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농업에서 배우자(35)-화순 김규환 님
산을 가꾸는 산채원지기, 백아산에서 보물을 만들다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의 해발 300m에 자리 잡은 산채원을 다녀왔습니다. 해발은 높지만 따뜻해서 이 동네를 양지라 한다고 합니다. 집 앞에는 백아산이 우뚝 서 있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입니다. 이런 천혜의 자연을 바탕으로 산채원에서는 200가지 이상의 산나물이며 산야초, 산양삼 등 산과 관련된 먹을거리를 보존, 보급하고 있습니다.
- 정말 좋은 곳인데, 어떻게 이곳에 정착하셨나요?
= 결혼하기 전에는 잠시 가평에서 민박집을 하며 농사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결혼하면서부터는 사회생활을 했지요. 제가 담양 창평에 있는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7년 전쯤 창평으로 내려왔다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다시 올라갔습니다. 2003년부터 고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에 가서 사회에 필요한 농사를 짓자고 마음먹었죠. 가만히 생각하니 유기농은 기본이겠고, 무엇보다 종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에 부지런히 전국으로 산나물 씨앗을 모으러 다녔습니다. 솔직히 산에 다니면서 뿌리도 캐오고 했습니다. 요즘은 사람이 안 다녀서 숲이 너무 많이 찼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산나물은 자연스럽게 없어집니다. 그러니 사람이 그 상태에 가장 가깝게 보존해 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모은 씨앗이 한 200여 가지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 본격적으로 내려온 것은 지난 2006년 11월입니다. 내려와서 창고 같은 집을 조금 손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 슬슬 집을 지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럼 귀농을 하신 셈이네요?
= 저는 귀농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도시 사람들이나 고향 사람들에게 귀농이라고 하면 꼭 실패한 사람이라고 인식합니다. 그래서 저는 귀농이라는 말보다는 귀향이라고 합니다.
제가 내려오면서 세운 원칙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처음 1년 동안에 초기 자본을 많이 투자하면 대부분 금방 실패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더군요. 그래서 첫째, 집을 짓지 않는다. 둘째, 처음 1년 동안은 땅을 사지 않는다. 셋째, 농협 조합원에 가입하지 않는다. 이런 원칙을 세웠습니다.
농협 조합원에 가입하면 이자도 싸고, 돈을 끌어다 쓰기도 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금방 망가집니다. 그래서 지금 만 1년째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조합원에 가입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변 분들은 돈도 싸게 빌릴 수 있고 하니 얼른 가입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보니 다들 농협에서 쉽게 돈을 끌어다 썼다가 힘들어 하더군요.
- 산채원을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 제가 80년대 말 대학을 다니며 생활도서관 운동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정보 관련 운동을 해서 정보력에는 어느 정도 자신 있어요. 그래서 FTA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농사가 무엇일지 2003년부터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축산, 원예, 주곡 같이 여러 농사가 있지만 그 시대는 이제 거의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승부를 걸면 답이 안 나와요.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산과 관련된 이 분야만이 FTA와 상관이 없더군요. 아직 그네들이 산은 모르는 거지요.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무한한 자원이 널려 있다는 걸 그네도 모르고 우리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산에 FTA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가 어릴 때부터 나물을 잘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 나물을 먹고 싶으면 소죽 쒀 놓고 호미나 칼 들고 나물 뜯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배웠죠. 지금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풀이나 나무가 모두 나물이고 약입니다. 옛말에 소가 먹는 건 다 나물이라고 했지요.
- 산채원을 만들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 고향에 내려와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고생도 많았습니다. 마을에서 호응도 안 해주고, 배운 놈이 여기서 뭐하냐고 형과도 사이가 틀어질 정도였습니다. 계속 노력해야 하는 문제지요. 저는 영농조합법인 사람들에게 소비자가의 95%를 책임져 주려고 합니다. 나머지 5%는 영농조합법인 운영비로 쓰고요. 그 정도 보장해 주지 않으면 절대 안 따라옵니다.
요즘 농촌은 저희 마을도 마을 분들 몇 분과 함께 같이 뭘 하려고 해도 모두 노인들뿐입니다. 예전에는 세 마을 합쳐서 150호가 넘었습니다. 저쪽 송단 1리는 조릿대가 많아서 예전에 국내의 복조리를 모두 만들던 곳입니다. 저도 어릴 때 무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다 합쳐서 20호가 안 됩니다. 그나마 독거노인이 많아서 사람은 27명쯤 됩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골짜기마다 있던 논밭이 다 묵었어요. 그래서 이곳 산골은 25~30년은 다 묵은 논밭입니다. 하지만 그게 자원입니다. 그런 땅은 비닐도 쓰지 않고, 농약도 치지 않고, 화학비료도 주지 않은 곳이지 않습니까. 말 그대로 청정 지역입니다. 더군다나 여기는 강원도처럼 골프장이니 스키장도 없습니다. 그게 얼마나 망쳐 놓습니까.
여기는 겹겹이 산이 둘러 있는데, 바로 옆은 곡성이고, 이쪽으로 넘어가면 담양, 저쪽으로 넘어가면 순천입니다. 이곳이 그 중간 지점이라는 것이지요. 그만큼 여기는 종이 다양합니다. 옛날부터 백아산에는 없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살아 있는 동네입니다. 특히 이곳이 고려삼의 시배지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곳에 산양삼(山養蔘)을 많이 심었습니다. 예전에 장뇌삼이라고 아시지요. 그 이름의 어감이 좋지 않다고 이제 공식 명칭으로 산양삼이라고 바뀌었습니다. 삼씨가 1kg에 150만원입니다. 이걸 지금 이곳에 5ha를 심어 놓았습니다. 내년에는 정부 보조를 좀 받아서 20ha까지 늘릴 예정입니다.
- 산나물은 어떻게 기르시나요?
= 저는 웬만한 씨앗이나 나무는 다 산에 심습니다. 저희 집 뒤를 ‘가는골’이라고 합니다. 골짜기가 가늘게 길다고 가는골이지요. 길이가 한 1km 이상 될 겁니다. 지금 이곳을 정리해서 구석구석에 그동안 모은 산나물이며 산양삼을 잔뜩 심어 놓았습니다.
보통 밭에 산나물을 심으면 퇴비도 주고 어떻게 해봐야 금방 쇠서 뻣뻣해집니다. 하지만 이걸 산에 넣으면 베고 또 베고, 어떤 것은 5~7번까지 거둘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시설을 하건 어떻게 하건 이런 곳보다 산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지요. 또 산에는 굳이 퇴비를 안 줘도 그 자체로 영양이 많아서 걱정 없습니다. 산흙 자체가 부엽토 아닙니까. 오히려 산에서 그걸 긁어다 밭에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요즘 왕겨나 톱밥으로 퇴비를 만드는데, 저는 그걸 믿지 않습니다. 왕겨는 다 농약치고, 톱밥에는 윤활유가 섞여 있으니까요. 그래서 삼을 심으려고 나무를 벨 때도 기계톱은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직접 하는 게 좋습니다. 진짜배기로 농사지어서 대통령도 쉽게 먹을 수 없는 명품을 만들려고 한다면 그렇게 하는 거지요.
- 경운 같은 것도 필요 없나요?
= 경운은 따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에 한 번만 갈아주면 그대로 심고 끝입니다. 대신 풀을 매야 하니까 호미질은 해야지요. 사람들은 경운해야 하니 트랙터를 사라고 하지만 저는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산이 우거지지 않도록 관리도 해줘야 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손대지 않으면 산이 우거져서 나물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런 문제는 솎아베기를 해서 자연스레 해결합니다. 이제 산도 우리가 가꿔 줘야 합니다.
중요한 건 나물의 특성을 알고 그에 맞는 조건을 갖춰 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서는 딱주라고 하는 잔대는 양지쪽에서 잘 자라서 정상 부분에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산나물은 황토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물빠짐이 좋은 사질양토가 가장 좋습니다.
풀이 많아 어떻게 하나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걱정 없습니다. 오히려 밭보다 관리하기가 더 쉽습니다. 밭 같은 경우 10번이고 20번이고 매려고 맘먹으면 매 줘야 합니다. 하지만 산은 1~2번만 매면 끝납니다. 그러니 면적이 넓어도 걱정 없이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마을의 골짜기가 500ha 정도 되는데 그걸 제가 다 일구려고 합니다. 또 재 넘어 관음사 들어가는 곳의 땅은 절땅입니다. 그곳이 450ha인데, 그곳도 임대하려고 합니다. 그곳은 지금 우리 법인하고 다른 법인하고 함께 운영하기로 합의하고 계획을 세워 놨습니다.
또 정선 쪽에 사는 사람과 얘기해서 그곳에 산사랑 산채원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기후에 차이가 있으니 여기는 빨리 나와서 빨리 사라지지만, 강원도 쪽은 이곳과 다른 때 나오지 않습니까. 또 장흥 쪽에도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겨울에 산채가 먹고 싶으면 장흥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1년 내내 도시 소비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원칙은 제철 음식입니다. 제철이 아닌 때 억지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되는 시기가 다른 곳을 확보해 제철로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지금 산채원은 도시 사람들도 이걸 먹을 수 있도록 규모를 늘리고, 함께 할 수 있는 농가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 텃밭에 배추가 잘 자랐던데 비법이 있으십니까?
= 옛날에 농사짓던 방법을 따랐습니다. 옛날에 배추에 벌레가 끼면 불 때고 나온 재를 물에 섞어서 재운 다음, 위에 뜬 맑은 물을 배추에 줬습니다. 우리 배추에는 그래서 벌레가 하나도 없습니다. 또 벌레가 다 갉아먹었어도 이슬이 내렸을 때 재를 가지고 가 살살 뿌려 주면 한 일주일 정도면 다시 살아납니다. 지금은 일본이나 유럽에서 다 들여오지만, 이렇게 세계에서 유기농을 가장 잘한 것이 우리나라였습니다.
저는 고추를 기를 때 비닐을 치지 않습니다. 비닐을 치면 처음에는 잘 크지요. 수분도 잡아 주고, 햇볕을 받으면 더 따뜻해서 금방 크고 수확도 많습니다. 문제는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면 생깁니다. 꽉 막힌 상태이니까 온갖 병균이 그곳에 생깁니다. 그것 말고 저는 일체 화학제품을 쓰지 않습니다. 그런 원칙을 지키면 우리 옛맛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동네에서 고기를 잡을 때는 때죽나무 열매를 찧어서 물에 뿌립니다. 그럼 고기가 기절해서 둥둥 뜨지요. 그만큼 때죽나무는 좋은 살충제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그걸로 천연살충제를 만들어 보려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초피, 인진쑥, 때죽나무 열매, 소주를 섞으면 괜찮은 농약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이런 걸 개인이 아니라 흙살림 같은 곳에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 : 김석기(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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