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토종 벼를 베어 이삭을 터는 모습이 자주 보이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벼 이삭을 떨 때 자주 쓰는 농기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전통적으로 이삭을 떨 때는 주로 '개상'이라는 농기구를 사용했습니다. 말이 농기구지 그다지 정교할 건 없지요. 그냥 절구통이나 돌덩이 또는 통나무를 가져다 놓고 거기에 볏단을 탁탁 때려서 이삭을 떨어내는 방식을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일본 농학자들이 들어와서 보고는 '으아, 이 조센징들 미개하기 짝이 없스무니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고 합니다.
개상질을 하려면 먼저 타작마당을 만들어야 합니다. 집 앞의 너른 공터인 마당에 깨끗한 새흙을 이고 지고 가져다가 싹 깔고, 발로 밟고 공이로 쿵쿵 다져서 반반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타작마당을 잘 만들수록 나중에 벼를 수확하고 쓸어서 담을 때 흙이나 돌이 적게 들어가기에 있는 집일수록 타작마당을 만드는 일에 신경을 썼지요. 물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남의 집 일이나 해주러 다니기에 바쁘지 정작 자기집 일은 제대로 하기 어려웠지만요.
그런 모습을 관찰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조선의 벼농사를 발전(?)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그들은 무언가 수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본국으로 쌀을 많이 가져갈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1906년부터 새로운 벼 수확 농기구를 보급하기 시작합니다. 그네(흔히 서유구 선생의 아버지 서호수 선생의 <해동농서>에 나온다고 하는데 거기에서는 稻箸, 즉 벼 젓가락이 나온다. 그네와는 다른 농기구인 것 같다. 아무튼 일의 능률을 높이고자 이 농기구의 아래쪽에 새끼줄을 걸고 판자를 걸쳐놓아 흡사 그네를 타는 것처럼 일하기에 붙인 이름인 것 같음), 도급기(벼를 훑는 기구라는 뜻의 한자어), 훌태, 홀태(말 그대로 벼를 훑는 모습을 이름으로 붙인 것), 천치(천개의 이빨이란 한자어로 일본에서 쓰던 이름) 등등 지역마다 사람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그 농기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농기구를 공짜로 분배해 주었습니다. 1909년 통감부에서 배부한 자료를 보면 그네가 1,026개 분배되었다고 합니다. 뭐 누구 코에 붙이냐 하겠지만, 최첨단 농기구였다는 걸 감안하면 이걸 받은 사람을 얼마나 부러워했겠습니까. 마치 '옆집 김씨네 100마력짜리 트랙터를 샀다네' 하는 심정이지 않았겠습니까?
이 농기구의 효율이 얼마나 좋았냐면, 오인급이라고 하여 다섯 사람의 몫을 해낸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거 한 대만 있으면 다섯 사람이 하루종일 개상질한 것과 맞먹는 양의 일을 했다는 소리겠죠. 나중에 발로 밟는 족답식 탈곡기가 나올 때까지 이 농기구가 널리 쓰이곤 했답니다.
나락 거두느라 모두들 고생이십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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