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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 민속학의 독립된 학문이라기보다는 필자의 지적처럼 “민속학 자체의 분석모형의 정립을 위한 방법론의 다양성이 문학적 방법론의 아류로 순치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비단 국문학만이 아니라 역사학이나 인류학에서도 민속학을 그렇게 다루어왔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민속학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국 민속학에는 “독자적 역사·문화인식”의 확립과 “학문적 전통의 단속에 대한 자기 성찰”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하여 이제 민속학은 그 다양한 연구 범위를 독자성을 띤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다루고, 보편성과 특수성을 갖춘 독립과학으로서 정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데에서 이 논문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더욱 확고히 하려면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 민속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최남선과 이능화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이다. 그의 주장처럼 그들의 연구 업적은 “우리 역사·문화의 해석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이며 “한국민속 자료를 문헌학적으로 정리한 업적”이라 평할 수도 있으나, 냉철하게 그들의 연구가 지닌 한계를 명확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은 일제에 의해 만선사관으로 이용되었다는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능화의 업적은 현장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다.

둘째, 필자는 ‘한국인의 韓文化에 대한 관심’이 일제에 의해 무참히 단절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의 주장처럼 “민속학적 관심이 민족문화에 대한 자각에서 연원하는 것”이라면, 일제강점기에는 그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만약 단절된 것이라면, “고려 후기 13~14세기에서 조선시대 전기에 걸쳐 자생문화에 대해 일어나는 자각은 그 맹아기”라는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 모든 왕조의 교체가 그렇듯이 조선은 고려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토대 위에서 출발한 왕조이다. 당시 고려와 조선의 사람들이 민족이란 개념을 전제로 하여 민족문화를 자각했는지는 의문이다.

셋째, 앞의 지적과 연관하여, 필자는 일본인이 수행한 연구를 “우리의 민속체계의 맥락을 소홀시하고 역사성이 결여된 민속사상을 평면적으로 기술”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필자가 앞에서 예로 제시한 ?삼국유사?를 위시한 여러 문헌의 서술보다, 물론 관점과 목적에는 문제가 있지만 일제강점기에 수행된 연구가 어떤 측면에서는 더 입체적이고 구체적으로 ‘民’의 생활문화를 다루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일제에 의해 강점을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까지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관점에 전제되어 있는 ‘민족’이란 개념을 문제 삼는 것이다. 민족은 근대 이후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이다. 우린 지금도 민족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다. 민속학에서는 민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한반도라는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인 연구자가 수행한 민속학적 연구에 대한 반발과 반대보다는 그들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궁극적으로 민속학의 식민주의를 극복하고 ‘학문적 전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일제강점기를 단순히 민속학의 공백기라고 평가한다면, 손진태·송석하와 같이 일본인 민속학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민속학적 연구를 수행한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넷째, ‘民’의 개념 문제이다. 필자는 서양의 ‘folk’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살핀 뒤, 우리 민족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분석단위로 ‘民’의 성격을 논하면서 ‘양반문화’와 ‘서민문화’ 및 ‘남성문화’와 ‘여성문화’라는 미시적 분석단위를 제시한다. 그런데 문화는 특정 지역에서 삶을 영위하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형성하는 삶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문화는 무엇이라고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손쉽게 그 특징을 규정할 수 있는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문화를 분석하곤 한다. 하지만 필자도 인정하듯이 “이분법적 이념형 분석에 보완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이분법적 구분은 서로의 특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는 반면, 복합적이고 다양한 사회와 그 문화, 나아가 그 역사적 맥락까지를 종합적으로 살피는 데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다섯째, 그러한 이분법적 분석은 한 집단의 우월함과 다른 집단의 열등함이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다. 아키바 다카시가 조선의 민속을 연구하며 제시한 ‘이중구조’가 바로 좋은 예이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사회는 이분법적 분석으로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구조이다. 중세사회처럼 지배-피지배, 상류층-서민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분석체계로 민속을 연구할 것인지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그가 강조한 것처럼 민속학의 ‘현재학’적인 측면이 중요하다면, 현재 다민족사회가 되면서 여러 문화가 섞이고 있는 한국 사회와 그 민속은 어떤 분석체계로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앞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강조하듯이 민속학이 보편성과 특수성을 지닌 독립학문으로 확립되려면, ‘민족’이란 한정된 대상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을 탐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기반 없이 한국 민속학을 위해 ‘비교의 안목’으로 다른 지역의 민속을 연구하는 것은, 자칫 아키바 다카시와 같은 식민주의 민속학을 탄생시킬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제시한 “생태학적 제요인”에 따른 문화적 지역성이란 견해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경우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인간의 사회구조나 문화는 칼 마르크스가 주장했듯이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하부구조는 생태학적 제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특정한 생태학적 조건에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그렇지 않은 생태학적 조건에 살고 있는 인간과 다른 생산양식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문화, 곧 민속은 조금씩 차이를 띠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현장을 중시하는 민속학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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