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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강현-한국민속학의 범주와 영역의 혼재.pdf


이 논문은 부제에도 달려 있듯이 ‘한국 민속학의 비속화와 아마츄어리즘’이란 문제를 전면으로 부각시켜 논의하고 있다. 필자의 주장에 따르면 비속화와 아마츄어리즘은 일반인이 아니라 학문을 전공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다. 민속학과 일부 중첩되는 학문 영역을 다루면서 마치 그것이 민속학의 전체인양 호도하는 다른 학문의 학자, 외국에서 수입된 이론을 맹목적으로 좇아 한국의 민속, 더 나아가 민속학을 재단하는 학자 들이 대표적이다. 민속학을 ‘아무나 민속학’으로 다루는 사람들에 의해서, 민속학은 ‘거리의 여인’과 같은 취급을 당하며 아마츄어리즘으로 전락하는 ‘방황’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필자가 이러한 내부 비판에 나선 이유는 필자 스스로도 밝혔듯이 “학문에서의 발전,” 민속학의 발전을 위해서다. 필자는 학문의 발전은 ‘엄정한 내재적 비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소신에 따라 스스로 총대를 메고 나선다. 한마디로 그동안의 비속화와 아마츄어리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맞는 민속학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먼저 한국 민속학의 현주소를 확인한다. 그가 파악한 한국 민속학의 위치는 첫째 아직 식민사관을 해결하지 못했고, 둘째 학문 재생산 기반이 취약하며, 셋째 민속학의 학문적 정체성이 미흡하다고 본다.

이렇게 한국 민속학의 현재를 진단한 뒤, 한국 민속학이 학문적으로 존립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 그래서 민속학·민속학사·민속사라는 항목을 설정해 한국 민속학의 일반적 정황을 살펴본다. 먼저 민속학과 관련해서는 “결론적으로 한국 민속학의 학문적 정체성은 … ‘종합학문’적인 성격을 지니면서, 종내는 ‘독립학문’으로 나아가는 노정에 있다”고 파악한다. 그래서 “학문적 개방성과 독자성란 양면을 고려하는 가운데 명실상부한 ‘21세기 민속학’으로 정당한 자리매김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민속학사와 관련해서는 민속학사를 연대기적으로 크게 6개의 시기로 나눈 뒤, 북한의 민속에는 무관심한 남한 민속학의 경향성을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민속사와 관련해서는 민속학과 연관 있는 고문헌 연구와 사회변동에 따른 민속의 변화 연구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필자가 전망하는 민속학의 미래는 그가 쏟아낸 비판처럼 암울하지만은 않다. 이 논문이 갖는 의의는 바로 이 점에 내포되어 있다. 이 논문은 민속학에 대한 내재적 비판이란 형태로 우리나라 여느 학계에나 만연해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제시하는데, 민속학에는 아직 판도라의 상자처럼 희망이 남아 있다. 필자가 제시하는 희망은 일반인의 민속에 대한 수요 급증, 연구자의 저변 확대, 다양한 민속 관련 박물관의 등장 등이며, 그 가운데 민속학의 현장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고 있다. 바로 이러한 민속학의 현장성을 바탕으로 앞에서 제시한 민속학의 ‘종합학문’적인 성격으로 인해 가능해지는 여러 학문과의 연계를 통한 연구를 강화하면서, 한편으로는 민속학 나름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독립학문으로서의 체계를 세워나가는 일이 민속학과 그 연구자들의 미래를 보장하는 ‘법고창신의 길’이자 21세기 민속학의 희망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다. 먼저 필자의 논의 전개가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점이다. 비판은 냉철함을 무기로 사실에 근거하여 이루어질 때 더욱 효과적이고 의의가 있다. 그런데 필자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이 감정적으로 글을 쓰고 있어 아쉽다. 그것이 필자가 전제했던 “새로운 글쓰기”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필자가 의도한 ‘논쟁의 촉발’이 아니라 ‘싸움의 촉발’로 이어질 듯하다. 다음은 북한의 민속학과 관련해서이다. 현재와 같은 정치상황에서는 북한의 민속에 관심을 기울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민속학은 필자의 지적처럼 현장성이 강조되는데 북한은 접근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필자의 ‘통일의 민속학’이란 주장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으나, 현실적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또한 처음부터 ‘봉급쟁이 연구자’나 ‘官俗’을 위한 연구를 위하여 공부를 시작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 생계의 문제로 인해 일어나는 일인데, 이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 필자의 견해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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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등학-21세기 민속학의 과제와 전망.pdf


민속학계에서는 그동안 ‘민속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논의를 전개해 왔다. 필자는 그 논의의 결과, 한국 민속학은 “인접학문이 많은 것을 특징으로 하는 독립학문이며, 과거는 물론 당대의 문제를 다루며, 나아가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는 합의를 이루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제는 그 합의를 “실천에 옮기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근대 이후 형성된 “민속의 성격과 범주를 다시 검토하고 아울러 21세기 민속학이 감당할 과제를 모색”한다.

먼저 필자는 민속을 크게 ‘전통민속’과 ‘신생민속’으로 나눈다. 그에 따르면 전통민속은 생산을 담당한 피지배계급인 ‘민중’이 형성한 기층문화이고, 신생민속은 근대의 신분제 폐지와 산업화가 전개되며 도시에 사는 소시민과 서민이 형성한 범류문화이다. 필자가 범류문화에 주목한 것은 새롭게 형성된 중산층의 민속을 다루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러한 범류문화를 예술 영역 중심의 대중문화와 생활 영역 중심의 민속문화라는 두 범주로 나눈다. 필자는 이러한 범주화를 통해 기존의 민속학에서 다루던 과거의 민속에서, 사회의 변화와 함께 새로이 형성된 현재의 민속을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필자는 이러한 범주화를 바탕으로 “민속학이 나아갈 방향과 과제”를 살펴본다. 그는 “민속학계에는 과거 읽기와 현재 읽기의 두 가지 시각이 서로 다른 비중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신생민속을 다룰 때는 “그 연원이 오래지 않기에” “자연스럽게 현재 읽기”와 연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근대 이전의 전통민속을 다룰 때는 과거 읽기의 방식이 알맞은데, 그러한 연구가 있어야 현재 읽기도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생활문화가 민속학의 화두”로 떠오르는 21세기 민속학에서는 현재의 생활문화를 읽는 현재 읽기의 방식이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과거 읽기와 현재 읽기가 균형을 이룰 때, 민속학이 역사성을 띠는 전통민속의 흐름도 놓치지 않으면서 당대의 신생민속을 다루는 과거학이자 현재학으로 정립될 수 있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민속학의 현장성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민속학이 과거학이자 현재학으로 정립될 때 비로소 인접학문의 종속학문이 아닌 독립학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제 필자의 논문을 읽으며 드는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겠다. 필자가 ‘문화적 실현주체’로 주목한 도시의 서민(민중)과 소시민 및 그들의 범류문화와 그에 대비되는 상류의 엘리트 및 상류문화라는 구분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민속학에서 다루는 대상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과 그 문화라고 볼 수 있다. 헌데 그의 구분에 따르자면, 과거의 지배계급은 한반도에 살던 사람이 아닌 것인지, 또 그들에게는 민속이 없었던 것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현대의 상류층에게는 민속이 없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현대는 과거처럼 지배-피지배계급이란 구분으로 명확하게 계층을 나누기 어려운 시대다. 그만큼 어디까지가 상류문화이고 어디까지가 범류문화인지 그 경계를 나누기도 쉽지 않다. 그의 지적처럼 “현대민속은 더 이상 기층만의 문화”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필자는 여전히 ‘기층의 민중’이 ‘민속문화’를 향유한다고 보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아직도 일반 서민, 민중은 지배계급의 억압을 받으며 자신들만의 고유한 어떠한 문화를 누리고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닌가. 그의 이러한 시각은 아키바 다카시의 ‘이중구조’ 논리라는 이분법적 관점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이분법은 문화현상을 我와 他로 나누어 될수록 빨리 쉽게 분류·이해하려는 데에서 온 것이다. 현대 사회와 그 문화는 다양한 사람들로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다. 그것은 교통과 통신 같은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때 현재학으로 정립하고자 하는 민속학에서는 민속문화를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필자가 언급했듯이 기능 등의 새로운 분석법이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다.

또 필자도 인정하듯이, 그의 문화 구분 ―고급문화, 범류문화(대중문화, 민속문화)― 은 “주로 예술에 한정될 때만 타당하다.” 그렇다면 다양한 사람들이 영위하고 있는 현대의 생활양식은 어떻게 범주화하여 연구대상으로 다룰 것이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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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선-이능화 학문의 방법론적 의의와 한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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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돈희-한국민속학사의 재조명.pdf


필자는 그동안 한국 민속학사와 관련된 선행연구 들에서는 한국 민속학의 학문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기원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현 시점에 더 중요한 일은 한국 민속학이 갖는 ‘역사복원적’이고 ‘민족주의적’이라는 이론의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한국 민속학이 지닌 이론적 문제점의 원인으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다. 물론 실학이 한국 민속학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주장이 지닌 몇 가지 한계를 지적한다. 첫째 조선과 유럽의 정치경제적 상황은 차이가 있었다는 점, 둘째 유럽 민속학자와 조선 실학자의 관심이 서로 달랐다는 점, 셋째 실학자의 민속학적 관심이 과연 학문적 내용이냐는 점이다.

필자는 한국 민속학이 실학보다는 한국과 일본의 독특한 사회적 관계, 곧 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 근거로 리차드 M. 도슨이 한국 민속학 연구의 특징으로 지적한 역사복원적이라는 점과 민족주의적인 관점이 강하다는 점을 든다. 이를 증명하고자 그는 한국 민속학의 선구자라고 평가를 받는 최남선의 민속학 연구에 주목한다. 최남선의 민속학 연구가 정치·사회적 및 지적인 상황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지성사의 측면에서 분석함으로써, 한국의 민속학이 “일본 민속학의 영향으로 형성되었다는 종래의 민속학계 주장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먼저 필자는 최남선이 살았던 정치·사회적 배경을 분석한다. 그가 가장 크게 주목하는 것은 3·1운동 이후 실시된 1920년대 일제의 ‘문화동화정책’이다. 이 기간에 일련의 민족주의적 성격을 띤 문화운동이 활발히 일어났기 때문인데, 필자는 조선 민속학 연구가 바로 그러한 시대의 산물이라 본다. 당시 그를 통해 탄생한 문화민족주의자들 사이에 “조선사회의 개혁을 위하여 조선의 전통문화 위에 서구의 가치와 제도를 접목시킨” 신문화의 창출이란 목표가 있었는데, 그 결과 조선 고유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민속학 연구가 태동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언급처럼 이때는 일제의 문화동화정책이 실시되던 시점으로, 그 정책과 민족문화운동의 상관관계를 더욱 면밀히 살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공산주의 민족주의자’는 “체계적으로 사정없이 탄압제거”한 반면 ‘문화민족운동가’는 너그러이 대했는지, 또 왜 ‘문화민족운동가’의 대다수는 이후 일제의 정책에 동조했는지 더 상세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는 이렇게 한국의 민속학 연구가 전통문화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했다고 전제한 뒤, 일본 학자들의 조선연구와 그에 대한 대응논리로 민속을 연구한 최남선을 대조하여 살펴본다. 당시 일본에는 크게 두 가지 학적 연구의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에도시대에 일어나 메이지시대까지 전해진 국학자 집단의 연구로, 이들에 의해 ‘日鮮同祖論’이 확립된다. 다른 하나는 독일의 사학자에게 훈련을 받은 신진 사학자들로서 과학적 방법을 중시한 동양사학자 집단이다. 이들은 국학자 집단의 일조동조론은 부정하나, 조선의 사회와 역사를 ‘타율성’과 ‘정체론’으로 정의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최남선은 이러한 연구에 대한 반발로 폭넓은 대응논리를 연구한다. 필자는 그 가운데 최남선의 대표적인 민속학 연구 분야라고 볼 수 있는 「불함문화론」, 단군에 관한 논문들, 「살만교차기」를 선택하여 ‘지성사적인 측면’에서 상세한 분석을 펼친다.

최남선은 당시 인류학계에 유행하던 ‘Age-area 가설’을 활용한 「불함문화론」을 통하여 첫째, 조선 문화는 “중국과는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별개의 문화라는 점”을 역설하여 조선인의 자주성을 고양하고, 둘째, “불함문화의 중심지가 바로 조선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일선동조론을 반박하는 동시에 조선 문화의 우월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그리고 단군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는 “조선 민족을 단결시키는 구심점”인 단군을 내세워 조선의 독자성과 역사성을 강조하고, 나아가 일선동조론을 부정한다.

마지막으로 최남선은 그러한 성격의 단군을 무당과 연결시킨다. 필자는 최남선의 그 논리에 무속은 외래종교가 아닌 조선 고유의 사상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점, 일본의 神道처럼 “민족의 구심점을 찾아서 강력한 민족접착제를 형성”하려는 점이 깔려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의도는 최남선이 ?계명?이란 잡지에 이능화의 「조선무속고」와 자신의 「살만교차기」를 함께 실은 이유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필자의 주장처럼 한국 민속학이 일본 민속학의 영향이 아니라 일제의 영향으로 민족문화의 자각에 따라 독자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면, 왜 이렇게 최남선의 논리 전개가 일본의 그것과 유사한가 하는 점이다. 필자가 앞서 말했듯이 “사회적 관계의 긴밀성” 때문에 “민속학의 학문적 유사성”이 보이는 것뿐일까? 필자의 사회적 관계의 긴밀성에 대한 논의는 납득할 만하나, 과연 민속학의 학문적 유사성은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런 것인지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든, 일본과 한국의 초기 민속학이 유사하다는 사실은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한국 민속학의 독자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지나치게 논리를 비약하고 있는 듯하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 따르면, 일제는 조선의 식민통치 등의 이유로 일선동조론이나 타율성, 정체론과 같은 논리가 필요했고, 조선은 그에 저항할 대응논리가 필요했다. 이렇게 본다면 필자가 주장하듯이 한국 민속학은 일본 민속학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필요에 따라서만 일어난 것이라고 하는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다. 최남선의 논리 전개를 통해 보이듯이, 오히려 한국 민속학은 일본 민속학의 논리를 끌어다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할 듯하다. 두 나라의 민속학은 제국주의와 민족국가의 형성이란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탄생한 ‘도플갱어’가 아닐까.

한국 근대 사회의 형성에 일제가 끼친 영향은 참으로 거대하다. 하지만 일제가 조선을 발전시켰다는 논리를 극복하기 위하여 조선 사회에 이미 자본주의의 맹아가 있었다는 주장이 그렇듯이, 일본의 민속학이 아닌 일본의 영향으로 한국 민속학이 태동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제대로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아닌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일본 민속학이 한국 민속학에 끼친 영향을 제대로 평가하고 반성하는 것이 한국 민속학의 정립과 발전을 위해 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한다. 그런 맥락에서 필자가 최남선의 민속학 연구에서 이어진 한국 민속학사의 흐름 ―민족주의적 관점, 무속을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보는 점― 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그때 형성된 물길이 해방 이후 그대로 한국 민속학으로 이어져 이론적 문제점을 낳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화의 이면에는 인간의 보편성과 특수성이 함께 내재해 있다고 생각한다. 학문은 그 두 측면을 살펴야 하는데, 최남선 이후 한국 민속학의 경우 필자의 지적처럼 특수성에만 빠져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최남선이 역사문헌적 방법론을 중시한 점이 야나기다 구니오의 주장과 다른 독특한 점으로서 꼽고 있는데, 일본 민속학의 방법론이 진짜 그런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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