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Чёрный хлеб.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검은 빛깔의 빵을 가리키는 말이라 한다.

 

러시아나 북유럽, 동유럽, 그리고 독일 북부 지방 같은 경우 겨울이 너무 추워서 -그렇다고 한국처럼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와는 다를 테지만- 다른 유럽 지역과 달리 밀 농사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하는 것이 바로 호밀 농사, 그리고 그로 만든 빵이 검은 빛깔의 빵이다.

 

호밀로 만든 이 흑빵의 경우 현미와 비슷한 특성이 있다고 보면 된다. 흰쌀은 입에서 사르르르 녹고 부드럽게 씹히는 점을 내세울 수 있다면, 쓿지 않은 쌀인 현미는 섬유질 등이 많아 좀 거칠고 뻑뻑한 식감인 반면 흰쌀이 갖지 못한 여러 양분을 공급할 수 있단 특성이 있지 않은가. 밀과 호밀의 차이도 그와 비슷하다고 한다. 밀은 부드러운 식감의 고운 빵을 만들 수 있는 반면, 호밀은 거칠거칠한 식감의 검은 빵을 만들게 된다.

 

그런데 최근 유전공학을 이용한 육종 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음과 같은 소식도 들려온다. 최첨단기술인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내한성이 강한 밀을 개발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자연의 한계를 뛰어넘는 과학기술의 힘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지. 또 한편으로는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인위적 행위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다. 무엇이 되었든 참 재미난 일이 아닐 수 없네.

 

 

https://www.abc.net.au/news/rural/2020-06-24/gene-editing-technology-to-create-frost-tolerant-wheat/12385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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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은 세계 최대의 밀 소비자로서, 국수와 만두, 빵 및 여러 반죽을 만드는 데 밀을 이용한다. 하지만 늘 그랬던 건 아니다.

밀은 신석기 시대가 끝날 무렵인 약 4600년 전 중국 북부 지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의 연구에 의하면그 당시에는 맛이 별로 없었다. 초기에 밀은 기아를 막기 위해 재배한 작물로서, 요리의 기쁨보단 절망의 작물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중국 북부의 최초 농민들은 주로 조를 재배했다. 가뭄에 강한 이 작은 씨앗의 곡물은 1만1500년 전부터 재배되기 시작해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주로 재배되며, 미국에선 새의 모이로 이용되었다. 역사 기록과 초기 요리법에 기반하여, 연구자들은 수천 년 뒤인 당나라(618-907년) 시대에 밀이 조를 대체하여 이 지역의 주요 작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러한 변화가 왜,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오늘날 밀의 장점은 명백하다. 요리의 다양성 말고도, 밀은 더 빨리 자라며 조보다 꾸준히 더 많은 수확량을 올린다. 하지만 고대의 농민들은 처음부터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역사 기록에서 보면, 적어도 당나라 때까지 밀은 일반적으로 조와 똑같은 방식인 죽으로 소비되었다. 그 곡물은 찌거나 통밀로 조리되어 거칠고 입맛에 안 맞는 요리로 만들어졌다. 여러 초기의 저술가들이 밀죽은 "야만인과 농민을 위한" 음식이라고 언급했는데, 아마 극단적인 시기에만 소비되었을 것이다. 


중국 북부의 농민들은 왜 밀을 재배하기 시작했을까? 

그 답을 추적하기 위하여, 나는 2014년 박사 학위논문을 쓰면서 중국 북부의 여러 지역에서 이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을 무렵의 여러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고고학자는 발굴현장에서 곡물의 유물을 찾아 이를 추론했는데,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소비할 수 있었는지만을 밝혀냈다. 최근 연구자들은 이를 해결하는 더 직접적인 방법을 알아냈다.인간 유골의 동위원소를 조사하는 것이다. (동위원소는 탄소처럼 원자량이 약간 다른 요소이다. 어떤 동위원소는 방사성이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붕괴되지만, 다른 동위원소는 안정적이다.) 뼈부터 치아의 발견되는 모든 탄소와 질소의 여러 안정된 동위원소의 비율은 고대인의 식단에 대한  강력한 정보를 전달한다.  

조와 밀 같은 다양한 식물은 서로 다른 화학 경로를 이용해 자라기에, 토양에서 독특한 비율의 안정적인 탄소 동위원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차이점은 이른바 C3와 C4 식물로 구별된다.) 우리가 먹는 것이기에, 그것들의 특정한 비율의 탄소가 인간의 유골에 통합되어 몇 세기가 지난 뒤에도 검파될 수 있다.

 특히 조는 중국 북부에서 재배된 유일한 주요 C4 작물이라서, 사람들이 주로 조를 먹다가 C3 작물인 밀 같은 다른 걸로 주식을 바꾸면 상대적으로 쉽게 알아낼 수 있다. 

발표된 보고서들을 조사하여 나는 약 9000년 전인 신석기 시대 중반부터 서기 220년 동한 왕조가 망한 뒤까지 약 1200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수집했다. 장소는 북서부인 간쑤성부터 동부인 산둥성에 이르는 현대의 8개의 성에 흩어져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이 거대한 데이터 세트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이들 광대한 연구 지역에 걸쳐 있는 집단이 모두 동시에 독점적이던 조 기반의 식단에서 더 혼합된 식단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매우 놀라운 이야기이다. 이처럼 광대한 지리적 구역에서 요리법이 갑자기,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바뀌려면 단순히 새로운 음식을 갈망했다는 것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다. 


이 영상은 고대 세계의 가장 중요한 작물화된 곡식이 7000년에서 3500년 전 어떤 경로로 확산되었는지 보여준다. Javier Ventura/Washington University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약 4200년 전 발생했던 완신세 사건 3이라 부르는 주요한 기후변화이다. 당시 대륙들의 기후는 춥고 건조해졌다. 예를 들어 지중해 동부와 서아시아 전역에 걸쳐서 강우량이 1/3에서 절반으로 감소하여 사해의 수위가 45m 감소했다. 이러한 "대가뭄"이 전 세계 작물 생산에 혼란을 야기해 메소포타미아부터 인더스 계곡까지 정치적 격변을 불러왔고, 중국의 중앙 평원에서는 신석기 문화가 붕괴되었다. 

이에 더해, 신석기 말기는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빠르게 증가한 시기였다.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작물 수확량이 변동됨에 따라, 중국 북부의 신석기 농민들은 어려움에 빠졌을 것이라 가정하는 건 합리적이다.

밀은 실제로는 조보다 더 많은 물을 필요로 하기에 역사의 건조한 시기에는 좋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밀은 조와 다른 계절에 교대로 파종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밀은 조를 수확한 뒤에 파종할 수있다. 그해에 조 농사가 망해도 농민들은 아직 구황을 위해 밀을 재배할 수 있었다. 이것이 중국 북부의 사람들이 밀을 재배하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에는 많은 교훈이 있다. 기후변화는 극단적 날씨부터 해안선 변화까지 항상 예기치 않은 사회의 변화를 불러왔다. 이 사례에서, 중국 북부에서 일어난 완신세 사건 3의 여파는 결국 맛이었다. 오늘날 중국 북부의 사람들은 국수와 만두, 빵 등을 즐긴다. 하지만 그리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늘 그런 건 아니다. 

단 하나의 작물에만 주로 의존하는 대규모 단작은 늘 끔찍한 발상이었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을 생각해보라. 19세기 중반 감자의 치명적 역병이 발생해, 감자에만 의존하던 이 나라에서 약 100만 명이 사망했다. 



1840년대 감자 기근 시기의 아일랜드처럼 먹을거리 공급 문제는 기아와 폭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British Library/Flickr


그러나 과학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국과 세계 여러 지역의 많은 대규모 농장들은 그들이 의존하는 작물의 숫자가 위험할 정도로 제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식물 종 -아마 수십에서 수백만 종- 을 식용할 수 있지만, 오늘날에는 약 200종만 재배되며 단 3가지(옥수수, 밀, 벼)가 인류의 열량 대부분을 구성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의하면, 100년 전에 재배되던 작물의 75%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일부 지역에서는 조를 포함한 토종 작물을 되살려 지역의 농업을 더 지속가능하게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 농민들은 더 다양한 농업 체계로 나아가고자 했으며, 이것이 파괴적이었던 사건을 탐색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되었다. 고고학과 역사 자료에 의하면, 밀과 벼, 콩, 귀리, 메밀 및 보리도 재배했는데 밀이 더 선호되었다. 

한 가지 완벽한 작물은 없다. 다양성을 높이는 일이 기후가 요동치는 시기에 살아남기 위한 열쇠이다. 우리는 여전히 인위적인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한편, 실용적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게 현명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장래의 먹을거리 스트레스를 막기 위하여, 더 많은 농민들이 편안한곳을 벗어나 요리의 기반을 확장해 갈 수 있는 좋은 시기이다. 


https://www.sapiens.org/archaeology/chinese-far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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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노풀로스Antonopoulos 형제는 유럽에서 식물의 생물다양성이 가장 높은 그리스에서 농사 혁명을 이끌고 있다.



이오르고스Yiorgos(왼쪽)와 안토니스 안토노풀로스Antonis Antonopoulos가 딜로포Dilofo가 내려다보이는언덕에 서 있다. [John Psaropoulos/Al Jazeera]


그리스 정부가 인증한 유기농업 농가 목록에서 안토니스 안토노풀로스 씨는 일련번호 1번이다. 

안토니스와 그의 동생 이오르고스 현상을 만든 것은 그들의 모델 농장이 그리스에서 유기농 방식을 개척한 데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다른 농부들이 버린 토종 밀과 보리를 유기농으로 재배해 상업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데 있다.  

그들은 토종 곡물로 만든 그들의 유기농 밀가루를 전문 상점과 빵집에 몇 년 동안 상품화하여 배송했다.

2년 전, 딜로포에 있는 그들의 마을에서 육종된 두줄 밀에서 유래한 제아Zea 밀가루는 전국적으로 알려져 그 이름의 시조가 된 얇게 썬 빵덩어리의 주요 성분이 되었다.  

제아의 상업적 성공은 멸종위기에 처한 고대의 곡물이 부활하게 만들었다.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요"라고 자신의 연간 매출이나 재배면적을 밝히지 않으려는 이오르고스가 말했다.  "그 지역의 누구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걸로 충분해요." 

이러한 성공은 그리스가 천연의 유전자은행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다양한 지형과 미기후를 지닌 그리스 열도는 오늘날 유럽에서 식물의 생물다양성이 가장 높아, 약 6000가지 야생 식물 종이나 아종 및 수천 가지 작물이 분기하는 진화 경로가 있다. 

이 방대한 유전적 목록을 상실하면, 과학자와 농민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기후 안에서 지구를 먹여살리려는 투쟁의 소중한 자원을 잃을 수 있다. 


안토노풀로스 농장에서,  토종 농사는 유기농으로 이루어지며, 형제는 경제적이라고 이야기한다.  [John Psaropoulos/Al Jazeera]


중년에 접어든 형제는 평생 40여 가지 품종의 토종 곡식을 실험하여, 그들의 조상이 수천 년 동안 해오던 것처럼 이듬해 더 나은 수확량이 나오는 작물을 심고자 해마다 최고의 작물을 직접 선발했다. 

"모든 씨앗은 그 지역의 미기후에 적응합니다. ... 결국 나는 가장 생산적인 곡식은 우리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지역의 품종이란 사실을 발견했죠."라고 이오르고스 안토노풀로스는 말한다. 

적응 덕분에 지역의 품종은 잘 자라게 하려고 화학비료, 농약 등이 필요하지 않기에, 토종 농사는 유기농으로, 그리고 경제성이 있다고 정의된다. 

"나는 가장 적은 비용이 들고, 다른 농민의 농사일보다 1/3 정도만 한다"고 안토노풀로스는 말한다. "내가하는 유일한 일은 관개이다." 

그러나 그의 동료인 안토노풀로스는 시류를 따르는 데 실패했다. 

"[사람들은 나의 사례를] 이해하지 못한다. 초기에 그들은 나를 마을의 바보라고 손가락질했다. 결과가 드러나기까지 약 20년 걸렸다. 그때까지 나는 미친놈이었다. 내가 커피가게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모두 나를쳐다보았다."

오늘날 안토노풀로스 농장은 그리스의 곡창지대인 테살리아Thessaly 평야의 남동쪽 모퉁이를 형성하는 커피빛깔 흙의 띠로 감싸인 마을인 딜로포의 외곽에서 가장 큰 구조물이다. 

아킬레스가 자란 작은 마을인 프티아Phthia로 호머 그리스에 알려진 완만한 언덕이 그 위로 솟아 있다. 

이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젊은 영웅이 지금은 안토노풀로스가 6가지 토종 밀, 보리, 귀리 및 여러 가지 토종 콩과 완두, 조 등을 재배하고 있는 물결 치는 평야를 가로질러 질주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신화의 족보는 그들의 신비감을 더한다.   


결백의 상실

1960년대 기계화된 농사가 그리스에 도입되기 시작했을 때, 농기업이 만든 실험실에서 육종된 다수확 교잡종 씨앗이 함께 나타났다. 

이들은 점차 토종을 밀어냈고, 1981년 그리스가 유럽경제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에 가입했을 때 공동농업정책은 보조금으로 그 과정을 더욱 가속화했다.  

농기업은 도처에서 생물다양성을 소멸시켜 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전 세계에서 6000가지 이상의 식물 종을 재배해 왔지만 현재는 단 9가지가 세계의 식량 생산 가운데 2/3를 차지한다고 한다.  

1980년대 식량농업기구는 산업화된 농사가 근절시키고 있는 품종을 보존하고자 유전자은행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니코스 스타브로풀로스Nikos Stavropoulos와 소규모 생물학자 모임은 30만 유로(33만9천 달러)의 예산으로 그리스의 유전자 은행을 설립했다. 이는 원래 약속된 금액의 1/10이었다. 그들은 농민들에게 토종을 씨앗 봉지에 넣어 달라고 요청하고자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오르고스 안토노풀로스가 자신의 밭을 살펴본다.  [John Psaropoulos/Al Jazeera]


그리스의 유전자 은행은 수천 가지 토종 씨앗에 거처를 제공하지만, 그 생식력은 저온저장에서 10-50년 정도 유지된다. 누군가가 적어도 30년에 한 번 정도 재배하지 않으면 그들 또한 죽을 것이다. 

"국가는 유전적 다양성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느 정도 비밀리에 나는 유기농 재배자들에게 씨앗을 나누어주기 시작해 그걸 전파하고 보존하려 했죠."라고 스타브로풀로스는 말한다.  

저장된 씨앗에는 더 많은 취약성이 있다. 

"재배되지 않고 유전자 은행에만 저장된 오래된 토종은 더 이상 변화하는 기후 조건과 새로운 병해충에 적응할 수 없어요"라고 스위스 프릭Frick에 있는 유기농업 연구소에서 식물 육종을 담당하는 모니카 메스머는 말한다. 

공식 통계에 의하면, 지난 20년 동안 유기농업이 7배 증가하여 전 세계에서 7000만 헥타르를 차지한다. 그것은 전체 농경지의 1.4%에 불과하지만, 유기농 인증기관의 자료를 기반으로 한 이러한 측정치는 과소평가된 것일 수 있다. 세계 농장의 90%는 가족 소유이며, 적어도 1/3은 유기농으로 등록하지 않고 생태적 원리에 따르고 있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약적이고 산업화된 농사 모델은 점차 세계의 농경지를 점령해 왔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95%의 농장은 5헥타르 미만인데 그들이 전 세계 농지의 20%만 운영하며 그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상황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느리다. 2009년 그리스는 토종과 그 재배자를 기록하도록 하는유럽연합의 지침을 채택했다. 

안토노풀로스 농장은 현재 정확히는 4가지(하나는 테스피아이Thespiai 양파)이지만 새로운 국가의 등록부에 3가지 지역의 곡식을 보존한다고 등록되어 있다. 

이는 농장에서 곡식을 농사짓고, 유전자 은행 및 다른 농민과 곡식을 공유하도록 한다. 결국, 교잡종에 지불되던 공동농업정책의 보조금이 이 분야까지 보조금을 줄 수 있도록 농장에 자격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토종 보조금 프로그램은 그리스에서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다. 


환경에 대한 함의 

식량안보만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교잡종의 산업형 농업과 토종의 유기농업은 환경에 대해 크게 다른 함의를 지닌다. 

유기농 토종 농사는 자급형이다. 

"[2차 세계] 전쟁 이전에 오랫동안 재배하던 밀 품종들은 많은 뿌리를 뻗어 잡초에게 공간을 남기지 않는 그러한 뿌리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제초제가 필요 없었다."고 안토노풀로스 형제에게 조언을 하는 농학자 일리아스 칸타로스는 말한다. 

"만약 밀을 파종한 다음 콩을 심으면, 그들이 뿌리에서 질소를 고정시켜서 다음 작물은 앞그루가 남긴 질소를 받게 된다. 이것이 [인공적인] 비료가 없던 시기의 전통적인 농법이었다." 

수확한 다음 농지에 남아 있는 그루터기에 방목한 소가 거름을 추가로 제공했다. 

유기농 농장은 부수적으로 환경에 혜택을 가져온다. 식량농업기구에 의하면, 약 450가지 야생종 식물과 동물이 이른바 생태계 서비스 -병해충의 방제, 수분, 수질 정화, 분해와 양분의 순환, 토양 형성, 산소 생성 및 서식지 제공 등- 를 위해서 일부러 길러지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점이 "이러한 서비스에 필수적"이기도 한 "엄청나게 많은 수의 관리되지 않는 종들"을 장려하고 허용하게 한다. 다른 말로, 그것은 풍부한 생태계이다.  

형재의 농장은 생물다양성의 사례이다. 그들은 무화과, 사과, 배를 섞어서 심고,  야생 생물이 마실 연못을 팠다. 하늘에선 벌과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농지 주변에선 개구리가 뛰어다니고, 들고양이가 어스름이 질 때 물을 마시러 내려온다.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유지합니다."라고 이오르고스 안토노풀로스는 말한다. 

교잡종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여러 종의 장점이 결합되어 수확량을 높이도록 유전적으로 설계되었지만,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잘 자라게 하려면 화학적 복합 양분과 농약만이 아니라 이를 살포할 트랙터의 기름도 필요하다.

이러한 화학적 복합물이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는 이외에도, 제초제는 그들의 힘을 상실하는 경향이 있다. 23년 전 최초로 대대적으로 몬산토의 라운드업 제초제가 사용되었을 때에는엄청난 효과를 나타냈다. 오늘날 43가지 식물이 그에 대한 면역을 개발했다.


안토노풀로스 농장에서 특별히 설계된 칼퀴로 사이갈이 김매기를 하여 싹이 튼 작물을 잡초가 뒤덮지 못하게 하고 있다.  [John Psaropoulos/Al Jazeera]



또한 인간의 건강에도 문제가 된다. 라운드업의 활성 성분인 글리포세이트에 책임이 있다고 하는 암 환자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법원에서 열린 일련의 소송에서 승리하여 그 징벌적 손해배상액이 20억 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630억 달러에 몬산토를 인수한 바이엘은 이 논란으로 바이엘의 주식 가치 가운데 약 40%인 340억 달러를 날리게 되었다. 지난 4월, 주주들은 "법적, 평판적 비용(legal and reputational costs)"을 언급하며 회사의 경영진에게 불신임 투표안을 내놓았다.

가장 악명 높은 건, 일벌이 꿀을 따러 가서 벌집으로 돌아오지 못해 군집이 영양부족과 질병으로 죽는 현상인 군집붕괴 장애에 살충제가 중요한 역할을 비난이다. 이로 인해 과수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인력으로 수분을 하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게 되었다. 

"우린 마땅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질병을 일으키고, 수로를 오염시키며, 대기 중으로 탄소를 추가하고, 종들을 근절시킨다."고 스웨덴 농업과학 대학의 경영학 교수 코스타스 카란티니니스Kostas Karantininis는 이야기한다. "이것들은 공공의 재화이기에 청구서를 발행할 수 없다." 

환경 비용은 대차대조표에서 빠져 있는 한편, 농기업은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농약과 화학비료 산업의가치는 2024년 2500억 달러로 상승할 전망이다

토종 씨앗과 달리 특허를 받고 소유자가 있으며 매년 구매해야 하는 교잡종 씨앗은 또 다른 산업을 창출하고 있다. "실험실의 씨앗은 한 번의 작물에만 사용할 수 있다. 그 뒤 그들은 불임이 되거나 그들이 유래된 DNA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의 특성만 나타낼 것이다."라고 칸타로스Kantaros는 말한다. 이는 그 씨앗이 인위적으로 DNA를 결합시켜 자연환경에서 단일한 유기체로 살아남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며, 그들의 진화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산업은 공동으로 작용하는 국제적 규제 없이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카란티니니스는 말한다. "시장은 정부의 개입 없이 공공 재화에 대한 대가를 청구할 수 없으며, 이는 초국가적 문제이기 때문에 단일한 정부가 혼자 행동할 수 없다. 이는 지구 차원의 문제이며 지구 차원의 해결책이 필요하다." 


관행농업의 진화 

산업형 농사는 세계의 농지 대부분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농업을 고치려는 모든 시도는 대량 생산을 다루어야 한다.

그것이 정밀 농업을 통해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코스타스 크라바스Kostas Kravas는 악시오스Axios강 삼각주의 할라스트라Halastra에서 130헥타르의 벼농사 -그리스의 기준에서 대농- 를 짓는다. 3년 전, 그는 새로운 농기계 계통에 투자했다. 디지털 방식으로 통제되는 비료와 살충제 살포기를 끄는 자율주행 트랙터이다.  

이 살포기는 더 많은 양분과 살충제를 필요로 하는 부분에는 더 많이 뿌리고 그렇지 않은 부분에는 덜 뿌리는 "변동 기술"을 이용한다. 크라바스는 매주 목요일에 USB 저장장치로 농기계에 명령을 내린다. 그 자료는 자신의 농장에 위성사진으로 접근하는 컨설팅 회사에서 생성한다. 

"정밀 농업과 관행농업의 차이는 15-20% 정도 더 많은 수확량과 20%의 비용 절감입니다"라고 크라바스는 말한다. "이는 관행농업의 진화이며, 필요한 부분에만 양분을 제공하기 때문에 농사가 자연적 순환에 더 가까워지도록 합니다." 2년이 지나면 크라바스는 자신의 투자를 메우고 35-40%의 더 많은 이윤을 남길 것이다. 


수익성이 떨어지며 일부 농민들은 비옥한 토지를 이용해 태양광 발전을 하고 있다.  [John Psaropoulos/Al Jazeera


안토노풀로스와 마찬가지로 크라바스도 번쩍이는 새로운 농기계를 장만하며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이듬해 내 사촌 가운데 일부는 500헥타르의 농지를 정밀 농업으로 돌렸죠."라고 그는 말한다. "현재 할라스트라는 정밀 농업 농민의 식민지가 되었어요." 

크라바스는 자신의 토지 가운데 일부를 유기농업으로 유지하지만, 정밀하지 않은 농장보다 더욱 환경친화적인 집약적 정밀 농업이란 자신의 상표를 옹호한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토양에서 뽑아낸 18가지 양분의 대부분을 복원시켰죠."라고 말하면서 새로운 생분해성 농약 덕분에 자신의 농장에 물새가 돌아왔다고 보여주었다. 

그러나 모든 농민이 크라바스처럼 진보적인 건 아니며, 중대한 재투자를 감당할 능력도 없다. 그리스의 농민들은 과세와 세계적 경쟁에 짓눌려 기록적인 숫자로 직업을 떠나고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그리스가 경제 생산의 1/4을 잃은 2007-2017년 사이 약 31만5천 명의 사람들이 농민이 되어 약 1/3이 탈농했다.


그건 소비자에 관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해선 지속가능한 소비가 필요해요"라고 카란티니니스는 말한다. "우린 무언가에 대한 진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그렇게 하면 소비를 줄이겠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지속가능하게 재배한 먹을거리와 식사를 향한 소비자 운동은 쇠퇴하고 있다. 세계의 유기농 먹을거리 시장은 새천년 초기에 180억 달러 상승한 970억 달러 이상의 가치이다. 생산자의 수익이 중요하여, 이것이 같은 기간 공식적 숫자가 20만에서 290만까지 증가한 이유이다. 

안토노풀로스 농장은 좋은 예이다. 대부분의 그리스 곡물 농민은 자신의 관행적으로 재배된 밀을 킬로그램당 0.17달러에 판매하여, 킬로그램당 0.78달러에 소매된다. 안토노풀로스 형제는 직접 정선, 제분, 상표화에 투자해 소비자에게 직거래로 킬로그램당 5달러에 판매한다. 

유기농으로 재배된 토종 곡식은 헥타르당 최고 곡물 1.2-1.7톤을 수확하는 반면, 화학적으로 보조되는 교잡종 곡물은 헥타라등 5톤을 수확한다. 안토노풀로스는 낮은 생산비와 더 높은 소매 가격으로 낮은 생산량을 상쇄시키고 있다. 

상업적 성공을 극대화시킨 건 자신의 농산물을 자체적으로 상표화한 것이다.

"잉여는 가치사슬을 설정해 위험을 감수한 사람에게 간다."고 카란티니니스는 말한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 있는 커피의 가치는 단 4%이다. 커피콩을 재배한 농민은 그 커피 한 잔의 가격 가운데 약 1/1000을 번다. 생산자가 가치사슬의 많은 부분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모든 노력이 무의미하다." 


이오르고스 안토노풀로스는 농민이 기업에 의해 "완벽히 통제되고" 있으며, 그 체계에 도전할 것을 맹세했다고 한다.  [John Psaropoulos/Al Jazeera]


경제 위기에 많은 젊은 그리스 농민들이 수출용 상표로 소규모 고품질 농산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부티크boutique 산업이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여전히 질보다 양을 중시하기 때문에 먹을거리의 대부분이 저렴하게 생산되어 저렴하게 팔려, 이것이 생산자의 수익을 쥐어짜고 있다. "작물은 점차 생존할 수 없게 되고 있어요."라고 크란티니니스는 말한다. 

한 가지 답은 규모의 경제를 증대하여 현재보다 규모가 더 큰 농장의 추세를 따라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비용과 환경 부담을 줄이고 수확량을 증가시키는 정밀 농업이다. 

세 번째는 아직도 농기업에게서 독립되기를 원하는 몽상적이고 자립적이며 반항적인 소수의 농민에게만 매력적인 유기농 토종 농사이다.

"지역의 품종은 농민을 독립적이고 자립적으로 만들죠."라고 이오르고스 안토노풀로스는 말한다. "오늘날 농업은 정확히 정반대의 경향으로 나가고 있어요. [기업은] 이윤이 나오기에 당신이 심는 걸 통제하길 바랍니다. 보조금을 받는 씨앗은 매년 판매되고 …  나중에 농민은 완벽히 통제됩니다. 예전엔 10헥타르만 있어도 왕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50헥타르, 아니 100헥타르를 가져도 충분하지 않아요." 


안토노풀로스 농장에서 제아 밀을 수확하고 있다. 제아 밀의 상업적 성공은 멸종위기에 처한 고대의 곡물을 부활시켰다.  [John Psaropoulos/Al Jazeera]



https://www.aljazeera.com/indepth/features/greece-rebel-organic-farm-grain-1906101005580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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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사이짓기 농법.

밀-대두의 2년 3작식이다. 




최근 미국에서 밀-대두 사이짓기를 가장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농민의 강의 동영상을 찾았다.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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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 2미터까지도 자란다. 보통 5마디 정도였다. 



토양에 유기물을 추가하거나, 타감작용을 이용해 풀을 억제하는 효과가 좋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다 자랐을 때 베거나 밟아 눕히거나 꺾어 버린 다음 그 땅에 그대로 농사지을 수 있다. 이미 미국 쪽에서는 널리 알려진 농법이다.

농사,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습니다. 
농사, 돈이 많이 든다면 많이 들고 적게 든다면 적게 듭니다.




Red Fife(적관밀). 적관밀을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토종 작물의 작명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는 데가 있다.

영어로 fife는 원래 피리 종류의 악기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빨갛고 피리 닮은 이삭이 달리는 밀이란 뜻이겠다. 과연 이삭이 길쭉하고, 익으면서 빨간색이 짙어지는 특성이 나타난다. 

제때 심은 건 이삭이 익음때로 들어섰는데, 늦게 심은 건 이제야 수정이 된 눈치이다. 얼마 안 남은 기간 부지런을 떨어야 씨앗이 영글겠다. 

토종 벼과작물이 다 그렇듯이, 이것도 키가 크다. 옆에 서니 내 허리 위로 올라온다. 대략 120-130cm 정도. 마디는 좀 덜 큰 건 3마디 제대로 큰 건 4마디이다. 호밀보다 1마디 적은데, 그만큼 키 차이가 난다. 

서구의 밀 품종과 한국의 밀 품종이 보이는 특성의 차이를 발견했다. 서구의 밀 품종은 키는 크더라도 보통 까락이 없는 게 많다. 그런데 한국의 토종 밀 품종은 키는 좀 작은데 까락이 있는 게 많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재밌는 차이점이다.






남도 참밀. 토종 씨앗계의 대부 장흥의 이영동 선생님이 보존해 온 토종 밀이다. 

키는 서구의 밀에 비해 크지 않다. 허리춤 정도 오니 대략 1미터 남짓. 이삭이 굵고 실하다. 맛도 달큰하니 좋아서 앉은뱅이밀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라 한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까락이 무성하다.









화이트 소노라 밀. 
네, 그렇습니다. 이 밀이 바로 인류를 기아에서 구해 냈다고 평가 받는 노먼 볼로그 박사가 육종한 소노라 64호의 부모 계통입니다.

옆에 서 보니 어깨 가까이 올라옵니다. 대략 150-160cm 정도의 큰 키입니다. 서양의 것은 사람만 큰 게 아니라 작물도 큽니다. 왜죠? 레드 피페라고 하는 적관밀보다 이삭이 더 크고 실합니다. 하지만 키가 큰 것이 나중에 쓰러짐 때문에 수확량을 떨어뜨리는 큰 단점이었죠. 그래서 일본의 왜성 밀인 농림 10호와 교배시켜서 만든 것이 바로 녹색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던 소노라 64호입니다. 그리고 그 농림 10호는 조선의 앉은뱅이밀이 부모 계통이었다고 중얼중얼... 

미국 슬로푸드 홈페이지에 이 밀을 소개한 내용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https://www.slowfoodusa.org/ark-item/white-sonora-wheat

소노라라는 이름은 이 밀이 재배되던 지역의 이름입니다. 멕시코 북부에 있는 소노라라는 곳이지요. 지도에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개의 품종인 치와와도 있고, 현대자동차의 투싼도 보이고 그럽니다. 그리고 화이트는 이삭이나 알곡이 흰빛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겁니다. 예전에 저는 서구는 우리랑 다르게 새로운 품종에 주로 사람 이름을 붙이는구나 했는데 개뿔 아니었습니다. 우리랑 비슷하게 그 작물의 특징이나 주요 재배지를 가지고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었던 겁니다. 그게 개인의 소유권, 재산권 개념이 발달하면서 육종하건 발견한 사람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아주 재미난 밀을 여러 가지 보고 배운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호라산(또는 후라산) 밀.

이란 북서부에 있는 호라산 또는 후라산이라 하는 지역에서 고대부터 재배되던 밀이라고 합니다. '산'이라고 해서 거기 무슨 산악지대에서 재배하던 건가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쪽 단어였어요.

아무튼 이 밀이 아주 엣날 그때와 똑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 직계 후손이라고 하네요.

세력이 엄청 강합니다. 앞서 보았던 남도 참밀과 비교하여 그보다 더 억세 보입니다. 많이 달리는 편은 아니지만, 달려 있는 이삭은 엄청 실합니다. 

이게 최근 미국 쪽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가 봅니다. 판매도 되고 그러네요.



이상. 길위에서 님의 협조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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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 특히 미국에서는 옥수수가 작물의 왕처럼 여겨졌다. 

그래서일까? 유전자변형 작물로 가장 처음 상용화된 것이 아마 옥수수이지?

상대적으로 밀은 여왕으로 취급되는 점이 무척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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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쌀이 주식이긴 하지만 추위가 심하고 산악 지대가 많아 밀 비중이 높다."

가서 보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과거 일제강점기 조선의 기록을 보면 북한 쪽에서 겨울철 밀 이모작이 가능한 지역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서선 지방이나 강원도 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너무 추워서 밀 이모작도 힘들었던 것 같은데. 생산량 문제가 단지 종자 개량이나 비료만이 원인은 아닐 것 같다. 물론 아래 링크의 기사에 나오는 삼일포 농장은 금강산 쪽이니 이모작이 가능한 지역이겠지만. 


아무튼 '추위가 심하고 산악 지대가 많아 밀 비중이 높다'는 말은 꼼꼼히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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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 중 가장 늦게 해독된 밀 게놈(유전체). 밀은 게놈 크기가 16Gbp(160억 염기쌍)로 사람(3.23Gbp)보다 5배 많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아침엔 부드러운 식빵, 점심엔 든든한 샌드위치, 저녁엔 맥주와 함께 피자 한 조각.
삼시세끼를 빵으로 해결하는 이들의 귀가 번쩍 뜨일 소식이 나왔다. 빵의 주원료인 밀의 게놈(유전체)이 완전히 해독됐다는 소식이다. 365일 다이어트로 고민하는 사람은 ‘전분저항성’을 가진 빵을, 글루텐민감성 때문에 ‘그림의 빵’이던 사람은 ‘글루텐 프리(free)’ 빵을 골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빵과 우리의 인연은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인류는 기원전 1만7000년 전부터 밀 종자를 껍질째 씹어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밀을 재배하기 시작한 때는 기원전 9600년 전부터다. 이라크를 길게 지나는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유역이 주요 생산지다. 기원전 4000년 전, 이집트에서 밀가루로 효모 발효 빵을 만드는 레시피를 만들면서 밀은 점점 더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 밀은 명실공히 ‘곡식의 왕’으로 통한다. 220만4000㎢로 전 세계에서 재배면적이 가장 넓다. 북극에서 적도까지, 심지어 고도 4000m 티벳에서도 자란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주식으로 삼는다. 밀 100g의 열량은 327칼로리(cal)다. 흔히 탄수화물만 들어있다고 생각하지만, 밀알의 10~15%는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밀의 단백질과 비타민 함량은 쌀보다 높다.

 

곡물 중 가장 늦게 해독된 밀 게놈 

이토록 대중적이고 중요한 밀 게놈이 최근에야 완성됐다는 소식에 의아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량이 밀보다 훨씬 적은(전 세계 기준) 벼는 2005년 게놈이 완성됐고, 늦었다는 옥수수와 보리마저도 2009년과 2017년에 해독을 마쳤는데 말이다. 

첫 번째 이유는 밀 게놈은 해독하기 불가능에 가까운 ‘괴물’이기 때문이다. 게놈 크기가 16기가염기쌍(Gbp·160억 염기쌍)으로 사람(3.23Gbp)의 5배다. 보리(5.1Gbp), 호밀(7.9Gbp), 벼(0.4Gbp), 옥수수(2.3Gbp) 등 다른 작물과 비교해도 밀 게놈이 얼마나 거대한지 알 수 있다.  

아침엔 보드라운 식빵, 점심엔 든든한 샌드위치, 저녁엔 맥주와 함께 피자 한 조각. 삼시세끼를 빵으로 해결하는 ‘빵순이’들의 귀가 번쩍 뜨일 소식이 나왔다. 빵의 주원료인 밀의 게놈(유전체)이 완전히 해독됐다는 소식이다. 365일 다이어트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전분저항성’을 가진 빵을, 글루텐민감성 때문에 ‘그림의 빵’이던 사람들에겐 ‘글루텐 프리(free)’ 빵을 골라줄 수 있게 됐다.

밀 게놈은 반복서열이 약 85% 이상 차지한다. 염기쌍 160억 개를 한 줄로 세우는데, 일정한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부분이 85%라고 생각해보면 밀 게놈을 최대한 길게 조각내서 맞춰 봐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이는 밀이 벼, 보리와 차례로 갈라져 진화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종끼리 교잡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리의 게놈이 2배체(2n=14, HH)인 것과 달리 밀은 6배체(2n=6x=42, AABBDD)다. 서로 다른 세 종류의 식물 종(AA, BB, DD)이 마구잡이로 섞이면서 불필요하게 중복된 염기서열이 많아졌다. 

밀의 특성 좌우하는 유전자 ‘핫스팟’ 찾아 

국제 밀 유전체 분석 컨소시엄(IWGSC)은 13년 만에 이런 밀의 염색체를 모두 해독해냈다(통상 게놈을 95%가량 해독하면 완성이라 본다). 연구팀은 밀의 21개(21쌍에서 하나씩) 염색체의 염기서열, 유전자 기능, 유전자 발현 조절 등을 연구한 결과를 종합해 ‘사이언스’ 8월 17일자에 발표했다. doi:10.1126/science.aar7191 
 

2005년 출범한 IWGSC에는 68개국 2338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90% 이상 재배되는 빵밀의 한 종류인 ‘차이니스 스프링(chinese spring)’ 품종을 각각 연구했다. 이후 모든 연구를 조각처럼 모아 밀의 연속적인 염기서열과 10만7891개의 유전자, 400만 개의 분자 마커(변이가 생길 경우 기능이나 형태에 변화가 일어나는 DNA 염기)를 밝혀냈다. 

밀의 전체 염기서열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팀은 방대한 데이터를 해석하는 바이오인포메틱스 기술을 사용했다. 밀 게놈을 평균 길이가 76개 염기쌍인 긴 DNA 조각으로 절단하고 이것을 컴퓨터에 입력해 재조합하는 ‘샷건 시퀀싱(shotgun sequencing)’ 기술이 쓰였다. 

IWGSC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고 있는 서용원 고려대 생명공학부 교수는 “덕분에 밀의 중요 특징을 결정짓는 유전자들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유전자들끼리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발현되는지 밝힐 수 있었다”며 “새로운 품종을 육성하는 기간이 대폭 단축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쉽게 말하면 이번 밀 게놈 해독으로 밀의 수확량, 맛, 영양 성분, 성숙기, 스트레스 저항성 등을 결정짓는 ‘핫스팟’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형질들은 모두 유전력이 낮다. 하지만 핫스팟을 알고 있으면 교배와 재조합 과정을 통해 관련된 유전자를 개체에 집적할 수 있다. 

스파게티나 마카로니를 만드는 밀은 빵이나 면류에 쓰이는 보통밀이 아니라 ‘듀럼밀’이다. 듀럼밀은 보통밀과 품종이 완전히 다르고, 염색체도 4배체(AABB 타입) 28개다. -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알레르기 프리(FREE)’ 밀가루 빵 나올까 

품종 개량의 가장 큰 목표는 뭐니 뭐니 해도 맛 아닐까. 순수한 빵의 맛은 밀의 종자 저장 단백질인 글루텐이 결정한다. 밀알에는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라는 크게 두 종류의 단백질이 있는데, 밀가루에 물을 넣고 반죽하면 이 두 단백질이 섞이면서 그물 모양의 단백질 네트워크인 글루텐을 형성한다. 

글루텐은 빵을 부풀게 하고 쫀득한 식감도 낸다. 효모가 발효하며 만들어낸 이산화탄소와 에탄올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잡아두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같은 글루텐 단백질이라도 중동, 중국 남부, 러시아 등 밀 생산 지역에 따라 글루텐의 성질은 조금씩 다르다. 서 교수는 “밀의 식감은 다양한 글루텐 유전자의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며 “글루텐 단백질의 종류와 진화과정을 알면 더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글루텐 유전자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글루텐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유전자를 알면 ‘셀리악’ 병을 앓거나 글루텐민감성을 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밀가루 빵을 만들 수 있다. 셀리악 병은 소장에서 일어나는 알레르기 질환으로 글루텐이 소장에 들어오면 면역체계가 소장을 공격하는 병이다. 미국에서는 인구의 약 1%가 앓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글루텐민감성이 있는 사람들은 밀가루 음식을 먹은 뒤 배탈, 복부팽만, 설사, 두통, 가려움증, 천식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한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글루텐을 비롯한 밀 속 단백질이 면역반응을 유발하는 유력한 용의자로 꼽힌다. 이와 같은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평생 쌀이나 보리로 만든, 글루텐이 없는 빵을 먹을 수밖에 없다. 같은 빵이지만 밀가루 빵과는 식감이 확연히 다르다. 

서 교수는 “질병과 관련된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유전자를 정확히 알면, 이를 제거한 밀 품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IWGSC 연구팀은 이번 논문에서 글루텐 관련 질병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밀 유전자 828개를 분석했다. 그 결과 글루텐 소화를 방해하는 유전자와 과민성 쇼크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밀의 배유(곡식에서 껍질과 눈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전분 부분)에서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천식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자도 찾아냈다. 

빵의 맛을 결정하는 밀의 글루텐 단백질 조합. 밀 단백질은 글루테닌과 글리아딘 두 개의 주된 단백질로 구성돼 있다. 글루테닌은 다시 고분자와 저분자로 나뉘는데, 고분자 글루테닌은 탄성, 저분자 글루테닌은 신장성에 주로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둘의 유전적 변이가 밀 반죽의 물성 변화와 가공성에 영향을 준다.

고온 스트레스에 강한 우리밀

환경순화적인 방법으로 수확량을 늘릴 비법도 유전자에 있다. 다양한 기후환경에서 자라는 밀을 가져다 파종부터 수확까지 어떤 유전자들이 발현되는지 확인하면 물과 농약, 비료를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고도 환경에 잘 적응해 자라는 품종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대응해 고온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품종이 필요하다. 당장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봄철 기온이 상승하고 강우가 잦아지면서 밀에 싹이 나는 비율이 5~15배로 늘었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이 5월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함에 따라 이삭 패는 시기는 약 2.8일, 이삭 팬 후 성숙기까지는 약 2.3일 단축됐다. 결과적으로 전체 생육 기간이 줄면서 기온 1도에 낱알 개수는 1㎡당 1119개 줄었고, 밀알 1000알의 무게는 1.2g 감소했다. 가뜩이나 몸값 비싼 우리밀이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서 교수는 “밀이 가진 고온 저항성 유전자를 연구함으로써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에 따르면 고온 다습한 한국은 고온 저항성 유전자를 연구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한국은 밀을 10월에 파종해 이듬해 6월 초 수확하는데, 밀의 개화 및 성숙 시기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수확기 때 장마가 겹친다. 

이는 수확하기 전 밀알이 발아하거나 썩기 쉬워 불리한 조건이지만, 바꿔 생각하면 한국에서 잘 자라는 밀 품종은 개화와 성숙이 빠르며, 고온 스트레스에 강하다는 뜻도 된다. 한국의 밀 품종을 이번에 완성된 밀 게놈 지도와 비교하면 고온 스트레스를 견디게 만들어주는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IWGSC 연구팀은 이번 논문에서 밀의 개화시기와 관련된 ‘PPD1’ ‘FT’ 등의 유전자들이 어떤 염색체에 어떻게 그룹지어 있는지를 상세하게 다뤘다. 서 교수팀도 성숙기간이 서로 다른 금강밀과 영광밀의 유전자를 분석해 수확시기를 결정하는 유전자를 찾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50년 전 세계 인구는 97억 명으로 늘어난다. 이들이 부담 없이 빵을 먹기 위해서는 밀 생산량을 지금보다 60% 더 끌어올려야 한다. 수확 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밀, 기후변화에 잘 적응하는 밀, 병충해에 강한 밀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이유다. 밀 게놈 해독은 이를 위한 첫 걸음이라는 평가다. 

서 교수는 “밝혀낸 밀 유전자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연구해나갈 계획”이라며 “곡물 중 가장 큰 밀의 지도가 완성된 만큼,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벼나 보리에 대한 연구도 더욱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영혜 기자 yhlee@donga.com]


https://news.v.daum.net/v/20181117140015459?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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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쇼유 라멘



일본이 2차대전에서 항복했을 때 폐허가 되었다. 미국의 폭격으로 200만 채의 건물이 파괴되거나 부수어지며 굶주린 일본인들은 식량을 점점 암시장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도시의 암시장에서 라멘은 일본 요리의 중요한 부분으로 떠올랐다.  

Japan Quarterly에 의하면 라멘은 중국 이민자들이 19세기 들어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했는데, 원래는 중국식으로 구운 돼지고기를 얹은 국수였다. 1945년 12월, 일본은 42년 만에 최악의 벼 수확량을 기록했다. 조선(원문엔 중국인데, 중국은 일본의 식량생산기지의 역할을 한 적이 없기에 글쓴이의 오류라 생각하여 조선으로 고쳤음)과 타이완의 전시 식민지에서 발생한 농업 손실로 인해 쌀 생산량이 급감했다. 이는 일본의 쌀에 기반한 식문화에서 밀 국수가 중요해진 요인이었다.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한 뒤, 미군은 1945-1952년까지 이곳을 점령했따. 식량난에 직면하여 미국인들은 엄청난 양의 밀을 일본으로 수입하기 시작했다. 1948-1951년까지 일본에서 빵 소비는 26만2121톤에서 61만1784톤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밀은 대부분의 일본인이 암거래 음식 노점상에게서 먹었던 라멘으로 흘러갔다. 일본에서 암시장은 전쟁통에 존재해 왔다. 그러나 전쟁의 마지막 몇 년 동안과 점령 기간 동안 점차 매우 중요해졌다. 정부의 식량배급 체계가 예정보다 20일 늦게 운영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암시장에 의존했다. 


도쿄 신바시의 암시장, 1946년


1945년 10월까지, 도쿄에는 약 4만5천 개의 암시장 매대가 존재했다고 추산된다. 또한 도쿄는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암시장인 아메요코쵸Ameyokocho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도시 중심의 철로 아래에 위치한 이곳은 사탕부터 라멘과 옷까지 모든 걸 파는 노천의 진열대로 가득 찼다. 이런번잡한 환경에서 노점상은 특유의 차르멜라라는 피리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국물과 물을 끓이는 냄비와 함께 국수가 담긴 서랍을 지닌 바퀴 달린 음식 카트인 야타이에서 라멘을 팔았다. 미국산 밀과 돼지기름이 풍부하여 가격도 저렴했다. 

그 당시, 점령 기간 동안 식당에서 음식을 사고파는 건 불법이었다. 이는 배급을 통제하려고 일본 정부가 전시에 시행하던 야외의 음식 노점 금지를 미국인들이 계속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멘을 만드는 밀가루는 제분업체에서부터  노점상에게서 보호비를 강탈하던 야쿠자가 길거리 매대의 약 90%를 통제하던 암시장으로 비밀리에 보내졌다. 점령 기간 동안 수천 명의 라멘 노점상이 체포되었다. 


상품을 몰수하는 경찰, 1949년.


하지만 1950년, 정부는 음식 노점상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밀가루의 거래에 대한 통제를 없애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라멘 노점의 수는 더욱 증가했다. 기업들은 국수와 고명, 그릇, 젓가락까지 갖추어진 야타이 완점품을 노점상에게 임대하기까지 했다.  

오늘날 팔리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라멘과 달리, 당시의 라면은 간단했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오사카나Osakana에서 라멘 요리를 강습하는 Jonathan Garcia에 의하면, 이 시기에 라멘은 쇼유(간장)에 기반한 국물에 돼지고기, 닭고기, 니보시niboshi (말린 정어리)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양념을 하는 건 국물 냄비에 섞었고, 노점상은 하루종일 그걸 보충했다. 요즘 라멘은 국물을 붓기 전에 쇼유나 다른 재료와 함께 개별적으로 양념을 한다. 

지방과 강한 풍미가 풍부한 음식은 “보양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라멘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역사(Untold History of Ramen)>의 저자인 교수 George Solt 씨는 말한다. 라멘은 전통적인 일본 요리인 해초에 기반한 자극적이지 않은 국수 국물과 아주 달랐다.  코베 야마테 대학에서 일본의 전통 식문화 교수이자 일본 음식에 대한 글을 쓰는 오쿠무라 아야오Okumura Ayao 씨는 예전 1953년 처음으로 라면을 먹고 충격을 받았는데,  “이 국물을 먹고는 더 커지고 강해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라면을 파는 야타이


미국인들도 밀과 동물성 단백질의 영양학적 우수성을 적극 홍보했고, 라멘은 영양가가 높다는 신망을 얻으며, 배급에 지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불경기에 라멘 야타이를 운영하는 일은 소규모 창업이 아직 가능했던 몇 안 되는 기회 가운데 하나였다. 폭격을 당한 도시에서 노동자 계급이 야타이 주변에 모여 라멘을 먹으면서, 점차 라멘은 도시의 생활과 연관이 되었다. 

라멘은 아마 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일 것이다. 도쿄에만 약 5천 곳의 라멘 가게가 있다. 그러나 경제적 필요성, 미국의 밀, 중국 요리의 영향이란 과거의 조합이 라멘을 주류로 나아가게 했으며, 이후 일본이 먹는 방식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how-did-ramen-become-popu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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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이짓기(간작)의 전형입니다.

 

가(밀)라는 작물의 사이(공간)를 이용해 나(콩)라는 작물과 수확기의 사이(시간)를 활용하여 한 농경지에서 여러 작물을 재배하는 농법이지요. ‬




나중에 밀이 익어서 수확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 공간은 콩밭이 되지요.

아래 사진은 밀이 다 익어서(위) 수확하고 20일 지난 뒤의 모습(아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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