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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GENE LOGSDON


난 최근에 농부가 역사학보다 현대 과학에서 지속가능한 농사에 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농업은 "앞으로" 거대한 도약을 해왔고 고고학은 "뒤로" 거대한 도약을 해왔는데, 둘은 모두 흥미롭고 몰입하게 만든다. 둘의 작업은 불리한 조건에서 행해진다. 고고학은 조용한 과거를 연구하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걸 걱정한다. 농업은 진실로 판명되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를 추정한다. 두 과학은 뚜렷하게 다른 철학을 지닌다. 농업은 돈이 되는 사업으로 농사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고고학은 왜 수익성 있는 농사가 문명의 파괴를 이끄는지 발견하는 데 관심이 있다. 

고고학자는 특히 중미와 북아프리카에서 줄곧 새로운 정보를 찾고 있는데, 두 사례의 과거는 그렇게 조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자기록과 시일을 알 수 있는 비문자기록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중미의 마야 제국과 북아프리의 카르타고 제국이 그렇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마야 제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수천 년 오래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새로운 증거를 보고하고 있다. 유카탄반도는 역사학자들이 이전에 결론을 내린 것보다 수백 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살았다. 그런 수백 만을 먹인 것은 당시 수익-농사였던 매우 발전된 옥수수(maize 또는 corn) 농업이다. 그러나 마야인들이 옥수수 수확량을 높이는 더 기발한 방법을 알아낼 때마다, 인구가 증가하여 더 많은 수확량을 필요로 했다. 한 예로: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이 빠질 수 있어 습지의 땅에서 많은 진흙을 퍼다가 날라서 옥수수밭을 만들었다. 슬프게도 마야인들은 수익-농사로 얻은 부를 특정 종류의 시멘트가 필요하고 그 시멘트는 어마어마한 양의 나무를 태워서 만들어지는, 거대한 피라미드와 요새를 건설하는 데 사용했다. 나무를 태우고 더 많은 농사를 위해 땅을 개간하여, 숲은 파괴되었고 토양침식이 뒤따랐다. 또 부도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으로 사람들을 꼬드겼다: 전쟁. 그리고 사람들은 너무 많은 옥수수로 식습관 문제를 갖기 시작했다. 이와 비슷한 소리를 들어보지 않았는가?

기원전 약 100년 로마가 카르타고를 파괴했을 때, Scipio는 흥미롭게도 놀라운 어떤 것을 구했다: 책들이다. 무엇에 대한 것인가? 농사. 저자 Mago는 어떻게 강우량이 제한된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농사짓는지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당시 북아프리카의 농민들이 여름에 쓰려고 모든 종류의 수로, 저수지, 계단식 농지, 심지어 거대한 물통을 가지고 어떻게 겨울 비를 저장했는지 읽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당시에는 사막이 아니라 대초원에 드문드문 나무가 있던 그 땅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북아프리카는 로마 시민에게 몇 세기 동안 거의 공짜로 곡물을 제공했다. 다시 한 번 부는 부족과 국가들 사이의 거의 끊임없는 전쟁을 이끌었다.

오늘날 튀니지에서는 지금은 사막인 곳에서 산산조각으로 폐허가 된 원형극장을 볼 수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생겼다. 거기에는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그곳은 현재 대부분 모래로 묻혔는데, Thysdrus란 고대 도시가 있던 곳이다. 북아프리카 전역에 거대한 사원,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대리석 욕조, 밀과 올리브유를 저장하는 커다란 창고가 있는 도시들이 묻혀 있다. 그것은 이 사막이 기후변화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당시보다 오늘날 북아프리카에는 비가 훨씬 많이 온다. 전쟁과 부의 낭비에 덧붙여 일어난 것은 사하라 사막 가장자리에 있는 고지대에서 지나친 방목이 이루어지고 흙이 농지에서 쓸려가 버린 것이다. 유목민은 그들의 흙을 따라 북쪽으로 갔고 농민과 목동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분열과 혼란은 훌륭한 건조 지역 농법을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난 Thysdrus의 원형극장 사진을 보면서 캔사스시티에 있는 두 경기장이 생각난다. 그곳도 역시 언젠가는 사막에서 산산조각이 난 폐허가 될 것인가?

오, 이 바보 같은 작자야. 여긴 문제 없어. 우린 그저 우리의 놀라운 옥수수 유전자를 좀 더 채우고 더 큰 트랙터를 만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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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전통농업 - 테라 프레타Terra Preta

 

 

 

환상의 엘도라도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일확천금을 꿈꾸는 수많은 탐험가와 정복자 들이 스페인에서 라틴아메리카로 건너갔다. 그들 가운데 아마존을 탐색한 프란치스코 드 오렐라나Francisco de Orellana가 있다. 큰 강의 일대를 항해하고 아마존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때이고, 용감한 여전사에게서 공격을 받았다는 기록이 나중에 아마조네스의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1542년에 아마존의 지류 가운데 하나인 리오 네그로Rio Negro 유역을 탐험했을 때는 농장과 마을 및 거대한 성벽을 두른 도시까지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그 100년 뒤. 황금에 매료된 사람들이 숨겨진 황금도시 엘도라도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선교사를 포함해 누구 한 명 오렐라나가 보았던 도시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이 찾아낸 것은 다만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며 수렵채집을 하던 사람들뿐이었다.

 

 

오렐라나의 두상. 탐험가라기보다 애꾸눈 해적의 느낌이다.

 

 

가운데를 관통하는 강이 리오 네그로.

 

 

과학자들도 오렐라나가 허풍을 떨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까닭은 농업에 있다. 어떠한 문명이든 그 탄생의 핵심에는 농업이 있다. 생산성이 높은 농업이 없으면 많은 인구를 먹이지 못한다. 열대우림은 언뜻 보면 생산적인 듯하지만, 그 흙은 농업에 알맞지 않다. 현대의 화학 자재를 쓰더라도 아마존의 척박한 흙에서는 지속적으로 식량을 생산할 수 없다.

 

“아마존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을 개발하려는 온갖 노력은 실패하고 있다.”

 

스미소니언 학술협회(Smithsonian Institution)의 베티 메거스Betty Meggers 교수도 이렇게 기술했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선주민들이 번영한 도시문명을 이룩할 수 있을 리 없다는 것이 과학자 대부분의 합의였다.

 

 

고대 볼리비아 문명의 발견

 

하지만 1960년대에 고고학자 빌 데네반Bill Denevan은 모호스 평원(Llanos de Mojos)에서 기묘한 직선의 줄무늬 도안이 있다고 지적한다. 모호스 평원은 오렐라나가 항해한 아마존 하류를 2000㎞나 거슬러 올라가 볼리비아에 있는 사바나 초원이다. 홍수와 건조한 날씨가 번갈아드는 극단적인 기후 조건이라, 작물도 재배하기 어렵고 사람도 조금밖에 살지 않는다.

 

 

모호스 평원.

 

 

그런데 펜실베니아대학교 박물관의 고고학자 클락 에릭슨Clark Erickson은 이 데네반의 발견을 더욱 탐구한다. 에릭슨 박사가 먼저 관심을 기울인 것은 드넓은 사바나 평원 군데군데 수많은 숲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오아시스에서는 명확히 인류가 주거했다고 보이는 흔적이나 기원전의 토기 파편이 발굴되었다. 도기의 수는 수렵채집인이 썼다고 보기에는 아무리 보아도 너무 많았고, 높이 18m의 제방까지 있었다. 1617년 스페인 사람들이 행한 원정에서도, 마을마다 이어지는 높은 제방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것은 항구적인 주거지, 몇 천 명의 사람들이 모인 문명이 일찍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시리오노족Siriono族이 쓰는 말도 과거의 단서가 된다. 옥수수나 면, 염료식물에 대한 단어가 있는 것은, 이전에는 수많은 작물이 재배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툴레인Tulane대학의 윌리엄 발리William Balée 교수는 2000년 전에 재배되었던 식물의 단어까지 있다고 기술한다.

 

인류학자 마이클 헤켄버거Michael Heckenberger도 중앙 아마존에서 쿠이쿠루족Kuikuru族과 우연히 맞닥뜨렸을 때, 그 복잡한 사회구조에 놀랐다. 아마존의 수렵채집 부족은 소규모에 평등한 구조라는 것이 그때까지의 견해였다. 하지만 헤켄버거에 따르면, 쿠이쿠루족의 계층구조는 아무리 보아도 300명의 규모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쿠이쿠루족은 인류학자가 말하는 수렵채집인이 아니라, 옛날에는 지금보다 몇 배의 규모인 복잡한 사회, 오렐라나가 말한 ‘선진사회’를 이루고 살았다는 것을 추측하게 한다.

 

 

쿠이쿠르족의 부족민 그림.

 

 

에릭슨 박사와 발리 교수는 평원에 남은 쭉 뻗은 제방이 홍수를 막으려고 인공적으로 쌓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것과 나란히 뻗은 운하도 옛날에는 사람이 관리하며 물을 댔던 자취일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평원을 보면 보이는 줄무늬 도안도 높은 두둑의 밭 체계에서 나온 유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 넓이는 몇 천 평방킬로미터에 미친다.

 

“이는 이집트 사람들이 했던 일에 필적합니다.”

 

에릭슨 박사는 말한다. 곧 일찍이 볼리비아에는 거대한 문명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관개나 밭의 유적이 있다고 해도, 농업에 알맞지 않은 열대에서 어떻게 옛날에는 몇 십만의 사람을 먹였을까?

 

 

기적의 흙 테라 프레타

 

숲을 베고서 모조리 태운다. 이른바 부대밭 농업은 지속가능한 농법이 아니다. 열대우림의 토양은 위약하고 척박하여, 숲을 베어 없애면 강한 햇빛이나 호우에 드러난 토양에서 양분과 미네랄 성분이 곧바로 용탈된다. 그 결과 나중에는 사막이 된 불모의 땅밖에 남지 않는다. 아마존 토양의 대부분에서는 1모작 이상 할 수 없다. 화학비료를 써도 같은 곳에서 3모작의 수확까지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요컨대 대규모 농업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이 생태주의자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1950년대에 먼저, 신출내기 연구자였던 네덜란드의 토양학자 빔 솜브로크Wim Sombroek는 아마존의 땅을 여행하다가 놀랄 만큼 풍요롭고 비옥한 토양을 발견한다. 솜브로크는 나중에 국제 토양 조회·정보 센터(International Soil Reference and Information Centre)의 소장, 국제 토양과학 학회(International Society of Soil Science), 현재 국제 토양과학 연합(International Union of Soil Sciences)의 사무국장이 된 인물인데, 그의 1966년 저작 “아마존의 흙”은 브라질 사람들이 테라 프레타Terra Preta라고 부르는(지금은 아마존의 검은 흙Amazonian Dark Earth) 기묘한 흙을 처음으로 보고한 연구 보고서가 되었다.

 

 

검은흙, 테라 프레타.

 

 

이 검은흙은 농업에 적합하지 않은 열대에서도 풍부한 수확을 보장한다. 예를 들면 브라질의 아마존 중부 아쿠투바Açutuba에서는 40년이나 거름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박사논문을 위한 연구를 한 이후 테라 프레타에 매료된 바이로이트대학University of Bayreuth의 브루느 글라서 박사는, 그 땅심은 지구에서 가장 비옥하다고 하는 연토양(Mollisols)이나 체르노젬 토양(Chernozems)에 필적한다고 했다.

 

 

연토양

 

 

체르노젬. 

 

“인접한 척박한 땅에서는 타피오카밖에 재배할 수 없는데, 테라 프레타에서는 파파야나 망고 등 수많은 돈벌이 작물을 재배할 수 있습니다. 콩이나 곡류의 수확도 비옥한 토지의 배나 됩니다. 게다가 테라 프레타에서는 둘레의 흙보다 약 3배나 많은 유기물, 질소, 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보통을 넘는 바이오숯(biochar)이 있습니다. 다른 토양에서보다 70배나 많은 평균 50t/㏊의 바이오숯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브라질 농업연구공사(Embrapa)의 토양연구자 벤세슬라우 텍세이라Wenceslau Teixeira도 열대 토양에는 일반적으로 모자란 인, 칼슘, 아연, 망간 등의 원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보통의 열대 토양과 달리, 강한 햇빛이나 호우에 몇 백 년이나 드러나 있어도 땅심이 떨어지지 않는다. 텍세이라 씨는 마나우스Manaus에 있는 농업공사의 시설에 테라 프레타로 밭을 만들고 시험을 행해 그 땅심의 회복력에 놀랐다.

 

“1년생 작물을 재배하여 강한 햇빛이나 비에 드러나는 것은 흙을 망치는 일로서 열대에서는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40년이나 벼, 옥수수, 타피오카, 콩 등 온갖 작물을 재배할 수 있었습니다.”

 

텍세이라 씨는 지금 바나나와 다른 열대작물도 시험하고 있다.

 

 

 

바이오숯

 

 

 

선주민들의 숯 굽기가 만들어낸 인공 토양

 

이 경이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흙이 어째서 아마존에 있을까? 그것은 어떤 유래가 있을까? 그 정체를 둘러싸고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 토양이 아마존에 사는 선주민들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예를 들면 고고학자 빌 우즈Bill Woods는 브라질의 타파호스강Tapajos川을 따라서 수많은 2000년 전의 유적을 발굴했는데, 사람들이 살던 곳의 흙은 어째서인지 인근 열대우림의 그것보다 훨씬 검었다. 엄밀하게 연구한 결과, 색깔 차이는 있어도 둘레에 있는 흙과 같은 것이며 단지 바이오숯이 더 있을 뿐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테라 프레타에는 선사시대의 도기 파편이 묻혀 있어 사람이 살던 흔적이 있는 곳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곧, 테라 프레타는 인공 토양으로서, 고대의 유적인 셈이다. 글라서 박사는 말한다.

 

“지금은 테라 프레타가 사람이 만들었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충분합니다. 우리는 테라 프레타에서 도기의 파편, 인간의 뼈와 배설물, 짐승의 뼈, 거북의 등딱지 조각 등을 찾았습니다.”

 

아마존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테라 프레타는 지금으로부터 500~2500년, 또는 더 이전부터 만들어졌다. 글라서 박사는 말한다.

 

“선주민들은 기원전 4000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서기 1492년에 걸쳐서 테라 프레타를 만들었습니다. 가뭄이나 강우, 그리고 열대의 뜨거움을 2000년이나 견디고, 지금도 땅심을 유지하며 부식을 유지한다는 데에 놀랄 뿐입니다.”

 

유사 이전부터 아마존의 선주민들은 대지를 바꾸고, 그 테라 프레타가 영구적인 농업을 받쳐 왔다. 그리고 그 범위도 놀라울 만큼 넓다. 고고학자들은 테라 프레타의 분포 상황을 조사하여, 오렐라나가 보고했던 곳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찾아냈다. 그 지역은 영국의 배나 될 정도로 드넓다. 캔사스대학의 지리학자로 토양학자인 윌리엄 우즈William I. Woods 교수는 “최대한 아마존의 10%가 테라 프레타이다”라고 기술했다.

글라서 박사는 그 범위는 아무도 모르나 더 넓다고 지적한다.

 

“최근 아마존 중부에 400㎞의 송유관을 부설하는 조사를 하면서 새로운 테라 프레타가 송유관을 따라 10~20㎞마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아마존의 모든 곳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버몬트대학University of Vermont의 고고학자 빌 피터센Bill Petersen은 지금은 오렐라나의 지적이 사실이었다고 본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오렐라나가 진실을 말했다면, 그가 설명했던 주민들은 모두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비참한 일이지만, 유럽인은 선주민이 저항력을 갖지 못했던 병인 천연두, 독감, 홍역을 가져왔다. 곧 오렐라나는 아마존 고대 문명을 직접 눈으로 본 최초이자 최후의 유럽인이 되었다.

 

 

살아 있는 흙

 

하지만 아마존의 선주민이 남긴 유산은 지금도 계속 살아 있다. 테라 프레타를 분석한 토양학자는 그 경이적인 특성, 특히 몇 백 년이나 그 양분의 수준을 유지하는 성능에 놀랐다. 게다가 테라 프레타에는 다른 두드러진 능력이 있다. 마치 살아 있는 듯이 해마다 비옥한 땅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테라 프레타는 그 높은 생산성 때문에 현지에서는 파내서 판매하고 있다. 운동장의 잔디밭에 쓰려고 약 600달러/톤, 인터넷에서는 250g/44유로에 팔린다. 하지만 브루노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판매 목적으로 파내서 약간의 층밖에 남지 않으면, 그것은 재생되지 않습니다. 투입된 이하로 양분을 꺼내도 영속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식물이 성장할 수 있는 기후 조건이 존재하는 곳에서 양분이 투입되는 것보다 적은 범위에서 추출한다면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빌 우즈도 상업적으로 흙을 파내고 있는 현지의 농민을 만났는데, 20㎝의 테라 프레타를 흩뜨리지 않은 채 남겨 두면 약 20년에 걸쳐서 재생된다고 한다. 우즈는 박테리아와 균류의 조합이 이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실은 테라 프레타가 지닌 능력의 열쇠를 쥔 것은, 저온에서 연소된 식물과 부산물로 만든 숯이다. 글라서 박사에 따르면, 테라 프레타는 숯과 불완전 연소된 나무 조각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그것이 흙속에 양분을 유지하며 해마다 땅심을 유지시키고 있다.

 

2006년에 미국과 브라질의 연구팀이 행한 시험에서도 알았듯이, 테라 프레타는 지금도 살아 있으며 보통의 열대 토양보다 훨씬 미생물의 수와 종류도 많다. 열대 토양은 농사땅으로 전환하면 미생물이 급속히 사라지지만, 숯이 있다면 양분이 흡착되어 유실되지 않고 토양 안에 세균이 서식하여 공간도 공급된다. 2007년 3월, 독일 바이로이트대학의 크리스토프 슈타이너Christoph Steiner가 이끄는 연구팀은 보통의 나빠진 열대 토양에 숯가루와 목초액을 더한 것만으로 미생물이 비약적으로 증식하여 비옥한 토양을 만드는 생태계가 시작된다고 보고했다. 거름만으로 농사지은 곳과 비교하여 토양에 숯과 거름을 조합한 시험 구역에서는 수확량이 880%나 늘었다.

 

오렐라나는 선주민들이 농사땅을 만들려고 불을 쓴다고 보고했다. 그것이 숯의 기능을 알고서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글라서 박사는 말한다.

 

“아마 최초의 테라 프레타는 뼈나 음식 찌꺼기 등을 우연히 더한 것으로 생겼겠지요. 그리고 대량의 숯은 요리나 영적인 목적 때문에 저온의 불꽃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브라질 상파울로대학의 고고학자 에두아르도 고에스 네베스Eduardo Göes Neves도 선주민들이 의식하고 토양에 숯을 넣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고, 가정 쓰레기를 처분하면서 우연히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결국은 그것이 농업 생산을 받치는 자원이 되었다.

 

 

세계가 주목한 테라 프레타

 

중국과 사헬Sahel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토양 회복 프로그램이 그렇듯이, 현재 많은 프로젝트는 다만 나빠진 흙을 이전 수준까지 되돌리려고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열대 지역의 흙 대부분은 원래 생산성이 낮은 자연 상태에서는 척박하여, 그것이 빈곤의 한 원인이기도 했다. 곧 처음으로 되돌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테라 프레타를 발견한 솜브로크는 척박한 땅을 옥토로 바꾸는 비밀이 테라 프레타에 숨겨져 있지 않을까 착안하여, 그 수수께끼를 풀어 테라 프레타를 현대에 되살리겠다고 마음먹었다. 녹색혁명이 개발도상 지역에서 작물의 수확량을 극적으로 개선했듯이, ‘테라 프레타 노바Terra Preta Nova’란 새로운 테라 프레타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자급할 수 있다고 믿었다. 솜브로크는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2003년에 죽었다. 하지만 테라 프레타의 기원과 기능을 조사한 국제적인 공동 연구를 발족시키는 일에 진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브루노 박사는 지금 테라 프레타가 부활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과학적인 홍보도 있어서 지금 아마존의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유산을 자각하고 새롭게 테라 프레타 노바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1996년에 아마존에서 일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일부의 사람들, 일본계 이민자 정도밖에 테라 프레타의 높은 생산력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마존만이 아닌 온 세계가 테라 프레타에 주목하고 그것을 모방하려 하고 있습니다.”

 

테라 프레타는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는 일에도 도움이 된다. 현재 농업은 인위적인 지구온난화 가스의 1/8 이상을 발생시키고 있다. 깊이갈이 때문에 토양에 함유되어 있던 유기물이 땅거죽에 드러나면 이산화탄소가 방출된다. 하지만 솜브로크는 세계 각지에서 테라 프레타를 만들면, 그것이 토양에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윌리암 I. 우즈에 따르면 숯을 풍부히 함유한 테라 프레타는 전형적인 열대의 흙보다 탄소가 10~20배나 많다. 그리고 2007년 코넬대학의 토양학자 요하네스 레만Johannes Lehmann은 과학지 ‘네이처Nature’에서, 임업과 묵히는 밭, 1년생 작물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숯으로 만드는 것만으로 미국이 화석연료로 방출하는 탄소의 약 1/3을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테라 프레타 노바에 탄소를 격리하는 것으로 온 세계의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테라 프레타는 온난화에 대한 내성도 있다. 브루노 박사는 테라 프레타에 거는 기대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저항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토양침식과 관련하여 지구에서 가장 극단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마존의 전형적인 토양 페랄솔ferralsol이 지상에서 가장 척박한 흙이라는 점이 이 명백한 증거입니다. 이후의 농업은 극단적인 기후변동, 가뭄, 호우, 고온 등의 과제에 대처해야만 합니다. 인구 증가와 사막화로 농지에 대한 압력도 높아질 겁니다. 테라 프레타는 이러한 과제를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테라 프레타는 지속적 농업의 전형입니다. 사막화된 토지의 농지 이용과 탄소 격리 및 땅심의 유지와 증가를 통해 기후변동 완화 등 수많은 21세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테라 프레타는 다른 지역에서도 쓸 수 있다고 기술한다.

 

“지금 우리는 독일에서 테라 프레타 노바를 생산하기 위한 공장을 설립하고 있습니다. 또 그 보수력을 지닌 특수한 구조를 가지고, 예를 들면 에너지 식물인 자트로파속Jatropha屬을 재배하고자 아프리카의 건조 지대에서 테라 프레타 노바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온갖 분야의 연구자들이 지금 세계적으로 보전해야 할 세계유산으로 테라 프레타에 주목하고 있다. 아마존에서 볼 수 있는 풍화가 진행된 토양과 열대의 기후 조건은 세계의 많은 지역에 있으며, 테라 프레타에서 찾을 수 있는 토양 유형은 최대 90%가 모래, 최대 90%가 진흙인 온갖 토양을 함유하고 있다. 테라 프레타의 재생에 성공할 수 있다면, 정복자들이 찾던 금보다 귀중한 유산을 얻을 것이다. 그것은 개발도상 지역의 사람들을 먹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존에는 역시 환상의 엘도라도가 잠들어 있다.

 

 

바이오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자트로파(과테말라대황 또는 산호유동)

 

 

자토로파의 씨. 

 

 

 자트로파의 열매.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Terra Preta –Amazonian Dark Earths (Brazil), GIAHS, FAO.

 (2) Terra Preta - Amazonian Earth

 (3) The Secret of El Dorado - programme summary,BBC,2002.

 (4) Charles C. Mann,Our Good Earth, The future rests on the soil beneath our feet, National Geographic magazine,Sep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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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시한 얼굴로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아무 연락이 없어 텃밭 모임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한 마음이 한구석에 계속 남아 있었다. 11시쯤이었나 회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금 출발하니 두시간쯤 걸릴 것 같다." 

얼추 시간을 계산해보니 좀 더 게으름을 피워도 될 것 같아 좀 더 뒹굴거렸다. 뒹굴거리면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나무도감과 엊그제 새로 산 나물책을 뒤적거렸다. 어제 텃밭 주변 산기슭에서 본 나무와 풀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보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밭으로 출발하였다. 오늘은 날이 계속 우중충한 것이 일기예보에서 말한 것처럼 비가 오려나 보다. 지난 주에 밭에 물이 너무 많다고 잔뜩 걱정하며 떠난 용범이 형의 얼굴이 떠오른다. 처음에 물길을 제대로 잡았어야 했는지 원래 바닥에서 물이 솟아나는지 아직도 확실한 원인을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버릴 건 버려야지.

 

밭에 도착하여 하우스로 가려는데 용범이 형과 수옥누나가 장비를 들고 내려오고 있다. 올라갔다 다시 오는 수고를 덜고 함께 밭으로 향했다. 어제 확인한데로 밭은 여전히 물구덩이 투성이였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성한 땅을 만들기 위하여 삽질을 했다. 용범이 형도 밭의 사정을 알고 이제는 한쪽을 포기했다. 대신 살릴 수 있는 만큼이라도 살리려고 아주 열심이다.

 

그렇게 일하고 있는 중에 회장님 내외와 아이들이 도착하였고, 뒤이어 안성호 형님도 도착하셨다. 우리는 고랑을 더 확실히 파주고 물길을 제대로 잡아주었다. 물이 차 질퍽질퍽한 곳은 거기 나름대로 다양한 생물이 살라고 버려(?)두었다. 기름진 땅을 만들고자 퇴비를 퍼다 뿌려주고 땅을 잘 갈아 주었다. 뿌리만 남겨졌던 풀들도 정리할 수 있는데로 깔끔히 정리를 해주었다. 

그렇게 얼추 일을 마치니 시간은 4시가 조금 넘었다. 장비를 들고 하우스로 돌아가 저녁 먹을 준비를 하였다. 오늘 저녁은 회장님이 특별히 준비하신 삼겹살 파티다. 삼겹살 파티를 위해서 고추와 깻잎을 미리 텃밭에서 챙겨두었다. 삼겹살은 안철환 선생님이 철판구이를 알려주셔서 선생님이 만들어 놓으신 드럼통에 철판구이를 하였다. 누가 지시를 내린 것도 아닌데 각자 알아서 자신의 일을 맡아 저녁준비가 착착 이루어졌다. 회장님은 고기를 굽고, 나는 불을 지피고, 성호 형님과 용범형은 부족한 것을 채웠고, 수옥 누나와 사모님은 그릇과 밥과 저녁상을 차리셨다. 아이들은 일을 할 때부터 저들끼리 신이 나서 재밌게 놀고 있다.

 

불을 지피는 연기에 삼겹살이 구워지는 냄새가 저녁 바람을 타고 온 사방으로 퍼진다. 뱃속은 벌써부터 허기를 느끼고 입안에는 침이 고인다. 깻잎에다 삼겹살을 얹고 쌈장을 바르고 고추를 한 입 베어물고 쌈을 입 안에 밀어넣는다. 거기에 새로 한 밥까지 입 안에 넣으니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다. 마른 목은 안산 막걸리로 축이고, 시간이 갈수록 서로 간의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안철환 선생님도 한자리 끼셔서 함께 하시고픈 마음이셨을텐데, 그날 장모님과 할머님 그리고 사모님까지 함께이셔서 조금 그러셨나보다. 다들 일하고 계신데 아무리 레저농이라고 하셔도 일을 미뤄놓고 사람들하고 어울리기가 좀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중간 중간 오셔서 막걸리도 드시고 하시며 좋은 이야기도 해주신다. 농막에 대해서 용범 형이 어떻게 하실건지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나름대로 생각은 있으신데 아직 선뜻 실행하시기에는 준비가 덜 되셨는지 거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불교귀농학교에서 힘이 닿는데로 열심히 도와드릴테니 불러만 달라고 넉살좋게 용범 형이 마무리 짓는다.

 

점점 어둠이 내려올 시간인데 사람들은 서로 자리를 뜰 줄 모르고 막걸리 잔을 기울인다. 그 좋은 자리를 마침 그날이 옥금이 어머니가 생일이셔서 더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더 있다가는 뒷감당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슬그머니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길이 어찌나 아쉽던지 내내 머릿 속에서 사람들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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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섞어짓기나 사이짓기를 하면 해충 발생을 줄여주는 식물

 

 

        * 감자 ;      강낭콩, 양배추, 옥수수, 금잔화

        * 강낭콩 ;   당근, 샐러리, 오이, 꽃양배추, 감자, 옥수수, 딸기

        * 당근 ;      파, 상추, 양파, 완두콩, 로즈메리, 부추, 토마토

        * 딸기 ;      강낭콩, 상추, 시금치, 백리향

        * 무 ;         오이, 상추, 한련화, 완두콩

        * 상추 ;      당근, 무, 딸기, 양파

        * 시금치 ;   딸기

        * 양배추 ;   샐러리, 토마토, 양파

        * 양파 ;      상추, 딸기, 토마토

        * 오이 ;      강낭콩, 완두콩, 무, 해바라기

        * 완두콩 ;   당근, 강낭콩, 오이, 순무

        * 토마토 ;   당근, 파

 

2. 해충을 물리치는 혼작, 간작 작물

 

식물은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식물체나 뿌리로부터 분비물을 내어, 나쁨 균이 붙지 못 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강력한 작물의 힘을 빌려 채소의 몸을 지키게하는 것이 혼작, 또는 간작 작물이다.

 

1) 배추흰나비 유충

 

* 고추 ;  배추과의 양배추나 배추를 아주 좋아하는 배추흰나비 유충에는 고추를 혼작하면 좋다. 고추를 혼작하면 배추흰나비 유충의 어미인 배추흰나비가 붙지 못 한다. 또 응애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진딧물을 업어서 옮기는 개미에게는 고추씨를 개미구멍에 넣어주면 호과가 있다. 고추는 자연 농약이 되므로, 혼작하면 좋다. 단, 간작으로 심을 때는 키가 너무 크지 못 하게 순을 잘라 주어야 한다.

 

2) 청고병, 입고병, 만할병, 위황병

 

* 파 ;  토마토와 가지에 많은 청고병, 입고병, 수박이나 오이류에 많은 만할병, 딸기에 많은 위황병 등에는 파, 부추, 양파, 마늘 등 파 종류를 간작하거나 혼작하면 병이 예방된다. 포기 가깝게 심어 놓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아울러 파류의 간작은 다른 채소 잎에 붙어 가해하는 응애의 발생도 억제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3) 해충

 

* 마늘 ; 마늘을 주 작물로 하여 다른 작물을 심으면 작은 풍뎅이나 여러 가지 해충이 마늘 냄새가 싫어서 붙지 않는다.  

 

4) 선충

 

* 결명자 ;  토양 선충은 토마토, 오이, 당근, 우엉, 배추를 좋아해서 뿌리에 혹을 만들어 영양을 가로채곤 한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결명자와 매리골드, 달리아, 화본과 식물(벼, 보리, 옥수수)등을 상추, 쑥갓, 부추, 무 등의 채소와 함께 심으면 선충을 예방할 수 있다. 이 때 콩류와 가까이는 심지 않는다. 콩류와 사이가 좋은 근류 박테리아도 결명자를 싫어한다.

 

5) 단옥수수와 콩과(科) 작물

 

단옥수수 뿌리에서는 페니실리움 곰팡이라는 유익한 미생물이 잘 자라고, 뒷그루로 배추 재배가 잘 된다. 또 콩, 팥, 자운영 등의 콩과(科)는 긴날개노린재가 달라붙지 못 한다. 또, 콩과(科)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아주 좋아해서 공기 중의 질소를 흙 속에 끌어들여 토양을 비옥하게 하며 녹비에도 좋다.

 

6) 방울 토마토

 

 여름의 인기 식품인 방울 토마토는 무농약으로 재배할 수 있는 건강한 우량 작물이다. 이것도 혼식하면 고자리파리나 풍뎅이, 그리고 아스파라거스에 잘 붙는 잎벌레도 예방된다.

 

7) 참깨

 

* 토란과 호박 ;  호박은 작물에 이로운 익충을 불러 모은다. 긴다리벌, 노랑말벌 등 벌이 호박꽃의 꿀을 얻으면서 해충인 각시나방 유충을 포식해준다. 여러 가지 해충을 포식해주는 개구리의 은신처를 호박이 제공한다.

 

8) 허브 ;

 

* 청벌레, 진딧물;  유기농업에서는 경험적인 많은 사례가 발굴되고 있다. 매리골드, 로즈매리, 라벤더, 바질, 애플민트 등은 청벌레와 진딧물의 발생을 크게 억제한다.

 

9) 마늘과 상추 ;  마늘과 상추를 같이 심으면 잡초 발생이 억제되고 병해충 발생도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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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 동광원


저희는 ‘전통농법에서 배우자.’ 라는 취지로 취재를 다니고 있습니다. 여기는 무척 넓어 보이는데 지금 농사짓는 평수가 얼마나 되나요?

처음에는 저 위하고 여기하고 8천 평 됐어요. 그러다 저 위 4천 평은 나라 땅이라고 해서 다 나무 심어서 돌려주고, 몇 년 전에 1500평 팔고 지금은 한 3000평 될라나.


아직 토종종자가 많이 있나요?

-옛날에는 다 있었는데 지금은 힘에 부쳐서 많이 못 가지고 있어요.


지난 번 이곳에서 우엉을 얻었는데 토종인가요?

-아니요. 그건 사다 했지요. 옛날 우엉은 참 맛있었는데, 잎도 먹으면 맛있어요, 먹는 뿌리가 색깔이 새카매요. 속은 별로 안 검은데 겉이 까맣고, 키도 더 작아요. 지금 심는 건 샀어요. 전에는 자꾸 받아서 했는데 지금은 씨를 못 받아요. 그래서 씨를 잊어버리고. 그런데 보리, 밀은 씨나 안 잊어버리려고 조금씩 심어요. 점점 힘에 부쳐서 하지를 못해요.

옛날에는 씨앗가게를 가도 태백이라는 토종무가 있었어요. 무씨도 옛날에는 우리가 다 받아서 심었지. 무를 가을에 추수해서 대가리를 잘라서 묻어두면 싹이 나잖아요. 그걸 봄에 다시 통째로 밭에다 심으면 무장다리가 나와요. 거기서 꼬투리가 맺으면 그걸 비벼서 심어먹어요. 그렇게 받아서 쓰다가 80년도부터는 그냥 사다가 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봉지를 보니까 전부 이태리 어디서 오고, 내가 기막혀 죽겠네. 이제 씨앗까지 남의 나라 것을 쓰니 우리나라 토종은 다 없어지네. 그런데 그 무를 심어서 김치를 담아 먹어보니 맛이 없어요.


총각무도 씨를 받으셨나요?

-총각무는 내가 안 해봤는데, 아마 총각무도 무니까 그렇게 받으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배추씨도 옛날에는 그렇게 했지요.


배추는 어떻게 하나요?

-배추씨는 옛날에 내가 전라도에 많이 살았는데, 겨우살이를 놔두면 봄에 꽃이 피잖아요. 전라도는 따뜻해서 안 죽으니까. 여기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죠.


고추는 어떻게 농사지으셨나요?

-고추는 재래종 씨를 내 받아서 심다가 아마 80년대부터는 안 한 것 같아. 씨를 받아서 그냥 밭에다 뿌리면 한 달 만에 매운물이 빠져야 난다고 해요. 고추씨가 맵잖아. 땅에 들어가서 매운물이 빠져야 난다고 해요. 그렇게 직파해서 먹고 살았어요.


직파를 언제 하셨나요?

-고추씨는 한 3월말 경에 한 것 같아요. 얼음 녹고 싹이 나도 안 죽을 만하면 뿌렸어요.


직파할 때 수확량은 얼마나 됐나요?

-몇 백 평 심으면 그때 여기에 한 4~50명이 살았는데 그 식구가 다 먹고 살았죠. 지금하고 비교하면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직파할 때 어떤 식으로 뿌리나요?

-밭에다 할 때 고랑치고 뿌렸죠. 뿌렸다가 배면 솎아야지. 그때는 간격이 지금처럼 드물게 안 하고 한 뼘 정도된 것 같아요. 그렇게 작게 기르면 지주는 안 해도 괜찮아요. 어쩌다 쓰러지면 산에서 막가지 해다가 해줘요. 요즘은 일만 많아지고 공이 얼마나 많이 들어요.


고추에 병은 없었나요?

-네, 직파할 때는 병을 몰랐어요. 연작해도 병을 몰랐어요.


그럼 그때 배추도 병이 없었나요?

-배추가 하도 커서 한 포기 뽑아 저울에 달면 3Kg에요. 그때는 병도 없고, 벌레도 별로 없었어요. 지금은 벌레 때문에 못해요. 우리 배추가 지금 엉망이에요. 커피찌꺼기가 좋다고 해서 해보니 조금 효과는 있대요.


고추를 직파할 때 거름을 지금처럼 많이 줬나요?

-퇴비만 했죠. 옛날에는 돈이 없으니까 비료도 못 사고 순 산에서 풀을 베어다가 거름을 만들었어요. 7~8월 되면 풀을 베어서, 식구가 많으니까 지게로 져다가, 작두로 두 치 정도로 썰어서, 인분 받아서, 재면 퇴비가 아주 시커멓게 잘 되죠. 일주일에 한 번, 많이 뒤집으면 일주일에 한 네 번씩 퇴비를 뒤집어요. 그러면 아주 거름이 몽글몽글해요. 어쩌다가 비료를 좀 구하면 약이라고 조금씩 줬는데, 지금은 유기농한다고 아무것도 안 써요.


산에서 어떤 풀을 해오나요?

-갈잎이나 풀은 무슨 풀이든지 다 베지. 저런 논둑, 밭도 다 베요. 요즘 같은 때는 잘잘하게 썰어야 완숙퇴비가 되죠. 그럼 몽글몽글해서 헛칠 정도예요. 인분이 적으면 물을 뿌리고, 몇 번 뒤집어서 새카맣게 썩으면 쟁여놨다가 가을추수하고 보리 갈 때 써요. 그렇게 해두면 내년 봄에 고추, 감자 심을 때도 전부 쓰죠.


퇴비는 그냥 노지에 만드셨나요?

-옛날에 무슨 집이 있어요. 그냥 노지에다 했지요.

그리고 논거름도 갈잎으로 했어요. 4월에 갈잎이 부드럽게 나오잖아요. 옛날에는 나무가 크지 않았어요. 그럼 봄에 못자리 해놓고는 갈잎을 갖다가 논에 깔아요. 그래가지고 쟁기질 한 번 해놨다가 심으려고 할 때 쟁기질해서 써레질 한 다음 심어요. 논 거름은 그것만 했는데 그게 무척 걸어서 그것만 해도 잘 돼요.


지금은 거름을 사다가 쓰시나요?

-지금도 만들어서 써요.

작년에 저기 만들어 놓았는데 마늘 심을 것까지는 있어요. 마늘 심을 때도 다른 사람들은 약 뿌리고 비료 주는데, 마늘은 비료주면 보관할 때 잘 썩어요. 우리 마늘은 내년까지 먹어도 안 썩어요. 우리는 마늘밭에 퇴비를 땅이 안 보이게 두둑하게 깔고 갈아서 마늘을 심는데 마늘이 단단해요.

마늘도 재래종이에요. 옛날부터 지금까지 육쪽마늘이라고 쭉 심어요.


지금 농사짓는 것 중에서 채종하는 씨앗은 얼마나 되나요?

-이제는 별로 없어요. 보리, 밀은 씨앗 보존한다고 해서 문경에 좀 보냈어요.

밭벼도 오래 됐는데, 60년도에 농촌지도소 작물계장이 귀한 씨라고 심어보라고 요만큼 가지고 왔어요. 그걸 계속 심어서 내려왔어요. 이게 찰벼인데, 아무리 다른 데서 찰벼를 가져와도 그렇게 찰지지 않아요. 그걸 안 잃어버리려고 올해도 좀 심었어요.

그러고 들깨도 쭉 심고 조, 수수도 그런데, 기장만 내가 잃어버렸어요. 지난 98년에 수해가 나서 전부 떠내려갔어요. 창고가 여기 크게 있었는데 홀랑 가버렸어요.


콩 종류는 없나요?

-콩은 옛날에 옥광을 많이 심었는데, 그것도 지도소에서 갖다 줘서 심었어요. 옥광을 계속 심다가 어디 가고 지금은 어디서 들어오는 걸 심어요.

그건 크지도 작지도 않고, 벌레도 잘 안 먹고 잘 됐어요. 옛날에는 콩을 25가마니를 했는데 콩이 얼마나 좋은지 벌레 먹은 것도 없어요. 요즘도 콩은 받아서 하는데 그게 재래종인지는 몰라요.


그럼 콩은 몇 종류나 되나요?

-지금은 힘들어서 다 없애고 메주콩만 해요. 그런데 벌레가 얼마나 먹는지 몰라. 작년에도 한 2가마니 나왔는데 겨우 서 말만 메주해서 장 담갔죠.

옛날에는 콩나물콩, 서리태 같은 것도 다 심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메주콩만 간장, 된장은 먹어야 하니까 해요.


쟁기질은 어떻게 하셨나요?

-소 기르기 전에는 손으로 하다가, 한 60년도부터 93년도까지는 소로 했어요. 저 위에 4천평, 아래도 4천평을 다 손으로 파다가 소를 기르고 나서는 남반들이 와서 쟁기질을 했어요.


지금은 그냥 기계로 하시나요?

-90년도부터는 남원에서 불러다 쟁기질을 하다가 식구들도 점점 줄고, 일도 힘이 없으니 못해서 자꾸 부르려니 번거로워서 끊고, 그냥 풀밭에서 야채만 길러서 심어먹자고 해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말 농장을 하게 되면서 관리기 작은 걸 하나 샀어요. 그래서 왔다 갔다 하는 분들이 다 갈아주죠.


소쟁기와 관리기를 비교하면 농사짓기가 어떤가요?

-쟁기질 할 때는 힘든데, 관리기로 하니까 일하기는 쉽죠. 그래도 쟁기질을 할 때가 더 좋기는 한 것 같아요. 관리기는 대신 곱게 되니까 심기는 수월해요.


탈곡은 다 손으로 하시나요?

-손으로 할 것은 손으로 하고, 밭벼는 탈곡기계가 있어요. 옛날에는 발로 돌렸는데 지금은  발로 하던 거에 모터를 달았어요.


여기서 사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올 해로 만 48년이네요. 여기서 처음에는 초대 원장님하고 기관 어머님하고, 산속에 셋이 들어가서 풀막을 지어놓고 살았어요.


동광원에 대해서 듣고 싶은데, 왜 농사를 지으면서 사시나요?

-수도정신을 가지려면 첫째, 자기가 자립정신을 가져야 해요. 자기 먹을 것, 입을 것을 남한테 미루지 말고 자기가 해야죠. 종교는 희생의 종교잖아요. 자기희생이 없이는 이렇게 살 수가 없어요. 또 이웃을 내 몸같이 여기라고 했는데, 일평생을 살아도 힘들어요. 이웃을 내 몸같이 여기고, 남을 섬기라고 했는데 인간이라 그러지를 못하고 살아요. 그러니까 우리 이현필 선생님이, 당신이 못 먹고 못 입어도 다른 사람은 먹게 하셨어요. 그런 선생님 밑에서 살았는데 사람이 못 되서 부끄럽죠. 그런 정신으로 이곳을 세웠어요. 가난하고 남만 사랑하고 남을 위해서 사셨어요.

농사는 자립정신을 세워주시려고 하신 거죠. 선생님은 항상 씨앗 하나라도 아끼고, 연장을 쓰고 아무데나 던지는 건 자기를 던지는 것하고 같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농사지으면서 다 던지고 다니는데 그런 것부터 정리를 해야 돼요. 그런 걸 내 몸같이 아끼는 정신이 작은 것부터 실천을 해야 해요. 작은 걸 실천하기가 더 어려워요. 그런 걸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산다는 것이 보통 정신이 아니에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칠십 다섯이요. 옛날 같으면 저 세상 사람이죠.


마지막으로 가르쳐주실 것은 없나요?

-글쎄요. 사람이 전통으로 농사를 지으려면 정신이 똑바로 서야 해요. 식물도 사랑으로 가꿔야지 그냥 하면 뭐가 됩니까. 못 지어도 꾸준하게 사랑으로 가꿔야지.

우리 선생님이 농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어야 한다고도 하셨어요. 땅 한 평이라도 내가 관심을 가지고 가꾸고 해야지, 뭐든 내가 못 할 바에는 안 하는 게 나아요.




안산 부곡동


‘전통농업에서 배우자’고 해서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옛날 농사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농사 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데, 먼저 채종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채종을 하기는 했는데, 그랬다고 해서 집에서 다 종자를 받은 건 아니야. 더러 사서 하는 경우도 있고, 김장 같은 건 받는 사람만 받고 대부분 사서 해요.

무하고 배추는 씨를 받으려면 가을에 심은 것을 뿌리 채로 놔둬. 배추 같은 경우는 바싹 끊지 말고 잎만 따. 어느 정도 순이 남도록 해야 싹이 나니까. 그럼 위는 먹고 나머지 뿌리는 땅에 박힌 채로 놔뒀다가 보온을 해줘. 짚 같은 걸 덮어서 얼지 않게 해놨다가 봄에 날이 따뜻해지면 벗겨줘요. 그럼 제일 먼저 움이 나와.


짚 대신 요즘 쓰는 비닐을 덮어도 되나요?

-옛날에는 비닐 같은 게 없었으니까 그렇지, 비닐을 덮으면 더 빨리 싹이 나지. 그런데 싹이 날 때 짚을 너무 수북하게 덮어두면 싹이 부러질 수 있어. 그 싹을 장다리라고 해요. 거기서 꽃이 피어서 씨가 맺는 거야. 그것을 5월초 정도에 완전히 베어서 털면 씨가 나와.

이건 어느 배추든지 다 되는 거야. 조선배추도 되고, 호배추도 되는 거야. 결구되는 걸 옛날에는 호배추라고 했지. 조선배추는 통이 작아.


무는 어떻게 채종하나요?

-똑같은 방법으로 해요. 무는 자를 필요 없이 놔두면 되지. 그것도 짚을 푹 덮어주니까. 그런데 무가 추위에 약해서 더 까다롭지. 그런데 무는 봄에 일찍 심어도 여름에 씨가 생겨요. 배추도 이렇게 할 수 있는데 겨울을 안 넘기면 잘 안 크더라고. 무는 괜찮아요.


고추는 씨를 어떻게 받나요?

-고추는 그냥 심은 걸로 받는데, 보통 끝물은 씨로 사용하지 않고 처음에 맏물 좋은 것 중에 가장 잘 생긴 놈을 골라서 받고, 그게 없을 경우에는 중간물까지도 씨를 받아요. 끝물은 절대 안 써.


고추 심을 때 직파는 어떻게 하셨나요?

-지금은 온상에서 키우니 키가 크고 한 자 이상 벌려 심어서 바람에 잘 넘어가고 하는데, 지금처럼 비닐을 쓴다거나 하지도 않고 옛날에는 간격이 더 좁았어요. 대신 지주가 없어. 서로서로 의지하면서 자랐지. 그냥 나무도 크지 않으니까 바람에 넘어가지도 않고. 수확량은 더 적었지.


수확량은 얼마나 적었나요?

-지금보다 한 6~70%정도 밖에 안 나는 것 같아.


그럼 심을 때는 줄뿌림을 했나요?

-뿌릴 때 고추를 심을 수 있는 간격 정도로 골을 타고, 골에다가 심는 경우보다 두둑에다 많이 심었는데 그거야 밭에 따라서 밭이 습하면 두둑에 심고 건하면 골에다 심는 거지. 골에다 심을 때는 골을 판판하게 고르고 재를 뿌린 다음 씨를 흩뿌려.


재는 왜 뿌렸나요?

-감자 심을 때도 재를 많이 쓰고, 고추에도 많이 쓰지. 그런데 그냥 재가 아니라 오줌하고 섞은 재야. 옛날에는 오줌독에다 인분하고 같이 썩혀서 재에다가 재면 거름이 기가 막히게 좋아요. 오줌이 있다고 해서 푹 젖지 않아요. 그렇게 질은 게 아니야. 수분은 증발하고 거름 성분만 남아. 그렇게 하면 아주 농사가 잘 되지.


병해충은 없었나요?

-벌레가 더러 먹는 건 있는데 지금마냥 이런 건 없었어. 그때는 농약도 없으니까 뿌리지도 않았는데도 고추는 괜찮았어. 더러 이상한 게 나오긴 하지만 지금처럼 버릴 정도는 아니야. 탄저병 같은 건 있지도 않았어.


-희나리 진다는 것은 어떤 걸 말하나요?

희나리라는 것은 고추가 자라다가 벌레가 구멍을 뚫어놓으면 대부분 희나리가 되고, 그리고 보통 붉다가 말은 것, 병이 없더라도 제대로 여물어서 붉은 것이 아니라 약간 붉으려고 할 때 서리가 온다던지 하면 대를 뽑아놨다가 따는 걸 몰아서 희나리라고 그래. 그래도 귀하니까 그걸 모아서 빻아서 썼지. 그걸 찌개 하는데 넣어먹거나 아니면 뒀다가 봄에 들에 나는 나물 종류를 뜯어서 물김치 담글 때 넣으면, 그 고추가 맵긴 또 맵더라고 그래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나요. 그래서 노인네들이 하나 안 버려요.


고추에 거름은 얼마나 했나요?

-그렇게 엄청 집어넣지 않더라고. 오히려 지금이 더 많이 주는 것 같아. 소똥도 뭐 옛날은 풀 먹고 싼 똥이지만 지금은 사료를 먹어서 그런지 더 독해. 옛날에는 소똥거름이 그다지 거름이 되거나 독하지 않아요. 오히려 돼지거름이 좋았어요.


옛날에는 돼지 키우는 집이 많지 않았는데요?

-아니지.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거의 있던 것이 돼지야. 일부러 거름도 밟히고 설이나 명절 되면 잡아서 먹는 거야. 소고기가 비싸서 못 먹는 집은 돼지고기라도 먹었지. 그리고 먹는 것보다 기르면 목외돈 쓰는 맛에 키우지. 시골에 뭐 돈이 있어.


그럼 돼지 먹이는 무엇을 줬나요?

-먹이는 쌀뜨물을 받아서 겨를 한 움큼 같이 던져주면 그거 먹고 사는 거야. 그래도 살찌고 자라는 거 보면 우습지. 어렸을 때 ‘저 큰 돼지가 어떻게 저런 겨 한 움큼만 먹고 사나?’ 했지. 쌀겨도 있고, 밀기울도 주고, 또 호박․고구마 같은 건 속은 사람이 먹고 돼지는 그 껍질 같은 것, 참외껍질, 오이껍질 같은 걸 하나도 안 버리고 줘요.

돼지가 풀도 먹어요. 아주 풀만 먹는 건 아니지만 풀도 좋아해. 그리고 돼지한테 일부러 흙도 먹이고, 숯가루도 먹이고 또 해변에 가면 굴, 조개껍질을 주워서 빻아 먹이고 했어. 그래야 뼈가 튼튼해서 새끼도 잘 낳고, 새끼를 낳으면 돼지는 뼈가 잘 부러져요.

돼지가 둔해서 새끼를 잘 깔아 죽여서 처음에는 사람이 새끼를 관리해야 돼. 어미돼지는 좁은 공간에서 깔아 죽이는 것도 몰라. 그러니까 아주 어려서 한 일주일 동안은 젖먹일 때만 새끼를 들여보내 주는 거야. 어미가 젖을 먹이려면 드러눕는데, 그럴 때 새끼를 좁은 구멍으로 넣어줬다가 다 먹으면 다시 몰아내. 처음에는 그렇게 줬다 뺐었다 하는 거야. 그래서 새끼 소리가 밖에서 나면 성질 급한 돼지는 뛰어오르다가 다리가 잘 부러져. 그래서 굴껍질을 먹이는 거야.


돼지는 청소용이면서 거름용이네요.

-그래서 돼지는 일부러 거름도 밟고 목외돈 쓰고 그러는 맛에 키우는 거야. 돼지새끼가 옛날에 2~3천원 하면, 송아지는 보통 5만원 했지.


돼지로 거름 만드는 것은 어떻게 하나요?

-돼지한테 깃을 넣어주잖아. 그럼 거기서 오줌도 싸고 똥도 싸고 밟는다고, 자꾸 그러니까 거름이 떠요. 그렇게 깃을 넣어 주다보면 자꾸 높아지잖아. 그러면 돼지를 몰아내놓고 싹 치운 다음 또 깔아주는 거야. 그럼 자연히 거름이 생기지. 또 깃이 없으면 풀을 베다 주기도 해. 그런데 긴 볏짚을 넣으면 호구로 뜰 때 볏짚이 삭지 않았으면 뜨기 힘들잖아. 그래서 썰어 넣어주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 넣어주면 더 좋지.

그래서 집집마다 농사는 다 하니까 돼지를 키웠어. 소농, 중농, 대농이라면 대농인 사람들은 농사가 많고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잘 사니까 소가 한 마리씩 다 있어요. 그런데 5마지기 정도 하는 사람들도 볏짚은 있으니까 돼지는 다 키웠어.

 

소 없는 사람들은 쟁기질을 빌려서 했나요?

-그렇지. 소 한 마리 얻어오면 일로 갚아주지. 그런데 소 한 마리가 일해주면 친한 사이에는 하루 가서 일하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 둘이 가서 일해 줬어. 거저 해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소 쟁기질은 어떻게 하나요?

-쟁기질은 먼저 소에다 쟁기를 걸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무나 못 걸지. 그걸 걸려면 먼저 목에 멍에를 걸고, 꽉 조이는 게 있어요. 그걸 매야 멍에가 안 빠져. 그리고 뒤로 줄이 있는데 그걸 매서 쟁기에 걸어.

쟁기가 예전에는 나무로 만들었지. 지금은 쇠로 만든 쟁기가 나왔지만 똑같은 방법이지. 다만 다른 건, 나무로 깎아서 보습이라는 게 있어서 그걸 끼워서 쓰는 거야. 그러다 날이 다 닳으면 새로 갈아 끼고.

그런데 쟁기질은 조정을 잘 해야 해. 쟁기를 눌러주면 얕게 갈리고, 들면 깊이 갈리는 거야. 그걸로 조정하는 거야. 돌 때는 소를 ‘워’ 하면 서, 그때 쟁기날을 살짝 얕게 갈다가 들면 빠진다고. 그럼 다시 소를 모는데 끈이 달려 있어. 그걸로 그 자리에서 방향만 바꾸면 되는 거야.


쟁기밥은 한쪽으로 넘어가지요?

-그렇지. 쟁기밥은 왼쪽으로 넘어가지. 흙밥을 떠서 넘어가도록 볏을 만들어 놨지. 그 자체가 흙을 감아서 넘어가게 만들어진 거야.


경사진 곳을 쟁기질 할 때는 쟁기밥이 낮은 쪽으로 넘어가게 한다고 하던데요?

-그건 상관없어요. 이런 경우는 있어. 논이고 밭이고 가운데를 째서(나눠서) 이쪽은 여기서부터 갈고, 저쪽은 반대편에서부터 가는 방법도 있어.

그리고 경사진 곳에서는 올라갈 때는 자연스럽게 잘 갈리는데, 내려올 때는 잘 안 갈려. 내려올 때는 쟁기를 꼽기가 힘들거든 그래서 올라갈 때는 그대로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빙 돌아 내려와서 다시 올라가. 어쨌든 소 모는 사람은 밭을 어떻게 만들어 달라고 하면 다 알아서 해요.

길게 심는 보리 같은 경우는 한 번씩만 갈고, 밭을 다 가는 것은 싹 간다고 해. 두둑을 넓게 만들려면 서너 번 넘기면 될거야. 수수나 콩을 그루갈 때는 보통 양쪽에서 한번 씩만 넘기면 한 두둑은 나와.


소 모는 방법은 어떤가요?

-지역마다 다 조금씩 차이가 나겠지만 설 때는 ‘워’, 방향 바꿀 때는 툭툭 치면서 ‘어뎌어뎌어뎌’, 소는 말하고 달리 끌어서 조정하지 않고 끈이 오른쪽에 있어서 보통 왼쪽으로만 돌아. 곧장 갈 때는 ‘이랴’.


소한테 쟁기질 훈련은 어떻게 시키나요?

-일은 보통 코뚜레를 뚫은 어스럭송아지를 가르치는데 끌개라고 있어요. 보통 썰매 모양으로 만들어. 잘 안 닳는 통나무를 썰매발처럼 놓고, 못 같은 걸로 단단하게 한 다음에 돌 같은 무거운 걸 올려놔. 그 다음 소에다가 멍에를 걸머지고 맨 다음 그걸 끌고 다니게 하지. 이건 힘만 기르는 게 아니라 말귀를 듣게 하는 거야. 어스럭송아지를 가르치려니까 이게 말을 잘 안 듣고 왜머리 친다 이거야. 그러니까 천방지축이지.

그렇게 일을 가르쳐서 말을 잘 듣는 놈은 쟁기를 한 번 매서 시범적으로 빈 밭에 들어가서 갈아본다고. 몇 번 해봐서 쓸 만하면 어설퍼도 자꾸 쓰다보면 일을 배우지. 그런데 수소보다 암소가 일을 더 잘해. 수소는 잘못하면 받아버려서 부려먹기가 힘들어. 사람도 눈이 작으면 독하다고 하듯이 눈이 작은 소가 독해. 눈이 큰 소는 안 받아. 그래서 수소는 잘 안 쓰고, 보통 새끼 낳더라도 암소를 쓰지.


소먹이는 무엇을 주나요?

-풀도 먹이고, 볏짚도 넣어주지. 그냥 먹이는 것을 생식이라고 하고, 불 때서 쑤어주는 걸 화식이라고 하지 아마. 쒀줄 때 쌀겨를 물바가지로 큰 소는 하나, 작은 소는 반 정도 넣어서 쇠물주걱으로 막 휘젓고 뒤집다보면 짚이 여물이 완전히 익은 게 나와. 그때 콩깍지를 넣어줘. 그걸 소가 잘 먹어. 또 그걸 먹어야 소가 살이 찐다는 거야. 그거 먹는 소는 아주 잘 먹는 소야. 또 벌레 먹은 콩 같은 것도 하나 안 버리고 같이 넣어줘. 콩대는 지가 먹을 때도 골라내지만 사람이 골라줘.


아이들한테 소를 데리고 다니면서 풀을 먹이게 하는 건 왜 그런가요?

-농촌은 바쁘니까 매일 꼴지게만 매고 다닐 수 없잖아. 소를 풀밭에 메어두면 지가 알아서 뜯어먹어요. 줄이 있으면 빙 돌면서 거기 풀을 다 뜯어먹어. 그러면 다른데다 메어두면 또 뜯어먹어요. 하루에 그 정도만 먹이면 돼.

암소 같은 경우는 젖먹이가 옆에 앉아 놀아도 절대 밟지를 않아. 순한 소는 애들이 끌고 다녀도 말을 들어요. 그리고 혼자 집에 찾아오는 소들도 있어요. 소낙비가 가끔 올 경우가 있는데, 자기가 못 참으면 알아서 줄을 끊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어요.


소로는 거름을 어떻게 만드나요?

-외양간에도 깃을 넣어주지. 소가 돼지보다 더 보송보송해야 돼. 그래서 소가 더 신사라고. 돼지는 깃이 모자라서 질척질척하게 키우는 집도 있어.


소나 돼지 말고 닭은 어떤 목적으로 키웠나요?

-닭은 보통 계란을 먹으려고 키웠지. 그리고 나중에 고기도 먹고. 지금은 닭을 기계로 부화시키는데 옛날에는 자연부화를 시켜서 닭이 더 건강하고 맛도 좋았어. 또 놓아서 먹이니까 풀도 먹고 돌도 먹어서 더 건강했지. 그렇게 키우니까 알도 껍질이 더 단단한데 지금 양계닭 계란은 툭하면 깨지잖아.


그럼 닭은 집마다 몇 마리나 키웠나요?

-아무리 없어도 대여섯 마리는 있었지. 그래서 옛날에는 배추 심으면 각자 울타리를 쳤어요. 집집마다 닭이 있으니 먹는다고 뭐라 할 수도 없잖아.

울타리는 산에 있는 싸리 말고 왜싸리라고 그걸 베다가 울타리를 쳤지. 옛날에는 뭐든지 귀해서 그물도 없어서 수수단으로 치는 경우도 있고, 닭장도 특별히 집을 지어주는 것보다 외양간 위에다가 횃대만 두 줄 내지 세 줄만 놔주는 거야. 그러면 거기서 닭이 잔다고. 둥우리도 그 위에다 놔두면 지가 올라가서 알 낳고 신호를 해주고 내려가. 알을 낳으면 꼬꼬댁 꼭꼭꼬 몇 번 외친다고. 알 낳았을 때는 암탉이 울고, 날이 밝을 때는 수탉이 울어.


알은 보통 얼마에 한 번씩 낳나요?

-닭이 7~8개월 정도 지나면 알을 낳기 시작하는데, 잘 낳는 닭은 매일 낳다가 사흘 정도에 한 번씩 거르고, 보통은 이틀에 한 번은 낳아. 그런데 알은 이틀에 한 번 낳는 게 더 맛있지.


토끼도 키우셨다고 들었는데 토끼는 어떻게 키우나요?

-토끼는 습하면 잘 죽어요. 그래서 토끼장은 보통 1m이상 올라가야 좋지. 토끼를 풀어놓으면 돌아다니다가 마루 구멍에 들어가서 죽어요. 거기가 습하거든.

토끼는 씀바귀를 좋아하는데 그걸 먹이면 눈이 더 새빨개져요. 독초는 자기가 알아서 안 먹어요.


겨울에는 뭘 먹이나요?

-겨울에 지금은 사료가 있으니까 먹이지만 옛날에는 콩깍지, 엿밥 그런 걸 먹여요. 시래기가 많으면 그걸 주는 사람도 있고. 쇠죽 쑬 때 여물을 좀 주는 사람도 있고. 나 같은 경우는 산에 가면 자귀나무라고 있어요. 그걸 토끼가 좋아해서 나무도 갉아먹는데 그걸 잘라다가 넣어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옛날에 귀마개를 토끼로 만들었는데 어떻게 만드나요?

-그걸 토끼 가죽으로 만드는 법이 있어요. 토끼 가죽을 벗겨서 그냥 말리면 단단해서 못 써요. 그 속에 기름이 굳어버려서 단단해져요.

그래서 가죽을 벗기면 그 안에 쌀겨를 하나 가득 채워서 묶어서 몇 개월 매달아둬요. 그러면 기름이 쏙 빠져. 그럼 가죽이 그대로 남으면서 부들부들해서 좋아요. 그럼 그걸로 귀마개도 만들고, 토시도 만들고, 목도리도 하고, 발에다 넣으면 따뜻하고 좋지.


옛날 농사방법 중에서 되살려서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농약 안 쓰고, 비료 덜 쓰고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 같이 농약을 안 써야 하는데 일부는 쓰고, 일부는 안 쓰고 하는 게 문제지요. 다 같이 농약을 안 쓰면 몇 년간은 피해를 보더라도 되살아나겠지요.

또 농약을 안 쓰고 농사짓는 방법을 자연에서 방법을 찾는 걸 사람이 연구해야 돼요. 내가 생각할 때는 나뭇잎 중에서 벌레가 안 먹는 것이 있어요. 그걸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해요. 벌레가 안 먹는 나뭇잎 중에 중풍에도 쓰는 약인데 두충나무가 있어요. 또 소태나무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과수원 중간에 소태나무를 심어서 벌레가 덜 붙는다고 해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 이용하면 분명히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봐요.

또 밤나무는 보를 만들 때 쓰면 그곳을 거쳐 내려오는 물은 논에 좋다고 했어요. 벌레가 덜 생기게 한다고 해요. 그래서 밤나무는 숯은 화롯불에는 담지 않았어요. 또 옛날에 못자리를 하면 이끼 같은 게 생겨서 벼 싹이 자라는 걸 방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옛날 어른들이 밤나무 회초리를 꽂았는데 그러면 그게 싹없어져요. 이런 방법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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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새들이 우짖고 푸른 새싹이 돋는 따뜻한 봄날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자연에 맞춰 우리네 몸도 겨우내 묵은 때를 털고 봄기운을 맞이하느라 찌뿌드드하고 졸음이 쏟아집니다. 그와 함께 슬슬 본격적인 농사철이 다가옵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이미 준비를 다 끝냈지만 게으른 농부는 이래저래 마음만 바쁩니다. 열심히 마련한 거름을 내 논밭을 갈고, 이것저것 씨앗을 추스르고 심을 때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파종播種, 곧 "씨뿌리기"와 관련된 말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씨뿌리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밭 만들기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일단 건너뛰겠습니다. 씨도 씨지만 땅을 빼고는 농사를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씨보다도 땅이 더 중요합니다. 수컷들이 씨를 뿌려놓고 나 몰라라 하면 암컷들이 다 거두어서 기르는 것처럼 말이죠. 땅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칠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만큼 땅은 농사의 기본이요,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지금은 씨와 관련된 말을 살피는 시간이니 땅과 관련된 말은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씨를 심으려면 먼저 씨앗(종자種子) 준비해야 합니다. 종묘상에서 파는 씨앗을 사면 포장도 깔끔하고, 포장지를 뜯으면 씨앗에 색깔을 입혀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잘은 모르는데 벌레 피해를 막기 위해서 약품 처리를 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씨앗이 아니라 지난해 직접 받은 것이라면 씨앗가리기(종자예조種子豫措)를 해야 합니다. 겉은 말짱해 보이지만 물에 담그면 둥둥 뜨는 것들은 속이 덜 여문 것이니 골라내고 할 수 있으면 알찬 놈들로만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씨고르기(선종選種)을 마치면 바람이 잘 통하는 선선한 곳에 매달아 놓고 심는 날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오래 묵은씨라면 옆 마을에 아는 사람이나 이웃에게 새로 씨앗을 받아 씨앗갈이(종자갱신種子更新)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내가 좋은 씨앗이 있다면 서로 씨앗바꾸기(종자교환種子交換)도 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피난을 가더라도 가장 먼저 챙긴 것이 씨앗이라고 합니다. 좋은 씨앗은 베개 속에 꽁꽁 넣어놓았다고도 합니다. 그만큼 씨앗을 목숨처럼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씨앗을 서로 나누는 행위는 얼마나 중요한 것이겠습니까.

이러한 씨를 크기에 따라 분류하면 잔씨앗(소립종小粒種)과 중씨앗(중립종中粒種), 큰씨앗(대립종大粒種)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것이 잔씨앗이고 큰씨앗인지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상추씨 같이 재채기 한 방에도 다 날아가 버리는 것들이 잔씨앗이고, 작두콩 같이 큰 놈들이 큰씨앗이 아닐까 합니다. 이건 객관적인 기준이 없으니 내가 본 것들 가운데 기준이 생기는 아주 주관적인 잣대입니다. 수치화하고 계량화하면 편리하기는 하지만 왠지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도 저마다 자기한테 맞게 해야지 시스템이 먼저 있고 사람이 거기에 끼워맞춰야 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요즘은 참 이상한 시대입니다.

아무튼 한데(노지露地) 심는 것 가운데 잔씨앗은 잎남새(엽채류葉菜類)나 줄기남새(간채류幹菜類)가 대표적입니다. 이렇게 씨앗이 작은 놈들은 흩뿌림(산파散播)을 하거나 줄뿌림(조파條播)를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흩뿌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 감이 있는 분들이 해야 합니다. 어르신들이 흩뿌림하는 모습을 보면 대충 뿌리는 것 같은데도 싹이 날 때 보면 어김없이 좍좍 흩어져서 아주 잘 자랍니다. 이런 일을 초보자가 했다가는 한 군데에서 뭉텅뭉텅 자라서 나중에 솎을 때 애먹습니다. 배게뿌림(밀파密播)는 처음 뿌리는 분은 조심해야 할 사항입니다. 어떤 분은 몇 십 평에 심을 수 있는 씨앗을 한 평에 다 쏟아붓는 경우도 있지요. 걔네들이 나올 때 보면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이 생각납니다.

이런 작은 놈들을 다룰 때 이래저래 가장 편한 방법은 손가락으로 한 줄 죽 긋고,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조금씩 집어서 살살살살 뿌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얕심기(천식淺植)를 하다보면 정신을 집중하느라 잡념이 사라지는 무념무상의 경지도 살짝 맛볼 수 있습니다. 흙덮기(복토覆土)도 두 손가락으로 살살 덮고, 따로 밟기(답압踏壓)나 누르기(진압鎭壓)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고 일주일에서 열흘이 지나면 터져나오는 새싹들! 참 신비롭고 가슴 뿌듯한 뭔가가 가슴에서 찌르르 흐릅니다.

어느 정도 알이 굵은 놈들은 점뿌림(점파占播)를 합니다. 그 유명한 "새 한 알, 벌레 한 알, 사람 한 알"씩 먹는다는 말은 점뿌림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도 뻥입니다. 새들이 어찌나 극성인지 다 먹어치웁니다. 뒤적거려서 찾아 먹지 않으면 떡잎을 똑똑 끊어먹어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아주 속터질 노릇이지요. 저는 몇 해는 "눈치 농법(새들이 없거나 보지 않을 때를 눈치 봐서 심는)"으로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는데, 지난해에는 그 방법도 통하지 않더군요. 씨앗을 어디에 심었는지 모르니 떡잎이 나오는 대로 죄다 따먹어 버렸습니다. 결국은 모종을 키우거나 방충망을 덮는 방법을 동원해서 피해를 보지 않았지요. 그래도 그 등살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 남은 놈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놈들 주변에는 풀덮기(부초敷草)를 해서 위장하고, 떡잎이 없는 놈들은 뽑고 메워심기(보식補植)를 하거나 덧뿌림(보파補播)을 했습니다.

요즘은 잘 안하지만 그냥 집에서 뜯어 먹을 푸성귀를 기를 때는 섞어뿌림(혼파混播)도 했다고 합니다. 밭에 오시는 형님께서 옛날 어머니가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께에는 그대로 해봤는데 그거 참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남새 종류는 한 해에 주로 두 번을 심을 수 있습니다. 봄뿌림(춘파春播)과 가을뿌림(추파秋播)를 할 수 있지요. 저는 봄에 뿌린 놈들을 실컷 먹다가 몇 놈만 놔둡니다. 그럼 알아서 꽃이 피고 씨가 달립니다. 저절로 힘들이지 않고 씨받이(채종採種)를 하는 겁니다. 그럼 지가 알아서 떨어진 놈도 있어서 거기서 가을에 또 자라거나 받은 씨를 가지고 또 심으면 됩니다. 아주 쉬운 두번짓기, 그루갈이(이모작二毛作) 방법입니다.

부추 같은 경우는 다른 것처럼 한해살이(일년생一年生)나 두해살이(월년생越年生)이 아닌 여러해살이(다년생多年生)라서 한자리에서 4~5년은 거뜬합니다. 그보다 오래되면 자라는 것이 신통찮다고 합니다. 먹을 수 있는 양분을 다 골라 먹어서 그럴까요? 아무튼 그때가 되면 뿌리채 캐서 다른 곳에 갖다 심으면 또 막 자란다고 합니다. 농담으로 던져만 놓아도 산다고 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합니다. 보통 냄새가 강한 것들이 생명력이 강합니다. 그에 비해 맛있거나 무른 것들이 손도 많이 가고, 아주 골치 아프지요. 지난 봄에는 비타민채라는 것을 심었는데 이게 맛나니까 까맣고 노란 톡톡 튀는 벌레가 엄청 달라붙더군요. 배추에도 안 가고 여기에만 달라붙어서 봄에는 영 별로였는데, 가을에는 좀 덜해서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놈들이 겨울나기(월동越冬)를 하더군요. 일본에서 들어온 씨라서 추위에 약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잘하면 언피해(동해凍害) 없이 시금치처럼 겨울에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씨를 가지고 곧뿌림(직파直播)하는 작물 말고도 모종(묘苗)으로 심는 것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바로 고추이지요. 고추는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모릅니다. 2월 초중순이면 모판흙(상토床土)를 만들어서 씨앗 넣어야지. 그러고 나면 날마다 들여다보며 싹트기 알맞은 온도(발아적온發芽適溫)를 맞추려고 추우면 이불 덮어 주고 따뜻하면 햇볕 쪼이게 하고 지극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모판흙 만드는 건 또 얼마나 까다로운지 모릅니다. 깨끗한 흙에 모래흙도 넣고 숯에다 제대로 썩은두엄(腐熟堆肥)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알맞게 맞춰줘야 합니다.

저는 성격이 게으른지라 이도저도 귀찮아서 그냥 곧뿌림을 합니다. 지난해 곧뿌림을 하니 수확량이 확실히 적긴 하지만 편하더군요. 그놈들은 곧은뿌리(직근直根)가 속흙(심토深土)으로 쭉 뻗어서 버팀대(지주支柱)가 없어도 바람에 쓰러지지(도복倒覆) 않습니다. 모종으로 키우는 고추는 어느 정도 자라면 옮겨심기(이식移植)를 해야 합니다. 그것도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상태는 한때심기(가식假植)라서 서리가 내리지 않는다 싶으면 제밭(本田)으로 나가서 아주심기(정식定植)를 해야 합니다. 고추는 얕은 뿌리성(천근성淺根性)이라서 자꾸 옮겨심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그건 모종을 키워서 수확량을 많이 낼 때나 그렇습니다. 또 자꾸 옮겨심다보니 곧뿌리가 끊기기에 잔뿌리를 많이 내서 자기도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지요. 위기를 느끼는 만큼 종족 번식에 더 힘쓴다는 원리입니다. 어떻습니까, 시장 가면 손쉽게 살 수 있는 고추 하나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지.

또 씨앗의 분류에는 햇빛을 받으면 싹이 빨리 트는 담배나 양배추 같은 볕밭이씨(광발아종자光發芽種子)와 반대로 햇빛을 받지 않아야 싹이 빨리 트는 호박이나 오이 같은 그늘밭이씨(암발아종자暗發芽種子)도 있습니다. 곡식의 품종에는 키 작고 이삭 큰 품종(단간수중형품종短稈穗重型品種)과 키 작고 이삭 많은 품종(단간수수형품종短稈穗數型品種)이라는 분류도 있습니다.

나중에 자라면서 햇빛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에 따라 짧은볕식물(단일성식물)과 긴볕식물(장일성식물)로도 나뉩니다. 물론 햇빛을 싫어한다고 해서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광합성을 해야 하는 만큼 햇빛은 꼭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취나물처럼 뿌리나누기(분근分根)로 심는 것이 있는가 하면, 모종을 심을 때 곧추심기(직립식直立植)하는 것도 있고, 빗겨심기나 휘어심기 같은 방법도 있습니다.

또한 다른 것보다 일찍 익는 올씨(早生種)와 늦게 익는 늦씨(만생종晩生種), 적당한 때 익는 가온씨(중생종中生種), 엊늦씨(중만생종中晩生種)라는 구분도 있지요. 올씨와 늦씨는 착각하기 딱 좋습니다. 올씨라고 하여 일찍 심는 것이 아닙니다. 올씨는 빨리 익는 것이니 오히려 늦게 심을 수 있는 씨앗입니다. 이런 씨는 그루갈이나 부룩으로 심을 수 있지요. 여느 때보다 일찍 심는 것은 올뿌림(조파早播)라고 합니다. 요즘은 뭐든지 철당겨가꾸기(촉성재배促成栽培)를 합니다. 딸기만 해도 어릴 때는 분명 5월쯤부터 먹은 것 같은데 이제는 1~2월이면 나오기 시작해서 3월이면 거의 끝나갑니다. 뭐든지 몇 개월씩 빨라졌습니다. 자연의 만물은 나이가 들수록 철든다는데, 사람은 거꾸로 시간이 지날수록 철부지가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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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에서는 어렵고 낯선 농사 용어 대신 우리말로 농사짓는 문제를 제기하려고 합니다. 범람하는 외국어의 홍수와 그 잔재 속에서 우리말로 농사짓는 것도 전통을 지키는 한 방안입니다. 토종과 전통 농업을 되살리는 일만큼 우리말을 되살리는 일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로 농사짓자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습니다. 처음 한자어나 외국어로 된 농사 용어를 마주하고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한참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추비니 윤작이니 종자니 하는 말들이 모두 그랬습니다. 그냥 우리말로 웃거름, 돌려짓기, 씨앗이라고 하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데 굳이 어려운 말을 썼습니다. 왜 그럴까 가만히 그 까닭을 생각해보니 우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학문은 일본 제국주의가 들어오면서 확립되었습니다. 물론 이 학문은 서양식 근대 학문을 가리킵니다. 그러면서 이른바 신식 공부했다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주요한 자리에 앉아 자기들이 배운 것을 그대로 들여오고, 사람들도 그냥 그걸 따르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그 역할을 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대신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말은 일본식 표현과 미국식 표현으로 뒤범벅되어 있습니다. 책을 봐도 그렇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을 봐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영어나 일본어를 보고 있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외국어를 잘하려면 생각하는 방법도 그네들처럼 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만큼 말은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역사, 문화, 사상, 가치를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말로 농사짓는 일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것들과 소통하는 가장 첫걸음이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일인 만큼 농사도 우리말로 지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입으로만 신토불이를 외치지 말고 정신을 올곧게 세워야 FTA건 뭐건 이길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바야흐로 새들이 우짖고 푸른 새싹이 돋는 따뜻한 봄날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자연에 맞춰 우리네 몸도 겨우내 묵은 때를 털고 봄기운을 맞이하느라 찌뿌드드하고 졸음이 쏟아집니다. 그와 함께 본격적인 농사철도 다가왔습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이미 준비를 다 마쳤습니다. 가으내 열심히 마련한 거름을 내 논밭을 갈고, 이것저것 씨앗을 추스르고 심을 때입니다. 그래서 이번호에서는 지금까지 토종에 대해서 열심히 취재했으니 그것을 심는 일인 파종播種, 곧 "씨뿌리기"와 관련된 말을 간략하게 알아보며 우리말로 농사짓자는 문제를 말하려 합니다.

씨뿌리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일은 흙을 만드는 일입니다. 씨도 씨지만 땅을 빼고는 농사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흙살림’이라고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보면 씨보다도 땅이 더 중요합니다. 수컷들이 씨를 뿌려 놓고 나 몰라라 하면 암컷들이 다 거두어서 기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땅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한 해 농사의 풍흉이 좌우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겁니다. 땅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다시 씨앗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씨를 심으려면 먼저 씨앗(종자種子)을 준비해야 합니다. 종묘상에서 파는 씨앗을 보면 씨앗이 알록달록합니다. 잘은 모르는데 약품 처리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 손수 받은 씨라면 미리 씨앗가리기(종자예조種子豫措)를 해야 합니다. 겉은 말짱해 보이지만 물에 담그면 둥둥 뜨는 것들은 속이 덜 여문 것이니 골라내고, 알찬 놈들만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씨고르기(선종選種)를 마치면 바람이 잘 통하는 선선한 곳에 매달아 놓고 심는 날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취재를 다녀 보니 한곳에서 오랫동안 심던 씨앗이면 옆 마을이나 이웃과 서로 씨앗바꾸기(종자교환種子交換)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멀리 사는 사람에게 아들딸을 시집장가 보내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까요? 또 옛날 사람들은 난리가 나서 피난을 가더라도 가장 먼저 씨앗을 챙겼다고 합니다. 중앙아시아로 쫓겨난 고려인들도 그랬다고 합니다. 그만큼 씨앗을 목숨처럼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씨에는 잔씨앗(소립종小粒種)과 중씨앗(중립종中粒種), 큰씨앗(대립종大粒種)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의 크기가 잔씨앗이고 큰씨앗인지 서양에서 들어온 농업 이론서처럼 수치로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내가 보기에 상추씨 같이 재채기에도 날아가 버리는 것들은 잔씨앗이고, 작두콩 같은 것은 큰씨앗이 아닐까 합니다. 수치화하고 계량화하면 편리하기는 하지만 재미는 없습니다. 저마다 기준이 다르고 처한 조건이 다른 만큼 자기한테 알맞게 해야지, 시스템이 먼저고 거기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요즘은 참 이상한 시대입니다.


아무튼 한데(노지露地) 심는 것 가운데 잔씨앗은 잎남새(엽채류葉菜類)나 줄기남새(간채류幹菜類)가 대표적입니다. 이렇게 잔씨앗은 흩뿌림(산파散播)하거나 줄뿌림(조파條播)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흩뿌림은 아무나 할 수는 없고, 연륜이 많은 분들이 잘하십니다. 어르신들이 흩뿌림하는 모습을 보면 대충 뿌리는 것 같은데도 나중에 보면 어김없이 좍좍 흩어져서 싹이 틉니다. 이를 초보자가 따라하면 한 군데에서 뭉텅뭉텅 싹이 나 솎을 때 애먹습니다. 배게뿌림(밀파密播)은 처음 씨를 뿌리는 분이 조심해야 할 사항입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몇 십 평에 심을 씨앗을 한 평에 다 쏟아 붓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놈들을 다룰 때는 손가락으로 한 줄 골을 내고, 손가락으로 조금씩 집어서 살살 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얕심기(천식淺植)를 하다보면 정신을 집중하느라 잡념이 사라지는 무념무상의 경지도 살짝 맛볼 수 있습니다. 흙덮기(복토覆土)도 두 손가락으로 살살 덮고, 따로 밟기(답압踏壓)나 누르기(진압鎭壓)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고 일주일에서 열흘이 지나면 터져 나오는 새싹들! 참 신비롭고 가슴 뿌듯한 뭔가가 가슴에서 찌르르 흐릅니다.


어느 정도 알이 굵은 놈들은 점뿌림(점파占播)합니다. 점뿌림해야 "새 한 알, 벌레 한 알, 사람 한 알"이란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도 뻥입니다. 새들이 어찌나 극성인지 다 먹어 치웁니다. 뒤적거려서 찾아 먹지 않으면 떡잎만 똑똑 따먹어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아주 속 터질 노릇입니다. 저는 몇 해는 "눈치 농법(새들이 없거나 보지 않을 때를 눈치 봐서 심는 방법)"으로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는데, 지난해에는 그 방법도 통하지 않더군요. 어디에 심었는지는 들키지 않았으나 떡잎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결국 모종을 키우거나 방충망을 덮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새들의 등살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남은 놈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놈들 주변에는 풀덮기(부초敷草)를 해서 위장하고, 떡잎이 없는 놈들은 뽑고서 메워심기(보식補植)를 하거나 덧뿌림(보파補播)을 했습니다.

요즘은 잘 안하지만 그냥 집에서 뜯어 먹을 푸성귀를 기를 때는 섞어뿌림(혼파混播)했다고 합니다. 밭에 오는 형님이 그러시는데 옛날 어머니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께에는 그 말대로 해봤는데 그거 참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텃밭 정도라면 이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앞에서 말한 남새 종류는 한 해에 봄뿌림(춘파春播)과 가을뿌림(추파秋播)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봄에 뿌린 놈들을 실컷 먹다가 몇 놈만 놔둡니다. 그럼 지가 알아서 꽃이 피고 씨가 달립니다. 저절로 힘들이지 않고 씨받이(채종採種)를 하는 겁니다. 그럼 알아서 떨어진 놈들은 거기에서 가을에 다시 자라거나 받은 씨를 가지고 또 심으면 됩니다. 아주 쉬운 두번짓기, 그루갈이(이모작二毛作) 방법입니다.

부추 같은 경우는 다른 것처럼 한해살이(일년생一年生)나 두해살이(월년생越年生)가 아닌 여러해살이(다년생多年生)라서 한자리에서 4~5년은 거뜬합니다. 그래도 한자리에서 오래 지나면 신통찮아져서 뿌리 채 캐다가 옮겨 심어야 합니다. 부추는 농담으로 던져만 놓아도 산다고 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합니다. 보통 냄새가 강한 것들이 생명력이 강합니다. 그에 비해 사람 입에도 맛있거나 무른 것들은 손도 많이 가고 아주 골치 아픕니다. 지난봄에는 비타민채를 심었는데 이게 맛나니까 배추에 갈 벌레들이 모두 달라붙었습니다. 배추에 끼는 벌레들을 꾀는 데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놈들이 겨울나기(월동越冬)를 하더군요. 일본에서 들어와 추위에 약하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잘하면 언피해(동해凍害) 없이 시금치처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씨를 가지고 곧뿌림(직파直播)하는 작물 말고도 모종(묘苗)으로 심는 것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바로 고추입니다. 고추는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모릅니다. 2월 초중순이면 모판흙(상토床土)을 만들어서 씨앗 넣어야지, 그러고 나면 날마다 들여다보며 싹트기 알맞은 온도(발아적온發芽適溫)를 맞추려고 밤에는 이불 덮어 주고 낮에는 햇볕 쪼이게 하고, 지극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모판흙 만드는 일도 얼마나 까다로운지 모릅니다. 깨끗한 흙에 모래도 넣고 숯에다 잘 썩은두엄(부숙퇴비腐熟堆肥)에,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게으른지라 이도 저도 귀찮아서 그냥 곧뿌림합니다. 지난해 곧뿌림하니 확실히 수확량이 떨어지긴 했지만 편하긴 하더군요. 그래도 환금작물이 목적이면 힘들어도 집에서 먹을 것은 충분했습니다. 신기한 건 곧은뿌리(직근直根)가 속흙(심토深土)으로 쭉 뻗어서 버팀대(지주支柱) 없이도 바람에 쓰러지지(도복倒覆) 않는다는 겁니다. 모종으로 키우는 고추는 어느 정도 자라면 옮겨심기(이식移植)해야 합니다.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그 때는 한때심기(가식假植) 상태라서 서리가 내리지 않는 시기가 되면 제밭(本田)에 아주심기(정식定植)를 해야 합니다. 고추는 얕은 뿌리성(천근성淺根性)이라서 자꾸 옮겨 심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수확량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꾸 옮겨 심으면서 곧은뿌리가 끊기는 대신 잔뿌리를 많이 내서 위기를 느끼는 만큼 더 종족 번식에 힘쓰는 원리입니다.


이밖에도 많은 씨앗과 관련한 많은 말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고 끝내겠습니다. 다른 것보다 일찍 익는 올씨(조생종早生種)와 늦게 익는 늦씨(만생종晩生種), 적당한 때 익는 가온씨(중생종中生種), 엊늦씨(중만생종中晩生種)라는 구분도 있습니다. 올씨와 늦씨는 헷갈리기 딱 좋습니다. 올씨라고 하여 일찍 심는 씨라고 생각했는데, 빨리 익는 만큼 오히려 늦게 심을 수 있는 씨앗입니다. 이런 씨는 부룩이나 대우칠 수 있습니다. 여느 때보다 일찍 심는 것은 올뿌림(조파早播)라고 합니다. 요즘은 뭐든지 철당겨가꾸기(촉성재배促成栽培)를 합니다. 딸기만 해도 어릴 때만 해도 5월쯤부터 먹은 것 같은데, 이제는 한겨울에 나와 봄이면 들어갑니다. 뭐든지 몇 개월씩 빨라졌습니다. 자연의 만물은 나이가 들수록 철든다는데, 사람은 거꾸로 시간이 지날수록 철부지가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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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의 씨앗을 심는 일은 각기 차례가 있으니, 시기의 적합함을 잘 알아서 선후의 차례를 어기지 않는다면, 서로 이어서 생장하고 서로 힘입어 유리하게 사용될 것인데, 곡식이 어찌 결핍되는 일이 있겠는가. 1월에는 삼을 심고, 2월에는 조를 심고, 참깨 중에는 조생종과 만생종 두 종류가 있으니 3월에는 이른 참깨를 심고, 4월에는 콩을 심고, 5월 중순에는 늦참깨를 심으며, 칠석 후에는 무․배추 등을 심는다. 8월에는 추사(秋社 입추 후 다섯 번째 무일) 이전에 즉시 보리를 심는데, 두 社日을 경과하면 곧 수확이 배나 되고 보리알이 여물어서 단단하고 좋다. 이와 같이 곡식을 심는 데에 모두 차례가 있으니, 이는 자연의 때를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릇 오곡은 상순에 심는 것은 온전한 수확을 거둘 수 있고, 중순에 심는 것은 절반의 수확을 거둘 수 있으며, 하순에 심는 것은 수확량이 가장 적다. 또 지세(地勢)는 좋고 마른 것이 있고, 산과 늪은 적당하고 부적당한 것이 있으므로, 좋은 토지에는 늦게 심는 것이 적합하고 메마른 토지에는 일찍 심는 것이 적합하다. 좋은 토지에는 만생종만 적합할 뿐 아니라 조생종 도 또한 해가 없지만, 마른 토지에 만생종을 심게 되면 반드시 결실을 하지 못한다.

산을 개간한 밭에는 마땅히 내성이 강한 모종을 심어 바람과 서리를 피해야 하고, 숩한 밭에는 약한 모종을 심어서 꽃과 열매를 구해야 한다. 『효경원신계孝經援神契』에 이런 구절이 있다. “황백토에는 벼가 적합하고, 흑토에는 보리가 적합하고, 적토에는 조가 적합하고, 무논에는 벼가 적합하다.” 이것이 이른바 토지의 적합한 것을 따르는 것이다.


해마다 종자를 거둘 때에 벼알이 잘 익어서 아주 단단하고 쭉정이도 없으며 여러 가지 종자가 뒤섞이지 않은 것을 취하여 햇볕에 바짝 말린 다음 햇볕이 들지 않도록 그릇에 잘 저장해서 높고 시원한 다락같은 데에 둔다. 그리하여 청명절에 이르면 그것을 꺼내서 동이에 물을 붓고 담가 놓는다. 그런 다음 사흘 만에 건져내서 바구니 같은 데에 담아놓았다가 날씨가 갤 때면 햇볕에 내서 바짝 말린 다음 하루에 세 번씩 물로 축여주고, 날씨가 쌀쌀하면 더운 물로 축이곤 하여 하얀 싹이 가지런히 나올 때를 기다려서 파종한다. 파종할 때는 반드시 먼저 비옥한 좋은 토지를 선택하여 논을 잘 갈아서 흙이 아주 부드러워지고 물이 맑아진 다음에 이미 싹이 튼 볍씨를 너무 조밀하거나 성글지 않게 알맞도록 슬슬 뿌려놓았다가, 모가 자라면 소만․망종 무렵에 그 모를 쪄서 옮겨 심는다.


오곡 이외에 푸성귀도 또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릇 소채를 심는 데는 반드시 먼저 그 씨앗을 햇볕에 잘 말려야 한다. 땅은 비옥한 것이 좋으나 땅이 메마르면 거름을 주고, 호미질은 자주 하는 것이 좋다. 가뭄이 들면 물을 대주며 힘을 많이 들여놓으면 수확은 반드시 배가 될 것이다.

무릇 채소는 두둑에 심는 휴종(畦種)이 적합하고, 오이 같은 것은 밭고랑에 심는 구종(區種)이 적합하다. 밭두둑은 길이가 1장, 너비가 3자 정도로 만드는데 씨앗을 심기 수일 전에 묵은 흙을 괭이로 찍어 일으켜서 거기에 짚 태운 재를 섞어 태워서 벌레를 제거함과 동시에 그것을 거름으로 사용하고, 심을 때에 임박해서 다시 다른 거름을 더 넣어 둑을 만들어 심는다. 그리하여 싹이 나오는 것을 기다려 그 싹이 드물고 총총한 것을 보아서 둘 만한 것은 그대로 두고 버릴 것은 뽑아 버린다.

또 싹을 옮겨 심는 것이 있으니, 무릇 종자를 먼저 깨끗이 씻어서 바가지 안에 담고 젖은 수건으로 덮어놓았다가 사흘 후에 싹이 나서 손가락 길이쯤 자라난 뒤에야 파종하는데, 먼저 만든 둑 안에 물을 축축하게 준 다음 싹을 손에 쥐고 골고루 심는다. 그리고 다시 아주 세밀한 체에다 썩은 흙을 쳐서 그것으로 위를 덮어 주어 쨍쨍한 햇빛을 가려준다. 이 법을 쓰면 채소가 나서 서로 가지런하게 생장하고 잡초도 나지 못하게 된다. 모든 채소에 벌레가 있을 때는 고삼(苦蔘)의 뿌리에다 석회수를 타서 뿌려주면 벌레가 즉시 다 죽는다. 진실로 이상과 같은 방법에 의하여 모종을 한다면 한 집안만 먹기에 넉넉할 뿐 아니라 또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무릇 오랫동안 묵은 논밭을 일구었을 때는 거기에 있는 야초(野草)를 모두 태워버리고 쟁기로 간 다음, 맨 첫해에 지마(芝麻)를 심어서 초목의 뿌리를 썩어 문드러지게 한 뒤에 오곡을 심으면 잡초의 해가 없게 된다. 대개 지마는 초목에 대해서 마치 주석과 오금(五金 금, 은, 동, 철, 주석)과의 사이에 있는 것 같아서 성질이 서로 제압하는 것이다.


봄갈이는 늦게 하는 것이 좋고, 가을갈이는 빨리 하는 것이 좋다. 늦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봄 얼음이 점점 풀리고 지기(地氣)가 비로소 통하여 비록 단단하게 굳은 강토라도 쟁기질이나 호미질을 할 수 있기 때문이고, 빨리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천기(天氣)가 차지 않을 때를 타서 따뜻한 기운을 땅 속에 집어넣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세말(歲末)에 개간을 하되 물이 언 때를 기다려서 하면 토맥이 봄이 되면 쉽게 편평해지고 또 잡초도 나지 않는다. 토맥이 편평해진 뒤에는 반드시 햇볕에 바짝 말려 거기에 물을 넣어서 맑게 한 다음이라야 바야흐로 씨앗을 뿌릴 수 있으니, 이렇게 하면 씨앗이 흙 속에 깊이 빠져들지 않고 쉽게 난다. 하수 밑바닥에 있는 진흙이나 연못 밑바닥에 있는 진흙 혹은 참깨묵이나 콩깨묵을 한 아랑마다 30근을 넣어 재거름을 섞거나 면화자병(綿花子餠)을 한 이랑마다 2백 근씩 넣되 모심기 하루 전에 면병을 가지고 논에 골고루 흩어서 쟁기로 간 뒤에 모내기를 한다. 재거름은 각각 토질에 따라서 한다.


볍씨를 물에 담그는 일

올벼는 청명 이전에 씨앗을 뿌리고, 늦벼는 곡우 이전에 씨앗을 뿌리되 볍씨를 싸가지고 하수에 옮겨다 놓고서 낮이면 물에 담가두고 밤이면 건져내곤 하면 싹이 쉽게 난다. 그래도 만일 싹이 나지 않으면 풀을 두껍게 덮어두었다가 싹이 2~3푼쯤 자란 뒤에 열어서 풀을 걷어내고 뿌리의 잔털을 제거한 다음 무논에 뿌리는데, 이것을 뿌릴 때 틀림없이 청명 절기이면 묘가 쉽게 튼튼해진다. 또한 반드시 아침 기후를 잘 보아서 하되 청명 2~3일 후에 볏짚재를 위에 덮어주면 혹 뿌리에서 잡초가 나기 쉬우니 반드시 시기를 타서 개똥을 뿌려주거나 혹은 재거름을 넣어서 북돋아주어야 한다.


모내기

소만과 망종 절기를 전후하여 모내기를 하는데, 맨 처음 모를 뽑아가지고 물로 뿌리를 깨끗이 씻어 진흙을 버리고 피가 있으면 즉시 가려내고 나서 조그맣게 한 묶음씩 묶는다. 이 모를 심을 때에는 논을 써레로 잘 고른 다음, 대략 모 여섯 줄기를 한 포기로 하고 여섯 포기를 한 줄로 삼아 심되, 포기와 줄을 마땅히 곧게 해서 김을 매기에 편리하도록 한다. 모를 얕게 꽂으면 발육이 쉽게 된다.


뿌리를 잘라주는 일

벼가 막 뿌리를 내릴 때에 벼 포기 사이로 쇠스랑질을 하여 가래 등의 잡초를 제거해주면 뒤에 논매기가 쉽고, 벼 뿌리의 잔털을 찾아서 잘라주면 벼가 빨리 자라며, 벼의 곁뿌리를 절단해주면 원뿌리가 곧장 밑으로 향하게 된다.


논매기

벼의 뿌리를 잘라준 뒤에는 재거름이나 혹은 참깨묵․콩깨묵 가루를 논에 뿌려 넣고 잡초를 말끔히 매서 없앤다. 가을이 가까워졌을 때는 물을 빼고 논바닥이 빛이 나게 하는 것을 논말리기라고 하며, 논바닥의 흙이 말라서 갈라질 때를 기다려 다시 물을 넣어 적시는 것을 환수라고 하는데, 벼가 완전히 다 익은 다음에 물을 빼야 한다.


벼의 종자와 보리의 종자

추수할 때에 뒤섞이지 않은 좋은 이삭을 가려 뽑아서 바짝 말린 다음 체로 쳐서 피나 쭉정이를 깨끗이 제거하고 오쟁이에다 담되, 오쟁이마다 스물다섯 근 혹은 석 되씩을 담아 들보에 높이 달아놓아서 쥐가 먹는 것을 방지한다.

올벼를 베어내고는 반드시 논을 갈아서 호미로 둑을 짓고 사방으로 봇도랑을 내서 물을 빼고 보리를 파종한다. 파종한 다음에는 재거름으로 덮어주는데 속담에 ‘재 없이는 보리를 심을 수 없다’ 하였으니, 반드시 재거름을 골고루 주는 것을 제일로 친다. 보리씨를 다룰 때는 모름지기 귀리나 풀씨 같은 것을 잘 가려내고 쭉정이나 싸라기 같은 것을 까불어버린 다음 9월에 파종을 하는데, 파종하는 법은 보리와 똑같다. 만일 파종이 너무 늦어질 경우에는 까마귀가 날아들어서 쪼아 먹을까 염려된다.


보리를 수확하는 일

보리가 누렇게 익었을 때는 좋은 날씨를 가려 베어서 거두어야 한다. 대개 5월에 가장 바쁜 농사는 누에치는 일과 보리 수확하는 일이다. 이 일이 더디게 되면 수해를 당할 염려가 있다.


보리를 저장하는 일

삼복의 무더운 날씨에 바짝 잘 말려서 보리알이 뜨끈뜨끈한 채로 거두어 담되, 먼저 볏짚재를 항아리 밑에 깔고 보리를 담은 다음 다시 볏짚재로 덮어주면 좀벌레가 일지 않는다.


메밀과 콩

입추를 전후하여 혹 만종하거나 점종하거나 혹은 구종으로 심되, 싹이 나온 즉시 드물거나 총총하게 심은 것은 정도에 알맞게 호미로 잘 골라주고 또 거름을 준다. 싹이 이미 자랐을 때 호미로 풀을 말끔히 매주면 무성하게 잘 자라며 종자가 총총하면 결실도 많다.

호미로 둑을 짓고 심은 자리를 발로 밟아가며 파종하는데, 이른 것은 3월에 파종했다가 4월에 먹을 수 있으니 이를 매두(梅豆)라고 한다. 그 나머지는 모두 3~4월에 심는데 토지가 너무 비옥한 것은 좋지 못하다. 잡초가 나면 제거해야 한다.


녹두

4월에 심었다가 6월에 수확하고, 이때 씨를 재차 심어서 8월에 또 수확한다. 이는 1년에 두 번씩 익는 콩이다.


완두 

모든 콩들 가운데 오직 이 콩만이 오래 묵어도 좀먹지 않고 또 수확량도 많고 일찍 익는다. 이 콩 껍데기는 또한 팔 수도 있다. 8월경에 혹 참깨와 섞어서 심었다가 함께 거두기도 한다.


누에콩과 흰콩

8월 초경에 심되 땅이 비옥하면 좋지 않다. 곡우 뒤에 심어서 6월에 씨앗을 거두고 재차 심어서 8월에 또 씨앗을 거둔다.


붉은 팥

3월에 심어서 6월에 따는데, 더딘 것은 4월에 심는다. 너무 빽빽하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흰불콩

일명 연리두(沿籬豆 울타리콩)라고 하는데 청명일에 파종하고 재로 덮어주되 떡잎 위에까지 덮어서는 안 된다. 여기저기 나누어 심고 시렁을 매어 덩굴을 끌어올린다.


참깨

비옥한 토지가 제일 좋은데 심는 시기는 3월이 가장 좋다. 흑․백․황색의 세 종류가 있는데 흰 것이 기름이 많이 난다. 상반월(上半月)에 심으면 깍지가 많이 달린다. 4~5월에 심어도 좋은데, 밭이 걸어야 열매가 잘 익는다.


생강

마땅히 비옥한 땅을 깊이 갈아서 3월에 심는데, 심고 나서는 누에똥이나 두엄, 재거름 등으로 덮어주고, 둑마다 3자 너비로 지어서 물을 주기에 편리하도록 한다. 싹이 터서나온 뒤에는 또 썩은 생강을 걷어내 버리고 시렁을 만들어 햇빛이 들지 않도록 거적으로 가리며 자주 쇠똥을 주고 물을 준다. 8월에 뿌리를 수확하는데 9~10월에는 마땅히 움을 깊이 파고 왕겨와 함께 따스한 곳에 묻어서 종자로 삼아야 한다.


토란

종자는 둥글면서 길고 끝이 흰 것을 가려서 남쪽 처마 밑에 구덩이를 판 다음 왕겨를 바닥에 깔고서 종자를 거기에 넣고 풀로 덮는다. 그랬다가 3월경에 꺼내서 비옥한 땅에 묻어 두었다가 싹이 서너 잎씩 나올 때를 기다려 5월경에 물과 가까운 비옥한 땅을 가려서 옮겨 심는다. 그 포기와 줄은 벼를 심는 것과 똑같이 한다. 혹은 진흙을 쓰거나 혹은 재거름, 썩은 풀 등으로 두텁게 북돋아주고 날이 가물면 물을 주며 김은 자주 매줄수록 좋다.


무 

다달이 심어서 다달이 먹을 수 있는데, 땅은 비옥해야 하고 흙은 거칠어야 하며 물은 자주 주어야 하고 종자는 드물게 심어야 하며 빽빽하면 솎아내야 한다.


갓, 배추, 단무, 오송채, 함채

7~8월경에 파종했다가 9월에 둑을 짓고 나누어 심은 다음 자주 거름물을 준다. 서풍이 부는 날이나 고초일에 물을 주어서 는 안 된다.


참외, 호박

먼저 젖은 볏짚재를 부드러운 진흙과 뒤섞어 땅 위에 깔고 호미로 둑을 짓고서 3월에 파종하되 그 씨앗의 거리는 서로 한 치쯤 떨어지게 심은 다음 젖은 재를 체로 쳐서 덮어주고는 물을 주고 또 거름물을 주기도 한다. 언제나 마르면 또 물을 주며 싹이 난 뒤에는 한낮에 재를 뿌려주고 또 재를 가지고 뿌리의 곁을 북돋아주고 맑은 거름물을 준다. 그리하여 3월 하순에 둑을 치고 호미로 구멍을 파고 심되, 서로의 거리는 한 뼘 반 간격으로 하고, 한 구멍마다 반드시 짙은 거름물을 준다. 덩굴이 길게 뻗으면 시렁을 매어 끌어올린다. 이는 오이 심는 법과 같다.


8월 하순에 뿌리의 잔털을 깨끗이 떼어버리고 줄은 듬성하게 하되 총총하게 심고 돼지똥과 오리똥을 왕겨에 섞어서 북돋아준다. 또 사철파가 있어 이는 아무 때나 심을 수 있는데, 이도 반드시 잔털을 떼어버리고 햇볕에 약간 말린 다음 심는 방법은 위와 같다.


마늘

8월 초순에 비옥한 땅에다 고랑을 치고 두 치 간격으로 한 포기씩 심고 거름을 준다. 혹은 쇠짚신을 오줌에 담가 씨앗을 그 안에 싸서 넣고 흙을 끼어서 심고는 그 위에 똥을 두껍게 덮어주면 마치 주발만큼 크게 자란다.


부추 

2월 하순에 종자를 뿌렸다가 9월에 나누어 심는다. 10월에는 볏짚재를 세 치쯤 덮어주고 또 그 위에 흙으로 얇게 덮어주면 바람이 불어도 재가 날리지 않는다. 입춘 후에 싹이 재 위로 올라오면 싹을 베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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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안양에서 주둔하던 미군의 사진.

마당에서 나락을 말리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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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서 호미질하는 모습.

논호미는 밭호미와 다르게 생겼다.

이 일은 무척 힘들어 여자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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