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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GENE LOGSDON


난 최근에 농부가 역사학보다 현대 과학에서 지속가능한 농사에 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농업은 "앞으로" 거대한 도약을 해왔고 고고학은 "뒤로" 거대한 도약을 해왔는데, 둘은 모두 흥미롭고 몰입하게 만든다. 둘의 작업은 불리한 조건에서 행해진다. 고고학은 조용한 과거를 연구하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걸 걱정한다. 농업은 진실로 판명되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를 추정한다. 두 과학은 뚜렷하게 다른 철학을 지닌다. 농업은 돈이 되는 사업으로 농사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고고학은 왜 수익성 있는 농사가 문명의 파괴를 이끄는지 발견하는 데 관심이 있다. 

고고학자는 특히 중미와 북아프리카에서 줄곧 새로운 정보를 찾고 있는데, 두 사례의 과거는 그렇게 조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자기록과 시일을 알 수 있는 비문자기록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중미의 마야 제국과 북아프리의 카르타고 제국이 그렇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마야 제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수천 년 오래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새로운 증거를 보고하고 있다. 유카탄반도는 역사학자들이 이전에 결론을 내린 것보다 수백 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살았다. 그런 수백 만을 먹인 것은 당시 수익-농사였던 매우 발전된 옥수수(maize 또는 corn) 농업이다. 그러나 마야인들이 옥수수 수확량을 높이는 더 기발한 방법을 알아낼 때마다, 인구가 증가하여 더 많은 수확량을 필요로 했다. 한 예로: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이 빠질 수 있어 습지의 땅에서 많은 진흙을 퍼다가 날라서 옥수수밭을 만들었다. 슬프게도 마야인들은 수익-농사로 얻은 부를 특정 종류의 시멘트가 필요하고 그 시멘트는 어마어마한 양의 나무를 태워서 만들어지는, 거대한 피라미드와 요새를 건설하는 데 사용했다. 나무를 태우고 더 많은 농사를 위해 땅을 개간하여, 숲은 파괴되었고 토양침식이 뒤따랐다. 또 부도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으로 사람들을 꼬드겼다: 전쟁. 그리고 사람들은 너무 많은 옥수수로 식습관 문제를 갖기 시작했다. 이와 비슷한 소리를 들어보지 않았는가?

기원전 약 100년 로마가 카르타고를 파괴했을 때, Scipio는 흥미롭게도 놀라운 어떤 것을 구했다: 책들이다. 무엇에 대한 것인가? 농사. 저자 Mago는 어떻게 강우량이 제한된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농사짓는지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당시 북아프리카의 농민들이 여름에 쓰려고 모든 종류의 수로, 저수지, 계단식 농지, 심지어 거대한 물통을 가지고 어떻게 겨울 비를 저장했는지 읽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당시에는 사막이 아니라 대초원에 드문드문 나무가 있던 그 땅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북아프리카는 로마 시민에게 몇 세기 동안 거의 공짜로 곡물을 제공했다. 다시 한 번 부는 부족과 국가들 사이의 거의 끊임없는 전쟁을 이끌었다.

오늘날 튀니지에서는 지금은 사막인 곳에서 산산조각으로 폐허가 된 원형극장을 볼 수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생겼다. 거기에는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그곳은 현재 대부분 모래로 묻혔는데, Thysdrus란 고대 도시가 있던 곳이다. 북아프리카 전역에 거대한 사원,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대리석 욕조, 밀과 올리브유를 저장하는 커다란 창고가 있는 도시들이 묻혀 있다. 그것은 이 사막이 기후변화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당시보다 오늘날 북아프리카에는 비가 훨씬 많이 온다. 전쟁과 부의 낭비에 덧붙여 일어난 것은 사하라 사막 가장자리에 있는 고지대에서 지나친 방목이 이루어지고 흙이 농지에서 쓸려가 버린 것이다. 유목민은 그들의 흙을 따라 북쪽으로 갔고 농민과 목동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분열과 혼란은 훌륭한 건조 지역 농법을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난 Thysdrus의 원형극장 사진을 보면서 캔사스시티에 있는 두 경기장이 생각난다. 그곳도 역시 언젠가는 사막에서 산산조각이 난 폐허가 될 것인가?

오, 이 바보 같은 작자야. 여긴 문제 없어. 우린 그저 우리의 놀라운 옥수수 유전자를 좀 더 채우고 더 큰 트랙터를 만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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