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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앓은 날
서른이 넘기 전엔 몰랐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앞만 보고 달리면 그게 행복인 줄 알았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질주하고 때로는 폭주하며
팽팽히 당긴 시위에 매긴 살처럼
돌아볼 것도 쉴 곳도 없이 내쏘았다.
서른이 넘은 어느 날,
심한 몸앓이 끝에 일어난 날.
불현듯 죽음이 고만큼 더 가까워졌음을 보았다.
늘어나는 흰머리에도 별 느낌 없더니
몸살 한 번에 인생을 반이나 살았다고 깨달았다.
어느새 나에겐 심장이 터질 듯한 흥분과
왈칵 쏟아지는 눈물은 사라졌다.
대신 어느덧 손을 맞잡고 함께 걷는 사람을 만나
그에게 맞춰 발걸음은 느려졌고, 어깨는 좀 무거워졌다.
우린 모두 세상에 던져진 존재.
언제 죽음이 다가오는지, 아니면 지금도 함께 하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가야 옳은지도 알 수 없다.
그저 순간과 찰나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할 뿐,
그러나 아무도 최선을 다했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대의 숨결을 느끼며 서로 발걸음 맞춰 그곳으로 걸어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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