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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雜다한 글

나의 네 번째 카메라

by 石基 2010.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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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카메라를 산 건 순전히 절박한 목적 때문이었다.

암으로 투병하던 어머니의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이 먹고 나서는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걸 알았다.

그때가... 2001년쯤이었나?

아직 디지탈 카메라라는 걸 모르던 시절이라 용산에 가서 필름카메라를 구입했다. 수동은 어떻게 다루는지 전혀 몰라서 그것도 자동으로...

그게 바로 Rollei에서 나온 자동카메라(17만 원)였다.

그 사진기로 그래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디카를 알았다면 더 많은 모습을 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요즘에 와서 한다.

아무리 자동카메라라고 해도 필름을 사고 인화하는 비용을 무시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이 카메라는 내가 2005년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가서도 썼다.

 

하지만!

신혼여행에서 나온 결과물들은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과감히 카메라를 바꾸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몇 개월에 걸쳐 디지탈 카메라를 알아보았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Canon의 Poweshot S70(60만 원). 나의 두 번째 카메라다.

그 카메라는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잘 만들었다.

첫 여름 여행로 놀러간 속초에서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뒤 확인한 결과물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모른다.

역시 돈이 좋구나, 디지탈 카메라로 바꾸기를 잘했다.

여기저기 다니며 엄청 많은 장면을, 또 우리의 모습을 담았다.

2008년 12월에는 한 달 동안 강화도와 울릉도, 제주도를 돌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과 식물, 씨앗의 모습을 촬영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 DSLR이란 기종을 본 것이었다.

처음 가까이에서 지켜본 Nikon의 DSLR 카메라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렌즈를 갈아끼는 모습이며 큰 덩치 때문인지 결과물이 내 사진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무엇이 차이인지 2009년에 들어와 처음으로 디지탈 카메라라는 놈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아냈다, 무엇이 차이인지!

마침 수중에 돈도 들어왔겠다. 카메라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내에게는 미리 양해를 구했다. 멀쩡한 카메라를 두고 또 카메라를 산다고 이러고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 필요한 카메라는 무엇인지 자문해 보았다.

무겁고 큰 카메라는 싫다. 사람들이 쳐다보고 부담스러워하지 않아 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화질은 좋았으면 좋겠다.

그 결과 만난 것이 SIGMA의 DP1(70만 원). 나의 세 번째 카메라가 되었다.

내 기대와 다르지 않게 역시나 작은 것이 최고의 화질을 보여주었다.

우와, 이런 세상이 있다니! 나에게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나와 함께 일본까지 가서 S70과 함께 좋은 사진을 많이 남겨 주었다.

문제라면 나를 닮을 필요까지는 없는데 엄청 느리다는 거...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만지지 못한다는 거...

누군가에게 우리 사진을 부탁할 수 없는 처지.

IXUS의 광고를 보면서 정말이지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 가서 남는 내 사진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찍는다는 그 말! 100% 공감한다.

 

함께 1년 남짓 지내다 보니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햇빛이 미치는 곳에서는 최고의 화질을 보여주지만, 실내나 어두운 곳에서는 쥐약 먹은 강아지처럼 비실비실... 도무지 맥을 쓰지 못한다.

최대한 숨을 참고 참으며 흔들림 없이 찍으려 하지만 10에 2~3장이나 건질까?

그리고 그 느릿느릿한 여유로움에 결정적인 순간을 놓친 사진을 또 얼마나 많은지...

그러면서 깨달았다. 이 사진기는 풍경 사진기이구나!

사람이나 동물처럼 움직이는 걸 찍거나 실내나 야간처럼 햇빛이 없는 순간에 무언가를 찍을 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카메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미 시장에는 2008년 말과는 달리 참 다양한 카메라들이 나와 있었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제품은 Panasonic의 DMC-LX3였다.

또 삼성에서도 야심차게 새로운 제품들을 내놓고 있었다.

헌데 둘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LX3는 아는 사람이 가지고 있어 만져보았다. 참 잘 만든 카메라이긴 하지만 너무 크다.

어차피 휴대성을 강조하는 것 그렇게 클 필요가 없다. 더구나 나에게는 이미 DP1이 있지 않은가.

난 DP1이 할 수 없는 실내와 야간에 강하며 들고 다니기 좋은 카메라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삼성은 언제나 그렇듯, 하드웨어는 믿을 만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아직은 영... 그래서 통과.

또한 미러리스라고 하여 요즘 미친듯이 팔리는 Olympus의 PEN 시리즈와 Panasonic의 GF1.

이 두 놈 때문에 한참을 골머리를 앓았더랬다. 얼마나 만지작거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결론은 통과. 그 이유야 뻔하지 않은가, DP1 때문이다.

DP1은 그만큼 최상의 결과를 보여주는 카메라. 기계 성능이 무지하게 떨어지지만 말이다.

떨어지는 기계 성능은 나의 느긋한 성격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사진 찍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한 장 한 장 충분히 생각하며 숨을 고르며 셔터를 누르게 되니 말이다.

 

그러다가 새로운 카메라를 사야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S70이 부상을 입어 장애가 생긴 것이다.

원래 집에서 기르는 개인 연풍이가 새끼 때 이갈이를 하면서 한 번 카메라를 깨물어 놓아서 단추가 잘 눌러지지 않아 수리를 맡긴 적이 있다.

그런데 다시 몇 년이 지나 그 부분이 말썽을 일으켰다. 이제 아예 헐거워져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이걸 수리를 맡기느냐 카메라를 새로 사느냐 하는 갈림길에 섰다.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된 거 DP1의 약점을 보완할 카메라를 새로 사자!

수리를 해 본 경험상 이건 수리하러 들어가면 10만 원은 나오겠다. 그럴 바에 돈을 더 주고 사자!

그동안 검색하고 고심한 결과 다시 한 번 Canon을 믿기로 했다. Powershot S90(50만 원)으로 결정했다.

뒤져보니 S80이 70과 같은 형태의 비슷한 카메라였다. 그러나 90은 질적으로 완전히 달라진 카메라가 되었다.

F2.0에 다양한 기능들... 기본적인 기능은 70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동안 발전한 기술력이 응집되어 있었다.

크기는 담배갑만 하지 않나... 그저 기술의 발전에 웃음이 날 뿐이다.

이래서 전자제품은 사고 나면 후회한다. 사고 나면 또 더 좋은 것이 뒤따라나오니까... 그렇게 사람들의 소비욕을 자극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한 번 살 때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여 사고, 산 뒤에는 다른 건 돌아보지 말고 자기 것을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이 엄청난 소비의 거미줄을 벗어나 자기 완성을 이룰 수 있다. ㅋㅋ

 

아무튼 S90과 함께 최고의 조합을 이루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의식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가볍게 들고 다니며, 상황상황에 맞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DP1+S90에다가 핸드폰 카메라.

이 핸드폰은 방수에 방진이 되는 것이라 악천후에서는 제대로 성능을 발휘한다.

이로써 나의 카메라 탐닉은 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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