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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농법

홍성 다녀오다

by 石基 2008.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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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다녀오다



녹색연합과 교보생명에서 공동주최한 '음식이 세상을 바꾼다' 강좌의 마지막 대미인 생산지 방문 행사에 다녀왔다. 이번 행사는 교보생명에서 후원해서 모든 것이 무료라는 점이 아주 좋았다.


생산지는 충청남도 홍성에 있는 문당리라는 마을이었다. 이곳에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일꾼들을 배출해 온 풀무농업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가 있는 곳으로, 그 학교 출신자들은 현재 전국 각지에서 뜻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귀농학교 강의해 주신 정경식 선생님도 이 학교출신이라고 들었다.) 문당리 마을의 이장인 주형로 선생님도 바로 그 풀무농업고등학교 출신이라고 하신다. 그 분은 학교 졸업 후 25년간 유기농을 고집해오며 마을을 살리기 위해서 아직도 하나씩 하나씩 일궈가시는 중이라고 한다.


실제로 현재 문당리 마을 살리기 100년 계획을 세운 후 생태적이며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하여 차근차근 단계를 밝아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마을은 현재 정부로부터 친환경농업지구로 지정될 정도로 타의 모범이 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마을의 주민은 총 90여 가구쯤인데 놀라운 것은 다른 지역의 마을과 달리 연령대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10대부터 60대까지 건강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앞으로 귀농자를 위한 자리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니 계속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 마을의 주 소득원은 역시 오리농법으로 생산되는 쌀이다. 마을 주민분들 대부분이 현재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으며 그 규모는 1,350,000 평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서 생산되는 쌀은 전량 계약판매제로 수확이 되기 전에 이미 다 팔리며 엄청난 양이 생산되는데도 도시 사람들의 보신주의로 매해 부족해서 못 팔 정도라고 한다.

이런 부분은 진정 고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유기농을 하는 이유는 단지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고자 함이 아닐진데, 그렇다고 경제적 이득을 아예 무시할 수 없는 딜레마...그러다보면 진정 생명과 농촌을 생각하는 사람보다 자기의 건강과 개인상의 이유만으로 유기농산물을 활용하려고만 하는 도시민들이 더 많아지고...결국 경쟁에서 밀린 돈없는 사람은 또 한번 소외를 당하고 마는...


마을에 대한 소개는 대략 이 정도로 마치고 떠남에서 돌아옴까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토요일 오후, 서초구민회관 앞에서 귀농학교 동기분들을 만났다.

문용성 형님, 최동주 선생님, 김재성 선생님, 양해동 선생님과 그 가족, 육경영 선생님, 안성호 선생님, 태석이, 최순복 선생님, 진주하 선생님 내외분. 귀농학교 동기들이 정말 많이 갔다. 다들 이런 모임이나 행사에 목말라 하고 있었나 보다.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도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반가움의 감정을 밖으로 선뜻 드러내서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나는 웃음으로 나의 감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잠시 후 우리는 한 차에 우루루 몰려 타 앉은 후 홍성으로 출발!


진행자의 말에 따르면 홍성 문당리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두시간 반쯤 가면 도착한다고 한다. 전에 안성호 선생님의 말씀처럼 홍성이 기차나 도로 다 잘 뚫려있어 접근이 용이했다.


드디어 홍성에 도착하였다. 중심부는 여느 지방도시와 다를 것이 없었다. 관공서와 그것을 중심으로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상권... 조금 더 달리니 넓디 넓은 논이 탁 펼쳐진다. 충청남도에다 조금만 가면 나오는 바닷가, 그래서 그런지 높은 산은 별로 찾아볼 수 없고 낮고 두루뭉실한 산들이 군데군데 널려 있었다. 그 산들 사이로는 넓은 들판이고...


그런데 논이 여태껏 보았던 논과는 조금 달랐다. 논에는 그물망이 쭉 둘러서 펼쳐져 있고, 조그만 창고 같은 것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이곳이 문당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리농법을 하니 오리가 도망 못 가도록 그물을 쳐 놓고 오리집을 지어준 것이 아니겠는가. 역시 오리 숙소에는 오리들이 옹기종기 서 있다.

차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잽싸게 도망다닌다. 나중에 들었는데 오리들이 올라오는 풀을 먹는게 아니라 흘탕물을 일으키며 다녀서 싹이 트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효과를 갖느다고 한다. 또 벼에 달라붙어 있는 벌레도 어느 정도 먹어치운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사료를 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사료를 어디서 구하는지는 모르겠다. 아직 완전한 자급체계가 완성되어 있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벼가 어린 것처럼 오리도 어린 놈들을 넣어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안 그러면 덩치 큰 오리의 몸짓에 벼가 다 쓰러져 버린다고 한다.



우리는 홍성친환경농업 교육관에 여장을 풀었다. 국가, 군청, 농업기술센터, 즉 나라에서 전부 4억 1천만원을 내놓아 건물을 건립했다고 한다. 물론 짓는데 주민들이 손 놓고 구경만 한 것은 아니다. 자신들이 손수 나서서 황토벽돌도 만들고 여러가지 일도 하고 ...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마을회관 겸 교육관 건립을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


그 결과, 80평 2층 건물 하나와 숙소인 90평 건물 하나와 농업유물박물관이 건설되었다. 모두 황토로 지은 건물인데 실상사 귀농전문학교에서 본 건물과 비슷하게 생겼다.(용성 형님이 찍어서 올려놓으신 사진을 보세요) 그렇게 짓는 것이 유행인가? 아님 같은 사람이 설계하고 지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녁을 먹고 나서 여기 저기 둘러보느라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교육관 뒷편에 있던 소나무 숲, 바람골을 정확히 짚어서 세워놓은 풍력발전기, 오리들이 놀고 있던 논, 건물 안에 꾸며져 있는 기구들...모든 것을 머리 속에 집어 넣느라 바빴다.


저녁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식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서도 식사는 이 마을에서 나온 유기농산물로 만든 채식만 나온다. 잡채가 반찬으로 나왔었는데 돼지고기가 한덩이라도 있을까 유심히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고기 없이도 맛있긴 한데 입이 그렇게 길들여져서인지 뭔가 아쉽고 서운한 감을 숨길 수 없었다.(그래서 올라온 날 저녁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그리고 유기농산물이라고 하지만 실상사에서 먹었던 것과는 또 다르다. 실상사에서의 농작물은 전문적인 사람들의 작품이고 이곳은 일반 농민들이라서 그랬을까?

맛이 조금 달랐다. 실상사에서 먹은 것이 더 자연의 맛을 담고 있었다. 그래도 둘 다 지금 내가 돌보고 있는 놈들보다는 모두 덜하다.


그 날 저녁 행사에서는 마임을 배웠다. 서로 어색한 기운이 많았는데, 서로의 동작 따라하기 라든가 마임배워서 강사 따라하기 같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어색했던 분위기가 친밀하고 웃음이 넘치는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다. 역시 서로 어색함을 없애는 것에는 함께 몸으로 하는 놀이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그 날의 행사를 모두 마치고 남자들은 따로 숙소로 이동을 했다.

그곳은 나중에 한우를 기르려고 준비하고 있는 축사 옆 숙소였다. 어찌나 잘 지어놨던지 크기도 무지 크다. 아직 소는 기르지 않는데, 그 이유가 자급 체계가 구축되지 않아서 라고 한다. 소가 지금 사상 최고로 비싼 이유도 있지만 그 소를 먹일 수 있는 준비가 덜 되어서 계속 준비 중인 상태라고 한다. 이제 소까지 키우게 되면 퇴비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려고 하는 것 같다. 유기농이라고 하지만 퇴비나 환경자재를 외부에서 사다쓰면 그것도 또 다른 형태일 뿐이지 농약, 비료 주는 것과 유사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잠을 잘 수 있을까?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지나가랴... 우리는 홍동 막걸리 20통을 사다가 마셨다. 홍동 막걸리는 맛이 기막혔다. 달달한 맛이 강했는데 서울 막걸리의 탄산같은 톡 쏨도 없고, 포천 막걸리의 시금털털한 맛도 없이, 부드럽게 혀를 타고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는 맛이다. 처음엔 어떻게 준비를 해야할지 몰라 귀농학교 사람들만 갹출해서 10통을 샀다가 냄새를 맡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씩 몰려 오는 통에 10통이 추가되었다. 역시 이런 일의 추진에는 최동주 선생님이 계셨다.


주형로 선생님이 무지 신경을 써주셔서 안주도 맛나게 먹었다. 특히 술자리에서 해주신 주형로 선생님의 말씀에 정말 많이 배웠다.


"농촌에 농부만 있어서는 안된다."

"귀농하려면 자기가 가진 전문기술을 살릴 수 있도록 해라."

"마을에는 미술가도 필요하고 이발사도 필요하고 교수도 공무원도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곳이 살아있는 마을이다."

"귀농한다면 가장 처음 할 일은 마을 어르신들 대접하는 일이다."

"처음엔 남들 하는데로 해보아라. 농사는 독불장군처럼 혼자 튀게 지으면 안된다. 그럼 왕따 된다."


이런 귀농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과 의견과 특히 자식을 두고 있는 아버지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교육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자식을 어떻게 키워내고 교육시키고 했는지의 과정들에 대한 이야기. 풀무농업고등학교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옆에서 바라본 홍순명 선생님과 풀무학교에 대한 이야기. 많은 이야기에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머리가 조금 더 좋고, 술을 좀 자제했으면 더 많은 이야기가 생각날텐데 이 정도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은 요청만 한다면 나중에 서울로 오셔서 이야기를 해주신다고 했으니 나중에 꼭 모셔봐야겠다.


그렇게 치열한 밤을 보내고 모두 피곤에 지쳐서 잠이 들었지만, 최동주 선생님과 안성호 선생님은 쉽게 잠이 오지 않았을까? 새벽까지 자지 않고 있다가 농부들이 논에 나올 무렵 걸어서 교육관까지 이동하셨다 한다. 그렇게 지나오면서 농민들을 만나 여러가지 묻고 듣고 하셨나보다. 역시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다.'


다음날 행사는 주형로 선생님의 강의와 유기농체험(수확), 그렇게 수확한 것을 사는 일, 황토염색, 제기만들기, 등등의 행사가 이어졌다.


녹색연합을 칭찬하고 싶은 것이 그런 행사를 최대한 느슨하게 해놔서 편안하게 즐기면서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중에 내가 무슨 행사를 진행한다면 그렇게 느긋하고 느슨하게 진행시키고 싶다. 황토염색은 우리가 지리산에서 했던 것과 좀 달랐다. 그때는 거의 2시간 동안 주물럭 했는데 여기는 한시간 정도 주물럭 댔을까?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직접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염색은 비슷하게 되는 것 같던데...어떤 비법이 있는지 모르겠네...


행사를 겪으며 술에 찌들어 피곤한 몸이 되었지만 너무 좋았다.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마을을 살린다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렇게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그 결과물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지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더 깊이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며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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