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식민주의 ‘조선민속학’론의 과제: 무속 전통론을 중심으로
아키바 다카시秋葉隆는 1926년 경성제국대학에 부임한 이래 조선 민속학계를 이끈 인물로, 그의 연구 성과는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무속 연구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1970년대부터 재개되는 일본인의 비교민속학적·인류학적 한국 연구에 초석이 되었다.
최길성은 한국의 민속학자들이 일본인의 ‘조선민속학’을 식민지정책을 위한 학문으로서 신뢰할 수 없다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 “식민지지배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연장된 결과”로서 일본인의 연구 성과를 “처음부터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며 식민지주의에 대한 연구라고 몰아붙이기는 하지만 어째서 그러냐는 질문에는 당황하고 만다”고 지적한다. 이후 김성례는 그러한 견해에 대하여 일본인의 ‘조선민속학’은 “한국의 일본화, 즉 내선일체라는 정치적 훈육을 위한 역사적 담론으로서 식민사관의 확립에 기여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그는 몇 가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첫째, 아키바의 무속 전통론을 가리키는 ‘식민주의 담론’에 대항한 것이라는 최남선·이능화·손진태의 무속 연구를 그 대항 담론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둘째, 식민주의 민속학의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아키바의 무속 전통론이 포착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근우는 이 논문에서 ‘조선 민속학’을 관류하는 담론 전략에 초점을 맞춰 이마무라에서 무라야마를 거쳐 아키바로 이어지는 식문주의 민속학의 정치성을 고찰한다.
2. 이마무라 도모의 ‘처녀 항해’
이마무라는 충청북도에서 경찰부장에 재직하며 “자신의 직무에 관계가 깊은 것, 혹은 자신이 취미를 느끼게 된 사항”을 조사하고 발표하며 조선 민속학을 연구한다. 그는 이를 통해 일본인과는 다른 센징의 특질이 정체성에 있다고 강조하고, 결과적으로 문명화된 일본인은 정체된 센징을 지도·계몽하고 그들의 풍속 개선을 도모해야 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현재의 과거화를 골자로 한 그의 역사민속 비교론이 센징의 이른바 선량한 황국신민화를 위한 동화주의 담론으로서, 이후에 전개된 식민주의 민속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3. 무라야마 지준의 ‘관방민속학’과 식민주의
이마무라의 주장을 이어받아 여러 과제를 본격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한 인물이 무라야마 지준이다. 그는 민간신앙을 미신으로 말살할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묘사된 생활고의 실상과 그 밑바탕에 흐르는 사상의 본류”를 파악해야 한다며, 조선인의 정신세계가 지닌 본류는 ‘依他主義’라고 결론을 내린다. 다시 말해 그도 정체되어 있고 의타적이라 타율적인 조선인을 일본이 구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4. 아키바 다카시의 무속 전통론과 식민주의
1) 조선 무속론의 전개
아키바는 유럽에서 유학하며 ‘심화적 방법’을 배우고 조선으로 온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혼인 풍속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무속 연구의 필요성을 느껴 무속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조선 무단의 사회적 특질을 논한 <조선의 무단>이란 논문을 발표하는데, 거기서 그는 “조선의 무단은 적당한 의미에 있어서 종단으로서의 발전을 이룰 수 없었던 것으로, 우리는 바로 거기에서 조선 사회 일반의 농촌적 미분화성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조선 사회 일반의 농촌적 미분화성’이 이후 그가 추구한 조선 무속론의 중심 주제가 된다.
2) 조선 사회·문화의 이중구조 모델
이토 아비토는 아키바가 조선 사회·문화의 특질로 이중구조 모델을 창시했다고 주장한다. 이중구조 모델이란 유교와 무속이란 두 전통이 남성과 여성의 사회행동, 상류와 서민의 생활 지향에 대응하며, 가정이나 촌락생활에서 둘이 상보적인 관계 아래 공존하는 실태에 주목하고, 그 상호관계의 관찰에 의해 조선의 가정·촌락사회가 지닌 개성적인 모습을 구명하려고 하는 것이란 이론이다. 그러나 그때 실제로는 두 전통의 대조성을 필요 이상으로 과정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아키바는 스스로 ‘이중구조’라는 말을 쓴 적이 없고, 오히려 그는 조선 사회를 발견하고자 노력하여 이중조직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중조직은 서로 결합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때로 독존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립적으로 병존하기도 한다. 곧 이중구조처럼 상보적인 관계에 놓여 있지만은 않다.
3) <조선민속지>와 식민주의
아키바의 현지조사에 기초한 무속과 사회 연구는 일제의 침략과 같은 선 위에서 진행되었다. 그가 지적한 조산 사회의 특질을 들면 다음과 같다. 먼저 조선의 사회는 가족주의적 성격이 강한 정체된 사회이다. 둘째, 조선의 민속은 중국 문화의 영향이 강한 사대주의이다. 셋째, 조선의 현재 민속은 일본의 옛 민속과 통한다. 이러한 비교민속을 통해 살펴본 조선 민속의 특질은 내선일체, 팔굉일우의 이론적 기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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