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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멕시코계 종자회사인 세미니스에게 한국의 양대 종자회사인 중앙종묘와 흥농종묘가 인수합병된 사건은 모두에게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지금도 종자와 관련해서 인구에 회자되는 사건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또 세미니스가 2005년 몬산토에 인수되면서 한국에 몬산토코리아가 설립되었지요. 몬산토코리아의 대표적 품종이라면 역시 청양고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즐겨 먹는 청양고추가 바로 몬산토코리아의 제품으로 해당 기업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해주고 있지요.


그런데 2012년 종자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바로 동부팜한농의 몬산토코리아 인수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몬산토코리아 전체를 인수한 것이 아니라 몬산토코리아의 채소종자사업부의 일부를 제외하고 인수하게 됩니다.

당시의 인수합병으로 대부분의 종자에 대한 권리를 구입했으나, 여전히 고추, 파프리카, 시금치, 토마토 등 국제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품목에 대해서는 몬산토코리아가 양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직원들도 200명이 넘게 동부팜한농으로 넘어갔다고 하는데, 몬산토코리아로 취직했다가 하루아침에 동부팜한농의 직원이 된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는 직접 만나봐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재미난 건 이 일로 동부팜한농에서는 외국계 기업에 팔린 '종자주권'을 되찾아왔다고 엄청 시끄럽게 홍보했지요. 

한겨레신문에서조차 "동부팜한농, 종자주권 15년만에 되찾아"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을 정도이니 말 다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볼 때는 그저 이 기업에서 저 기업으로 종자의 개발, 판매권이 넘어간 일일 뿐인데 그걸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떠들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누구나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기업에서 독점할 수 있는 권리를 매매한 것인데 말이죠. 


몬산토코리아 입장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겁니다.

한국의 종자시장 자체가 규모가 워낙 작아 큰 돈도 안 되는데 거대한 조직을 많은 비용을 들여가면서 운영해야 하는 것인지, 이 종자회사를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교두보로 이용하려 했는데 생각처럼 되지도 않고, 더구나 한국에선 자신들의 주요 상품은 유전자변형 작물의 종자를 판매할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여차저차 짐이 되고 있던 찰라에 좋은 값을 쳐준다고 하는 매수자를 만났으니 얼씨구나 하고 팔아 넘겼겠지요. 기업이 어디 손해보는 장사를 한답니까.

또 동부팜한농 입장에서도 농업 전 분야에 걸쳐 세력을 확장하며 진출하고 있던 찰라에 대농종묘를 인수하고 이듬해 바로 몬산토코리아의 채소종자사업부까지 합병함으로써 종자업 분야에서 나름 큰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겠죠. 하긴 두 종자회사를 인수하면서농우바이오에 버금가는 큰 기업으로 자리를 잡긴 했습니다. 


종자회사들의 이러한 움직임이 토종 씨앗에는 어떠한 이로운 점이 있을까요?

신품종을 개발하기 위한 유전자원을 확보하려는 종자회사들에게 말이죠.

종자회사들이 우리는 토종 씨앗을 보존하는 중요한 일도 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일 뿐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일 겁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유전자원의 중요함을 알고 유전자원센터를 운영하며 토종 자원을 보존하는데 힘을 기울이지만, 그건 현지외보존으로서 더 중요한 건 현지내보존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서 현지내보존을 추진하는 일도 어렵습니다. 토종 씨앗에 대한 보조금 등을 지불했다가는 기업들에게 소송을당할 수도 있는 시대이니까요. 그나마 식량작물의 종자는 안보의 차원에서 국가에서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민간에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채소 종자의 경우에는 사정이 너무 다릅니다. 


자료를 뒤져보니 배추의 경우 60년대부터 1대잡종, 즉 F1이 득세하고, 수박은 70년대에 그랬다고 하네요. 무와 고추는 재래종이 괜찮아서 농민들이 꽤 오랫동안 신품종을 많이 구입하지 않고 기존 종자를 이용해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다른 채소 작물에 비해 10여 년 정도의 기간이었지 지금은 대부분의 농가에서 신품종 종자를 구입해서 농사짓고 있지요.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상품성에서 비교할 수 없는 이점이 있기에 선택한 바일 겁니다. 


농업에 조금 관심 있는 분들 사이에서는 "몬산토" 하면 절대 악, 악의 축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몬산토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꼭 몬산토만 그런 일을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 현실이지요. 다른 종자회사들도, 그리고 관련 농기업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 주식회사 같은 경우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서 운영될 뿐 거기에 어떠한 숨은 의도가 있고 음모가 있고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나쁜놈이고 우린 무엇을 비판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적이 있어야 대립각을 세워서 치열하게 싸울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게요. 도대체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현행 농업 체계와 그를 둘러싼 사회의 구조 등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기농업을 실천하지 않는,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 농민 개개인을 비판하기보다는 그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비판하고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명확한 적이라 인식한 상대를 공격하기보다는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큰 구조와 체계를 바꿈으로써 그 안에 있는 개개의 요소들을 변화시켜 나간다는 전략이지요.


하지만 그게 어디 쉽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일은 상당히 더딘 과정이기도 하지요. 당장 나의 밥상만 보더라도 최대한 얼굴을 아는 농민의 농산물로 차리려 하지만 모든 음식을 다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또 유기농산물을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라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정직한 농민에게 제값을 치르고 먹어야 한다 생각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내가 먹는 모든 음식을 유기농산물로 요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제대로 농사짓는 농산물들이 비싸고 비효율적인 면도 있는 등 무결점의 무엇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한 부분들로 인해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비판을 받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사회 구조적으로 생산성, 효율성, 경제성의 가치만 강조하며 그렇지 않은 것은 나쁜것, 덜 떨어진 것,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입니다. 물론 생산성, 효율성, 경제성은 중요한 판단기준입니다. 유기농업이나 토종 씨앗에서도 그러한 부분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관계망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은 그것이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고,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복잡다단한 세계 속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치가 있을 수도 있지요. 그걸 제대로 평가해내면 오히려 다른 것에 비해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며 경제적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생각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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