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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雜다한 글

나의 하루

by 石基 2008.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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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




아침에 눈을 떠


  오늘도 7시쯤 눈을 떠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린다. 그 동안 오늘 하루 무엇을 할지 가만히 생각한다. ‘오늘은 안양에 나가 종묘상에 가서 종자를 사와야 하고, 그걸 밭에 가서 심어야지.’ 그리고서 아침밥으로 생협에서 주문한 현미에, 작년에 밭에서 수확한 콩‧팥‧녹두‧수수를 함께 넣어서 준비한다.

  아침밥이 다 될 동안 텔레비전 뉴스를 본다. 요즘은 한창 미국과 FTA 협상을 맺는다고 나라 안이 시끄럽다. 미국에 자동차‧전자 제품을 수출해서 돈을 많이 벌어 오는 대신 농산물 수입을 한다는 협약이다. 그리고 수입쌀 하역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모습도 나온다. 그동안 왠만한 농산물은 다 수입하고 있었지만 쌀은 여러 이유로 예외였다. 그런데 올해부터 우루과이 라운드 때문에 쌀도 수입한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으며 나도 잠시 갈등을 한다. ‘수입쌀은 더 쌀 테니 그걸 사다 먹어볼까.’ 잠시 뒤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농사짓는다고 하는 사람이 이러면 쓰나. 그나마 쌀 때문에 곡물 자급도가 26.9%지 쌀을 빼면 4%도 안 된다고 하는 마당에 말이다. 지난번 동네 어르신의 말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보리 방앗간, 수수 방앗간이 따로 있어서 거기서 곡식을 찧어다 먹으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이제는 꿈에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은 농촌에 가 봐도 바둑판처럼 또박또박 정돈된 논들이 펼쳐져 있고, 거대한 미곡 종합 처리장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벼농사를 마치면 밀‧보리 심기에 바쁘던 모습은 사진에서나 보는 풍경이고, 땅힘을 유지하기 위해 논에 콩과 식물인 자운영을 심던 일은 전라도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 관광 상품으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뿐인가, 비닐이며 농약‧화학비료가 들어오면서 제철 농산물은 다 사라지고, 농민들은 농약‧비료값에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다고 한다. 지난번에는 ‘6시 내고향’에서 딸기가 4월 제철 과일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낄낄대고 웃은 적이 있다. 이게 보리싹인지 콩싹인지 모르는 사람을 숙맥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다 숙맥인가 보다. 하긴 나도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던 때가 있었다.

  요즘 유기농 열풍이 불면서 관행농을 하는 사람들을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는데, 그래도 아직 농촌이, 그리고 자연환경이 이렇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어렵지만 꿋꿋하게 농사를 지은 그분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 시장 논리에 밀려서 그분들마저 농촌을 떠나게 된다면, 자연환경의 파괴는 물론 건강한 먹을거리도 사라질 것이고, 도시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렇게 보면 참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는데 왜 이리 조용한 것 같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들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럴까. 결국은 다 내 문제가 될 텐데 말이다. 정부의 농업 정책도 이제 농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나간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열풍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경제 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들 하지만 관심을 갖고 한다면 안 될 건 또 뭔가. 초국적 기업들의 절대 권력과 끝없는 이윤 추구라는 논리가 새삼 무섭다. 

  그러는 사이 아칩밥이 다 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푸고, 작년에 수확해서 직접 담근 김치를 꺼내고 간장에 재 놓은 깻잎을 꺼내고 달걀 하나를 꺼내 찜을 한다. 아침상을 차려놓고 보니 근사하다. 그렇지만 자급도를 생각해보면 절반도 되지 않는다. 초국적 기업이 어떻고 신자유주의가 어떻고 하지만 내 밥상조차 이 모양인 것이 씁쓸하지만, 맛있게 아침을 챙겨 먹고 책을 챙겨들고 길을 나선다.


종자를 사러 가는 길


  안양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간다. 자동차는 물론 아직 운전면허도 없는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대신 나에게는 든든한 애마인 자전거가 있다. 가끔 비가 내릴 때는 탈 수 없지만 그런 날에는 밖에 안 나가면 그만이다. 역에 도착해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전자 광고판이 나의 눈길을 끈다. 디지털 유목민. 작년 한 해 우리 사회를 뒤흔든 말 가운데 하나가 ‘유목’이라는 말이다. ‘칭기스칸’이 드라마로 하고, 여러 유목 관련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런 때 출판된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는 나의 관심을 끌었다.

  이 책의 저자 천규석 선생님은 이미 잘 알려진 분이다. 그간 출판된 유목 관련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지식을 쌓아 놓았던 터라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라는 제목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책을 펼쳐 보니 내가 좀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자문하게 되었다. 내가 보았던 책들에서는 유목민의 “이동성‧개방성‧창조성”이야말로 요즘 시대의 흐름과도 맞고 농경문화가 갖는 폐해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확실히 요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유목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침저녁이면 문전옥답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빠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몇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하고, 농업이 아닌(그렇다고 유목도 아니지만) 상공업이나 그와 관계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이른바 뜨고 있는 ‘유목’을 이해하고 있었는데, 천규석 선생님의 일갈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요즘 사회의 모습을 유목과 연관 지으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노골적으로 자본의 세계화, 이윤 창출이라고 드러내기에는 양심이 있어서 그런지, 교묘하게 유목에 빗대서 자기들의 행태를 정당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목민이 이동을 하면서 산다고 하지만 그들은 풀을 찾아 일정하게 정해진 구역을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자기들에게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한 한 형태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처럼 살지 않는다. 우리는 가스나 기름으로 난방을 하고, 석유를 이용해서 이동하며, 핵가족 제도 아래 살고 있지만, 그들은 가축의 똥으로 난방을 하고, 초원에 사는 말을 길들이며, 대가족 제도를 이루고 살았지 않는가.

  공동체 문화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공동체가 사람에게 가장 안정감을 주고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동체의 파괴 때문에 현대인의 알 수 없는 불안감, 정신분열증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동안의 가부장 중심의 대가족 제도가 여자에게 엄청난 부담을 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모습을 보면 가부장 제도의 절대적인 우위는 어느 정도 사라진 것 같다. 그렇다면 더 나은 방향의 대가족 제도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가족이 모여 산다는 일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6~70년대만 해도 방 하나에 대여섯 식구가 같이 생활하는 것은 흔했다. 지금 생각하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끔찍스러울지도 모르지만 더 사람 냄새나고 정겨웠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각자 방이 있어서 문 닫고 들어가 버리면 그만인데, 그 폐해가 슬슬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은둔형 외톨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해 방황하는 청소년 같은 무수한 사회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나는 그것이 지나친 개인의 강조가 불러온 현상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식구가 북적거리는 대가족 제도가 갖는 장점이 있다. 그곳에서는 비밀이나 고민을 혼자 싸안고 있을 염려가 적다. 가족들은 항상 얼굴을 맞대고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며, 자연스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외롭다든지 불안하다든지 하는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생활한다.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않아서 밥상에서 한바탕 난리가 일어나지만 그렇게 먹는 밥이 더 맛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집안에 어른이 계시므로 자연히 잡히는 질서랄까 예의가 있다. 아이는 어른의 말을 경청하고 어른은 아이를 사랑으로 대한다. 이제 가장이 돈 벌어 오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숨들을 들으면 공동체 문화를 회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정부에서는 그런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복지국가 건설에 한창이다. 독거노인이나 혼자된 사람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하지만, 그들이 무슨 낙으로 살겠는가. 가족 공동체를 제대로 복원하지 않고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밖에는 안 된다. 이걸 조금 더 확장해 보면, 마을 공동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방 자치제를 시행한 지 벌써 10년도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성과는 동사무소가 주민자치센터로 변한 것뿐이지 실질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다. 당장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데 지방자치가 이루어지겠는가. 급속한 산업화 이후에 깨진 마을 공동체를 그나마 교회에서 유지하고 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는 장모님을 보면, 교회에서 주일마다 먹을거리를 싸 들고 함께 나눠 먹는다 하고, 명절이나 경조사 때마다 살뜰히 챙기기까지 한다. 예전에 우리 마을의 모습이 딱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공동체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지국가라는 것은 “변종 국가주의”라는 천규석 선생님의 말에 동의한다.

  이러한 공동체 문화는 우리만이 아니라 외국도 그러했다. 자본주의의 선진국이라는 영국의 경우, 인클로저 운동이 있기 전에는 “지주나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관행은 제한하고, 어떤 권리는 용인했다. 그럼으로써 토지를 보전하거나 수확물을 더욱 평등하게 분배할 수도 있었고, 공동체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제공할 수도 있었다”고 󰡔�이윤에 굶주린 자들󰡕�에서는 말한다. 아무튼 그러한 인간 냄새나는 살뜰함이 살아 있다면 지방자치제도나 복지 제도가 지금처럼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제대로 정착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세계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엄청나게 집중되어 있는 중앙집권제, 사람들의 삶을 개개인으로 뿔뿔이 흩어 버리는 자본주의, 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양산되는 실업자‧빈곤층‧사회적 약자들, 그에 대한 땜빵 처리식의 지방자치제와 복지 제도, 이 모든 것이 구조로 굳어져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처럼 보인다.


종묘상에서


  종묘상에 오면 항상 문방구에 온 아이 같은 기분이 된다.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고, 너무 재밌고 신나서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직접 종자를 사러 온지 벌써 3년째다.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보는 것도 재밌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종자를 받아서 써야겠다는 생각도 강해진다. 농사 규모가 얼마 안 돼서 돈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되지만, IMF 이후에 국내의 굵직굵직한 종묘 회사들이 초국적 기업에 넘어갔다는 사실은 나의 채종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든다. 종묘상에서 종자를 사다가 봉지를 뜯어보면 예쁜 색깔의 약품이 싹 묻어 있다. 발아율을 높이고 수확량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지만 찝찝한 기분은 지울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라 교배종을 만들어서 심은 해는 잘 돼지만 다시 그 종자를 받아서 쓰면 다음해는 수확량이 뚝 떨어지게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종자를 구입하게 한다. 심지어 이제는 유전자 조작을 해서 자신들의 농약‧화학비료를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고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교배종을 받아서 쓰면 첫 해는 그럴지언정 쭉 오랫동안 육종을 해서 쓰면 좋은 형질이 고정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생계 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사람이나 가능하지 농사로 모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의 경우는 어렵다는 점이다.

  어디 그런 일이 종묘 회사뿐인가, 농축산물 가공 업체도 그렇고, 음식점도 그렇다. 우리 생활 곳곳은 물론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먹을거리 문제에도 이윤의 논리가 깊이 침투해 있다. 어쩔 수 없이 먹을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대형 할인점에 가면 모두가 그렇다. 내가 내 삶을 주체적으로 꾸리고 있는 것인지, 그네들이 주는 돈으로 다시 갖다 바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동네 시장을 찾아보려 하지만 이제 다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남아 있던 곳들도 어쩔 수 없이 현대화다 뭐다 하면서 세련되게 손을 봐서 옛날 같은 맛이 없어졌다.

  그러한 문제들의 원인을 짚고 있는 󰡔�이윤에 굶주린 자들󰡕�을 보면서 어찌나 머릿속이 명쾌해지는지 무릎을 치면서 읽었다. 이 책을 보면서 왜 우리는 이런 분석을 못하고 있을까 이다. 공부하는 사람들 가운데 농업 경제학이나 노동 경제학을 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힘든 현실 때문인 것 같다.


밭으로 오다


  올해는 잡곡을 주로 심으려고 한다. 농사를 지은 지 4년이 지났지만, 1년에 한 번 농사를 짓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제 걸음마를 뗀 아이나 다름없다. 처음에는 좌충우돌 실수투성이였다. 그렇다고 이제 농부 티가 나는 것도 아니다. 밭에서 일하는 순간만큼은 참 행복하고 평화롭다. 씨앗을 심는 일, 작물을 돌보는 일, 풀을 매는 일, 모든 농사일이 내 마음을 갈고 닦는 일이다. 나는 남자라서 아이를 낳을 수 없지만 새싹이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를 낳는 여자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여성성이 화두가 되었던 때가 있었는데 남성들에게 여성성을 일깨우기에 농사보다 좋은 것이 없을 것 같다. 나중에 수확이라도 하는 때면 그 기분을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다. 또 그것을 내 입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으로 전하는 일은 어떤 일보다 뿌듯하다. 해마다 같은 일이니 지겹지 않을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해마다 철마다 날마다 새롭고 놀랍다. 장난감이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는 방에 들어온 아이 같다.

  요즘 농사를 지으면서 전통 농법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던 중이라 󰡔�4천년의 농부󰡕�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이 책의 저자는 농림부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미국 사람인데, 동아시아의 농업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비록 의도가 심각한 땅힘 고갈과 완전하지 않은 화학비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동아시아의 농사법을 관찰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산업화‧서구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우리 것을 비과학적‧무식함‧낙후‧비효율적인 것으로 깔보게 되었는데, 농사를 지으면서 새삼 알게 된 우리 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정말로 그렇다면 어떻게 수천 년 동안 이 좁은 땅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올 수 있었겠는가. 책을 읽으며 옛 조상들의 경험에서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현대의 석유 화학 제품에 의존한 농법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의 조화로운 관계를 끊어 버렸다. 관계를 끊어 버린 것도 모자라 건강과 생명까지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더군다나 농업을 좌지우지하는 초국적 자본은 전 세계인을 노예로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전통 농법을 공부하고 실천해 보면서 꼭 그들의 생각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조상들은 근대 위생 시설이 들어온 뒤부터 오폐수라는 이름으로 바다에 버려지는 무수한 자원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땅으로 되돌려 이용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땅의 힘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활용해서 농사를 짓는 방법인 사이짓기, 이어짓기, 돌려짓기를 실천해 왔다. 땅에서 나오는 것은 삶을 유지하는 데 이용한 뒤 하나도 낭비하지 않았고, 이윤을 목적으로 땅이나 가축을 혹사시키지도 않았다. 그러한 방법들은 이윤을 위해서 단일 작물로 땅을 도배하고,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석유 화학 제품으로 칠하고 있는 그네들의 눈에는 우습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그들에 의해서 유지되어 온 것도 아니고, 미래 또한 그들이 책임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미래는 소농과 가족농들, 그리고 그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의해서 끈질기게 살아남을 것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러한 조상들의 정신과 방법을 몸으로 배우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밭에 와서 땀을 흘리고 씨를 뿌리며 일을 한다. 인간의 미래는 당장은 고달프고 어려울 것이지만 어둡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민들레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같이 땀 흘리는 분들이 이곳에 함께 있다.


잠에서 깨다


  시계 알람 소리에 슬며시 눈을 떴다. 창밖이 훤한 것을 보니 오늘은 황사가 오지 않았나 보다. 머리맡에는 새벽까지 읽고 놔둔 󰡔�4천년의 농부󰡕�,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이윤에 굶주린 자들󰡕�이 놓여 있다. 한껏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나는 오늘도 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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