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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 살면서 5년 만에 오늘 처음으로 청룡사에 갔습니다.

성태산 밑자락에 자리한 이곳은 현재 안산1대학의 뒷편입니다. 이곳까지는 자가용으로 갈 수도, 걸어갈 수도, 301번을 타고 갈 수도 있습니다. 헌데 301번을 타려면 요금이 1500원(카드로)이나 하니 조금 아깝군요. 멀리서 오신다면 상록수역에서 슬슬 걸어가셔도 됩니다. 15분이면 충분합니다.

 

안산1대학 옆쪽의 안골길이란 곳으로 쭉 들어가면 청룡사 표지판이 나옵니다. 

 

이 절이 생긴 지는 50년 정도일 거라 추정합니다. 그걸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절 주변에 서 있는 송덕비에 있습니다. 그 송덕비에 따르면, 의림이공진환선생송덕비義林李公鎭煥先生頌德碑라고 적혀 있습니다. 당연히 이진환이란 분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이지요. 그 뒷면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원래 이곳 일동一洞 안산1대학을 둘러싼 일대는 인근의 수리산에서 산세가 시작하여 명당 자리로 알려져 왔겄다. 그래서 예전에는 구룡九龍골이라 불리었으니, 아홉 용이 여의주 하나를 둘러싸고 꿈툴거리는 형상의 지세地勢인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조선 말기쯔음 이곳에 타성붙이들이 슬그머니 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디! 아마 철종 때부터 안동 김씨들이 여그를 장악하면서 오랫동안 여그의 대성大姓인 이씨 집안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 송덕비의 주인공 의림 이진환 선상이 외지에 나가 사업에 크게 성공해부렸지. 아마 건축가로 60년대 이후 군사정권의 국가발전계획과 대규모 건설사업에서 엄청난 실적을 쌓았지. 그래서 이 선생이 자기가 번 큰돈으로 안동 김씨에게 빼앗겼던 땅을 다시 사들이고, 청룡사라는 절까지 지어서 부처님께 바쳤다고 하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요.

 

헌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로는 안동 김씨의 묘지를 이장해 가라고 공고를 냈는데도 옮기지 않은 무덤은 그냥 파서 골짜기 어느 한곳에 모다서 화장했다고 하네요. 또한 안동 김씨 세력을 약하게 하려고 마약을 풀기도 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돕니다. 그런 걸로 봐서 뭔가 평탄하게 일이 추진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아무튼 안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절이니 한 번 찾아볼 만합니다.

 

청룡사에 오르면 안산이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바로 앞의 큰 건물이 안산1대학, 앞산이 구룡공원이 자리하고 있는 구룡산입니다. 그러니 거기부터 여기까지 구룡골이라 불린 것이지요. 왼쪽으로 보이는 아파트의 물결은 원래 바다였을 것입니다. 맑은 날 오르면 산세까지 훤히 볼 수 있을 테니 더 좋겠네요.

 

 

이곳에는 200년 가까이 된 느티나무도 서 있습니다. 일동에 있는 보호수가 어디에 있나 했더니 여기에도 한 그루 자리잡고 있었네요. 그 옆으로는 잘 어울리게도 산신각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이 성태산의 산신께서 굽어살피시고 계십니다.

성태산은 한자로는 城台山이라고 합니다. 성이란 뜻과 별이란 뜻이지요. 왜 그런지 몰라도 일동 쪽에는 별과 관련된 한자 지명이 많습니다. 제가 사는 점성占星골도 그렇고 이곳의 태台도 그렇습니다. 점성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여러 의견이 많습니다. 이곳이 바닷가였던 만큼 큰 무당이 많았고, 그래서 점을 치는 사람이 많다는 뜻에서 점섬(占島)이라고도 하고, 별을 보고 점을 치던 곳이라고 점성占星이라 하기도 하고, 저는 한때 점심을 먹는 곳이라 점섬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이상 제대로 기록된 문헌자료도 없어 알기 힘듭니다. 원래 부르던 지명도 한자로 옮겨적으면서 본뜻이 흐려진 경우도 많구요. 지명을 제대로 추적하려면 고어도 많이 알아야 하기에 어렵기만 합니다. 어쨌든 일동에는 별과 관련된 지명이 참 많습니다. 제가 이 동네 사는 것도 다 그런 뜻이 맞물린 것은 아닐지...

 

150년된 느티나무. 안산의 보호수는 대부분 이 정도 나이입니다. 수암 쪽은 역사가 깊은 만큼 더 오래된 나무가 몇 그루 있지요. 하지만 철저한 개발 도시 안산의 다른 곳에서는 100~200년 정도 된 나무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그런 나무가 서 있는 곳은 개발에서 소외된 곳, 옛 마을이 있던 자리들뿐이지요. 그래서 더더욱 노거수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현재 보호수로 지정된 노거수는 20그루 정도인데 더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저 혼자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나무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어울려 그늘도 주고 푸르름과 단풍도 안겨 주는 나무로요.

 

나무 뒤편으로는 산신각 바로 옆에 조그만 제각이 또 하나 있습니다. 거기에서 무슨 제사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시간에 쫓겨 무엇 때문에 준비하고 있는지 물을 새도 없이 후다닥 산으로 올랐습니다. 

 

 

처음 오르막길이 가팔라서 그렇지 그 길만 올라서면 오르기 쉬운 길이 이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태산은 150m 정도의 작은 산이기 때문이지요. 보통으로 걸을 수 있기만 하다면 산책길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옛 산성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전에 안산문화원장을 했던 분께서 성태란 이름에서 성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이곳을 뒤져 찾아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돌이 많구나'라고 생각하고 지나갔을 곳인데, 아는 사람에게는 그런 게 보이나 봅니다. 

 

성태산 정산 부근에 굴러다니는 성벽의 돌들. 그냥 돌이 많은 곳 아니야? 라고 생각하신다면 오산. 이 돌들로 성벽을 쌓았다고 한다.

 

이 산성은 그 축성 양식으로 보아 신라의 축성 기술이라고 합니다. 신라가 중국과 교역하는 통로를 확보했을 무렵 쌓은 것인가 봅니다. 허나 그 규모로 보아 전투를 위한 성이라기보다는 감시초소 정도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이 서해를 감시할 수 있는 전략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저기 현재 열병합발전소가 서 있는 곳의 별망성이 그렇고, 잿머리 성황당이 그렇고, 모두 서해를 감시하고 방어하기 위한 목적의 장소였습니다. 이곳도 그 연장선이 아닐까 합니다. 혹시 군포의 봉수골과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안산이 중요한 해안 방어 기지이자 수산물 생산 기지였을 당시의 모습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게 몇 장의 사진을 볼까요.

 

아래는 노적봉에서 본 고잔동 쪽의 모습입니다. 아파트가 가득 들어선 곳 모두 물이 들고나는 바다였습니다. 상상할 수 있으신가요?

 

롯데마트를 중심으로 시선을 조금 더 왼쪽으로 옮겼습니다. 군데군데 불쑥불쑥 솟은 산 말고 바닥은 모두 바닷물이 들고나는 곳이었을 겁니다. 이것이 그대로 일동까지도 이어졌겠지요.

 

 

아래는 잿머리성황당에서 바라본 시화공단의 모습입니다. 물론 이곳도 모두 바다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일동, 성포동 쪽보다는 더 드넓은 바다였지요. 이곳에서 지나다니는 배를 감시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제일골프장 뒷산에 올라 찍은 것입니다. 높은 건물이 들어선 곳은 원래 다 바다였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그럼 대략 지형이, 그리고 바다가 머릿속에 그려지시지 않나요?

 

아마도 아래와 같은 모습이었을 겁니다. 물론 산세가 더 이어져 있었을 테고, 그래서 바다가 이만큼 넓지는 않았겠지요. 이 사진은 탄도에서 바라본 누에섬입니다. 지금은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다고 하네요.

 

 

성벽이었던 돌무더기를 보고 살살 걸어가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 오른쪽은 반월저수지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난 길을 택해 조금만 걸어내려가면 점성고개가 나옵니다. 그곳에는 아래와 같은 표지판이 서 있지요.

 

 

네, 이곳에서 수암봉까지 걸어갈 수도 있고, 바람들이 농장까지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냥 중앙병원 쪽으로 내려가도 되고, 반월저수지로 가도 괜찮지요. 선택은 자유, 마음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십시오.

 

 

 위 사진을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보이시나요. 한 1km 정도 15분 거리라고 나옵니다. 길게 잡아도 20분이면 청룡사에서 점성고개까지 갈 수 있습니다. 가까운 쉬는 날, 날이 좋으면 한 번 걸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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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안산의 답사 모임을 따라 잿머리성황당에 갔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화려하거나 옛모습 그대로이지는 않았지만,

안산에 아직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고려의 서희가 사신으로 가는 길에 풍랑이 심해 잠시 안산에 머물 때 꿈에 나타난 신라 경순왕의 한을 풀고자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동기야 어떻든, 이곳에 오르면 한눈에 서해를 조망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전략적 가치와 바다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의 안녕과 풍요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오색 천에 묶어 놓은 명태가 아직도 그 염원을 풀지 못하고 바다를 향하고 있습니다. 

 

잿머리성황당에서 내려다본 시화공단. 지금은 대규모 공장부지이지만, 원래는 고깃배며 조운선 들이 바삐 오가던 중요한 길목이었다. 안산의 초지동은 원래 초지진이 있던 곳으로서, 이후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면서 강화도로 옮기었다. 안산 공과대학 근처의 둔배미는 그 초지진을 지키던 수군이 농사짓던 둔전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도 그 길을 지나다보면 너른 들을 볼 수 있다.

 

 

반야 님의 말씀에 따라 그날 사진 몇 장을 더 보여 드리겠습니다.

먼저 아래는 별망성지입니다. 간척 이전의 귀한 사진이지요.

별망성은 잿머리성황당이 있는 곳과 함께 바닷길의 중요한 길목이었습니다.

열병합발전소인가 하는 건물이 현재 저 볼록 솟은 곳에 서 있습니다.

지반이 약한 곳에는 세울 수 없기에 원래 있던 땅을 밀어 버리고 세웠습니다.

요즘 성포동 홈플러스 옆에 있는 수자원공사 앞에서는 옛 별망성 포구의 어부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시 안산이 개발되면서 돈 한 푼 보상받지 못하고 밀려나서 항의하고 있답니다.

 

 

 

다음은 사리포구입니다.

저는 안산에 2005년에 들어와 어디인지, 어떤 곳이었는지 전혀 모릅니다.

다만 간척으로 사라지기 전 사리포구에 들락거린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횟집이 많았다는 이야기, 새우젓이 좋았다는 이야기 ......

저 멀리 오른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별망성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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