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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농법

<기적의 논> 읽기

by 石基 2015.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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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논>은 일본에서는 <궁극의 논>으로 출간되었다. 둘 다 엎어치나 메치나 같긴 하다.




기적은 없었다.



이 책의 제목 ‘기적의 논’은 지금 생각해도 후회스럽다. 번역을 마치고 책의 제목을 정할 때 역자인 나에게도 당연히 의견을 물어왔다. 난 이 책을 읽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다양한 생명이 살아 있는 논’이라는 점을 강조해서 제목을 정하자고 제안했는데, 당시 유행하던 ‘기적의 사과’ 덕에 이 책의 제목도 기적의 논이라고 정해졌다. 그것이 핵심이 아닌데 말이다.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된 저자 故 이와사와 노부오 씨는 천상 농부였다. 책이 출간되고 그의 초청 강연을 추진하던 차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그래서 비록 직접 만나볼 기회는 얻지 못했지만 그가 쓴 글을 옮기면서 그의 성격이며 인품 등을 엿본 느낌이 그러했다. 한 사람의 농부가 혼신을 다해 ‘갈지 않고 옮겨심는 농법’을 확립하고자 얼마나 노력했을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이 책의 서평을 청탁 받고서 한참을 고민했다. 내가 직접 번역한 책을 평한다는 건, 마치 자기 자식을 남들 앞에서 평가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그것만큼 어렵고 난감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첫 번째 청탁은 고사했는데 다시 또 청탁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여유도 생기고 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가 번역한 책의 서평을 써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일반적인 서평이 아니라,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농법을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그럼 이와사와 노부오란 농부의 벼농사에 대해 살펴보자.





갈지 않고 모를 옮겨 심는 농법



먼저 그의 벼농사 가운데 가장 큰 특징은 땅을 갈아엎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즘 뜨고 있는 이른바 ‘무경운’ 농법과 맥이 닿아 있다. 그가 이러한 농법을 착안한 건 호주로 이주한 일본인이 행하던 벼농사에 대한 자료를 접하고부터이다. 

“강수량이 적은 모래땅에 땅심을 북돋고자 먼저 한 해 전에 토끼풀을 재배합니다. … 공기에 있는 질소를 땅속에 고정시켜 줍니다. … 이듬해에는 양을 방목하여 토끼풀을 먹게 합니다. 그 뒤 디스크라는 원반형 보습으로 땅바닥에 골을 내고 나아가면서 그 골에 볍씨를 심고, 20~30센티미터 깊이로 물을 채웁니다.”

무경운 농법의 핵심은 바로 글로말린이란 물질에 있다고 한다. 1996년 미국 농무부의 사라 라이트 박사가 이를 발견했는데, 식물과 공생하는 균근균 가운데 진균이 배설하는 점착성 단백질이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이 진균은 식물의 뿌리에 기생하며 번식을 하기에 땅을 갈아엎으면 말라 죽어버린다. 그래서 땅을 갈아엎기 시작하면 매년 새로 경운을 하여 땅을 부드럽게 만들어줘야 하지만, 무경운으로 진균이 살기 좋은 환경만 조성하면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떼알구조의 흙이 되어 비옥해진다는 원리이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호주의 농법을 저자가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은 추워서 곧뿌림(직파)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기존처럼 모내기를 하는 방법인데, 관행적인 육묘와는 다른 점이 있다. 바로 2.5잎의 어린모가 아니라 5.5잎의 자란모를 키워 옮겨심는다는 것이다. 자란모가 더 좋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벼의 잎은 광합성을 하여 녹말을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벼는 늘 5장의 잎을 써서 기능을 분담합니다. 위의 2.5장은 몸체를 만들며 생장과 알곡을 만드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아래의 2.5장은 뿌리에 녹말을 보내며 양분의 흡수와 유해물질을 중화하는 등의 기능을 담당합니다. … 따라서 5장의 잎을 가진 자란모는 정상이지만, 2.5장의 잎밖에 없는 어린모는 어중간하여 벼의 고유한 모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린모를 선호하는 것은 육묘 기간을 최대로 줄인다는 측면도 있지만, 모가 길면 이앙기로 모내기를 할 때 기계에 잘 걸리기에 그렇다고도 한다. 하지만 어린모가 본논에 나갔을 때 초반에 더 몸살을 앓을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밖에도 건강한 모를 기르는 비법이 몇 가지 더 있다. 하나는 모판 하나에 볍씨를 조금만 넣는다는 것이다. 관행농법에서는 모판 하나에 보통 약 200그램의 볍씨를 넣지만, 저자는 그 절반 이하인 70그램만 넣는다. 그리고 또 하나는 모의 잎이 2장이 되면 아직 추울 때이지만 모판을 논의 물에 넣는다는 점이다. 일부러 모에 시련을 주어 튼튼하게 만드는 셈이다. 





겨울철에도 물을 받아놓는 논



어렸을 때를 기억하면, 겨울철에 논의 꽝꽝 언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고 놀았다. 가끔 벼의 밑동에 걸려 자빠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렇게 겨울에도 논에 물을 담아놓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 다니면서 보는 논에서는 그런 모습을 좀처럼 보기가 어렵다. 농사법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알아보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고, 이와사와 노부오 씨가 실천하는 방법이 바로 겨울에도 논에 물을 담아놓는 일이다.

“겨울에도 논에 물을 채워 놓고서 논의 광합성을 촉진시키고, 식물성 플랑크톤이나 그것을 먹이로 하는 동물성 플랑크톤의 발생을 도와 벼의 생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논에 공급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료 없이도 재배할 수 있습니다. 또 잡초의 발생도 억제하기 때문에 ㅣ농약 없이도 재배할 수 있습니다.”

겨울철 논에 물을 담아놓는 일만으로도 비료나 농약 없이 농사지을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저자가 이 방법을 발견한 것은 기러기를 이용한 녹색관광(그린 투어리즘) 사업을 구상하면서였다. 철새인 기러기가 날아와 머물게 하면 그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목적에서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그를 위해 논에 겨울철 물을 담은 곳에서는 풀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찾아다니다 한 책에서 힌트를 발견한다.

“확실히 실지렁이가 많은 논은 대체로 풀이 잘 자라지 않는다. 실지렁이의 행동이 풀의 생육을 억제한다.”

그러니까 겨울철 담수로 실지렁이가 생존하며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어 그로 인해 덤으로 풀의 발아가 억제되었다는 것이다. 효과는 그것만이 아니다. 실지렁이의 분변토로 인해 논의 흙이 비옥해지는 효과도 함께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오리와 물고기를 이용한 오리농법이나 벼논양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은 논에 자연히 사는 고유한 생물이 아니라 인간의 목적에 의해 외부에서 투입된 생물로서, 넓게 보아 외부투입재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생명이 살아 숨쉬는 논



지금까지 살펴본 무경운이니, 자란모 모내기니, 겨울철 담수와 실지렁이가 활용하는 원리는 모두 하나로 통한다. 그것은 생명이 생명답게 살아 숨쉬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농부의 역할이란 사실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여 그것이 잘 유지, 관리되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기농업이라 하여 화학비료를 유기질 퇴비로, 농약을 친환경 무엇으로 대체만 하는 식의 모습이 보이곤 한다. 그런데 유기有機라는 뜻은 전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음이 아닌가. 농경지를 중심으로 주변환경과 작물을 포함한 그 안의 여러 생명들이 하나처럼 밀접히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 농사가 아닐까 한다. 그것이 바로 요즘 주목받고 있는 농생태학Agroecology의 핵심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이 외부에서 에너지와 농자재 등을 끌어와서 투입하며 생산량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의 원리를 활용해 환경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최대한 지속가능하게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것이 농생태학이다. 

이와사와 노부오 씨가 새로운 농법으로 농사를 지은 논에서는 단지 벼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개구리와 잠자리가 찾아오고, 해충과 천적이 균형을 이루고, 우렁이가 노래하는 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수확량, 즉 경제적인 측면이라는 토끼도 놓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다양한 생물들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공간으로 논이 새롭게 자리매김을 한 셈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와사와 노부오 씨의 농사와 농생태학은 서로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평생을 농사에만 전념한 사람이라 글을 논리적으로 재미있게 쓰지는 못했다. 책을 읽다보면 이 내용이 저 뒤에도 나오고 순서도 뒤죽박죽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많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일관되게 읽을 수 있는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환경을 파괴하는 농사를 짓지 말고 새로운 방법에 끊임없이 도전하여 자연과 함께, 인간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아가자는 것이다. 점점 갈수록 농장이 공장처럼 되기를 강요하고 있는 이 시대에 어떠한 길로 어떻게 걸어갈지 고민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단박에 갑자기 무언가 확 이루어지는 기적은 없다. 그저 우리가 사람의 일을 다 하고자 노력하고 또 노력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 할 뿐이다. 그럴 때 우연히 일어나는 무엇을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뱀다리; <기적의 논>은 아직 1쇄도 채 다 팔리지 않아 인세가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 책이 갑자기 확 팔려 인세를 받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이 책만 생각하면 비운의 자식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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