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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쇼유 라멘



일본이 2차대전에서 항복했을 때 폐허가 되었다. 미국의 폭격으로 200만 채의 건물이 파괴되거나 부수어지며 굶주린 일본인들은 식량을 점점 암시장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도시의 암시장에서 라멘은 일본 요리의 중요한 부분으로 떠올랐다.  

Japan Quarterly에 의하면 라멘은 중국 이민자들이 19세기 들어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했는데, 원래는 중국식으로 구운 돼지고기를 얹은 국수였다. 1945년 12월, 일본은 42년 만에 최악의 벼 수확량을 기록했다. 조선(원문엔 중국인데, 중국은 일본의 식량생산기지의 역할을 한 적이 없기에 글쓴이의 오류라 생각하여 조선으로 고쳤음)과 타이완의 전시 식민지에서 발생한 농업 손실로 인해 쌀 생산량이 급감했다. 이는 일본의 쌀에 기반한 식문화에서 밀 국수가 중요해진 요인이었다.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한 뒤, 미군은 1945-1952년까지 이곳을 점령했따. 식량난에 직면하여 미국인들은 엄청난 양의 밀을 일본으로 수입하기 시작했다. 1948-1951년까지 일본에서 빵 소비는 26만2121톤에서 61만1784톤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밀은 대부분의 일본인이 암거래 음식 노점상에게서 먹었던 라멘으로 흘러갔다. 일본에서 암시장은 전쟁통에 존재해 왔다. 그러나 전쟁의 마지막 몇 년 동안과 점령 기간 동안 점차 매우 중요해졌다. 정부의 식량배급 체계가 예정보다 20일 늦게 운영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암시장에 의존했다. 


도쿄 신바시의 암시장, 1946년


1945년 10월까지, 도쿄에는 약 4만5천 개의 암시장 매대가 존재했다고 추산된다. 또한 도쿄는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암시장인 아메요코쵸Ameyokocho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도시 중심의 철로 아래에 위치한 이곳은 사탕부터 라멘과 옷까지 모든 걸 파는 노천의 진열대로 가득 찼다. 이런번잡한 환경에서 노점상은 특유의 차르멜라라는 피리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국물과 물을 끓이는 냄비와 함께 국수가 담긴 서랍을 지닌 바퀴 달린 음식 카트인 야타이에서 라멘을 팔았다. 미국산 밀과 돼지기름이 풍부하여 가격도 저렴했다. 

그 당시, 점령 기간 동안 식당에서 음식을 사고파는 건 불법이었다. 이는 배급을 통제하려고 일본 정부가 전시에 시행하던 야외의 음식 노점 금지를 미국인들이 계속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멘을 만드는 밀가루는 제분업체에서부터  노점상에게서 보호비를 강탈하던 야쿠자가 길거리 매대의 약 90%를 통제하던 암시장으로 비밀리에 보내졌다. 점령 기간 동안 수천 명의 라멘 노점상이 체포되었다. 


상품을 몰수하는 경찰, 1949년.


하지만 1950년, 정부는 음식 노점상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밀가루의 거래에 대한 통제를 없애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라멘 노점의 수는 더욱 증가했다. 기업들은 국수와 고명, 그릇, 젓가락까지 갖추어진 야타이 완점품을 노점상에게 임대하기까지 했다.  

오늘날 팔리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라멘과 달리, 당시의 라면은 간단했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오사카나Osakana에서 라멘 요리를 강습하는 Jonathan Garcia에 의하면, 이 시기에 라멘은 쇼유(간장)에 기반한 국물에 돼지고기, 닭고기, 니보시niboshi (말린 정어리)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양념을 하는 건 국물 냄비에 섞었고, 노점상은 하루종일 그걸 보충했다. 요즘 라멘은 국물을 붓기 전에 쇼유나 다른 재료와 함께 개별적으로 양념을 한다. 

지방과 강한 풍미가 풍부한 음식은 “보양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라멘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역사(Untold History of Ramen)>의 저자인 교수 George Solt 씨는 말한다. 라멘은 전통적인 일본 요리인 해초에 기반한 자극적이지 않은 국수 국물과 아주 달랐다.  코베 야마테 대학에서 일본의 전통 식문화 교수이자 일본 음식에 대한 글을 쓰는 오쿠무라 아야오Okumura Ayao 씨는 예전 1953년 처음으로 라면을 먹고 충격을 받았는데,  “이 국물을 먹고는 더 커지고 강해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라면을 파는 야타이


미국인들도 밀과 동물성 단백질의 영양학적 우수성을 적극 홍보했고, 라멘은 영양가가 높다는 신망을 얻으며, 배급에 지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불경기에 라멘 야타이를 운영하는 일은 소규모 창업이 아직 가능했던 몇 안 되는 기회 가운데 하나였다. 폭격을 당한 도시에서 노동자 계급이 야타이 주변에 모여 라멘을 먹으면서, 점차 라멘은 도시의 생활과 연관이 되었다. 

라멘은 아마 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일 것이다. 도쿄에만 약 5천 곳의 라멘 가게가 있다. 그러나 경제적 필요성, 미국의 밀, 중국 요리의 영향이란 과거의 조합이 라멘을 주류로 나아가게 했으며, 이후 일본이 먹는 방식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how-did-ramen-become-popu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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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요즘 길거리에서 먹을거리를 찾는 운동이 시작되고 있는 모양이다.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자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는 그냥 풀이라 부르며 지나치던 식물을 캐서 먹는 운동인가 보다.  


그렇다. 우리는 예전부터 '나물'이란 이름으로 먹어오던 그 식물들 말이다.

몇몇 나물은 너무 사람들이 열광한 나머지 남획하기도 하는 그것 말이다.

외국에서는 한국인의 이런 습성 때문에 함부로 나물을 캐지 못하도록 하는 법까지 마련했다고 하는 소식이 들리기도 하는 그것 말이다.


그래도 요즘 한국에서 '잡초'를 먹을거리로 먹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한번 보고 되새길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참, 우리에겐 변현단 샘이 앞장서고 있지.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는 좋은 입문서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iLF4f472n5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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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6100년 전 음식에 사용된 양념의 흔적이 발견돼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양념 사용 기록을 갈아 치우게 됐습니다.

미국 NBC 방송은 영국 요크대학 과학자들이 덴마크와 독일의 신석기 시대 유적 세 곳에서 발굴된 6천100년 전 토기 여덟 개에서 음식 찌꺼기와 함께 `마늘겨자'로 불리는 허브 씨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연구진은 마늘 냄새를 풍기는 마늘겨자 씨앗은 짙은 향을 내도록 빻아서 음식과 섞여 조리된 게 분명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통째로 발견된 씨앗은 없고 모두 빻은 상태였다면서 고대인들의 조리 방식대로 고기에 마늘겨자를 사용하자 잘 어울리는 맛이 났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유럽 남부와 중동, 인도 등지에서 더 오래전에 사용된 큐민이나 코리앤더, 케이퍼 같은 향신료의 흔적이 발견되긴 했지만 약용이나 장식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번에 발견된 마늘 겨자 씨앗은 고대 음식에서 양념이 사용된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연구진은 식물 세포가 남기는 규산염의 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120개 종의 식물 화석과 대조해 그릇 안에 남은 것이 마늘겨자의 성분임을 밝혀냈다고 전했습니다.     



과학자들이 선사시대 유럽인이 인도의 시장에서 판매되는 것과 같은 향신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고대 유럽의 수렵채집인들은 6000여 년 전 톡 쏘는 맛을 내려고 알리아니아(garlic mustard) 씨앗을 사용했다.

연구진은 현재 덴마크와 독일 지역에서 발견된 고대의 토기 조각에 남은 요리 잔류물에서 알리아니아 씨앗의 흔적을 발견했다. 

PLOS one에 발표된 연구결과는 요리를 목적으로 사용된 가장 오래된 향신료의 증거라고 영국 요크 대학의 고고학자 Oliver Craig 씨는 말한다. 

"냄비에서 다른 재료와 혼합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건 실제로 의도적으로 식품에 사용된 향신료이다"라고 Craig 씨는 말했다.

Craig 씨와 그의 연구진은 식물석으로 알려진 실리카의 미세한 얼룩을 발견했다. 그것은 5800~6150년 전 사이의 북중부 유럽에 있던 세 곳의 야영지에서 수집한 불에 탄 도자기 파편에 있었다.

연구진은 알리아니아에 속하는 씨앗을 확인했다. 이 식물의 작고 검은 씨앗은 영양가치는 없지만, 매운 후추맛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리아니아 식물석과 함께, 연구진은 또한 토기 조각에서 어류와 동물 -아마 사슴- 지방의 흔적을 발견했다. 아마 이 요리를 하면서 향신료로 사용한 것 같다. 


무엇이 새로운가?

고고학 기록에서 더 오래된 향신료의 사례가 알려져 있지만, 이번 사례처럼 명확하게 요리와 연관되어 있다고 알려진 것은 없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이 유적지에 남아 있는 식물을 발견하면, 그것이 자연환경에서 발생한 것인지 의도적으로 사용된 것인지 확인하기란 무척 어렵다"고 Craig 씨는 말한다.

"우리가 얻은 것은 이러한 식물을 함께 냄비에 넣고 요리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유적지에서 발견된 토기의 일부는 크고 약했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유럽의 수렵채집인들이 이동하는 동안 주변에서 획득한 것인지 의심했다. 

Craig 씨는 그들이 일년 중 이동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여러 지점에 요리 냄비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왜 그것이 중요한가?

새로운 결과는 고대의 수렵채집인들이 그들의 영양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한 음식 말고도 알리아니아 씨앗 같은 영양 가치가 없는 음식을 선택하는 도전을 했다는 걸 보여준다고 Craig 씨는 말한다.

"이는 정말 그들이 열량을 위한 음식만 찾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또한 그들은 맛과 같은 약용이나 미적 품질의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찾았던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Craig 씨와 연구진은 수렵채집인들이 그들의 음식에 알리아니아에 꽃이 피어 있을 때에도 종종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철이 돌아오면 향신료를 사용했던 것이다"라고 Craig 씨는 말한다.

연구진은 증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유럽의 수렵채집인들이 다른 향신료도 사용했을 것이라 본다.

"우리가 사용하는 증거는 대부분 현존하는 식물석이지만 늘 농도가 짙은 것은 아니다"라고 Craig 씨는 말한다. "그래서 향신료의 대부분을 이러한 기술을 사용하여 고고학적 기록으로 알아내지 못하는 것일지 모른다."


다음은 무엇인가?

연구진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나온 토기 조각도 조사할 계획이다. 

"우린 사람들이 왜 맨 먼저 토기를 발명하기 시작했는지 보기 위하여  다른 토기 조각을 조사하는 데 매우 관심이 있다"고 그는 말하며, "그리고 더 널리, 왜 수렵채집인들이 토기를 사용했는지에 관심이 있다."



http://news.nationalgeographic.com/news/2013/08/130823-prehistoric-hunter-gatherers-garlic-mustard-spices/?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utm_content=link_fb20130826news-cookspice&utm_campaign=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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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에서 5만 년 전, 인간은 불을 붙이는 방법을 알아냈다. 곧이어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듯이 인류 문명을 이끌었다는 농업을 고안하며 더 많은 식물을 길들여 먹는 데에 불을 이용하여 요리하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의 석쇠(기원전 6~4세기경)


인간이 불의 작용을 알아낸 뒤에 한 일은 뜨거운 열기에도 녹지 않는 금속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청동기 시대에 그 방법이 개발되었다. 역사학자와 고고학자 들은 우르의 거리에 있는 노점 유적에서 염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를 굽던 기원전 2300년 무렵의 유물을 발견했다. 




미국 원주민들이 나무로 틀을 짜서 불에 고기를 굽는 모습(http://www.thewoodpit.com/html/history.html).


미국의 바베큐 : 현대 미국의 야외요리는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신세계의 식민지화 또한 유럽의 전통 요리법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시켰다. 그것은 바로 바베큐이다.

석쇠구이와 좀 다르긴 하지만, 하루종일 야외에서 파티를 하던 초기의 바베큐가 현대 미국인의 축하연에서 빠질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처음에 "바베큐"라는 단어는 미국 원주민들이 불을 피워 고기를 굽는 구조물을 가리키는 영어에서 왔는데, 1660년대의 영국인들이 오늘날 우리가 알듯이 느리고 구덩이를 파서 요리하는 양식을 바베큐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나서 미국 남부에서 바베큐가 확산되었고, 이는 돼지를 구워 휴가를 보내는 표준적인 방식이 되었다.  

조지 워싱턴의 1769년 5월 27일의 일기에는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바베큐와 함께 밤새 머물르며," 카드 게임을 해서 8실링을 땃다고 되어 있다. 엔드류 잭슨 대통령도 통치 기간 동안 백악관 근처에 '바베큐 나무' 숲을 두 군데 만들었다고 한다. 이걸 돼지구이를 하는 땔감으로 썼다. 일반 시민들도 바베큐를 즐겼는데, 1898년 루이지애나에 간 작가 중의 한 명이 지역사회의 연회에서 "소를 통째로" 굽고 "양 세 마리" 구웠다고 한다. 




캠핑 요리도구 


캠핑 요리: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의 미국인 대부분에게 석쇠구이는 실내에서 하는 요리법이었다. 그러나 1900년대 초반, 캠핑과 야외활동이 대중화되었고(미국의 보이스카웃은 1910년 설립됨), 사람들이 야외에서 어떻게 요리할지에 대한 요리책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Horace Kephart 씨가 쓴 <Camp Cookery>에서는 거친 지형에서 캠핑하려는 사람들에게 크고 가벼운 프라이팬과 몇 가지 냄비와 함께 접이식 석쇠를 기본적으로 가져갈 것을 권장했다. 



1932년 10월 시판되어 인기를 끈 석쇠


최초의 현대식 석쇠: 1930년대에 야외 요리는 대중적으로 더욱 보편화되었다. 1932년 접이식 숯불석쇠라는 도구는 "캠퍼와 기타 야외 요리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며 뒤뜰 요리사가 야외 요리의 혜택을 즐길 수 있다고 선전되었다. 



1941년 8월과 1942년 7월에 시판되어 인기를 끈 석쇠들


소풍용 석쇠: 1940년대 초반에는 캠핑의 모든 허세가 사라졌고, <Popular Mechanics>은 "이동식 재받이가 있는 다리가 접히는 소풍용 석쇠"와 "외발 수레처럼 굴러가는 이동식 숯불조리기"에 대해 다루었다. 2차대전 이후 돌아온 군인들이 가족과 함께 교외로 나가기 시작하며 야외요리는 미국인의 일상이 되었다.



포드의 바베큐용 숯. 이것이 포드에서 판매한 T 모델 자동차의 공식 부속품으로 팔렸다. 



바베큐용 숯: 이 압축된 숯 덩어리(숯 안내로 가면 이것이 경재 숯과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음)는 1897년 Ellsworth B.A. Zwoyer라는 남자가 특허를 받은 것인데, 1920년대까지는 별로 유행하지 않았다. 헨리 포드가 자신의 T 모델에 폐목을 숯으로 바꾸어 싣기로 결정한 뒤부터 인기를 끌었다. 포드의 친구이자 친척이며 동업자인 E.G. Kingsford는 미시간 어퍼반도에 있는 포드 제재소 근처의 숯 공장 부지를 발견하고, 결국 도처에 킹스포드 숯이란 상표를 퍼뜨렸다(현재 미국 시장의 80%를 점유함). 토마스 에디슨은 포드와 킹스포드와 함께 캠핑 여행을 간 것으로 알려져 있고(포드가 자신의 경력을 에디슨의 실험실에서 시작한 이후 포드와 에디슨은 친구였음), 발명가는 숯 공장을 직접 설계해주었다. 

한 역사학자에 따르면. 1950년대 초반 뒤뜰 석쇠구이가 교외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에게 확산되자 킹스포드는 생산을 35%나 늘렸지만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광고를 제한했다.




판매원이 사람들에게 웨버를 사용하여 시범을 보이고 있다.


웨버(WEBER): 고전적인 미국의 숯불 석쇠는 George Stephen이란 한 남자가 처음으로 Weber를 발명한 1952년까지는 그리 유행하지 않았다. 스티븐은 시카고 외곽에 있는 Weber 형제 제철소의 용접공이었는데, 거기에서 그는 해안경비대를 위한 부표로 판금을 붙이는 일을 했다. 하루는 음식을 하다가 석쇠가 얕아 석탄재가 음식에 튀는 데에 실망하고서 부표에서 한 면을 잘라내고 다리를 달아 자신만의 석쇠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의 이웃이 이를 "스푸트니크"라고 불렀는데, 깊은 주전자 모양이라 음식에 재가 튀지 않았고 통기구를 추가하여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잘 열을 제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디자인은 빠르게 유행하였고 전국에 현대식 석쇠구이의 아이콘으로 퍼졌다. 



1957년 6월 시판된 게으른 남자 석쇠. 가스를 활용한다.


LAZY-MAN: 킹스포드의 숯, 웨버와 교외로의 이동 이후 현대식 야외요리기술이란 퍼즐의 마지막 조각은 이동식 가스 석쇠의 발명이었다. 전문적인 주방(실내의 화로)은 수십 년 동안 가스 석쇠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이동식 가스 석쇠가 시판된 것은 1954년이었다. 놀랍게도 그 도구는 LAZY-MAN이라 불렸다. 

위 사진의 광고를 보면 1957년 LAZY-MAN은 59.50달러였다. 이를 만든 회사에서 "영구적인 석탄"이라 부르는 작은 호두 크기의 도자기 덩어리가 특징이다. 가스버너가 숯불 석쇠의 열이 퍼지는 효과를 모방하여 가열하는 것이다. 추가로 70달러를 내면 사진의 오른쪽에 있는 최초의 수레 형식의 가스 석쇠를 구입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이것이 표준이 되었다.  



빅 그린 에그.


BIG GREEN EGG: 가스가 석쇠구이를 쉽게 만들고, 가스 석쇠는 1994년 숯 판매를 넘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에조차 일부 석쇠구이를 하는 사람들은 웨버보다 나은 석쇠를 바랐다. 그들은 빅그린에그 같은 걸 원했다.  

일본의 전통 세라믹 kamado 조리기는 2차대전 이후 해외에 주둔하던 군인들이 가져오면서 미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Ed Fisher(해군의관)가 1974년 Big Green Egg 기업을 시작하며 동그란 바베큐 기구를 만들면서 뜸해졌다. 굽거나 훈연하기에 모두 좋은 빅그린에그는 지난 세월 동안 광신도들이 생겼고, 빠르게 미국의 야외요리의 표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석쇠구이 안내서


석쇠구이 안내서: 웨버, 가스 석쇠, 빅그린에그와 함께 지난 40년 동안 미국의 석쇠는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물론 기술에는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고 새로운 부속품들이 나왔는데, 실제로는 구워먹는 음식에큰 변화가 일어났다. 20년 전 Bon Appetit에서 출간한 <The Grilling Book>에는 김치부터 말린 치폴레까지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가 나와 있다. 모닥불이나 바위나 GasMaster 9000이나 어디에 요리하든 석쇠에 놓는 음식이 실제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Read More http://www.bonappetit.com/blogsandforums/blogs/badaily/2013/06/american-grilling-technology.html#ixzz2VxWwLB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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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TI_풀이__212_P.doc


어마어마하고 방대한 양의 자료. 놀라지 마시길.

누굴까? 이런 자료를 만드신 분은...


ADDITI_풀이__212_P.doc
6.38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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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을 시작하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이나 식단을 개선할 계획을 세울 것이다. 우리는 식량체계를 고치기 위한 더 커다란 계획을 농민, 정책입안자, 소비자라는 더 광범위한 집단의 범위에서 구상해보자 -전 세계의 농지와 회의실과 밥상에서 장기적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변화. 이는 세계에 여전히 굶주리고 있는 10억 명과 과체중과 비만에 시달리는 그 이상의 고통을 해결할 계획이다. 우리는 도구를 가지고 있다 -2013년 그것을 사용하자!


여기 2013년 식량체계를 변화시킬 13가지 해결책이 있다:

1. 도시를 경작하자: 식량생산은 농지나 공장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약 10억 명의 사람들이 도시에서 식량을 생산한다. 아프리카 최대의 빈민가인 Kibera에서, 농민은 토종 채소의 씨앗을 심어 농촌의 농민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뉴욕의 Bell Book & Candle 식당에서, 소비자들은 로즈마리, 체리토마토, 로메인 상추 및 기타 채소를 식당의 옥상텃밭에서 기른다.

2.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자: 오클랜드의 People's Grocery와 시카고의 Fresh Moves는 신선식품을 접할 기회가 부족한 저소득층이 건강한 식품을 선택할 기회를 주고자 휴대전화 식료품점을 만들었다. 감자칩이나 탄산수 대신 그들은 그 지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저렴한 유기농산물을 제공한다.

3. 건강한 식품을 먹자: Michael Pollan 작가는 조부모님이 알지 못하는 아무것이나 먹지 말라고 조언한다. 합성보존료나 첨가물이 없는 더 많은 과일과 채소, 완전식을 먹어보자.

4. 요리를 하자: 영국과 미국에서 가사 수업이 감소하며 젊은이들은 기본적인 요리법도 모르게 되었다. 요리사인 Jamie Oliver, Alice Waters, Bill Telepan 씨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영양가 풍부한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치고 있다.

5. 잔치를 열자: Hartman 그룹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절반이 혼자 밥을 먹는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밥을 먹으면 지역사회와 대화를 증진시킬 수 있다. 최근의 연구들은 가족과 밥을 먹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전형적으로 더 행복하고 안정적이라고 제안한다. 

6. 육식을 피하자: 세계의 약 20억 명이 미량영양분 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세계채소센터(World Vegetable Center)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농민이 건강과 소득을 개선시킬 수 있도록 고부가가치의 영양분이 풍부한 채소를 재배하는 걸 돕는다. 

7. 음식쓰레기를 만들지 말자: 먹을거리의 약 1/3이 버려진다 -농지에서, 운송되면서, 가게에서, 집에서. 그러나 그런 음식쓰레기를 예방하는 쉬운 방법이 있다. Love Food, Hate Waste와 같은 단체에서는 소비자에게 남는 부분의 비율을 조절하고 그걸 요리하는 비결을 알려주는 한편, 볼리비아에서 태양광 건조기를 사용해 음식을 보존하도록 한다. 

8. 청소년을 참여시키자: 지적이고 경제적으로 자극이 되는 농사는 식량체계와 청소년들에게 매력적인 활동이 될 것이다.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 지역에 걸쳐 휴대전화와 인터넷은 기후와 시장 정보에 농민을 연결하고 있다; 미국에서 Food Corps은 건강한 식생활을 준비시키고자 학생들에게 어떻게 작물을 기르고 요리하는지 가르치고 있다.

9. 노동자를 보호하자: 전 세계의 농업과 식품 노동자들은 더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위해 싸우고 있다. 짐바브웨에서, 일반적 농업, 플랜테이션 노동자연합(General Agricultural and Plantation Workers Union, GAPWUZ)은 학대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한다. 미국에서 이모칼리 노동자연합(Coalition of Immokalee Workers)은 플로리다의 토마토 수확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도록 Trader Joe's와 Chipotle를 설득시켰다.

10. 농민의 중요성을 인정하자: 농민은 단순히 농민이 아니라, 사업가이자 토지의 수호자이자 교육자이자 지역사회에서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국제 슬로우푸드는 전 세계에서 농민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이 생물다양성과 문화를 지키는 데 중요한 존재임을 인식시키고 있다. 

11. 정부의 역할을 인식시키자: 국가는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값싸고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가나와 브라질에서 전국적인 학교급식프로그램과 지속가능한 농업 생산을 위한 지원을 늘리는 정부의 조치로 굶주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줄었다. 

12. 측정기준을 바꾸자: 정부, 비정부기구, 자금 제공자 들은 영양의 개선과 환경보호보다는 생산량과 수확량의 증가와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다. 측정기준을 바꾸고, 품질에 초점을 맞추면 공중보건과 환경 및 생활을 개선할 것이다.

13. 망가진 식량체계를 고치자: 농업은 세계에서 가장 급박한 과제 가운데 일부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실업 문제를 포함하여, 비만과 기후변화. 이러한 혁신은 더 많은 연구, 더 많은 투자, 궁극적으로 더 많은 자금 지원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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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goo.gl/RHB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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