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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중후반,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귀농'이란 주제가 사회운동의 하나로 조직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귀농 교육이 시작되었다. 운동의 초기 모습이 대개 그렇듯이, 당시의 귀농 교육은 주로 당위성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졌다. 그래서 초기의 귀농자들은 마치 투사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귀농이란 깃발을 하나 들고 농촌으로 쳐들어가는(?)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그도 그런 것이 관행농업이 판을 치는 농업, 농촌에서 유기농업이란 낯설고 이상하기까지 한 방법을 주장하며 풀밭이 되더라도 고집스럽게 그 원칙과 방법을 고수하는 귀농자들은 쉽게 마을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지닌 당위성을 바탕으로 그러한 억압과 시련(?)을 이겨낼 수가 있었다. 말이라 쉽지 정말 길고도 외로운 싸움이었다.


미리 예견한 것은 아니지만, 1997년 터진 IMF 사태로 엄청난 수의 실업자들이 한꺼번에 귀농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필요한 건 당위가 아닌 현실이었다. 그들은 투사가 아니라 생활인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당위성에 충실한 귀농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투사이기 이전에 그들도 가족을 부양해야 할 생활인이었다. 결국 현실성을 갖추지 못한 초기의 귀농자들 가운데 대부분이 결국 다시 역귀성하여 도시로 나왔다.


그러나 어려움을 이겨내며 잘 정착한 초기 귀농자들 사이에서 현실적 요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린 당위성으로만 살 수 없다. 현실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귀농운동본부에서는 이를 받아서 조금씩 실용적인 농업/생활기술에 대한 강좌를 마련했다. 그 강사로는 정착한 귀농자들이 실력을 발휘했다. 그들의 강의는 펄떡펄떡 살아 있었다. 학자들의 고리타분하고 죽은 자식 고추 만지는 듯한 이론뿐인 교육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살면서 이러저러한 고민과 갈등, 번뇌 끝에 일궈낸 내용이기에 귀농 희망자들의 머리와 가슴을 울릴 수 있었다. 그렇게 강사진이 하나둘 귀농자들로 꾸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다. 귀농자들의 경험이 현장성이 살아 있고 실용적인 것은 사실이나, 체계화나 이론적 측면에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부분은 천상 학자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바로 밥그릇 문제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학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무대는 대부분 관청과 연계한 귀농교육이다. 그곳에는 지원금 같은 돈이 넘친다. 그런데 그곳의 교육은 현실성만 강조하고 상대적으로 당위성은 취약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귀농하여 돈을 버는 데는 성공할지 모르나 농촌이란 사회에는 오히려 해가 될 때도 있다.


최근 은퇴자의 증가와 함께 귀농귀촌 바람이 불고 있다. 2011년에는 1만 여 가구가 귀농을 했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러한 귀농자들의 실상을 들춰보면, 10가구 중 6가구가 1인가구로 귀농을 한다고 한다. 곧, 농촌사회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부부가 함께 귀농할 때, 또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이 귀농할 때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아무튼 앞으로 귀농운동과 교육은 당위성을 바탕으로 개개인에게 도움이 되는 현실성을 갖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위 따로 현실 따로 이루어지는 방식으로는 온전한 귀농인을 양성할 수 없다. 정부 차원의 귀농교육이 우려되는 점은 바로 이러한 측면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회단체 차원의 귀농교육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선 더 다양하게 현실성을 갖추고 전문적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안정적 자금이 필요하다. 이에 동의하심 회원가입을 바란다... http://t.co/dlMc1hMW


귀농운동본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하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하다 정부 지원 사회단체에서 탈락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벌여온 귀농사업 때문이었다. 이제 귀농자와 그 뜻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꽤 두터워진 덕이다. 그래도 그 저변이 확장된다면 더 큰 힘과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귀농, 농촌, 농업 문제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로 꿰뚫어져 있다. 귀농운동이 잘 되어야 농촌이 살고, 농촌이 살아야 농업이 산다. 마찬가지로 농업이 살아야 농촌이 살고, 농촌이 살아야 귀농운동이 잘 된다. 모두 農이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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