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농업에서 배우자-횡성 송래준 선생
“말로는 소용없어요. 직접 몸으로 깨우쳐야지요”
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 구술취재팀은 강원도 횡성군 어답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토종왕국’의 송래준(84) 선생님을 찾아뵙고 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이곳에 들어와서 토종종자를 가구며 보급하고 지금은 산을 일궈 나무와 산나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 못지않게 미래를 내다보며 정력적으로 농사지으며 살고 계십니다.
- 지난번 자운 스님을 통해 선생님께서 토종 종자를 많이 가지고 계신다고 하여 말씀을 들으러 찾아왔습니다. 주로 어떤 농사를 지으시나요?
= 지금 농촌 현실이 아주 어렵습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농협에 평균 4~5천만 원 정도 부채가 있지 않을까 해요. 사정이 어려워서 땅을 내놓고 싶어도 노 대통령이 거래를 막아서 팔려고 내놓아도 거래가 없어요. 이제 농촌에서 쌀이나 고추 농사지어서 빚을 탕감하기 힘들어요. 나는 그래도 우리가 살 수 있는 구멍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내가 그런 것을 종종 자문해 주고 하지요.
지금 토종은 내가 나눠 준 곳이 전국에 100여 농가에서 그 이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라남북도부터 경상남북도까지 다 줬어요. 원래는 여기 밭이 다 곡식으로 꽉 찰 정도였지요. 지금은 다 나눠주고 나는 그걸 안 합니다. 내가 보급한 종자가 이미 나한테는 끝이 난 겁니다. 이제 그건 내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난 새로운 것을 찾아서 보급해야지요. 나는 항상 내가 안 하던 거, 새로운 거를 연구합니다.
내가 내일 죽더라도 몸을 움직여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겁니다. 내가 부지런만 떨면 열 명이 먹고 살 수 있는데 게을리 있을 수 없지요.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은 딱 하나 있어요. 여기에 연구소를 하나 만들려고 해요. 토종부터 산채까지 모든 것을 연구하는 거지요. 자연에서 나서 자연에서 큰 것을 가지고 사람이 식생하는 방법이며 모든 것을 연구하려고 합니다. 혼자 앉아 있으면 못할 일도 너댓만 앉아 있으면 호랑이 데리고 못된 놈들 다 때려잡을 수 있습니다. 서로 머리를 맞대면 못할 일이 없어요.
- 지금은 농사짓지 않으신다면 산나물 같은 것은 채집하시는 건가요?
= 아니지요, 농사를 짓습니다. 그걸 나는 산에다가 하는 거지요. 왜 농사지으면서 누구는 비료를 넣고, 누구는 퇴비를 넣고 그러잖아요. 나는 산에서 부엽토로 하면 돈분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이지요. 산에다 장뇌삼도 하는데, 확실히 사람 손을 덜 탄 것이 맛이 달라요.
지금 산에 집중적으로 하는 것은 30여 가지입니다. 엄나무, 오갈피, 오미자, 더덕, 헛개나무, 당귀, 산작약 같은 것이 있지요.
- 장뇌삼을 재배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으신가요?
= 나는 여러 가지 실험을 많이 합니다. 장뇌삼 씨를 바위 밑에도 뿌리고 나무 밑에도 뿌리고, 수분 있는 데에도 뿌리고 건조한 데에도 뿌려 봅니다. 그렇게 여기저기 심어 놓고 관찰하는 거지요. 그래서 특별나게 잘 나는 곳에는 집중적으로 심고, 그런 곳이 아니면 그냥 더덕을 심던지 하지요. 더 자세한 것은 여기서 말로 설명 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나는 여기 저기 심어보고 1년 뒤에 뽑아서 살펴보고 잘되는 곳에다만 합니다. 덮어놓고 아무 데나 막 심으면 안돼요. 그렇게 하다가는 앞서 가는 사람한테 항상 떨어져요. 남보다 앞서는 것을 만드는 것이 농민이 할 일입니다.
- 여기서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사신 건가요?
= 내가 열서너 살에 조실부모하고 어려운 시절을 살았지요. 여기서 농사지은 것으로 누가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합니다. 저번에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애들이 빨리 개학해서 급식을 타 먹으면 좋겠다는 뉴스가 나오더군요. 그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열 사람은 굶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여기서 농사지으며 산 지가 19년째입니다. 그전에는 남도 속여 먹기도 하고, 참 나쁜 짓도 많이 했지요.
- 입구에 벌통이 많던데 통마다 돌을 쌓아서 막아 놓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 내가 여기에 들어올 때 처음에 벌을 조금 가지고 들어왔어요. 그게 늘어나서 지금은 한 250개 됩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벌을 키워 보니 그래요. 벌 한 통을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고 돌을 쌓아 주며 애를 쓰니, 지들도 그걸 아는지 잘 자라요. 처음에는 그렇게 돌을 쌓아 준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이게 바람도 막고 편안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는 것 같습디다. 또 이걸 저기로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는 여기는 뭐 특별한 것이 있나 하면서 옵니다. 그렇게 와서 꿀도 많이들 사갑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만 그걸 보면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올해는 나무를 파서 옛날 재래통을 더 만들고, 위에는 짚으로 지붕을 씌우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지금은 대충 설계만 하는 식으로 하는 이야기고, 제대로 들으려면 2주는 있어야 해요.
- 아까 산에 30여 가지를 한다고 하셨는데 그중에서 소득이 되는 것이 있나요?
= 소득이란 것은 이렇습니다. 30여 가지를 하면 어디선 손해를 보는 때도 있고, 어디선 이득을 보는 때도 있는 겁니다. 그렇게 균형을 맞추는 것이지요. 아무리 못하더라도 열이면 열 식구가 먹고 살 것은 나옵니다.
나는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하기 때문에 그런데, 한 가지만 밀고 나가면 그렇게 할 수 없어요. 한 가지만 하면 안 되고 수십 종류를 하면 먹고 살 것은 나옵니다. 이런 곳에서 어디 기대지 않고 열심히 살면 올바른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며 살지요.
- 이제 토종 곡식은 가지고 계신 것이 하나도 없나요?
= 자주 감자가 있어요. 이건 내가 하동에서 장에 가니 하나에 200원에 쪄서 팔아요. 그걸 사서 먹어보니 팍신팍신한 것이 참 맛있어요. 그래서 이걸 5천원어치 샀어요. 올해 이걸로 농사지으면 내년에는 열 가구가 심을 수 있을 겁니다. 감자는 눈이 하나인 것만 골라서 하나를 서너 개로 잘라서 심고, 눈이 여러 개 붙어 있는 건 파 버립니다.
다른 인상적인 것은 없어요. 이미 다 내 손에서 떠났어요. 나는 옛날 선조가 하던 건 무조건 보존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그걸 보존할 때는 절대 비료를 주던 곳에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만약에 그런 곳이면 최소한 3~4년은 묵혀야 합니다. 비료, 농약기가 있으면 헛고생만 하는 겁니다.
토종은 산에서 3년만 지나면 토종이 됩니다. 나는 산에다가 퇴비도 안 주고 그대로 심어요. 이런저런 실험을 해서 작년에는 고추도 산에 심고, 그전에는 콩도 심어보고 이것저것 심어 봤습니다. 올해는 더덕을 한 자짜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한번은 산에 상자를 가져다가 박아 놓고 거기에 감자를 심으니 아주 좋아요. 그건 비가 와도 쓸려 내려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요. 관리하기도 편하고.
- 하동이면 여기보다 남쪽인데 거기서 가져온 감자가 여기와 기후가 맞을까요?
= 기후는 크게 상관없습니다. 나는 장날 다니다가 특별한 것만 보이면 사다가 심어 봅니다.
- 산나물 가운데 특별히 아끼는 것이 있으신가요?
= 열 손가락 가운데 버릴 것이 하나 없습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서로가 균형을 맞춥니다. 전체가 다 남으면 팔자 고치지요. 여러 가지를 하는 게 좋습니다. 나는 할 수 있으면 많은 면적에 다양하게 심으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땅에는 욕심을 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 가지 심을 수 있지요.
어떤 분이 나한테 취 씨를 보내주셨는데, 올해 이걸 심어서 3년 뒤에는 취 밭을 만들 겁니다. 이걸 3자 간격으로 심으면 3년이면 취 밭이 됩니다. 산에 가서 풀이 없는 곳에 뿌려 놓으면 2년이 지나면 씨가 앉아서 그게 떨어져 저절로 자랍니다. 그럼 밭이 되는 거지요. 최대한 노임을 안 쓰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남의 집 일하고 쌀 한 말 받기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먼저 차가 있냐고 물어봐요. 돈은 얼마냐 6시 땡 치면 차로 집에 데려다 줄 수 있느냐. 그만큼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그러니 최대한 노임을 안 쓰고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지요.
또 낙엽을 긁어내고 거기 더덕 씨를 넣어요. 이것도 3자 간격으로 또 낙엽을 긁어내고 심습니다. 그럼 낙엽을 모아 놓은 곳에도 더덕이 자라서 더덕 밭이 됩니다. 오히려 낙엽을 긁어모아 놓은 곳이 그것이 썩으면서 거름이 되어 더 잘되지요.
지난번에는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 질경이 좀 없냐고 찾아서 내가 좋은 놈만 가져다가 쭉 심어 놨어요. 이제 조금 있으면 거기는 아예 질경이 밭이 될 겁니다.
-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해주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 부모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식들한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여기에 이렇게 자리를 잡으니 큰며느리가 아버님은 몇 십 년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라고 합디다. 자기들이 나를 챙겨야 하는데 거꾸로 내가 자식들 노후 대책을 만들어 줬다고요.
나는 어디에서 강의해 달라고 하면 절대 안 합니다. 대신 경험담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하지요. 강의는 교수님이나 전문가가 하는 것이고, 나는 내가 경험한 것만 이야기합니다. 책도 소용없고 내 말도 소용없어요. 직접 자기가 몸으로 해서 깨우쳐야 합니다. 말로 하면 없는 떡도 만들어서 전체가 먹고 살 수 있게요. 그러니까 직접 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덮어 놓고 말로 벌을 이렇게 하쇼, 농사를 이렇게 하쇼 하는 건 다 소용없어요.
그동안 미친놈 소리도 들으며 참 외롭게 살았지요. 여러분처럼 주변에서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으면 외롭지 않을 겁니다.
<정리 : 김석기(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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