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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싹 마른 늦겨울과 초봄을 보며




지난 섣달부터 정월까지, 온통 아주 바싹 말라 있습니다. 뻥 좀 보태면, 길을 걷다가 버석거리는 소리에 놀랄 정도입니다. 집안도 너무 말라, 빨래를 널면 금세 마르니, 그거 하나는 좋습니다. 이런 때는 작은 불씨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다행히 올해는 아직 큰불이 났다는 소식은 없네요. 작은 불은 몇 번 났다고 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건조한지 피부로 다가오지 않으시나요? 요즘 평균 상대습도가 30~50% 안팎입니다. 사람이 가장 기분 좋다고 느끼는 상대습도가 60% 안팎이라고 합니다. 상대습도가 80%를 넘으면 슬슬 짜증이 나죠. 그러면 옆에 사람이 붙는 것도 싫습니다. 심지어 남편이 은밀한 눈길을 주며 찰싹 들러붙어도 발길질로 밀어낼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건조한 날씨가 왜 그럴까요? ‘겨울은 으레 그러니까’라고만 생각하시나요? 뭐, 그게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거기에 더 뭐라고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재밌는 해석이 있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시길 바라며,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우리 가끔 하늘을 보자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시구를 아실 겁니다. 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요즘 하늘을 올려다보신 적이 있나요? 90년대에는 ‘그래 우리 가끔 하늘을 보자’라는 말이 유행한 적도 있지요.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인생이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자는 말입니다. 하늘은 그렇게 나 자신을 돌이켜보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런 생각은 우리네 전통과 관련이 깊습니다. 예부터 우리에게 하늘은 그냥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서양에서도 하늘은 신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무엇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가장 어여삐 여기시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의 중심, 아니 온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지동설을 주장했지요. 지금은 초등학생도 웃을 일입니다.

우리도 사정은 그네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체제를 세운 동양에서, 하늘은 왕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존재였습니다. 아마 하늘에서 무언가 읽고 전하는 무속이 그런 형태로 발전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하늘을 보는 일은 천자의 일,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하늘을 보고 한 일은, 바로 ‘때’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요즘과 달리 그때는 ‘때’를 찾는 일이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때를 제대로 찾지 못하면, 큰일이 났지요. 농업이 나라의 주요 근간이어서 제때 농사짓지 못하면 어마어마한 재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핸드폰만 열어도 날짜와 시간을 바로 알 수 있지만, 그때는 어디 그런 것이 있었나요. 우리는 정말 엄청난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음에 고마울 뿐입니다.

옛사람들은 하늘에서 ‘때’만 본 것이 아닙니다. 자꾸 때 때 거리니 때밀이가 생각나네요. 그럼 때 말고 무엇을 보았느냐. 바로 하늘의 움직임에서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읽었습니다. 이 전통은 우리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이라면, 어디에 살든지 다 똑같았습니다. 우리는 내 앞날이 어떨지 한치 앞도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는 이 세상에 어떻게 왔는지 모르는, 내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무섭고, 어떨 때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평소에는 별로 자각하지 못하고 살다가, 나를 돌아볼 일이 생기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땐 별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 사람은 무언가 의지할 곳을 찾습니다. 교회에 나가거나 산을 찾거나 술을 마시거나 점을 보러 갑니다.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늘을 보는 일이었습니다.



하늘에 불이 났다?


그럼 그들은 하늘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알아 맞춰 보세요. 네, 별입니다. 인간은 예부터 밤하늘의 별을 보고 거기에서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읽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넘기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과 연관된 부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즘 밤하늘의 별이 어떤데 그걸 건조한 날씨와 연결시키려는지, 얼토당토않은 소리겠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십시오.

그럼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별이 보이나요? 별자리를 잘 모르신다고요. 저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별자리를 찾아보았습니다. 군포에서 농사지으시는 우리의 별 선생님께 “별바라기”라는 좋은 프로그램을 소개받아 그걸로 보았습니다.

요즘 밤하늘에는 벌건 별 하나가 엄청나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화성입니다. 처음 하늘에 관심을 가진 뒤 화성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세상은 놀라움과 신기함으로 가득합니다. 도무지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 가운데 움직이는 건 떠돌이별, 그 자리에 늘 있는 건 붙박이별이라는 걸 학교에서 배워 아실 겁니다. 특히 붙밭이별에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만든 것이 바로 별자리입니다.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는 동·서양이 서로 다르지요.

그리고 떠돌이별 가운데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수성, 금성, 화성, 토성, 목성입니다. 이렇게 다섯에서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목, 화, 토, 금, 수라는 오행이 나왔습니다. 또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해와 달에서는 바로 음과 양이 나왔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음양오행이란, 하늘의 법칙에서 온 우리식 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이 뭐 별 건가요. 복잡한 공식, 수학 풀이, 딴 나라 이야기 같은 것만 과학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것들에서 규칙과 법칙을 찾아 정리하면 그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밤이면 우리의 머리 위에서 시뻘겋게 빛나는 화성이 요즘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 아시나요? 바로 미리내(은하수)에 푹 빠져 있습니다. 지난해 동짓달부터 미리내에 빠져, 지금도 미리내에서 헤엄치며 놀고 있습니다. 강물에 뜨거운 불이 빠졌으니 어떻겠습니까? 물론 불이 꺼질 수도 있지요. 그러나 물이 마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아주 근거가 없는 이야기인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상대습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자료를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표에 나오는 날짜는 양력 기준입니다. 그리고 상대습도의 단위는 %이고, 수원에서 관측한 기록입니다.

먼저 동짓달인 양력 12월 10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0일

70

20일

79.3

30일

53.1

11일

80.9

21일

80.4

31일

54

12일

79.6

22일

64

1일

51.8

13일

65

23일

73.8

2일

62.1

14일

61.4

24일

73.1

3일

65

15일

72.9

25일

75

4일

64.4

16일

72

26일

69.5

5일

75.6

17일

73.8

27일

83.1

6일

86.9

18일

82.5

28일

90.6

7일

93.4

19일

74.6

29일

72

 

 

동짓달에는 화성이 미리내에 빠졌다고 해서 그렇게 건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반적으로 습했습니다. 이거 알다가도 모를 노릇입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섣달은 어떤지 보겠습니다.

8일

79.6

18일

42.1

28일

54.3

9일

57.1

19일

45.1

29일

57.1

10일

54.4

20일

53.8

30일

52.1

11일

80.1

21일

75.1

31일

49.1

12일

69.5

22일

89.6

1일

52.9

13일

46.4

23일

65.9

2일

60.1

14일

50.9

24일

40.8

3일

68.6

15일

38.6

25일

48.1

4일

59.4

16일

37.1

26일

52.6

5일

50.9

17일

40.5

27일

57

6일

54.9

섣달에 들어오면서 동짓달보다는 더 건조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중순을 지나면서부터는 확실히 습도가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설날부터 오늘까지의 습도를 살펴보고, 무엇 때문인지 따져 보겠습니다.

7일

54.9

12일

31.4

17일

42.4

8일

61.6

13일

40.4

18일

52

9일

65.8

14일

56.6

19일

68

10일

66.4

15일

38.1

20일

57.3

11일

63

16일

42.5

 

 

정월은 지난 섣달보다 더 건조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뭔가 감이 오지 않으신가요?



화성이 미리내에 빠진 날


동지섣달과 정월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가요? 바로 년年입니다. 동지섣달은 아직 정해년이었고, 정월이 되면서 무자년으로 넘어왔습니다. 제가 예전에 쓴 「무자년을 꼽으며」라는 글을 보셨으면 기억하실 텐데, 거기에서 무자년은 불 기운이 강한 해라고 했습니다. 무자년에는 은은하고 뜨끈한 불이 아닌 무시무시하게 뜨거운 불 기운이 가득합니다. 화성이 바로 그런 불 기운의 상징이니,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더 활활 타겠지요. 무자년으로 들어서며 이런 불 기운을 받아, 마침내 미리내의 물 기운을 누르고 물을 말리고 있다고 해석하면 재미있지 않나요.

미리내 근처에는 물과 관련한 우리 별자리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하늘나라의 우물인 정수井宿(서양의 쌍둥이)가 있고, 마시면 불로장생할 수 있는 물이 샘솟는다는 옥으로 된 우물인 옥정玉井(서양의 오리온)이 있습니다. 또 나라의 운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어 고대에는 해마다 제사를 지낸 강의 발원지 사독四瀆(서양의 외뿔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한강, 낙동강, 대동강, 용흥강이 이에 해당됩니다. 물과 불을 상징하는 남하南河(서양의 작은개)와 북하北河(서양의 쌍둥이)도 있습니다. 북하는 물이 어떻게 될지 그 조짐을 살피던 별자리이고, 남하는 불의 조짐을 살피던 별자리였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별자리는 우리네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별과 우리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늘의 나라에서 어떤 일이 생기면, 그것이 우리 인간의 세상에도 어떠한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별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예측한 것이지요. 미신이고 얼토당토않은 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별의 세세함 움직임이 어떻게든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요? 너무나 적고 무시할 만한 크기라서 눈에 드러나지 않을 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달이 바닷물을 끌었다 놨다 하는 것도 눈으로 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입춘이 지나면 개들이 털갈이를 하듯이 사람도 털갈이를 한다는 작은 사실도 놓치기 일쑤입니다. 요즘 머리칼이며 거웃이 얼마나 많이 빠지는지 모릅니다. 궁금하시다면 슬그머니 거시기에 손을 넣어 보세요.

올해 초는 그렇게 불 기운이 드세서 그런지, 안팎으로 들고일어나 부딪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쨍쨍쨍쨍 귀가 아플 정도입니다. 누구나 다 아실 테지만, 불 기운이 드센 관악산의 기운을 누르고 서울을 지키고 섰던 것이 바로 숭례문이었습니다. 그런 유적이 올해 정월 초에 불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한 줌 재로 변했습니다. 그 불씨는 한 사람의 이기심이었다지만, 그건 그 사람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기회의 불평등과 체계 없는 행정,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관행, 눈앞에 성과만 낳으려는 조급증 등이 낳은 결과입니다. 이것들을 계속 무시한다면, 이보다 더한 엄청난 불기둥이 솟구칠 겁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프로그램으로 확인하니 4월이 되면 화성이 미리내에서 빠져나옵니다. 그렇다고 그 여파가 다 물러나지는 않겠지만,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연둣빛이 세상을 가득 채울 때면 때에 맞춰 비가 내릴 것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곡우에 비가 와서 한 해 동안 곡식을 잘 키워 주시고, 우리를 배부르게 할 겁니다.




☯ 도움 주신 분과 참고한 자료들

좋은 프로그램을 알려주신 군포의 김지현 별 선생님

늘 재밌게 글을 읽고 꼬집는 아내와 털갈이를 보여준 연풍

기상청 http://www.kma.go.kr/gw.jsp?to=/weather_main.jsp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별자리, 안상현,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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