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놀자!
지난 달, 한 해 동안 같이 모여서 공부하던 분들과 함께 겨울맞이 모임을 했습니다. 이제 일 년 농사를 끝내서 별다른 일도 없고, 다들 심심하게 지내다가 오랜만에 모이니 물 만난 고기마냥 모두 신이 났습니다. 원래 모임을 갖은 이유는 함께 베이컨도 만들고 농사지은 콩으로 메주도 만들자고 한 것인데, 사실은 한 판 걸쭉하니 놀아보자는 것이 다들 갖고 있는 속셈이었습니다.
베이컨은 서양의 김치 같은 것으로 만들자면 몇 시간이 걸리는지 모르는지라 그 사이에 모임의 회장님이 준비하신 석화구이도 먹고 막걸리도 마시며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여기저기서 석화구이, 석화구이 하는 말을 들어서 왜 석화구이라고 하나 궁금했는데, 그날 굴을 보니 그 이유를 알겠습디다. 굴에 쭈글쭈글 주름 잡힌 모습도 한 송이 꽃 같고, 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도 탐스러운 꽃 같이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껍질은 돌처럼 단단한 것이 모양은 참 곱디곱고, 그 안에 들어있는 속살은 왜 그리도 맛있는지 지금도 생각만 하면 침이 꼴깍 넘어 갑니다. 원래 비린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해서 생굴도 별로였는데, 그렇게 장작불에 구워 먹어보니 노릇노릇하게 익은 것이 네 발 달린 짐승의 고기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막걸리 한 잔 걸치고 껍질에서 힘줄 채 뜯어먹는 그 맛이란! 아무튼 지금도 입안에 침이 고이게 만들면서 사람 환장하게 합니다.
가볍게 석화구이로 뱃속을 채운 다음, 베이컨이 익는 시간 동안 윷놀이판으로 가 함께 윷을 던지며 놀았습니다. 명절날 시골에 가면 가끔 어른들이 윷놀이 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때는 저걸 무슨 재미로 하나 했습니다. 그저 윷을 던지고 말을 놓고 돌아오는 것뿐인데, 소리를 질러대고 어떤 때는 날뛰기도 하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였습니다. 학교 다닐 때 윷놀이를 수업시간에 몇 번 해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재미는 알 수 없었죠. 그래서 윷놀이 하면 화투보다 재미없는 명절놀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콱 박혀있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웬걸요. 이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는 겁니다. 그때 인원이 스무 명 남짓이어서 세 패로 나눠서 윷을 던졌는데, 이렇게 박진감 넘치고 가슴 떨리고 두근거리는 놀이는 어릴 때 했던 오징어를 빼고는 처음이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운이라고는 하지만 윷을 던질 때 뭐가 나와야 좋다고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던지는 동작 하나하나, 그리고 작은 계산과 손동작, 또 꼭 필요한 그것이 나왔을 때의 통쾌함, 우리 말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까지 계산해서 놓아야 하는 치열한 머리싸움. 이렇게 재미있는 놀이를 왜 그동안 모르고 있었는지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지기까지 했습니다. 그제야 어른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 판에서도 진짜로 방방 뛰고 소리 지르고 웃고 떠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생겼습니다. 나도 신나서 우와 거기에 함께 묻혀서 나를 잊고 놀이에, 그리고 사람들에 하나가 됐습니다.
그런데 어릴 적에 하던 놀이가 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해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다보면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엄마가 찾으러 왔던 기억이 누구나 있으실 겁니다. 재밌게 놀다가도 누구 하나가 빠지면 놀이는 곧 시들해져서 금방 흥이 깨지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곤 했지요. 그럴 때는 꼭 먼저 찾으러 오는 집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유난이셨던 것인지 걱정이 되어 그러셨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판을 깨는 사람이 몇몇 정해져 있어서 투덜거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애들은 놀이에 잘 붙여주지 않으려고 했지요. 그래도 사람이 많으면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누구라도 가리지 않고 놀이에 붙여주었습니다. 더구나 몸이 불편하다든가 나이가 어려서 제대로 놀 수 없는 애들까지도 깍두기라는 이름으로 같이 놀았습니다. 차별 없이 공평하고 합리적인 놀이 규칙이 알게 모르게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요즈음 같은 세상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함께 어울려 놀면 별다른 도구도 필요 없었습니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만 있어도 놀 수 있었고, 나뭇가지도 좋은 노리개였습니다. 지금처럼 놀기 위해서 무언가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널려 있는 것들이 모두 놀이거리였고, 놀 장소와 시간과 사람만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놀 수 있었습니다. 뭐 정 없으면 맨몸으로 뛰어놀아도 땀을 흘리며 헉헉대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렇게 놀던 놀이에는 다방구, 술래잡기, 오징어, 삼팔선, 나이먹기, 짬뽕, 원두막, 도둑잡기, 얼음땡, 돈까스, 발야구, 축구, 피구, 망까기, 돌깨기, 땅따먹기, 구슬치기, 지우개 따먹기, 책받침 깨기, 뛰어내리기, 보물찾기, 탐험놀이, 딱지치기, 딱지먹기, 파파놀이, 칠성사이다, 돼지불알, 곱창, 비석치기, 씨름, 나무타기, 기지 만들기, 버들피리, 말뚝박기, 인형놀이, 소꿉장난, 공기, 고무줄, 개구리 잡기, 잠자리 잡기, 눈싸움, 썰매타기, 쥐불놀이, 팽이치기, 고무 따먹기, ……, 그 외에 잘 생각도 안 나는 온갖 놀이가 다 있었습니다.
요즈음은 동네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도 듣기 힘듭니다. 다들 컴퓨터만 하고 노는지, 학원에 다니느라 그런지,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는 강남에서는 놀이 과외도 한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사회가 변했다는 것인데, 이것이 좋다고 해야 할 지, 나쁘다고 해야 할 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아이들 나름대로 재미야 있겠지만 그때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과 사귀고 어울리며 자랐습니다. 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것도 배웠고, 합리적인 규칙이야말로 절로 어울리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아무리 골목대장이고 힘이 세다고 해도 아이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놀이거리가 없으면 그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항상 골목대장 노릇을 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돈으로 피씨방에 가고 맛있는 것을 사주면 아이들이 따른다고 합니다. 학생회장 선거나 반장 선거도 어른들의 그것처럼 돈으로 한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렸을 때의 그것들을 잃는 것도 서글픈데, 적응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모습을 보면 어른들의 습관이 아이들도 물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가슴 한켠을 횅하게 만듭니다.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나도 아이였을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그때와는 다르게 자라고 있는 것일까요.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웃을 줄 아는 동물이다 하는 여러 말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은 놀 줄 아는 동물인 것 같습니다. 잘 놀아야 다른 일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현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창조력이라고 하는데, 창조는 엉뚱한 생각, 느긋하고 여유로울 때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야말로 놀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지금의 모든 상황은 우리를 놀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놀이도 돈이 있어야 하고, 시간이 있어야 하고, 한 번 놀려면 이런 저런 조건들이 참 많이 필요합니다. 몸 만드는 곳에 가서 돈을 갖다 바치고 달리기 기계 위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도 안 나옵니다. 평소에는 걸을만한 시간도 없어서 달밤에 체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달리고 있는 것인지. 하루 24시간도 모자라다고 하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살고 있는 모습인양 떠들어 대며 은근히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고, 뭐든지 후다닥 후다닥 빨리빨리 하는 것이 제일로 알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뭐 특별히 다른 것은 아니지만 그런 내 모습조차 쓴웃음이 나게 합니다.
물론 일이 재미있고, 바쁘게 사는 것이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도 휴식은 꼭 필요한 것이고, 쉬지 않고는 그런 삶에 모든 힘을 쏟을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제대로 쉬고 놀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현실입니다. 국어책에 나오는 말처럼 ‘철수야, 놀자. 영희야, 놀자’ 하면 선뜻 재미있는 놀이거리를 가지고 함께 놀아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오늘은 왠지 “야~ 놀자!”라고 외치고 싶습니다.