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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이면 어디에선지 모르게 자욱하게 피어오르던 안개,  뿌연 안개를 걷어내며 펌프로 물을 퍼 올려 쥐가 �은 비누를 찾아 들고 얼굴을 씻는다.

6시 뉴스가 흘러나오는 아침상을 앞에 두면 새벽부터 논에 나가셨던 고무부가 돌아오시고, 어른이 수절 들길 기다렸다가 밤새 허기진 뱃속에 밥을 넣는다. 서둘러 책가방을 챙긴 뒤 자욱한 안개 속으로 몸을 날려 등교길에 나선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굴러 질퍽해진 황토길을 걸어 걸어 걸어가며 이대로 안개에 묻혀 하늘로 떠오르진 않을까 걸어가며, 배 만드는 공장을 지날 때면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 안개를 가르며 두둥실 나아간다. 마을의 논 사이로 난 시멘트 길을 걷노라면 후투티 날아와 뽀뽀 뽀뽀 우지짖고, 논두렁에 선 나무전봇대에는 오색딱따구리 다다다다 벌레를 잡는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하던 학교 생활, 지루한 수업 시간에는 왠 오줌이 그리도 마렵던지 노루 오줌보처럼 한시도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화장실 앞에 쌓여 있던 장작더미에는 하늘소가 자리해 삐삐삐삑, 나를 놓아 달라는 듯 삐삐삐삑.

쉬는 시간이면 삼팔선에 돼지부랄, 탈출이며 비석치기, 나이먹기는 왜그리도 재밌던지. 함께 놀면 후줄근한 옷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땀흘리며 발발거리길 옷속에 들어간 모래알처럼 놀았다. 광개토대왕과 함께 한 땅따먹기, 이만기와 함께 한 씨름, 프로레슬링이 없던 시절부터 가재는 힘겨루기에 바쁘다.

 

그래도 학교를 가면 놀거리가 있고, 함께 즐기던 친구들이 있고, 도시락이 있었다. 그런 것도 없는 집. 텅 빈 집엔 덜렁 밥상 하나 놓여 있고, 밥통에서 밥을 퍼 허기를 달랜다.

이제 해지기 전까지 누구와 무얼하며 놀까 고민하던 때 뒷산 비밀 기지에서 보이지 않는 동료들과 첩보 활동을 벌이고, 땅속 개미들은 무엇을 하는지 구멍을 들쑤시고, 야구 선수가 찾아온 듯 논을 향해 돌멩이를 날린다. 그것도 모자라면 산으로 들로 오디, 으름, 버찌, 마, 칡이며 먹으러 다니고, 작대기 치켜 들고 똥개 메리를 좇아 다니며, 제비 새끼 밥 먹고 똥 싸는 걸 치우는 어미를 쳐다본다.

 

그래도 평일에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심심치 않게 보냈다.

주말이면 찾아오시던 아버지. 아버지를 기다리는 그때 마음은 설레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마루에 걸린 시계의 붕알처럼 내 마음은 똑딱똑딱. 집안에 앉았어도 귀는 저만치 들길에 내다 붙인 듯하다. 혹시 차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혹시 아버지의 발자욱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아버지가 오시면 그날은 시계가 사라지는 하루, 하지만 다음날은 억장이 무너진다.

그럴 때면 아무도 몰래 뒷산에 오르거나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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