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공병이자 수학자, 그리고 탐험가이자 스파이이기도 했던 아메데 프랑수아 프레지에Amedee-Francois Frezier. 그가 1712년 프랑스 정부의 지령을 받고 페루와 칠레의 해안선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남아메리카로 파병이 된다. 당시 그 지역은 스페인의 식민지였기에 대놓고 다닐 수가 없어 그는 상인으로 위장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남아메리카 대륙에 자생하던 여러 식물을 채집하기도 한다. 그 하나가 바로 칠레의 해변에서 자라는 한 딸기 품종이었다. 당시 유럽에도 야생 딸기가 존재했지만 이 칠레의 딸기만큼 과실이 크지는 않았다고 한다.


칠레 딸기 품종.


하지만 그가 채집해 간 칠레의 딸기 품종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암꽃과 수꽃이 다른 그루에서 피는데, 그는 암꽃 그루만 가져간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여러 수꽃의 꽃가루를 수정시켜 결과물을 비교하다가 북아메리카의 버지니아 품종과 교배한 것이 가장 낫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렇게 육종한 딸기가 1750년 무렵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고 하며, 그것이 현재 우리가 먹는 딸기의 모태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생물해적질(bio-piracy)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되었다.



딸기의 여정을 지도 한 장에 담았다. 수백만 년 전 동아시아에서 2배체(2x)인 흰땃딸기(F. nipponica. 이하 직계조상을 의미)와 F.iinumae 사이에서 4배체(4x) 자손이 나왔다. 그 뒤 이 4배체와 2배체인 F.viridis 사이에서 6배체(6x) 자손(사향딸기(F. moschata)이 나왔다. 북미로 건너간 사향딸기가 2배체인 숲딸기(F. vesca ssp. bracheata)를 만나 8배체(8x) 자손이 나왔고 북미 동부의 버지니아딸기(F. virginiana)와 남미의 칠레딸기(F. chiloensis)로 진화했다. 각각 16세기와 18세기 유럽으로 건너간 두 종으로 프랑스 육종가들이 만든 파인애플딸기(F. x ananassa)는 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소개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네이처 유전학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7464




국에는 일제강점기인 1920-1930년대에 처음 도입되었으리라 추정되는데, 문헌 기록으로는 1960년대 수원 일대에서 대학 1호라는 품종을 재배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아마 수원의 '푸른지대'를 기억하는 어른들이 꽤 있을 것이다. 당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수원에 있었고, 푸른지대 딸기밭이 그에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수원 서둔동의 딸기밭 풍경



그래서인지 1980년대까지 밭에서 과일로 재배하는 딸기를 "양딸기"라는 명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산과 들에 자생하는 딸기는 조선 딸기라 부르며 구분했다. 그러다가 밭에서 재배하는 양딸기가 딸기의 대명사가 되고, 자생 딸기는 산딸기라는 이름으로 고정되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딸기의 재배가 노지의 밭에서 이루어졌지만, 1980년대 한국의 농업을 180도 뒤바꾼 '백색혁명'과 함께 자연스럽게 점점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게 되어, 현재는 전체 딸기 재배의 95% 이상이 시설에서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겨울이 제철인 양 되어 버렸지.


점점 겨울철 딸기의 생산량이 늘며 겨울 과일의 대명사였던 감귤과 경쟁하기에 이르렀고, 올해는 감귤의 생산량까지 증가하며 값이 폭락해 제주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 이게 올해만의 현상은 아닐 것 같아 걱정스럽다. 감귤은 '대학 나무'라 불리며 대접을 받았는데...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9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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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육종이 낳은 울끈불끈 근육질의 소 벨기에 블루Belgian Blue.

유전자변형 같은 기술을 쓴 게 아니라 전통적인 교배육종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적인 돌연변이라고 한다.

그런데 새끼도 일반적인 소에 비해 크기 때문에 제왕절개를 하고 그런다는데... 과연 송아지 때부터 울끈불끈한 기질이 드러난다.

아무튼, 유전적 특성 때문에 고기에 지방질은 적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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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언제 찍은 사진인지 모르겠지만, 마루에서 수박을 먹는 모습이 흥미롭다. 특히 수박이 그렇다.

지금 우리가 먹는 수박보다는 무등산 수박 쪽에 가까운 품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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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지도를 보았다.

기후변화에 따른 연도별 벼 불임률 지도.



 
지도를 보면, 그러니까 2060년 정도 되면 지금과 똑같은 벼 품종으로는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농사가 되긴 되는데 평균 20% 정도는 이삭이 제대로 맺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저 북쪽이나 현재의 고랭지에서는 괜찮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절망에 빠질 이유는 없다. 

인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말이다. 

아마 이러한 기후 조건에 알맞은 새로운 품종을 육종하든지, 아니면 새로운 농법 등으로 난관을 타개하려 노력하겠지. 가만히 앉아서 위기를 맞아하지는 않으리라 예상한다. 

그도 아니면, 지금 품종으로 더 북쪽에서 농사지을 수도 있겠다. 물론 통일이든 남북 경제협력이든 하는 형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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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연구이다.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굴된 포도 씨앗을 가지고 유전적으로 분석하니, 현대의 품종과 부모-자식 같은 관계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단다. 심지어 사바냥 블랑은 900년 전의 품종과 유전적으로 똑같다는 결과까지 나왔단다. 얼마나 맛이 좋아 선호되었길래 1000년 가까이 똑같은 품종을 재배해 포도주를 담갔다는 건가?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77-019-0437-5


요약


유라시아 포도나무(Vitis vinifera)는 오랫동안 포도주 생산만이 아니라 먹을거리 공급원으로 중요했다. 복제로 번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품종은 역사적 및 동시 존재적 기록에 기술된 수천 가지 품종과 함께 형태학적, 유전적으로 높은 다양성을 나타낸다. 역사적 기록을 통하여, 일부 품종들은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고대와 현대의 포도나무 사이의 유전적 관계는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이다. 우리는 철기시대, 로마시대,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28가지의 고고학적 포도 씨앗으로부터 표적의 질을 높인 게놈 전체의 서열분석 자료를 제시한다. 작물과 야생의 자료와 비교했을 때, 우리는 고고학적 표본들은 오늘날 양조에 이용되는 유럽 서부의 품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는 여러 로마시대의 유적지에 존재하는 동일한 유전적 특징을 가진 씨앗만이 아니라, 오늘날 재배되는 품종들과 부모-자식 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씨앗들을 확인했다. 또한 우리는 서력 11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 씨앗은 "Savagnin Blanc"과 유전적으로 일치하여, 900년 동안 연속된 식물 번식의 증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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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 2미터까지도 자란다. 보통 5마디 정도였다. 



토양에 유기물을 추가하거나, 타감작용을 이용해 풀을 억제하는 효과가 좋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다 자랐을 때 베거나 밟아 눕히거나 꺾어 버린 다음 그 땅에 그대로 농사지을 수 있다. 이미 미국 쪽에서는 널리 알려진 농법이다.

농사,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습니다. 
농사, 돈이 많이 든다면 많이 들고 적게 든다면 적게 듭니다.




Red Fife(적관밀). 적관밀을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토종 작물의 작명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는 데가 있다.

영어로 fife는 원래 피리 종류의 악기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빨갛고 피리 닮은 이삭이 달리는 밀이란 뜻이겠다. 과연 이삭이 길쭉하고, 익으면서 빨간색이 짙어지는 특성이 나타난다. 

제때 심은 건 이삭이 익음때로 들어섰는데, 늦게 심은 건 이제야 수정이 된 눈치이다. 얼마 안 남은 기간 부지런을 떨어야 씨앗이 영글겠다. 

토종 벼과작물이 다 그렇듯이, 이것도 키가 크다. 옆에 서니 내 허리 위로 올라온다. 대략 120-130cm 정도. 마디는 좀 덜 큰 건 3마디 제대로 큰 건 4마디이다. 호밀보다 1마디 적은데, 그만큼 키 차이가 난다. 

서구의 밀 품종과 한국의 밀 품종이 보이는 특성의 차이를 발견했다. 서구의 밀 품종은 키는 크더라도 보통 까락이 없는 게 많다. 그런데 한국의 토종 밀 품종은 키는 좀 작은데 까락이 있는 게 많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재밌는 차이점이다.






남도 참밀. 토종 씨앗계의 대부 장흥의 이영동 선생님이 보존해 온 토종 밀이다. 

키는 서구의 밀에 비해 크지 않다. 허리춤 정도 오니 대략 1미터 남짓. 이삭이 굵고 실하다. 맛도 달큰하니 좋아서 앉은뱅이밀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라 한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까락이 무성하다.









화이트 소노라 밀. 
네, 그렇습니다. 이 밀이 바로 인류를 기아에서 구해 냈다고 평가 받는 노먼 볼로그 박사가 육종한 소노라 64호의 부모 계통입니다.

옆에 서 보니 어깨 가까이 올라옵니다. 대략 150-160cm 정도의 큰 키입니다. 서양의 것은 사람만 큰 게 아니라 작물도 큽니다. 왜죠? 레드 피페라고 하는 적관밀보다 이삭이 더 크고 실합니다. 하지만 키가 큰 것이 나중에 쓰러짐 때문에 수확량을 떨어뜨리는 큰 단점이었죠. 그래서 일본의 왜성 밀인 농림 10호와 교배시켜서 만든 것이 바로 녹색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던 소노라 64호입니다. 그리고 그 농림 10호는 조선의 앉은뱅이밀이 부모 계통이었다고 중얼중얼... 

미국 슬로푸드 홈페이지에 이 밀을 소개한 내용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https://www.slowfoodusa.org/ark-item/white-sonora-wheat

소노라라는 이름은 이 밀이 재배되던 지역의 이름입니다. 멕시코 북부에 있는 소노라라는 곳이지요. 지도에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개의 품종인 치와와도 있고, 현대자동차의 투싼도 보이고 그럽니다. 그리고 화이트는 이삭이나 알곡이 흰빛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겁니다. 예전에 저는 서구는 우리랑 다르게 새로운 품종에 주로 사람 이름을 붙이는구나 했는데 개뿔 아니었습니다. 우리랑 비슷하게 그 작물의 특징이나 주요 재배지를 가지고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었던 겁니다. 그게 개인의 소유권, 재산권 개념이 발달하면서 육종하건 발견한 사람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아주 재미난 밀을 여러 가지 보고 배운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호라산(또는 후라산) 밀.

이란 북서부에 있는 호라산 또는 후라산이라 하는 지역에서 고대부터 재배되던 밀이라고 합니다. '산'이라고 해서 거기 무슨 산악지대에서 재배하던 건가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쪽 단어였어요.

아무튼 이 밀이 아주 엣날 그때와 똑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 직계 후손이라고 하네요.

세력이 엄청 강합니다. 앞서 보았던 남도 참밀과 비교하여 그보다 더 억세 보입니다. 많이 달리는 편은 아니지만, 달려 있는 이삭은 엄청 실합니다. 

이게 최근 미국 쪽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가 봅니다. 판매도 되고 그러네요.



이상. 길위에서 님의 협조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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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 밀'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이야 워낙 유명해져서 전국 방방곡곡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고, 여기저기 널리 재배될 뿐만 아니라 상품으로도 꽤 많이 팔리고 있다. 밀의 존재에 대해서는 문헌이나 이야기만 듣다가 2012년 여름, <토종 곡식>을 저술하면서 조사하다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자료를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어떻게 찾을 수 없을까 알아보다가 진주 금곡 정미소에서 이 밀을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아 대표인 백관실 선생을 만나러 갔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또 한 명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서석태 선생이다. 그 더운 여름에, 가는 길에 서석태 선생을 태우고 금곡 정미소까지 함께 가서 취재를 한 기억이 난다. 가면서 계속 속이 안 좋다며 체했는지 어떤지 안색이 좋지 않으셨다. 결국 그날, 내가 한창 조사하고 있는 와중에 앉아서 쉬시다가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다. 놀라고 당황하여 경황이 없었지만 먼 길을 왔기에 인터뷰는 마쳐야겠고, 사람은 쓰러졌고, 어떻게 할 바를 몰라 함께 간 주소영 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저는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우니 대신 좀 부탁드린다고. 그리고는 응급차가 와서 함께 경상대병원으로 가서 바로 입원하시고 이후 위암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덕분에 살았다고, 혼자 거창 집에 있었으면 아무도 모르게 쓰러져서 큰일날 뻔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날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 하고도 7-8개월이나 지났다. 저 세상에서도 주변에 사람들 모아서 재미나게 지내고 계신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를 기억한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데로 흘렀다.

앉은뱅이 밀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안완식 박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서 지금처럼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있었지만 다들 안완식 박사가 앉은뱅이 밀을 다시 찾았다고만 이야기하고 나의 일은 쏙 빠져 있으니 좀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아무튼 그런 사실 관계는 차치하고, 나는 그런데 왜 앉은뱅이 밀은 그렇게 키가 작아졌을지 궁금했다. 도대체 왜일까? 안완식 박사의 자료에 의하면, 앉은뱅이 밀은 남해안 일대에서 주로 재배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의 품종명을 기록해 놓은 자료를 보아도 앉은뱅이 밀의 품종명이 나타나는 곳의 분포가 그와 일치하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면 왜 남해안일까? 여기서부터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나는 바람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했다. 남해안은 보리가 한창 성숙하여 자라고 있을 때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강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바다와 인접해 있는지라 더더욱 바람의 변동과 세기가 심했을지 모른다. 이른 자연 조건에서 살아남으려면 키가 큰 것보다 키가 작은 쪽이 더 살아남기에 유리했을 터이다. 그러니 자연히 농민들도 이런 특성을 보이는 밀을 선택하여 재배해 오지 않았을까? 이런 내용은 이미 <토종 곡식>에서 다룬 바 있다.

오랜만에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앉은뱅이 밀에 대한 내용이 참 많아졌다. 그런데 동아일보 김유영 기자는 '앉은뱅이 밀'이 기원전 300년부터 재배되었다는 걸 어떻게 저렇게 자신 있게 작성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61102/811193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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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시히카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시대와 함께 품종의 흥망성쇠가 반복되는 가운데, 탄생부터 6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큐슈九州 지방까지 널리 재배되고 있는 보기 드문 품종으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맛있는 쌀'의 대명사가 되어 왔다. 고시히카리란 도대체 누구인가? 고시히카리는 왜 인기가 있는가? 벼에 대해 잘 아는 농학자 사토 요우이치로佐藤洋一郎 씨에게 들었다.




쌀 업계의 역사를 바꾼 고시히카리

고시히카리가 태어난 건 지금으로부터 60년 이상 전인 1956년. 당시 후쿠이福井 현립농사시험장県立農事試験場에서 개발되었다. 

뜻밖에도 탄생 직후에는 재배가 확산되지 않았는데, 1979년 쌀 재배면적 1위로 올라서서는 40년 가까이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쌀의 재배에는 지역에 따라 적합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지만, 도호쿠 지방부터 큐슈 지방까지 널리 재배되고 있는 품종은 현재 고시히카리 말고는 없다. 최근에는 해외에도 그 이름이 알려져, 이제는 가장 유명한 일본 쌀이 되었다. 국내외에서 '맛있는 쌀'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말하자면, 쌀의 슈퍼스타 같은 존재이다.  

게다가 고시히카리는 쌀 업계의 역사를 바꾼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쌀을 살 때 '고시히카리'나 '히토메보레ひとめぼれ'나 '아키타 코마치あきたこまち' 등의 '품종명'을 따지는데, 이러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고시히카리가 계기가 되었다고 사토 요우이치로 씨는 이야기한다. 


사토 요우이치로 씨. 교토부립대학 일본 식문화 연구센터 특임교수, 종합지구환경연구소 명예교수. 교토대학 대학원 농학연구과 수료. 국립 유전학 연구소 연구원, 시즈오카대학 농학부 조교수, 종합지구환경학 연구소 교수 및 부소장. 대학 공동이용기관 법인 인간문화연구기구 이사를 거쳐 현직. 전문은 식물유전학. 30년 이상에 걸쳐 아시아 각지를 현지조사하고, 벼의 기원을 찾아 왔다. 



"소비자가 '품종명'을 알게 된 것은 1995년 식량관리법이 폐지되고 식량법이 제정되어 자주유통미自主流通米(※1)가 출현한 일이 시작이다. 그때까지 소비자는 '일등 쌀' '이등 쌀'이란 등급과 '하리마(播磨) 쌀' '오우미(近江) 쌀' '이세(伊勢) 쌀' 같은 산지의 정보만 알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니이가타현新潟県이 '고시히카리'의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판매를 시작하면서부터 품종명의 정보가 제공되었다." (사토 씨) 품종은 농민만이 아는 '벼의 품종'에서 소비자도 아는 '쌀의 품종'으로 자리매김이 변하였다. 

※1 정부를 통하지 않고 집하업자와 판매업자 등을 통하여 유통되는 쌀

“세 방면이 좋아한”쌀로 인기를

게다가 고시히카리는 '많이 생산되는 쌀'에서 '맛있는 쌀'로 사람들의 가치관과 수요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이후부터 국가 전략으로 한 알이라도 많은 쌀을 취급하려는 시대가 계속되었지만, 1960년대에 쌀의 생산성은 포화상태에 도달했다. 아무리 기술혁신을 하려 하고, 품종개량을 하려 하고, 비료를 많이 쓰려 했지만 수확량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양'에서 '질'로 최초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니이가타현이었다. 맛있는 쌀을 만들려고 생각한 것이다." (사토 씨)


'양'에서 '질'로 쌀의 역사를 바꾼 고시히카리 


자주유통미가 된 쌀의 가격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게 되어, '수확량=수입'이 사라졌다. 예를 들어, 20% 비싸게팔면 수확량이 10% 줄어도 벼 농민의 수입은 약 10% 증가한다. 또 고시히카리는 도열병에 걸리기 쉬웠기 때문에, 병을 막기 위하여 질소비료를 즐이니 맛이 좋아졌다. 각 현의 시험장이 극진하게 고시히카리의 재배 지도를 다는 일도 전국으로 확대되는 데에 뒷받침이 되었고, 정미 수율이 좋았던 점 때문에 쌀가게도 좋아했다. 게다가 고도경제성장에 의하여 소비자가 쌀에 대하여 양보다 질을 추구하게 되는 등 시대와도 잘 맞았다.   

고시히카리는 농민, 쌀가게, 소비자에 의하여 "세 방면이 좋아하는" 쌀로 환영을 받았다.  

동과 서에서 선호하는 "전 일본"

2018년 산지 품종 목록을 보면, 홋카이도北海道와 도쿄도東京都와 오키나와현沖縄県을 제외한 총 44부현府県에서 재배되고 있는 고시히카리. 그러나 고시히카리가 퍼지기 전에는 "오사카大阪 시장에 반입되는 쌀은 대립이고 미질이 단단하며, 도쿄 시장에 반입되는 쌀은 소립이고 미질이 부드럽다"(사토 씨)라는 식으로 동일본과 서일본에서 쌀의 선호가 달랐다고 한다. 

그럼 왜 고시히카리의 맛은 동일본에서도, 서일본에서도 받아들여진 것일까? 

고시히카리는 농림農林 1호'와 '농림 22호'를 교배시켜 탄생했다. 

'농림 2호'는 동일본에서 맛있는 쌀로 퍼졌던 리쿠陸羽 132호와 카메노오亀ノ尾 같은 계통의 품종. 그리고 '농림 22호'는 서일본에서 맛있는 쌀로 퍼졌던 '아사히旭' 계통의 품종이다. 


위 사진의 출처 http://www.ken-ohashi.jp/contents/2b/dagakki/2008/132.html



그때까지 동과 서의 품종을 교배시킨 예는 별로 없었는데, "동쪽의 천하장사" 계통과 "서쪽의 천하장사" 계통이 교배된 고시히카리의 탄생은 일본인의 쌀 선호에 변화를 가져왔다. 


고시히카리의 아버지 농림 1호. (이시카와현石川県 하쿠이시羽咋市의 코시다 히데토시・나오코奈央子 씨 부부가 재배)


"일본 전국 거의 어디서나 농사지을 수 있는 '전 일본'이 태어나, 동쪽에서 먹고 익숙한 맛과 서쪽에서 먹고 익숙한 맛이 합체함으로써 양자에서 받아들여지는 맛이 탄생했다. 그래서 고시히카리가 퍼졌다고 생각한다."고 사토 씨는 이야기한다. 

그렇게 말하더라도, 고시히카리가 탄생한 뒤 재배면적 1위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23년의 세월이 걸렸다. 사토 씨에 의하면, 당초는 고시히카리의 평가가 간사이関西를 중심으로 높고 간토우関東에서는 고시히카리보다 '사사니시키ササニシキ'가 인기였다.

그런데 여기에도 또 니이가타현의 움직임이 영향을 주었다. 

'깨끗한 물과 비옥한 대지에서 재배된 니이가타 고시히카리' '밤낮의 일교차가 크기에 맛있게 자란 우오누마魚沼 고시히카리' 이라는 이미지 전략에 의하여 간토우에도 고시히카리가 퍼져 나갔다. 그리고 재차 타격을 주듯이, 1993년 헤이세이平成의 대냉해로 인해 사사니시키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고시히카리 일족"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동서에서 선호하는 고시히카리의 탄생을 계기로, 일본인의 쌀에 대한 미각은 균일화되는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고시히카리 논


고시히카리 덕에 잃어버린 것


고시히카리 탄생 후에는 고시히카리를 기반으로 품종개량이 반복되어 현재는 전국에서 재배되는 품종의 80%가 고시히카리계 품종(고시히카리를 편부모로 하는 근연 품종)이란 '고시히카리 최강 시대". '농림 100호'란 농림 번호(※2)로 1956년에 고시히카리가 탄생하고나서 2015년 시점에서 논벼의 농림번호는 '농림 474호'까지 나왔다(농림수산기술회의 <2016년 농림번호 부여 품종>).

"약 60년 동안에 국가에서 만든 품종만도 300계통 이상이고, 각 도도부현에서 만들고 있는 품종은 더 많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특정 품종만 시장에 남아 있다. 각 농업시험장의 육종가들 입장에선 '좋은 걸 만들어도 고시히카리를 이길 수 없다'는 불행한 상황이다"라고 사토 씨는 말한다. 판매하는 측에서도 구매하는 측에서도 '고시히카리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맛있다'는 풍조가 있어, '육종은 마케팅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라고도 한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느끼는 품종도 있을지 모르지만, 고시히카리 일변도의 상황으로 잃어버리고 있는 것도큰일이다.

사토 씨는 고시히카리가 이렇게까지 확산됨에 따라 "확실히 다양성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다음회 나만의 벼 품종을 만들자에서는 다양성이 사라짐에 따라 생기는 문제와, 다양성을 창출하기 위한 이야기를 살펴본다. 

※2 농림성 소속의 연구기관과 각 현에 산재해 있는 국가 지정 시험지에서 육성된 농작물 품종에 붙여진 등록번호. 


https://agri.mynavi.jp/2019_01_15_5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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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시히카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전회는 전국에서 재배되고 있는 품종의 80%가 고시히카리계 품종(고시히카리를 편부모로 하는 근연 품종)이라는 "고시히카리 최강 시대"가 된 경위를 농학자인 사토 요우이치로佐藤洋一郎 씨에게 들었다. 한편, 사토 씨는 고시히카리 일변도의 상황에 의해 잃어버린 '쌀의 다양성'이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먹을 수 있는 쌀은 대략 20품종

쌀의 다양성이 사라진 이유로, 사토 씨는 '군사물자로 쌀의 품질을 통일시키려는 국가정책을 취한 점' '특히 소화시대 이후에 다수확을 목적으로 키가 작은 특정 품종만 품종개량에 사용한 점'을 들지만, 역시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은 '고시히카리의 등장'이었다고 지적한다. 

현재 산지 품종 내역을 보면, 멥쌀, 찹쌀, 술쌀을 합계하여 약 480품종(2018년, 농림수산성 <농산물 규격규정>을 바탕으로 산출). 이 가운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 있는 멥쌀은 재배 비율 상위 20품종이 84.1%를 차지하고있다(2017년산, 미곡 안정공급확보 지원기구 공표). 

※일정한 산지(도도부현 단위)에서 생산된 품종이 다른 산지에서 생산된 동일한 품종과의 사이에서 일정한 품질차를 나타내기 때문에, 농산물의 거래 등에서 해당 산지와 품종을 농산물 검사로 특정할 필요가 있음. 1년 1회, 도도부현마다 내역 설정의 신청이나 폐지 등의 의견을 청취하는 장이 설정되고, 학식 경험자, 생산단체, 실수요단체, 행정관계자에 의한 협의를 통해 농림수산성 국장에게 전달. 내역의 설정 등을 행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된 경우, 농림수산부 장관이 행하는 농산물 규격규정의 개정 절차가 진행됨.



각 현에는 여러 가지 대표 품종이 있지만, 전체 비율에서 보면 재배면적은 적다(Panasonic'쌀 이야기 박물관OKOME STORY MUSEUM'의 전시에서)




한편, "메이지 시대는 4000가지 품종이 있었다. 이명 동종, 동명 이종이라 생각되는 것을 정리하더라도 600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고 사토 씨가 말한다. "메이지 시대에 여러 가지 품종이 보전된 것은 사람들이품종을 식별하여 목적에 따라 구별하여 쓰거나, 지역 사이의 교류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시히카리의 등장 이후, 전국에서 비슷한 품종이 나왔기 때문에 현재는 다른 품종을 식별할 힘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에도 시대에 농사지었다고 보이는 품종 '愛亀'. 역주; 이 품종은 일제강점기 조선반도에도 도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린 붉은 물감과 초록 물감만 가지고 있다. 섞으면 자주색이 된다. 다양한 자주색이 되겠지만, 결국은 자주색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것도 늘어나지 않으며, 아무것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이 최근의 품종개량이다. 어떻게 기호라는 게 균일화되는 것인가 한다." 



에도 시대에 카가번의 헌상미였다고 이야기되는 품종 '킨챠쿠巾着'



한때 '가짜 고시히카리'의 유통이 문제가 되었다. "유통되고 있는 고시히카리 가운데 30%가 가짜일 때조차 우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었다. 품종의 차이가 적어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다른 품종이 들어 있는지 간파하지 못하니, 즉 맛의 차이를 모르면서 비싼 고시히카리를 구매하는 데에도 한 원인이 있다. 가짜 고시히카리 문제는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면서 쌀의 맛이란 문화의 다양성을 잃어버리며 발생한 비극이었다." (사토 씨)


문화의 다양성과 품종의 다양성이 지닌 관계 

다양성이 적다는 건 어떤 문제로 이어질까? 

사토 씨는 "품종의 다양성을 없애는 건 문화의 다양성을 없애는 것"이라 딱 잘라 이야기한다. "어느 지역이라도 각각의 식문화가 있고, 그에 따른 품종이 있었을 것이다. 식문화의 배경에는 잔치 음식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잔치 음식이라도 특정 품종으로 대체되어 버린다면, 그 쌀의 특징을 살린 식문화는 사라져 버린다. 잔치가 사라지면 그때 사용된 품종도 사라져 버린다. 문화의 다양성이 품종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품종의 다양성이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나의 다양성이 여위어 버리면, 다른 한편의 다양성도 여위어 버린다."

실제로, 짚 세공용 벼 품종도 짚을 쓰는 문화가 사라져서 소멸되어 버렸다. 현재의 산지 품종 내역을 보면, 우리가 평소 먹고 있는 멥쌀은 약 290품종, 찹쌀은 약 70품종, 술쌀은 약 120품종이다(2018년 농림수산성 <농산물규격규정>을 바탕으로 산출). 밥을 먹고, 잔치 음식으로 떡을 만들고, 일본술을 마신다. "적어도 경사스런 날만이라도 품종을 구별해 쓰면 어떨까요?"라고 사토 씨는 말한다. 우리의 "경사스런 날"과 "잔치"의 밥상이 문화와 품종을 유지해 나아갈 것이다. 



이시카와현石川県 하쿠이시羽咋市의 코시다 히데토시越田秀俊 씨와 나오코奈央子 씨 부부가 재배한 '은방주銀坊主'라는 멥쌀 품종. 역주; 은방주는 일제강점기 조선반도에도 도입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는 품종이다.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을 만들다 

사토 씨는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朝日新書)이란 저서가 있다. 이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은 있다?'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을 찾자?' 그 진의를 묻자, "생산자만이 아니라 소비자도 맛있는 쌀을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다'라고 사토 씨가 답한다.

그러면, 소비자가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을 만든다'는 건 어떤 뜻일까? 

사토 씨가 제안하는 건 '나의 품종'을 만드는 일. '나의 품종이란, 소비자와 생산자가 손을 맞잡고 만드는 품종이다. 맛있는 쌀을 만드는 책임은 생산자만이 아니라 소비자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서로 어떤 품종을 만들고 싶다고 대화하고, 자신들이 직접 인공교배하고 선발을 한다. 소비자는 모내기와 제초, 벼베기 등 1년에 몇 번은 농작업을 도우러 가고, 생산된 쌀은 구매한다. 그 토지에서 농사지은 쌀은 확실히 그 땅에 적응하고 있다. 다양한품종을 만드는 일을 통해 그 토지의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지고, 예를 들어 냉해 등의 재해가 있어도 전멸이란 최악의 사태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가채종을 반복하는 것으로 종묘법에 규정된 '품종'에서는 사라져 가겠지만, 이해하는 소비자와 함께 품종을 만들어 먹는 분량만큼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사토 씨의 생각이다. 



수확한 벼는 씨앗이 된다 



장애물이 높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품종개량은 그다지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라고 사토 씨는 이야기한다.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초기 무렵의 품종은 개인의 노력에 의하여 탄생하고, 농민들이 품질을 유지해 왔다. 품종의 관리를 민간에 맡기는 일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문화의 다양성은 생물다양성을 담보한다 文化的多様性は生物多様性を担保する

2018년 4월, 장려품종에 대해 규정된 <주요 농작물 종자법>이 폐지되었다. 현재는 도도부현이 독자적으로 장려품종을 계속 다루고 있지만, 만약 앞으로 장려품종이 사라진다면 식량관리법 시대처럼 '니이가타 쌀(新潟米)' '후쿠시마 쌀(福島米)' '일등 쌀(一等米)' '이등 쌀(二等米)' 같은 산지나 등급의 정보만 얻을 수 있게 되어 버리겠다는 우려도 든다. 

그러나 사토 씨는 "다양성에게는 하나의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품종을 스스로 만든다면, 지적재산권도 경제적 소유권도 자신의 것. 거대한 농생명 기업에 얽매이지 않는다. 지금 시대는 옛날에 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러 지식을 가지고 있다. 지식을 총동원해 나의 품종이 지닌 형질을 제대로 제어할 수 있다면, 다양하지만 잡박하지 않은 품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토 씨가 "문화적 다양성은 생물다양성을 담보한다"고 강조하듯이, 사람들이 단일 품종을 먹고 있다면 단일 품종만 재배되어 버린다. 그러나 다양한 쌀을 맛봄으로써 다양한 품종의 재배가 퍼져 나갈 것이다. 쌀 품종의 다양함은 문화의 다양성과 동일하다. 

나의 품종을 만들어 메이지 시대 같은 품종의 다양함이 현대에 소생되면 일본의 밥상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벼 오타쿠에게 듣다!『나의 품종』 만드는 법」에서도 소개했듯이, 농민이 육종가가 되는 시대가 오고 있는지도모른다. 


https://agri.mynavi.jp/2019_01_22_5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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