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늘 게으르게 농사짓는 방법을 선호한다.

그래서 작물을 심을 때도 모종을 내기보다는 씨앗을 그대로 심는 방법을 선호한다.


곧뿌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가?


특히 어려운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콩과 배추, 무 등이다.

배추와 무는 초기에 벌레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노출이 된다.

그리고 콩은 초기에 새들, 특히 비둘기에게 먹히기 쉽다.

꿩은 땅을 파서 콩알을 꺼내 먹는다고도 하는데, 내가 있는 곳에는 그런 일이 없다.

대신 비둘기가 떡잎을 주로 공격한다.



웬 걸. 이번에도 비둘기에게 일부 습격을 당했다. 으, 지킨다고 지켰건만 모두를 안전하게 지키지 못했다. 비둘기에게 떡잎이 뜯어먹힌 콩들.



하하하, 떡잎만 공격을 당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예 목을 뎅강 자르듯이 먹힌 콩들도 발생한다. 

밭에 신나서 갔는데 그런 모습을 발견하면, 그야말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건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비유하자면, 아이를 만나러 신나서 가는데 만나니 누군가에게 쥐어터져 멍들고 코피가 나고 있는 상태랄까?


보라. 잔인한 비둘기들... 물론 나의 입장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비둘기들이 사실 무슨 죄가 있겠는가. 먹고 먹히는 삶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여 살아가는 것일 뿐.



작년에는 어떻게 할까 하다가 한랭사를 설치해서 모종을 내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1년 다시 해보니 너무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올해는 그냥 곧뿌림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곧뿌림을 할 때 중요하게 고려할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심는 시기를 잘 택해야 한다. 새들의 산란철을 피해야 한다. 아무래도 새가 알을 까려고 하면 영양보충이 필요하고, 그래서인지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새들의 산란철은 주로 5월 말이라고 들었다. 그러니까 중부 지역에서는 5월 말에 밭에다 콩을 곧뿌림하는 걸 금기시해야 한다.



이놈, 바로 이놈이다! 도시에 사는 비둘기보다야 백배 천배 예쁘게 생겼지만, 콩 심을 때 나에게는 그 어떤 모습보다 흉흉하다. 머리는 또 얼마나 좋은지... 누가 새대가리래? 새가 얼마나 영악스러운데. 



둘째, 노농들은 6월 중순 무렵이 콩을 심는 적기라고 했다. 과연 그때 심으면 좋다. 5월 말~6월 초는 조금 이른 감이 있고, 6월 말은 좀 늦은 감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6월 중순에 할일이 산더미처럼 많다는 것이다. 요즘이야 모내기도 5월이면 끝나서 별 문제가 없지만, 예전에는 6월 중순이 모내기하는 때였다. 그래서 밀과 보리를 심었으면 그거 수확하랴, 부랴부랴 콩 심으랴, 모내기도 준비해서 하랴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철이었다. 이를 '삼그루판'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때가 바로 '부지깽이 손이라도 빌린다'고 하는 그 시절이다. 얼마나 바쁘면 부지깽이한테 손을 빌리려 하겠는가. 아무튼 난 올해는 6월 10일 무렵 심었다. 


셋째, 이 역시 심는 시기를 선택할 때 고려할 요소이기도 한데 비가 오기 전날 심으면 좋다는 것이다. 콩은 심은 다음 비를 두 번 정도 맞히면 어김없이 싹이 난다. 올해는 뜻하지도 않게 이른 장마가 와서 더 도움이 되었다. 6월 10일을 파종기로 잡은 것은 그 다음날인가 다다음날 비가 온다고 해서이다. 심은 뒤 비를 한 번 맞히고, 다시 사나흘 뒤에 비가 내려서 아주 좋았다. 과연 두 번 비를 맞히고 난 다음날 밭에 가보니 막 고개를 디밀고 나오기 시작했더라. 



두 번 비를 맞은 다음날의 콩. 어김없이 올라오고 있다. 모든 생명은 어릴 때 가장 이쁘다. 그건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마찬가지다. 11년째 텃밭 농사를 짓지만 해마다 새롭고, 늘 보는 싹들이지만 늘 어여쁘다. 위 사진을 보라! 너무너무 예쁘지 않은가? 너무나 경이롭지 않은가! 



넷째, 은폐엄폐가 중요하다. 낙엽이 있으면 낙엽으로, 풀이 있으면 풀로 잘 덮어서 새들이 찾지 못하도록 하라. 덮개는 이후 콩이 자라서도 흙이 그대로 노출되지 않게 해줌으로써 콩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콩의 본잎이 나올 때까지는 떡잎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다. 본잎이 나오면 새들이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다. 본잎이 나올락 말락 하는 그 순간에 떡잎이 가지고 있는 양분을 먹으려고 덤비는 것이다. 그러니 콩을 심고 덮개로 잘 덮어 놓으면 그 밑에서 콩이 서서히 밀고 올라와서 세상에 나타났을 때에는 이미 본잎이 나와 있는 상태가 된다.   


콩들이 덮어놓은 풀을 뚫고 나왔다. 이렇게 본잎이 나온 상태로 나오기에 새들도 더 이상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엉성하게 덮어 본잎이 제대로 나오기도 전에 노출되는 떡잎들이다. 또한 그렇다고 너무 두껍게 덮으면... 콩들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길쭉하게 웃자라 버리니 주의하라.




모든 농사가 그렇듯이 쉬우려면 한없이 쉽고, 어려우려면 한없이 어렵다. 때를 알고, 땅을 알고, 일머리를 알면 이것보다 쉬운 일이 없다. 옛말처럼 "하늘의 때를 알고, 땅의 이로움을 알며, 사람의 일을 다한다"는 자세랄까.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면 역시나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자신의 맡은 바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아무리 기후가 안 좋아도, 흙이 안 좋아도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래도 안 된다면, 그건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의 일을 다하지도 않고 무언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 아닐까?

  


마지막까지 노심초사하게 만든 콩. 다른 콩보다 너무 늦게 나와서 새들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루이틀만 버티면 강한 햇살을 받아서 얼른 본잎을 낼 텐데 그 사이에 새들이 찾아올까봐 걱정한 것.



하늘도 무심하지 않으신지 걱정했던 콩이 하루 만에 강렬한 햇살과 함께 광합성을 하여 색도 푸르러지고 본잎도 삐죽이 비집고 나왔다. 물론 새에게 먹히지도 않았고. 고맙습니다. 잘 커라. 내 계속 지켜보마. 아이만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크는 것이 아니다. 생명이라면 어떤 것이나 관심과 사랑을 먹으며 소통하면서 자란다.



밭에 다가가자 푸드드득 비둘기 한 마리가 밀밭에서 날아오른다. 아마 여기 떨어진 밀 이삭이라도 주워먹고 있었나 보다. 콩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니 그걸 건드리기보다 여기서 먹을 걸 찾는 게 더 이득이란 걸 알았던 게다. 그래, 이런 이삭이라면 내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 여기서 놀아라. 이렇게 밭에 다양한 작물들이 자라니 새도, 벌레도, 미생물도, 그리고 사람도 다양하게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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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직파재배.pdf



1. 직파재배란?

○ 씨앗을 논밭에 바로 뿌리는 직파는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농법
* 매우 오래된 안정적인 농법임에도 이앙재배에 비해 쌀 수량이 낮고 품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으로 소외
○ 최근 수입 쌀과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자급률을 높이고, 수출까지도 확대하기 위한 생산비 절감 기술로 다시 관심
* 이앙재배 대비 노동시간 35% 단축, 생산비 8% 절감, 순수익률 5.8%P 상승

2. 직파재배 기술의 가치
○ (식품산업 발전) 가격은 낮추고 품질은 향상시킨 국산 쌀을 이용한 가공식품의 경쟁력을 높임
○ (관련 산업 동반성장) 수입에 의존하는 조사료(풀사료)를 대체할 사료용벼 생산을 통해 국내 축산농가의 경영비 부담을 경감
○ (수출산업 육성) 규모화된 경영체 탄생을 유도할 수 있는 기술로 가격 경쟁력 확보를 통해 쌀 수출 가능성 확대를 기대
○ (농업분야 탄소저감) 직파재배 면적의 점진적 확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과 대규모 쌀 산업의 공익적 기능을 유지하는데 기여

3. 시사점
○ 인구의 고령화, 농업종사인구의 감소 등을 고려할 때 생산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쌀 생산방법의 연구는 국가적인 과제
○ FTA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국·중국 등에 비해 열악한 생산환경 및 생산성을 향상시킬 연구의 필요성이 점차 높아짐
○ 규모화 영농 추진 사업과 농업부문의 탄소저감을 위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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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을 심는 방법에는 크게 씨를 바로 심는 법과 모종을 길러서 옮겨심는 법이 있다. 

앞의 방법을 곧뿌림(直播)이라 하고, 뒤의 방법을 옮겨심기(移植)이라 한다. 


둘의 장단점은 명확하다. 

옮겨심기는 생육기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아무래도 좀 병해충의 공격을 받기 쉬운 초기의 자람새를 좋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농사를 처음 짓는 사람에게는 씨를 그대로 심는 것보다는 이 방법을 권한다. 

곧뿌림은 노동력과 수고가 적게 들고, 관리에 크게 어려움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초기의 자람새가 안 좋을 가능성이 높아 위험도 뒤따른다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 모종을 옮겨심는 방법의 단점은 옮겨심은 뒤에도 관리에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래와 같은 뿌리의 차이에서 야기된다. 

 


왼쪽 것이 모종을 옮겨심은 배추이고, 오른쪽이 씨앗을 그대로 심은 배추이다. 

윗부분이야 그렇다 치고, 아래로 눈을 돌려 뿌리를 보자. 어떠한가? 차이점이 눈에 보이는가?


모종은 곧은뿌리(직근)가 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곧뿌림한 배추는 곧은뿌리가 그대로 살아 있으며 실뿌리가 엄청나게 발달했다.

그래서 씨앗으로 직접 심은 배추는 초기에 김매기만 좀 신경쓰면 물을 준다든지 하는 수고로움을 전혀 하지 않아도 자기가 뿌리를 알아서 뻗어 살아간다. 

그러나 모종을 옮겨심은 배추는 아무래도 이사를 왔기에 초반에는 새로운 흙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물도 주고 세심하게 관리를 해줄 필요가 생긴다. 

물론 씨앗으로 심었다고 초기에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씨앗으로 심은 것들은 초반에 벌레들에게 야들야들한 좋은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결론은 두 가지 방법 가운데 자기한테 더 알맞고 좋은 걸 택하란 말이다. 

나는 게으르기에 씨앗을 심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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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마지막에 옮겨심은 고추. 

 

 

다음은 가장 먼저 옮겨심은 고추.

 

 

 

마지막으로 직파한 그 상태로 자라는 고추.

 

큰 비바람이 불었던 날이 며칠 이어졌다. 그리고 밭에 가보니 고추의 차이가 눈에 보인다.

곡우 무렵 줄뿌림으로 직파한 고추를, 2번 솎으면서 아까워서 빈 밭에 옮겨심었다.

그 결과 직파한 상태 그대로 자라는 고추는 전혀 비바람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첫 번째로 옮겨심은 고추는 살짝 기울어지고, 가장 늦게 가장 큰 상태에서 옮겨심은 것은 기우뚱하다.

역시나 직파의 힘은 대단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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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째 씨를 받아 심고 있는 고추인 안산초의 꽃입니다.

씨로 심어서 모종을 낸 고추와 달리 이제야 꽃이 하나둘씩 피고 있습니다.

장마비를 양분으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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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를 직파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자랄지 자못 흥미진진합니다.

이제 바로 봉수골 밭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씩 돌아보고 가야겠습니다. 

 

 

하늘은 하루종일 흐리다 잠깐 햇빛을 보여주었습니다.

참 멋진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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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년째 고추를 곧뿌림하고 있습니다. 처음 고추를 씨로 심으려고 생각한 것은 귀찮아서 그렇습니다. 모종을 가져다 심기도 그렇고, 나중에 버팀대를 꽂고 줄을 매는 것이 너무너무 귀찮아서, 한 마리도 게을러서 그렇지요. 굳이 더 그럴싸한 핑계를 댄다면, 버팀대도 그렇고 줄도 그렇고 이건 썩는 것이 아니니, 나중에 처리하는 문제가 골치 아팠습니다.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면, 곧뿌림은 처음에만 신경 써서 김을 매주면 나중에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작은 규모에서나 추천할 만하지, 돈벌이로 많이 짓는다면 힘들 겁니다. 그래도 수확량을 따지지 않는다면, 투입하는 기운이나 비용에 비해서 괜찮은 방법입니다. 특히 작물 고유의 힘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지요.


먼저 심는 때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난해나 올해나 곡우 무렵에 심었습니다. 고추는 더운 나라가 고향이라 서리를 맞으면 그대로 죽기에 늦서리를 피하려고 그때를 택했습니다. 그때 심으면 보통 스무날에서 한 달쯤 지나야 싹이 나니, 양력으로 5월 중순 이후라서 서리 맞아 죽을 걱정은 없습니다. 고추는 달이 한 바퀴쯤 돌아야 합니다. 이걸 동광원 원장님은 “고추는 매운물이 빠져야 싹이 난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참 감칠맛나지요.

지난해에는 씨를 얻어 심어서, 싹이 나는 문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믿고 기다렸지요. 그런데 올해는 손수 받은 씨를 심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처음 받아보느지라 제대로 씨를 받았는지 미심쩍었습니다. 특히 이게 심은 지가 언제인데 한참이나 소식이 없어, 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 못 참고 살살 파 보기도 했습니다. 몇 번을 그러다 포기를 할 때쯤, 씨에서 삐죽 싹이 나온 걸 봤습니다. 그때의 기분이란 뭐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거 안 파봤으면 다 났을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이밀더군요.


잠깐 딴 길로 새서, 고추씨를 받으려면 보통 맏물 바로 그 다음 것이 좋습니다. 형만한 아우가 없는 것일까요? 맏물도 괜찮기는 한데, 그 다음 것이 더 좋다고 합니다. 고추씨를 받으시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피해야 할 것은 끝물입니다. 끝물은 어떠한 작물이든지, 씨로는 별로 좋지 않다고 합니다. 늦둥이가 천재 아니면 바보라는 말과 통하지 않을까 합니다.


심는 방법은 처음에는 줄뿌림을 했습니다. 그런데 관리하기가 참 힘들더군요. 앞에 말씀드렸듯이 곧뿌림할 때는 처음 풀을 잡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나 5월이면 온갖 풀들이 싹을 내서 자랄 때이니 더 그렇습니다. 그때 제대로 풀을 잡지 않으면, 고추가 힘을 받아 팍팍 크지 못합니다.

그래서 올해 선택한 방법은 점뿌림입니다. 점뿌림할 때는 그 부분의 흙을 살짝 걷어냅니다. 그리고 한 번에 팍 넣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두께 하나 정도 간격으로 띄엄띄엄 뿌립니다. 저는 그렇게 한 구멍에 10알씩 넣었습니다. 그리고 흙을 살살 겉에만 슬쩍 덮습니다. 더 좋은 것은 잘 삭은 두엄을 살짝 덮어주는 것입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씨를 제대로 받았다면 모두 싹이 날 겁니다. 올해 제가 받은 씨는 좀 시원치 않아서 그런지 6~7개 정도만 싹이 텄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대가 끊기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습니다.


관리는 처음에 풀을 잡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때만 잘 돌보면 이후에는 별 걱정 없습니다. 태풍이 몰아치지 않는 이상 잘 쓰러지지도 않고, 바람이 특히 세게 분다고 해도 주렁주렁 고추를 달고 있지 않으면 그대로 버팁니다. 대신 비가 많이 오면 걱정입니다. 비가 많이 와서 땅이 물렁거리면 스르륵 기울어지기는 합니다. 그러면 그냥 제대로 세운 다음, 발로 꾹 밟아주면 다시 삽니다.


그런데 문제는 풋마름병입니다. 비가 많이 와서 땅이 무르고, 더구나 바람이 불어 기울어지면 그 틈새로 뿌리에 세균이 들어가는지, 지난해도 그렇고 올해도 풋마름병이 꽤 왔습니다. 풋마름병을 찾아보니, 계속 고추만 심는 하우스나 질소질이 많으면 발생한다고 하네요. 노지에서도 드문드문 걸리구요. 제가 거름을 별로 쓰지 않으니 질소질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같은 땅에 이어짓기하는 것도 아닌데 왜 풋마름병에 잘 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추측하기로는 앞의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흙이 아직 좋지 않아서 비만 오면 질척거리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 같습니다. 물이 잘 빠지는 살아있는 좋은 흙이라면, 풋마름병도 걱정할 것이 아닐 겁니다.


풋마름병 말고 세균성점무늬병이 올해 처음 생겼습니다. 아마 올 여름이 뜨겁고 습기도 많아서 그럴 겁니다. 다음에는 잘 삭혀놓은 2년 묵은 두엄을 넣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그렇다면 이거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일 겁니다.

그밖에 고추에 많은 탄저병, 돌림병, 흰가루병, 입고병, 모자이크병, 겹둥근무늬병, 젖곰팡이병, 무름병은 아직 한 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고추에는 뭔 병이 이렇게 많은 걸까요. 쭉 늘어놓고 보니 징그럽게 많네요. 아마 이거 말고도 더 있을 겁니다.


벌레는 진딧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뭐 고추만 심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다른 작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으니 그럴 겁니다. 아, 담배나방이 파먹는 것은 조금 있습니다. 그네들이 먹는다는 게 속상하기 것보다, 이 매운 걸 어떻게 그리 잘 먹는지 그게 더 신기합니다. 그래서 그건 너희들 먹으라고 놔둡니다. 그럼 알아서 떨어지지요. 그렇게 떨어진 놈들 가운데 씨가 여문 것이 있어서 그런지, 지난해 고추를 심었던 밭에서 저절로 고추가 자란 것을 보고 참 신기했습니다. 안철환 선생님은 올해 초겨울에 고추를 심는 걸 실험하신다고 하는데, 이걸 보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간 관리 가운데 가장 귀찮은 버팀대 박기와 줄매기에서는 완전히 해방입니다. 순지르기도 거의 손보지 않아도 됩니다. 씨가 그래서 그런지 모종으로 심는 것보다 곁순도 별로 나지 않습니다. 매끈하지요.


자람새는 모종으로 심은 것보다 좀 느립니다. 그것들은 비닐집에서 어느 정도 자란 뒤 5월 초에 옮겨 심어서, 곧뿌림한 것이 막 싹이 날 무렵 모종들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입니다. 씨로 심은 것들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자라면, 오히려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무섭게 자랍니다. 그럴 때 비라도 한 번 내려 주시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렇게 손가락 하나 정도 자라면 1차로 솎아줍니다. 잘 자란 것들 3~4개만 남기고 솎아줍니다. 그렇게 솎은 것은 그냥 나물로 먹으면 됩니다.

다음에는 한 뼘 정도 자라면 한 그루에 한 포기만 남기고 솎으면 됩니다. 그때 솎은 것들을 보면, 곧뿌리가 쭉 뻗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모종한 것과 비교하려고 뽑아보니, 모종은 옆으로 잔뿌리만 뻗었더군요. 반면 씨로 심은 것들은 길쭉한 뿌리가 쭉쭉 뻗어 있어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이 뿌리의 차이가 자라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이 조금은 작물 관리에 서툴고 소홀하신 주말 텃밭 회원분들의 고추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자란 뒤에는 그분들 고추보다 씨로 심은 제 고추가 더 튼튼하고 기세가 좋았습니다. 뭐 관리를 잘하시는 분들이 웃거름주고 목초액이다 뭐다 주고 하시면,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말이죠. 그런 고추들이 붉게 변할 때 이제 풋고추가 달리기 시작하니 말 다했지요. 그러니 수확량에서는 큰 차이가 날 겁니다. 하지만 투입과 수확이란 면에서 보면,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습니다. 둘이 먹고 냉장고에 꽉꽉 재워놓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추와는 키에서도, 열매가 달리는 것에서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제가 심은 건 한 50~60cm정도 자라나? 거름도 밑거름 말고 안 주고, 다른 관리도 안 해서 그런지 거기서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아마 자기가 자랄 수 있는 만큼만 알아서 크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만큼 깊이 뿌리를 내렸으니, 위로는 어느 정도 자라면 되겠다 계산하는 것이 아닐까요? 열매도 그렇습니다. 지가 버티고 서 있을 정도만 달립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늦게까지 꽃이 피고 달리는 건 아닙니다. 알맞은 때 꽃도 더 이상 피지 않고, 매달린 것들이나 붉게 만들고 맙니다. 그러니 수확량에서는 반이나 될까요? 엄청 차이가 납니다.


모종과 곧뿌림의 가장 큰 차이는 뿌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쭉 뻗은 곧뿌리를 내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위로 얼마나 자라는지 얼마나 열매가 많이 달리는지를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곧뿌리를 내린 것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알아서 자라고, 알아서 열매를 맺습니다. 하지만 모종으로 심은 것은 거름을 주는 대로 잔뿌리로 쪽쪽 빨아먹고, 위로 쑥쑥 자랍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은 따지지도 않고, 그냥 막 자라고 봅니다. 모종을 옮겨심으려고 몇 번 옮기면서 곧뿌리를 끊는 것이, 거름을 쪽쪽 빨아 먹는 잔뿌리만 무성하게 합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버팀대를 세워야 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위로 자라는 것에 맞춰 줄도 매줘야 합니다. 이래저래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모릅니다. 그러고는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열매를 맺습니다. 이러다가는 내가 살지 못하겠다고 느껴서 그럴까요? 오염된 곳에서는 소나무도 솔방울을 많이 맺듯이, 고추도 열매를 많이 맺는 것 같습니다. 농사는 적당히 죽지 않게 식물을 괴롭혀서 수확을 많이 얻는다는 말이 들어맞습니다.

하지만 씨로 심는 것은 곧뿌리가 자기 몸을 지탱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알맞은 만큼 열매를 맺습니다. 뿌리가 살아 있느냐 아니냐가 이런 차이를 만드는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추측하고 상상할 뿐입니다. 그러니 믿지도 마시고, 너무 부정하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것이 제가 선택한 고추 농사 방법입니다. 누가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키우느냐에 따라, 그것들도 그 사람을 따라갑니다. 제가 심은 것들은 저를 닮아서 늦게 싹이 나고, 더디게 자랍니다. 지난해 가을 충북 보은에서 발바리 한 마리를 얻어다 키우고 있습니다. 이놈이 타고난 성질이 그래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버릇을 잘 들이고 길을 잘 들여서 지금은 함께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낑낑대고 아무 데나 똥오줌을 싸고, 아무튼 같이 살면서 부딪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열 받고 속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내 방식대로 이놈을 끌고 갈 것이 아니라, 이놈의 생리와 습성을 파악해서 살살 몰고 가야겠다. “주는 나를 키우시는 목자”라는 말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개는 어떤 동물인지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니 ‘아 이놈이 그래서 이랬구나’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 습성을 이용해서 나와 함께 살 수 있도록 할지 고민하고, 생활 속에서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차츰 서로 적응하고, 함께 살 수 있었습니다. 자연히 속 썩고 열 받는 일도 사라지고, 이해하고 양보하고 타협하여 어울려 살게 되었습니다. 개를 키워보니 식물을 키울 때와는 참 달랐습니다.

그러다 식물을 키우는 일을 돌아보았습니다. 아, 식물도 그렇겠구나. 동물이나 인간처럼 우리와 직접적으로 감정을 나누고 소통할 수 없어서 그렇지, 이놈들도 동물이나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뭐 고추를 씨로 심으려고 한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저 어떻게 하면 손 좀 덜 가고, 거름 좀 덜 주고 귀찮지 않게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선택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니들도 니들이 자라고 싶은 방향이 있고, 나도 니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니 서로 적당히 타협하자. 니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나도 맛있게 잘 먹으며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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