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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농-문화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우시장

by 雜s 2025.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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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우시장(화성·수원장으로 성장. 전국 3대 쇠전)
설명: 정조 이후 수원 신읍지 조성과 둔전정책으로 우시장 발달. 근현대까지 명성이 높았음.  

 

수원 우시장은 전국에서 ‘3대 우시장’이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했다. 장날이면 수백마리의 소와 사람이 모여들었다. 수원역에서 내린 소들은 소 여관인 ‘마방촌’으로 갔다. 상인들의 눈에 띄어야 잘 팔리기 때문에 소는 마방촌에서 단장하고 쉬다가 다음날 아침 우시장으로 나왔다. 소의 거래는 ‘거간’이라고 불리는 중개인과 소 주인의 여러차례 흥정을 거쳐 이뤄진다. 우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수원 우시장 역사는 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조대왕은 수원에 화성을 축성하고 신읍치를 건설한후 수원을 성장시키기 위해 둔전을 만들고, 농민들에게 소를 나눠줬다고 한다. 소가 점점 늘어나자 수원장에서 송아지가 거래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형성됐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소를 팔려는 남부 지방 사람들은 서울과 가깝고 솟값이 좋은 수원 우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북수동 우시장(현재 매향여중 건너편)은 해방후 영화동 우시장으로 이전했다. 수원 우시장은 영화동 시기가 전성기였는데, 서울로 반출되는 ‘고기소’가 모이는 ‘중개 시장’의 성격이 강했다. 수원 우시장은 우리나라 최대의 육류 소비시장인 서울과 인접해 크게 성장했다.
1970년대 후반 수원시 도심이 확장되면서 영화동 우시장은 곡반정동으로 밀려났다. 곡반정동 우시장은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우시장으로 재탄생했지만 축산 유통 구조가 변화하면서 1980년대 이후 쇠퇴했다. 1996년 곡반정동 우시장이 폐쇄되며 수원 우시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4회 경기도 가축 품평회

 

 

일제강점기 수원 우시장의 모습

 

 

1950년대 북수동 우시장 모습

 

 

1950년대 인계동 도축장

 

 

 

 

 

 

- 부산(부산진) 우시장
설명: 동남 해안 교통로의 요지로서 전라도·경상도의 가축이 모였고, 조선 말·근대에 걸쳐 큰 우시장으로 기능.  

 

1930년대 부산진 우시장의 모습

 

 

 

 

- 김천 우시장
설명: 영남권의 대표적 우시장 계승 사례로 지역사 자료에 자주 등장. (황금동·신음동 등 우시장터 관련 기록 존재).  

일찍부터 김천의 우시장(牛市場)은 수원·진주 우시장과 함께 전국 3대 우시장으로 꼽혔다. 1800년대 중엽에 전국 5대 시장 반열에 오른 김천장의 영화도 이처럼 큰 우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성기 김천장의 주거래 품목에서 축산물 비중이 가장 높았고, 그 주종은 우시장을 통한 소(牛) 거래와 쇠가죽(牛皮) 무역이었다. 활발한 도축업(屠畜業)은 우피 생산을 촉진했다.

 

1940년대 김천 우시장의 모습

 

 

 

- 나주 우시장
설명: 호남권의 유력 우시장 중 하나로, 지역 식문화(나주곰탕 등) 형성에도 영향.  

 

 

 

 

- 문헌에서 자주 보이는 곳들

아래는 지역사·지방문화대전·지리지·장시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우시장·쇠전’ 관련 지명

• 경기·강원권: 수원(화성)·죽산(안성)·봉일천(파주)·이천 등
• 영남권: 김천·상주·문경·부산진(동래)·충주(영남로 인근 집결지) 등
• 호남권: 나주·함평 등

참고/근거(주요 출처)
1. 한국민속대백과(우시장 항목) — “조선시대 우시장에 대한 완전한 통계는 없다” 등.  
2. 대한민국역사/역사콘텐츠(‘큰돈이 오고 갔던 우시장’) — 장시·우시장 분포 관련 조사·추정 통계(문헌근거).  
3. 수원 우시장 관련 지역자료(경기도문화원·지역전시 등).  
4. 부산진 우시장(부산 향토문화) — 동래·부산의 대표 우시장 기록.  
5. 김천·지역사 자료(디지털 김천문화대전) — 김천 우시장 관련 역사·변천 기록.  

 

 

*자료마다 3대 우시장이 다 달라, 중복되는 수원만 3대 쇠전이라 표기하고 나머지는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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