고 소모하려고만 합니다. 세상에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가 사는 시공간도 무한히 열린 곳이 아닌데, 똑똑한 사람들이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입니다. 옛날에 경제학 수업에 들어갔다가 혀를 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경제학의 기본 전제가 무한한 자원과 열린 시공간이었습니다. 이건 경제학만의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잘은 모르지만 현대를 특징짓는 과학기술도 기본 바탕이 그럴 겁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기계 인간이 되려고 안드로메다로 떠나는 철이 같은 모습입니다. 철이는 결국 안드로메다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겠지요.



어린 시절 눈을 떼지 못하고 본 만화. 뒷날 생각하니 엄청난 만화였다.



논과 관련한 말에 대해 더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 안산입니다. 이곳은 그 유명한 시화 갯둑(방조제防潮堤)이 있지요. 그 덕분에 땅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모릅니다. 갯둑을 막아 개펄(간석지干潟地)을 없애기 전에는 저 앞까지 걸어 나가면 바다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차로 30분 이상 달려가야 바다가 나옵니다. 그렇게 만든 넓은 땅에는 다들 아시다시피 시화 공단이 서 있지요. 집까지는 시화 공단의 냄새가 넘어오지 않지만, 가끔 바닷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날아오곤 합니다. 그리 유쾌한 냄새는 아니지요. 지금 새만금에도 갯둑을 막아 세계 최대의 개막은 땅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개펄로 있을 때도 얼마든지 조개며 해산물을 따다가 아들딸 공부시키고 먹고 살았는데, 왜 굳이 돈 들여서 공사해서 그 수입원을 없애는지. 또 왜 농사땅으로 만든다는 명목을 들고, 진짜 그렇게 쓰려고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땅에서 짓는 농사만큼 바다에서 짓는 농사도 엄청 중요한데, 소유욕에 사로잡혀서 그런지 그런 사실은 알고도 모른 척합니다.

잠깐 이야기가 샜습니다. 앞에서 잠깐 말했듯이 옛날에 논은 물사정나쁜논(수리불안전답水利不安全畓)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늘만 쳐다보며 비만 기다리는 천둥지기, 하늘바라기논(天水畓)이 많았습니다. 그나마 웅덩이, 둠벙(보洑)을 파 놓은 곳에서는 그 물을 쓸 수 있어 물사정좋은논(수리안전답水利安全畓)에 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논은 물받이논(저수답貯水畓)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거나 샘이 솟는 곳이 아니면 제대로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논은 마른논(건답乾畓)이 되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일단 마른논에 볍씨를 뿌려서 키우다가 장마 때 비가 많이 오면 물을 가두는 마른논붙임(건답직파乾畓直播)이란 농사법을 썼다고 합니다. 요즘이야 죄 우물(관정管井)을 파서 무자위(양수기揚水機)로 땅속물(지하수地下水)을 퍼 올리니 물 걱정 없지요.



수생생물의 천국, 둠벙. 겨울에는 여기에서 개구리 엄청 퍼 담았다.


논 가운데 산기슭에 있어 산의 찬물이 그대로 흘러들어오는 논이 있습니다. 그런 논은 찬물받이논(냉수유입담冷水流入畓)이라고 하는데, 일부러 물꼬나 도랑을 이용하여 한두 바퀴 물을 돌려 덥힌 다음 제논(본답本畓)에 들어오게 했답니다. 그리고 물이 샘솟는 샘논(냉수용출답冷水湧出畓)도 있습니다. 이런 곳은 샘솟는 찬물 때문에 똑같은 논에서 자라도 그 자리의 벼만 덜 자란다고 합니다. 논은 참 물 관리가 중요합니다. 못자리(묘대苗垈)를 만들어 볍씨를 뿌리고 나서도 낮과 밤의 물높이를 다르게 해줍니다. 낮에는 물높이(수위水位)를 낮춰서 햇볕을 더 많이 받게 하고, 밤에는 높여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게 합니다. 모내기(이앙移秧)를 하고 나서도 벼가 자라는 상황을 보며 그때그때 물을 댔다가 다시 뺐기를 반복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창 새끼치기(분얼分蘖)를 할 때는 적당하게 물을 대고, 더 이상 새끼치기를 못하게 할 때는 부러 물을 많이 담거나 싹 뗀다고 합니다.



물을 뗀 논의 모습. 이 붉은 벼는 붉은찰벼라는 토종 벼이다.



물이 잘 빠지지 않는 논에는 속도랑물빼기(암거배수暗渠排水)를 한다고 합니다. 처음 암거배수라는 말을 접하고 한참을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암거배수, 물을 빼기는 뺀다는 얘기인데 어두운 도랑? 도대체 뭘까? 암거배수란 다름 아니라 관을 땅속에 묻어서 물을 뺀다는 얘기였습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참 어려운 말들이 많습니다.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더 편하겠지만, 처음 듣는 사람한테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입에 익은 말을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국민학교가 금방 초등학교로 바뀌는 것을 보니 그 일이 어렵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벼는 아무래도 햇빛을 많이 받는 곳이 좋습니다. 가을의 쨍쨍한 햇살이 알곡을 여물게 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늘이 지는 논도 있습니다. 그런 논은 응달논(음지답陰地畓)이라고 합니다. 요즘 보리가 건강식으로 뜨면서 논에 두그루짓기로 보리를 심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포에 취재를 가니 그곳도 그랬습니다. 보리는 보통 벼를 베고 나서 심습니다. 그리고 보리를 거둔 다음에는 바로 모내기에 들어가지요. 그렇게 보리를 심는 논은 보리논(맥답麥畓)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할 수 있는 곳이면 당연히 보리나 밀을 심었는데, 경제성에 밀려 한동안 사라졌다가 경제성 때문에 다시 보이기 시작해 참 반갑습니다. 논에서 볼 수 있는 건 보리만이 아닙니다. 바로 논두렁콩(휴반대두畦畔大豆)도 볼 수 있지요. 논두렁콩이라는 특별한 품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논두렁에 심으면 어떤 콩이든 논두렁콩이라고 했습니다. 메주콩을 심어도 논두렁콩이고, 콩나물콩을 심어도 논두렁콩인 것이지요. 콩에는 물기(수분水分)가 참 중요하다고 합니다. “가뭄에 콩 나듯이”라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논두렁에 콩을 심으면 콩은 물기를 해결할 수 있어 좋고, 벼는 양분을 얻어서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논두렁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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